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폭군 고종대왕 일대기-231화 (231/530)

< 덤터기 >

물론 그것 또한 순탄하지는 않았다. 일본 전역의 다이묘들에게 토지와 호적을 반환하라고 명하기 이전 요시노부는 우선 가장 먼저 모든 다이묘에게 에도로 상경할 것을 요구했다. 그들이 영지에 남아있는 상태에서 이러한 조처를 했다가는 이에 반발한 다이묘들이 영지에서 반란을 일으킬까 두려웠던 까닭이다. 만일 상경하지 않으면 그 즉시 역도로 간주하여 토벌할 것이라는 위협 또한 덧붙였음은 물론이었다.

여기에 더하여 일본의 수도를 교토에서 에도로 옮기며 한국과 프랑스의 제도를 본받아 견회조와 신센구미를 합하여 국가헌병대를 신설한 요시노부는 그의 친위대나 다름없는 그들에게 에도에 인질로 잡혀있던 다이묘의 가족들을 호위하도록 명하였다. 그 이전에도 인질의 성격이 강했던 것을 한결 더 강화해 거스르면 죽여 없애겠다는 인상을 더욱 굳힌 것이다.

그 뒤에야 요시노부는 가까스로 일본 전역의 다이묘들에게서 항복을 받아낼 수 있었고, 그들로부터 일본 전역의 호적과 토지를 반환받은 후 각지의 다이묘들에게 조정을 대신해 각 번을 다스리는 지번사라는 지위를 부여했다. 사실상 독립된 공왕이나 다름없었던 일본 각지의 영주들을 조정을 대신해 번을 통치하는 지방관으로 격하한 것이다.

"참으로 경하드립니다, 전하. 인제야 겨우 우리 일본국도 이웃 조선처럼 국론을 하나로 모아 뜻대로 개혁을 진행할 수 있게 되었군요. 참으로 감개무량하기만 합니다."

이제는 교토를 넘어 일본 전역의 치안을 관장하는 내무성의 장관이 된 마츠다이라 가타모리가 말했다시피, 이는 그 자체로서 대단한 위업이었다. 헤이안 시대의 교토 조정이 시도하려다가 실패하고, 수백 년 만에 처음으로 일본이 강력한 중앙정부를 가지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각각이 독립된 나라나 다를 바 없이 생각하고 행동하던 일본 전역의 다이묘들을 마침내 에도의 중앙정부가 무릎 꿇리는 데에 성공한 것이다.

그것은 곧 사실상 일본의 왕이 되었다는 이야기 또한 되었다. 그 이전까지도 사실상 일본의 왕이나 다를 바 없이 행동해온 요시노부였으나, 그의 권위와 권한은 상당 부분 교토의 덴노에게 의존하는 부분이 많았다. 그러나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에도에 유폐된 덴노는 세속적 통치자로서의 마지막 권위마저 잃었고, 그는 진정으로 일본의 지배자가 되었다.

이를 기념하여 에도성에서는 화려한 축제가 열렸다. 명분상으로는 연말을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기 위한 축제였다지만, 그걸 순진하게 믿는 사람은 누구도 없었다. 모두 도쿠가와 가문과 에도 조정이 거둔 위대한 승리를 축하하려 모여든 이들뿐이었다.

"그래, 결국 이날이 왔군. ···그리 바랬던 적은 없었지만."

"『자, 그럼 다가올 새로운 시대와 새로이 떠오를 신년의 태양을 위하여! 건배!』"

"""『건배-!』"""

그러나 일본 전역에서 모인 유력인사들이 에도성에 모여 잔치를 벌이는 동안, 요시노부는 정작 그들 틈바구니에 끼기는커녕 그의 침소에 틀어박혀 있었다. 아래층에서 손님들이 왁자지껄하게 웃고 즐기는 가운데도, 그의 얼굴은 침울하기만 했다. 이것이 그가 바라왔던 전개는 아니었던 까닭이다.

