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로이센이라는 나라 >
맥주 공장 건설을 말미암아 강릉 한구석에 조성된 독일인 집성촌은 처음 자리 잡던 그 순간부터 한국인들의 시선을 끌었다.
우선 그간 비교적 자주 외국인들이 오고 다니던 서해안이나 남해안이 아닌 동해안에 조성된 외국인 집성촌이었기에 특히나 시선을 끌었던 것도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런데 그거 들었나? 아니 글쎄 이번에 관보에서 보니까 강릉에 보로서인들이 들어와 마을을 세웠다고 그러네."
"보로서? 보로서가 어디인가? 구주 천하에 그런 나라가 있다는 건 들어보지 못했는데···."
"에끼, 이 사람아. 책 좀 읽고 살게나, 책 좀! 그 전쟁론이라는 책이 쓰인 나라가 아닌가!"
"아, 아아, 바로 그···. 그런데 그런 나라에서 우리 조선 땅에는 도대체 왜 들어오는 건가?"
"나야 모르지. 뭐, 일부러 강원도에라도 들어갔으면 뭔가 호랑이 같은 맹수라도 잡으려고 온 거 아니겠나?"
바로 위와 같이, 이 무렵 한국인 대다수에게 있어서 프로이센이란 특유의 군국주의적 성향 정도를 제외하면 이렇다 할 정보가 없는 나라였기 때문이었다. 우선 거리가 워낙에 서로 멀리 떨어져 있다 보니 교류할 일이 드물었고, 그동안 계속 프랑스가 의도적으로 교류를 억누르고 있었나 보니 더더욱 관심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한국에서 프로이센을 떠올린다면 그저 막연했다. 그런 나라가 있는 줄도 몰랐다가 대다수였고, 그다음이 그런 나라가 있다고는 들었다, 간신히 알고 있는 이들은 10년 전 즈음에 프랑스랑 전쟁했던 나라 정도. 정말로 프로이센을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이들은 극히 드물었다.
그리고 그렇게 프로이센을 알고 있는 이들도 대다수가 전쟁론을 통하여 프로이센을 접한 한국 내에서는 신진 지식인들에 해당하는 고급인재들이거나 정부에 속한 정부 관료 내지는 황명으로 사관학교에서 달달 외워야 했던 장교들뿐. 그만큼, 한국인들에게 있어서 프로이센은 미지의 나라였던 것이다.
사실 프로이센을 넘어,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조가 통일한 신성로마제국도 한국인들에게는 그 존재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건 매한가지였다. 당장에, 일주일제론을 주창한 전창혁 또한 프랑스를 유럽의 황제국으로 치켜세워주고 러시아도 동토의 황제국이라며 은근히 치켜세워주면서도 막상 독일은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만큼, 한국인들에게 있어서 독일이란 미지의 나라였고 그동안 접하지 못한 새로운 나라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 낯섦과 새로움은, 당연하게도 긍정적으로 작용하기도 부정적으로 작용하기도 하였다.
"내 듣기로 덕의지에서는 사람들이 다들 물처럼 술을 마셔댄다고 하던데, 그러면 매일 같이 취해서 일하기에 불편하지는 않나?"
"보로서와 오지리는 어떤 관계인 건가? 두 나라는 분명 별개의 나라인 듯한데, 어찌 덕의지라는 하나의 이름 아래 하나로 뭉쳐 있는 건가? 그리고 바로 옆에 불란서와 노서아가 있는데, 어떻게 황제국을 자칭할 수가 있는 건가? 보복이 두렵지는 않은 건가?"
"내 듣기로 덕의지를 바르게 풀어서 부르면 신성로마제국이라고 들었는데, 이 로마라고 하는 나라가 옛 한서에 언급되는 진국과 같은 나라가 맞는 건가? 하면, 서역의 진국은 장장 2000여 년간을 존속해 왔다는 말인가? 허어, 그거 놀랍구나. 옛 신라조차 천년이 고작이었거늘, 대관절 무슨 수로 그리도 오래 나라가 존속한단 말인가?"
"보로서는 무를 숭상하는 걸 넘어 문이 무에 고개를 조아리는 무관의 나라라 들었는데, 대관절 어떤 영문인가? 무관들이 나라를 다스려야 할 만큼 구주에서 그토록 자주 전란이 일었단 말인가? 하면, 그 오랜 세월 동안 혼란스러운 구주를 평정할 영웅이 단 한 사람도 나타나지 않았단 말인가?"
