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자 이원철 >
"쪼, 쪽바리···."
이형의 말에 김홍집은 귀를 의심하고 싶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황제의 입에서 나올 말이 아니었다. 아무리 좋게 표현해주려고 해도 옥음이라고는 차마 표현하기 어렵다. 아마 사관들도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교시 정도로 대충 뭉개버릴 게 분명하다.
그러나 얼떨떨해하는 김홍집과 달리 이형은 전혀 꺼리는 기색이 아니었다. 그간 하던 대로 살아오고 있는 것뿐이니 그야 그렇다. 이형은 슬쩍 김홍집을 돌아보며 물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는가?"
"아, 아니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오나 폐하, 왜국의 군대가 북녘으로 향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우리 조선 땅을 지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백성들이 불안해하지는 않을는지···."
"그야 불안해하겠지."
그리 말하며 이형은 청주를 한 잔 더 들이켰다. 벌써 김홍집이 본 것만으로 도자기 한 병이 너끈하게 비워졌다. 그만하면 이제 충분하다 싶어 제지하려 치면, 이미 다음 잔을 채우고 있었다. 김홍집이 뭐라 진언을 올려야 할지 말을 고르는 틈을 타, 이형은 말했다.
"그렇지만 언젠가는 겪어야 할 일이다. 어차피 우리 대한에서 충원한 병사들만으로 천하 만방을 지킬 수도 없으니 장차 두고두고 연합군에 의지하게 될 텐데, 그럴 때마다 호들갑이면 성가셔. 슬슬 유림을 넘어서 우리 백성들도 우리 주변의 제후국들이 우리의 우방인 줄 알아야 할 때도 되었지."
아니면 조금 깔보는 시선이 생긴다고 해도 나쁠 건 없고.
그리 덧붙이며 이형은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그러자 곧 곁에 있던 궁녀가 도자기 잔과 병을 탁자 위에서 치웠다. 김홍집의 시선을 의식한 것이다. 그간 안하무인으로 살아왔던 것에 비하면, 조금씩 다른 사람의 시선을 눈치채는데 익숙해져 가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에 비로소 김홍집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김홍집은 흘긋하고 이형의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황상께서 품으신 큰 뜻을 비로소 알겠나이다. 하오나 폐하, 아국에서 제후들에게서 병사를 모아왔음에도 노국이 병사를 일으키지 않는다면 괜한 일에 병사를 부렸다고 우리 대한의 체면이 깎이지는 않을는지요?"
"상관없다. 우리가 눈치를 봐야 할 구석이 어디 저 제후 놈들이더냐? 지금 우리가 보여야 할 건 우리 대한이 양이들이라도 함부로 얕볼 수 없다는 걸 재차 과시하는 것이다. 양이들도 눈이 있고 귀가 있다면 10만 즈음 되는 대군이 움직이는 걸 눈치챌 테고, 우리가 싸울 의지로 충만하다는 것 정도만 저놈들이 알아도 당분간 함부로 덤벼들지는 않을 게다."
그보다도, 하고 덧붙이고서 이형은 잠시 말을 끊었다.
그리고 오른팔로 턱을 슬쩍 괴며 다시 입을 열었다.
"태자는 좀 어떠한가? 아첨할 필요도 없으니 편하게 대답해주게. 경이 보기에, 태자에게 왕이 될 재주가 있어 보이던가?"
흡, 하고. 순간적으로 김홍집은 숨을 삼켰다. 이건 또 이것대로 폭탄이다. 조만간 닥쳐올 러시아와의 전쟁이 어떻고 저쩌고야 향후 총리가 되기 전에 이런 일들을 다루게 될 테니 미리미리 배워둬라-정도의 이야기지만, 태자의 교육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느냐 하는 건 지금 네가 일을 잘하고 있는지를 파악해 보겠다는 거다.
안 그래도 젊은 나이에, 그것도 도적의 나라 영국에서 유학 생활을 하다 온 김홍집이 태자를 교육하고 있다는 것에 유림이 왈가왈부를 늘어놓고 있어 사실상 황제의 총애에 의존하고 있는 처지인 김홍집에게는 이 대답 하나에 제 목이 날아가느냐 붙어있느냐가 달린 격이다. 김홍집은 필사적으로 눈알을 데굴데굴 굴렸다.
어떻게 대답하면 좋을까.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김홍집은 혼란에 빠진 채로 태자와의 첫 만남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
"오늘은 봉준이랑 축구 하자고 했었는데···."
