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패권경쟁 >
여기에 가장 빠르게 영향을 받았던 곳은 두말할 것도 없이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였다. 더욱 정확히는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를 다스리는 프랑스 식민 제국의 극동 총독부였다.
"인도차이나를 매각하라···?"
"그렇다고 하더군요. 황제 폐하께서 몸소 내리신 황명입니다. 늦어도 올해가 지나기 전에는 한국의 회답을 받아오라 시더군요."
벨로네 공사의 설명을 듣게 된 사르네 제독은 아연한 얼굴을 했다. 그로서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예감하고 있었다는 얼굴을 하는 벨로네와는 달리, 사르네로서는 조국 프랑스의 재정 상황이 그가 생각하던 이상으로 끔찍한 처지인 것은 아닐까 우려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는 선제 나폴레옹 3세가 그들의 미래는 동아시아 식민패권에 있을 거라 말하며 너무 멀고 관리하기도 어려울 것이라는 의회의 반발을 물리치고서라도 꿋꿋이 지켜낸 식민영토다. 그리고 그런 나폴레옹 3세의 식민패권 정책은 의심할 여지 없이 찬란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 덕에 뤼순을 조차하였던 것이고, 대만에 한 손 거들 수 있었으며, 한국과 손잡고 중원을 나눠 가질 수 있었다.
그런데 인제 와서 인도차이나를 버리겠다니. 쉽게 이해가 가지를 않았다. 러시아처럼 당장 전쟁에서 호되게 시달리는 바람에 그들의 영토 일부를 매각이라는 형태로 할양할 수밖에 없던 것도 아니고, 프랑스는 딱히 적국에 침략당하고 있는 것도 현지 주민들의 반란에 직면하고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도대체 어째서 포기해야만 하는 것인지 사르네 제독으로서는 이해가 가지를 않았다.
"이 또한 본국에서 시행하는 긴축재정의 일환인 것이요?"
그 때문에 사르네 제독은 자못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또한 본국에서 긴축재정이 이뤄지고 있음은 알고 있었다. 대공황이 한창이라는 건 누구나 알고 있는 진부한 사실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혹, 본국 프랑스가 대공황에 대처하는 긴축재정의 일환으로 식민지를 매각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은 아닌가 확인을 구한 것이다.
그러나 벨로네 공사는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아니요, 현 황제 폐하께서는 아프리카 정복을 지상과제로 주창하고 계십니다. 이번 인도차이나 매각은 어디까지나 그 탄환을 쌓아놓기 위한 사전준비에 지나지 않습니다. 아마 장차 아프리카 정복 전쟁이 시작된다면 제독 각하께서도 아프리카 정복 전쟁에 동원되시겠지요. 아니면, 뤼순에 남으시게 되던가요."
"아프리카 정복 전쟁이라."
그건 그럭저럭 설명되었다. 이전부터 의회와 프랑스의 자본가들은 아프리카에 더욱 집중할 것을 주장해왔다. 더욱 가깝고, 경영하는데 필요할 비용 또한 현저히 낮으며, 무엇보다 프랑스 본령과 크게 다를 바 없는 프랑스령 알제리와 육지로 마주 닿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장차 프랑스가 아프리카를 정복하고자 한다면 인도차이나를 매각하는 것도 이상하지는 않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유럽의 다른 식민열강들과 직접적인 경쟁을 일으킬 것이라는 점이다. 영국은 말할 것도 없고, 네덜란드, 포르투칼 등 아프리카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나라는 유럽에 널리고 널렸다. 그리고 그들 중 대부분은 현 프랑스가 대전쟁 동안 잠시나마 아군으로 삼았던 나라들이다. 사르네로서는 섬뜩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선제 또한 끝없는 확장 주의적 행보로 주변 나라들의 경계와 의심을 샀었는데, 이번 황제마저 끝없는 확장 주의로 주변 나라들을 적으로 삼고자 하는가. 그럼 그 끝은 또 다른 전쟁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 전쟁은 꼭 이번에 유럽에서 한번 선보인바 있는 대전이 되리라. 다른 점이 있다면, 지난 전쟁에서와 달리 다음 전쟁에서 영국은 프랑스의 적이 되리라는 점이다.
"위험한 일이 되겠구려."
프랑스 제국의 해군 제독으로서 영국과의 전면전을 상상하라고 하면, 사르네로서는 외교적 해결책을 권하고 싶었다. 영국 해군과의 전투에서 그럭저럭 맞서고 지키는 것까지는 가능했다. 그러나 그들은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적인 까닭이다. 하지만 벨로네는 사르네의 감상에는 이렇다 할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그는 멋들어지게 기른 콧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위험하겠지요. 그러나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서 어찌 큰일을 꾀하겠습니까? 안심하시길. 이번 결정은 이미 의회와 군부의 공감을 얻은 다음입니다. 남은 건 그저 한국의 황제를 찾아가 뵙는 것뿐입니다."