"부디 부탁드리겠습니다. 하나하나 대답해드릴 테니, 제발 미리 약조하고서 찾아와 주십시오. 저희는 한국 황제 폐하의 명을 받아 댐을 세우기 위하여 이곳에 온 것이지, 여러분들의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하여 이 나라에 온 게 아닙니다!"
우선 대다수의 신진 지식인들과 젊은 유림의 경우에는, 그야말로 날듯이 달려가 질문 공세를 던져댔다. 그들에게 있어서 여전히 유럽은 미지의 땅이었다. 그간 그들이 접해온 유럽이란 영국과 프랑스, 드물게 네덜란드가 고작이었지 프로이센은 김가진과 그 측근들을 위시한 일부 예외를 제외하자면 이번에 처음 접하게 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는 영국과 프랑스 등을 비롯한 기득권 열강들의 의도적인 전략이기도 하였다. 이렇게 유럽을 알 창구를 한정 지으면서 고의로 그들의 시선에서 바라본 유럽을 한국에 주입 시키고자 한 것이다. 실제로 이는 한국 내에 친불, 친영파들을 제법 흔하게 만들어내면서 신진 지식인들조차 유럽은 바다는 영국이 지배하고 대륙은 프랑스가 지배하며 변방의 러시아를 제외하면 모두가 보잘것없는 소국들뿐이다-하는 인식이 보편적이었다.
그런데 황제가 일부러 그런 유럽의 소국을 골라 댐 공사를 맡기는가 하면, 그들 나라 특유의 보리로 빚은 곡주를 마시고 싶다고 하니 의회와 말다툼까지 무릅쓰면서까지 맥주 공장을 떡 하니 만들어준 것이다. 그럼 일단 프로이센을 보는 시선부터가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그들이 그간 봐온 황제라면, 아무런 이유도 없이 유럽의 보잘것없는 소국을 총애할 리가 없었으니까 말이다.
"크으, 술맛 조-타! 이만하면 그래도 첫선을 보이는 것 치고는 나쁘지 않구려, 껄껄껄!"
"폐하께서 그리 마음에 드셔 하시니 참으로 다행입니다. 다시 한 번 저희 같은 이들을 위하여 일부러 공장을 세울 수 있게 해주셔서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뭘, 그리 어려울 것도 없는 일이 아니겠소. 하여, 내 바라건대··· 이렇게 이 한국 땅에도 맥주가 들여온 김에, 보다 많은 보로서인들을 한국에 들여올 수는 없겠소?"
"예?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내 보로서의 학자들을 이 한국 땅에 초빙하고 싶다는 이야기요. 그동안은 힘들었을지 모르겠으나, 이번에 이렇게 소양강댐 공사로 두 나라 사이에 인연이 생겼으니 한 번쯤 추진해 봄 직하지 않겠소? 물론, 맨입으로 하는 말은 결코 아니오. 내, 필히 그 대가는 넉넉하게 챙겨 드리리다. 시기는 빠를수록 좋소. 어떻소?"
거기에 이 무렵 황제가 이 맥주라고 하는 프로이센의 전통주를 호평하고, 더 나아가 프로이센으로부터 학자들을 대거 들여오고자 한다는 이야기가 퍼지기 시작하자 지식인들 사이에서 프로이센을 향한 관심은 더욱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그간 프랑스와 미국 두 나라를 유독 편애하는 모습을 보였던 황제가, 이번에는 전혀 엉뚱하게도 유럽의 소국 프로이센을 편애하려는 기미를 보이던 것이다. 황제의 권위와 권력이 절대적이던 한국에서, 이러한 황제의 움직임은 크게 두 가지의 보편적 인식을 끌어냈다.
"어쩌면, 보로서는 우리가 지금껏 생각해온 것보다 대단한 나라인 것은 아닐까? 구주에는 무수한 나라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요즈음 드물게 보이는 화란만 해도, 옛 명사( 明史)에도 이름을 올리고 있을 만큼 먼 옛날부터 우리 아주 땅을 들락거렸으나 기실 그들 나라는 보잘것없이 비좁아 어떻게 보아도 대국이라 부를 수는 없다.
비록 불란서와 영길리, 노서아 등에는 미치지 못할지도 모르겠으나, 보로서 또한 화란이 그러하듯이 우리가 유구와 동녕을 보듯 가볍게 다루어도 좋을 나라는 아닐지도 모른다."
