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폭군 고종대왕 일대기-298화 (298/530)

< 주거니 받거니 >

"암모니아라···?"

이형의 대답에 상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아직 주기율표가 세계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던 시기다. 게르마늄이 발견되어 화학이 비약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한 것이 1882년, 아직도 5년은 더 남아있었고 이미 뒤틀릴 대로 뒤틀린 세계정세 속에서 발견연도까지 일치할지는 미지수다.

보다 빠를 수도 있고, 보다 느릴 수도 있다. 아니면 무언가의 농간으로 그대로 따라갈 수도 있다. 이처럼 아직 서역에서조차 화학이 그 입지를 확고히 하지 못한 시대에 과학의 발달과는 동떨어져 있던 동양에서야 말할 것도 없다. 좌중은 이형에 설명을 요구하는 시선을 향하고 있었다.

물론 이형이라고 제대로 된 대답을 돌려줄 수는 없었다.

'주기율표 순서가 수헬리베붕탄질산··· 맞나? 마음 같아서는 이렇게 이렇게 하면 된다고 알려주고는 싶은데, 우라질 내가 뭐 학력고사 치르고 난 이후로 화학책 펼쳐나 볼 일이 있었어야지 뭘···.'

이형은 내심 투덜거렸다. 그가 암모니아에 대하여 아는 것이 있다면 질소와 수소로 이루어져 있고, 비료의 주원료로 쓰이며, 프리츠 하버와 카를 보슈가 이를 대량생산하는 방법을 발명하여 노벨화학상을 받았다는 것 정도. 이 암모니아 합성법이 인류가 맬서스 트랩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줘 역사를 바꿔놓지 않았다면 과학에 무관심한 이형은 이조차도 몰랐으리라.

그나마 요즈음 번개가 치는 걸 구경하다가 번개가 많이 치는 해에는 풍년이 든다는 속설이 생각나 추가로 여기에 전기와 열이 필요하다는 걸 떠올렸으나, 그것뿐. 하다못해 암모니아를 이루는데 질소 원자와 와 수소 원자가 몇 개씩 필요한지도 가물가물한 이형이었다. 이과와는 도통 연이 없이 살았던 인문계 중퇴생의 슬픈 한계이리라.

그러나 이형은 그런 속내를 내색하는 대신 뻔뻔스럽게 말했다.

"비록 독성은 강하나 천하에 둘도 없이 이로운 물질이요. 사람의 소변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이를 이용한다면 더 이상 우리 아주는 서역에서 구아노를 수입하는데 골치를 썩이지 않아도 될 것이외다."

그 한마디면 충분했다. 구아노를 수입하는데 골치를 썩이지 않아도 된다. 한마디로 비료의 원료라는 이야기다. 그건 곧 농업 생산량을 증산하는 데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전쟁에 쓸 화약을 확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도 된다.

좌중의 시선도 일제히 바뀌었다. 암모니아, 생전 처음 들어보는 생소한 이름이었으나 그들 모두의 머릿속에는 똑똑히 각인 되었다. 가로되 농자천하지대본이라고, 예로부터 농업과 그 농업이 지탱하는 막대한 인구야말로 국력의 근간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아 온 유자들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이미 한 번 큰 효용을 보여준 구아노를 대체할 수 있는 기물을 대량생산할 수 있다고 하면, 그야 당연히 눈이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에 앞서, 기술을 발전시키고자 한다면 우선 전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해야겠지만 말이오."

그들의 상념을 깨운 것은 또 한 번 황제의 말이었다. 참으로 하고 싶은 것도 많고 하는 말도 많은 수다스러운 황제라고 좌중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내심 생각했다. 물론 그만큼 아직 아주에 부족한 것이 많아서겠지만 말이다.

"전력이라고 하시면, 그 서역에서 말하는 전기를 말씀하시는지요? 그, 뭐냐. 벼락과 같은 원리라고···."

