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폭군 고종대왕 일대기-299화 (299/530)

< DDT >

그리고 김옥균은 잘 자각하지 못하였으나, 이러한 DDT의 새로운 발견은 전혀 엉뚱한 영향을 끼치기도 하였다.

"자, 다음! 싸다, 싸! 한 사람당 1달러! 이 DDT 한 번만 뿌려주면 이고 빈대고 한 달 내내 걱정 없다, 이겁니다!"

"거 잠깐만 기다려주시오! 이렇게 찔끔찔끔 뿌려주는데 무슨 효능을 본단 말이오? 내 한 번만 더 받읍시다!"

"에헤 이, 이 사람이. 뒤에 기다리는 사람들 안 보여요? 괜히 맞고 끌려나가기 싫으면 싸게싸게 비킵시다!"

우선 파나마 운하 공사에 동원된 육체노동자들 사이에서 이 DDT가 반쯤 만병통치약처럼 대접을 받기 시작한 것이 모든 일의 시작이었다. 먹을 것이나 음료도 넉넉히 보급되지 않는 공사 현장에서 그나마 넉넉하게 지급되던 의약품이 DDT 정도였고, 또 그 효과도 확실하다 보니 빠르게 퍼져나가게 된 것이다.

본래라면 당연히 공사물자를 함부로 사용하였다고 하여 처벌받아야 했겠지만, 이 무렵 DDT는 이렇게 공사 인부들이 펑펑 써도 될 만큼 투입되고 있었다. 파나마 운하 공사의 흥망이 말라리아의 확산을 방지하는 데에 있다는 것은 프랑스와 미국 양국 모두가 익히 알고 있는 사안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프랑스는 정확한 원인 규명은 하지 못했어도 우선 모기를 상대로 굉장한 효과가 있다는 것을 확인함과 동시에 프랑스 정부는 DDT의 발견자인 오스트리아의 오트마 자이들러 박사에게 100만 프랑을 들여 DDT를 자유롭게 생산하고 팔아치울 권리를 사들였다. 그리하여 프랑스는 이렇게 사들인 권리로 DDT를 생산되는 대로 파나마 운하로 보냈고, 이렇게 생산된 DDT는 그 즉시 살충 작업에 투입되었다.

"거 하늘이 곡할 노릇이네.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그놈의 빌어먹을 벼룩 놈들 때문에 도통 잠을 잘 수가 없었는데, 오늘따라 이 벼룩이라는 놈들이 어디로 갔는지 도통 뵈지를 않어."

"허, 자네도 그런가? 나도 이 망할 놈의 이놈들이나 좀 잡아볼까 해서 몰래 들여온 빗으로 벅벅 긁는데, 아 글쎄 요즘 들어 도통 뵈지를 않어."

"어허, 이거 이상하구만. 내 요즈음 목욕한 적도 없는데··· 혹, 그 양놈들이 준 D···인가 뭐시긴가 하는 그 모기 잡는 약 때문인가?"

"모기 잡는 약이라. 모기 잡는 약? ···가만, 그럼 이게 모기를 잡는 약이 아니라 온갖 날벌레들을 죽이는 약인 거 아닌가?"

시발점은 여기였다. 현장의 노동자들이 살충 작업을 하던 도중 DDT를 한 번 뿌리고 오고 나면 그간 지독하게도 그들을 괴롭혀온 이나 빈대, 벼룩 같은 벌레들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던 것이다. 그건 분명 의아한 일이었다. 이 파나마 운하 공사까지 가는 화물선의 좁은 화물칸에서 서로 부대끼며 내리 몇 주를 씻지도 못했는데, 유독 DDT를 뿌리는 인부들만 멀쩡하던 것이다.

처음에는 단지 살충 담당 인부들 사이에서 알음알음 퍼져나가던 이 소문은 어느 순간인가 유독 살충 작업에 투입된 공사 인부들만 벌레들에 시달리지 않는다는 의혹으로 확산하였고 결국에는 유독 날벌레들에 시달리던 공사 인부들이 몸소 DDT를 몸에 맞아보면서 확신으로 변했다. DDT를 몸에 맞아봄과 동시에 온몸에서 우수수하고 날벌레들이 쏟아지던 것이다.

