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재 세균학자 >
"역사상 최초로 탄저병을 발견한 독일의 저명한 세균학자, 로베르트 코흐를 아시아로 파견하겠다."
"""탁월하신 혜안이옵니다, 폐하."""
"고맙소. 내 그대들이 오늘 보여준 조국을 향한 굳건한 충의는 결단코 잊지 않으리다···!"
프리드리히 3세의 이러한 선택은 다소의 망설임은 있었으나 의회에 의하여 최종적으로 통과되었다. 우선 한국과 더욱 긴밀한 협력을 맺음으로써 아시아 시장을 개척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던 건 그들 또한 마찬가지였으며, 이를 위하여 아시아에 보내질 코흐야 가엽지만- 결국 그건 코흐의 문제였고, 그들의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는 천부당만부당한 일이옵니다! 우리 독일인 모두의 자랑을 그까짓 이교도 황제의 사사로운 취미생활을 위하여 아시아인들에게 팔아 치우시겠다니요!"
"장차 우리 프로이센이 뭇 학자들에게서 배척받지는 않을까 두렵습니다! 이는 앞날이 창창한 학자를 국익을 위한 장기 말로 쓰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청컨대, 부디 물려주시옵소서!"
"코흐는 우리 베를린 국립위생원의 자랑이고, 상징입니다! 어찌 그를 보낼 수 있단 말입니까!"
물론 그렇다고 반발이 없는 건 아니었다. 이 일이 국익을 위하여 앞날이 창창한 학자 하나의 인생을 망치는 꼴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이 무렵 유럽의 대다수 학자에게 있어서 아시아란 여전히 낙후되고 어딘가 더럽고 미개한 촌구석이었으며, 아시아 대륙에 학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그다지 인정하지 않았다.
따라서, 베를린의 학자들은 이를 두고서 노예매매 내지는 인질 교환에 비유하기도 했다. 장차 프로이센의 국익을 위하여 이교도 황제에게 전도유망한 세균학자를 내다 파는 짓이라고 지적하고 나선 것이다. 이는 비단 학계뿐만이 아니라, 시민여론이나 언론에서도 그와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코흐를 이렇게 보낼 수는 없다!"
"폐하, 그는 우리 프로이센에 남아있을 때 더욱 빛을 발할 인재이옵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다니요! 있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장차 아시아와 사이가 틀어진다고 한들, 우리 프로이센이 멸망하는 것도 아니잖습니까. 아무리 국익을 위하여서라고 하나 이렇게 사사로이 자존심을 팔아 전도유망한 학자의 날개를 꺾는다면, 우리 프로이센은 만 기독교 세계의 비웃음거리가 되고 말 것입니다!"
"부디 재고하여 주십시오, 폐하!"
베를린의 교수들이 코흐가 아시아로 떠나게 되었다는 소식을 투고하여 널리 알리기 시작하자, 파문은 일파만파로 커져만 갔다. 베를린의 시민은 아무리 국익을 위하여서라고 하나, 그를 위하여 베를린의 긍지였던 코흐를 희생하고 싶어 하지는 않았다.
결국, 이는 분명 프리드리히 3세로서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수이기도 했으나, 또 동시에 최악의 수이기도 했던 것이다. 만약에 성사된다면, 한국에서 확실한 호의와 협력을 받아낼 수 있다는 점에서는 최선의 수였으나, 이것이 코흐 개인의 의지와 시민여론을 존중하지 않은 결정이었다는 점에서는 최악이었다.
사실 이는 프로이센의 군주로서 보일 수밖에 없던 한계이기도 했다. 수직적인 문화가 몸에 밴 프로이센의 군주이다 보니, 그가 명령을 내린다면 당연히 코흐는 이에 복종할 것이라 여겼던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것과는 조금 거리가 멀었다.
"절대로 거부하겠소! 신께 맹세코, 내 이런 잡다한 일로 연구를 방해받을 바에야 두 번 다시 이 베를린에 돌아오지 않으리다!"
처음에는 왕명이라고 하여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하는가 고민하던 코흐도, 이렇게 시민여론이 돌아서고 학계의 저명한 인사들이 하나둘씩 그의 구명 활동을 도우려 나서자 감히 왕명을 거부하고서 차라리 자신을 베를린에서 추방하라며 엄포를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실 그로서는 어떻게 해도 한국에 가고 싶지 않았다. 그가 만일 한국에 가게 된다면 그가 도와야 할 연구가 고작 해봐야 세균과 반발하는 효과가 있는 푸른곰팡이들을 연구하는 일이라고 전해 들었던 까닭이었다. 당연히, 그런 설명을 듣고서 그가 가장 먼저 떠올릴 감상은 시간 낭비일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곰팡이 연구라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를 않았다. 분명 그가 연구하였던 탄저병도 곰팡이와 유사한 성질을 지니고 있기는 했으나, 탄저병은 사람을 죽이는 병이었기에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건 학계에서 명성을 얻기 위해서건 반드시 연구해야만 한다는 의욕을 느끼게 했다. 그런데 사람을 해치지도 않는다는 멜론에서 피어난 푸른곰팡이에는 그런 동기가 조금도 느껴지지를 않았다.