그는 부채로 손바닥을 가볍게 두드리며 불평하듯 말했다.

"그 조선의 미친 호랑이 녀석, 어지간히도 나를 괴롭히고 싶었던 모양이지. 혹은, 내가 왕에 등극하는 꼴을 보고 싶었거나. 그랬다면 완벽하게 성공했군그래. 이번 일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놈의 손안에서 놀아난 기분이야."

"경사스러운 일이 아닙니까. 이미 꼭두각시나 다를 바 없이 수백여 년간을 보내온 덴노입니다. 전하께서 그 자리를 대신하신다고 한들 나쁠 것도 없겠지요. 혹, 이제 와 충성심이라도 느끼십니까?"

"그럴 리가 있나."

가타모리의 물음에, 요시노부는 단칼에 부정했다. 애초에 지난 200여 년 넘는 세월 동안 실질적으로 일본을 통치해온 쇼군 가의 인물에게 덴노에 대한 충성심 따위는 넌센스다. 진정으로 충성심이 있었다면 덴노를 꼭두각시로 만들어놓고 왕이나 다를 바 없이 행색을 하고 왕처럼 권력을 행사할 생각 따위 하지도 않는다.

지금껏 도쿠가와 가문에서 덴노를 치워버리고 아예 왕이 되지 않았던 것은 어디까지나 일본의 정치적 특수성 때문이지, 그들이 덴노에게 특별한 애착이나 충성심이 있어 차마 그것만은 할 수 없었다-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요시노부는 한숨을 푹 내쉬고서는 이마를 부채로 가볍게 두드렸다.

"그렇지만 왕이 될 생각도 없었지. 교토의 조정은 따로 남아있는 편이 편리했으니까. 권력은 내가 행사하되 책임은 교토의 조정이 진다. 오호, 얼마나 편리한 이야기인가."

"그렇지만 이미 호랑이 등에 올라탄 격입니다. 인제 와서 내려올 수도 없겠지요. 이제 장차 도련님께서 미카도의 딸과 혼례를 올리고 지금의 꼭두각시를 정리하여 여제가 되시고 나면, 장차 전하께서는 셋칸이 되시고 도련님께서는 부왕이 되시며 다시 그사이에 아이를 낳아 제위를 잇도록 하여 진정으로 공가와 무가가 하나가 되며 일본국이 하나로 다시 태어날 것입니다."

가타모리는 꿈을 꾸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이것이야말로 왕위찬탈이고, 역성혁명이다. 지금까지의 일본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 벌어지려고 하고 있다. 일본의 모든 것이 송두리째 뒤바뀌는 새로운 시대가 다가오려고 하고 있었다. 이러한 일들이 흔히 일어나온 대륙이나 한국에서는 인제 와서야-라는 느낌이겠지만, 일본에서는 그야말로 천지가 개벽하는 것과 같은 이야기였다.

요시노부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목소리가 너무 크군. 듣는 귀가 많아서 좋을 것도 없는 이야기 아닌가."

"그랬었지요. 송구합니다. 제가 너무 들떴던 듯합니다."

요시노부의 지적에 가타모리는 단번에 고개를 숙였다. 기대하는 기색이 역력한 가타모리와는 다르게, 요시노부로서는 여전히 영 내키지 않았다. 지금까지의 체제만으로 일본을 통치하는 데에는 무리가 없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역성혁명을 시도한다는 것 자체가 그의 통치 근간을 뒤흔들지도 모를 위험한 도박이었다. 여태껏 덴노를 대신해 일본을 통치한 지배자들은 많았어도, 덴노를 아주 대신할 수 있었던 천하인은 없었다.