그때부터 공사 인부들 사이에서 DDT는 만병통치약이 되었다. 그날따라 몸이 좀 찌뿌둥하면 DDT를 맞으러 갔고, 씻고 싶은데 물이 없으면 찝찝하다면서 또 DDT를 맞으러 갔다. 처음에는 공사 자재를 함부로 쓴다며 말리려던 서양인 기술자들도, 이 DDT의 효과를 알게 된 다음에는 자신들도 돈을 지불해서라도 DDT를 맞아보려 안간힘을 썼다.

"그러니까 이 DDT가 모기뿐만이 아니라 벼룩이나 빈대 같은 날벌레들에게도 효과가 있다, 그 말인가···?"

"예, 그렇습니다. 공사 현장에서도 몇 차례고 그 효능이 증명되었으니 분명합니다. 그 지독한 이나 빈대 같은 놈들이 이 DDT 한 번만 뿌려주면 맥을 못 추지 뭡니까?"

"허, 그거 놀랄 노릇이군. 사람에게 악영향은 없겠지? 그런 지독한 놈들까지 맥을 못 추는데 사람에게도 무언가 영향이 있지 않겠나?"

"안심해주십시오. 현장에서 수도 없이 사용했으나 적어도 지금껏 그 탓에 무언가 피해를 보았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사장님, 이건 기회입니다. 이 DDT의 공급을 독점할 수만 있다면, 우리 모두 돈방석에 앉을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이러한 소식은 그 즉시 미국에도 전해졌다. 아무래도 대서양을 건너야 하는 프랑스보다는 당장 파나마를 앞에 두고 있던 미국이 공사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속속들이 알 수밖에는 없었다. 이 DDT의 놀라운 효과는 미국 제약업계에 있어서 경이로운 소식이었다. 그간 벼룩 같은 벌레들을 잡아 없애려는 시도는 많았고 구충제들도 하나둘씩 개발되고 있었으나 DDT처럼 싸고, 확실하고, 한 번에 여러 사람이 그 효능을 볼 수 있는 기적의 약은 없던 것이다.

이제 DDT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반응하여 벌레들을 잡아 죽이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은 아무래도 좋아졌다. 중요한 건 당장 현장에서 임상실험(?) 결과 눈에 띄는 부작용은 없었으며, 이 무렵 저작권이라는 물건은 대륙 하나만 건너면 아무런 효능을 발휘할 수 없는 물건이었다는 것이다.

곧바로 미국인들은 프랑스에서 파나마로 보낸 DDT를 입수하여 그 구성물질과 합성법에 대하여 연구하기 시작했고, 그리 머지않아 양산공정을 갖추어 대량 양산하여 시장에 내놓았다. 여기에는 그리 대단한 캐치프레이즈도 필요 없었다.

"『기적의 구충제, 마침내 플로리다 해안에 상륙! 지긋지긋한 벼룩들은 이제 안녕! DDT와 함께 날벌레들을 지옥으로 보내주세요!』"

간단하고, 직설적인 선전 문구였다. 그러나 그 효과는 확실했다. 미국에서 DDT를 자체적으로 합성하기 시작했을 무렵에는 이미 프랑스에서도 그 효능이 상상 이상이라는 걸 눈치챈 다음이었고, 아프리카를 개척하는 데에 DDT를 도입하면서 만능의 구충제로 이름을 드높인 다음이었기 때문이었다.

차이점이 있다면 프랑스에서는 과연 아직 정확하게 어떻게 효능을 발휘하여 벌레들을 죽이 는 것인지 모르는 정체불명의 DDT를 아시아인이나 아프리카인이라면 모를까 귀하디귀한 몸인 프랑스 자국민들에게 쓰게 해도 괜찮은 것인지 망설였다는 것이었고, 미국은 망설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프랑스가 망설이는 동안 미국의 제약업계들은 앞서나갔다. 이 미국의 제약업계들에 DDT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한 의문은 사소한 것이었다. 그들이 주목한 것은 DDT의 상품성이었고, 이미 아프리카의 흑인 길잡이들과 파나마의 아시아인 노동자들을 통해 인체에도 당장은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게 증명되었다는 점이었다.

