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산장려운동 >
국외로는 아시아주의를 기반으로 한 수출시장을 조성하는 데 전념하였다면, 국내에서는 한편 애국주의 선전이 열풍이었다.
"우리가 만든 것 우리가 쓰자! 한국 사람도 한국 물건을 쓰지 않으면 이 세상 어느 할 일이 없는 양반이 한국 물건을 사줄까? 나라가 잘 살아야 우리 같은 사람들도 잘살게 되는 법! 우리 모두 국산을 애용하여 대한제국 물산 중흥에 이바지하세!"
"애국, 애족이 따로 있나? 한국 물건 사서 쓰면 누구나 애국지사인 거지! 좀 못 만들었으면 어떻고, 조금 덜 싸도 어떤가. 그래도 우리나라에서 만든 우리 물건인데 우리가 써야지! 우리 모두 국산애용하여 애국지사 되어보세!"
"새 아침이 밝았네, 새 나라가 열렸네! 언제까지 색목인들이 잘 먹고 잘산다고 부러워만 할 텐가. 세상에서 근면하기로는 그저 우리 한국 사람이 천하제일이 아니겠나! 우리 모두 새벽해 보며 일터로 나서 별빛을 보며 집으로 돌아오세!"
"글공부가 별거던가?. 양반 어르신이 별거던가. 황상께서 온 나라에 글공부를 시켜주시겠다 약속하셨거늘, 글공부하여 선비 놀음하는 것도 어디 따로 씨가 있을쏘냐? 개처럼 일해서 돈이나 왕창 벌어 자식새끼들 글공부시켜 우리도 정승처럼 살아보세!"
물론 단순한 애국주의적 선전만은 아니었다. 더욱 정확히는, 애국주의적 선전을 가미한 물산장려운동과 노동 의욕 장려정책에 가까웠다. 그리고 이러한 애국주의 선전은 쉽게 먹혔다. 지난 전쟁 이래로 이미 민족주의가 널리 퍼진 상황 속에서 애국주의를 더욱 이용하는 것이었으니 그야 그럴 수밖에 없었다.
특히 이러한 애국주의 선전은 이미 포항 제철소가 완성되기 이전부터 석회공장에서 생산된 대량의 석회를 이용해 새마을운동을 진행 중이던 덕을 톡톡히 보았다. 이미 나라의 경제부흥책을 쫓아 고된 땀을 흘리던 와중에 구아노가 대거 수입되며 단숨에 수확량이 확 늘어나니, 나라에서 하라는 대로하면 득을 본다는 인식이 확실하게 각인된 것이다.
"아, 아니 이 사람아! 그 어여쁜 머리를 어찌 그리 쉽게 자를 수 있소? 아이고, 아이고 이를 어째! 혹, 절간에 들어갈 생각은 아니오? 아니 되오, 그것만은 아니 되오! 내 당신 없이 토끼 같은 자식새끼들을 어떻게 키운단 말이오!"
"진정하시어요. 제가 우리 동일이가 어여쁜 색시를 얻어 토끼 같은 손주 업어 키우는 것도 봐야 하는데 어찌 절간에 출가할 수 있겠어요. 그저, 이번에 나라에서 가발공장을 세운다고 하지 않겠어요. 아직 나라 살림에 부족함이 많으니, 한 손 보탠다 생각하고 자르고 왔답니다."
"어, 어허허! 그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럼 하다못해 미리 내게 뭐라 말이라도 한마디 해주지 그러셨소? 그래도 우리 집에서 열녀가 나왔네, 열녀가 나왔어!"
대표적인 것이 나라에서 경공업을 육성하기 위하여 가발공장을 세우겠다 하니, 온 나라의 부인들이 머리카락을 십시일반 모아준 소동이었다. 당연히 모든 부인이 이에 동조했던 것은 아니었고, 이를 두고 너무 지나치다거나 유교적 윤리관을 근거로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여론은 이에 긍정적이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머리카락쯤은 얼마든지 내줄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는 게 이유였다.
