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주권론 >
그리고 이러한 유림과 학생운동의 대립은 차츰 날이 추워지고 겨울이 찾아오면서 한층 더 격화되기 시작했다.
"장차 한국은 마땅히 아시아의 맹주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황상께서 바라는 바이기 때문이며, 천명을 얻은 대국으로서 마땅히 가져야만 할 상국의 도리이기 때문이다. 맹자께서 이르기를 「덕으로서 인의 본질을 행하는 자를 왕이라 이르니, 왕은 강대함에 기대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오늘날 한국은 강한 나라인가? 우리 한국에 서역의 나라들을 두려움에 떨게 할 백만의 대군이 있던가?
또 맹자께서 이르시기를 「왕은 강대함에 기대지 않는다. 힘으로서 사람의 굴종을 얻었다면 이는 마음으로부터의 굴종을 얻음에 따른 것이 아니고, 다만 약자의 힘이 넉넉지 못했음에 따른 것이다. 덕으로서 사람의 굴종을 얻었다면 이는 마음 한가운데로부터 솟구친 기쁨에 근거한 참된 따름을 얻은 것이니, 일흔 명의 제자가 공자께 복종한 것이 바로 이와 같다.」라고 하셨다.
이것이 오늘날 한국에 천하 만민을 복종케 할 힘이 없음에도 우리 대한이 천하의 주인이 된 까닭이다. 한국에 힘이 있기에 따름이 아니라, 한국에 덕이 있기에 비로소 천하 만민이 진정으로 한국을 따른 것이다. 우리 한국은 장차 덕으로서 아시아를 품는 대국이 되어야 할 것이다."
"손자 가로되 「전쟁은 국가의 큰일이다. 전쟁터는 병사의 생사가 달린 곳이며, 나라의 존재와 멸망이 달린 길이므로 세심히 살펴야 한다.」하였다. 또 오자 가로되 「무릇 국가를 안전하게 지키는 길은 무엇보다 항상 경계를 늦추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하였으니, 이는 곧 전쟁을 경시하는 나라는 망할 것이며, 경계를 늦추는 나라는 또한 망할 것이라는 까닭이다.
오늘날 한국에 가장 절실한 것은 다름 아닌 지위에 걸맞은 힘이라 할 수 있다. 국가의 힘이란 곧 군이요, 대군을 가짐이란 곧 전쟁에 대비하는 것이다. 서역의 열강이 언제나 강한 병졸을 조련하고 그들의 무력이 세계만방에 미침은 이러한 선현들의 지혜를 잊지 않았던 까닭이다. 그렇다면 장차 한국은 어떠한 군을 가져야 할 것인가? 옛 이태리의 니콜로 마키아벨리라는 선비가 이르기를, 병졸 줄 으뜸은 시민군이라 하였다.
시민군이란 무엇인가? 돈에 의하여 싸우는 것도 아니고, 왕을 위하여 싸우는 것도 아닌 오로지 나라를 위하여 싸우는, 곧 국민군이라 할 수 있다. 우리 대한의 제정은 장차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나라가 되어야 한다. 위에서 시켜야지만 따르는 백성이 아닌 국민이 스스로 나라를 위하여 분연히 떨쳐 일어날 수 있는 나라야말로 진정으로 강한 나라이며, 그러한 국민으로 이뤄진 국민군이야말로 진정한 강군인 까닭이다!"
이 무렵 전통적인 유림과 새로이 등장한 학생운동의 관점은 극과 극을 달리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이형이 내린 교서에 근간하여 오늘날의 천하와 한국이 나아갈 방향을 주장했으나, 그 관점은 극과 극을 달리고 있었다.
유림은 전통적인 유학에 기반한 통치와 아시아주의를 주창했다. 그들은 오늘날 한국이 패권을 거머쥔 것은 한국이 덕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국이 덕이 있어 뭇 천하의 제후들이 따르니, 마땅히 장차 천하를 다스림에 있어서 덕으로서 아시아를 품어야 한다고 주창한 것이다.