처음 만나던 날, 태자 이원철이 늘어놓았던 불평이었다. 아직 나이가 어려 군호도 받지 못한 어린아이다운 순수한 모습이었다. 말을 떼는 것이 다소 늦어 우려를 샀던 일도 이 무렵에 와서는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어, 사용하는 어휘나 어투도 그 나이대의 또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문제가 있다면 그 어휘나 어투가 정말로 이 무렵 한양의 또래와 다를 바 없다는 점. 한마디로 국본으로서의 격식을 갖춘 어휘에 약하다는 점이었다. 이 부분은 아마 그런 격식에 연연하지 않는 황제의 영향이 클 터였다. 이따금 만나는 황제라는 인물부터가 그리 격식을 갖춘 어휘에 능통하지 못한데 그걸 보고 자랄 태자에게 격식을 갖추라는 것도 다소 무리한 요구라 할 수 있으리라.
'아무리 보아도 글공부를 좋아할 것 같지는 않구나.'
짧게 인사를 주고받는 동안 이를 대강 눈치챈 김홍집은 등골을 타고서 식은땀이 줄줄 흐르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물론 태자가 이렇게 자라난 가장 큰 원인은 황제일 거다. 이제 갓 만으로 다섯도 안된 사내아이에게 있어서 가장 쉽게 동경의 대상이 되는 건 제 아버지인 법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들 황제를 탓할 수가 있겠는가. 이대로 태자가 자라나 성인이 되어서도 글공부를 멀리하는 성정으로 자라난다면 당연히 문책의 대상이 되는 건 김홍집이다.
그리고 이 김홍집은 기본적으로 의지할 구석이 적은 처지다. 당장 박규수가 그의 성정에 맞지 않게 황제에게 따로 청탁을 넣으면서까지 제자의 안정적인 기반을 마련하고자 했다는 게 이 부분을 보여준다. 젊고, 영국 유학생 출신이며, 대단한 실적이 있는 것도 아닌 데다가 스승인 박규수는 정치의 중핵으로 떠오른 지가 얼마 되지 않아 조정 내의 인맥이 옅다. 한마디로 황제의 총애를 제하면 애초에 무난한 출세와는 연이 없어야 정상인 것이다.
요컨대 조금의 흠집이라도 나면 탄핵당할 처지였다는 것이다. 자연히 첫날부터 김홍집의 목에는 힘이 절로 뻣뻣하게 들어갔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태자를 글공부와 가깝게 만들지 못하면 끝장이다. 그런 위기감이 김홍집을 사로잡았다.
"태자 전하께서는 혹 마음에 두시는 학문이 있으십니까?"
고민하던 김홍집이 가장 먼저 시작한 건 우선 태자의 관심을 유도해보는 것이었다. 엄하고 굳센 스승을 연기할까도 생각해봤으나, 상대는 그 황제의 아들이다. 호랑이는 호랑이밖에 낳지 않는다는 말이 있듯이, 어지간한 기백으로 밀어붙이려고 했다가는 되레 압도당할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에 우선 좋게좋게 관심을 끌어보려 했던 것이다.
태자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헤벌쭉 웃으며 답했다.
"군밤 장사!"
"구, 군밤. 말씀이십니까···?"
"응. 군밤은 맛있으니까. 나도 한번 군밤 팔아보고 싶어!"
대답은 상정 외였다. 김홍집은 순간 할 말을 잃고서 한참을 입을 다물어야 했다. 어린아이의 순진무구한 동심, 이라고 웃어 넘어가기에도 좀 충격이 컸다. 처음부터 천자문이나 명심보감 같은 대답이 나올 거라는 기대는 안 했다. 신식학문 같은 것이 튀어나온다면 어쭙잖게 귀동냥은 많다고 웃어넘겼을 것이다. 병법 같은 대답이 나온다면 오히려 예상 범주 내다.
그런데 군밤 장사는 뭔가. 태자이기 이전에 종친이 꾸리기에도 볼품없는 장사인 건 둘째치고서, 일단 학문이 아니다. 그걸 배우고 싶다면 하다못해 거리에 나가서 군밤 장수를 찾아가야지, 하늘과도 같은 스승에게 농담으로라도 가르쳐달라고 해도 될 잡학조차 아니다.
"몰라?"
그런 김홍집에게 태자는 기대에 가득 찬 순진무구한 시선을 향했다. 김홍집의 혼란이 한층 더 심화하는 순간이었다. 이때는 어떻게 대답하면 좋은가. 이제라도 스승으로서 위엄을 바로 세워야 할까. 그도 아니면 우선 적당히 기분을 맞춰주는 게 옳을까. 고민하던 김홍집이 대답하기도 전에 태자는 결론을 내렸다.
"으음, 그럴 수도 있지! 어른이라도 잘 모르는 건 있는 거야! 너무 아파하면 안 돼?"
"하, 하하하··· 예."
무엇을 아파하지 말라는 거냐, 하는 질문은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마음 아파하지 말라는 말일 게 뻔했으니까. 김홍집은 그제야 너덜너덜해진 정신을 애써 추스르고서 본격적인 교육에 나설 수 있었다.