물론 부인들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신시대에 발맞춰 머리를 단정하게 자르는 김에 자르고 남은 머리카락들은 나라를 위하여 기부하겠다고 선뜻 나서는 신사들도 수두룩했다. 나라를 위하여 이런 머리카락쯤은 대수롭지 않다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만연하던 것이다. 그만큼 이 무렵 한국의 국민들은 세상의 때를 타지 않아 순박했고, 순진했으며, 그렇기에 한번 불타오르기 시작하면 심장이라도 선뜻 내줄듯한 모습을 보여주고는 했다.
남녀노소를 따질 것 없이 민족주의의 광풍이 몰아치고 있던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민족주의적 기조는 한국의 초기 산업화에 지대한 공헌을 해주었다.
"아이고, 아가씨! 진사 어르신께 들키기라도 하면 어쩌시려고요? 이러다 진짜로 어르신께서 노하셔서 어디 얼굴도 모르는 나이 지긋하고 수염 희끗희끗한 배불뚝이 밑에서 시집살이하셔도 전 몰라요!"
"얘, 지금 그게 중요하니? 자, 이거 보렴. 내가 얼마나 열심히 바느질하는 법을 배웠는데. 이 공장에서 내 또래 중에 나보다 바느질 잘하는 아이가 없더라. 호호호!"
"그러니까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도요···아이고! 이러다가 또 나중에 마님께 나만 머리 쥐어박히게 생겼구나. 내 팔자야, 내 팔자야!"
"거기 두 사람! 담소를 나누려거든 집에 가서나 하셔요. 지금은 일하는 시간이라고 제가 도대체 몇 번을 말해드렸을까요?"
이러한 사건들은 그걸로 가발공장으로 끝이 아니었다. 면직물 공장을 세우겠다고 나라에서 직공들을 모으니, 푼돈도 마다하지 않고서 소일거리 삼아 일하겠다며 모여드는 과부들이나 처녀들이 줄을 지었다. 그들 중에는 집안이 유복하여 따로 일하지 않아도 되는 소위 양반가의 여식도 가끔 섞여 있었다. 소위 말하는 말괄량이 아가씨들이었던 셈이고, 신여성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신여성들의 일탈은 대부분은 가문의 반발로 끝이 나고는 했다. 아직 여성의 사회진출에 관대한 세상이 아닌 까닭이었다. 그러나 개중에는 몇몇 가문의 허락을 받고서 면직물 공장을 다니며 돈을 벌어 그 돈으로 마침 서역에서 들어오던 옷이나 화장품 따위로 치장하는 한양 거리의 꽃들이 나오는가 하면, 또 한편으로는 그 돈으로 책을 사들여 학문을 탐구하는 이들도 나왔다.
혹자는 이를 두고서 말세라 하였고, 혹자는 이를 두고서 한국에 봄이 찾아왔다 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이러한 새로운 신여성들의 등장을 어떻게 판단하는가와는 별개로, 이러한 신여성들은 날로 늘어만 가고 유행해갔다. 느릿하게, 그러나 확실하게 말이다.
"오늘도, 내일도, 모래도. 앞으로 내 인생은 허구한 날 물건이나 나르고 망치질이나 하고 있겠지! 아이고, 내 팔자야! 황상께서 종놈 신세 면하게 해주셨으면 뭐하나? 결국,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려 있는 놈들 밑에서 종놈 노릇을 하는 건 달라진 게 없는데!"
"아니 이 사람아. 거 반장이 들으려면 어쩌려고 그리 시끄럽게 떠들어대나? 그리고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게 어찌 황상 탓인가. 온종일 남의 종노릇 하면서 힘들여 번 일당을 몽땅 주색잡기에 써대니 남는 게 없는 거지! 그 주색 잡을 돈으로 무슨 사업이라도 해봤으면 지금쯤···으흐흐!"
