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폭군 고종대왕 일대기-286화 (286/530)

< 이유 있는 자신감 >

그런 김홍집을 바라보며 이형은 내심 생각했다.

'마음 같아서는 우생학이 얼마나 개 같은 학문이지 일장 연설이라도 늘어놓고 싶은 심정이다만···. 그래 봐야 얼마나 소용이 있을는지.'

이형은 낮게 혀를 차며 내심 투덜거렸다. 뛰어날 우(優), 생물 생(生) 학문 학(學), 합해서 우생학(優生學). 개략적으로 해석하여, 잘난 놈은 원래 잘나게 태어났기에 잘났다는 학문이다. 아니, 학문이라기보다는 시대정신에 가깝다. 나는 잘났고, 너희는 못났다. 그걸 어떻게든 막 태동하던 과학으로서 설명해보고자 서구 열강들이 발악한 결과물이니까.

그걸 두고 이 시대의 학자들에게 잘했다 못했다를 따져 물을 필요는 없다. 어떻게든 남을 깎아내리려고 하는 추악한 감정 또한 인간의 본성이다. 결국 인간의 추악한 본성에서 흘러나온 것이었기에 추악한 결말을 낳았을 뿐이다. 인종 박물관, 인간 동물원, 인종차별, 인종학살, 그 무수한 과학의 이름 아래 저질러진 추악한 결과물들. 이형은 그 말로를 알면서도 그 길을 나아갈 생각이라고는 추호도 없었다.

문제는 이형이 그 길을 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한들 남을 깎아내리고 싶어 하는 인간의 본성은 어디 가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결국 한국 또한 인간이 세운 나라인 이상 시간이 흘러갈수록 우생학에 경도되기 쉽다는 점이다. 저놈은 나보다 못난 거 같은데, 마침 과학이라는 인간 지성의 결정체가 네가 저놈보다 잘난 게 맞다고 속삭인다. 그 날것 그대로의 추악한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현인은 한국을 통틀어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제 와 내 백성들에게 인간에서 탈피한 성인군자가 되라고 할 수도 없는 거고, 우리가 다른 놈들보다 잘난 이유를 한 가지 만들어주는 수밖에. 그러자면 가장 만만한 게 문화와 역사고.'

이형은 흘끗 깁홍집과 그의 뒤편에서 정장에 외눈 안경을 끼고서 열심히 만년필을 휘두르고 있는 젊은 사관을 흘겨보았다. 이러한 정책은 근대화의 일부라고 하기는 어려웠다. 되려 우생학을 거부한다는 거 자체가 구닥다리 전근대적 사고방식이다. 그간 이형이 끝없이 근대화를 추구해오던 걸 생각하면 국가통합에 우생학 대신 문화와 역사를 들이미는 건 그간의 행보에서 역행하는, 퇴보에 가깝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이는 근대를 뛰어넘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남들이 근대라는 시대를 쓴맛 단맛을 모두 보면서 헤쳐나와야 한다면, 한국 홀로 우생학이라는 근대의 시대정신을 뛰어넘어 곧바로 현대를 맞이할 준비를 한다고 해석될 여지도 있는 것이다. 결국, 우생학이란 근대를 겪어본 인간들이 뒤늦게 그 추악함을 깨닫고서야 멀리하게 된 실패한 시대정신이었으니 말이다. 피할 수 있다면, 피해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이형은 그런 속내를 숨긴 채 불현듯 생각이 났다는 듯 가벼운 태도로 입을 열었다.

"그래, 말이 나온 김에 이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군. 역사 교과서를 일전에 제작하라고 했었는데, 어떻게 진전되어가고 있나?"

"상고사와 삼국시대, 신라와 전조 고려의 경우에는 선제들께서 명하시어 이미 정리해둔 바가 있으니 단지 그 시절의 사료를 헤아리고 추스를 뿐인지라 큰 어려움 없이 진전되고 있나이다. 하오나, 그. 고황제께서 세우신 우리 조선의 경우에는···."

