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2차 러시아-튀르크 전쟁 >
"진정으로 독일이 우리 그리스를 지원해준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소! 내 꿈에서도 우리 선조들의 옛 고토를 수복하여 마침내 이 땅이 온전히 기독교 세계의 품으로 돌아오는 날을 고대해오고만 있었소이다. 좋소. 당장 시작하도록 합시다. 만일 진정으로 독일 제국의 뜻이 그러하다면, 우리 그리스는 기꺼이 독일과 함께 튀르크인들에게 총부리를 겨누도록 하겠소!!"
독일의 비밀 서신을 받은 그리스의 반응은 신속하고도 적극적이었다. 그리스 국왕 요르요스 1세는 몰트케를 따라온 5000여 명의 의용병을 본 순간 제자리에서 펄쩍 뛰어오르며 흥분에 가득 차 몰트케의 팔을 잡고 휘두르며 그들을 적극적으로 환영하였다. 왕은 의회에서 참전을 호소했고, 의회는 8할 이상의 의원이 찬성표를 던지며 사실상의 만장일치로 성전을 승인했다.
그러나 호기로운 선전포고와는 달리 당시 그리스 왕국은 전혀 전쟁에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당장 독일이 뒷배를 서준다는 말에 기뻐 우선 호기롭게 선전포고를 한 것뿐, 그리스 또한 대공황의 여파에 신음하던 처지는 매한가지였다.
개전 이후로 1달이 넘는 시간 동안 그리스 왕국은 동원령을 완료하기는커녕 튀르크 영내에 진입하지도 못하고서 우물쭈물했다. 고토회복의 의지로 타오르던 정치인들과 달리 그리스의 장군들은 아무리 독일이 뒷배를 서 줘봐야 그리스의 미약한 전력으로는 국토방위전이라면 몰라도 침공전은 어렵다는 걸 알고 있었고, 이러한 그리스의 소극적인 모습은 튀르크에게 다른 생각을 품게 했다.
"어차피 러시아 놈들이라면 콘스탄티니예의 위풍당당한 요새가 막아줄 것이다. 지금은 그것보다도 건방진 그리스 놈들에게 본때를 보여줄 때다! 저 조막만 한 그리스 놈들에게 감히 대 튀르크에 도전한 결말이 어떻다는 걸 보여주자!"
이러한 오스만 튀르크의 그리스 침공론은 그리스를 이대로 방관할 경우 발칸의 소국들이 튀르크를 깔보고 힘을 합하여 맞서려 들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에 기반했다. 고작 그리스 하나가 참전한다고 해봐야 크게 위협이 되지는 않겠으나, 그리스의 참전이 다른 발칸의 소국들 참전을 끌어낼지도 모른다고 여긴 것이다.
실제로 이 무렵 러시아가 불가리아와 세르비아를 비롯한 발칸의 슬라브 국가들에 함께 성전에 나서자며 꼬드기고 있었으니만큼 이는 튀르크에게 있어서도 단순한 피해망상만은 아니었다. 러시아가 오스만 튀르크를 침공하고 발칸의 소국들도 함께 튀르크에게 맞서자며 부추기고 있는 와중에 그리스가 튀르크에게 맞서고 있는데도 어떠한 군사적 보복도 뒤따르지 않는다면 하나둘씩 튀르크를 두려워하지 않게 될 것이 분명했다.
마침 이 무렵 신성로마제국은 반 튀르크 전쟁에 대한 지지 선언과 의용병 파병 이래로 뚜렷한 입장표명을 삼가고 있는 와중이었고, 독일에서 그리스를 주축으로 한 전후 튀르크령 분할제의를 받은 영국도 정계의 의견대립이 극심해 이렇다 할 회답을 돌려주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호기에 마침 러시아군이 수도권 요새지대에 부딪혀 전진이 지지부진해지고 프랑스로부터 지원물자가 도착하자, 오스만 튀르크는 마침내 응징의 철퇴를 휘두르기로 했다.
"알라후 아크바르! 신은 오직 한 분뿐이시며 무함마드는 그의 마지막 선지자임을 내 간증하노라!"
"용맹한 튀르크의 전사들이여! 제국을 얕보고서 러시아와의 전쟁을 틈타 이익을 챙기려 한 고약한 난쟁이들에게 알라의 분노를 느끼게 하여라! 전군 착검! 저 난쟁이 놈들의 지푸라기나 다를 바 없는 방어선을 단번에 걷어차 뭉개 버려라!"
"튀, 튀르크 놈들이다! 튀르크 놈들이 지평선 가득히 몰려온다!"
