< 포부 >
"푸훗, 푸하핫! 백성들이 무지몽매해서, 라고 하였느냐?"
"그러하옵니다, 황상."
"그래, 그거 정곡이로구나. 그거 정곡이야! 제 이름 석 자도 쓸 줄 모르는 백성들이 조선 8도에 즐비한데, 백성들에게 정치를 가르친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겠냐!"
이형은 소리 내 웃었다. 반쯤은 김홍집을 자극하여 진심을 끌어내기 위함이었으나, 나머지 반은 그의 진심이었다. 설마, 앞에서 그런 말을 듣게 될 줄은 미처 몰랐던 까닭이다. 백성들이 무지몽매하다고 황제가 듣는 앞에서 지껄이다니 말이다. 그건 결국 이 나라의 유자들이 직무를 유기하였다는 말밖에 더 되는가.
애초에 선비란 무엇이고 유자의 도리란 무엇이던가. 더욱 많은 것을 배운 자로서 후학을 이끌어주는 역할이 아니던가. 그런데 조선이 500여 년간 유학을 국학으로 삼아 유자들을 우대하였거늘 여전히 백성들이 무지몽매하다니, 그건 또 무슨 소리인가. 후학을 끌어줬어야 할 유자들이 백성들에게는 의도적으로 그 가르침을 베풀지 않았거나, 정성껏 가르쳤음에도 백성들의 성취가 대단치 못하다는 이야기 밖에는 되지 않는다.
'아니 뭐, 아주 틀린 말은 아니고 그만큼 교육이 중요하다고 역설하고 싶었던 거겠지만···이건 아니지. 하다 하다 내가 듣는 앞에서 대놓고 말해버리다니, 이 녀석 여차하면 이 자리에서 험한 꼴 당할 뻔했네!'
또한 이는 이형의 치세를 비판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형이 지시한 의무교육이 뜻대로 잘 풀리지 않거나 소용이 없었음을 지적하는 언사로 해석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알기에 이형은 소리 내 웃으면서도 내심 쓴웃음을 지었다. 말이 헛나왔다고 해도 너무 멀리 나갔다.
박규수도 그것을 단번에 알아들었으니만큼, 얼굴을 붉으락푸르락하고 있었다. 아무리 애제자라지만 드러내놓고서 유림과 조선의 건국이념을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말을 하고 있으니 용서해주기 어려웠다. 스승의 노기를 읽은 듯 몸을 움찔 떨고서는, 김홍집은 서둘러 말을 이었다.
"시대가 달라진 까닭입니다. 그간 백성들이 배워온 것은 삼강오륜의 기초 중에서도 기초였으며, 그들의 생업에 당장 필요한 농사 짓는 재주와 이치였습니다. 한문은커녕 언문조차 몰라도 살아가는 데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작금의 시대는 다릅니다. 단지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언문과 한문을 모두 익히는 것은 물론이오, 삼강오륜은 당연하며 농사짓는 재주만 가르치고 익혀서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렇게 말을 덧붙이니 그나마 모양새가 나아졌다. 앞선 발언이 조선조 500년과 이형의 의무교육 전부가 쓸모없었던 것이라고 비판하는 격이었다면, 이리 뒷말을 덧붙이니 시대가 달라지니 그럴 수밖에 없다며 옹호하는 격이 되었다. 그제야 박규수는 표정을 조금이나마 풀었다. 그러나 이전보다 김홍집을 쏘아보는 시선이 더욱더 날카로워졌음은 물론이었다.
그에 위축된 듯 김홍집은 어깨를 떨구었다. 엄한 스승이라고 이형은 내심 생각했다. 뭐, 엄할 수밖에 없는 사안이었다지만 말이다. 이형은 그리 개의치 않는 모습으로 말을 이었다.
"그래, 그것이 바로 교육부를 따로 만들어가며 이 나라에서 교육을 으뜸가는 이치로 삼은 까닭이다. 장차 언문을 널리 배포하여 한문을 배우는 수고를 줄인다고 한들, 신식학문까지 덩달아 익히는 그 수고는 끔찍하겠지. 그러나 필요한 일이다."
"물론 그렇습니다. 하오나, 황상.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백성들에게 법을 가르치고, 정치를 가르치고, 천하가 얼마나 광대한지를 가르쳐야만 합니다. 설령 이 나라 모든 백성이 이름난 학자가 될 수는 없겠으나,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를 배우고 익히는 학생이 될 수는 있을 것입니다."
