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힘의 논리 >
한참을 우둑하니 서 있던 전봉준이 간신히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있었던 것은 단 한마디였다.
"자, 잘 만들어진 조각상··· 이구나."
진짜일 리가 없다. 아무리 문화가 다르고 나라가 다르며 대륙이 다르고, 상대는 순박한 백성은커녕 포악하디 포악한 오랑캐라지만, 노인네가 아닌가. 어떻게 생각해도 나라나 무고한 백성들의 위협이 되기 어려운, 주름이 자글자글한 노인네 말이다. 저런 노인까지 잡아다 죽여, 그것도 가죽을 벗겨 전시하는 게 어디 말이나 되는 일이던가.
하지만 전봉준은 동시에 눈치챘다. 이게 조각상이라면 도대체 무엇을 깎아 만들어졌는가. 동상이라면 무엇을 녹여 만들었는가. 무엇을 이용해야 저런 진짜 가죽과 같은 질감을 낼 수 있는가. 대답은 뻔하다. 가죽이다. 가죽을 이용해서만이 만들 수 있다. 사람의 가죽을 이용해서만이··· 만들 수 있다.
전봉준은 무심코 손을 뻗었다. 의식한 바는 아니었다. 진짜인가, 가짜인가. 그런 가벼운 호기심에 의한 가벼운 손짓이었다. 전봉준의 손끝은 노인의 손등에 닿았다. 이미 수차례 관람객들의 손을 탄 탓인지 그 손등은 매끄럽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그 감촉은 전봉준에게 그것이 가죽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하였다. 전봉준은 뒤늦게 자신이 무엇에 손을 댔는지 깨닫고 허겁지겁 손을 뗐다.
"아, 아니···! 아닙니다, 어르신. 이건 의도한 것이―."
변명을 늘어놓으려던 전봉준의 입은 다시 다물어졌다. 눈이 마주친 까닭이다. 초점이 없는 눈이었다. 진짜 사람의 눈이 아닌 흑요석이나 유리알 따위를 넣어 만든 듯한 눈이었다. 마주치는 순간 전봉준은 냉기가 꼬리뼈를 타고서 등골까지 올라오는 오싹함을 느꼈다. 눈앞의 것은 사람이되 사람이 아니었다. 사람이었으되 더 이상 사람이 아니었다.
그건 장신구였다. 전리품이라고 해도 좋았다. 누군가가 자신의 승리를 기념하며 만든 전리품이었다. 사람으로 만든 전리품 말이다. 전봉준은 얼이 빠졌다. 뭐라고 말이 나오지를 않았다. 무언가 말을 하고 싶은데, 그것이 무엇인지조차 스스로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오한이 서렸다.
귀신을 두려워해서가 아니었다. 전봉준의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공포의 상은 자신의 안식을 깨웠다며 잔뜩 화를 내는 노인의 고성이 아니었다. 이 눈앞의 전리품을 들고서 웃음을 터뜨리고 있었을, 얼굴도 모르는 어느 장군의 상이었다. 이미 죽은 지 오래인 귀신보다도, 아직 살아있을 사람이 더 무서웠다.
"···우웁!"
절로 허리가 굽혀졌다. 입에서 신물이 돌았다. 차마 박물관을 더럽히며 이국에서 시위군의 망신살을 뻗치게 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그 즉시 냉큼 삼켰으나, 일부는 새어 나오고 말았다. 전봉준은 허겁지겁 품 안에서 손수건을 꺼내어 입가를 닦았다. 건더기는 없이 온통 노란 신물뿐이었다. 미주 땅의 요리가 입에 맞지를 않아 점심을 거의 거르다시피 한 것이 다행이라고 전봉준은 뒤늦게 생각했다.
그 지독한 냄새에 간신히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아니, 어쩌면 마비되었다. 간신히 제 기능을 회복한 뇌리를 맴도는 생각은 단 하나뿐이었다.