학생운동은 인본주의를 기반으로 한 민족주의를 주창했다. 이들은 오늘날 한국이 패권을 거머쥔 것은 한국에 힘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국에 힘이 있어 뭇 아시아의 여러 나라가 한국을 두려워하니, 이를 지키기 위해서는 국민을 일깨우고 그 여론을 하나로 합하여 더욱 부강한 나라가 되어야 한다고 주창한 것이다.
"아니, 예끼 이놈아! 내, 네가 그럴 줄 알았느니라. 양이의 잡변을 익히겠다며 이 아비가 내린 머리카락을 멋대로 자르고 양이 놈들의 옷가지를 챙겨 입을 적부터 알아보았다! 하지만, 하다 하다 조선의 선비라는 놈이 주자학을 욕되게 해! 당장 집안에서 나가라, 이놈아! 네 같은 사문난적은 더 이상 양반도 뭣도 아니니라!"
"아이고, 아버님! 오라비 말도 좀 들어보셔요! 아무리 그렇기로서니 장차 가문을 이을 집안의 장손을 내쫓는 경우가 어디 있단 말인가요! 그리고 오라비도 그렇게 가만히 서 있지만 말고 어서 엎드려 함께 비셔요! 그러다가 진짜로 쫓겨나기라도 하면 어쩌시려고 그러셔요!"
"일 없다. 아버님, 가문에서 내쫓으시겠다 하셨습니까? 예. 기꺼이 그러겠습니다. 아니, 제가 직접 호적에 붉은 줄이라도 그어드리지요. 그렇지만 이 말만은 꼭 해드려야겠습니다! 주자학이 그리도 대수입니까? 이 나라보다도, 우리 조선 민족보다도 그깟 주자학 나부랭이가 중하단 말입니까? 대관절 유림에서 지난 500년간 주자학만 죽어라 판 결과가 무엇입니까.
세도정치에 빠져들어 시시콜콜한 이기론이니 귀신놀음에 사로잡혀 나라를 갉아먹었을 따름입니다! 그 모습 어디에 공자께서, 맹자께서 말씀하신 애민, 애족의 근본이 있습니까? 이 나라가 진정으로 선비의 나라였다면, 진정으로 백성을 교화하기 위하여 이 나라의 선비들이 그와 같은 부귀영화를 누렸던 거라면, 그러한 악업은 있어서는 안 되었습니다. 세도가의 변견들이 나라를 갉아먹는 동안 유림이 한 게 무엇이 있습니까!"
"이, 이놈이 그래도! 끅, 끄으윽···!"
쿠웅-.
"아이고, 아버님!"
그리고 이와 같은 대립은 날로 격화되기만 할 뿐 진정될 기미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전쟁이 마무리되고 이미 퍼질 대로 퍼져있었던 민족주의와 5개년 경제개발계획으로 막을 올린 본격적인 산업화는 그간 꾸준히 울려 퍼지고 있었던 신진 학생들의 목소리를 본격적으로 그들만의 세상 바깥까지 뻗어 나오도록 하였다.
처음에는 주자학의 신비주의적 면모를 합리주의에 기반하여 비판하거나 애민의 정신을 잃고서 타락한 오늘날의 유림에 대하여 비판의 칼날을 들이대는 수준이었으나, 시간이 흐르자 본격적으로 세도정치에서 유림의 책임론이 수면 위로 오르기 시작했다. 세도정치와 간신들이 국정을 농간하는 동안 유림은 도대체 무엇을 했냐는 것이었다.
그동안 유림에 대한 비판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미 민간사회에서는 특권을 잃고 몰락한 향반들을 업신여기거나 제 잇속이나 채우던 양반가들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꾸준히 있었다. 이번에 터져 나온 유림에 대한 비판이 지금까지의 비판과 달랐던 것은, 유림을 향하여 날 선 비판을 들이대는 것이 다름 아닌 그들의 자식 세대였다는 점이었다.