"자, 오늘은 DDT 판매는 이미 모두 마감되었습니다. 찾아와주신 신사 숙녀 여러분께 다시 한번 양해 부탁드리며, 앞으로도 저희 존슨앤드존슨 제약을 애용해주세요!"

"두 배! 아니, 세 배로 지급하겠소! 누구 혹시 내게 팔 사람 없소? 우리 밀밭에 뿌리려면 늦어도 오늘 안에는 필요하단 말이오!"

"네 배! 네 배로 사겠어요! 우리 아이가 매일 벌레 때문에 잠을 못 잔단 말이에요. 우리 집에야말로 더욱 절실해요!"

그리고 그 성과는 가히 기대 이상이었다. 시장에 나온 DDT는 그야말로 재고가 남아나지 않는 수준의 인기를 독차지하게 되었다. 이 무렵 제약계의 로비를 꿀꺽 삼킨 황색언론들은 이 DDT를 현장에서 수십, 수백 차례에 걸쳐 검증되었고 또 이미 충분한 임상시험을 거친 안전하며 값싸고 성능도 확실한 기적의 구충제로 선전했다.

사람은 절반의 거짓말과 절반의 진실에 더욱 열광하는 법이라고 하였던가. 그 말대로였다. 미국인들은 언론의 선전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였다. 값싼 것은 사실이었으며, 벌레들을 잡는데 발휘하는 효력도 획기적이었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그동안의 구충제와 달리 단지 한 번 살포하는 것만으로 효력을 발휘한다는 것이 가장 큰 인상을 남겼다.

독실한 기독교인들은 머리 위로 한 번 분무하기만 하면 온몸에 득시글거리던 벌레들이 일제히 나자빠지는 모습에서 세례의식을 연상했던 것이다.

"오, 주여! 내 또 한 번의 기름 부음을 받게 되었구나! 아멘,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주신, 이 삶 내 베풀면서 쓰리오!"

"할렐루야! 맙소사, 이건 기적이야! 내 가발 속에 기어들어서 평생 애를 먹였던 벼룩 놈들이 이 보잘것없는 약품 하나에 해결되다니!"

이러한 DDT 붐은 대공황 이후 크게 침체되어있던 미국 제약계를 크게 부흥시켰다. 아니, 그뿐일까? 미국 국내시장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한 미국의 제약계가 중남미와 유럽에 DDT를 수출하기 시작하면서 침체 되어 있던 대서양 무역까지 덩달아 회복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그제야 뒤늦게 프랑스 또한 DDT를 민간시장에 팔기 시작했다. 아직도 정확한 효능은 연구 중이었으나 무식한 양키들이 그 몸으로서 인체에 해는 없다고 증명해줬으니 문제없을 거다-라는 발상이었다. 다소 안일한 판단이었으나, 결과적으로 효과는 확실했다. 미국을 발칵 뒤집었던 DDT 열풍은 유럽에서도 통했다.

그 효용성은 끝도 없었다. 밭에 뿌리면 해충들이 씨가 말랐고, 사람이나 집에 뿌리면 벼룩이니 이 따위의 벌레들이 나자빠졌다. 그뿐일까. 창고에 뿌리면 바퀴벌레들 같은 해충들도 당해낼 도리가 없었다. 점차 DDT는 만능의 구충제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

"DDT, 이제는 감미로운 향기와 함께 즐겨보십시오! 겔랑에서 자신 있게 소개합니다, 오 드 콜롱-DDT!"

"칵테일, 맛은 좋은데 취기가 쉽게 오르지 않아 곤란하셨죠? 그럴 때는 미키 슬림 어떠십니까? DDT가 가미되어 건강에도 좋고 맛도 좋은 이 새로운 칵테일과 함께 건강을 챙겨보세요!"