‘도대체 어째서 이런 짓을···!’
그 생각만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도대체 왜? 도대체 어째서 이런 짓을 했는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것을 당당히 전시해 두었는가. 부끄러운 짓을 했다면 부끄러운 줄 알고서 하다못해 숨겨두었어야지, 이리도 자랑스럽게 이 마을을 오가는 모든 사람에게 구경하라는 듯이 뻔뻔스럽게 전시해 두는 건 도대체 무슨 정신머리인가.
공에 눈이 먼 장수들이 불필요한 살육을 일삼아 그 명예를 후세까지 더럽힌 경우야 흔하디흔하다. 고향이 북방에 가까울수록 야인들에게 시달리는 바도 많으며 야인들과 교접하는 바도 많다 보니 유독 포악하고 잔인무도한 사례들이 자주 발생한다는 이야기도 들어본 적 있다. 그리고 이곳 미 서부는 아직도 한창 개척이 진행 중인 곳이다. 그러니 있을 수 있다. 속세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잔혹한 이야기 따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있을 수 있는 것과 그것을 자랑하는 건 별개다. 부끄러워해야 마땅할 일을 하고서 부끄러워할 줄 모른다면 어찌 그게 사람이던가. 전봉준으로서는 이해가 가지를 않았다. 미리견은 대한보다 부유하지 않던가. 대한보다 강하지 않던가. 대한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지 않던가. 그런데 어찌하여 이런 부끄러워해야 할 일을 하고서 뻔뻔스럽게 자랑으로 삼고 있단 말인가.
"고작 해봐야 야만스러운 오랑캐가 아닌가! 서역의 막강한 총포가 있다면 이런 포악한 오랑캐들을 멸하는 것쯤이야 그리 대단한 수고도 아닐 터! 그런데 어찌―"
.
'이 미련한 것아. 네 어찌 강국의 강군이 되어 도적놈이 되기를 자처하느냐. 아이고···.'
그때였다. 전봉준의 뇌리로 잠시 잊고 있었던 한탄이 떠올랐다. 강국의 강군. 그렇다. 미리견은 강국이고, 미리견의 군은 분명 강군이었다. 강군일 터이다. 그리고 강국의 강군은 보잘것없는 오랑캐들을 단지 멸하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그들의 주검을 박제하여 오고 가는 사람들에게 구경하고 가라며 자랑하고 있다. 부끄러움을 잊고서, 힘에 도취하여, 힘없는 노인네 한 사람을 영원토록 구천에 맴돌게 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떠한가. 부끄러움을 잊은 채 단지 힘에 도취하지 않을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단언할 수 없다. 확신할 수 없다. 이건 이야기 속 요사스러운 요괴는 커녕 사람이 한 일이다. 한국은 사람이 아니던가? 미리견은 사람이 세운 나라가 아니던가. 한국에 무언가 해서는 안되는 이유가 있어 스스로 자제하지 않는 한 다를 이유는 없다. 그렇다. 가령 법처럼 말이다.
법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다. 자신에게 없는 것을 탐하는 건 인간의 본성이다. 법의 감시가, 처벌이 조금만 느슨해져도 이웃에게서 빼앗아 제 잇속을 채우려 하는 인간상이야 세상에 널리고 널렸다. 하물며 국가는 어떠한가. 국가는 법의 감시를 받지 않는다. 그렇기에 처벌받지 않는다. 그런 국가가, 힘없는 이웃에게서 아무것도 빼앗지 않기를 바라는가?
'장차 대한은 큰 죄를 짓게 될 것이다. 상이 앞설 것이며, 군이 뒤따를 것이고, 관이 뒤를 봐주겠지. 너까지 거기에 끼일 필요는 없다. 없었단 말이다.'
"도적놈. 아니, 도적무리. 아니―."
전봉준은 멍하니 중얼거렸다. 이제야 전창혁이 말한 것이 무슨 뜻인지 알 것만 같았다. 강한 나라가 강한 까닭. 강한 군대가 강한 까닭.