"한국에 그만한 돈이 있겠소? 우리 총독부에 직할령으로는 코친차이나가 있고, 부속으로는 캄보디아나 베트남도 있소. 고작 캄차카 하나 매입하는 것조차 일본에 떠넘기던 한국에 그만한 자금이 있을 것 같지는 않소만."
"이번에 한국이 영국의 국채를 대거 사들였다고 하지요. 여차하면 그걸 조금 양도받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설령 그것이 아니더라도 지불받을 방법은 많지요. 지급 방식이 화폐일 필요가 없습니다. 현물로 받아가면 그만인 일이니까요. 그리고-."
잠시 말을 끊고서, 벨로네 공사는 히죽 웃었다. 마치 제자리에서 춤이라도 출 것만 같은 얼굴이었다. 그는 자랑을 늘어놓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사실 이번 거래는 성사되지 않더라도 크게 상관없습니다. 제가 보기에 사실 폐하께서는 바라시는 건 대단한 자금이 아니니까요."
"자금이 아니다, 라. 흐음, 그거 꽤 흥미로운 관점이오만.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셨는지 설명해주실 수 있겠소?"
"아하, 아직 듣지 못하셨던 모양이로군요. 그럼 설명해드리지요. 이번에 제가 특명전권대사로 정식 진급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는 한국에서 상주하며 폐하의 말씀을 한국의 황제에 곧장 전하는 중요한 소임을 맡게 될 예정이지요. 곧 한국과 이곳 총독부를 잇는 직통 전신이 새로 깔리게 될 겁니다. 각하께서 생각하시는 이상으로, 폐하께서는 극동에 크나큰 기대를 품고 계시거든요."
벨로네 공사의 설명에, 사르네 제독은 할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벨로네가 대사로 진급했다. 거기까지는 이상할 것 없다. 한국을 개항시키고, 한국과 손잡고서 중국에서의 이권 침탈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이후 다시 한국과 협력하여 식량 구호에 나서 중국에 친불여론을 확산시키고, 전쟁 중 한국이 러시아와 다투며 러시아의 힘을 빼놓을 수 있게 공헌을 했던 이가 벨로네다. 아닌 말로, 이제는 파리로 돌아가 한자리 차지해도 이상할 것 없었다.
그러나 대사로서 한국에 상주하게 되었다. 이건 무게감이 다르다. 영국이나 독일 같은 열강을 상대로도 대사를 상주시키지는 않는다. 전쟁을 시작하고 끝내거나 전쟁에 준하는 중요한 이야기를 할 때나 파견하는 것이 대사다. 이건 곧 한국과 외교적 거래를 시도하는 매 순간순간을 열강과의 전쟁에 준하는 중요한 시기로 간주하겠다는 이야기였다.
벨로네로서는 놀라운 동시에 의아한 일이었다. 너무 과격한 움직임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까닭이다. 이렇게 급작스럽게 한국과 가까워지는 모습을 보이면, 영국이나 미국에서 분명 무언가 불평이 나올 게 분명하다. 프랑스가 대한제국과 손을 잡고 그들의 영향권을 독식하려 한다면서 말이다. 과연 황제는 그 반발과 경계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이에 대비할 구상을 짜둔 것일까?
하지만 사르네는 거기에 깊이 고민하고 관여할만한 입장이 되지 못했다. 그러니 그는 그저 벨로네를 향해 형식적인 축하 인사를 건넸을 뿐이었다.
"과연, 그거 놀라운 일이구려. 참으로 축하하오. 아무래도 폐하께서 진정으로 공사- 아니, 대사를 신뢰하고 계시는 모양이오. 나중에 파리로 돌아가 폐하께 대단한 감투라도 받게 되면, 옛정을 잊지 않고서 파티에라도 초대해주셨으면 고맙겠소."
"하하하! 그저 과분한 총애에 황송하기만 할 따름이지요. 그리고 그 부분을 염려 마십시오. 저는 은원은 반드시 화끈하게 갚는 것이 신조니까요. 하하하!"
벨로네는 헤벌쭉 웃으며, 체통도 잊고서 한참을 낄낄거리며 웃어댔다.
***
그렇게 벨로네 공사, 아니 이제는 벨로네 대사가 한국으로 돌아가 이형을 만나게 된 것은 정월을 며칠 앞둔 무렵이었다.
"인도차이나를 팔겠다고?"