"구라파의 앞선 학문을 보라! 그들이 지난 수 세기간 이룩한 이 찬란한 위업을 보라! 세간에서는 단지 서역의 기이한 기물들을 두고 서역의 앞선 기술에 감탄할 뿐이다. 그건 단지 현란함에 홀려 그 속에 진정으로 그들이 이룩해온 학문적 성과를 외면하는 것에 불과하다! 장 자크 루소! 존 스튜어트 밀! 몽테스키외! 홉스! 헤겔! 칸트!
이들 중 불과 10년 전까지 우리 조선이 이름이라도 들어본 학자들이 있던가? 없었다. 우리는 아무것도 몰랐다. 조선은 아무것도 모르는 천치였다! 어째서인가? 어째서 우리 조선은 아무것도 알지 못하였는가? 어째서 우리 조선의 선비들은 그와 같은 학문적 성과에 버금가는 학문적 성과를 스스로 이룩하지도, 하다못해 구라파의 앞선 학문을 받아들일 기회를 스스로 구하지도 않았단 말인가!"
"지금껏 유림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귀신놀음에나 빠져서는 제사상에 올린 찬거리나 논쟁할 시간에 왜 우리는 이 나라가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를 논하지도, 이 세상이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지도 알지 못하였는가! 왕조차 제 일을 하지 못하고 백성들을 착취하고 나라를 망국으로 이끌어가면 마땅히 파면해야 한다고 했거늘, 선비란 자들이 제 일을 하지도 않고서 백성들을 착취하고 망국으로 이끌어 갔는데 어찌 벌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한때 제 주제를 잊었던 선비란 족속이 아직도 양반 행세를 하고 있으니, 이보다 통탄한 노릇이 따로 없을 것이다. 저들이 진정으로 왕보다도 귀하단 말인가! 맹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지극지사가 대오를 이탈하였다면 마땅히 죽이며, 군왕이 치세를 그르쳤다면 마땅히 내쫓아야 한다고 하였다. 하물며 유림은 어떠한가? 미천한 병사도 존귀한 왕도 벌하거늘, 어찌 유림은 벌을 받지 않는가?
유림은 더 이상 이 나라 대한을 이끌어갈 자격이 없다! 죽음만이 오늘날의 유림을 다시 일으킬 유일한 방법이다! 한 번 죽고서, 완전히 새롭게 다시 태어나야만 한다!"
"오로지 국민만이 존귀하다! 불란서의 선비 루소가 가로되, 태초에 백성이 있었으며 그들이 보호를 원하였기에 비로소 국가가 만들어졌다 하였다. 이는 맹자께서 하늘이 왕을 내린 건 곧 백성을 위한 것이라고 하신 것과 절대 다르지 않음이라. 그러니 태초에 먼저 국민이 있었으며, 그 뒤에 나라가 있었고 선비와 왕이 만들어진 것이다.
오늘날 대한의 황상께서는 어떠하신가? 북적을 벌하여 병자년의 원수를 갚으셨으며, 덕으로서 오랑캐들을 감화시켜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셨고, 서역의 앞선 기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안으로는 나라를 번성케 하며 밖으로는 인의로서 아시아 만국의 백성들이 기쁜 마음으로 한국을 따르도록 하시었다. 이리하여 만백성이 황상의 위업을 칭송하기를 주저하지 않으니, 황상께서는 진정으로 존귀하신 분인 것이다.
하나 이 나라의 선비는 어떠한가. 이 나라의 선비가 백성의 존경을 받지 못하게 된 지가 대관절 몇십, 몇백 년이 되었단 말인가. 오늘날의 선비는 푸줏간의 고기 찌꺼기보다도 못하다. 선비가 다시금 귀하기 위해서는, 마땅히 가장 낮은 장소에 임하여 언제나 국민을 섬기는 자세로 봉사하여야 할 것이다!"