"보로서가 어떤 나라인가, 에 대한 고찰은 잠시 뒤로 미뤄도 좋다. 단지 기억해야 할 것은 이번 일을 계기로 보로서가 황상의 총애를 얻었다는 것이고, 장차 보로서의 말을 알고 보로서에 대하여 더욱 많은 것을 알고 있을수록 총애받고 중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신호다. 조정에 출사하고자 큰 뜻을 품었다면, 이보다 호재가 어디 있으리오?
장차 폐하께서 보로서를 익히 잘 아는 인재들을 중히 쓰실 테니, 나는 그저 보로서에 대하여 알고자 하면 되겠구나!"
프로이센에 황제가 총애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지금 미리 프로이센과 친해 두면 황제의 총애를 얻어 중히 쓰일 거라고 생각하거나, 둘 다거나. 어느 쪽이건, 이 소양강댐 공사와 소양강 맥주 공장 설립을 계기로 프로이센이라고 하는 유럽의 낯선 나라가 신진 지식인들과 젊은 유생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게 된 것만은 사실이었다.
"정말이지 우리가 댐을 지으러 온 것인지 홍보를 하러 온 것인지 모르겠구나. 정중히 거절하여도, 정중히 답하여 주어도 끝도 없이 찾아오니 원. ···으휴. 다음번에 김 의원님을 만나게 되거든, 내 필히 작업에 방해가 되어서 그러니 경비인력을 충원해달라 부탁드려야겠구나."
그리고 이럴수록, 소양강댐 공사를 위하여 파견된 쾨넨을 위시한 프로이센 기술자들에게는 그저 곤혹스러울 따름이었다. 물론 그들이 이곳에 파견된 목표는 소양강댐을 성공적으로 완공시키는 것이었으며, 그에 못지않게 그들의 조국 프로이센을 한국에 알리고자 하는 것이었다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지 않겠는가.
하루가 멀다고 그들을 만나고자 하는 손님들이 줄줄이 몰려드니, 안 그래도 공사에 바쁜 그들로서는 그저 정신이 오락가락할 지경이었다.
"참으로 큰일이오. 황상께서 술을 좋아하셔서 그런지, 저 주정뱅이 색목인들을 총애하시니··· 쯧쯧. 치수라는 것이, 그리 우스운 사업이 아닐 것인데. 장차 저 댐이 무너져 큰 홍수가 나기라도 한다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백성이 고통받게 될 것이며 또 얼마나 많은 마을이 물에 가라앉게 되겠소?"
"내 말이 그 말이오. 참으로 큰일이구려. 문에 앞서 무를 숭상하고, 맑은 물을 마시는 대신 술을 마시며 매일 같이 취기에 절어 있는 야만적인 나라라니. 대관절 그런 나라의 어디를 보아 문명국이라 부를 구석이 있다는 말이오? 영락없이 오랑캐가 단지 좋은 이웃들을 만나 온갖 기물들을 취하여 그 힘에 취하여 주정을 부리는 꼴이니, 참으로 구주도 말세요, 말세."
그런가 하면, 이러한 움직임에 적대적인 반응을 보이는 이들도 당연히 있었다. 이들 대다수는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유림 층이었는데, 이들은 프로이센의 숭무성향을 문제 삼았다.
'이웃 나라 일본도 무사가 다스리는 숭무의 나라라고 하나 덕천가강이 일본을 통일한 이래로 유학을 받아들여 점차 문치의 길로 나아가고 있는데, 저 보로서란 나라는 아직도 무관들이 나라를 다스리며 시대의 흐름을 역행하고자 하고 있으니 해괴하다'-라는 논리였다.
"정말이지 그 말대로요. 미리견과 불란서를 보시오. 비록 공맹의 이치를 온전히 그 몸에 익히지 못하여 가끔 추태를 부릴 때도 있으나, 그런데도 만류귀종일지라. 무로써 나라를 지키고, 문으로써 나라를 다스리며, 애민과 민본의 정신으로 나라를 세운 것만은 똑같았소. 그런데 무로써 나라를 다스리고, 문으로써 나라를 세워 애민과 민본으로 나라를 지키니 이 얼마나 해괴망측한 나라요?
나는 앞으로 평생 출사할 일 없이 초야에 묻혀 살게 된다고 한들, 저런 못난 나라를 본받자는 말은 죽어도 못하겠소. 가정교사 흉내라도 내면, 그래도 밥은 빌어먹고 살 수 있겠지."
