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폭군 고종대왕 일대기-265화 (265/530)

< 강국의 강군 >

"아이고, 아버지! 왜 이러십니까! 제 말 좀··· 악!"

"왜? 왜에? 이놈아. 이 불효막심한 놈아! 출가했으면 차라리 머리를 깎고 산에 들어가던, 기연을 만나 도라도 닦건 하지 하다 하다 아비 말도 안 듣고서 총 들고 전쟁터에 나가 그간 소리 소문도 없이 조용히 지내다 아무런 기별도 없이 이렇게 돌아왔으면서! 왜? 이 미련한 것아. 네가 진정 왜라는 소리가 입 밖으로 나오더냐! 오냐, 어디 오늘 죽어보자 이놈아. 내 네 제사상을 두 번은 못 차릴 성싶더냐!"

"거, 거기에는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넓은 이유가···. 아이고 아버지! 저 이러다가 죽어요! 악! 악!"

"그래, 죽어라! 죽어라. 이놈아! 또 그렇게 아비 속 썩일 거면 차라리 죽어! 아이고, 이 미련한 것아. 내 어쩌다 이런 무심한 놈을 그래도 자식이랍시고 두게 되었을꼬? 아이고!"

전창혁은 울화통이 다 터진다는 듯 가슴을 쿵쾅거리며 두드렸다. 장차 집안을 이어야 할 아들이라는 놈이 가지 말라고 해도 듣지도 않고서 군에 자원해서는 그간 죽었는지도 살았는지도 모르게 기별 한 번 없이 살아 있었으니, 그야 울화통이 터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살아 돌아온 기쁨보다도 이렇게 멀쩡히 살아 있었으면서 편지 한 번 쓰지 않았다는 게 절로 열불이 났다.

이렇게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오르고도 차마 진짜로 죽일 듯이 때리지는 못하고서 평소 지니고 다니던 나무 단소로 어떻게든 팔이랑 다리만 골라 때리는 것도 재주였다. 또 달리 말하면 그것이 곧 흔히들 말하는 부성일 터이다. 하지만 그런 건 난데없는 매타작에 정신이 반쯤 나간 전봉준에게는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그 싸움개에게 택견을 배울 적에도 이와 같지는 않았다.

전창혁이 한 번 매를 휘두를 때마다 뼈가 절로 시렸고, 눈물이 핑 돌았다. 전봉준으로서는 제가 집으로 돌아온 것인지 아니면 제 묫자리를 찾아 들어온 것인지 분간이 가지를 않았다.

"이놈아! 이 미련한 놈아! 그놈의 무예는 또 무엇이더냐! 이놈이 열심히 학문을 닦아 나라에 도움이 되는 서생이 되라고 했더니, 하다 하다 도성 저잣거리의 검계들이나 익히는 잡기나 익히고 돌아와! 그러고서 또 뭐라? 군관, 그래 군관이 되었다고! 네가 진정 그걸 자랑이랍시고 늘어놓고 있느냐!"

"아이고, 아버지! 제가 잘못했습니다! 그러니까 제발 한 번만 살려주십시오! 아이고!"

"아이고, 봉준이 아버지! 그러다가 진짜로 봉준이 죽습니다. 우리 귀한 아들내미 죽어요! 그래, 봉준이구나. 봉준이야. 으응! 아이고, 우리 봉준이가 살아 돌아왔어!"

전창혁의 매타작은 때아닌 새벽녘의 곡소리에 놀라 한걸음에 달려온 김씨 부인이 말린 다음에야 끝이 났다. 전봉준으로서는 그야말로 구사일생이었다. 전창혁은 그 뒤로도 분이 풀리지 않아 한참을 씩씩거리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지만, 차마 부인이 몸을 던져가며 막는데 매를 휘두를 수는 없어서 한발 물러났다.

