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혜 >
물론 이것이 그렇다고 코흐에게 있어서 그리 간단한 작업이었는가-하면 그건 아니었다.
"생각 이상으로 환경 변화에 민감하군. 거기에 인체에 주입되어도 너무 쉽게 배출되고 말아. 어떻게든 무언가 다른 사용법을 찾아내야겠어···."
"이 쥐는 너무 비위생적이잖아? 시궁쥐를 잡아 온 건가? 이래서야 신약을 실험하기 전에 내가 먼저 감염될 판국이구먼."
"신약을 추출한 건 좋았지만, 너무 불순물이 많군. 저 배양 탱크에 푸른곰팡이들만 들어있는 게 아닌 건가? 한번 이야기를 해둬야겠어."
"살상력은 확실하지만 이렇게 민감하고 양도 적어서야 원, 실험실 바깥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건가? 이래 가지고서는 후일 시중에 출시되어도 어렵겠어···."
이유는 그야말로 다양했다. 우선 간신히 추출하는 데 성공한 항생물질의 자체적인 한계가 첫 번째 문제였고, 이 푸른곰팡이 배양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잘 이해하지 못한 현지 연구진들의 관리 미숙이 두 번째 문제였다. 애초에 이 항생물질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파악한 건 그 한 사람뿐이라는 것도 문제였다.
그가 아무리 분발해봐야 결국 그는 한 사람의 인간에 지나지 않았고, 그래서 모든 연구 방면에서 관여할 수는 없던 것이다.
"실험용 쥐들이 너무 비위생적이라··· 으음, 그렇군. 확실히 그걸 미처 신경 쓰지 못하고 있었구려. 내 알겠소. 앞으로는 따로 날 때부터 특별히 관리된 백변증(白變種:알비노)에 걸린 쥐들만 공수해 드리리다."
"언제나 마음을 써주셔서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하오나, 요즈음 연구에 진척이 없어 큰일이옵니다. 추출하는 데까지는 지금의 시설로도 충분하오나, 이 항생물질이 제가 추측했던 그 이상으로 외부환경 변화에 취약하여 실험실 바깥에서는 사용하지 못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으음, 그건 나로서도 어떻게 해줄 수 없는 부분이구려. 나는 아무튼 약학이나 세균학에 대해서는 완전히 문외한이니까 말이오. 하지만 그런데도 내 사견을 덧붙이자면, 가루약을 만들어 본다면 어떻겠소? 적어도 액체보다는, 그래도 분말 형태가 조금이나마 더 오래 버틸 수 있지 않겠소."
"분말이라! 과연, 그 발상은 미처 하지 못하였나이다. 과연 황상께서는 현인이십니다. 그 탁월한 혜안에는 당해낼 도리가 없군요."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 한 사람만은 아니었다. 한국의 황제 또한 이 항생물질 추출에 관하여 깊은 관심을 보였고, 이에 따라 코흐가 원만하게 연구를 진행할 수 있도록 협력과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황제는 코흐가 원할 때마다 그를 만나기 위하여 시간을 내주었고, 또 코흐가 무언가 문제점을 제기할 때마다 그가 가능한 선에서 모든 지원과 의견제시를 아끼지 않았다.
코흐에게 있어서 놀라웠던 것은 이렇게 황제가 제시하는 의견들이 마치 이렇게 하면 문제가 해결되어 완성품에 도달할 것이다-를 미리 알고서 그 완성품을 만들기 위하여 코흐를 불러온 듯한 착각을 느끼게 했다는 점이었다.
비록 비전문가로서 세세하지는 못하였고, 학술적인 용어보다는 일반인들이 흔히 사용하는 대중적인 용어를 사용했으나 그렇기에 코흐는 황제가 이 페니실린이라고 하는 항생물질을 실제로 사용해 보고서 그것을 재현하고자 하는 게 아닌가 의심했다. 사실 그게 아니라면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이 무렵 아시아에서는 터무니없는 투자를 이 페니실린 개발을 위하여 사용하고 있기도 했다.
코흐가 벽에 막히면 황제는 두루뭉술하게나마 그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주었고, 그렇게 방향을 제시받은 코흐는 그 탁월한 천재성으로 이내 그 해결책을 찾아내고는 했다. 그리고 이러한 선순환은 코흐가 쾌속 전진하여 목표지점에 다다를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제 연구에 투자해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에디슨 씨. 당신들 덕택에 이 새로운 현미경이 세상의 빛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여, 다소 부족하지만, 그 성의에 보답하는 의미로서 이 현미경의 이름은 에디슨 씨, 당신의 이름을 빌려 에디슨 현미경이라 부르기로 하였습니다."
"하하하! 도움이 되었다니 기쁩니다. 하물며 이 새로운 현미경에 제 이름을 붙여주시다니요, 이거 낯부끄럽군요. 이런 건 본디 개발자의 이름이 붙는 법인데 말입니다. 역시, 당신의 이름을 붙이는 것이 더 낫지 않겠습니까?"
