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폭군 고종대왕 일대기-261화 (261/530)

< 망국의 예법 >

이형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가장 큰 문제는 지금 런던발 대공황이 터졌다는 것.'

가장 심각한 문제였다. 다른 것도 아니고 경제가 망가졌다. 민심이 흉흉하다는 것이다. 곳간에서 인심이 난다는 말이 있듯이, 당장 경제가 엉망이 되어 버렸는데 미국인들이 현집권정당인 공화당에 다시 표를 몰아주리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하다못해 골수 공화당 지지자였다고 해도 어떻게든 경제부터 해결해보자는 마음에 공화당을 포기할 공산이 크다.

그럼 이들의 지지를 회복 시킬 가장 쉬운 방법은 무엇일까. 쉽게 생각하면 미국의 경제가 회복되면 된다. 아니, 회복할 필요도 없다. 하다못해 미세하게라도 이제 좀 먹고 살기 편해진 것 같다-라고 생각하게 해주면 된다. 그렇다면 모든 게 해결된다.

'그게 말이 쉽지.'

이형은 눈살을 찌푸렸다. 글자 그대로, 말이 쉽다. 경제가 그렇게 쉬운 문제였다면 지금쯤 온 세상에 부자들뿐일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누군가는 찢어지라 가난한데, 또 누군가는 떵떵거리며 살아가고 있다. 경제를 회복시키자고 무턱대고 나서봐야, 미국의 황제인 것도 아닌 이형이 해줄 수 있는 일은 없다.

하다못해 한국이 정말로 미국보다 배는 부유한 나라라서 미국에 선물이라면서 얼마 찔러주기만 해도 미국 경제가 일시적인 버블 현상에 접어들 수준이라면 모를까, 현 한국이 어디 미국보다 부유한 나라이던가. 아니다. 절대로 아니다. 그럼 발상을 고치는 수밖에 없다.

'미국의 경제를 회복시킬 필요는 없다. 하다못해 경제가 회복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게 해주는 것만으로 충분해. 그 해법을 지금의 공화당에서 쥐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해주면 된다. 그러자면···.'

한국이 부강한 나라일 필요까지도 없이, 한국이 부강한 나라인 것처럼만 보이면 된다. 한국과 교역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만으로 지금의 모든 경제 문제가 해결되고 영국이 휘청이면서 대서양 무역이 덩달아 위축된 것 즈음은 태평양 무역으로 충분히 벌충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해주면 된다.

그러자면 어쩌면 좋을까. 가장 좋은 건 우선 이형 자신이 화려하게 치장하고서 가는 것일 것이다. 사람은 겉으로 보이는 걸 있는 그대로 믿는 경우가 많다. 그것이 자신의 기대에 부합하는 내용이라면 더더욱 더 그렇다. 아무튼, 미국인들이라고 경제가 나락으로 치닫고 있는 걸 좋아서 가만히 보고만 있는 건 아니다.

만일 한국에 경제 위기를 해소할 실마리를 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면, 미국인들은 그것을 쉽게 믿어버릴 것이다. 태평양 무역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경제가 단숨에 회복된다. 실로 골치 아프게 머리 굴릴 것 없이 편리한 이야기가 아닌가. 이형이 황제로서 화려하게 치장하고서 황제다운 수행원들과 함께 미국을 찾아간다면 미국인들은 필시-.

'아니, 잠깐.'

이형은 순간 머리를 뒤통수로 맞는듯한 충격을 느꼈다. 화려하게 치장하고서 황제에 걸맞은 수행원들을 이끌고 미국을 찾아간다? 그것도 그 미국을 상대로? 미국인들이 그 대단한 위세에 감탄하고 경외하겠는가? 그럴 리가 없다. 미국은, 미국인이란 그런 족속들이 아니다.

미국은 야생마들의 나라다. 자신들이 왕국이 아니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자랑스럽게 여기는 억센 국민들의 나라다. 그들에게 있어서 이국의 왕이나 황제란 존경해야 할 상대도 아니고 하다못해 호감이 가는 존재들도 아니다. 좋게 말하면 구시대의 유물이고, 나쁘게 말하면 꼰대 버러지 기생충 집단이다. 미국의 정치인이나 자본가들이 제아무리 이국의 고귀한 이들을 경외하고 존중하여도, 미국인은 코웃음도 치지 않는다.

그런 나라에 황제처럼 화려하게 차려입고서 거나하게 거드름이나 피운다? 비웃음거리도 되지 않는다. 재수 없다는 소리밖에 더 들을까. 미국인들은 한국의 황제를 거리낌 없이 비웃음거리로 삼을 것이고, 광대 취급할 것이며, 종국에는 남의 나라에서 거드름이나 피우는 한국의 황제에게 재수 없다며 야유를 보낼 것이다.