대신 전창혁은 그 길로 교장실로 찾아가 오늘 수업은 못 하겠노라고 말했다. 당연히 반발은 만만치 않았으나, 죽은 줄 알았던 아들이 살아 돌아왔다는 설명을 덧붙이니 교장도 차마 뭐라 돌려줄 말이 없었다. 되려 교장은 전창혁에게 시장에서 닭이라도 한 마리 잡아서 닭국이라도 끓여주라며 원화 세 냥을 건네며 그를 다독여 주기까지 했다.

그리고 전창혁이 교장에게서 받은 돈을 감사히 받아 돌아오니 곧 부인이 여비까지 털어서 전주 시장으로 달려가 소머리를 통째로 사 들고 왔다. 죽은 줄 알았던 아들이 살아 돌아왔는데 닭 가지고 되겠냐는 것이었다. 너무 낭비가 심하다고 한마디 하려다가도, 그간 귀신에라도 홀린 양 하루하루 그저 멍하니 앉아 뜨개질이나 하며 보내던 부인의 이리 하늘을 날 것처럼 기운찬 모습이 얼마만 인가하니 차마 입이 떨어지지를 않았다.

"자네 그거 들었나? 아이고, 글쎄 전 선생네 아들내미 봉준이가 살아 돌아왔다지 뭔가! 전쟁판에 죽기는커녕 무슨 공을 세웠는지 몰라도 당당하게 벼슬까지 얻어서 돌아왔다네!"

"뭐, 뭐라? 그게 사실인가! 허, 허허허! 다행이야. 참으로 다행이야! 내 요즈음 전 선생 낯이 날로 죽어가는 게 어찌나 마음에 걸렸는데···! 아니, 이럴 때가 아니지. 내 비록 가진 건 얼마 없으나, 이런 좋은 날에 뭐라도 전 선생댁에 가져다드려야 하지 않겠나. 옳지, 지난 김장철에 담근 젓갈과 김치가 조금 남았으니 오늘 장독이라도 깨야겠구나!"

"아이고, 이 사람아! 너무 무리하지 말게! 그러면 또 올겨울은 어떻게 보내려고, 벌이라고는 대필이니 대독이니 같은 글재주밖에는 없는 사람이 괜한 무리를 하는가!"

"일 없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전 선생댁 일인데 그게 뭐가 대수인가? 전 선생 같은 선비가 잘되어야 이 나라가 진정으로 선비를 우대했노라고 떳떳이 말할 수 있지 않겠는가. 말리지 마시게. 난 가야겠네!"

결국 그날 저녁은 때아닌 잔칫날이 되었다. 소머리를 통째로 사와 온종일 육수를 우려 소머리국밥을 끓이니 그야 전 씨 식구들만 먹기에는 양이 너무 많았다. 더욱이 전창혁은 이미 전주의 이름난 명사였고 민족주의자였다. 한 번 잔치를 하려고 판을 벌이기 시작하니, 사람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었다. 그들 모두가 전창혁의 동료 교사들이었고, 가르침을 받은 학생들이었으며, 전주의 명사들이었다.

일이 커지니 때아닌 잔칫상도 자연히 커지고 부풀어 올라, 처음에는 소머리 국밥을 끓이던 가마솥에는, 잔치를 기념하여 찾아온 빈객들이 하나둘 들고 온 대추니 감자니 소꼬리니 달걀이니 하여 이것저것 수도 없이 들어가 어느새 본래 무슨 국이었는가도 알 수 없는 잔칫국이 되어버렸다. 여기에 어느 추레한 서생이 집에서 담근 젓갈이니 김치 따위를 가져오고 술잔치 좋아하는 어느 졸부가 제가 운영하는 양조장에서 술을 몇 통 꺼내오니, 절로 흥이 올랐다.

대단하게 준비한 것도 없고 대단하게 차려진 것도 없었지만, 다들 한데 모여 기뻐하며 때아닌 잔칫상을 즐겼다. 이 또한 천지신명께서, 조상들께서, 석가께서 보우하심이라고 희희낙락하며 말이다.