"그렇습니다. 우리 자유로운 프랑스 제국의 영광스러운 황제, 나폴레옹 4세 폐하께서는 정당한 대가만 받을 수 있다면 제국의 신의 깊은 동맹 대한제국에 극동의 온전한 통치권을 이양할 의사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벨로네는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말했다. 만일 일이 잘 풀리게 될 경우, 지난 10여 년간 끝도 없이 늘어나던 그의 외교적 성과에 또 한 줄을 추가할 수 있었던 덕분이다. 그리고 적어도 그가 판단하기에, 이 거래가 잘 풀리지 않을 공산은 없었다. 누구나 새로운 영토는 탐이 나기 마련이고, 이번 거래에서 프랑스는 그리 대단한 대가를 받아낼 생각도 없었다.
고작 해봐야 한국이 매입한 영국의 국채들을 넘겨받는 정도. 기실 한국으로서는 들고 있어 봐야 제대로 쓸 수도 없는 것들을 넘기는 것뿐이다. 그 국채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를 비교한다면, 단기적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중장기적으로는 확실하게 후자가 가치가 더 높았다. 그리고 아닌 말로, 한국이 영국의 국채를 지니고 있어 봐야 무엇하겠는가. 응용법이라고 해봐야 영국의 간섭을 줄이는 정도가 고작이다.
그에 반하여 프랑스가 영국이 한창 위독할 때 영국이 팔아치운 영국의 국채를 거머쥔다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글자 그대로, 무엇이든지 말이다. 지구 반대편의 지역 열강 한국과 달리 이웃 열강 프랑스는 날 잡고서 이 골치 아픈 사자의 털을 송송 뽑고 가죽을 벗겨 요리해버릴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프랑스는 기대하고 있었다. 벨로네는 기대에 부풀어 이형을 바라보았다.
'···뭐야? 이 녀석들 왜 이래? 무슨 일 났나? 아니면 뭐 내가 생각지도 못한 사이에 얘들이 엄청나게 좋아할 짓을 하거나 꿈이라도 꾸고 있는 건가? 뭐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 거야?'
그런 기대에 부푼 벨로네 대사의 모습과는 정반대로, 이형의 소감은 혼란 그 자체였다. 이형으로서는 도통 인과를 파악할 수가 없었다. 갑자기 프랑스가 왜 이렇게 한국에 큰 호의를 보이며 단번에 관계를 좁히려 드는지, 도통 이해가 가지를 않았다. 다른 것도 아니고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를 팔아치운다니, 이게 지금 한국을 시험하려고 하는 말인지, 아니면 진심인지조차 분간이 되지를 않았다.
무엇보다 이형에게 가장 혼란스러웠던 사실은 이 사실을 알리기에 앞서 벨로네가 언급한 주한 프랑스 공사관이 이번 기회에 주한 프랑스 대사관으로 승격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매각에 이어서 대사관 설치라니. 갑작스러운 관계변화에도 정도가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프랑스가 여기까지 나선다는 건 한국과 동맹국 이상으로 가까운 관계를 맺고 싶어 한다는 이야기밖에는 되지 않았다.
이형은 한참을 고민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아프리카구려. 장차 아프리카를 정벌하려 하는데 당장 자금이 부족하니 인도차이나를 매각하려 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되는 거요?"
"바로 그렇습니다. 하지만 안심하십시오. 설령 인도차이나를 매각하여 극동총독부가 축소된다고 한들 폐하께서는 한국과의 관계를 소홀히 하실 생각이 추호도 없으십니다. 도리어, 한국과는 더욱더 깊은 관계를 맺고 싶어 하고 계시지요."
'아니 그러니까, 도대체 왜? 우리가 도대체 뭐가 예쁘다고 갑자기 이러는 건데, 이 녀석들 도대체 왜 이러지?'
벨로네에게 설명을 들은 다음에도 이형으로서는 그저 곤혹스럽기만 할 따름이었다. 너무 급작스러웠던 까닭이다. 스톡홀름 조약이 성사되었다는 건 신문을 통해 전해 들었으니 대강 유럽이 돌아가는 정세에 대해서는 알았지만, 그 정세가 왜 프랑스가 한국과의 관계를 더욱 밀접하게 하려는 이유가 되는지 이형으로서는 도통 이해가 되지를 않았다.
프랑스가 인제 와서 한국과 지금보다 더욱더 가까운 관계를 맺는다고 해봐야 무엇이 좋은지 도통 짚이는 구석이 없었다. 러시아의 견제? 그것도 러시아가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깔고 난 다음의 이야기지, 지금으로서는 한국과 러시아는 서로서로 공격할 수 없는 처지다. 양국의 국경이 각자의 본국과 너무 멀리 떨어진 까닭이다.
혹시 정월에 있을 제후책봉식에서 프랑스인 왕을 만들어달라고 청탁하는 건가도 생각해보았지만, 만약 그렇다면 조금 더 이르게 접근해왔지 정식의식이 코앞까지 다가온 지금에 와서 뒤늦게 청탁하지는 않을 터다. 그럼 남을 가능성은 한가지였다.