과연 그 스스로가 지금껏 일본을 통치해왔던 무수한 정이대장군 중에서도 단연코 으뜸이라고 할 수 있는가-생각하면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다. 그가 그들에 비하여 나은 점이 있다면 딱 하나, 때에 따라서는 외세의 힘을 빌릴 수 있다는 것뿐이다. 그조차 뜻대로 가져다 쓸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말이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그 조선의 미친 호랑이에게 영토를 떠넘겨 받아 버린 게 문제야. 그걸 강매 받았다고 공표하면 당장 그동안 내가 구축해온 한국 황제와의 친분 과시가 단번에 무너져버려. 그렇다고 공을 세워 몫을 인정받았다고 하기에는 지난 전쟁에서 일본은 아무런 피도 흘리지 않았다. 아무리 잘 포장해도 전장에서 죽은 사람이 없는데 공훈을 세워 영토를 받았다고 하면 모두가 의문스럽게 생각할 거다.

그러니 결국 황제와의 친분 덕택에 선물 받았다고 할 수밖에 없는데, 이러면 나와 황제의 상하 관계가 명확해져 버린다. 아무리 좋게 해석해도 그건 황제가 총애하는 신하에게 내리는 선물이니까. 그런데 이 나라 일본에는 또 다른 황제가 있다. 그것도 하늘의 황제라는 거추장스럽기까지 한 칭호를 달고 있는 꼭두각시 황제가. 그럼 난 신하 된 몸으로서 동시에 두 사람의 황제에게 충성을 바치는 모양새가 되어버리겠지.'

좋은 이야기가 나올 턱이 없다. 아니, 일본 국내에서라면 모를까 일본 국외에서 보면 그냥 역적이다. 도쿠가와 가문보다 앞서 일본을 통치한 아시카가 가문의 경우 일본 국내에서는 어디까지나 조정의 신하를 자칭하되 일본 국외에서는 중국의 황제에게서 일본 국왕을 공인받아 국내외의 지위를 다르게 두는 것으로 해결했지만,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다.

가장 큰 문제는 장차 한국과의 경제적 교류가 더욱 가속화 될 전망이라는 부분이다. 당연히 일본인들도 한국에 시도 때도 없이 들락거리겠지만 그 반대도 성립한다. 한국의 국내사정도 일본에 널리 알려질 테고, 일본의 국내사정도 한국에 널리 알려질 것이다. 그럼 언젠가는 모든 일이 밝혀지게 된다. 안이하게 그때 가서 수습하려 했다가는 정권 그 자체에 거짓말쟁이 딱지가 붙어 버릴 거다.

허풍을 너무 크게 쳐버린 대가였다. 아니, 사실 그리 대단한 허풍도 아니었으나 이번 일로 엄청난 거짓말이 되어버렸다. 어떻게든 이를 수습해보려면, 새빨간 거짓말을 절반쯤은 진실로 바꾸어 조금 과장이 있었지만, 사실이다-라는 식으로 나서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900만 달러라. 900만 달러란 말이지. ···그래서야 과인의 직할령과 가로들의 영지 전부를 벗겨 먹어도 부족할 게 뻔하지 않나."

요시노부는 신경질적으로 부채를 활짝 펴며 투덜거렸다. 이 또한 문제였다. 그동안은 그래도 그럭저럭 다이묘들에게 적당히 세금을 거두는 것만으로 충분했는데, 영토를 강매당하며 때아닌 빚더미를 짊어지게 되어버렸다. 장차 산업화에 해군 증강에 당분간 수입증대는커녕 지출만 늘어날 걸 고려하면, 도쿠가와 가문과 그 친위세력의 직할령을 벗겨 먹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게 된 것이다.

직할령을 벗겨 먹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게 되어버렸다면, 무리해서라도 지방의 다이묘들에게서 영지를 반환받아 일본 전역을 벗겨 먹는 수밖에 없다. 이는 요시노부가 무리해서라도 중앙집권을 강행해야만 했던 이유였다. 일본이라는 국가적 차원에서 보면 이 또한 나쁘지 않은 일이었으나, 요시노부 개인과 도쿠가와 정권으로서는 때아닌 날벼락으로 도박을 강행해야만 하는 처지가 된 셈이었다.

