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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 고종대왕 일대기-268화 (268/530)

< 애민의 화신 >

사실을 알고 보면 우스꽝스러운 희극에 지나지 않았다. 멋대로 착각하고, 멋대로 확신해서 제멋대로 감격하였을 뿐. 이하응의 처지는 무엇 하나 변한 것이 없었다.

'우둔하도다. 우둔하구나. 이 우둔한 놈아. 어찌하여 미처 깨닫지 못했을꼬? 민심이 곧 천심이라고 하였다. 전주 이씨의 천하를 만들고자 그토록 갈망하였으면서, 어찌 왕가를 따르는 백성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못했을꼬···!'

그러나 이 경험은 이하응의 마음속에 깊은 인상을 주었다. 수천의 군중이 한데 모여 자신의 이름을 외치는 광경 그 자체가 하나의 마약이나 다름없던 까닭이다. 마치 천하를 다 가진 듯했다. 고작 해봐야 수천, 천만이 넘는 조선의 백성을 떠올리면 한 줌에도 지나지 않는 숫자. 하지만 이제는 그를 잊어 기억해주지도 않을 조선의 백성들과 달리 이 땅의 백성들은 그 숫자는 극히 적을지언정 자신을 기억하고, 필요로 해주고 있다.

전율이 일었다. 척수를 타고서 강렬한 희열이 머리에서부터 꼬리뼈 끝까지 흘러내렸다.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어찌 그리도 사서에 등장하는 성군들이 그토록 백성을 위하였는지 말이다. 단지 백성들이 어여쁘기에? 왕이란 백성을 위하는 존재이기에? 그럴 리가 없다.

자신을 필요로 해주고, 자신을 기억해주며, 지금 이 자리에서 자신의 이름을 외치며 환호해주는 이 수천의 백성들은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인가. 이하응은 메마른 줄만 알았던 눈물을 닭똥같이 흘려댔다.

"···참으로 장관이로구나."

이하응은 간신히 그 한마디만을 내뱉었다. 목이 바싹 말라 더 이상은 말 한마디 할 수 없었다. 뒤늦게 후회가 들었다. 어째서 먼저 백성들에게 다가가지 않았을까. 그까짓 체면이 뭐가 대수란 말인가. 이렇게도 밝게 웃으며 환호하는 백성들의 얼굴이란 얼마나 찬란하고 눈부신가.

이하응은 망설였다. 무엇을 해야 할지는 알고 있었다. 그간 서역의 신문들을 읽으며 계속하여 보아왔던 일이다. 그저 상석에 올라, 환호하는 백성들을 향하여 손을 흔들며 회답하는 일. 그러나 그건 그가 그간 마지막까지 지켜왔던 마지막 자존심마저 내버리는 일이기도 했다.

"대한제국 만세!"

하지만 이하응은 끝내 결단을 내렸다. 한 걸음 앞으로 내디디며, 난간에 몸을 걸치고서, 있는 힘껏 양팔을 머리 위로 쳐들며 만세를 외쳤다. 만세를 외치고서, 차마 넘쳐흐르는 감격을 억누르지도 못하고서,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양팔을 있는 힘껏 좌우로 흔들었다. 보라, 너희들이 그토록 목 아프게 찾는 흥선왕이 여기에 있노라. 그렇게 선언하듯이 말이다.

""와아아! 흥선왕 전하 천세! 대한제국 만만세!"""

"아직 소리가 작다! 더욱 크게 소리를 지르라고 시켜! 이 기회에 확실하게 마음을 돌려놔야 한다. 한국 측에서 한동안 황인종들의 처우를 두고 따져 물을 엄두도 내지 못하게 해야 해!"

"소리만 질러대지 말고 플래카드가 더 잘 보이도록 손으로 있는 힘껏 치켜들도록! 장대를 손끝으로 바치고서 최대한 높게 쳐들어! 빌어먹을, 그런데 저 플래카드들이 제대로 쓰인 거 맞나? 엉터리로 되어 있어서 웃음거리가 되지는 않겠지?"