그야말로 DDT 열풍이었다. 이제 사람들은 온갖 것에 DDT를 타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온갖 향수에 DDT를 더하여 사교계의 기품을 더하는 건 기본이었고, 취기를 오르게 하기 좋다며 DDT를 술에 타서 마시기도 했다. 비누에 DDT를 섞거나 극단적으로 가면 아예 DDT 용액으로 몸을 씻거나 하는 경우까지 나올 지경이었다.

그제야 프랑스에서 DDT가 정확히 곤충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하여 연구가 끝났으나 그 뒤에도 DDT 열풍은 사그라들 줄을 몰랐다. DDT가 곤충에게 치명적이라는 건 밝혀졌어도, 과연 사람에게는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던 것이다.

학계에서 DDT를 대량으로 사용할 경우 사람 또한 악영향을 받을 수 있음을 경계해도, 곤충보다 수백, 수천 배는 거대한 사람이 DDT의 악영향을 받으려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DDT를 흡입해야겠냐며 경시되던 것이다.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다음 분기의 DDT 수출은 다소 지연될 것 같습니다. 요즈음 DDT가 만들어지는 족족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에서 소모되고 있는지라··· 대신 올해 말 중에는 이번에 미처 보내드리지 못했던 분량까지 더하여 한 번에 보내드리겠습니다."

"쯧, 어쩔 수 없는 일이구려. 알았소. 그 정도는 눈감아 드리리다. 그런데 그렇게 쓸 구석이 많소?"

"예, 물론입니다. 향수로도 쓰고, 칵테일로도 쓰고, 비누로도 쓰고, 거품 목욕을 할 때도 쓰지요. 싸고, 효과도 확실하고, 만들기도 쉬우니. 이와 같은 기적의 약품을 어째서 진즉에 발견하지 못했는지 통탄할 따름이지요."

그리고 이러한 DDT 붐은 이형과 아시아에도 전해졌다. 이 무렵 그야말로 온갖 것에 DDT를 사용하고 있던 유럽과 달리, 아시아에서는 이형의 지시로 먼저 논밭과 농가를 중심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DDT가 생산되는 족족 서역에서 소비되다 보니 물량이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DDT를 물 쓰듯이 쓰기에는 당장 소독하는데 쓸 분량도 부족하던 것이다.

이형은 DDT의 효용성을 마음껏 예찬하는 미국인 사업가를 뻔히 바라보았다. 어처구니가 없다, 혹은 그럴 줄 알았다고 말하는 듯한 시선이었다. 이형은 그의 시선에 어리둥절한 존슨이라는 이름의 미국인 사업가를 빤히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기적의 약품인 건 사실이고, 벌레 잡는데 그보다 좋은 약이 없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렇게 물 쓰듯 쓰다가 암 걸려도 난 모르는 일이오."

"···예?"

짧은 경고였다. 그러나 더없이 묵직한 경고였다.

이날 이후로 가지각색의 DDT 상품들은 상류 사교계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 * *

한편으로 파나마 운하 공사-보다 정확히는 파나마 운하 공사를 위하여 대거 유입된 아시아인 노동자들은 미국 사회에 또 다른 반향을 일으켰다.

"아이고 전하, 전하! 큰일 났습니다! 요 앞에서 양이 검계들이···!"

"또 우리 아주의 백성을 다리 병신을 만들어놨다는 말인가?"

노크 한 번 없이 그의 교회에 난입해온 민머리 청년을 바라보며, 이하응은 심드렁하게 말했다. 요즈음 흔히 일어나는 일들이었다. 아시아인 노동자들이 제 일자리를 빼앗는다며 백인들이 자주 모여 아시아인들을 흠씬 두들겨 패고 다니던 것이다.

당연히 헤이스가 이끄는 미국 연방정부는 이에 대하여 단호히 대처할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인종차별은 언젠가 반드시 사라져야 할 미국 사회의 뿌리 깊은 병폐라는 게 이 무렵 헤이스 정권의 입장이었으니만큼 이러한 요구는 실로 정당했다.

그러나 연방정부의 의견이 반드시 주 정부에게 받아들여지는 게 아니라는 점이 문제였다. 아무리 연방정부에서 명령해도, 군정이 실시되고 있는 남부라면 모를까 나머지 지역에서는 형식적으로만 순응하는 경우가 많던 것이다. 그리고 이는 이하응이 머물던 이 무렵의 캘리포니아주 또한 비슷했다.

