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사의 나라 >
종합적으로 말하여 이 무렵 대한제국은 국운이 활짝 펴는 풍운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었다. 조선 8도는 그 아름다운 시절을 맞이하였으니 의심할 여지가 없었으며, 만주는 개척기의 혼란상을 겪고 있었으되 그 혼란상이야말로 급격한 성장과 사회의 변화를 방증하고 있었다. 그동안의 단지 연이은 승전으로 급작스럽게 주체할 수 없는 힘을 손에 넣게 된 약소국에서, 진정한 의미의 열강으로 조금씩 변모하고 있던 것이다.
이는 단지 대한제국이 극동의 열강으로 떠올랐다, 하는 문제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정해진 부의 총량은 정해져 있는데 그간 빈곤하였던 이가 어마어마한 부를 얻게 되었다는 것은 다른 이는 그만큼 어마어마한 부를 잃게 되었다는 것. 다시 말하여 이 무렵 한국의 급성장은 필연적으로 주변국들이 그만큼 부를 잃게 된 덕분이었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 부 대부분이 중원에서 흘러나왔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달리 말하면, 중원만일 턱도 없었다.
"나가토에서 또다시 잇키가 일어났다고 하였는가."
"···면목이 없나이다, 전하."
요시노부는 진저리가 난다는 듯 투덜거렸다. 그에 마츠다이라 가타모리는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고서 이마를 다다미에 박을 듯 있는 힘껏 허리를 굽혔다. 요 몇 달간 연이어 크고 작은 잇키가 이어지고 있었으니, 그야 국가헌병대의 총재로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도 할 말은 많았다.
그가 스스로 생각하기에, 요즈음 잇키가 연이어 일어나고 있는 건 그의 무능 때문이 아니라 현 일본의 정세 그 자체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전하, 재고하여 주십시오. 우리 일본국도 어서 대한을 흉내 내 자작농에게 적절한 대가를 지불하여 자작농을 육성하여야만 합니다. 지금처럼 계속하여 쌀값이 추락하는 정황이 계속되다 보면···."
"그만."
부채를 접으며, 요시노부는 가타모리의 말을 끊었다. 그에 가타모리는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얼마 간을 다다미를 빤히 노려다 보고 있었을까. 요시노부는 깊이 한숨을 내쉬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 분명 원인은 근래 조선과 지나에서 건너오는 쌀이겠지. 어찌 모르겠나. 나의 영민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인 것을. 그러나 그건 불가하네."
"경청하겠나이다. 부디 이 어리석은 놈에게 전하의 고명하신 뜻을 전하여주소서."
"보면 모르겠는가. 지금 과인에게 영민들을 위하여 베풀 재화 따위는 없네. 축재에 맛을 들여서가 아니라, 정말로 없는 걸 어쩌겠나."
요시노부는 담담하게, 그러나 어딘가 쓸쓸하게 말했다. 예상치 못한 대답에 가타모리는 순간 멍해졌다. 혹 그의 주군이 그를 속이고자 엉뚱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아닐까 의심스러웠다. 하지만 가타모리에게는 유감스럽게도 이는 현실이었다. 글자 그대로, 이 무렵 일본은 한국과 같은 자영농 육성정책을 펼 여유가 되지를 않았다.
이는 국채의 문제가 아니었다. 국체의 문제였다. 단순하게 이야기하자면, 사람이 너무 많았다. 한국 또한 쌀값이 현저하게 낮은 강남에서 쌀을 사와 한국에서 내다 팔면서 얻게 되는 차익으로 유지하고 있는 자영농 육성정책을 여전히 약 1.2배 가까이 되는 인구를 보유한 일본이 따라 하기에는 우선 비용이 너무 들었다.
거기에 한국은 요즈음 동아시아의 중계무역을 독점하고 있다. 쌀값이 오르고 내리는 걸 가장 빠르게 접할 수 있을뿐더러, 강남에서 쌀을 사와 한국에 내다 팔건 일본에 내다 팔건 자유자재다. 그에 반하여 일본이 쌀을 사고팔고자 한다면 무조건 한국을 통해야만 한다. 입지상 일본이 미국에 더 가깝다고 해봐야 미국에서 쌀을 수입해올 수 있는 것도 아닌 한, 쌀 무역의 차익으로 자영농들을 육성한다는 정책 자체가 논외였던 셈이다.
"···그것이 진정 사실, 입니까?"
"이제 와서 과인이 어찌하여 자네를 속이려 하겠나. 영민들이 굶주려 잇키를 일으킬수록 과인의 권위 또한 실추되는 걸 모르지도 않을 터. 과인이 그저 제 영민들을 괴롭히고 싶어서 그대의 도움을 받고 있겠는가."