그러자 함성은 더욱 커져만 갔다. 이제 막 부두에 배를 댄 증기 여객선과 좌중의 거리는 못 해도 백여 미터 이상. 당연히 이하응이 있는 힘껏 팔을 들면서 소리를 질러봐야 들을 수 있을 리가 없다. 이하응이 만세를 외치자 더욱 환호성이 터져 나온 건 공화당 정권에서 이 방미 행사를 이용할 목적으로 망원경을 통해 이하응을 관찰하며 실시간으로 이하응이 소리를 지르고 있으니 더욱 호응하라고 지시한 까닭이다.

그러니 죽어 나가는 것은 결국 중간에 동원된 환영인파들뿐이었다. 그들로서는 그저 단기속성으로 간신히 익힌 만세 구호를 기계처럼 반복해서 외치면서도 환영의 뜻이 그 목소리에 잔뜩 배어 나와야 했으니 더더욱 그랬다. 그나마 이하응의 방미가 자신들의 처우 개선으로 연결되리라 믿고 있었기에 젖먹던 힘까지 다하여 있는 힘껏 외쳐댈 따름이었다.

"대한제국 만세! 만세! 만만세!"

""와아아아! 흥선왕 전하 천세! 대한제국 만만세―!"""

물론 그런 정황이야 이하응으로서는 알 도리가 없었다. 이하응으로서는 단지 관중들이 더욱 큰 소리로 환호해주니 그저 기뻐서 더욱 크게 목이 쉬라고 만세를 외쳐댔을 따름이다. 그리고 이하응이 배에서 내릴 생각은 없이 선교 위에서 만세를 선창해대고 있으니, 환영인파들은 그가 내려올 때까지 계속 목이 쉬라고 만세를 외치며 이하응이 기대하는 반응을 돌려줘야만 했다.

이하응으로서는 그저 마냥 감동이 벅차올랐고 마냥 기뻤다. 이미 잊힌 줄 오래인 줄 알았던 자신을 필요로 해주는 백성들이 이토록 많았다고 생각하니 그간 엉뚱한 곳에서 헤매던 것이 바보처럼만 느껴졌다. 왜 진작 미리견을 살피지 못했을까. 이 미주 땅에 이토록 많은 조선의 백성들이 있음을 어찌 몰랐을까. 그저 회한에 잠겨, 눈물을 흘리며, 만세를 외쳐댔을 따름이다.

"만세! 만세! 만만세!"

"""흥선왕 전하 천세! 대한제국 만만세!"""

'쿨리들이군.'

되려 이하응이 그리 있는 힘껏 외쳐대는 동안 정확하게 상황 파악에 성공한 건 이하응의 옆에서 환영인파를 구경하던 카네기였다. 그로서는 모를 수가 없었다. 애초에, 그가 알기로 미국에 조선인 이민자들은 극히 적어 없는 거나 다름없었으니 말이다. 카네기는 한눈에 그들이 태극기를 손에 쥐여줬을 뿐인 중국인 노동자들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쓴웃음을 지었다.

'황상의 계획이 완전히 꼬였군. 이래서야 이번 대선의 열기는 상당히 뜨겁겠어. 이거 우리가 화려하게 날뛰면서 시선을 끌어줄 게 아니라 공화당의 선거운동을 적극적으로 도와야 하겠는데···.'

"전하, 이만 내려가시지요. 전하께서 오시기만을 학수고대하던 백성들을 온종일 제 자리에 세워두실 생각입니까."

카네기는 머릿속으로 생각을 고치고서는, 이하응에게 가만히 다가가 자그마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정도만 말해주어도 이하응이 어련히 알아듣고서 빠릿빠릿하게 움직여줄 거라 기대했다. 그러나 그 기대는 배신당했다.

"만세! 만세! 만만세!"

"전하. 이만 내려가시지요. 저기 미리견의 고관대작들이 전하께서 배에서 내리시기만을 기다리고 계시지 않습니까."

