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폭군 고종대왕 일대기-302화 (302/530)

< 방한 >

그리고 육지에 다리를 디딤과 동시에 그랜트는 휘청거렸다.

"어이쿠!"

물론 곧장 곁에서 그를 부축해줬으나, 참으로 모양 빠지는 첫 상륙이었다. 이형은 한눈에 그것이 뱃멀미 탓이라는 걸 눈치챘다. 워낙에 낡은 배였고, 그런 배로 태평양을 건너야 했으니 그야 뱃멀미가 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멀리에서 보아도 얼굴이 창백한 게 훤히 보일 지경이었다.

'그러게 무리하기는···.'

이형은 내심 고개를 저었다. 물론 심정이야 이해가 갔다. 워낙에 낡은 배이니, 비록 낡기는 했어도 아직 멀쩡하다고 과시할 필요가 있었던 건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수단으로 그랜트는 자신이 직접 그 낡은 배를 타고 온다는 걸 골랐다.

정공법인 동시에 단순무식한 방법이었다. 군인 출신인 대통령다운 면모일지도 몰랐다. 백번 말로 설명할 시간에, 제 몸으로 아직 이 배는 쓸만하다고 보인 것이다. 마지막에 배에서 내리는 순간 육지 멀미로 휘청거리며 추태를 보인 건 감점이었지만.

배에서 내린 그랜트는 언제 추태를 보였냐는 듯 허리를 꼿꼿이 펴고 헛기침을 하고서는, 환대를 받으며 성큼성큼 이형을 향해 걸어와 멋쩍게 웃었다.

"예정보다 늦어지게 되어 죄송합니다. 저희 할머님께서 워낙에 편찮으셨던지라."

종종걸음으로 그랜트를 뒤쫓아온 싹싹한 인상의 역관이 통역을 해주는 동안, 그랜트는 힐끗 그의 뒤편으로 보이는 백두산함을 돌아보았다. 그가 말한 할머님이란 진짜 그의 할머님이 아니라 백두산함-USS 로아노크를 의미했다. 이형은 쓴웃음을 돌려주었다. 이미 사전에 전달받았던 사항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대통령 퇴임 이후, 그랜트는 곧장 세계여행을 다녔다. 그리고 그의 첫 순방지는 유럽이었다. 아무리 미국이 오늘날 태평양 정책을 펼치고 있다고 하나, 여전히 미국에 있어서 제0 관심사는 아메리카 대륙이었고 제1 관심사는 유럽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형은 그랜트가 유럽 각국을 오고 다니며 종횡무진으로 활동하던 걸 신문을 통해 전해 듣고 있었다. 이형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윈저의 할머님께서도 이제 이순이 넘으셨으니, 그야 편찮으실 만도 하지 않겠소."

영미권에서 배를 여성명사로 지칭한다는 걸 알면서도, 일부러 모른 척하고서 그랜트가 지칭한 할머님을 영국 여왕 빅토리아 1세로 받아친 것이다. 통역의 얼굴이 순간 새파랗게 질리고, 잠시 후 통역의 해석을 전해 들은 그랜트 또한 잠시 놀란 얼굴을 했으나, 그랜트는 이내 쓴웃음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가 퇴임 이후 3차례나 영국을 방문했던 것 또한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 그레이트 게임 문제였다. 헤이스 정권은 유럽에서 또 한 번 대전쟁이 벌어질 경우 단기적으로는 호황이 찾아와도 장기적으로는 또 한 번의 대공황이 일어날 거라 우려했고, 그랜트는 헤이스와 같은 공화당 출신 전임 대통령으로서 헤이스 정권의 특사로 임명받아 유럽을 드나들었다.

물론 이렇다 할 성과는 없었다. 미국이 유럽의 평화를 요구해봐야, 이미 러시아와 영국은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다음이었다. 그렇게 2년여간의 유럽 방문도 이렇다 할 성과 없이 흐지부지되는 동안 남미에서 칠레, 페루, 볼리비아 3개국이 전쟁을 치르는 바람에 미 정계의 관심도 유럽에서 미주로 옮겨와 버렸고, 그대로 그랜트의 유럽 활극은 끝이 났다.

되려 미국 정계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던 아시아에서 점차 항구 시설이 개선되면서 교역량이 대폭 늘고 태평양 무역이 활성화되면서 헤이스 정권의 재선을 도왔을 따름이다. 그랜트는 쓰게 웃었다.

"분수대에서 불곰이 물놀이를 하는 바람에 많이 화가 나셨더군요. 셰익스피어와도 바꾸지 않겠다는 아름다운 정원이었는데, 안타깝게 되었습니다."