"아, 글쎄 내가 언제 황상 탓이라고 했나? 그냥 나란 놈의 팔자는 결국 있는 놈들 밑에서 종노릇 하는 건가 보다-한 거지. 그리고 오늘 또 뼈 빠지게 벌면 저녁에는 마드모아젤 김이 위로해줄 테니···으흐흐!"
"에라, 이 호색한 놈들! 빨리빨리 석회나 실어날라, 이놈들아! 아니 철도 깔이하는 놈들처럼 무쇠 덩이를 옮기는 것도 아니고, 무슨 석회 포대 하나 나르면서 지금 해가 벌써 중천이야, 중천!"
물론 그러한 훈훈한 경우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당장 나라에서 대대적인 토목공사에 나서면서 힘들여 몸을 써야 하는 육체노동자들이 대거 늘어난 까닭이다. 그동안 있었던 철도공사나 한양재개발과는 차원이 다른, 전국적인 항만재개발과 지역 도시 재개발 공사였다. 당연히 이에 동원될 노동자들의 숫자도 배 이상일 수밖에 없었고, 이들 대부분은 미처 만주로 떠나지 못한 전직 노비들과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도시에 남은 참전용사들이었다.
당연히 이들의 경우에는 아무래도 나라를 위하여 이 한 몸 바치겠다는 인식이 희미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이러한 일거리가 곧 생업이던 까닭이다. 벌이가 마땅치 않아 이런 육체 노동직으로 모여든 것이니만큼, 이들은 애국보다는 당장 생활을 우선시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그렇지만 민족과 애국이 뒤로 밀렸다 하여, 그들이 근무에 태만한 것도 아니었다. 애국을 외치는 이들이 나라를 위하여 노력하는 만큼이나, 그들은 하루하루 살아남기 위하여 일해야만 했다. 각자 이유는 다르되, 그들 모두 한국의 산업화를 위하여 근면히 일하는 사회의 톱니바퀴 중 하나였다.
"인천 부두에서는 지급된 석회 10t을 모두 소진하였습니다! 앞으로 남은 분량은 보름치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새로이 석회를 지원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으음, 설마하니 벌써 석회 10t을 모두 소진할 줄은···. 알겠네. 준비되는 대로 곧장 지원해주도록 하지!"
"목포에서는 이미 석회가 바닥난 지 오랩니다! 지원은 언제쯤 도착하는 겁니까? 지금 공사가 뒤로 계속 밀리고 있습니다!"
"지금 가고 있네! 오늘 아침에 선단을 띄웠으니 내일 모래 즈음에는 도착할 거야! 그러니까 진정하시게!"
한편, 이 무렵 각지의 지방 관청들 사이에서는 일종의 경쟁이 붙은 지 오래였다. 조정에서 하달한 목표치를 누가 빨리 달성하는가를 두고서 다투던 것이다. 이러한 지방정부 간 경쟁은 이형이 지시한 바이기도 했다. 새마을운동이 그러했고 또 이런 사업들이 으레 그랬듯이, 더욱 빠르고 확실한 결과를 끌어내기 위하여 지방에 경쟁을 붙인 것이었다.
자연히 이러한 경쟁 구도는 황제와 중앙의 총애를 따내기 위하여 지방 관청이 더욱 의욕적으로 사업에 참여하는 결과를 낳았다. 지방 관청들의 의욕 향상은 곧 사업이 더욱더 빠르게 진전됨을 의미했고, 장차 한국의 산업화가 더욱 순탄하게 완성되어감을 의미했다.
하지만 이러한 경쟁 구도가 꼭 긍정적인 결과만을 낳은 건 아니었다.