"그러면 차라리 낫지유! 아이고, 저 나쁜 놈들이 우리 비호 발목을 잘라버렸지라! 아이고, 저걸 어쩌나, 저걸 어째! 전달에 머스마를 얻었다고 그리도 새색시 자랑을 하더라니!"

"뭣이라?"

이하응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건 또 이야기가 심각했다. 그동안 이하응이 캘리포니아에 정착하여 아시아인들을 대거 개종시킨 이래로는 일자리를 빼앗아간다고 두들겨 패거나 식당에서 내쫓는 경우는 흔했어도 이처럼 신체 일부를 잘라내는 수준의 상해를 입히는 경우는 없었다.

발목을 잘렸다는데 맨손으로 발목을 잡아 뽑은 것도 아닌 이상에야 날붙이를 썼음에 뻔했다. 이하응은 자못 진지한 어조로 되물었다.

"낫이냐, 도끼냐, 칼이냐?"

"총! 엽총이었답니다! 저런 천하의 망나니 놈들 같으니라고···!"

뒤이어 말을 이은 건 그와 함께 캘리포니아에 남았던 역관이었다. 보아하니 그도 현장에 있었거나 다리가 잘려서 돌아온 꼴을 보고 온 듯, 잔뜩 성이나 씩씩거리고 있었다. 항상 말끔하게 차려입고 다니던 정장도 옆에 민머리 청년의 흙먼지로 뒤덮인 멜빵바지 차림과 크게 다를 바 없이 더럽혀져, 영락없이 한판 크게 붙고 온 모양새였다.

이하응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총, 총은 문제의 여지가 많다. 가장 먼저 생각난 건 보안관의 도움을 청해보는 것이었다. 그가 머무는 새크라멘토는 명색이 캘리포니아주의 주도인 만큼 아직 개척인 한창인 서부를 기준으로도 치안이 그리 나쁘지 않은 편이고, 가능하다면 공권력의 도움을 받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하지만 이내 이하응은 고개를 저었다. 대낮에 딱히 뭐 불량한 길에 빠져든 것도 아니고 성실히 일하던 청년 하나가 발목이 잘려 온 것이다. 과연 보안관이 알고서 모른 척했을지 아니면 직무에 태만한지는 몰라도, 지금은 그리 의지할 구석이 아닌 듯 보였다. 당장 지난번에 항의했을 적에도 모른 척 넘어가지 않았던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어떻게 할까유?"

두 명의 시선이 일제히 이하응을 향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곧 이하응에게 대응을 요구한 것이다. 달리 의지할 구석이 없다, 는 표현이 정확할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 캘리포니아에서 아시아인들은 소수이고, 미국인들은 아시아 시장에는 관심이 많아도 아시아인 이민자들은 여전히 그리 달가워하지를 않는다.

그러니 밀려나지 않으려면 뭉쳐 사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하응은 그 아시아인 커뮤니티의 수장이었다. 그는 왕이었으며, 실제로도 왕과 다를 바 없는 권위와 권한을 지니고 있었다.

물론, 왕으로서의 책임도 말이다.

"뭘 어찌하겠느냐?"

이하응은 담담하게 답했다. 그는 생각했다. 어찌하면 좋을까. 공권력은 의지할 수 없다. 꼴에 천주당 땡중 놀음을 하며 말로서 달래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이게 몇 번이고 반복되면 곤란하다. 그렇다고 뇌물을 주며 조용히 해달라고 청하면 얕보일 뿐이다.

그럼 방법은 한 가지뿐 아니겠는가.

"내 듣기로 서역에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격언이 있다 들었다. 다리를 잘라갔다면 다리를 잘라 벌해야 하지 않겠느냐? 엽총 챙겨라."

""옛!""

그렇다. 그는 조선의 파락호.

통칭 천하장안이라 불리던 주먹패들을 부리며, 저잣거리의 시정잡배들을 휘어잡던 막가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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