'멍청한 놈. 아주 그냥 바보짓을 자처하려고 했구나. 미국에 방문해서 선거기류를 바꿔보자고 마음을 먹은 놈이 시작부터 미국 국민들이 어떤 국민성을 지니고 있는지조차 잊고 있으니 원···!'

이형은 다시금 눈을 가늘게 떴다. 발상을 고쳐야 했다. 미국의 정치인들이나 자본가들은 지금 태평양 무역이 활성화될 경우 얻게 될 이익을 이미 알고 있다. 당연히 그들에게 어필할 필요는 상대적으로 적다. 그들은 구태여 이형이 나서지 않아도 알아서 이형에 먼저 다가올 테니 말이다. 굳이 총천연색의 화려한 도포까지도 필요 없이, 말끔하고 깔끔한 제복이나 양장 정도만 입어줘도 충분하다.

중요한 건 미국 국민들에게 어떻게 보일 것인가 하는 것. 일단 존경을 받을 기대는 처음부터 집어치우는 게 좋았다. 미국인들에게 이국의 황제 따위 잘 차려입고 유명한 광대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형을 원숭이로 그려낸 커리켤쳐가 황색신문에 실리는 정도는 처음부터 못 본 척해야 할 테고, 뒷말이나 이런저런 짓궂은 농담들도 끝도 없이 나올 것이다.

그렇다면 이형은 무엇을 보여야 하는가. 미국인들에게 가능한 친근하고 유쾌한 모습으로 기억되어야 한다. 그러면서도 체통을 잃어서도 곤란하다. 평범한 미국의 서민들이 보면서 즐거워한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그걸 보고서 미국의 정치인들이나 자본가들이 실망하지 않을 정도의 수위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우라질, 그게 말이 쉽지 내가 생각해도 감이 도저히 안 잡히는데···! 자아, 어쩐다. 어쩌지. 1876년 대선에서 공화당이 확실하게 이기기만 해도 꼴도 보기 싫은 백인의 짐이니 KKK니 하는 놈들 볼 일도 없어진다. 남부 촌구석 반란군 놈들이라고 군인들에게 빠따 맞아가며 참교육 당할 테니 아예 없어지기는 어렵더라도 목 뻣뻣이 펴고서 살기는 힘들겠지. 그렇지만···.'

"황상!"

"아잇, 깜짝이야!"

느닷없는 고함에 이형은 놀라 기겁을 했다. 겨우 정신이 들어 소리가 향하는 곳을 바라보니 목이 아픈 듯 캑캑거리고 있는 김윤식이 있었다. 이형이 계속 생각에만 잠겨 있는 동안 옆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던 모양이었다. 이형이 정신이 든 걸 확인한 김윤식은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서는, 금세 다시 목청을 높이며 이형에게 따져 물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미국? 미리견에 가시겠다니요! 너무 갑작스럽지 않습니까! 그리고···!"

"음, 갑작스럽기는 하지. 하지만 원래 세상만사라는 게 갑작스러운 법이 아니겠소. 그렇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오. 올해를 넘기면 뒤늦게 방문해봐야 아무런 소용도 없을 테니 짐이 어쩌겠소? 그저 너른 마음으로―."

"어찌 너른 마음으로 넘어갈 수 있겠습니까! 영길리도! 독의지도! 불란서도 아닌 미리견에 입조하시겠다니요! 그게 도대체 지금 무슨 말씀입니까!"

김윤식은 잔뜩 성이나 얼굴을 붉히며 소리쳤다. 그것만은 절대로 막아야 한다고 말하는 듯한 결의로 굳은 얼굴이었다. 이형은 순간 그게 무슨 소리인지 이해하지 못하고서 눈을 껌뻑껌뻑했다. 그리고 잠시 생각하다가, 이내 떨떠름하게 김윤식에게 되물었다.

"···그게 무슨 호랑이 탭댄스 추는 소리요?"

"체통을 지켜주소서! 일국의 황제께서 입에 담으시기에는 너무도 경박한 언행이십니다!"

"그게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요?"

"체통을 지켜주시옵소서! 지엄하신 만백성의 어버이께서 그게 도대체 무슨···! 끄으응."

김윤식은 가슴이 갑갑하여 마구 주먹으로 제 가슴팍을 두들겼다. 그러나 오래는 가지 못했다. 이형이 저를 진짜로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한 얼굴로 바라보는 꼴에 질려 제가 먼저 지친 까닭이다. 김윤식은 있는 힘껏 소리 내 숨을 들이쉬었다가 내쉬어 제 분을 가라앉힌 다음, 다시금 천천히 이형에게 말했다.

"조금 전, 미리견에 몸소 찾아가시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음, 그랬었지."

"소신의 짧은 식견으로 판단하건대, 황상께서 미리견을 정벌하여 대한의 강토를 넓히시려는 건 아니라는 것만은 알겠더이다."