"흐음, 그 말은 꼭 이 나라의 백성들 전부가 선비와 다를 바 없이 배우고 익혀야 한다고 말하는 듯하구나. 그러나, 그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겠느냐. 그를 위하여 도대체 얼마나 많은 학당이 필요할 것이며 또 얼마나 많은 스승이 필요하겠느냐. 온 나라의 백성들이 선비가 된다면, 힘들고 고된 일은 누가 하겠느냐."
이형은 턱을 괴며 지적했다. 김홍집의 이치가 틀렸음을 지적한 것이 아니었다. 현실성을 지적한 것이다. 21세기 대한민국도 대학진학률이 기형적으로 높아졌다고 하나 100%의 대학진학률은 기록하지 못했다. 그런 판국에, 김홍집의 원대한 계획은 분명 패기 하나는 인정할 만 했으나 전혀 현실성이 없었다.
김홍집은 잠시 망설이다 답하였다.
"그렇다면 하다못해 집 안에 여유가 있는 자들만이라도 선비와 같이 익혀야만 할 것입니다. 모두가 선비가 될 수는 없겠으나, 이 나라의 백성 중 반절 가까이가 선비와 다를 바 없이 배우고, 익히며, 교양을 갖추었을 때, 비로소 영길리와 같은 체제를 갖출 수 있을 것입니다."
"반절이라. 말이야 그럴싸하나, 그조차 조금 많구나. 그것이 과연 너의 생전에 가능하겠느냐? 그리고 집안에 여유가 있다고 하면 어느 정도를 의미하느냐? 집안에 고용인을 들일 수 있는 자들인가?"
"···3할 이상, 입니다. 못해도 3할 이상을 목표로 하여야만 가능하다, 고 생각해주십시오."
뒤로 갈수록 묘하게 자신감이 옅어지는 김홍집이었다. 곁에서 그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다 보고 있는 엄한 스승에게 기가 죽은 까닭이리라. 이형은 그런 김홍집의 모습에 내심 웃었다. 아직 경험이 부족해서인지 다소 어리숙한 모습을 보이나, 적어도 어떻게 굴러가는지 그 이치와 전제조건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이해하고 왔다.
그만하면 아슬아슬하게나마 합격점이었다. 어차피 지금 근대적인 정당 정치에 대하여 수박 겉핥기로나마 이해하고 있는 건 김병학 김병국 형제 정도일 테고, 대부분은 민주정이나 선거는커녕 정당 정치가 뭔지도 모르는 게 대다수인 지금의 한국에서 최소한 민주정이 유지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 계몽되고 잘 배운 시민들이라는 걸 확실하게 알고 있는 것만으로 상위 1% 안에 드는 인재였다.
이형은 히죽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네가 궁극적으로 목표로 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더냐? 못해도 3할 이상의 백성들이 선비와 같이 배우고 익혀야만 한다고 너 스스로 말하였지. 그렇다면 선비와 같이 배운 백성들의 기준선은 어디로 잡아야 하는가? 중학교를 졸업한 자인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자인가?"
함정질문이었다. 일제강점기 시절, 일제의 문화 통치 아래 신음하던 조선인들도 초등학교까지는 졸업할 수 있었다. 그다음부터는 대단한 능력이 있거나 친일경력이 필요했지만 말이다. 그러니 초등학교 졸업률 3할 이상을 목표로 하는 건 애초에 우스갯소리다. 목표치로는 처음부터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니 목표치는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중학교 졸업과 고등학교 졸업이냐로 따져야 한다. 그리고 19세기를 기준으로, 고등학교 졸업률 30% 이상을 넘기는 열강조차 드물다. 먹고 살고자 한다면 초등 수준의 수리와 읽고 쓰기만 익혀도 살아가는 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니 의무교육을 표방하는 열강들도 중등 이상, 고등 이상의 교육에 열을 보이던 것은 프로이센 정도다.
이 시기 중국이나 인도는 천명 중 한 명이나 겨우 글을 읽을 수 있었다고 하며, 미국은 세계대전 직전까지도 매년 수십만 명의 신병들이 군대에 들어와서야 읽고 쓰기를 배웠다. 이탈리아 같은 경우에는 아예 헌법에 21세 이상인 남성으로서 글을 아는 자에게만 선거권을 부여한다고 명시하여 따로 구분을 둘 정도였다.
그러니 이것은 함정 질문이었다. 19세기를 기준으로 중학교 졸업생 30% 이상이라면 너무 허들이 낮고, 고등학교 졸업생 30% 이상이라면 너무 허들이 높다. 이형으로서는 이 함정 질문을 김홍집이 어떻게 헤쳐 나갈지를 보고 싶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대학교를 졸업한 자가 못해도 30% 이상이 되어야만 할 것입니다."