"우선 오늘은 언문을 배워보도록 합시다."
"어, 한문이 아니라?"
"물론 한문 또한 배워야겠지요. 하지만 전하께서는 장차 대한의 황제가 되실 분이십니다. 교양을 쌓기 위해서는 한문 또한 반드시 익혀야겠으나, 그에 앞서 우리 민족의 말을 익히셔야 합니다."
의외였던 것은 태자가 놀기 좋아하고 활동적인 성정과는 별개로 김홍집의 가르침에 고분고분히 따라왔다는 것이었다. 물론 시시때때로 놀고 싶다고 떼를 쓰거나 딴청을 부리거나 하는 경우도 분명히 있었으나, 적어도 꾸중을 들으면 고치려는 시늉은 했다가 공부에 흥미가 있기는커녕 의무감에 붓을 잡고 있는 게 옆에서 봐도 훤히 보였고, 붓과 먹을 가지고서도 장난을 치려는 걸 몇 차례고 옆에서 말려야 했으나 그래도 한번 배운 건 확실히 기억했다.
자연히 태자를 향한 김홍집의 평가도 변했다. 조금 엉뚱한 기색이 있고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체통이나 격식과는 거리가 멀지만, 최소한 천재는 못 되어도 향후 어떻게 가르치냐에 따라 수재로 자라날 재능은 충분했다. 애초에 배우는 게 좋아서 배우고 공부하는 게 즐거워서 공부하는 사람이 조선 천지에 몇이나 되던가. 모두가 처음부터 훌륭한 학생이 될 수는 없는 법이고, 이 나이에 꾸중을 들으면 착실하게 알아듣는 성실함을 갖춘 것만으로 재능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태자는 불현듯 생각났다는 듯이 물었다.
"그러고 보니 스승님, 질문이 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선에서라면 얼마든지 대답해드리겠습니다. 말씀하시길."
"내가 언문을 배워야 하는 이유가 우리 민족의 말을 먼저 익혀야 하니까, 라고 했잖아."
"예, 전하. 언문은 우리 조선의 세종대왕께서 창제하신 우리 한민족의 고유어로서―."
"아니, 그런 게 아니라요."
태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김홍집의 말을 끊고서 말이다. 다른 사람의 말을 도중에 끊는 건 예법이 아니라고 꾸중을 주려는 찰나, 태자는 물었다.
"어마마마께서는 만주말을 쓰는데, 왜 난 만주말 할 줄 몰라요?"
김홍집은 순간 말문이 막히는 듯했다. 뒤늦게 태자의 혈통을 떠올린 것이다. 혼혈. 반은 조선의 피를 이었으되, 또 나머지 반은 만주의 피를 이었다. 그것도, 그간 조선에서 알게 모르게 멸시해왔던 누르하치의, 아이신기오로의 피를 말이다. 모계라고 하나 아이신기오로의 피를 이은 만주의 칸이, 후일 자라나 만주말을 한마디도 할 줄 모른다면 그건 그것대로 우스운 꼴이다.
처음부터, 태자에게 한민족 고유의 것이라며 조선의 문화만을 가르치던 것부터가 문제였던 셈이다. 이는 김홍집에게 있어서 난처한 일이었다. 애당초 황태자의 혈통을 그리 의식한 적도 없었을뿐더러, 그 스스로도 만주인들을 같은 민족이라 여겨본 적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무엇보다도 가장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만주말은 할 줄 모르는데···.'
김홍집은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영국 유학을 다녀오면서 영어 정도야 익혔고 사교계를 들락거리며 프랑스어도 드문드문 익혔지만, 김홍집의 평생을 통틀어도 만주말을 배울 기회가 어디 있겠는가. 당장 황후조차 궁 내에서는 가능한 한 만주말을 쓰지 않고서 조선말을 쓰고 있는 와중에 말이다.
결국 그날 태자의 앞에서 꼴사납게 얼버무려야 했던 김홍집은 우선 황후에게 찾아가 물었다.
"그, 저기. 외람되오만··· 전하께 만주말을 가르쳐도 괜찮겠습니까?"
만주인인 황후에게 묻는 것도 웃기는 꼴이었으나, 현실이 그러했다. 이 무렵 조금씩 형성되어가고 있던 한민족이라는 민족의식은 조선을 중심으로 형성되어가고 있었다. 가급적이면 일상생활 속에서도 조선말이 권장되었고, 한양의 조정에서도 다들 조선말을 썼지 만주말을 쓰는 경우는 없었다. 의식하고 있건 의식하지 않고 있건 간에, 이 무렵 한국에서는 조금씩 만주말의 사용을 줄이거나 중장기적으로 없애려 하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셈이다. 만주인과 조선인을 하나의 민족의식으로 묶어두기 위하여 말이다.