"그야 당연하지. 미리견과 전쟁이라니 거리는 둘째치고서 우리 대한이 침공당하는 입장이 될지언정 어디 그 역이 성립할 수나 있겠소?"

이형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뚱딴지같은 말이기도 했지만, 그 이상으로 그 광경 자체가 상상이 가지를 않았다. 이형이 태극기를 휘날리며 거북선과 판옥선을 이끌고서 미국 태평양 함대를 베링해 해저에 가라앉히면서 로스앤젤레스에 상륙하는 광경. ···헛웃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하다못해 B급 판타지 사극영화도 저 정도는 아니겠다 싶었다.

김윤식은 작게 숨을 몰아쉬고서 입을 열었다.

"우리 조선국이 병자년의 호란에서 만주의 야인들에게 패하였을 적에도 국본을 인질로 잡히시고 몸소 친정에 나선 만주의 가한에게 인조 대왕께서 삼궤구고두례의 치욕을 삼켰을지언정 인조 대왕께서 몸소 만주까지 가시어 입조하시는 일은 없었습니다. 하다못해 주명이 건재할 적에도 국본이 입조를 할지언정 나라의 임금이 입조를 하러 가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황상께서 몸소 미리견에 입조하심은 항복의 예요, 곧 망국의 예법입니다. 어찌 황상께서는 미리견에 망국의 예를 갖추려 하십니까?"

"···엉?"

이형은 김윤식의 말을 듣고서 눈을 껌뻑였다. 순간, 김윤식이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지 이해가 잘 가지를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뒤늦게 깨달았다.

'어, 우라질 생각 해보니 그렇네. 미국이나 서양에서야 정상회담이라 여겨준다고 쳐도, 이거 조선 국내나 유교적 관점에서 보면 황제가 미국에 입조하러 가는 꼴이잖아. 하다못해 지금 아직도 조선인 것도 아니고 명색이 일자왕에 황제까지 자처했는데 미국에 고개 숙이러 가면···.'

망국. 혹은 이형이 힘들여 얻은 아주 대륙의 천명을 제 손으로 미국에 가져다 바치려 든다고 해석할 공산이 크다. 어느 쪽이건 유림과 백성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으리란 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한양이 온통 새하얀 도포로 뒤덮이면 그나마 다행이고, 도낏자루 들고 상경해서 내 말을 들어주지 않을 거라면 차라리 이 도끼로 내 목을 잘라라! 하고 날뛰는 선비들이 나와도 이상할 게 없다.

21세기의 미래인인 이형의 관점에서야 국가원수가 동맹국을 방문하여 양국의 친교를 다지는 게 대수롭지 않은 일일지 몰라도, 19세기의 조선인들의 관점에서 보기에 다른 나라를 침공하는 것도 아닌데 국가원수가 몸소 다른 나라를 방문하는 것 자체가 망국이나 그에 준하는 사태가 벌어졌을 때나 벌어질 일이다. 이형은 뒤늦게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우라질, 이거 어쩌지.'

몸으로 때우는 것조차 녹록하지는 않을 모양이었다.

* * *

그날의 만남은 결국 못 들은 걸로 하라는 이형의 엄중한 명으로 끝났다.

"안 됩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날의 소란에서 시작된 일이 마무리되었음을 의미하는 건 아니었다. 되려 시작이라고 해도 좋았다. 어느 날, 황후는 마치 지나가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무엇이 안 된다는 것인지, 황후는 따로 언급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따로 언급하지 않았어도 누구나 쉽게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도 이형은 짐짓 모른 체하며 답했다.

"무엇이 안 된다는 건지 도통 모르겠구려."

"아직 나라 안팎으로 소란이 끊이지를 않고 있는데 어찌 이와 같은 혼란스러운 시기에 만백성의 어버이께서 함부로 자리를 비우신다는 말씀이십니까. 하물며 친정에 나서시는 것도 아닌데 이국에 가시겠다니요. 설령 제아무리 서역에서 이러한 일이 용인된다고 한들, 이 나라에서는 불가한 일입니다. 뜻을 거두어 주소서."

"흠, 아무래도 김윤식 그 양반이 괜한 소리를 했던 모양이구려."

"김윤식 총리와는 무관한 일입니다. 단지, 그날 황상께서 온 궁궐에 들리도록 호통을 치신 덕분이지요."

"···음."

그러자 이형으로서는 대답이 궁했다. 궁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궁한 짓을 벌였으니까 말이다. 곧 인과응보였으며 자업자득이었다.

황후는 한참을 입을 다문 이형을 빤히 노려다 보다가, 이내 검지 끝으로 제 미간을 살짝 어루만지고서는 다시 입을 열었다.

"혹, 근래 궁에서 도는 낭설처럼 미리견에 항복하시러 가는 건 아니리라 믿겠습니다."

