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리드리히 3세 >
내전 이후 프로이센 왕국은 혼란에 빠져 있었다. 결코 대체 불가능할 것 같았던 왕정은 한 번 패하여 공화정이 되었다가 기나긴 혼란기를 거쳐 외세의 힘으로 왕정으로 돌아왔고, 융커 출신 장성들과 상인 출신 참모들은 각각 왕국과 공화국의 이름 아래 무기를 겨누고 서로를 죽이며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건넌듯했다.
"매국노 국왕은 물러가라! 프로이센의 프롤레타리아들이여, 단결하라! 마르크스가 우리 독일인들에게 길을 보여주었다. 자, 나가자 광장으로! 굶주린 자들의 붉은 깃발 아래, 노동조합은 전진할 것이다!"
"혁명의 요람, 자유 베를린 만세! 낡아빠진 쇠사슬을 끊어내고, 프롤레타리아들이 나라의 주인이 되는 프롤레타리아들의 나라를 세우세!"
"이 구획이 마지막이다. 전군 착검! 베를린의 평화와 왕국을 위하여! 돌격!"
그러나 왕국에 있어서 무엇보다 가장 끔찍했던 현실은 사회주의 혁명 세력이었다. 수괴이던 마르크스가 영국군에 의해 총살당하며 한차례 가라앉은 듯하였던 사회주의 혁명 세력은 대공황을 틈타 다시금 베를린을 뿌리부터 뒤흔들었다. 당연히 이러한 불온한 움직임은 오스트리아와 주변 독일 제후국에도 전해졌고, 프로이센의 치안안정을 위하여 공동으로 대응군을 파견하여 주둔시키고 왕국은 이를 수용하는 등 수모를 삼켜야만 했다.
하지만 그러한 모든 수모에도 불구하고 왕국은 살아남았다. 나라는 이미 왕정주의자, 자유주의자, 사회주의자라는 첨예하게 다른 세력들로 나누어졌음에도, 적어도 프로이센인들은 그들 스스로가 프로이센인임을 포기하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러한 국민들의 지지가 있었기에, 왕국은 간신히 마지막 기회를 부여받았다. 그건 곧 분열을 끝내고, 다시금 하나가 되어 다시 일어서기 위한 기회였다.
그 길은 두 갈래 길이었다. 하나는 어떻게든 그들 세 세력의 의견을 하나로 모아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길이었고, 다른 하나는 강성한 세력 하나가 나머지 세력 모두를 숙청하여 힘으로 반대의 목소리를 깔아뭉개는 길이었다. 그리고 프로이센 국내외를 막론하고, 세간의 예측은 후자였다. 그편이 쉬웠으며, 그편이 빨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예상은 전혀 예상외의 방향에서 틀어졌다.
"피를 보기는 쉽고 간단하다. 하지만 우리 프로이센은 이미 충분히 많은 피를 흘리지 않았던가? 국토는 외세에 짓밟히고, 백성들은 빈곤과 전쟁에 지쳐있다. 지금 만일 또 한 번의 피를 흘리게 된다면, 그때야말로 우리 프로이센은 두 번 다시 유럽의 열강으로서 우뚝 서지 못할 것이다. 모두 생각하는 바는 달라도, 프리드리히 대왕께서 지키시던 이 나라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은 모두가 같을 터.
이번이 마지막이다. 자랑스러운 프로이센의 국민들이여, 부디 이 나라에 마지막으로 한 번만 믿음을 다오! 우리는 아직 고작 한 번의 전쟁에서 패하였을 뿐이다!"
"""와아아! 프로이센 왕국 만세! 프리드리히 왕세자 전하 만만세!"""
공화정 수립 이후로 크게 낙심하여 정치 일선에서 물러난 빌헬름 1세를 대신하여 전면에 나선 프리드리히 왕세자는 사회주의 세력의 암살 위협에도 불구하고 베를린과 쾨니히스베르크 등 프로이센 지역의 주요 도시들을 몸소 시찰하며 지지를 끌어모았다. 젊고 야심만만한 왕세자는 피의 보복은 없을 것이라 약속하며 프로이센의 상인계층을 안심시켰고, 이는 왕정복고를 두려움의 시선으로 바라보던 자유주의 세력의 동요를 진정시켰다.
한편으로 왕세자는 패전의 책임을 지고서 정치 일선에서 물러난 비스마르크의 조언을 받아들여 국민보험 설립과 노동법 제정, 사회주의계 정당 활동 허용 등을 약속하며 사회주의 세력에게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다. 이는 필연적으로 융커 보수주의자들의 반발을 낳았으나, 왕세자는 노쇠한 국왕을 대신하여 지난 전쟁에서 몸소 병사들을 이끌던 전시 총사령관이었다.