"그, 그게 사실이더냐? 그래, 황상을 모시는 무사가 되었다고!"

"쉬잇! 목소리가 너무 큽니다. 네에, 사실이고 말고요. 여기 허리띠에 오얏꽃이 장식된 거 보이시지요?"

"이, 이것이 정녕···. 애그머니나! 내가 함부로 손을 대 손자국이 생겨버렸구나! 이를 어쩐다, 이를 어째! 이 불경함을 어찌하면 좋을꼬!"

"하하하! 너무 걱정하지 마시어요. 이게 원래 새하얘서 손자국이나 때가 잘 타거든요. 손수건으로 닦으면 이정도야 살살 지워질 테니, 너무 염려하지는 마세요!"

자연히, 이때 아닌 잔칫날의 주인공은 전봉준이었다. 전주를 등지던 무렵의 누렇게 때가 타고 군데군데 해진 옷이 아닌 허리춤에는 군도를 차고서는 잘 다림질되어 빳빳하고 검게 칠해져 위압감을 주는 시위군 정복을 입고서 나타났으니 그야 주목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물론 전봉준은 자신이 황제를 곁에서 직접 보았고 모시기도 했다는 말까지는 꺼내지 않았다. 이런 자리에서 가볍게 꺼내도 될 정도로 황제의 이름은 가볍지 않았다.

그러나 사실 구태여 거기까지도 필요 없었다. 전봉준의 정복은 새벽녘에 전창혁에게 두들겨 맞느라 다소 흙먼지가 묻기는 했어도 단연코 전주에서 제일로 눈에 띄었다. 이제는 흔해 빠진 양장을 차려입은 모던 보이들의 멋도 시위군의 정복을 따라갈 수는 없었다. 황동으로 도금하여 황금빛으로 빛나는 단추와 부착물, 금빛 견장. 그에 대비되어 검갈색으로 채색되어 무게감을 주는 섬유까지.

누구 하나 전봉준을 선망의 시선으로 보지 않는 이들이 없었고, 전봉준은 절로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궁에서는 허구한 날 마주치는 사람들이 조정의 고관들이나 심지어는 황제, 황태자였으니 실감하기 어려웠지만, 전주에서는 달랐다. 그는 엄연히 시위군의 무관이었고, 이 나라를 지탱하는 기둥이었다.

"허허허! 아이고, 이것 참. 전 선생은 좋겠구려. 경사도 어찌 이리 겹경사일 수가 있나? 우리 봉준이가 사지 멀쩡히 살아 돌아온 것만으로도 기쁜 일인데, 이렇게 벼슬까지 하고서 나라의 녹을 받으며 살게 되었으니. 아주 그냥 부러워 죽겠네, 잉?"

"경사는 무슨. 저 미련한 놈이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몸 쓰는 데만 정신이 팔려서는··· 쯧. 아버님께서 이 꼴을 보시면 뭐라고 하실지, 원."

그렇게 어깨를 으쓱거리고 있는 전봉준을 구경하는 전창혁으로서는 그저 속이 뒤틀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원래 자식이 부모 뜻대로 되라는 법은 없다지만, 장차 집안을 이을 아들이라는 놈이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서 왜 잡기나 하나 익혀서는 군문에 들어섰다고 하는데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잔칫국이 나와 그 기름진 냄새가 코를 간지럽혀도 영 당기지 않고, 결국 빈속에 술이나 퍼붓고 있자니 그저 속이 따끔거리고 머리에 열이 오를 따름이다. 축하해주려 찾아온 빈객들도 이내 전창혁의 심기가 영 아니라는 걸 읽고서 하나둘 그를 피하니, 빈객들이 보는 앞에서 전봉준이 제 무용담을 늘어놓는 동안 전창혁은 차게 식은 고깃국만 쥐 잡을 듯 노려다 보며 홀로 술잔이나 기울이는 꼴이 되었다.