후보등록 기간이 마무리되고 본격적인 선전 활동에 들어서자, 이러한 학생들의 목소리는 한층 더 커져만 갔다. 대학가의 학생들은 자신의 아버지, 할아버지 세대를 향해 삿대질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부모 세대에 대하여 날 선 비판을 멈추지 않았고, 때로는 패륜에 준하는 폭언을 늘어놓기도 하였다.
그들의 주장은 일관적이었다. 오로지 국민만이 존귀하며, 애민의 정신을 잃어버린 오늘날의 부패한 유림은 처음부터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단지 발언의 수위나 구체적인 방안에 대하여 차이가 있을 뿐, 이것만은 공통적이었다.
"제, 제 아비를 죽이자니. 어찌 저런 인간말종 같은 놈들이···!"
"아니, 저놈이 하다 하다 왕권을 욕보여? 한양에 계신 황상보다도 무지렁이 놈들이 더욱 존귀하다니, 저래서야 대관절 역적 도당과 다를 바가 무엇이란 말인가! 말세야. 참으로 말세야! 어쩌다 우리 가문에서 저런 사문난적이 다 나왔을꼬? 아이고, 아이고!"
"이대로는 도저히 안 되겠다. 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새끼들에게 내 본때를 보여주리다!. 아무리 새 나라가 열렸다고서니, 이 나라 조선이 그간 주자학의 으뜸이라 자부해왔거늘 어찌 저런 못돼먹은 것들이···!"
이들의 한계는 당대의 유림이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도 급진적인 주장들이었다는 점이었다. 민족주의에 기반한 국민주권 사상부터가 그러했으며, 합리주의에 기반한 주자학에 대한 비판은 말할 것도 없었다. 유림은 학생들이 쏟아붓는 충격적인 주장에 논리로서 대응하기보다도, 그 주장의 파격성에 충격을 받아 점차 대학가의 학생운동을 멀리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이렇게 토론이 성립되지 못하고서 일방적인 논리 전개와 반발만이 반복되니, 점차 선거유세는 유익한 의견교류가 되기보다는 단순한 감정의 배설이 되었다. 유림은 돈으로 주먹패들을 부려 학생운동의 지지를 받는 급진개화파 후보들의 선거유세에 쳐들어가 마구 때려 부수거나 두들겨 팼고, 이러면 학생들은 학생들대로 동네에 힘깨나 쓴다는 동무들을 모아 유림의 지지를 받는 온건개화파 후보들의 선거유세를 망쳐놓았다.
본격적인 세대갈등이 촉발되기 시작된 것이다. 이러한 세대갈등이 날로 격화되다 보니 처음에는 강 건너 불구경하던 백성들도 어느 순간부터인가는 이를 두고 왈가왈부 되기 시작했고, 종국에 와서는 이형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 * *
"그거 잘 됐군."
그리고 이 소식을 들은 이형의 첫 소감은 이러했다.
"···아비와 자식이 주먹을 휘두르며 다투고 있는 게 말씀입니까?"
"아니, 그럴 리가 있겠소. 주먹 다툼을 하고 있는 거야 당연히 말려야겠지. 그건 정정당당한 선거도 아닐뿐더러 무엇보다 공공의 치안을 위협하는 행위잖소. 내 말은, 이제 조금 선거라는 걸 열 의미가 있을 거라는 이야기요."
황제가 불렀다 하여 부리나케 누각으로 달려왔던 김윤식은 자신이 잘못 들었겠거니 하는 심정으로 되물었다. 하지만 김윤식의 심각한 모습과는 정반대로, 이형의 모습은 태연하기 그지없었다. 되려 일이 생각보다 잘 풀리고 있다고 기뻐하는 것 같기도 하였다.