요시노부는 한숨을 내쉬며 부채로 이마를 톡톡 두드렸다. 보일 리가 없는데도 저 창 너머로 도쿄만을 오가는 크고 작은 기선들이 눈에 훤히 보이는 듯했다. 참으로 애증의 대상이 아닐 수가 없었다. 저 무역선들이야말로 지금의 일본 경제를 병들게 한 가장 큰 해악이면서, 또 동시에 지금의 일본 경제를 지탱하는 가장 큰 대들보였다.
한국이 러시아와 싸워 이겨 서역과의 불평등조약을 청산했다고 한들, 일본 또한 그런 건 아니었다. 여전히 서역의 무역상들은 일본의 고혈을 빨아먹고 있었고, 이제 와서는 조금씩 그러나 빠르게 덩치가 불어가는 한국까지 달려들고 있는 판국이었다. 쌀 무역은 그 단편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이미 한국에서 들어오는 쌀을 어떻게 해달라며 에도의 미곡상인들이 매일 같이 그들의 연줄을 통해 장군의 마음을 움직이고자 아우성이었다.
문제는 이 미곡상인들도 둘로 나뉘었다는 것이다. 국내의 쌀을 유통하던 미곡상인들은 큰 손해를 봤으되, 일찌감치 쌀 무역에 손을 댄 미곡상인들은 벼락부자가 되었다. 그리고 그들이야말로 현 신정부의 가장 큰 지지세력이었다. 이 기회를 거머쥔 부류는 오늘날 정부의 지원을 받으며 장사를 접어야 하는 처지에 몰린 미곡상인들을 하나둘 집어삼키며 거대 자본가로 성장해가고 있었다.
"그렇다면 하다못해 한국으로부터의 쌀 수입을 조금이라도 줄이거나 관세를 부과하여 가격을 높인다면-."
"우책이로구나, 가타모리. 이미 호랑이 등에 올라탄 격이다. 이제 와 한국과의 무역을 끊는다면 앞으로는 어찌한단 말이더냐."
요시노부는 담담히 말했다. 그 또한 사실이었다. 한국과의 무역을 통해 이득을 보는 건 미곡상인들만이 아니었다. 일본은 한국보다 개항이 일렀던 만큼 이미 국내에 소개된 서역의 문물을 생산하기 위한 공장들이 상당 부분 마련되어 있었다. 그 공장시설 대부분은 내전을 위하여 준비된 것이었다는 점은 차치하고서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공장시설이 유럽이나 미국에 수출하여 수익을 따낼 수 있을 만큼 대단한 것이었는가 하면 또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다. 애초에 수공업 공장이 대부분인 처지에 기계를 이용해 있는 대로 마구 찍어내는 유럽이나 미국 앞에서는 질적으로건 양적으로건 완패다. 그럼 국내에서 소비하거나 아시아에라도 내다 팔 수밖에 없는데, 아시아에서 그걸 사주는 곳이 다름 아닌 한국이다.
그러니 선택지가 없다. 오늘날 일본의 공장들이 무사히 돌아가고 있는 건 한국과의 무역 덕분이다. 그 탓에 일본의 농민들이 고통받는다고 하여도, 당장 산업화와 민생 중 어느 쪽이 중한가 묻는다면 전자다. 잇키는 힘으로 누를 수 있어도, 산업화가 미비하면 후일 외세에 의하여 일본 그 자체가 사라지는 수가 있다. 쓸쓸한 이야기지만, 지금의 일본에 민생을 배려하며 산업화를 밀어붙일 여력은 없다.
"힘으로 찍어 누르는 수밖에 없네. 유감스럽게도. 잇키를 일으키는 대로 주동자를 베어 본보기를 보이게나. 고작 해봐야 농기구 정도나 챙겨두고 있을 테니 대단한 수고도 들일 필요 없겠지."
"그것이, 지역 헌병들이 말하기를 일부 역도들이 도검을 소지하고 있었다 합니다."
"···지금 뭐라고 했나?"
"역도들이 도검을 소지하고 있었나이다. 또 일부는 화승총을 들고서 숲에 숨어 저항하는 통에 지역 헌병 두 사람이 크게 다쳤노라고···."
말없이, 요시노부는 부채로 다다미를 있는 힘껏 내리쳤다. 잠시 품었던 감상이 한순간에 날아가는 듯했다. 고작 해봐야 농민 잇키라고 생각했지만, 본격적인 무기가 나왔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도검도, 화승총도. 일개 농민 나부랭이가 호신용으로 지니고 있을 만한 무기가 아니다. 설령 농민이 아니라 사냥꾼이 끼어들었다 한들 하다못해 아직도 가끔 늑대나 곰이 나오는 도호쿠라면 모를까, 주고쿠에 일개 사냥꾼 나부랭이가 도검과 화승총을 지니다니 어불성설이다.
그렇다면? 결론은 간단하다. 요시노부는 이를 갈며 나지막이 한마디 내뱉었다.