"만세! 만세! 만만세-!"

"···허, 참."

카네기의 기대와는 달리 이하응은 카네기가 뭐라 하건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드디어 여객선과 부두를 잇는 계단이 놓이면서 이하응이 내리기만을 기다리던 캘리포니아 주지사 일행이 조금씩 얼굴이 일그러져도 아랑곳하지 않고서 말이다. 이하응은 넋이 나간 듯이 계속해서 만세를 외쳤고, 그때마다 환영인파들은 목이 터져라 만세 소리로 회답했다.

끝에는 옆에서 말리던 카네기조차 질려 이를 방관하니, 더 말릴 사람도 없겠다 무아지경으로 흘러갔다. 나중에는 너무도 많이 소리를 지른 나머지 목이 다 쉬어 소리가 나오지 않게 되고서도 하늘 높이 치켜든 양팔만은 쉼 없이 휘둘러댔다.

결국 이하응과 방미 사절단이 L.A.에 발을 디디는 데까지는 장장 2시간 30분이라는 시간이 소요되어야만 했다.

***

"으음, 너무 무리했나. 골이 흔들리는 것 같구먼···."

"너무 무리하셨습니다. 잠시 쉬시지요. 곧 물수건을 가져오겠습니다."

"아니, 되었다. 과인의 백성들이 저리도 이 몸을 애타게 찾고 있거늘, 내 어찌···."

그리고 그 반작용은 확실했다. 배에서 내리고 난 다음, 이하응은 너무 들뜬 나머지 제 체력을 생각하지 않은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했다. 만세를 외치느라 진이 빠져 제 발로 서지도 못해 부축을 받게 된 것이다. 그러는 와중에도 어떻게든 백성들 앞에 서겠다며 고집을 부린 것은 덤이었다. 실로 대단한 집념이었고 고집이 아닐 수 없었다.

이하응은 배에서 내려 캘리포니아 주지사와 악수를 주고받은 다음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도 계속하여 백성들을 향하여 손을 흔들어댔다. 그럴 때마다 열렬한 환호가 돌아왔음은 물론이었다. 시청까지 향하는 동안 이하응이 탄 마차는 계속하여 창이 활짝 열려 있었고, 이하응은 그 창밖으로 계속하여 손을 흔들었다. 이따금 만세를 작게 외치며 말이다.

"아니, 연배도 있으신 분이 저리도 우리 같은 천한 것들에게 마음을 써주시다니···!"

"그래, 만주 놈들보다는 조선이 낫다! 우리가 이 먼 미주 땅까지 끌려오는 동안 입도 벙긋 안 하던 만주 놈들과는 달리 조선에서는 태상황께서 이 미주 땅까지 임하시어 우리 같은 천한 것들에게 마음을 써주고 계시지 않은가? 대한국 만세다, 만세야!"

"허, 허허허! 이게 꿈이야 생시야. 맙소사. 저런 귀하신 분과 눈이 다 마주치다니. 이게 도대체···!"

"""흥선왕 전하 천세! 천세!"""

처음에는 강요였으되, 이 무렵에 와서는 이하응을 향한 환영 인파들의 환호는 진짜였다. 황제의 친아버지, 곧 태상황이나 다름없는 인물이 천하디천하고 궁하디궁하여 미주까지 내다 팔린 자신들을 이토록 아껴주는 모습을 보이니 그야 뭉클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비록 그 마음이 다소 지나쳐 몸을 고되게 했으나, 이날 그들이 받은 정신적 충격과 기쁨은 그를 훨씬 웃돌고 있었다.

흥선왕이 조선인이라는 게 무슨 상관인가. 지금 조선이 천하를 거머쥐었으며, 이토록 아주의 백성들을 품에 안고자 노력과 정열을 아끼지 않고 있는데 말이다. 되려 같은 아주의 황인종이라는 이유만으로 제 백성들도 아닌 이들조차 이토록 아끼는 모습을 보이니, 절로 가슴이 찡해지는 듯했다.