결국 고토회복의 야심만 믿고서 시작된 그리스의 호기로운 선전포고는 오스만 튀르크의 대대적인 침공을 일으키는 꼴이 되었다. 기세만 믿고서 남하하던 러시아군은 이 무렵 오스만 튀르크의 수도권 요새지대에 부딪혀 정체되어 있었고, 카이저는 단지 오스만 튀르크의 그리스 침공을 정중하게 비판하였을 뿐 직접적인 행동으로 나서지는 않았다.
그리스 장군들의 현실 인식대로, 오스만 튀르크와 그리스의 격차는 그야말로 끔찍했다. 오스만 튀르크가 10만이 넘는 대군을 이끌고서 남하하는 동안 그리스는 자국의 모든 역량을 쥐어짜 간신히 4만이 조금 안 되는 병사들만을 동원했을 뿐이었다. 본격적인 침공이 시작된 지 채 보름이 되지 않아 그리스의 국경방위선은 무너져내렸고, 오스만 튀크르군은 전쟁의 조기종전을 위하여 그리스 왕국의 수도 아테네를 목표로 쾌속 진격해갔다.
이 무렵 오스만 튀르크는 영국이 본격적인 행동에 나서기 전에 그리스의 항복을 받아내고 철군한다는 구상을 품고 있었다. 그리스가 항복하는 즉시 지난 전쟁에서 상실했던 테살로니키 일대와 무거운 전쟁배상금만 챙긴 다음 영국이 군사행동에 나서기 전에 종전을 선언하고 물러난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러시아가 당초에 구상하였던 전쟁 구도가 요새라는 현실의 벽에 부딪혀 엉망이 되었듯이, 오스만 튀르크의 구상 또한 그리 오래지 않아 엉망이 되고 말았다.
"부, 부탁드리오! 이제는 정말로 그대들 밖에는 더 이상 믿을 구석이 없소. 부디 우리 군을 이끌고서 저 악독한 튀르크인들을 물리쳐주시오!"
"여부가 있겠나이까, 폐하. 안심하십시오. 비록 지난 전쟁에서 쇠하였다고 하나, 오스만 튀르크는 프로이센의 적수가 되지 못합니다."
요르요스 1세는 몰트케에게 지휘권을 양도했다. 이는 그리스 장군들에게 격렬한 반발을 낳았다. 저 독일인들이 그리스 왕국을 처음부터 이길 가망이 없는 무리한 전쟁에 끌어들였다는 인식 탓이었다. 막상 그렇게 전쟁을 부추긴 독일은 영국이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이자마자 입으로만 그리스 왕국을 응원할 뿐 이렇다 할 지원도 보여주지 않고 있었으니 그리스의 장군들로서는 열불이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리스에 다른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나마 훈련된 정규연대들은 이미 튀르크군의 공세에 무너지고 억지로 무기를 쥐여준 예비연대들이 전선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프로이센으로부터 도착한 5000여 명의 의용병은 전 전선에 걸쳐 그리스군이 무너지는 와중 끝까지 전선을 사수하며 질서정연하게 후퇴하는 데 성공한 정예병들이었다.
제아무리 그리스의 장군들이 프로이센인들의 공을 축소하려고 해도, 이미 실적의 격차는 누가 봐도 명확했다. 결국 요르요스 1세의 지지 아래 몰트케는 그리스군의 지휘봉을 거머쥐었고, 그의 자신감이 자만이 아니었음을 입증해 보였다.
"조국 프로이센의 위신을 되살리기 위하여서라도 우린 이 전쟁에서 반드시 이겨야 하네. 그럼 가장 먼저 우군의 전력을 평가해보지. 모두 냉정하게 평가해주게. 현 그리스군을 어떻게 생각하나?"
"오합지졸들입니다. 안하트 공국과 싸운다 해도 과연 비등하게나 싸울 수 있을지 의문이로군요."
"훈련받은 민병 수준입니다. 튀르크군보다도 명백하게 아래입니다. 튀르크군이 다소 낙후되고 경직된 정규군이라면, 그리스군은 의욕만 앞서는 훈련된 민병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본관의 생각도 그러하네. 그럼 모두의 생각이 일치하였으니, 답은 정해졌군. 당장 내일부터 저들에게 삽을 쥐여주도록 하지. 마침 그리스에는 굴곡진 언덕이나 산지가 많으니, 고지에서 참호를 지키게 하세나."
"""옛!"""
프로이센이 지원한 5000여 명의 의용병은 대부분 프로이센의 참모진과 장교들, 부사관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몰트케가 지휘권을 거머쥐자 그들은 즉시 요르요스 1세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 그리스군의 군사제도를 프로이센식으로 고치고 프로이센식으로 병사들을 훈련하는 등 근본적인 체질 개선에 나서는 한편으로 지난 전쟁에서 축적한 참호전의 경험을 살려 본격적인 방어진지 구축에 나섰다.