이형에 질문을 던진 건 진왕 이재선이었다. 다른 제후들이 어떤 식으로건 이형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것과 달리, 이재선은 이형을 퍽 친근하게 여기는 기색이 역력했다. 젊어서 무과에 급제한 무골이었으니 이형이 보여준 무위에 동경을 품었고, 또 이복동생을 잘 둔 덕분에 왕 노릇까지 하게 되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물론 태생이 서자인지라, 막상 이형이 흘끗 그를 쳐다보니 흠칫하고 몸을 떠는 건 어쩔 수 없었지만 말이다. 법적으로는 서얼의 차별이 사라졌어도, 여전히 암암리에는 그 차별의식이 남아있던 한국이었다.

다만 이형은 그의 무례를 추궁하는 대신 히죽 웃으며 답했다.

"바로 그렇소. 장차 아주 또한 서역의 뒤를 쫓아 공장을 세우고 도시를 키워나갈 것인데, 이 전력과 같이 귀하고 값비싼 것을 각각 따로 운용하고자 한다면 우리 대한과 같은 대국은 몰라도 유구와 대만 등과 같은 소국에는 필히 부담이 클 것이오. 그렇지 않소?"

"하오면···?"

이재선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무언가 대안이 있기에 그런 말을 꺼냈을 것이라는 기대가 담긴 말. 이형은 고개를 끄덕여 맞장구쳤다.

"바로 그렇소. 짐은 장차 아주전력공사를 세워 아주의 전력 보급에 힘쓰고자 하오. 그리하여 온 아주의 송전망을 하나로 통일하여 전기를 자유롭게 사고팔 수 있도록 하여 필요하다면 보다 전력이 여유로운 나라가 보다 전력이 부족한 나라에 나눠줄 수 있도록 하려 하오.

이미 미리견에 상주하고 있는 우리 한국의 공사를 통하여 사업을 제의하였소. 짐은 장차 미리견의 전기회사 중, 가장 좋은 제안을 돌려준 회사에 아주 전역의 전기를 보급하도록 맡기고자 하오."

"오오, 과연!"

이재선은 탄성을 흘렸다. 대만왕 이희와 초국 섭정 어재연 등 대다수의 제후들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요컨대 장차 한국에서 동아시아 전역의 전력 보급을 돕겠다고 나선 격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이 경우 우선하여 한국에 집중적으로 발전소들이 설립되겠으나, 전력 송전망을 하나로 통일하여 전기를 사고팔 수 있게 한다면 한국이 생산한 전기를 다른 나라들도 얼마든지 나눠 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전기가 무엇이고 어떻게 쓰이는지에 대하여 잘은 몰라도, 적어도 그것이 산업화에 필수적이라는 것만은 알던 제후들이었다. 아주전력공사 설립안은 한국이 먼저 산업화를 진행하게 되겠으나, 어디까지나 순번의 문제일 뿐 장차 아시아 전역의 산업화를 돕겠다고 하였던 약속을 지키기 위함이라고 받아들여졌다.

황제는 또 한 번 약속을 지킨 셈이었다.

"그리하자면 우선 해저 전신이 필요하겠군요."

다소 떨떠름하게 반응한 건 요시노부였다. 좋게 받아들이면 한국이 아주의 산업화를 돕고자 소매를 걷어붙였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나쁘게 생각하면 각국이 한국에 목줄을 잡히는 격이다. 여차하면 한국에서 전력 공급을 끊기만 해도 전기가 끊어져 공장이 멈추고 전등이 들어오지 않는 등 경제가 나락으로 추락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자체적으로 전기를 들여오기 어려운 나라들이라면 모를까, 일본은 자체적으로 전기를 들여오지 못할 만큼 사정이 궁한 것도 아니다. 일본의 시선으로 보면, 괜히 얻는 것도 없이 목줄만 하나 더 얻는 꼴이던 것이다.

그런 요시노부의 심기를 눈치챈 이형은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한마디 덧붙였다.

"그야 물론이오. 다만 우선 한 가지 말해두자면, 이 아주전력공사는 공동출자로 설립되어 각 나라의 기여도를 기준으로 지분을 나눠 가지어 운영될 것이오. 이들은 범아주조약기구에 속한 공공기관이 아닌 아주에 속한 나라들이 지분을 나눠 가진 공기업으로서 존립할 것이니, 염려하지 않아도 좋소."