김윤식으로서는 곤혹스러운 모습이었다. 비로소 박규수가 황제를 모시는 일이 그리 녹록지만은 않을 거라고 충고했던 까닭을 알 듯했다. 아무래도, 그의 황제는 그의 사고관과는 전혀 새로운 사고관을 지닌 독특한 인물인 모양이었다.
"대강 박규수 그 사람에게 전해 들었을 거라 생각하지만, 이번 선거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건 짐은 경을 총리로 임명할 것이오."
'그냥 바지사장 즈음 내지 회색분자로 써먹으려고 했더니, 상황이 이렇게 되어서야 원. 그것도 능력이 어느 정도 있어야 써먹지 무능한 놈이면 지금 걸러내야겠어.'
그런 김윤식을 빤히 바라보다가, 이형은 담담히 입을 열었다. 다만 겉으로만 그런 체를 하였을 뿐, 사실 이형으로서는 머릿속이 복잡했다. 지금처럼 국론이 갈리기 시작하면 분명 정당제의 도입에는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겠으나, 여차하면 나라가 쪼개지는 계기가 될지도 몰랐다.
요컨대 국론이 갈리도록 두되, 서로 피를 흘리게 되지는 않는 수준의 아슬아슬한 균형이 필요했다. 그 아슬아슬한 균형이 관성을 얻어 굳어진다면, 그것이 곧 정당정치의 완성이었다. 그렇기에, 이형은 한가지 김윤식을 시험해보기로 하였다. 김윤식은 알고 있었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숙여 수긍했다.
"전해 들어 알고 있습니다."
"그래, 그러야겠지. 그러나 총리로서 정하는 건 변함이 없겠으나, 어느 정당에 속할지는 그대의 자유요."
"선거에 출마하라는 말씀이시로군요."
"하지 않아도 상관은 없소. 여차하면 비례대표로 선출되는 방법도 있으니까. 그러나 그 전에 정당을 정해주셔야겠소. 그대는 어떤 정당에 속하시겠소?"
이형은 얼핏 추궁하는 듯한 어조로 말하였다. 김윤식으로서는 곤란한 추궁이었다. 지금의 여당이자 관영 정당인 대한당은 이번 선거에서 유림이 대거 후보로 등록하였다. 그건 즉 앞으로 대한당은 유림의 의사를 반영하게 될 공산이 크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김윤식이 보기에, 눈앞의 황제가 유림의 말에 그리 귀 기울일 것 같지는 않았다.
반대로 야당인 조선애국당은 이번 선거에서 친 학생운동 계열의 모던보이들이 대거 후보로 등록하였다. 그건 즉 앞으로 조선애국당은 학생들의 의사를 반영하게 될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김윤식이 보기에 그들의 주장은 너무나 과격했다. 그들의 의견이 한국에 수용되려면, 우선 어느 정도는 현실과 타협하는 자세가 필요했다.
그러니 김윤식은 한참을 고민하였다. 고민하다가, 이내 골머리를 싸매고서는, 괴로운 듯 머리를 벅벅 긁다가 반쯤 체념하여 간신히 입을 열었다.
"···그럼 조선애국당으로 정하겠습니다."
자신에게 연배가 있고 황제의 총애가 있으니, 갈수록 막 나가고 있는 학생들의 주장을 다듬어 보겠다는 요청이었다.
이형은 환히 웃으며 답했다.
"알겠소. 잘 생각해주셔서 고맙구려. 내 곧장 김가진 녀석과 따로 만날 수 있게 해드리리다. 하지만 그에 앞서, 그놈을 만나거든 한 가지만 말해주시오."
"경청하겠나이다. 무엇을 말씀입니까?"
"크게 흥하기에는 이름부터가 글렀잖소. 애국은 그렇다 치고 조선이라니, 조선 사람이 아니라면 한국 사람도 아니라는 건가? 그놈에게 전해주시오. 대성하고 싶거든 당명부터 국민당으로 고치라고."
이형은 입꼬리를 뒤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