하지만 김홍집의 야심 찬 계획은 거기에서 한술 더 떴다. 대학교 졸업생이 30% 이상이 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건 그야말로 터무니없는 주장이었다. 여성들의 대학 진출을 용인하거나, 아니면 성인 남성 대다수가 대학교를 졸업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 격이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졸업생조차 30% 이상을 넘기는 경우가 드문 19세기에 대학교 졸업생 30% 이상이라는 건 독재 정권의 전폭적이고 기형적인 교육열 아래에서나 가능하다.
그리고 본의 아니 게도 현 대한제국은 독재 정권이었으며 500여 년 간에 유교적 문민 통치 아래 문관과 학자들에 대한 사회적 존중과 동경이 만연하였고, 장차 박규수를 승계하여 신진 관료들의 필두로서 우뚝 서게 될 김홍집은 본디 전 국민이 선비와 다를 바 없이 배우고 익혀야 한다 주장하다가 이형에게 현실성을 지적받아 그 목표치를 고친 기형적인 교육열에 불타오르는 인물이었다.
그러니 이형은 배꼽을 부여잡고 웃음을 터뜨렸다. 기개가 대단한 것인지 무식한 것인지 어느 쪽인지는 모르겠으나, 참으로 모범적인 개화된 조선의 유자다운 발상이었다.
"푸훗, 푸하핫! 대졸자가 전 국민의 30% 이상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네가 지금 알고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이더냐! 저 노서아에서조차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백성이 고작해야 3할 이하다! 그런데 대학교를 졸업한 백성이 30% 이상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참으로 패기 하나는 높이 평할만하구나!"
"그, 그것은 상관할 바가 아니옵니다! 장차 우리 한국이 의식해야 할 곳은 영길리일 것입니다. 노서아의 문해율이 높고 낮음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도리어 영길리의 문해율이 얼마나 높은지, 얼마나 수준 높은 교육을 받는지를 항상 염두에 두고서 영길리의 학자들과 경쟁하려는 자세를 갖추어야만 할 것입니다!"
"푸하하핫-!"
이형은 배를 부여잡고 바닥을 굴러댔다. 진짜로 이건 뭐 그를 웃겨 죽이려는 심산인가 싶었다. 하다 하다 이제는 영국 교육계와 경쟁해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영국의 고등학교, 대학교들이 얼마나 수준 높은지는 김홍집이 가장 잘 알고 있을 텐데도 말이다. 그런데도 단지 이형에게 잘 보이려고 이런 주장을 펴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리 생각하여 말하는 것인 듯하니 이형으로서는 눈물을 쏙 빼가며 웃어젖힐 수 있었다.
호랑이를 그리려 해야 고양이 정도는 그릴 수 있는 것이라지만, 지금 한국과 영국의 학문적 격차는 호랑이나 고양이 운운보다는 주작이나 청룡 같은 공상 속 동물을 들고나와야 적절한 비교가 가능할 지경이다. 그걸 기어이 자신의 생전에 따라잡겠다고 말하고 있으니, 그 야심만만한 발상이 어처구니없기 이전에 우습기만 했다.
이리 앞에서 비웃음을 당할 줄은 몰랐던지, 김홍집은 얼굴을 새빨갛게 붉혔다. 처음에는 김홍집을 못마땅하게 바라보던 박규수도, 이제는 이형을 흘겨보며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그제야 이형은 웃음소리를 멈추고서 다시 말했다.
"뜻은 가상하구나. 그래, 그 절반에 절반이라도 현실로 만들 수 있다면 분명히 이 나라는 부강해지리라. 설령 그조차 불가능하더라도 이 나라의 백성들에게 배움에 뜻을 품도록 한다면 그것만으로도 너는 역사에 이름을 남길 대업을 세운 것이다. 할 수 있겠느냐?"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는 것보다야는 도전이라도 해보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어딘가 퉁명스러운 대답이었다. 이형이 앞에서 웃어 재끼던 것에 기분이 상한 것임이 분명했다. 이형은 낄낄 웃으며 말했다.
"그래, 뭐라도 시작하는 것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야 나은 법이지. 그럼 이것이 마지막 문답이니라. 네가 장차 만들고자 하는 나라는 어떤 나라더냐? 이 나라의 황제와 너의 스승이 듣는 앞에서 어디 좋을 대로 지껄여 보아라."