전쟁이 끝난 이후로도 사회주의 세력의 준동으로 계엄령이 유지되며 전시의 직위가 고스란히 유지되고 있는 상황에서, 왕세자에 대한 비난은 자칫 항명으로 해석될 여지가 컸다. 군사 귀족 계층인 융커들로서는 왕세자에 대한 비판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폐하, 프리드리히 전하께서 역도들의 감언이설에 놀아나 잘못된 길을 걸으려 하고 계십니다. 그 잔학무도한 나폴레옹이 혁명을 강요하였을 적에도 굳건히 유럽의 중심을 지켜왔던 우리 프로이센 왕국이 혁명의 물이 들어 타락할 수는 없습니다. 어서 용단을 내려 전하를 속이고 우롱하는 역도들을 벌하여 주소서!"
"실로 그러합니다. 저들이 말하는 자유란 곧 방종에 지나지 않습니다. 모두가 자유와 방종만을 찾는다면 도대체 장차 이 나라 프로이센의 군대가 어찌 유지될 수 있겠습니까? 군대는 곧 프로이센의 역사이며, 전통이고, 자랑입니다. 저들이 말하는 자유와 민주주의란 우리 프로이센이 자랑으로 하는 군대를 약하게 할 뿐이니, 마땅히 저 역도들의 간악한 입을 다물게 하여야 할 것입니다!"
"어허, 다들 왜들 그러는가. 그 아이는 내 하나밖에 없는 외동아들일세. 짐도 이제 노쇠하여 신께 부름을 받을 날이 머지않았거늘, 경들이 곁에서 그 아이를 도와주지 않는다면 내가 도대체 누구를 믿고서 눈을 감는단 말인가?"
"그렇기에 더더욱 엄하게 나서셔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대로 가다가는 프리드리히 대왕께서 보우하시던 명예로운 프로이센 왕국이 자유나 민주주의 따위의 약한 소리나 지껄이는 유약한 저지대나 영국과 다를 바 없는 나라가 되고 말 것입니다!"
"으, 으음···."
'이거 큰일이구나. 나도 마음 같아서는 저 아이를 꾸짖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 같지만···. 지금 섣불리 내가 저 아이를 꾸짖어 뜻을 꺾어 놓는다면 머지않아 저 아이가 왕이 되었을 적에 이 나라의 귀족들이 과연 저 아이를 뭐로 보겠는가. 무릇 왕이 왕이고자 하려면 권위가 바로 서야 하는 법. 나도 이제 머지않았으니, 지금은 저 아이에게 힘을 실어줘야 할 때다.'
마지막 동아줄로 융커들은 정치 일선에서 물러난 국왕 빌헬름 1세를 설득하여 왕세자의 폭주를 막으려 했다. 자유주의 역도들의 농간에 아직 젊은 세자가 사리 분별을 못 하고 있노라고 말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되려 국왕에게 위기감을 불러일으켰다. 이런 혼란스러운 정세 속에서 이미 늙은 자신이 급사하기라도 한다면 귀족들이 어떻게든 왕권을 꺾어 개혁을 물거품으로 만들게 뻔히 보이던 것이다.
심정적으로는 융커들에게 동조하였고, 의회 민주주의란 영국이나 네덜란드의 유약한 상인들이나 선호하는 체제라는 인식이 확고하던 국왕이었으나 그 이상으로 왕실의 권위에 누구보다 집착하던 빌헬름 1세는 이번만큼은 자기 뜻을 굽히고 왕세자에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미 패전으로 왕권이 크게 꺾인 상황에서 귀족들과의 기 싸움에서 밀리기라도 했다가는 그때는 이제 호엔촐레른 왕가의 존립이 위태로웠다.
하지만 이미 노쇠하고 패전 이래로 실의에 빠져 가벼운 우울증까지 겪고 있던 늙은 국왕에게 왕세자에 힘을 실어줄 방법은 많지 않았다. 대신들을 하나하나 설득하여 왕세자를 지지해달라고 요청하기에는 그는 너무나 지쳐있었다. 결국, 그는 가장 확실하고 빠른 방법을 선택했다.
"프리드리히, 사랑하는 내 아들아. 그간 너와 못다 한 말들이 많구나. 네가 태어나던 날 얼마나 기뻤었는지, 네가 본 대학교를 졸업하고 지난 수차례의 전쟁에서 나를 대신해 병사들을 사열할 때 얼마나 대견스러웠는지 아마 너는 모를 거다. 내 비록 너와는 수차례 다투었고, 때로는 모질게 굴었으나, 그 모든 건 왕국과 장차 왕위를 물려받을 너를 위한 일이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구나.
나는 이미 늙었고, 병들었으며, 지쳤으니, 더 늦기 전에 이제는 그만 이 무거운 왕관을 너에게 물려주려 한다."