"하오면, 그 기여도라 함은 무엇을 의미하는지요?"

"물론 얼마나 많은 자금을 투자하였는가가 첫째요, 얼마나 많은 전기를 생산하였는가가 둘째가 될 것이오. 그러니, 너무 염려하지는 마시오."

"비로소 의문이 풀렸나이다. 황상께서 이리도 마음을 써주시니, 그저 송구할 따름입니다."

이형의 설명에 요시노부는 비로소 빙긋이 웃었다. 한마디로, 한국 정부에서 가장 큰 지분을 가져가겠지만 그렇다고 독점식으로 운영되지는 않으리라는 것. 달리 말하면 한국 혼자서 아주 전역에 전기를 공급하는 식이 아니라, 가령 청이 한국에 전기를 팔거나 일본이 유구에 전기를 팔거나 하는 거래도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그럼 이야기가 다르다. 한국에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아주에 종속되는 것이니까. 동시에 요시노부는 쓴웃음을 지었다. 황제가 단지 한국의 패권을 노리는 게 아니라 아주의 나라들이 서로 떨어지려고 해도 떨어질 수 없도록 단단히 묶어둘 작정이라는 걸 눈치챈 것이다. 한국이 모든 걸 독점하는 꼴이라면 이를 압제라 여기고 도망칠 여지가 있지만, 아주에 종속되어버리면 방도가 없다.

지분 싸움은 가능해도 도망친다는 선택지 자체가 소멸해버리는 셈이다. 물론 요시노부는 이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황제가 요시노부가 제 말을 가로챘음을 지적하지 않았듯이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난번에도 한 번 이야기 되었던 병장기의 공동 개발에 대해서 말이오만···."

이형은 힐끗 좌중을 둘러보며, 나지막한 어조로 다시 입을 열었다. 좌중은 일제히 침을 삼켰다.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이었다.

이형은 잠시 턱수염을 쓰다듬다가 말했다.

"우선 짐은 이에 관하여서도 아주 방위사업청을 두어 각국의 공동출자로 아주 제국(諸國)의 인재들이 한데 모여 공동 개발하고, 또 보급을 일원화하여 관리하도록 하는 안을 생각하고 있는데··· 이에 관하여 어떻게 생각하시오?"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슬쩍 이형이 주변을 둘러보면, 데굴데굴 필사적으로 시선을 굴려대는 좌중이 눈에 들어왔다. 망설이고 있음이 분명했다.

이익은 확실하다. 하나는 안 그래도 합종군이니 뭐니 하여 아주 각국의 군사적 교류가 확대되고 있는 와중에, 무기들을 공동개발하여 보급한다면 일단 보급이 간편해진다. 둘로 아주 각국의 무장이 일원화되니, 신체적 조건 정도를 제외하면 대체로 각국의 병사들이 전투력 면에서 엇비슷해진다. 이제 그 병사들을 어떻게 운용하는가를 두고서 강군인가 약군인가가 평가되는 것이다.

하지만 황제의 말속에는 뼈가 있다. 아주 방위사업청이 보급을 관리하게 된다면, 각국은 얼마나 많은 무기를 보유하고 있는가, 얼마나 생산하였는가를 있는 그대로 내보여야 한다. 그 보유량과 생산량이 사전에 제출된 서류와 다르다면, 그건 곧 역모가 된다. 앞선 것들과 달리, 이것만큼은 부정할 여지가 없는 목줄이다.

"···."

그렇다고 함부로 이의를 제기할 수도 없는 건, 이의를 제기하는 것 자체가 자신은 상국의 감시를 받지 않고서 멋대로 무장하고 싶다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요컨대, 황제에게 정면으로 대항하려 드는 셈이다.

그러니 필사적으로 눈치만 보고 있다. 대만왕 이희처럼 제가 가진 것에 만족하고 있는 이들은 은근히 주변에 눈치를 주며 황제의 목줄을 받아들이라 강권했고, 다소나마 미련이 남아있는 이들은 차마 나서지는 못하고서 입을 다물고 있을 뿐이다.