분명 그 나름대로 매력은 있고, 언젠가 한 번쯤 연구해봄 직한 소재일지는 몰라도 그게 베를린을 떠나 낙후된 연구환경과 낙후된 생활환경 속에서 맞닥뜨려야 할 만큼 흥미로운 소재인가 하면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한국으로 떠나면, 언제쯤 다시 베를린에 마련된 그의 개인 연구실로 돌아올 수 있을지 기약도 없었으니 더더욱 그러했다.
"국왕 폐하께 똑똑히 전하여 주시오! 나는 적어도 이보다는 더 나은 대접을 받을만한 인재라고! 나는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할 만큼 이 나라에 죄를 짓지도 않았으며, 이 나라의 국익을 위하여 나의 인생을 망쳐야 할 만큼 이 나라에 많은 것을 받아오지도 않았다고! 나는 하노버인이요. 연구를 위하여 베를린에서 일하고 있을 뿐이란 말이오! 나는 결코 한국으로 가지 않겠소!"
때문에, 코흐는 단호하게 거부했다. 그리고 코흐가 단호하게 거부하고 나서자, 당연히 그를 어떻게든 보내지 않기 위하여 노력하던 베를린의 시민이 더더욱 힘이 나서 그를 보내지 않으려 탄원을 보냈음은 물론이었다.
"『19세기 말의 엽기적인 인신매매! 노예 경매장에 오른 젊은 학자와 탐욕스러운 이교도 황제!』"
결국, 사태가 여기까지 커지자 코흐가 아시아로 떠나는지 마는지 하는 문제는 프로이센 바깥의 다른 나라들에까지 전해지게 되었고, 주변 나라들- 특히 독일계 제후국들은 이를 두고서 프로이센을 비웃었다. 지난 전쟁 이후로 궁지에 몰리더니, 기어이 이런 어처구니가 없는 억지를 써야 할 지경에 놓이게 된 것이냐면서 이를 비웃고 나선 것이다.
무엇보다 코흐의 모국이던 하노버 왕국에서 길길이 날뛰었다. 분명 코흐가 베를린 국립위생원에서 일하게 되면서 프로이센 왕국의 국적을 취득하기는 했으나, 엄연히 코흐는 하노버 왕국에서 태어난 하노버인이었으며 이중국적자였다. 과거에 프로이센 왕국이 강성하여 하노버 왕국을 확실하게 제 발아래에 두고 있을 때면 몰라도, 오늘날 이러한 행동은 문제의 소지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이 일은 없던 걸로 하겠다. 더는 공개석상에서 논하지 않도록."
마침내 프리드리히 3세가 한발 물러나면서, 이 일은 없던 일이 되어버리는 듯했다. 베를린의 시민과 학자들은 그들의 손으로 전도유망한 학자를 지켜낸 사실을 축하하였고, 코흐는 계속하여 베를린에서 연구할 수 있게 되었음에 기뻐했으며, 독일의 제후국들은 프로이센의 막무가내를 비웃었다.
그렇게 없었던 일이 되는 줄만 알았던 이 일이 또 한 번의 전환점을 맞이한 것은, 이 소식이 주 프로이센 한국 공사관을 통하여 이형에게까지 전해지면서였다.
* * *
"···지금 누가 뭐라고 했나?"
그리고 이 소식을 처음 전해 듣게 되었을 때, 이형이 가장 먼저 보인 반응은 눈을 제자리에서 끔뻑거리는 것이었다. 코흐가 누군지 몰라서 그랬던 것이 아니라, 코흐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그러했다.
파스퇴르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현대 세균학을 사실상 두 사람이 만들다시피 한 독일의 위대한 과학자를, 그가 모를 리가 없던 것이다. 그래서 에디슨을 통해 테슬라와 연을 만들고자 시도했듯이 한 번쯤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한국에 초청해보고자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럴 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이미 코흐가 탄저균을 세계 최초로 발견하며 명성을 떨치고 베를린 국립위생원에 초청을 받는 등 이미 창창한 출셋길을 걷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직 본격적인 출세를 이루려면 적어도 10년에서 20년은 더 필요할 테슬라와는 달리, 이미 학계의 주목을 받으며 출셋길을 받고 있던 코흐가 아무리 좋은 조건을 제시한다고 한들 이제 막 순수과학을 연구하기는커녕 배우고 있는 한국에 관심을 보일 이유는 없던 것이다.