"좋아, 작전 성공이다. 아니, 기대한 이상이야! 조금 감정이 과해져서 시간이 오래 끌린 것 말고는 문제 하나 없이 순탄하게 끝났어. 오늘의 이 환영 행사가 전해진다면 한국도 만족하겠지!"

"푸하하핫! 좋아, 이걸로 프레임 하나는 잘 나왔다! 우리 합중국에서 왕족이 몸소 방문해서 옛 백성들을 다독이던 적이 있기는 했나? 이번 미담만 제대로 부각하면서 황인종 인권 문제 공론화 밀어붙이면 민주당 놈들도 좋든 싫든 판 위로 올라와야 할걸!"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와 같은 결과에 가장 반색한 것은 공화당 내 선전부서였다. 이하응이 감격에 겨워 만세를 외치느라 다소 시간을 지체하면서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곤욕을 치른 거야 유감이었지만, 당장에 대통령 선거를 앞둔 마당에 그런 소소한 일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그간 유럽의 왕족들이 보여준 민중과의 교류란 고작해야 테라스 밖으로 얼굴을 빼꼼 내밀고 손을 흔드는 정도. 그나마 입헌군주정이 자리 잡은 영국이나 혁명의 전통을 중시하는 프랑스의 경우에는 조금 더 민중과의 교류에 적극적이지만, 그들도 민중들의 지지를 끌어내고자 보여주는 식의 교류가 대다수다.

그러나 이날 이하응이 보여준 것은 본인이 체력이 다 떨어져 탈진하여 숙소에 다다르자마자 실신하는 수준의 교류였다. 어지간히 정열적인 변사들도 여기까지 열정적으로 민중들과 감정을 주고받으려 하는 경우는 드물다. 설령 보여주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도 이 정도의 열정이라면 충분히 높이 평가될 만했다. 실신할 때까지 서민들과 만세를 주고받는 푸른 피라니.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사례였다.

"사진들 잘 찍어 뒀지? 특종이다. 적어도 일주일간은 소재가 메마를 일이 없어!"

"이거, 생각해보면 가슴 찡한 일 아닙니까? 그 콧대 높은 푸른 피라는 놈들이 서민들과 저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적극적으로 교류하려고 들다니···. 햐, 이런 점 하나는 덜떨어졌다는 아시아가 허구한 날 잘난 체나 하는 유럽 왕족들보다 낫네요."

"후, 그러게 말이다. 네 마음에는 전적으로 공감하지만, 그런 사견은 미리미리 빼놔라. 도둑놈들이라고 욕하는 건 상관없어도 왕족들을 걸고 넘어가기 시작하면 그때는 진짜 외교 분쟁이다."

이는 이 방미 행사를 취재하려고 온 황색 언론들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이하응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하거나 열렬히 환호하는 청중과 그에 대비되는 무뚝뚝하고 고압적인 고귀한 피들의 모습을 부각하려 했던 취재진은 일단 취재 방향을 처음부터 뜯어고치는 수밖에 없었다.

개국 이래 최초의 아시아계 왕족의 방미, 그 첫 사건이 왕가의 큰 어른이라는 노인네가 그를 마중하러 나온 백성들에게 있는 대로 환호를 돌려주다가 체력이 고갈되어 최후에는 숙소에 들어가자마자 실신해버리는 결말이었다. 만일 다소 권위주의적이고 체면을 중시하는 나라였다면 이게 무슨 추태냐는 소리가 절로 나왔겠지만, 이곳은 야생마들의 땅 미국이었다.

미국의 시민들에게 체면이나 권위는 중요하지 않다. 되려 누구보다 서민에 가까운 인물일수록 높이 평가받고, 사랑받는다. 이런 사실은 당연히 미국의 황색 언론들도 알고 있었다.