그리고 김홍집은 이 중 의식하고 있던 축에 속했다. 즉, 요컨대 중장기적으로 어떤 식으로건 만주말을 사멸시키는 게 향후 한국의 민족적 통일성을 위하여 옳다고 생각하고 있던 것이다. 그런데도 황후를 일부러 찾아가 만주말을 가르쳐도 될지 허락을 구했던 건, 민족의식 운운과는 별개로 만주인들 또한 대한의 백성인 만큼 장차 황제가 될 태자가 만주말을 배워두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황후는 그런 김홍집을 잠시 놀랜 듯이 쳐다보다가, 환히 웃으며 답했다.
"그야 물론이지요. 물론, 그 전에 황상께도 허락을 맡아야겠습니다만. 경께서 바라신다면, 기꺼이 만주말을 가르칠 좋은 역관을 찾아 드리겠지요."
문제없다는 대답이었다. 달리 말하면, 황후라고 좋아서 만주말을 가급적 쓰지 않고 있던 건 아니었다는 이야기 또한 되었다.
'민족의 말은 그 민족의 정수, 라.'
김홍집은 그날 새삼스럽게 그가 유학 생활 중 배웠던 언어학의 격언을 떠올리며, 처소로 돌아왔다.
* * *
그리고 시간을 다시 현재로 돌리자면.
"그야 뭐 배울 수도 있는 거지."
김홍집의 설명을 들은 이형은 단칼에 태자에게 만주말을 가르쳐도 좋다고 긍정했다. 당장 그도 만주의 칸으로서 인정받기 위해 황후에게서 만주말을 배웠던 만큼 큰 문제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에 김홍집은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마음 한쪽으로는 또 새롭게 배워야 할 것이 늘었음에 갑갑함을 느끼면서 말이다.
"천재는 못 되어도 수재라···."
한편 김홍집의 설명을 들은 이형은 히죽 웃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향후 제국을 이을 태자가 그 나름의 재능은 갖추었음에 기뻐하는 것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과연 내 아들이다-하는 팔불출적인 감상이 더 컸다. 결국, 황제니 뭐니해도 그 또한 사람이었고, 아버지였던 것이다.
"그럼 향후 무엇을 어떻게 배우느냐가 중요해지겠군."
그리 말하며 이형은 김홍집을 빤히 바라보았다. 굳이 입으로 설명할 필요 없이, 김홍집의 책임이 막중하다는 의미였다. 김홍집은 손수건을 꺼내 이마를 타고 흐르는 식은땀을 조심스레 닦았다. 황제를 독대한 이래로 단 한 순간도 마음 편한 적이 없던 김홍집이었다.
"예, 너무 심려하지 마십시오. 소신의 몸과 마음을 다 바쳐 태자 전하께 장차 제위에 오르시면 필요할 모든 것을 확실하게 전수해드리겠습니다."
"그래, 그래야겠지. 그렇지만 그 전에-."
이형은 말을 끌었다. 무언가 중요한 말을 하려고 한다는 신호였다. 김홍집은 침을 삼키고 귀를 쫑긋 세웠다. 이형이 무슨 말을 할지 놓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잠시 뒤 이형은 다시 입을 열었다.
"우생학, 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나."
"우생학, 입니까?"
"사회진화론이라고 하는 편이 더 알기 쉽겠군. 하여튼, 어떻게 생각하나?"
김홍집은 필사적으로 눈을 굴렸다. 이형이 무슨 생각으로 이 말을 꺼냈는지, 어떻게 대답하면 좋을지 판단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김홍집이 이형의 생각을 읽어내기도 전에, 이형은 시답지 않다는 듯 귀를 후비적거리며 말했다.
"짐이 생각하기에 그건 그냥 개소리야."
"예, 예? 하, 하오나. 서역의 대학가에서는 분명히 학문 중 하나로서 교육을―"
"그러니까 그놈들도 헛짓거리하고 있다는 이야기일세. 그래, 멀리 갈 것 없이 우리 대한을 보게. 경이 생각하기에 우리 조선 민족이 그리도 잘나서 지금 이 자리까지 왔던가? 아니잖나. 우리 민족이 잘난 게 아니라 내가 잘났던 거지."
폭언이었다. 오만방자함이 지나쳐 무례라는 걸 알고서도 무심코 입이 쩍 벌어져 턱이 다물어지지 않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황제에게 꺼리는 기색은 없었다. 그는 손을 휘휘 저으며 덧붙였다.
"장차 태자에게는 물론이고 우리 한국 청년들에게도 가르치지 말게. 그따위 거 가르칠 시간에 차라리 이 몸 어르신께서 얼마나 잘났는지에 대해서나 한 줄이라도 더 가르치는 게 유익할 테니까.
아니면 역사 공부라도 한 시간 더 가르치거나."
김홍집은 그저 멍하니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