"선비의 나라입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즉답이었다. 그 대답에 박규수는 홀로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조선의 유자로서, 그보다 만족스러운 대답은 있을 수 없었다.
그리고 김홍집은 거기에 한마디 덧붙였다.
"그리고 백성 모두가 선비가 되는 나라입니다."
그 뒤에야 비로소 민주정이 가능해질 테니까.
비록 직접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으나, 김홍집이 그리 말하는 것을 이형은 선명하게 들을 수 있었다.
그제야 이형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내 너에게 태자의 교육을 맡기도록 하겠다."
비로소 박규수의 후임으로 중히 써도 되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
한편, 그 무렵 주미 한국공사관.
"네놈! 당장 풀어주지 못할까! 네놈이 내가 누군 줄 알기는 하느냐! 나는···!"
"미리견 정부도 아니고 일개 사업가 나부랭이에게 기밀을 누설하신 민치상 대감이 아닙니까. 다 알고 왔으니 이만 포기하시지요. 자세한 변명은 황상을 찾아뵙고서 직접 하시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포승줄에 둘둘 말린 민치상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눈은 풀리고 배는 튀어나오고 얼굴에는 기름기가 줄줄 흐르는 것이, 한국을 떠날 적의 총명하고 야심 찬 모습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자연히 김옥균의 대꾸도 거칠어질 수밖에는 없었다. 하다못해 민치상이 체통을 지켜가며 정중하게 부탁했으면 모를까, 영락없이 사람 형상을 한 돼지가 되어 꽤액꽤액 짖어대고 있는데 정중한 말이 나올 턱이 없었다. 김옥균은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아니 그보다도···도대체 아편을 얼마나 피웠길래 포박한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몸에서 이리 양귀비 냄새가 나? 눈도 게슴츠레하고 머리카락도 영 푸석푸석한 것이···강남에서나 구경하던 중증 아편 중독자들 같은 증상인데.'
이 또한 김옥균이 민치상을 대하는 태도가 거칠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였다. 어딜 어떻게 봐도, 지금 민치상은 제정신이 아니던 것이다. 김옥균으로서는 진저리가 날 따름이었다. 아편이 멀쩡한 사람 하나 망치는 거야 일도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여기까지 사람을 망쳐놓은 걸 보고 있자면 구역질이 치밀었다.
과연 민치상이 모건이라는 사업가가 대주는 돈으로 스스로 아편을 찾았을까, 아니면 모건이 먼저 민치상에게 아편을 피워보라 꼬드겼을까. 후자일 가능성이 배 이상은 높았다. 그리고 그 사실은 김옥균에게 섬뜩함을 느끼게 했다.
그 민치상조차 이리되었다면 김옥균이라고 다른 결말을 맞이할 이유도 없던 것이다.
"무, 무언가 착오가 있었던 게야! 황상, 황상을 만나게 해주게! 황상께 말씀드리면 다 잘 풀릴 거야!"
"그러니까 지금 황상을 배알하러 가는 거잖습니까. 얌전히 가시죠. 하다못해 체통을-."
"「그이는 아무런 잘못이 없어요! 당장 그분을 놓아주세요! 이 강도 떼들아! 이걸로 그분과 내 사이를 방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
그때였다. 창 너머로 또다시 누군가가 아우성치는 소리가 울려 퍼지던 것이다. 그것이 누구인지는 뻔했다. 요즈음 김옥균의 성질머리를 벅벅 긁고 있던 2인조 중 한 사람이었다. 민치상이 미리견에 와서 사귀었다는 애첩이었다. 도대체 민치상이 무슨 요술을 부렸던지, 그의 실각이 명명백백해져 다들 발걸음을 끊은 뒤에도 저 애첩 한 사람만큼은 매일 밤 공사관에 찾아와 난동을 피우고 있었다.
"오, 내 사랑! 역시 만나러 와줬구려! 잠시만 기다려주시오! 무언가 착오가 있었던 거요! 분명 그렇소! 그러고 나면 우리 함께 도망칩시다!"
민치상은 간드러진 목소리로 외쳤다. 김옥균을 대할 때와는 사뭇 다른, 기름기가 좔좔 흐르는 듯한 느끼한 어조였다. 영락없이 사랑하는 연인을 부르는 목소리였다. 그 모습에, 김옥균은 절로 머리가 띵해져 오는 듯했다. 이제는 하다 하다 애까지 딸린 불륜남의 치정극까지 감상해야 하는 지경이라니.
'미치겠군.'
김옥균은 어떻게 하면 피치 못할 현장 사살 사유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고민에 잠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