이형의 추궁에 김홍집은 말끝을 흐렸다. 이형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뭐가 문제인지 구태여 따로 말하지 않아도 훤히 짐작이 갔다. 고조선에서 시작하여 고려까지 이어지는 역사에 관하여서는 이미 그간 조선 시대에 연구된 바가 있고 어차피 이미 망하고 없어진 왕조들이니 연구하기도 사견을 덧붙이기도 편하다. 그러나 조선은 다르다.

당장 이형부터가 전주 이씨의 피를 이었으며, 지금의 대한제국은 조선을 계승한 후계국조차 아닌 조선이 만주를 얻어 간판만 바꾼 나라에 가깝다. 전 국민들에게 읽고 배우게 할 역사 교과서를 만든다고 치면, 일단 연구부터가 조심스러우며 어디까지 국민들에게 알려야 할지도 골치 아프다. 개중에는 왕조의 정통성에 흠집이 날 기록들도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으로 세조가 제 조카를 잡아 죽이고서 권력을 취한 것, 주색잡기로 나라를 말아먹을 뻔한 연산군, 선조가 왜란 중 보여준 추태, 인조가 호란 중 보여준 추태, 병적인 의심병으로 제 아들을 뒤주에 가둬 죽인 영조 등등. 영광의 역사에만 주목하기에는 500년이라는 기나긴 세월 동안 쌓이고 쌓인 추악한 역사가 너무나도 많다.

"하기야, 그간 흑역사가 너무 많기는 했지. 그 전에 분량부터가 장난이 아니기도 하고."

이형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여 김홍집의 노고를 긍정했다. 보다 정확하게는, 김홍집이라기보다는 그가 차관으로 있던 교육부 산하에 사관들의 고생이겠지만 말이다. 있는 그대로 모두 공개하였다가는 욕을 한 사발씩 집어먹을 선왕들이나 간신들이 한둘이 아니고, 그렇다고 모두 숨긴다면 역사를 교육하는 의미가 없다. 사관들 사이에서는 어디까지 국민들에게 알리고 어디까지 숨겨야 할지 매일 같이 논박이 오가고 있으리라.

무엇보다 조선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조선사가 대강 정리되고 나면 이제 한반도 통일 왕조를 부정하고 그간의 역사를 1200여 년에 걸친 기나긴 남북조 시대로 고쳐야 한다. 만주와 반도는 본래 하나였으며, 신라는 절반의 통일만을 이뤘을 뿐이고 고려와 조선도 결국 절반의 통일만을 이룩한 남조라 고쳐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신라, 고려, 조선을 모두 남조로 만들고 나면 이제 고구려 멸망 이후 발해에서 후금까지 이어지는 만주사를 끌어와 그들을 북조로 정의한다. 즉 앞으로 국민은 한반도의 역사만이 아니라 만주의 역사까지 배운다. 그리하여 조선사와 만주사를 배우고 나면 이제 고조선, 고구려 이래 천이백여 년 만에 마침내 이형이 기나긴 남북조 시대를 끝내고 최초의 만주반도 통일왕조를 건국했다-로 완결.

"내가 저 우라질 놈의 역사 교과서인지 역사 백과사전인지를 배우는 처지가 아니라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예, 예?"

"아니, 못들은 걸로 해두게. 방금 그건 차마 듣지 못할 하교 어쩌구로 대충 뭉갤 필요 없으니 그대로 실록에 담고."

이형은 흘긋 사관을 돌아보며 지시했다. 만년필을 멈추고서 이형과 종이를 십수 번을 번갈아 보던 사관은 귀에 간신히 들릴 정도의 작은 소리로 한숨을 들이쉬었다가 내쉬고서는 떨리는 손으로 다시 만년필을 움직였다. 아마, 조금 전 실록에 실으라고 교시한 것까지 포함하여 지금의 대화는 모조리 실록에 실리게 될 터였다. 이형은 그제야 흡족하게 웃었다.