이러한 조치들은 즉각적인 변화를 끌어내지는 못했으나, 최소한 그리스에 무엇보다 가장 귀중했던 시간을 벌어주었다. 몰트케가 지휘봉을 잡은 지 보름이 조금 넘었을 무렵 아테네까지 고작 10km를 앞두고 있던 오스만 튀르크군은 더 이상 진격하지 못하고 멈춰버렸고, 이는 오스만 튀르크로 하여금 조급함에 빠져 그리스군과의 야전을 목이 빠지게 기다리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몰트케의 지휘를 받던 그리스군은 튀르크군의 도발에도 불구하고 이에 호응하지 않았고, 참다못해 선공에 나선 튀르크군은 참호에 부딪혀 무수한 피만 흘렸을 뿐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서 물러나야 했다. 이러자 튀르크로서는 당황스러워졌다. 당장 러시아가 수도를 공격하는데 10만에 이르는 병사들이 그리스에 발이 묶인다면 튀르크가 감당해야 할 부담은 이루 말할 수 없던 것이다.
"장군, 어서 결단을 내려주십시오! 더 늦기 전에 이 땅을 빠져나가야 합니다! 이번 정벌은 실패하였습니다. 지금 당장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병사를 러시아와의 전선에 돌려야 합니다!"
"이대로 빈손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이렇게 빈손으로 돌아간다면 무슨 낯으로 술탄을 뵈라는 말이더냐! 보아라. 고작 해봤자 10km다. 길어야 이틀에서 사흘이면 닿는단 말이다! 설령 패할 때 패하더라도, 한 번은 싸워야 하지 않겠느냐!"
그렇다면 이만 단념하고서 물러나는 것이 현명하겠으나, 유감스럽게도 튀르크군은 그러지 못했다. 글자 그대로, 마지막 한 걸음만이 남아있던 까닭이다. 어쩔 수 없다고 단념하기에는, 지금까지의 침공은 너무나도 순탄하였고 그리스는 이제 한 번 밀기만 해도 무너질 듯 유약해 보였다.
결국 튀르크군은 물러나는 대신 최후의 대공세에 나섰다. 목표는 아테네였고, 그들을 막는 것은 아테네를 지키기 위하여 조성된 그리스군의 이중참호선이었다. 튀르크군은 날이 밝는 대로 그들이 가지고 온 모든 화기를 동원하여 참호선을 공격하였고, 이를 지원하러 나온 튀크르군의 함대가 지원 포격으로 아테네 시가지를 불바다로 만들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튀르크의 화력은 참호를 무너뜨리기에 충분하지 못했고, 단지 위압감을 주는 데 그쳤을 뿐이었다. 튀르크군의 육탄공세는 끝내 그리스군의 이중참호선을 뚫지 못하였고, 몰트케가 최후까지 아껴두던 프로이센 의용병 5000여 명이 일제히 착검하여 튀르크군을 향해 돌격하기 시작하자 그대로 사기가 무너져내리고 말았다.
"오스만 튀르크는 지금 당장 우리 영국의 친구 그리스 왕국에서 병사들을 치워야만 할 것입니다! 오스만 튀르크의 침공은 지중해 세계의 평화를 위협하고 있으며, 이는 우리 대영제국의 안보마저 위협하고 있습니다!"
"당장 함대를 뒤로 물리도록 하시오! 그대들의 침략전쟁은 동지중해의 해운을 위협하고 있소! 만일, 이 권고에 따르지 않는다면 불벼락을 기대해도 좋을 거요!"
이 무렵 오스만 튀르크의 그리스 침공 소식에 격분한 영국 정계가 마침내 입을 모아 오스만 튀르크를 규탄하기 시작하자 전쟁의 방향은 절정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영국의 개입은 독일의 연쇄개입을 일으켰고, 이러한 열강들의 개입은 발칸의 신생 독립국들에 지금이 기회라는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1876년 여름 동안 세르비아와 불가리아를 위시한 발칸의 신생 독립국들은 차례대로 오스만 튀르크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동시기 몰트케가 지휘하는 그리스군이 본격적으로 반격에 나서 오스만 튀르크를 침공하기 시작했고, 영국 함대가 크레타섬 근해를 맴돌며 무력시위에 나섰다. 그리고 러시아는 마침내 콘스탄티니예를 포위했다.
전 전선에 걸쳐 오스만 튀르크군은 패퇴하고 있었고, 콘스탄티니예 함락은 이제 시간 문제로만 보였다. 오스만 튀르크는 뒤늦게 종전을 애걸복걸했으나 이미 콘스탄티니예 함락을 기정사실로 보고 있던 열강들은 이를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이게 도대체 무슨 짓이요! 전쟁이 끝나고서 얼마나 되었다고 이 유럽 대륙을 또다시 불바다로 만들 작정이오? 좋소. 못할 이유도 없지. 만일 지금 당장 전쟁을 멈추지 않는다면, 우리 프랑스 제국은 우리의 오랜 친구 오스만 튀르크를 위하여 그대들 모두와의 전쟁도 불사하겠소!"