"그야 물론이오. ···한데 궁에서 그런 뜬소문이 들고 있었소?"

"돌았습니다. 돌았었지요. 하나 당분간은 조용할 것입니다."

서슬 퍼런 웃음이었다. 그 웃음만 봐도 무슨 일이 실제로 일어났을지는 훤히 보이는 듯했다. 이형은 짐짓 보지 못한체하기로 했다.

황후는 이어 물었다.

"하면, 어째서입니까. 황상께서 아무런 연유도 없이 미리견을 찾아가려 하시지는 않았을 터인데."

"올해 중에 치러질 미리견의 대통령 선거에서 반드시 이기게 해주고 싶은 인물이 있어서 그렇소."

이형의 대답에 황후는 잠시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가, 입술로 가볍게 집게손가락 마디를 깨물었다. 그리고 "과연,"하고 작게 중얼거리고서는 다시금 입을 열었다.

"요는, 미리견의 황제가 되고자 하는 자 중 장차 대한의 천하에 도움이 될 이가 있으니 그를 돕고자 하시는 것입니까."

"황제와는 다소 다르긴 하오만, 구태여 설명하자면 그와 같소."

"재차 여쭙는 것도 송구스럽사옵니다만, 그건 반드시 황상께서 가셔야지만 되는 사안인지요."

"미리견에서는 11월 첫째 월요일 다음의 화요일에 대통령 선거를 시작한다고 그들의 법전에 명시해두었소. 이는 그들의 나라에서도 이미 100여 년 넘게 지켜져 온 유서 깊은 전통이니, 설령 도중에 후보들이 모두 죽는다고 한들 선거는 예정대로 진행되겠지."

황후는 한숨을 토했다. 갑갑했기 때문이다. 황후가 알고 있는 미리견 대통령이란 한 번 즉위하면 죽는 날까지 황제인 게 아니라 정해진 기간만 황제로서 국사를 논한다는 정도밖에는 없었다. 당연히 어떻게 개입하면 좋을지부터가 도통 감이 잡히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와중, 대통령 선거는 11월 첫째 주. 진짜로 방미를 하건 뭔가 술수를 쓰건 시간에 맞으려면 늦어도 9월 말, 혹은 10월 초순에는 결론이 나와야 한다.

"천운에 맡기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러니 한참을 고민하던 황후의 입에서 나온 말은 이 정도였다. 그녀가 생각하기에는 그게 최선이던 까닭이다.

"이제 와 수를 쓰기에는 너무 늦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수를 써야 그자가 미리견의 황제가 될 수 있는지도 그저 모호하기만 합니다. 황상께서 몸소 방미하는 것 또한 불가하니, 그저 대자대비하신 석가께서 대한을 어여삐 여기어···."

"아니, 그럴 수는 없소."

이형은 딱 잘라 말했다. 그것만은 있을 수 없다고 말이다.

"이건 운에 맡길 수는 없는 일이오. 반드시 고쳐야만 하오. 이를 바꿀 수만 있다면, 장차 대한의 천하는 진정 순탄대로일 것이오."

'생각하자. 최선은 내가 가는 것. 하지만 그랬다가는 온 나라가 난장판이 될 거다. 그럼 차선을 골라야 해. 태자는 너무 어리다. 미국인들의 호응은 확실하겠지만, 그래서야 아무리 수행원을 많이 보내도 갓난애를 이용하는 격이야.

어차피 이번 방미는 대단한 조약을 체결하려는 게 아니다. 어디까지나 미국인들이 보기에 한국과의 무역이 그럴싸해 보이거나 하다못해 방미라는 사건 자체가 유쾌하게 느껴지기만 하면 돼. 그 정도만 되어도 일시적으로나마 민심이 호전될 거고, 그렇게 선거기간에 민심이 일시적으로 호전되기만 해도 현집권정당인 공화당이 무난하게 승리할 거다.

그걸 위해 필요한 건 미국인들이 봐도 태자와 비등하거나 그보다 높은 지위를 지녔으면서, 미국인들이 친근하게 여겨줄 만큼 서민적인 인물일 것. 아니면-.'

아예 대놓고 누구보다 권위적이고 체통을 중시하여 미국 국민들에게는 비웃음당하기 딱 좋으면서, 미국의 자본가들과 정치인들이 태평양 무역에 기대를 가지게 할 만하며, 또 이제 와서 조선의 선비들이 문제시 삼을 염려는 적을만한 인물.

'···이하응이네? 이하응 바지사장 시키고 카네기 옆에 붙여다 놓으면 딱 되겠다. 뭔 일이 나면 김옥균이 알아서 대처해줄 거고.'

불현듯, 뇌리에 전류가 달렸다.

이제는 피만 이어진 아버지를 쉬지도 못하게 하는 모범적인 불효자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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