"또 그놈의 기병대(奇兵隊)··· 조슈 모리 잔당 놈들인가."
"아직 역도들을 고신하는 중이라 배후가 밝혀진 것은 아니나, 그 잔당과 어떤 식으로건 엮여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고 합니다."
"쯧, 역시 그때 송두리째 불태워 없애야 했어. 지나인들과 붙여두면 지나 놈들과 다투느라 두 번 다시 일어나지 못할 거라 여겼더니, 과인이 그 존황양이 폭도 놈들을 너무 과소평가한 모양이로군."
"송구하옵니다."
가타모리는 재차 꾸벅 허리를 굽혔다. 그런 가타모리를 빤히 내려다보다가, 요시노부는 진저리가 난다는 듯 물었다.
"이토 놈인가, 야마가타 놈인가. 개 중 어느 쪽이라 보이더냐."
"야마가타로 사료 되옵니다. 이토의 살수들은 암계에 능하니, 만일 이토가 관여하였다면 잇키를 선동하기보다 에도의 고관대작을 한 사람이라도 더 죽이려 하였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야마가타 놈인가. 끈질긴 놈 같으니라고. 내 그 군재를 높이 평가하여 중히 써주겠다 몇 번을 구슬렸는데도 끝까지 과인에게 대적하다니."
요시노부는 부채로 이마를 톡톡 두드렸다. 지난 무진 전쟁에서 조슈 모리의 사병을 이끌고서 옥쇄를 외치던 장군이 인제 와서는 영지도 뚜렷한 거점도 없이 낭인 신세가 된 것이 처량하다는 생각도 들었으나, 불필요한 감상이었다. 몇 번을 구슬려도 끝까지 거절한 건 야마가타 본인의 의지였고, 순순히 귀순하는 대신 싸우기를 결의했다면 다시 한번 짓뭉개는 수밖에 없다.
아마 전쟁의 양상이 되기는 어려우리라. 이미 지난 내전에서 한차례 꺾인 조슈에게 또다시 대대적으로 봉기할 여력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고작 해봐야 토벌전, 그 보다 낮춰 잡는다면 도적 사냥.
요시노부는 물었다.
"숫자는?"
"100기가 채 되지 않는 듯하다고 합니다. 그중 무사는 소수로, 대다수는 잇키에 말려든 농민 무리라 하옵니다."
"군이라 생각하면 그리 대수로울 건 없군. 그러나 도적무리라고 생각한다면 끔찍할 정도로 많아."
요시노부는 눈살을 찌푸렸다. 단순한 도적 사냥이 되기는 어려운 모양이었다. 지역 헌병선에서 대처하기는 어렵겠으나, 그렇다고 군을 움직였다가는 괜한 동조자를 끌어모을 우려가 있다.
잠시 고민하던 요시노부는 한숨을 내쉬고서 말했다.
"···우선 현지 사족들에게 협력을 구하라."
"하오나, 조슈는―."
"알고 있다. 역도의 소굴이지. 하나 모리는 멸족시켰고, 이번 일은 모리 재흥을 위한 복수전 따위가 아니라 천박한 잇키다. 놈들에게도 그리 달가운 일은 아닐 터."
이이제이. 지금으로서는 그것이 최선이었다. 혹여나 이제 와 조슈의 사족들이 잇키에 붙을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들었으나, 떨쳐냈다.
"···머지않아 한국까지 소문이 흘러 들어갈지도 모른다. 개입 당할 여지는 최소한으로 줄여야겠지. 손속의 자비를 두지 말고서 단숨에 잘라내도록."
"여부가 있겠나이까."
가타모리는 꾸벅 절을 올린 다음 자리에서 물러났다. 홀로 남은 요시노부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참 근래 뜻대로 되는 게 없군."
요시노부는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
***
이튿날, 요시노부는 예고도 없이 대뜸 요코하마를 시찰하였다.
"참으로 장관이로군. 호가호위도 나쁘지 않구나."
이유는 당연히 이 무렵 일본이 제힘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게 불어난 해군을 시찰하기 위함이었다. 물론 그 대부분은 영국에서 한 세대 전 군함들을 대거 싼 값에 팔아치운 것이라고 하나, 그렇다고 하여도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있는 가운데 현 일본에서 그나마 자랑거리가 있다고 한다면 이 해군뿐이었다.
요시노부는 비로소 흡족하게 웃었다. 어젯밤 어지러웠던 마음이 비로소 평안해지는 듯하였다. 호가호위요, 온전히 일본의 것이라고 하기도 어려운 빌린 힘이었으되 그 빌린 힘이라도 요코호마에 정박 중인 무수한 기선들을 보고 있자면 괜히 뿌듯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금이야 어쩌면 무리라도, 언젠가는 이 빌린 힘으로나마 불평등한 대우를 청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 생각하니, 울적한 마음이 훌쩍 갰다.