결과적으로 도박에서는 승리했지만, 요시노부로서는 영 내키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도박은 그의 특기가 아니었다. 그가 조선의 미친 호랑이라고 부르는 한국 황제의 특기였다. 요시노부는 짜증이 풀풀 풍기는 어조로 입을 열었다.

"조선에서는 영민들이 나라를 위하여 자발적으로 금을 모았다고 했던가. 우리도 따라 할 수 있을 것 같나?"

"그건···역시 불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영지나 영주를 위해서라면 몰라도, 일본국이나 조정을 위하여 돈을 내라고 한다면 몇이나 선뜻 내놓을는지요. 혹, 이를 빌미로 잇키가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럼 상인과 무사 놈들에게 내라고 해야겠군. 적당히 신년축하금이라고 둘러대도록. 눈치 빠른 놈들이라면 이 기회에 총애를 얻어보려 안달복달을 낼 테지. 그조차 눈치채지 못하는 둔한 놈들이라면 뭐, 적당히 죄를 뒤집어씌워 가산을 몰수한 다음 일부는 가지고 나머지는 성실하게 성금을 내준 충성스러운 신민들에게 나눠주면 될테고."

들이지 않아도 될 수고를 들이게 하는군. 그리 중얼거리며, 요시노부는 부채를 접었다.

"""『~♬』""

태풍이 다가오고 있음을 꿈에도 모른 채, 여전히 아래층에서는 요란스러운 축제만이 이어지고 있었다.

***

그다음은 대만. 더욱 정확히는 이하응.

"정말로 신기가 들기라도 한 건가? 귀신 같은 녀석 같으니라고. 설마하니 기어이 이런 날이 올 줄은···."

이 무렵 이하응은 상당히 곤혹스러워하고 있었다. 그 또한 카네기가 그러했듯이 이형에게 일찍이 이런 날이 오리라 들었던 만큼 그런대로 황금을 모아왔었다. 그 총량이 대략 십만돈 상당의 금괴로, 그 대부분이 한창 강남에서 영국이 쌀을 사재기하며 천문학적인 부를 빼돌릴 때를 틈타 빼돌린 분량이었다.

물론 이것이 온전히 이형에게서 영국의 국채가 크게 떨어지리라 듣게 된 탓은 아니었다. 있는 그대로 말하자면, 그가 이만한 금괴를 빼돌려 왔던 것은 후사를 도모하기 위함이 더욱 컸다. 대만에 이렇다 할 기반이 있는 것도 아니며, 군사력이 있는 것도 아닌 이하응으로서는 하다못해 돈이라도 있어야 무언가 일을 도모할 수 있었던 까닭이다.

그러니 이렇게 막상 이형이 예고한 대로 영국의 국채가 크게 떨어지면서 정세가 요동치게 되자, 이하응으로서는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이 금괴 십만돈은 영국의 국채를 매입하기 위한 용도이기보다, 대만에서 그가 계속해서 위세를 유지하기 위한 권력 기반의 성격이 더 컸던 까닭이다.

"영길리의 국채, 라. 나보고 돈놀이를 하라는 말인가? 그건···끄으응."

이하응은 눈살을 찌푸렸다. 조선의 유자로서 그것만큼은 꺼려졌다. 이제는 그럭저럭 곁눈질로나마 세상이 돌아가는 꼴을 보고 배우며 자유 시장이 무엇인지, 자본주의가 무엇인지 수박 겉핥기로나마 알게 된 이하응이었지만 그런데도 여전히 그의 머릿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유자로서의 체면이었다.