이형은 손가락으로 가볍게 탁자를 두드리며 물었다.

"그래, 지금 그래서 가장 문제가 되는 건 뭔가? 분량이라면 나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다만, 만주의 사관들이 비협조적인 게 문제라면 힘을 써줄 수도 있네. 그래, 어느 것이 가장 큰 문제던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여 송구하오나, 조선사입니다. 그, 그간은 선비들이나 제법 지체가 있는 집안에서나 기억하고 기록해왔던 사료들을 민간에 함부로 풀게 된다면, 그게··· 짐작하시다시피."

김홍집은 우물쭈물하며 말했다. 결국, 가장 큰 문제는 역사를 가르치게 되면서 욕을 집어먹게 될 선조들의 낯짝이라는 이야기였다. 사실, 이렇게 가볍게 이야기할 내용이 아니었다. 왕조의 정통성에 관련된 문제니까 말이다. 가장 대표적으로 선조. 여전히 백성들 사이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충무공을 어떻게든 깎아내리려 하고 원균을 싸고돌았던 내용이 고스란히 교과서에 실린다면 왕실 모독죄고 나발이고 일단 욕부터 늘어놓을 백성들이야 흔하디흔하다.

애초에 유림과 백성들이 역사를 대하는 시선은 분명히 다르다. 유림이야 지배계급이니 역사를 알더라도 다루기가 조심스럽다. 최대한 격식을 차려야 하고, 까더라도 역도들이나 간신이지 이미 죽고 없는 왕이 되기는 어렵다. 하지만 백성들은 다르다. 일단 잘못한 부분에는 가차 없이 비판을 가할 것이고 여차하면 간신을 넘어 왕까지 직접 욕할지도 모른다. 왕실의 권위가 깎여나가는 것이다.

그러니 유림 정도가 기억하고 있었을 먼 과거의 이야기까지 끌어와 소상하게 국민들에게 알리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결국 지금의 대한제국은 군주국가인 까닭이다. 왕실에 관한 일이라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던 것이다.

"그야 뭐, 교과서에 실릴 내용이니 좋게좋게 넘어가는 게 최선이겠지"

"예, 예. 하오나, 그렇다고 함부로 알리기 꺼려지는 내용이라고 하여 알리지 않는다면 그 또한 후대에 손가락질을···."

이형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김홍집은 풀이 죽어 고개를 숙였다. 현실과 타협. 가장 무난한 선택지다. 어차피 교과서에 담을 수 있는 내용은 한정되어 있다. 안 그래도 가르칠 분량도 어마어마한데 수치스러운 역사로 가득 채워 놓았다가는 조국에 자긍심을 품게 되기는커녕 경멸하게 될 거다.

하지만, 하고 이형은 덧붙였다.

그러고서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일부러 알아보려고 하는 백성들에게 숨길 이유야 없겠지."

"예, 말씀하신 대로입니··· 예?"

"이번 기회에 실록과 승정원일기, 비변사등록 우선 이 3개만 언문으로 완역해서 각 대학교 도서관마다 한 권씩은 사본을 갖춰두라고 하게. 한문이면 또 읽을 줄 아는 놈들만 빌려 가서 읽을 테니까, 순수 언문으로만 적어두고. 동음이의어나 사어는 따로 주석을 달아야 할 테니 그 부분도 신경 쓰라고 하게.

기간은 한 넉넉하게 15년을 줄 테니, 도중에 빠트리거나 잘못된 내용을 수록하거나 하는 일 없도록 하게나. 만주 쪽 사료들도 입수하는 대로 언문으로 완역해서 똑같이 하게."

톡.