"로베르트 코흐, 라고 하였느냐?"
"그렇사옵니다, 황상. 또 보로서의 국왕이 말하기를-."
"코흐라 하였더냐."
그렇기에, 이형은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김가진이 그에게 뭐라고 설명하였는가는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당연히 불가능할 거라 여겨 포기했었던 코흐를, 저쪽에서 먼저 빌려주겠다고 나선다는 그야말로 꿈만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던 것이다.
그는 멍하니 자신의 볼을 꼬집었고, 자신이 혹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니지 확인했다.
당연히 있는 힘껏 쥐어뜯은 그의 볼은 따끔거렸고, 그제야 이형은 자신이 꿈 같은 것을 꾸고 있는 게 아니라 현실에 있음을 깨달았다.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되니라! 당장 보로서에게 그간 우리가 연구하였던 모든 결실을 서책으로 정리하여 전하거라! 설령 저들이 우리의 연구성과를 빼돌려 제 것으로 삼고자 해도 상관없다. 어떻게 해서건 코흐에게 우리가 그의 흥미를 끌 만한 연구를 하고 있음을 보이거라!"
그리고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확인한 순간, 이형은 곧장 호통을 쳤다.
일전에 그랜트와 담화를 나누면서 지금 한국에서 연구하고 있는 페니실린 개발이 얼마나 당대의 사람들에게 어리석고 무의미해 보이는 연구인지를 뼈저리게 실감한 덕택이었다.
물론 그랜트야 순수과학에는 일자무식에 가까운 인물이라지만, 그렇기에 더더욱이 보통의 사람들이 이를 어떻게 인식할지는 누구보다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 보통의 사람들이 이를 어떻게 인식하는가가 문제였다.
거리의 문제 탓에 올바르게 정보가 전달되기보다는 무수한 사람을 거치면서 이런저런 군더더기가 붙고 그 끝에는 근거 없는 소문이 눈두덩처럼 불어있을 걸 생각한다면, 지금쯤 지구 반대편에 코흐가 전달받았을 한국의 연구성과와 목적은 그랜트가 처음 이형에게서 전해 들었던 것에서 더욱 악의적으로 변질하여서 전달되었으면 전달되었지 더 낫게는 전달되었을 리가 없던 것이다.
"···하명하신 대로 따르겠나이다, 폐하."
김가진은 당대의 학자들과 평범한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과연 황제가 무슨 생각으로 그리도 푸른곰팡이에 집착하는지는 비록 알지 못했으나, 황제의 명을 충실하게 아주연구기금에 전달하는 역할에는 충실하였다.
그리고 김가진에게서 황명을 전해 들은 아주의 학자들과 영국인 기술고문단은 이렇다 할 반발 없이 황명에 따랐다. 애초에 그들 또한 그들의 연구를 두고서 진지하게 학술적인 성과를 내기 위한 연구라기보다는 황제 개인의 기이한 취미 즈음으로 생각하고 있던 까닭에, 황제가 그 연구성과를 지구 반대편의 코흐와 베를린 국립위생원에 전하라고 하여도 이렇다 할 저항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거기에, 이 무렵 연구가 답보상태이던 것도 있었다. 우선 어떤 곰팡이들이 세균을 멸균하는데 유독 특출난 효과를 발휘하는지와 그 성분을 발견하는 데까지는 성공했으나, 현장인력들의 미숙함으로 이를 추출하여 실제로 인체나 동물 따위에 투입하는 단계에까지는 이르지 못한 것이다.
"내가 저 로베르트 코흐라면, 설령 한국에 오면 그만을 위한 하렘을 차려주겠다고 말하여도 절대 오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이 무렵 아주연구기금과 아시아의 학자들이 이 무렵 황제의 노력을 바라보는 시선은 위와 같은 것이었다. 비록 이 말을 한 사람은 한국인이 아니라 한국인들의 연구개발을 돕고자 파견된 영국인 기술고문단이었으나, 그 또한 한국에 악의를 품고 있기에 이런 말을 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보편적인 인식이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한국에서 연구자료를 정리하여 이를 프로이센으로 보내는 순간까지도, 그들은 단지 황명이기 때문에 의무적으로 움직였을 뿐 어떠한 기대도 품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은 어디나 마찬가지였던지라, 심지어 이 연구자료가 담긴 우편은 기밀 회선이 아니라 국제우편을 통하여 공개적으로 보내졌는데도, 누구 한 사람 이를 열어보려 하지 않을 정도였다. 다들 이 푸른곰팡이 연구를 황제의 기벽 즈음으로 생각했지, 학술자료라 생각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 * *
그리고 공교롭게도, 이 연구자료가 막 베를린 국립위생원의 코흐에게 도착했을 무렵은 막 코흐의 한국파견이 취소되고 베를린 학계에서 축제 분위기에 잠겨있을 무렵이었다.