이러한 양상은 프랑스 제국에서 오스만 튀르크에 대한 전폭적이고 확고한 지지성명을 발표한 다음에야 끝이 났다. 프랑스는 지중해 함대를 파견하여 크레타섬에서 영국 함대와 대치하는 등 자국의 지지 의사가 확고함을 보였고, 프랑스의 개입 의사를 확인한 영국은 프랑스의 주위를 돌려 아프리카 정복을 조금이나 늦췄음에 만족하며 선선히 자국에 종전을 중재할 의향이 있다며 나섰다.
러시아 또한 마찬가지였다. 당장 전쟁 준비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던 러시아로서는 설령 아무리 많은 피를 흘려 콘스탄티니예를 함락시키더라도 영국이 자국의 지중해 진출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며 프랑스 또한 그러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이들과의 전쟁은 결국 콘스탄티노플의 상실로 이어질 거라는 걸 상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되려 아쉬움을 표한 건 독일이었다. 그들로서는 영국과 러시아가 프랑스의 위협에 맞서며 발칸에서의 전쟁이 길어진다면 그보다 반가운 소식은 없던 까닭이다. 하지만 이미 양 세력은 종전에 합의하기로 입을 맞춘 상황이었고, 결국 영국의 중재와 프랑스의 보증 아래 런던에서 종전 협상이 이뤄졌다.
"오랜 시간 보스포루스 해협과 다르다넬스 해협은 봉쇄되어 왔습니다. 이는 적절하지 못한 폭거입니다. 이 해협들은 마땅히 모든 중립국에 개방되어야만 합니다. 이는 필수적인 조항입니다."
"콘스탄티노플을 할양하지 못하겠다면, 그 대신 아르메니아 일대를 우리 러시아에 할양해야만 하오. 16억 4천만 루블의 전쟁배상금도 물론이오.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면 우리 러시아는 차라리 전쟁을 계속하여 무력으로라도 콘스탄티노플을 수복하리다."
"이번 전쟁에서 그리스 왕국의 기여는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적어도 휴전 시점까지 그리스 왕국에서 확보하는 데 성공한 트라키아와 마케도니아주 2개 주를 할양받지 못한다면 그리스인들이 흘린 피에 적절한 보상이 되지 못하겠지요."
"좋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가 모두 만족할 수 있는 결과에 다다른 것 같군요. 이로써 유럽의 평화가 다시금 회복되었음에 감사하도록 합시다."
종전협상장에서 패전국 오스만 튀르크의 입장은 전혀 배려받지 못했다. 열강은 오스만 튀르크에게 그들의 요구를 수용할 것을 강요했고, 오스만 튀르크는 이에 저항할 수 없었다.
영국은 종전을 중재해준 대가로서 키프로스섬을 실효 지배할 권리를 받았고, 프랑스는 이번 전쟁에서 오스만 튀르크를 지지해준 대가로 리비아를 위임통치할 권리를 받아갔다. 그리스는 기대한 만큼은 아니었으나 고토를 수복하는 데 성공했고, 프로이센은 지난 전쟁에서 깎였던 자국군의 위신을 되찾았다.
"송구합니다, 아바마마. 최선을 다하였으나, 끝내 콘스탄티노플을 되찾지 못하였습니다."
"아니다. 그보다 더 귀한 것을 얻어왔으니 충분하니라. 네 덕분에 이제야 비로소 우리 러시아가 제힘을 되찾겠구나! 허허허!"
그리고 러시아는 마침내 자국의 재정적 빈곤을 해갈했다. 오스만 튀르크가 지불한 전쟁배상금 16억 4천만 루블이 한 번에 지급된 것도 아니었고, 이 모두를 러시아가 챙긴 건 아니었으며 이 발칸전쟁에 참여하였던 여타 참전국들에도 나눠줘야 하는 금액이었으나, 그렇다고 한들 러시아가 이 중 대부분을 독식할 권리가 있음은 누가 봐도 명확했다.
오스만 튀르크는 자국의 기둥뿌리를 뽑아서라도 이를 지불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번에야말로 콘스탄티니예를 빼앗길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전쟁이 끝난 이후로 러시아의 흑해 함대는 번번이 보스포루스 해협을 항해하며 오스만 튀르크를 압박했고, 오스만 튀르크는 황실 자산까지 털어가며 러시아에 꼬박꼬박 이 천문학적인 채무를 갚아나가야 했다.
그리고 이러한 재정적 여유는 필연적으로 러시아가 지난 전쟁에서 마지못해 팔아야만 했던 옛 땅들에 눈독을 들이는 원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