분수대는 인도양, 셰익스피어와 바꾸지 않겠다는 정원은 인도. 곧 러시아의 인도양 진출이 인도 식민지를 엉망으로 만들어놔 영국이 화가 났다는 이야기였다. 이형은 방긋 웃으며 답했다.

"저런. 우리도 숲에서 불곰이 나와 놀라 몰이 사냥을 했었소. 최근 곰이 들끓고 있으니, 한 번쯤 날을 잡고 곰 사냥을 하기는 해야겠소."

당연히, 합종군을 돌려 말한 것이었다. 그랜트는 웃으며 이형에 손을 내뻗었다. 악수하자는 것이었다. 이형은 기꺼이 손을 마주 잡으며 웃었다. 곳곳에서 박수 소리와 만세 소리가 울려 퍼졌다.

"""대한제국 만세! 미합중국 만세! 태평양 동포 만만세!"""

"""아주 황제 폐하 만세! 미주 상황 폐하 만세! 일주일제(一洲一帝) 만만세!"""

전자는 태평양에 맞닿은 태평양 동포로서 미국과 한국의 친교를 기대하는 만세구호였고, 후자는 이형과 그랜트를 향한 찬사였다. 이형은 아주를 대표하는 황제이며 그랜트는 미주의 상황이라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한국은 아시아의 황제국이고 미국은 아메리카 대륙의 황제국이라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이 일주일제란 이 무렵 한국에서 시작되어 아시아 각지에 퍼져가던 개념이었다. 대륙 하나당 한 사람의 황제가 있다는 뜻으로, 아시아주의를 정당화하고자 대륙주의와 기존의 천명론을 결합한 이념이던 것이다.

이에 따르자면 아주에는 한국이 황제국이었고, 미주에는 미국이 황제국이었으며, 천축과 호주에는 영국이, 회주(回州)에는 오스만 튀르크가, 비주와 구주에는 프랑스가, 동주(凍州)에는 러시아였다. 이는 오대양 육대주를 무시한 것이었는데, 이 무렵 아시아에서 대륙이란 지리적 구분이 아니라 문화적, 세력적 구분을 근간으로 이루어지던 것이었기에 그러했다.

"프린스라니, 그건 너무 과한 호칭이로군요. 저는 그저 전임 대통령일 뿐, 푸른 피를 타고 태어난 적은 없습니다."

환영인파의 만세 세례를 잠시 흐뭇하게 감상하다 뒤늦게 역관으로부터 그들이 뭐라고 외치는지에 대해 전해 들은 그랜트는 놀라 손사래를 쳤다. 아시아에서야 대통령을 선거로 선출된 황제라 여기고, 따라서 퇴임한 대통령 또한 태상황으로 대우하고 있었으나 자유인들의 나라를 자부하는 미국의 정치인에게 이런 대우는 거북할 뿐 아니라 후일 미국에 돌아가서 문제가 될 여지가 컸다.

만에 하나, 천에 하나라도 왕이 되고자 한다는 의심을 받았다가는 한순간에 그간 쌓아온 모든 명성을 잃고 탄핵을 당할 여지마저 있던 것이다. 이형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랬지. 귀국은 공화국이라 왕이 없다고 하였던 걸 깜빡 잊었소. 짐이 미처 그 점을 생각하지 못하였구려. 내 사죄하리다. 앞으로는 공석에서건 사석에서건 대통령이라 정정해드리리다."

물론 정말로 착각했을 리는 없었다. 전직 미국 대통령의 방한이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을 이용해 일주일제를 더욱 널리 알릴 작정으로 그랜트를 이용한 것일 뿐이었다. 아시아에 퍼뜨리는 거야 회맹과 합동훈련을 비롯하여 크고 작은 국제행사들을 통해 퍼뜨릴 수 있었으나, 아시아 바깥까지 알리려면 크건 작건 계기가 필요했으니 말이다.

한국에서 일주일제를 주창하고 있음을 널리 알려, 아시아는 한국의 영향권 아래에 있음을 다시 한 번 각인시키는 한편으로 이 영향권만 인정해준다면 다른 나라들과 괜히 갈등을 빚을 요량은 없음을 알리고자 한 것이다.

"마음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랜트는 미심쩍은 듯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그제야 마음이 놓인 듯 가슴을 쓸어내렸다. 황제의 입에서 미안하다는 이야기까지 나왔으니, 후일 황색 언론들이 이를 두고서 왈가왈부하더라도 변명할 거리가 생긴 것이다.

그 무렵에는 또 한 척의 배가 인천항에 들어서고 있었다. 백두산함과는 달리, 유람선이었다. 그의 대통령 재임 시절 백악관의 안주인이었던 줄리아 그랜트와 부부의 자식들이 탑승한 배였다. 그랜트와 달리, 그들은 구태여 낡은 전함이 아직 쓸만하다고 과시할 필요는 없던 것이다.