이형은 잠시 침묵하다가, 작게 한숨을 내쉰 다음 입을 열었다.

"우선 이것만은 말해두리다. 보급을 관리하겠다 함은 각국이 얼마나 생산하였고 또 얼마나 보유하고 있는지 신고를 받겠다는 것이지, 이에 관여하여 생산량을 늘리라거나 보유량을 줄이라거나 하는 일은 없을 거요."

다름 아닌 황제의 입에서 나온 보증. 다만 목줄이라는 측면에서는 이 또한 크게 다를 건 없다. 좌우지간 상국에서 각국이 얼마나 되는 전력을 보유하고 있는지를 상시 감시하겠다는 이야기니까.

하지만 그래도 감시당하는 것이 직접 관리당하는 것보다는 낫다. 좌중은 비로소 황제의 제안을 받아들일 마음이 들었다. 아무튼, 내정간섭의 여지는 최소화하겠다는 보증을 들었으니 그랬고, 둘째로 황제의 심기가 그리 좋지 않음을 눈치챘기 때문이다.

결국 마지막 제안 또한 통과되었다. 달리 말하면, 회맹은 처음부터 끝까지 황제의 독무대였다는 이야기였다.

"후회하지 않을 거요."

또 한 번의 회맹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짓고서, 이형은 웃어 보였다. 거기에 노기는 온데간데없었다.

그제야 좌중은 뒤늦게 당했음을 눈치챘으나, 단지 그것뿐.

이미 배는 떠나간 지 오래였다.

* * *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그동안, 이 무렵의 세상은 얼어붙어 있었다.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러시아였다.

늦어도 10년 안에 아프리카를 통째로 손에 거머쥘 것 같았던 프랑스의 남진도 얼어붙었다. 프랑스는 페르시아와 북해를 향해 시선을 틀어 그들의 모든 역량을 동원하여 러시아의 팽창을 멈추고자 하였다. 한편, 독일은 그런 러시아의 등을 은근히 떠밀었다. 러시아가 프랑스 · 영국과 기 싸움을 벌이는 틈을 타 발칸반도를 차지하고자 한 것이다.

서구세계로부터의 지원을 몰아받은 영국은 간신히 두 다리로 일어서 다시금 링 위에 복귀했다. 물론 그 대가는 절대 가볍지 않았다. 미국으로부터 대거 차관을 끌어온 대가로 카리브해의 섬들을 내줘야 했고, 네덜란드와의 공투를 위하여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케이프타운을 양보해야 했다.

"『배신자 페르시아인들을 향한 제국의 엄중한 경고! 여왕 폐하의 충용무쌍한 레드코트들이 아프가니스탄을 정복하다!』"

"『By Jingo! 2차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승전을 위하여 모두 전쟁 국채를 구매하자!』"

"『불곰, 사자의 포효에 겁을 집어먹었나? 거듭되는 알리의 구호 요청을 무시하는 러시아!』"

그리고 영국은 다시 서기 위하여 지불한 값비싼 대가를 벌충하겠다는 듯이 맹렬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시작은 아프가니스탄의 새로운 통치자 실 알리가 러시아와 손을 잡고 영국을 내쫓으려는 행보를 보이자 곧장 대군을 동원하여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것이었다.

아프가니스탄은 그 즉시 러시아에게 도움을 갈구하였으나, 이에 대한 러시아의 응답은 외면이었다. 안 그래도 페르시아를 사실상 집어삼키면서 사방을 적으로 돌린 러시아가 여기서 영국과 정면으로 대립한다면 그 끝은 전쟁뿐이라는 건 러시아에서 가장 잘 알고 있던 것이다.

전쟁은 허무할 정도로 영국의 압승으로 마무리되었다. 알리는 러시아에 망명을 신청하였으나 그조차 거부 되었고, 영국은 끝내 아프가니스탄을 자국의 보호령으로 삼으며 자국이 아직 건재함을 보였다. 이 뒤로도 영국은 페르시아와 중앙아시아에 지속해서 첩보원을 파견하여 러시아에 대한 저항을 독려하는 등 공격적이고 거침없는 행보를 보여, 조금씩 러시아를 궁지에 몰고자 하였다.