"감사합니다, 아바마마. 저를 믿어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결코, 실망하게 해 드리지 않겠습니다. 프리드리히 대왕께서 보우하시던 이 나라 프로이센과 프로이센의 왕국민들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몰래 왕세자를 불러 자기 뜻을 전한 빌헬름 1세는 그다음 날 급작스럽게 의회를 소집하여 패전의 책임을 통감하며 왕위를 왕세자에게 물려줄 것이라 선언했다. 이러한 급작스러운 세습 선언은 전후 국왕과 척을 지고 살던 의회에서 왕정복고 아래로 처음으로 국회의원들 모두가 자리에서 기립하여 박수갈채를 치며 국왕 만세를 외치게 했다.
이러한 세습 선언을 의회가 듣는 앞에서 가장 먼저 전하였다는 건 곧 빌헬름 1세가 프리드리히 왕세자와 의회의 손을 들어줬다는 공개선언이나 다름없던 까닭이다. 의원들은 감격에 젖어 입을 모아 프로이센 왕국의 국가인 프로이센의 노래를 제창했고, 뒤늦게 세습 선언을 접한 융커 세력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한발 늦게 융커 세력은 아직 세습은 너무 이르다며 국왕을 찾아가 설득했지만, 국왕의 뜻은 공고했다. 그렇게 대한제국에서는 한창 총선이 치러지었던 무렵, 베를린에서는 프리드리히 3세의 즉위식이 성대하게 치러졌다. 매일 같이 거리를 마비시키던 노조의 파업도 그날만큼은 엄숙하게 새로운 국왕의 즉위를 지켜보았다. 국민들은 일말의 두려움과 기대에 찬 시선으로 새로운 국왕의 즉위를 바라보았고, 그렇게 왕국은 마지막 기회를 거머쥐었다.
* * *
"제국은 장차 영국과 협력을 강화해야 합니다."
카이저가 프랑크푸르트에 제후들을 모아 의견을 물은 건 프리드리히 3세가 막 즉위식을 올리고서 채 나흘도 되지 않았을 무렵이었다. 다른 제후국들이 대부분 전권대사를 파견하거나 수상들을 파견한 것과는 달리, 이날 프랑크푸르트에는 즉위한 지 나흘도 안 된 프로이센의 젊은 국왕이 몸소 참가했다. 내전 이래로 쇠락하여 점차 미약해져 가고 있는 프로이센 왕국의 존재감을 다시금 과시하기 위해서였다.
지난 전쟁 이래로 크게 위축되어 침울해진 국민들을 달래기 위해서는 다른 무엇보다도 비록 그 세가 꺾였다고 하나 프로이센 왕국은 여전히 건재하다는 걸 보여야 했던 것이다. 단기적으로 이를 과시하기 위하여 가장 좋은 방법은 활발할 외교활동이었고, 젊은 왕에게는 이를 뒷받침할 왕성할 혈기가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젊은 국왕의 움직임은 카이저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과연, 영국이라. 그건 생각지도 못한 관점이구려. 과연 프로이센인들의 독창성은 독일 제일이라 부를법하오."
"송구하옵니다, 폐하."
다분히 비꼬는 기색이 강한 대답이었다. 지난 수십 년간을 독일의 패군을 두고서 다투던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였던 까닭이다. 비록 프로이센이 먼저 무릎 꿇는 형태로 마침내 제국이 통일되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오스트리아는 프로이센이 다시 오스트리아에 대항할까 내심 경계하고 있었고 프로이센은 프로이센대로 어디 두고 보자며 이를 갈던 것이다.
하필이면 콕 집어서 영국을 지목한 점도 그러했다. 영국이 어떤 나라인가. 전통적인 프로이센의 후원세력이자 우방이 아닌가. 비단 카이저만이 아니라 자리에 대동한 뭇 독일의 제후들은 프로이센이 이 기회를 틈타 영국과의 관계를 회복해 힘을 되찾으려 한다고 여겼다.
"그래, 우선은 염두에 두겠소. 하지만 이 자리에 모인 모두가 잘 알다시피, 영국은 제국의 우방 러시아의 숙적이오. 장차 제국이 영국과 손을 잡고자 한다면 러시아인들이 이를 두고서 화를 내지 않을까 우려되는구려."
"마땅히 그렇게 되겠지요. 그러나 이미 제국은 지난 크리스마스에 영국이 제국의 적이 아님을 확인한 바 있습니다. 러시아와 동맹하여 불필요하게 영국과 적대한다면 그것이 과연 제국을 위한 길인지 두렵습니다."