인도적인 판단이라고, 이형은 내심 생각했다.

그 천하의 전쟁영웅조차 몸을 가누지 못하고서 휘청거리는 낡은 배에 저들을 태우는 건 가정폭력이나 다름없을 테니까.

"대한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그랜트를 맞이한 것이 이형이었다면, 줄리아와 자녀들을 맞이한 것은 황후였다. 황후와 궁녀들은 배 위에서 내리는 줄리아 그랜트를 향해 천천히 고개를 숙여 묵례를 했다. 그랜트는 질겁을 한 부분이었지만, 한국에서는 그들 부부의 방문을 태상황과 태후가 찾아온 것으로 예우하던 까닭이었다.

"귀국의 환대에 감사드려요."

선원들에게 조심스레 부축을 받으며 인천 부두에 올라선 줄리아는 빙긋이 웃으며 배꼽 위에 양손을 올리고서 천천히 묵례하여 되받아 주었다. 다시 천천히 고개를 편 줄리아는 황후와 마주 보고서 서로 빙긋이 웃어 보였다.

말할 것도 없이, 양국의 친교를 과시하기 위함이었다.

* * *

"허, 허어! 마마께서···!"

이러한 광경은 그 자체로서 인천 부두에 모여든 인파들에는 하나의 충격이었다. 이국의 태상황이 황제와 손을 마주 잡고 악수를 하고, 이국의 태후가 황후와 묵례를 주고받는다. 그리고 그러한 역사적인 광경을 수천 명의 군중이 먼발치에서나마 구경한다.

그들은 새삼스레 또 한 번 세상이 달라졌음을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또 한편으로는 언젠가 항복을 위한 인질로서가 아니라 친교를 다지기 위하여 황제 부부가 이국을 방문하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인식도 퍼져갔다.

물론, 아직은 감히 입 밖에 낼 수도 없는 먼 훗날의 구상이었지만 말이다.

"과연 미리견은 아주의 우방이로다. 우리 한국을 신뢰하지 않는다면 어찌 태상황 부부를 한국에 보내겠는가?"

"암암, 그렇고말고! 괜히 태평양 동포겠는가? 동무이고, 동지이고, 곧 둘도 없는 친우이지!"

한편으로 이는 한국인들에게 미국과의 친교를 실제보다 고평가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미국이 태상황 부부를 보냈다는 것 자체가 신뢰의 표현이라 여긴 것이다. 이 탓에 방한을 전후로 하여 일시적으로 대한일보에서 조사한 친미여론이 친불여론을 넘기기도 했다.

프랑스는 아직 황제는커녕 황족조차 파견한 적 없지만, 미국은 태상황과 태후를 보냈으니 당연히 미국이 더 가까운 나라가 아니겠냐는 논리였다. 아직도 우물 안 개구리에 가까웠던 그들에게 사해 동포는 여전히 멀고 먼 이야기였지만, 이러한 친미여론의 확산에 힘입어 태평양에 접한 모든 나라가 동포라는 태평양 동포는 순순히 받아들여졌다.

태평양 무역 확대에 국운을 걸고 있던 한국 조정에는 더없이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에헤이, 친우라니! 황제 폐하의 위용에 겁에 질려 굴종을 맹세하러 온 게 아니겠는가?"

"그러췌! 구룡이 승천하듯 우리 한국도 날아오르고 있으니, 저 서역 오랑캐들도 감히 아주를 함부로 할 수 없―."

"···어흠, 어흠!"

한편, 이 무렵 한창 한국에서 흥하던 국수주의적 관점에 따라 미국이 한국에 굴종한 것이라 해석하는 경우도 왕왕 있었지만, 이는 비교적 소수에 가까웠다. 국가헌병대에서 방한을 망치지 않기 위해 집중적으로 단속한 까닭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뿌리 뽑을 수도 없던지라, 단지 수면 위로 올라오지 못했을 뿐 수면 아래에서는 종종 이와 같은 이야기들이 계속하여 주고 받아졌다.

그들은 한국의 성공을 과신하는 부류였다. 한국이 단지 지역 열강 수준이 아니라, 이제 엄연히 세계의 한 축으로서 공고히 자리 잡았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것이다. 기실 아주 틀린 건 아니었다. 이형이 천하를 평정하고 천명 전쟁이 마무리된 지도 어언 10여 년째를 바라보고 있었고, 삐걱거리던 범아주 조약기구도 이 무렵에는 공고히 자리를 잡아갔다.

여기에는 무엇보다 강남 대기근 이래로 설치된 식량농업기구의 공헌이 컸다.