"기어이 내 임기 중에 첫 삽을 떠는 걸 보게 되었구나."

하지만 세계가 얼어붙어 버렸다 하여 모든 것이 멈춰버린 것은 아니었다. 영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친러반영 세력을 축출하고 있을 무렵, 프랑스-미국-한국 3개국의 공동참여로 이루어진 파나마 운하 공사는 첫 삽을 푸기 시작하고 있었다. 공사 예정기한만 10년, 일차적으로 동원된 인력만 20만 명이라는 대공사였다.

이 무렵 정식으로 공사로 임명받은 김옥균은 감회에 찬 모습으로 막을 올린 파나마 운하 공사의 정경을 둘러보고 있었다. 사방이 온통 가무잡잡한 쿨리들로 가득했다. 시멘트를 실어나르는 이들도, 곡괭이로 절벽을 깎고 있는 이들도, 삽으로 땅을 푸는 이들까지 온통 쿨리들로 가득해, 새삼 그가 살던 아시아 땅에 얼마나 사람이 많았는지를 실감하게 했다.

김옥균은 코끝이 찡해져 오는 걸 느꼈다. 저 많은 쿨리들을 아주에서 미주로 옮기느라 그와 주미 공사관에서 얼마나 고생해왔는가를 생각하면 그야 감회가 새로울 수밖에 없었다. 하나하나 인적사항을 대강이나마 확인하고, 신용할 수 있는 자인지 현지에서 사고를 치지는 않을지 검토하고, 겨우 비자를 받아 승인이 나서 배로 실어나르다가 도중에 운 나쁘게 인신매매단에 납치되어 연방수사국에 도움을 청하기도 하고···.

"정말 두 번 하라고 하면 못할··· 푸엣취!"

그때였다. 갑작스럽게 코끝이 따가워졌다. 소량이었으나, 무언가 그리 좋지 않은 것을 무심코 들이켰음이 확실했다. 연신 재채기를 하다 겨우 눈을 슬쩍 뜨니,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인부가 한 손에는 긴 호스가 달린 분무기를 들고 서 있었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이게 모기 놈들 잡느라···."

"아니요, 아닙니다. 할 일들 하시죠. 제가 좀 코가 민감해서 그렇습니다. 이제 괜찮습니다."

김옥균은 그제야 그들이 살충제를 뿌리고 있던 것이라는 걸 알았다. 다시 보니, 인부는 등에 커다란 드럼통을 매고 있었다. 그 커다란 드럼통이 통째로 미주에서는 DDT라 부르는 살충제였다. 듣기로, 본래는 살충제로 쓰고자 만들어진 물건이 아니었으나 한국의 황제가 살충제로 사용하고자 한다며 수입을 요청하여 살충제로서의 효용성이 발견된 것이라 했다.

"황상께서는 도대체 어찌 그런 지식을 알고 계신 것일까?"

김옥균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새삼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도대체 그걸 개발한 서역에서조차 모르던 사용법을 황제는 어찌 알고 있던 것일까. 그러나 깊이 생각하지는 않았다. 어디 그런 것이 하루 이틀이던가.

그렇게 살충제를 뿌리고 있던 자들이 비단 그 인부 하나뿐만이 아니라, 슬쩍 둘러보니 그의 시야에 들어오는 이들만 못해도 백여 명 이상이 살충제를 뿌리는 데에 동원되어 있었다. 이 또한 황제가 학질을 옮기는 게 모기라고 지목하여 일대의 모기들을 씨를 말리기로 한 까닭이었다.

"이 운하만 완공되고 나면, 나도 대한으로 돌아갈 수 있겠지."

김옥균은 환히 웃었다. 이걸로 학질이 해결된다면, 운하공사는 순탄대로이리라.

그러니 돌아가기 전에 가능한 많은 것을 익히고, 많은 사람과 교분을 쌓자.

그리 다짐하며, 김옥균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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