'···혹시, 영국 곤란하게 하려고?'
이형은 찬찬히 벨로네를 살폈다. 프랑스가 지금 당장 한국과 관계가 가까워지면서 얻을 이익이 적어 보인다면, 반대로 프랑스가 한국과 가까워지면서 영국이 얻을 손해에 대하여 생각해보면 됐다. 가장 대표적으로, 영국의 국채처럼 말이다. 이번 대공황을 계기로 한국이 상당한 양의 영국 국채를 챙겼음을 고려하면, 프랑스가 이를 노리고 있다는 가능성은 이형이 생각한 가능성 중 그나마 가장 현실적이었다.
이형이 과잉된 호의를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음을 눈치챈 듯, 벨로네는 한 발짝 물러나며 다시 입을 열었다.
"너무 심려하지 마십시오. 폐하께서는 결코 귀국에 누를 끼칠 마음이 없으십니다. 지금 한국에 필요한 것은 안정이라는 걸 우리 프랑스는 잘 숙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아시아에서의 안정을 원하고 있는 것은 우리 프랑스 또한 마찬가지이지요. 사실, 서력 1840년 아시아 문명과 유럽 문명이 만난 이래로 아시아의 혼란을 바라는 나라는 예나 지금이나 하나뿐이지 않습니까?"
"그 말대로요. 오직 하나의 나라뿐이지."
'정곡인가 보군.'
이형은 내심 고개를 가로저었다. 골치 아픈 자존심 싸움-아니, 식민패권 경쟁에 휘말리고 말았다는 확신이 들었다. 아시아의 혼란을 바라는 나라는 하나뿐이라는 말과 지금까지의 정세를 보면 러시아를 연상하기 쉽지만, 앞에 붙어있는 서력 1840년이라는 조건이 모든 걸 뒤엎는다. 서력 1840년은 영국이 청나라를 상대로 아편전쟁을 일으킨 시기이기 때문이다.
결국, 지금껏 아시아에서 일어난 모든 혼란의 원흉은 영국이라는 설명이다. 어느 정도는 사실이지만, 거기에 프랑스가 기여한 바와 이형이 기여한 바를 완전히 무시한 격이다. 어쩌면 프랑스는 지금껏 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노력해왔노라고 진심으로 믿고서 내뱉은 발언인지도 몰랐다. 그것이 어느 쪽이건, 한 가지만은 확실했다.
'영국과 프랑스가 슬슬 본격적으로 다투려나 본데. 하기야, 신성로마제국이면 바다로 나와봐야 지중해까지가 끝이니 대서양이나 인도양까지 나가지는 않겠지. 걔들이 원하는 건 유럽 통치니까. 저번 스톡홀름 조약도 그렇고, 슬슬 식민지 확보를 두고서 본격적으로 다투려고 하는 건가?'
그럼 프랑스가 급작스레 한국에 들이대는 이유도 설명이 간다. 한국은 영국과 프랑스 모두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으니, 프랑스로서는 이 기회에 한국이 영국과 자국을 선택할 갈림길에 섰을 때 반드시 프랑스를 선택할 정도로 밀접한 관계를 만들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래야 장차 프랑스의 동아시아 우위가 공고해질 테니 말이다.
저번에 이형이 영국의 국채를 대거 매입한 것이 프랑스의 심기를 자극했을 가능성도 있었다. 이형이 프랑스 대신 영국을 돕는 걸 보고서 이형이 심정적으로 영국에 기울어졌다고 지레짐작한 채 이형의 마음을 돌려놓고자 급작스레 이런 호의를 베풀겠다 나서고 있다는 가정이었다. 이 또한 확실한 것은 아니나, 가능성은 충분했다.
'하지만 뭐, 그거야 저쪽 사정인 거고-.'
한국이 구태여 프랑스가 먼저 다가온다고 곧장 끌어안겨 줄 필요는 없었다. 영국은 언제나 그래왔듯이 열강 서열 1위이고, 프랑스는 서열 2위이니 말이다. 아무리 많은 대가를 약속했더라도 섣불리 편을 정했다가 프랑스가 영국에 밀리기라도 하는 날에는, 한국까지 피해를 볼 위험이 너무 컸다.
그러니 대강의 사정을 이해한 다음, 이형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이러했다.
"유감인 일이나, 우리 한국은 아직 인도차이나까지 영향력을 투사할 여력이 되지 않소. 인도차이나의 매입을 논하기에는 아직 너무 이르지 않은가, 하고 우려되는구려. 분명 짐에게도 인도차이나 매입이 매력적인 것은 사실이나, 우선 우리 한국이 인도차이나까지 영향력을 투사할 수 있게 된 다음에 인도차이나 매입을 논해야 하지 않겠소?"
한마디로, 덤으로 해군전력까지 마련해주면 안 되냐는 은근한 요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