강한 나라가 강한 까닭은 그만큼 많은 것을 이웃에게서 빼앗아 왔기 때문이다. 강한 군대가 강한 까닭은 제가 빼앗기지 않기 위하여, 남이 가진 것을 빼앗기 위하여 무수한 이웃들과 싸워 이겨야만 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나라를 벌하는 법은 없다. 그리고 나라는 인간이 모여 만들어진 인간의 무리다. 그렇기에 나라의 행동원리는 인간 개인의 행동원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법이 없다면, 인간은 그저 제 욕구에 따라 행동할 뿐이다.
그러므로.
"도적의 시대로구나···."
전봉준은 제 머리를 부여잡았다. 무심코 다리에 힘이 빠져, 벽을 등지고 섰다. 두 다리가 힘없이 지면 위로 미끄러졌다.
두려웠다. 구역질이 치밀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며 안심했다.
그의 조국이 이웃에 빼앗기는 약자가 아니라 이웃에게서 빼앗는 강자라는 사실에.
* * *
전봉준은 멍하니 밤거리를 걸었다. 이제 곧 폐장해야 한다면서 박물관에서 그를 내쫓은 까닭이다. 달리 말하자면, 그토록 오랜 시간을 넋이 나가 있었다는 이야기도 되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전봉준은 자신이 보았던 광경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아직도 그 인디언 노인의 초점 없는 눈동자가 눈에 아른거리는 듯했다. 환시임을 알아도, 쉽게 떨쳐낼 수 없었다.
조금 전에 그가 보고 겪었던 이 충격적인 경험이 병사 숙소로 돌아간다고 한들 도저히 잊힐 것 같지를 않았다. 그러니 전봉준은 정처 없이 낯선 거리를 방황했다. 어느새 날이 저물어 하늘에는 별 무리로 가득했다. 선 땅이 다르다고 한들, 어느 하늘 아래에서나 달과 별은 공평하게 떠올랐다.
"난세로다."
전봉준은 터덜터덜 걸으며 그저 나지막이 한마디 내뱉었다. 그의 황제가 기회가 날 때마다 강조한 말이었다. 이제야 전봉준은 황제의 높은 뜻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난세였다. 실로 난세였다. 법도, 부끄러움도 없이 힘 있는 자들만이 제 좋을 대로 날뛰는 도적의 시대였다. 힘의 시대였다. 5호 16국조차 중원의 난세일 뿐이었으나, 지금은 온 지구가 난세였다.
그럼 어찌해야 하는가? 생각은 언제나 그 부분에서 멈추었다. 어찌하면 좋을까? 실로 어찌하면 좋을까? 저 모든 패악을 언제까지고 못 본 체하며 살기에는 타고난 성정이 그걸 허락해주지를 않는다. 그러나 저 혼자 분노에 타오르며 날뛰어봤자 세상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사람을 모으고 목소리를 모으는 수밖에 없다. 이 세상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커다란 소리를 말이다.
하지만 목소리를 모은들 무슨 소용인가? 자신에게 없는 것을 탐하는 건 인간의 본성이다. 작금의 시대에는 단지 강자는 너무나 강해지고 약자는 너무나 약하여 그 본성이 날것 그대로 드러나고 있는 것뿐이다. 이를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인간의 본성을 바꾸어야 하는가? 강자들이 약해지기를 바라야 하나? 약자가 강해지기를 도와야 하는가?
"내 조국은 강국이다."
전봉준은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그조차 여의치 않은 까닭이다. 그간 의심해왔으나, 대한은 강국이다. 빼앗기는 대신 빼앗을 수 있으니 강국임이 틀림없었다. 그런 대한이 약해지기를 바랄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대한의 제후국들이 강해져서 대한에 반기를 들기를 바랄 수도 없다.
그럼 어찌하면 좋은가.