"『눈물겨운 환영식! 마지막까지 서민의 외침에 응답하다! 만 나이 56세! 늙은 왕의 도전!』"

"『조국은 아직 그대들을 잊지 않았다!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환영인파들!』"

"『차마 이교의 나라에서는 밝힐 수 없었다! 한국의 황실에 흐르는 모태신앙의 실체란?』"

이날의 사건은 곧장 다음날 미국 일간지들의 일면을 장식했다. 어떤 일간지는 이하응의 열의에 경의를 표했고, 어떤 일간지는 환영인파의 반응에 집중하며 감성적으로 접근했다. 그러나 그들 모두는 이날의 행사를 역사의 한 장을 장식하기에 충분한, 대단히 인상적인 행사였다는 것만큼은 동의했다.

단지 이형이 가라고 하여 끌려왔을 뿐인 이하응은 졸지에 미국 내 황인종들의 인권 문제에 마음 깊이 안타까워하며 이를 해결하고자 몸소 미국으로 향한 애민정신으로 무장한 성인으로 포장되었다. 이하응의 부인인 민씨 부인과 이하응의 아들 이형 모두가 천주교도이니 이하응 또한 제 신앙을 숨기고 있었을 뿐인 기독교도가 아닐까 하고 추측하는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땀에 절어 괴성을 내지르는 늙은 원숭이 두목! 백인의 나라를 더럽히는 또 다른 침략자인가?』"

물론 그들 모두가 이에 호의적으로 접근한 것은 아니었다. 민주당과 남부에 호의적이거나 연고를 두고 있는 일간지일수록 이하응의 방미를 최대한 깎아내리려 들었고, 이로 인해 촉발될 위험이 많은 황인종들의 인권해방 운동에 적개적으로 반응하여 원색적인 인종론을 퍼부었다.

이제 남북전쟁이 종전된 지도 10년이 조금 넘긴 정세에서 유색인종의 인권해방을 더욱 확대할 계기가 조금이라도 발생한다면 그건 곧 민주당과 남부에는 파멸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조국이건, 그들 자신이건 말이다.

결국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건 어떻게든 깎아내리려 들건 간에, 이날의 소동은 그 자체로서 미국 국내 정세에 태풍을 예고하고 있던 셈이다.

***

그리고 이는 카네기에게도 그 즉시 읽혔다.

"이건 또 황상께서 예측하신 대로 되었군. 뭐, 그리 큰돈을 들이지 않고서도 세간의 이목을 끌어온 건 분명 좋은 일이지. 문제는···."

일이 이렇게 되어버리면 이하응이 빛날 곳은 쿨리들의 곁이지 순백인, 간헐적으로 흑인이 섞인 정도인 뉴욕을 위시한 동부가 아니라는 것. 이는 상당히 골치 아픈 일이었다. 적어도 그가 알기로 이하응은 권력욕의 화신이었고, 그런 인물이 혹 자신의 후원자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미 동부에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으니 말이다.

문제가 있다면 그렇게 뉴욕에 도착하면 이하응의 태도가 단연 돌변할 것이라는 점이었다. 미국인들이 그토록 진저리를 내는 권위적이고 잘난체하는 인물로 말이다. 그건 기껏 벌어들인 점수를 한 번에 깎아내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카네기는 고민했다. 어떻게 이하응을 떨궈두고서 자신만 열차를 타고서 동부로 가거나, 아니면 하다못해 이하응이 환영인파 앞에서 보여준 태도를 유지할 방도를 말이다.

그러나 이는 기우였다.

"···지금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이 몸은 백성들의 곁에 남고자 하네. 어차피 개똥이 녀석이 이 늙은이에게 그런 중임을 맡겼을 리도 없는 것이고, 필히 그 역할을 맡은 건 자네가 아닌가. 그럼 자네만 간다고 해도 아무런 문제도 없겠지. 안 그런가?"

흡사 깨달음을 얻어 우화등선이라도 해버릴 것 같은 인자한 얼굴로, 이하응이 몸소 자신은 서부에 남겠다 선언해버린 것이다.

카네기는 그저 어안이 벙벙하여 눈만 껌뻑거렸을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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