그러자니 결국 보다 못한 김씨 부인이 다가와 전창혁에게 핀잔을 주었다.

"봉준이 아버지, 그렇게 가만히 앉아 궁상이나 떠시지 마시고 이 술 들고 가 애한테 한 사발 따라주시어요. 우리 봉준이도 이제 술을 배울 나이가 되었으니, 사나이끼리 그간 가슴 속에 담긴 말이라도 몇 마디 주고받아야지요, 안 그런가요?"

"일 없소. 정 기분이 내키시거든 부인께서 그렇게 하시구려. 난 저놈이 세상 무서운 줄도 모르고서 헤실헤실 웃고 있는 꼴을 보니, 속이 뒤틀려서 이만 들어가 봐야겠소."

"그러지 말고 뭐라도 한마디 해봐요. 낮에도 꽁해져서는 결국 봉준이와 말 한마디 안 하고서는. 그러다가 또 봉준이 돌아가면 후회하지 말고 못다 한 말 있으면 지금 어서 가서 해요."

"아니, 그렇게 괜찮대도···."

말은 그렇게 했지마는, 전창혁으로서는 내심 뜨끔 했다. 뒤늦게 전봉준이 앞으로 며칠을 머물지는 몰라도 나라의 녹을 받아먹는 처지에 언제까지고 궁을 비워둘 수는 없다는 걸 떠올린 것이다. 그러자니 뒤늦게 마음이 급해졌다. 결국 전창혁은 김씨 부인이 뒤에서 떠미니 못 이기는 척 전봉준이 즐겁게 무용담을 떠벌리고 있는 상으로 다가가 그 앞에 대뜸 걸 터 얹었다.

"어, 그. 아, 아버지···."

"어이쿠, 벌써 이렇게 시간이 되었나. 이보게들, 슬슬 이만 돌아가세나."

"어, 어어어? 이 사람아, 왜 또 귀를 잡아끌어! 내 이 그릇만 비우고 간다니까!."

"아이고, 이 사람아. 눈치 좀 보고 살게. 걸신이라도 들렸는가, 왜 남의 집 잔치에 뭔 국을 몇 그릇씩 비우고 있나? 전 선생님 편히 이야기하시게 어서 자리나 비워주세."

한참을 빈객들 앞에서 제 무용담을 떠벌리던 전봉준은 그제야 겁을 집어먹고 입을 다물었다. 도움을 청해보려 슬쩍 시선을 돌려도, 때아닌 잔칫상에 모여든 빈객들은 하나둘 분위기를 읽고서 자리를 비우려 하고 있었다. 유일한 구원의 동아줄이던 김씨 부인마저 빈객들을 바래다주려고 자리를 비우니, 삽시간에 조용해진 전 씨 댁에는 그저 긴장 섞인 고요만이 감돌 따름이었다.

"···."

"···."

전창혁은 가만히 전봉준을 노려다 보았다. 그 시선에 풀이 죽어 전봉준은 고개를 숙였다. 구태여 입 밖에 내지 않아도, 무슨 말이 나올지 어떤 꾸중을 듣게 될지 눈에 훤히 보이는 듯했다.

그렇게 얼마간을 입을 다물고 있었을까. 결국 먼저 입을 연 것은 전창혁이었다. 그는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 내쉬며 마음을 가라앉히고서는, 차분하게 물었다.

"···그리도 도적놈이 되고 싶었느냐."

"예, 예? 아니, 아버지.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무리 아버지라고 하셔도 이 나라와 백성들을 지키는 시위군을 도적이라 부르시다니요. 말씀이 너무 지나치십니다!"

"미련한 것."

전봉준이 놀라 제자리에 벌떡 일어서 고함을 내질렀다. 전창혁은 그에 단지 작게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을 뿐이다. 그의 입에는 어느새 궐련이 한 개비 물려 있었다. 와이셔츠의 가슴 주머니에서 성냥을 꺼내 불씨를 댕기며, 전창혁은 말했다.