"황상께서는 이미 알고 계셨다."
전봉준은 문득 떠올렸다. 그의 황제는 작금의 시대가 난세임을 알고 있었다. 처음 용상에 오르는 그 순간부터 말이다. 그는 작금의 천하를 난세라 지칭하였으며, 그렇기에 전쟁을 준비하였다.
"황상께서는 이미 모든 걸 준비하고 계셨다."
전봉준은 또한 떠올렸다. 그의 황제가 전봉준에게 말해주었던 황제의 미래 구상을 떠올렸다. 그의 황제는 이 난세에 질서를 만들고자 하고 있었다. 제 나름대로 국가 간의 법도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범아시아 조약기구는 그 근간이었다.
비로소 전봉준은 깨달았다. 어째서 그런 거추장스러운 것이 필요한가. 난세에 법을 만들기 위함이다. 세상이 어지럽다면, 누군가가 법을 세우는 수밖에 없다. 그의 황제는 한국이 중심이 되어 아시아의 법도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안팎의 도적무리들을 단죄할 법을, 안팎의 도적무리들을 감시할 관아를.
"그러나 그걸로도 부족하다."
전봉준은 눈을 질끈 감았다.
결국 그 법도는 아시아 바깥에는 미치지 않는다. 중심이 되어야 할 한국의 힘이 아직 부족한 까닭이다. 설령 황제의 구상대로 한국이 아주의 관아를 자청하며 법도를 바로 세운다고 한들 아주 바깥은 여전히 도적의 시대일 것이며 도적무리들이 즐비한 난세가 계속될 것이다.
끔찍한 일이다. 실로 끔찍한 일이다. 이 난세에 도대체 얼마나 많은 죄 없는 백성들이 고통을 받게 될까. 얼마나 많은 목숨이 죽어야 간신히 그 난세가 진정될까. 한국의 힘으로는 이 난세를 진정시킬 수 없다. 고작 해봐야 도적들이 아시아를 노리지 않도록 지키는 것이 고작이다.
"만일···."
전봉준은 입술을 깨물었다. 한 가지 발상이 떠올랐다. 그 스스로가 생각해도 허황하고, 몽상에 가까운 발상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스스로가 확신했다. 작금의 난세를 끝내고자 한다면 이 수밖에는 없노라고.
필요한 것은 언제나 그렇듯이 힘이다. 힘 탓에 일어난 난세이니, 그 난세를 진정시키고자 한다면 더욱더 커다란 힘이 필요한 게 당연하다. 문제는 과연 그 거대한 힘을 어떻게 모으느냐는 점. 하나의 나라가 그토록 강한 것도 몽상일 것이며, 여러 나라가 하나의 이상을 위하여 한데 힘을 합친다는 것도 몽상일 것이다.
그러나.
"하나의 법도가 이 지구의 모든 나라를 아우를 수 있다면, 태평성대를 이룰 수 있을터인데···!"
그것만이 이 난세를 끝내는 유일한 길이다.
밤하늘의 샛별을 올려다보며, 전봉준은 각오를 다졌다.
* * *
한편 그 무렵 방미 사절단의 일정은 모든 것이 순탄대로였다.
"드디어 돌아간다! 나의 집, 나의 지갑, 한국으로! 으흐흐! 내가 또다시 미국 땅으로 돌아가면 사람이 아니다! 내가 진짜로 또 이 미국에 돌아오는 날이 있다면, 그건 내가 이 땅에 대한 황제 진리 교회를 세우려 하는 날일 거다!"
헤이스와의 만남을 끝마친 카네기는 그 길로 다시 대륙 횡단 철도에 올랐다. 길고 고되었으며 성가신 일들투성이였던 미국 순방이 마무리되어, 이제는 귀국해야 할 시기가 임박하고 있던 까닭이다. 제아무리 대선에 영향을 끼치려 의도한 방미라고 하나, 선거가 치르는 내내 선거 유세를 쭐레쭐레 따라다니며 직접 공화당을 지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가는 내정간섭이라며 되레 반감을 살지도 모른다고 고려한 것도 물론 있었다.