"그뿐이겠소. 불란서는 우리 대한의 은인이고, 미리견은 우리 대한의 든든한 동지요. 한데 오늘날 보로서는 무엇이냔 말이오. 그들은 한때는 불란서의 적이었고, 우리 대한의 적이었소. 오늘날 보로서와 화친하고자 함은 불란서를 배신하는 일이고, 신의를 저버리는 일이오. 우리 대한은 불란서와의 지조를 지켜야만 하오."
그리고 여기에는 소위 전통적인 유림 층에 한국에서 막 나라 문을 열었을 때 젊은 신진 지식인이었던 이들이 대거 유입되고 있던 것도 큰 영향을 끼쳤다. 이형이 막 즉위하였을 무렵 20, 30대였던 젊은 지식인들이 점차 세월이 흘러 30, 40, 조금 더 나아가 50을 넘기기 시작하니, 조금씩 그들이 전통적인 유림 층을 대체해가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이렇게 나이를 먹은 신진 지식인들은 그들이 젊은 시절 추종하였던 나라들을 그대로 추종하는 경향이 강했다. 그런 그들의 시선에서 볼 때, 새로이 한국에 그 발을 조금씩 들이려 하는 프로이센의 존재는 다분히 눈에 거슬리는 것이었다. 우선 그들부터가 프로이센에 좋은 감정을 품고 있지 않은 것도 있었지만, 그 이상으로 자신들만이 독점하고 있던 자리에 새로운 경쟁자가 나타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그동안은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친불세력과 친미세력, 다소 미약하기는 하나 조금씩 그 세를 회복하고 있는 친영세력이 각각 자리를 나눠 가지던 판에 느닷없이 친프로이센세력이 고개를 돌려 하고 있으니, 위기감을 느낀 셈이었다.
그들은 황제의 급작스러운 프로이센 편애에 곤혹스러움을 느꼈고, 이제 와 친프로이센의 기치를 내걸고 일어설 젊은이들과 새롭게 경쟁하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우리 모두 함께 폐하께 진언을 올리도록 합시다. 이제 와 불란서도, 미리견도 아닌 보로서라니! 어림도 없는 이야기요! 그동안 그래왔듯이, 불란서와 미리견이야말로 우리 아주에 진정으로 필요한 우방이 아니겠소!"
"옳소, 옳소!"
하여, 시작된 것이 반 프로이센 운동이었다. 처음 황제가 제위에 오르던 날부터 개화운동을 지지하던 젊은 지식인들이, 조금씩 나이를 먹고 그 나름의 지위를 가지게 되면서 제 밥그릇을 지키고자 막 걸음마를 시작한 이들을 밀어내려 하는 셈이었다.
그들은 주로 언론을 통하여 황제의 친프로이센 정책에 반대하는가 하면, 여론을 선동하여 어떻게든 친프로이센 세력의 영향력을 축소시키고자 하였다.
반대로 말하자면 이는 그동안 김가진 혼자만 덩그러니 있던 친프로이센 세력에 그들이 위기감을 느낄 지경이 되었다, 는 말도 되었지만 말이다.
"대관절 이해할 수가 없구나. 누군가 저 보로서라는 나라에 꿀이라도 발라놨단 말인가? 무슨 연유로, 도대체 무엇에 이끌려서 오늘날 대한에서 저 보로서라는 나라가 이토록 많은 관심과 총애를 받고 있는지 나는 대관절 모르겠다.
도대체 우리 대한이 보로서에 대하여 무엇을 알고 있으며 무엇을 경험해 보았다는 말인가? 아직 무엇하나 경험해 보지도, 검증되지도 못한 와중에 다들 무분별하게 보로서를 추앙하려 하고 있으니 이는 후일 필히 큰 근심거리가 될 것이다."
"왜 자꾸 색목인들이 이 아주 땅에 그 더러운 발을 디디고자 하는가? 아주는 우리 아주인들의 땅이다! 침략자 색목인들은 당장 그들의 땅으로 물러가라!"
물론 여기에는 이러한 이들만 끼어든 것은 아니었다.
보다 진지하게 아직 아시아에서 이렇다 할 검증도 받지 못한 프로이센에 필요 이상으로 호의를 보이거나 아니면 너무 깊숙이 관여하려는 걸 우려하는 제법 진지한 의견도 있었고, 또 그런가 하면 이성보다는 감성이 앞선 외국인 혐오를 드러내는 이들도 많았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었다면 그것이 호의이건 적의이건 미국의 사절단이 떠난 이후로 이 무렵 프로이센은 한국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받는 나라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소식은, 그리 오래지 않아 프로이센 본국에도 전해져 일대 파란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