어조만 공손할 뿐인 문답이었다. 카이저는 새파란 국왕의 만용에 불쾌한 듯 연신 콧수염을 만지작거렸고, 국왕은 허리를 꼿꼿이 펴고 가슴을 활짝 펴며 맞섰다. 곧 카이저의 뒤로 구름 같이 남독일과 보헤미아, 헝가리 등지의 제후들이 몰려들었고 국왕의 뒤에 서야 할 북독일의 제후들은 카이저의 눈치를 보느라 머뭇거렸다. 제아무리 프로이센이 전쟁 이전의 지위를 되찾으려 해도, 이미 격차는 벌어질 대로 벌어졌음을 보여주는 광경이었다.
하지만 프리드리히 3세는 애써 기죽지 않은 체하며 당당히 말했다.
"러시아와 동맹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불필요한 적을 만드는 것 또한 좋지 않습니다. 제국과 러시아 양국의 동맹은 공동의 적 프랑스에 맞서기 위함이 아니었는지요. 제국은 마땅히 러시아와의 우정을 지키되, 영국과 새로운 협력관계를 이어가야만 합니다."
"경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알겠소."
카이저는 엄숙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주장이 일리가 있음을 수긍한 것이다. 하지만 카이저는 동시에 눈을 매섭게 빛내며 말했다.
"하지만 지금 유럽의 정세는 그러한 이상을 논하기에는 그리 좋지 못하오. 우리의 동맹 러시아는 오스만 튀르크와의 성전을 수행 중이고, 영국은 그런 러시아를 위협적으로 여기고 있소. 두 나라를 중재하여 평화를 맹세하게 하려 해도 누구 하나 양보하려 하지 않으니, 이를 어찌하면 좋겠소?"
"마땅히 제국의 동맹 러시아를 지원하여 오스만 튀르크를 쳐야만 할 것입니다."
"허어, 그 발언은 조금 경솔하다고 생각되는구려. 우리 제국이 러시아를 도와 러시아의 지중해 진출을 돕는다면, 과연 영국이 우리 제국과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려 하겠소?"
카이저는 과장되게 탄식을 내뱉었다. 젊은 국왕이 혈기만 믿고 들이대다가 자기모순에 빠져들었다 여긴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는 다른 제후들이라고 다를 건 없었다. 카이저의 뒤에 선 제후들은 코웃음을 쳤고, 북독일의 제후들은 나지막이 탄식했다.
그러나 국왕은 이어서 말했다.
"제국이 러시아의 전쟁을 돕는다고 한들 그들이 콘스탄티노플을 회복하도록 도울 필요가 있겠습니까. 지금의 오스만 튀르크는 허약하나, 러시아 또한 지난 전쟁의 피로를 회복하지 못하였으니 저들은 필히 큰 도시와 요새들에 부딪혀 이스탄불을 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러시아도 그리 쉽게 전쟁을 포기하지는 않을 테니, 전쟁은 길어질 것이고 그럼 언젠가는 정말로 이스탄불을 점령할지도 모릅니다.
그건 영국에 있어서도 반드시 막아야 하는 일이지만, 제국에서도 곤란한 일입니다. 제아무리 제국이 강성하다고 한들 러시아의 도움 없이 프랑스에 맞설 수 있겠습니까."
"흐음, 그러니까··· 러시아를 도와 전쟁을 짧게 끝내 돼 러시아가 갈망의 도시를 빼앗는 건 막아야 한다는 말이구려."
"그렇습니다. 그리스 왕국을 다스리는 글뤽스부르크 왕가는 본디 우리 신성로마제국의 봉신이었으며, 현 그리스 국왕은 영국 왕세자의 처남이고, 또한 그리스는 러시아와 같은 정교회를 신봉하는 나라입니다. 러시아가 정교회를 내세워 성전을 선포하였으며 그리스는 영국의 우방이기도 하니, 그리스 왕국을 내세워 우리 제국이 이스탄불을 그리스령으로 삼는다면 러시아 또한 수긍할 것이며 영국은 만족할 것입니다."
이 말에 일리가 있다고 판단한 카이저는 내심 떨떠름해 하면서도 국왕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제국은 곧 영국과 그리스에 각각 비밀 서신을 보내어 러시아의 지중해 진출을 막기 위하여 협력할 것을 전달했고, 그 회답이 돌아오기도 전에 프리드리히 3세는 베를린으로 돌아와 은밀히 명했다.
"먼저 그리스로 가시오. 영국인들이라면 지금쯤 프랑크푸르트에서 어떤 말이 오갔는지 전해 들었을 것이오. 내 부탁드리리다. 가서 의용병들을 이끌며 우리 왕국은 아직도 영국을 둘도 없는 맹우로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주시오."
"폐하께서 이 늙은 패장의 불명예를 회복하실 기회를 주시니 그저 감읍할 따름입니다. 기필코 기대에 보답하겠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프로이센 왕국의 전 총참모장 헬무트 폰 몰트케가 5000여 명의 프로이센 청년들을 이끌고 오스만 튀르크에 맞선 기독교 세계의 성전에 의용병 자격으로 참전했음이 유럽 전역에 보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