미 서부로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 카네기는 매일 같이 낄낄 웃으며 기분 좋게 고함을 질러댔다. 그만큼 그가 동부에서 순방을 다니는 내내 기자들과 정치인들의 영양가 없는 질문 공세에 고통을 받아온 까닭이었다. 동부를 떠나는 그 순간까지도 헤이스와 만나 따로 이야기 풀이를 해줘야 했으니 그야 물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하루라도 빨리 미국을 떠나 한국으로 돌아가고만 싶은 마음이 앞섰다. 이번에 한국으로 돌아가면 그의 사비를 들여서라도 한국인들을 위하여 뭔가 하나 해줘야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카네기에게 안식과 평화를 약속해주는 것만으로 그들은 그런 대가를 받을 자격이 충분했다.
"전하, 이제라도 뜻을 고치시고자 하신다면 지금이 마지막 기회입니다. 진정, 이 미주 땅에 남으시겠습니까? 분명히 말씀드리건대, 미주와 아주는 다릅니다. 말도 통하지 않고, 먹는 것도 다르고, 생각하는 바도 다르니, 남의 집에 얹혀사는 꼴입니다. 그래도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러자면 역시 이하응과 다시 만나게 되는 수밖에 없었다. 카네기는 마음에도 없는 마지막 만류를 건넸다. 혹여나 이하응이 못 보는 사이에 마음을 달리 먹어 이제 와 다른 소리를 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면서 말이다.
"남의 집에 얹혀사는 거야 이대로 동녕 땅에 돌아간다고 한들 매한가지지. 이제 와 내게 무슨 미련이 남아 아주 땅으로 돌아가겠는가? 그리고 이 미주 땅에는 이 늙은 몸을 아직도 필요 해주고 기꺼이 따르는 백성들이 있네. 내 천수도 그리 머지않았을 터이니, 남은 생애는 이 늙은 몸을 필요로 해주는 백성들을 위하여 쓰고서 떠나고 싶네."
"···알겠습니다. 기체후 안녕하시기를 천만 축수하겠습니다."
"허허, 색목인이 이리도 우리 조선 말을 깊이 배웠으니 이건 또 새롭구나. 그럼 나 또한 기체후 안녕하기를 천만 축수하리다. 조선 땅에 돌아가시거든 개똥이 놈에게 말 잘 해주시오."
그러나 카네기에게는 참으로 경사스럽게도 그런 일은 없었다. 카네기는 마지막으로 이하응에게 절을 올렸고, 이하응은 웃으며 카네기와 손을 마주 잡고 악수를 주고받았다.
"대한제국 만세!"
"""대한제국 만세! 흥선왕 전하 천천세!"""
그걸로 길었던 카네기의 여정은 끝이 났다. 샌프란시스코를 떠나는 카네기의 여객선을 이하응은 그를 따르는 현지 황인들과 함께 배웅했다. 이하응이 처음 미국을 방문하였을 때 그랬듯이, 있는 힘껏 만세를 외치면서 말이다. 어느새 미국의 황인들은 이하응을 그들의 왕이나 다를 바 없이 따르며 섬기고 있었다. 이번 방미에서 가장 의외의 성과였다.
미국의 황인들이 대한의 이름 아래 하나로 묶인 것이다.
"나는 미합중국 대통령의 직무를 성실하게 수행하고 최선을 다해 미합중국의 헌법을 보존하고 보호하며 지킬 것을 엄숙히 선서합니다."
"""미합중국 만세! 만만세!"""
그리고 얼마 뒤, 이번 방미 최대의 과실 또한 무르익었다.
선거 결과는 224-145로 공화당의 압승.
미국 제19대 대통령 러더퍼드 B. 헤이스의 당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