뒤에서 기록하고 있던 사관이 무심코 손에 쥐고 있던 펜을 놓쳐버리는 소리였다. 바닥에 떨어진 만년필이 데굴데굴 구르며 잉크를 흩뿌리고, 사관은 제가 잘못 들었기를 바라는 얼굴로 입을 쩍 벌린 채 이형을 빤히 바라보았다. 김홍집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는 잠시 이형이 무슨 말을 했는지 이해하지 못하고서 눈을 가만히 깜빡거리다가, 이내 몸을 덜덜 떨며 입을 열었다.

"폐, 폐하. 하, 하오나. 실록을 백성들에게 공개한다면 필히···."

"그야 욕 한 사발 배부르게 잡수실 분들 널렸지."

이형은 허리를 굽혀 바닥을 구르던 만년필을 주워다가 사관의 손에 다시 쥐여주었다. 뜻하지 않게 옥체와 살갗이 닿았다는 사실조차 의식하지 못한 채 사관은 멍하니 이형이 건네준 만년필을 건네받았다. 이형은 턱을 긁고서는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짐은 역사 앞에서 당당하도다. 적어도 공이 8에 과는 2 정도 되지 않겠느뇨? 공이 9에 과는 1쯤 되실 세종대왕께서는 지금보다 더 칭송을 들어야 맞고, 공5 과5도 못 넘길 양반들이야 후손들에게 욕 한 사발 집어먹어도 싼 거지 뭘. 쯧, 그러게 생전에 덕을 베풀고 살지 좀."

"하, 하오나!"

"무엇이 문제란 말이던가? 짐은 짐의 치세를 자신하고 있느니라. 그리고 지금 이 나라를 통치하고 있는 건 짐이다. 짐의 백성들이 우리 전주 이씨 왕실의 과오를 알게 된다고 해봐야 짐의 치세가 영광으로 가득할진대 어찌 황권에 흠집이 가겠느냐?"

이형은 위엄을 갖추는 시늉을 하며 호통을 쳤다. 김홍집으로서는 그저 눈앞이 절로 깜깜해지는 폭언이었다. 결국 나는 자신 있으니 제 조상들이 백성들에게 욕을 집어먹는다고 한들 상관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지 않는가. 패륜, 두 글자가 머릿속을 어른거렸다.

사관이라고 다를까. 그는 이형이 말을 끝마치고서도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조금 전에 폭언을 실록에 담아도 될 것인가. 패륜이나 다름없는 저 발언을 정말로 실록에 담아도 되는가?

고민하고 있자니, 황제가 천천히 다가와 사관의 귀에 대고 하교하였다.

"방금 한 말도 흉참한 말이라고 뭉개지 말고 그대로 실록에 올리게."

실록에서 빼라는 것도 아니고 있는 대로 적어 올리라는데 일개 사관이 어찌하리오.

결국, 이 또한 실록에 올랐다.

* * *

이날의 하교는 그 즉시 대한일보를 통해 각지에 전해졌고, 그날로 수많은 선비들이 버선발로 한양까지 달려와 궁 앞에서 대성통곡하기 시작했다.

"아니 되옵니다, 황상!"

"통촉하여주시옵소서!"

"실록을 그리 가볍게 다루라는 법도는 세상천지에 없습니다!"

아니, 대성통곡이라는 말조차 부족한 감이 있다. 이성으로 생각하고 논리를 갖추어 상대를 설득하기 위해 나오는 논설 같은 게 아니라, 머리보다 척수에서 먼저 반응하여 튀어나오는 절규였다. 그리고 그것이 당연했다.

실록이란 왕조차 볼 수 없는 기밀문서다. 기록의 객관성을 유지하고 사관을 정치적 탄압으로부터 지키기 위해서다. 혹여나 자신의 추악한 모습이 후세에 전해질까 두려워 왕이나 당대의 권신이 사관을 핍박하고 기록을 왜곡해버리는 사태를 막기 위함인 것이다.