"이게 지금 말이 되나? 그래, 이 고을에 석회를 지원하여 저수지를 세우도록 했었지. 고을의 진사들이 이에 대단히 협조적이어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는 보고도 앞서 받았었네. 하나, 저수지 하나 세웠다고 수확량이 4배로 늘었다는 게 지금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저희가 생각해도 말이 되지 않는 상황인 건 알고 있습니다. 저희가 생각해도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그게 실제로 일어난 걸 저희가 어쩌겠습니까?"
"허. 뭘 어쩌긴. 이보게, 어사원에 연락 넣으시게나. 한번 확인을 해봐야겠어. 이게 지금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이렇게 날림으로 써서 내고서 그냥 넘어갈 거라 생각했나?"
"제, 제발 그것만은 면하게 해주십시오! 제발 그것만은! 아이고, 어르신! 제발!"
이런 식으로 회계나 성과를 과장하여 총애를 타내려고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고, 나라에서 공사를 위하여 지원한 물자들을 착복하여 제 잇속을 불리거나 말로만 공사에 열심이고 실제로는 시공조차 이뤄지지 않은 곳들도 흔했다. 이형도 미리 이와 같은 상황을 예견하여 어사원을 따로 설치하여 어사들을 대거 파견하여 이를 대처하려 했으나, 그것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은 엄벌주의에 기반한 본보기가 다시 동원될 수밖에는 없었다. 이형은 장부를 날조하거나 성과를 과장할 경우 역모죄로서 벌하겠다며 실제로 몇몇 관료들을 벌주어 엄포를 놓는 한편으로 다소 성과가 기대에 못 미치더라도 정직하게 보고를 올린 관청들의 공을 치하하며 대거 선전했고, 그 뒤에야 이러한 엉터리 보고들이 조금이나마 줄어드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그것이 이러한 관행이 모두 사멸했음을 의미하는 건 아니었던지라, 경제개발계획을 진행하는 동안 두고두고 대한제국 정부의 골칫거리가 되었다.
"조정의 교서가 옳다! 나라가 부강해야 국민들도 잘사는 법이다! 온 세상에 그 위세를 떨치고 있는 영길리, 불란서와 같은 열강의 국민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보라! 그리고 이제는 초라하게 몰락해가고 있는 파사국이나 돌궐국 같은 나라들을 보라! 나라가 힘이 없으면 그 나라의 국민은 그들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짓지도 못한다. 그저 다른 힘센 나라에 휘둘리며 희롱당할 뿐이다!
서역의 역사에서도 나라가 있는 다음에 국민이 있었으며, 그 역은 언제나 망국을 의미해왔다. 우리 한국은 장차 불란서나 독의지 같은 나라의 국민을 본받아야지 나라도 없는 파난공(=폴란드)의 국민을 본받아서는 안 될 것이다!"
"독의지의 제정은 어떠한가? 그들은 황권이란 하늘에서 내린 것이라 말한다. 불란서의 제정은 어떠한가? 그들은 황권이란 백성의 합의와 지지 위에 만들어지는 것이라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 대한제국의 제정은 어떠한가? 맹자 가로되 인을 해치는 자를 적이라 하고 의를 해치는 자를 잔이라 하며 잔적지인을 단지 「그놈」이라 칭한다고 하였다. 또, 천지간에 백성이 가장 귀중하고 군주는 가장 가볍다. 하였다.
이는 곧 왕이 귀한 까닭은 백성이 있기 때문이라 주장하였다 할 수 있는바, 맹자께서 가르치신 바와 불란서의 황권론은 비록 그 뿌리가 다를지라도 같은 결론에 다다랐다 할 수 있으리라. 이 나라가 진정으로 유가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하여 세워진 선비의 나라라면, 제정은 필히 백성의 합의와 지지 위에서만 성립해야 할 것이다."