"한국의 황제가 내게 우편을 보내었다고?"
코흐는 눈을 깜빡거렸다. 당연하게도 그리 달가운 기색은 아니었다. 애초에 이제 겨우 한국에 갈 일 없이 편안하게 그의 실험실에서 연구를 마무리 지을 수 있을 거라 여기던 차에, 이번엔 한국의 황제에게서 우편을 받은 것이다.
이를 함부로 열어보게 되는 순간 겨우 빠져나온 한국행이라는 악몽으로 또다시 빨려 들어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가시지를 않았다.
"그렇습니다, 박사님. ···파기 처분할까요?"
그런 코흐의 기분을 십분 이해했기에, 그의 실험실 조교는 당연하다는 듯이 이를 적당한 구석에 치워버리거나 적당히 버리려 했다. 아무리 상대는 이국의 황제라지만, 그만큼 코흐에게 있어서 한국행이란 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 나라의 정치인들이 멋대로 그의 인생을 결정지어버린 악몽에 불과했다.
그 탓에 그의 아내인 엠마와 두 자식까지 덩달아 한국으로 떠날 뻔하지 않았던가. 솔직한 심정으로, 그는 한국의 황제가 그에게 직접 초청장을 보냈다면 적당히 파기 처분하고서 우편물이 이송 도중에 분실되어 자신에게까지 전달되지 못했다고 시치미를 떼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니, 그곳에 두게나. 뭐라고 써놨는지 한번 읽어나 봐야겠어."
그런데도 이를 당장에 파기 처분하는 대신에 읽고자 했던 건, 학자가 지녀야 할 호기심 때문이었다. 도대체 아시아에서는 초청장을 쓸 때 어떤 방식으로, 그리고 어떤 문구를 부쳐가며 편지를 읽을 상대의 마음을 편하게 만들지 궁금하던 것이다.
그러나 그날 실험을 마무리 짓고서, 모두가 떠난 실험실에 홀로 남아 그 내용물을 확인한 코흐는 당혹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건, 책···인가?"
그의 손에 들어온 것은 100장이 넘어가는 제법 두터운 서류뭉치였다. 코흐는 그것이 논문이라는 걸 눈치챘다. 누군가 연구를 주도했다는 표시도 없이 그저 아주연구기금의 지원을 받아 공동으로 연구되었다는 것만 명시되어 있었지만, 그 외에는 통상적인 논문의 양식을 고스란히 따르고 있던 것이다.
영어로 적혀져 있던 푸른곰팡이 논문은 코흐에게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과학자로서 원활한 활동을 위하여 영어 정도는 유창하지 못해도 읽을 줄은 알았던 코흐였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해당 논문이 미완성이라는 걸 간파한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순 연구설계와 경과, 결과에 대해서만 쭉 나열되어있을 뿐 이 실험을 통하여 무엇을 얻고자 하는지는 쏙 빠져있었으니 그야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애당초, 아주연구기금의 학자들은 그저 황제의 명에 따라 맹목적으로 연구에 매달렸을 뿐 그 목적도 의미도 이해하지 못했으니 당연한 일이었으나-.
"···음?"
어느 순간, 코흐는 이 미완성의 논문에 빠져들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과학자로서의 탐구심이 발동한 것이다.
그저 세균이 멸균되어가는 과정만 반복되어있는 연구에서, 딱 한 가지 공통으로 발견되는 사항이 있었던 것이다.
"저 많은 세균들이 세포벽이 붕괴해서 죽어갔다고?"
그 순간 그의 머릿속으로 전율이 일었다. 이미 당대의 저명한 세균학자였기에, 그는 인간의 세포와 세균이 어떻게 다른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만일, 이 푸른곰팡이가 오로지 세포벽만을 파괴한다고 가정한다면, 도출되는 결론은 딱 한 가지뿐.
"저 곰팡이들을 충분히 배양하여 그 항생물질을 추출할 수만 있다면, 분명 사람들에게 사용해도 안전한 항생제를 완성할 수 있다!"
그걸로 충분했다.
그날로, 코흐는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짐을 꾸렸다.
이미 그 무렵 그의 머릿속에는 당장에라도 한국으로 날아가 더욱 자세한 실험내용을 두 눈으로 확인해보려는 생각밖에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