"조선 반도는 모내기가 막 끝났네. 다만 지금 추세로 보아 만주에 일손이 부족하여 시간에 맞추지 못할 성싶은데. 청국에서 사람을 좀 모아줄 수 있겠나?"

"유감일세. 슬슬 우리 청국도 도적놈들이 씨가 마르고 그간 놀고 있던 밭들을 다시 개간해야 하는 터라 일손이 턱없이 부족해. 제국이나 초국은 어떠한가?"

"우리 제국은 요즈음 광업을 중흥하느라 광부가 얼마나 있어도 부족하네. 되려 우리야말로 사람을 받고 싶은 심경이야. 대관절 상국에 석탄은 또 왜 그렇게 많이 필요하다던가?"

"우린 초국도 청국과 처지가 비슷하네. 백성들이 하나둘 병장기를 내려놓고서 논밭에 돌아오고 있는 데다 미주로 건너가는 백성들도 있으니 우리도 사람이 부족한 건 피차 마찬가지일세."

"끄으응··· 어쩔 수 없군그래. 위국은 여전히 철도공사에 바쁠 테고, 그래 일본국은 어떠한가?"

"우리도 요즈음 막 북해도를 개간하기 시작한 지라 만주로 돌리기는 어려울 것 같네. 미안하군."

"쯧, 그럼 또 군부에 손을 빌리는 수밖에 없겠구먼. 아이고, 한성근 그놈이 또 황상의 무인들을 노비처럼 부린다고 원성일 텐데···."

이형이 당초 기대했던 대로, 설치된 지도 어언 10여 년을 바라보며 정상적으로 기동하기 시작한 식량농업기구는 사실상 아시아 대륙 전역의 경제적 교류와 인적 교류를 조율하는 초대형 기구로 부상하고 있었다. 농자천하지대본이라는 말대로, 농업이야말로 곧 아시아 대륙의 경제이던 까닭이다.

식량농업기구를 통하여 각국은 농작물을 기르는 노하우나 지식을 주고받았고, 한편으로 어느 나라에 일손이 부족하고 또 어느 나라에는 일손이 여유 있는지를 주고받아 농사를 망치지 않게 분연히 노력했다. 또 비료를 만드는 방법이나 병충해를 막는 방법, 새로운 농기구를 발명하는 등의 연구도 공동으로 진행하여, 아주 전역의 식량 생산량을 증산하고자 애썼다.

인구야말로 곧 국력이라는 전통적인 유교 문명의 철칙을 따르고 있던 것이다.

"그건 그렇고 혹 상국에서 곡괭이만 한 3만 자루만 팔아줄 수 있겠는가? 이 북해도가 땅이 얼어 원체 단단해서, 강철 곡괭이가 아니면 밭을 갈 수가 없네. 값은 후하게 쳐 줄 테니, 어떻게 안 되겠나?"

"아, 어림도 없는 소리 말게. 우리도 지금 시비련이니 연해주니 꽁꽁 얼어붙은 땅 천지일세. 아직도 소 하나만 믿고서 땅을 가는 농민들이 지천인데, 당분간은 어림도 없어."

"에잉. 거 이제 전기도 들어와서 매달 만 자루씩도 거뜬할 거면서 쪼잔하기는···. 그럼 대신 짐말이나 한 2000여 마리 정도만 팔아줄 수 있겠나? 기구가 부족하면 축생의 힘이라도 빌어야지."

"흐음, 그건 내가 농림부에 따로 이야기해 보겠네. 아마 3000여 마리까지는 거뜬할걸세. 대신 사혈도(庫頁島:사할린)에서―."

"그럴 줄 알았지. 안 그래도 수산총재께 따로 말을 하고 왔네. 좋아, 거래하세나. 곡괭이와 짐말만 받을 수 있다면 내년 가라후토(樺太:사할린)에서 고기를 종류별로 100톤씩은 양보함세."

"종류별로 100톤씩 3년일세. 그 이하로는 거래 못 하네."

"···호오. 그럼 곡괭이 거래도 똑같이 3년씩 거래로 하지. 어떤가?"

한편으로 이 식량농업기구의 업무는 농업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었다. 목축업이나 어업 등도 식량이라는 큰 틀 아래에서 조율되고 있던 것이다. 아직 한국 정도나 본격적인 이차 산업이 막 태동하고 있던 차에, 이는 곧 광업을 제외한 일차 산업 전부를 관할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이 무렵 아시아가 처음부터 하나였던 양 움직일 수 있던 가장 큰 비결이었다.

이미 아시아 대륙은 하나의 경제공동체로서 기능하고 있던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야말로 그랜트가 오는 길에 한 번쯤 들를 수도 있었던 일본마저 지나치고 곧장 한국으로 향한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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