"찾으셨다고 하여 대령하였나이다, 전하."
"그래. 간만이로구나, 다케아키. 훈련은 어찌 되어가고 있더냐."
"그야 물론입니다. 비록 아직 미숙한 부분이 많다고 하나 저들 또한 무가의 자식일진대 이런 훈련 하나 견디지 못하고서 어찌 무사라 자칭할 수 있겠습니까?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그리 말하며 에노모토 다케아키 해군 총재는 호탕하게 웃었다. 다만 요시노부는 따라 웃지 못했다. 그랬다. 병사들 또한 무가의 자식. 반대로 말하여, 이 무렵 일본은 국민개병제를 실시하고 있지 않았다. 하물며 폐도령은 어림도 없다. 막부가 중심이 되어 세운 신정부인 이상, 지배계급 사무라이의 근간을 뒤흔들지도 모르는 정책들을 밀어붙일 수는 없던 것이다.
전쟁은 당연히 무사의 전유물이었고, 도검은 무사의 상징이었다. 차라리 상투를 자르고 양장을 차려입을지언정, 이 무렵 일본의 무사들은 여전히 허리춤에 도검을 찬 채로 거리를 활보했다. 당연한 이야기로 사민평등 따위 멀디먼 이야기였다. 사람 위에 사람이 있는 건 당연했고, 무사가 영민을 다스리는 것도 당연했다.
그나마 노예해방이라는 세계적 추세에 발맞추어 부라쿠민이 평민 계급에 편입되었으나 단지 그것뿐. 사람 위에 사람이 있는 건 여전히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여졌다. 모든 것을 송두리째 바꾸는 것을 택한 조선과 고유의 것을 남긴 채로 바뀌는 것을 택한 일본의 차이였다.
'해군이야 무가와 상가로 충분하겠으나, 육군은··· 어렵겠어. 머지않아 해군이 곧 우리 일본군이 되는 날이 오게 되겠군.'
"카이요마루가 꽤 초라해졌군. 저 작은 배 한 척에 기뻐하던 것이 불과 얼마 전이라니, 도저히 믿기지를 않네."
복잡한 속내를 숨긴 채, 요시노부는 요코하마에 정박 중인 포함 카이요마루를 흘끗 쳐다보며 마냥 마음이 들뜬 체했다. 지난 유럽에서 벌어진 전쟁에서 양 세력이 동원한 천문학적인 대군을 떠올리면, 전쟁을 단지 무가의 손에 맡기는 건 시대에 뒤처진 일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자니 갈등이 생겼다. 이제라도 국민개병제를 포고하는 게 나을까?
하지만 이내 요시노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안 될 이야기였다. 결국 일본은 사무라이의 나라였고, 그 또한 사무라이였다. 그런 사무라이들에게서 전쟁을 빼앗는다면 그간 영지가 통폐합되는 와중에도 침묵했던 이들까지 들고일어날지도 모른다. 그럼 더 이상 걷잡을 수 없다.
육군은 해군이 육지를 향해 쏘아내는 포탄. 오늘날 세상을 호령하는 대영제국의 군사 철학이었다. 결국 그 뒤를 쫓는 수밖에 없노라고, 요시노부는 나지막이 탄식했다.
"예, 물론입니다. 기대해주십시오, 주군. 요즈음 영길리가 어지간히도 궁한 모양인지, 이번에 또 한차례 새로이 철갑함을 매입하지 않겠느냐고 제의를 해왔습니다. 앞으로 10년 안에 우리 일본국의 해군은 아주를 넘어 태평양 최강의 해군이 될 것입니다!"
그런 요시노부의 마음을 조금도 짐작하지 못한 채로, 다케아키는 희희낙락하며 소리쳤다. 그로서는 마냥 기쁠 수밖에 없었다. 육군이 상대적으로 소외되면서 해군청 총재인 그가 사실상의 일본군 전체의 수장이나 다름없는 권세를 누리게 되었던 것도 있지만, 날로 일본이 강해져 가는 것이 서류상으로건 피부 상으로건 느껴지고 있다 보니 기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케아키는 생각했다.
'그래, 장차 우리 일본국이 태평양 제일의 해군 대국이 될 것이다! 비록 영길리나 불란서를 넘어설 수는 없겠으나, 어디 그들의 주력함대가 태평양까지 오는 날이 그리 흔하겠는가? 한국은 해군에 무관심하고 미리견은 하와이조차 넘지 못하고 있으니, 장차 우리 일본 해군이야말로 태평양 제일이 될 것이다!'
그 꿈이 깨지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튿날 아침, 조간신문에 프랑스와 미국이 콜롬비아 정부에게서 공동으로 파나마 운하 수주권을 따냈다는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실린 까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