그런데 그 실록을 민간에 공개해버리겠다고 나섰다. 권신이나 왕이 혼자서 읽어도 문제가 될 기록들을 이제는 언문으로 완역해서 백성들에게 읽도록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때 유림이 노소를 막론하고서 머릿속으로 떠올린 건 딱 한 단어였다.

망국(亡國).

"종묘사직에 흠집을 내는 일이옵니다!"

"뭇 제후들이 이를 두고서 대한국을 업신여길까 두렵사옵니다! 뜻을 물려 주시옵소서!"

"지난 반 천년 간 선제들께서 소중히 지켜오신 국본이옵니다!"

몸이 앞서고 뒤늦게 머리가 따라붙었다. 궁을 에워싸고서 천여 명이 넘는 선비들이 새하얀 도포를 차려입고서 대성통곡을 했다. 호복을 입게 되어도 좋다. 상투를 잘라도 좋다. 서역 오랑캐들의 학문을 배우느라 주자학을 익힐 시간이 줄어도 좋다. 제발 실록만큼은 손대지 말아달라. 그런 호소가 매일 같이 울려 퍼졌다.

방미 때는 사태가 여기까지 번지기 전에 물러났으나, 이번에는 이형이 버텼다.

"사서를 읽고서 선현의 지혜를 익히지 못한다면 대관절 사서를 기록할 의미가 어디에 있는가? 사서란 후세가 읽게 하도록 기록하는 것이다. 실록 또한 사서일 저, 언제까지고 단지 보관하여 후세가 읽지도 못하고서 썩혀둘 뿐이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우리 조선국의 지난 반 천년 간의 치세가 우리 백성들에게조차 읽히지 못할 만큼 추악하고 그릇된 것도 아닐진대, 어찌 자라날 후학들에게 읽지 못하도록 한단 말인가!"

"""통촉하여주시옵소서!"""

"조용! 짐의 뜻은 굳건하도다. 더 이상 이에 대하여 논하는 소리가 귀에 들어오거든 큰 화를 입게 될 것이다!"

피차 설득은 없었다. 서로 생각하는 바가 극과 극이었으니 그야 서로 설득하려고 해봐야 논리가 통할 리가 없다. 그럼 결국 감정싸움이었고, 버티기 대결이었다. 마음만 먹는다면 헌병대를 동원해 해산시킬 수도 있었겠으나, 이형은 그러는 대신 버텼다. 소란과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였다.

"아이고 저 외눈 안경까지 쓴 주제에 어울리지도 않게 간만에 흰 도포에 갓까지 차려입은 거 보소. 아니 이게 도대체 무슨 소란이래?"

"글쎄, 듣자 하니 황상께서 우리 같은 천것들까지 사서를 읽게 해주시겠다고 언문으로 완역하랬더니 저리 소란을 떤다더구만."

"허, 나는 또 무슨 일이라고. 하여간 제게 구린 구석이 있는 줄은 아는 모양이니 다행이구만."

한양 백성들의 여론은 이형에 호의적이었다. 그들로서는 도대체 저 귀한 집안의 조상들이 얼마나 패악질을 저질렀길래 실록을 공개한다는 소식에 저리 난리겠냐는 시선이 지배적이던 것이다. 실상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었으나, 실록에 이름을 올린 조상들이 없거나 드물 대부분의 백성들에게 실록을 공개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는 씹기 좋은 안주와도 같았다.

시간이 길어질수록 한양 곳곳에서는 시위에 나선 선비들을 흉보는 목소리가 커졌다. 또 한편으로 실록에 실린 기록들을 향한 관심도 켜졌다. 대관절 얼마나 보기 흉한 기록들이 널려 있길래 저 귀하신 양반들이 저리 안달복달이겠냐는 의혹이 퍼져가던 것이다.

이미 북방의 전쟁이 어쩌고, 제후들의 군대가 어쩌고 하는 소식은 관심 밖으로 벗어난 지 오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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