"일전에 우리 제국에서 헌법을 제정함에 있어서 그 1조 1항을 무엇으로 둘까를 두고 다툴 적에, 황상께서는 몸소 말씀하시기를 「대한제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라고 정하라 하셨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곧 제정의 뿌리란 국민이며, 더 나아가 이 나라의 뿌리 또한 국민이라 황상께서 지적하셨음이다. 유학의 근본으로 돌아가라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유림은 어떠한가? 이기론을 논하며 귀신 놀음에 현혹되어 괴력난신에 빠지고 허황한 입씨름만을 반복하다 세도가를 이루어 끝내는 나라를 안에서부터 갉아 먹었을 뿐이다. 이것이 어찌 참된 유림이라 할 수 있겠나! 공자께서 어디 괴력난신을 언급하였던가. 맹자께서는 선비가 백성을 평안케 하지 못하면 마땅히 벌하여야 한다고 하셨다.
순자께서는 어떠한가? 「하늘이 백성을 낳은 것은 군주를 위함이 아니나, 하늘이 군주를 세운 것은 백성을 위함일지라」 하시며 또한 애민정신을 강조하셨다. 오늘날의 유학은 마땅히 주자학의 괴력난신을 멀리하고 서역 민본론자들의 지혜를 빌려 애민, 애족의 근본으로 돌아와야 할 것이다!"
"진승은 왕후장상에도 따로 씨가 없다고 하였다. 하물며 선비에게 따로 씨가 있겠는가. 예로부터 조선이 처음 이 땅에 세워진 이래로 말로는 배운다면 누구나 성인이 될 수 있다고 외쳤으나, 진정으로 이 나라의 선비들이 이 나라 모든 백성을 깨우치게 만들려 하였던가? 이 나라가 진정으로 선비의 나라라면, 선비는 곧 백성을 부르는 다른 이름이 되었어야지 이 나라를 다스리는 한 줌의 인간을 뜻하는 말이 되어서는 아니 되었다!
언제나 말뿐이던 시대는 이제 끝났다! 일어나라, 학우들이여! 붓을 들어라! 책을 들어라! 백성들의 눈을 띄어주러 가자! 그들이야말로 국민임을 일깨워주러 가자! 마땅히 그들이 누려야 했을 권리를 돌려주러 가자! 황상께서 우리에게 배울 기회를 주신 것이 어디 이 한 몸 부귀영화를 위해서였겠는가? 배우고 뜻 있고 혈기 있는 젊은이들이 나라를 위하지 않는다면 누가 나라를 위하리오!"
한편, 조정의 골칫거리가 관료들의 기만이라면 유림의 골칫거리는 학생운동이었다. 이러한 학생들 대부분은 개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프랑스의 시선에 기반하여 세상을 바라보았고, 조금씩 서구식 인본주의와 합리주의에 기반하여 그간 조선을 지배해온 주자학에 날 선 비판을 가하기 시작했다.
이 무렵에는 영국이나 미국, 특히 프랑스를 통하여 한창 서역의 사상들이 유입되고 있었고, 베르뇌 대주교를 위시한 명동성당의 사제들은 최초의 한국어 사전을 만들어낸 이래로 계속하여 번역 활동에 몰두하며 서역의 책들을 번역하여 소개하는 데 주력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번역된 서적들은 그 즉시 대거 제본되어 각지의 대학교 도서관에 우선적으로 배치되었다.
이렇게 한번 도서관에 들어온 번역 서적들은 채 한 달도 안 되어 금방 해지고는 했다. 그만큼 서역의 정보에 목이 마른 이들이 많던 까닭이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진행된 애국주의 선전은 대학가의 폭발적인 호응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 아무리 그렇기로서니 소위 조선의 선비라는 작자들이 주자학을···."
"어허허. 말세야, 말세! 아직 수염도 나지 않은 어린 것들이 선현들을 욕되게 하고 있구나. 아이고!"
이형이 주창한 아시아주의가 유림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면, 이러한 학생운동은 유림을 경악시켰다. 이 또한 유림의 출사를 더욱 가속하는 원인 중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