"그래, 이 나라와 백성을 지키겠지. 이 나라가 힘이 없고 나약했다면 말이다. 그러나 이 나라가 어디 힘이 없고 약하더냐? 네가 보면 알 것 아니더냐. 이 나라가 약해 보이느냐?"

"아니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어찌 이 대한을, 황상께서 이끄시는 시위군을 약하다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대한은 이미 천하에서 제일로 강성한 나라이며, 장차 천하에서 제일로 부유한 나라가 될 것입니다!"

"그래, 천하에서 제일로 부유해질 것이다. 분수에 넘치는 부일 것이며 재화겠지. 단군 아래로 우리 대한이 장차 축적할 부보다 많은 부를 축적했던 나라는 없다. 그러나 그게 어디 우리 조상들이 못나 이 땅을 제대로 쓰지 못한 까닭이더냐. 너도 본 게 있으면 알 것이고 들은 것이 있으면 알 것이다. 말해 보아라. 이 나라가 천하에서 제일로 부유해진다면, 그 부는 본디 누구의 것이더냐? 진정으로 이 땅이 본디 그리도 부유했으나, 우리 조상들이 못나 쓰지 못한 것뿐이더냐?"

"그건···."

전봉준은 입을 다물었다. 전창혁은 궐련을 있는 힘껏 빨아들였다가, 다시 깊이 내쉬었다. 전봉준은 기침이 절로 나오는 걸 억지로 참아야 했다. 담배 연기가 자욱하여 앞이 보이지를 않았다. 단지 아버지의 말소리만이 들려올 따름이다.

"이 미련한 것아. 네가 어리숙하여 군문에 잘못 들었으면 전쟁이 끝나는 대로 고향에나 돌아올 것이지, 무엇 하려 벼슬까지 얻어가며 네 길을 정하느냐. 내가 왜 너에게 학교 공부나 마치라 하였겠느냐. 장차 대한은 큰 죄를 짓게 될 것이다. 상이 앞설 것이며, 군이 뒤따를 것이고, 관이 뒤를 봐주겠지. 너까지 거기에 끼일 필요는 없다. 없었단 말이다.

어찌 네 손을 더럽힐 길을 자처하느냐. 그 원성과 저주를 어찌 감당하려고 그러느냐. 글이나 읽는 서생 노릇이나 하면 무고해질 수 있다. 하루 벌어 하루 살게 되어도 무고해질 수 있다. 상이, 군이, 관이 되지만 않는다면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성실하게 살기만 해도 된단 말이다. 이 미련한 것아. 네 어찌 강국의 강군이 되어 도적놈이 되기를 자처하느냐. 아이고···."

전창혁은 흐느끼듯 중얼거렸다. 전봉준은 그저 눈을 깜빡거릴 따름이었다. 잘 이해가 가지를 않던 것이다. 전창혁은 한참을 흐느끼다, 이내 체념한 듯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 빈 술잔을 기울이며, 전창혁은 물었다.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

"예, 그것이···."

전봉준은 망설였다. 전창혁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따스한 시선으로 전봉준을 바라보았을 뿐. 그 시선에 용기를 얻어, 전봉준은 한참을 망설이다 비로소 입을 열었다.

"이번에 나라에서 미리견에 사절단을 보내는데 호위차 제가 함께 따라가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번에 이렇게 시간이 나서 집에 얼굴이라도 비추려고 온 것도 그 덕분에―."

"···그러니까 얼굴을 비추자마자 돌아가야겠다고?"

"아, 아니요. 그래도 모래까지는 역으로 돌아가야···."

"···."

전창혁은 말없이 양조장이가 두고 간 술독에서 술을 퍼 잔에 가득 퍼담아 전봉준에게 내밀었다.

얼굴이 퍼렇게 질린 채, 전봉준은 아비가 주는 대로 받아 마실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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