그리고 그런 유자로서의 체면을 근간으로 생각하기에, 돈놀이는 너무나도 천박한 일이었다. 당장 돈이 급한 나라에 돈을 빌려주고 그 대가로 감 내놔라 대추 내놓으라 요구한다는 것 자체가 이하응으로서는 영 꺼려졌다. 그것이 제아무리 이익이 확실해 보이는 일이라도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시간만 보낼 수도 없었던 노릇이었던 만큼,이하응은 그의 장남이자 대만왕 이희를 은밀히 불렀다. 이 금을 어떻게 쓰면 좋을지 논하기 위함이었다.

"―하여, 황상께서는 이 금을 써서 돈놀이를 해보라고 하셨는데 너의 생각은 어떻느냐?"

"아니 아바마마, 어찌 소자에게도 비밀로 하시고 그토록 많은 황금을 모으셨단 말입니까? 마침 잘 되었습니다. 그만한 황금이 있다면 나라 살림에도 분명 큰 보탬이 되겠지요. 영길리인들이 또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가져가기 전에 나라를 위하여 쓰도록 합시다."

"나라를 위하여? 허, 이놈아. 그게 무슨 소리더냐. 우리는 언젠가 조선에 돌아가야 할 몸이다. 이 귀한 금을 남만의 토인들 따위를 위하여 쓰라는 말이냐?"

"아바마마, 그것이 어찌 가능하겠습니까. 그저 한낱 종친으로서 시들어갈 명운이었던 제가 대만의 왕이 된 것 또한 모두 황상의 은덕 덕분이거늘, 이제 와 조선으로 돌아가고자 함은 황상께 죄를 짓는 일일 것입니다. 이만 뜻을 고치시지요."

그러나 이희의 대답은 회의적이었다. 이 무렵 이희는 대만의 유력가들과 친교를 다지며 자신의 지위를 굳히고자 했다. 공연히 욕심을 부려 제 봉토를 잃게 되기보다, 우선 다소 숙이는 한이 있더라도 현지의 유력가들에 인정을 받아 왕으로서의 기반을 굳히고 싶어했던 것이다.

그런 이희에게 있어서 이하응이 자신에게도 비밀로 한 채로 황금을 모아왔다는 이야기는 섭섭하다 못해 배신감마저 느끼게 했다. 장장 십만돈 상당의 금괴. 그것을 이용해 대만의 유력가들을 매수한다면 그가 왕으로서 지위를 굳히는 데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될 것인가. 이미 조선에서 얻었던 본처를 제하고서도 장장 스무 명에 육박하는 후궁을 들여가며 토착 호족들과의 친교를 다지던 이희에게 있어서, 그보다 섭섭한 이야기는 없었다.

"일없다. 이 옹졸한 놈아. 네가 내 장남이다. 내 대를 이을 가문의 맏이란 말이다. 언제까지 네 아우 개똥이 놈을 황상이라고 부르며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따를 셈이더냐? 사내대장부라면 마땅히 더욱 높은 곳을 바라봐야 하지 않겠느냐."

"아바마마,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황상께서 어찌 제 아우란 말입니까. 황상께서는 익종 대왕의 양자가 아니십니까. 본디 같은 씨에서 태어났다고 한들, 이미 황상께서는 황상이십니다."

"이놈이 그래도!"

결국 이하응은 스스로 분을 못 이겨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참으로 답답하기만 했다. 사내대장부가 더 높은 곳을 바라보지는 못하고서 제 현실에 안주하려고만 하니, 그 옹졸한 그릇에 절로 진저리가 나는 듯했다.

'개똥이 놈의 절반만이라도 닮았으면 좀 좋은가. 그 엉뚱한 놈은 중원의 천명을 제 손으로 부수겠다며 갖은 허세를 떨고 있는데, 가문을 이을 장남이라는 놈은 어찌···! 쯧!'

이하응은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어찌 이리도 다른지. 정말이지 같은 씨에서 태어났다고는 믿어지지가 않았다.

눈이 너무 높아졌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하응으로서는 그런 자신을 제어할 도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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