"아닙니다. 저는 어디까지나 설계에 관여하였던 것뿐, 투자를 해주신 건 에디슨 씨 당신이고 이걸 완성해낸 건 과천의 기술자들이니까요. 만일 에디슨 씨께서 제게 이름을 지을 권리를 주신다면, 작게나마 과천이라고 써두고 싶습니다."
"과천이라. 흐음, 그럼 이렇게 하는 건 어떻습니까. 제가 이 현미경의 납품을 맡게 되었으니, 앞으로 생산되는 모든 제품에 제 상표를 붙이고 이름을 에디슨 현미경이라 하는 대신에 상호명은 과천이라 하지요. 어떻습니까?"
"훌륭하군요. 알았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합시다."
이 무모해 보이는 사업에 뛰어든 대표적인 투자자가 있다면 바로 이 무렵 에디슨 전기회사의 아시아 시장 진출에 사활을 걸고 있던 에디슨이었다. 처음 한국에 발을 디디던 순간부터 여흥 민씨 일가와 척을 져버린 에디슨은 이 무렵 그야말로 뭐라도 하면서 황제의 총애를 확실하게 얻어야 하는 처지에 몰려있었던 까닭이었다.
하여 에디슨은 카네기조차 꺼리던 사업에 기꺼이 투자하였다. 이 푸른곰팡이 연구에서 상업성을 발견했다기보다는, 이를 통해 황제에게 호의를 얻어내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아예 상업성을 포기할 수도 없었던지라, 에디슨의 투자는 대부분은 에디슨 현미경을 비롯한 연구기재 개발에 한정되었다. 그 또한 푸른곰팡이 연구보다는 그 부산물이 더 가치가 있을 거라 판단했던 것이다.
이를 두고서 에디슨의 판단이 물렀다고 비난할 수는 없었다. 아무튼, 이 무렵 코흐의 지시를 따라 연구에 투입되던 연구진들을 포함하여 그 누구도 이 연구가 성공할 거라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코흐가 연구의 막바지에 들어서는 그 순간까지도, 성공을 믿어 의심치 않고 있던 건 코흐와 황제 두 사람뿐이었다.
그러나, 마침내 그날이 왔다.
"하, 하하하! 됐다! 서른 마리의 생쥐들에게 내 탄저병을 주사하여 감염시켰는데, 개중 28마리가 무사히 살아남았다! 내가 해낸 거야! 맙소사, 이게 현실인가? 인류는 오늘 만병의 원인이 세균이라 알게 된 지 고작 한 세대도 지나지 않아 세균들을 처리할 방법까지 알게 되었다!
오, 인류여! 히포크라테스여! 라파엘이여! 내가 오늘날 이룩해낸 이 성취를 보소서! 모두가 벽촌이라 무시하였던, 이 아시아 땅에서 이룩한 기적을 보소서! 인류는 마침내 모든 병마를 정복할 첫걸음을 내디뎠도다!"
1886년의 어느 무더운 여름날.
코흐는 마침내 그가 목표로 하였던 결과물에 다다를 수 있었다.
막 푸른곰팡이에서 추출하여 불안정하고 인체에 의하여 쉽게 배설되고 말던 항생물질을 분말 형태로 가공하여 섭취시킨다는 발상이 결정적이었다. 이렇게 분말 형태로 가공된 항생물질은 막 추출되었을 무렵의 액체형태보다 확연하게 신체에 잘 흡수되었고, 이는 황실에서 무균 환경 속에서 특별히 키워낸 실험용 쥐들을 통하여 입증되었다.
무엇보다 코흐에게 있어서 뿌듯하였던 사실은 그가 처음으로 발견하여 학자로서 명성을 얻었던 탄저균을 백신이 아니라 그가 만들어낸 항생제로 처리하는 데 성공했다는 사실이었다. 비록 내색하지는 않아도, 이 무렵 온갖 음해에 시달려가며 학자로서의 명성이 크게 흔들리고 있던 코흐에게 있어서 이는 크나큰 위안이 되어주었다.
그는 이제 탄저균을 인류 최초로 발견했으며, 또한 최초로 탄저균을 정복한 인물로서 과학사에 기록되게 된 것이다. 그 무서운 탄저균조차, 그가 앞으로 정복해 나갈 세균 중 시범 타자일 뿐이었지만 말이다.
"이제 남은 건 이걸 사람에게 실험해 보는 것뿐인데···."
그러자 이제 코흐에게는 마지막 절차만이 남아있었다. 바로 항생제를 인체에 투여하여 그 효능이 인간에게도 유의미한 변화를 주는지 확인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피험자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가장 큰 문제는 설령 항생제를 투여하여 회복되었다고 한들, 그게 정말로 항생제 덕분인지 아니면 어련히 떨쳐 일어날 병이었는지가 분간이 되지를 않는다는 점이었다. 물론 여러 피험자를 대상으로 여러 차례 투약한다는 방법도 있었으나, 그러기에는 재료는 충분해도 아직 절대적인 생산량이 부족하다는 게 문제였다.
결국 고심 끝에, 코흐가 선택한 것은 다소 과격하면서도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내가 직접, 이 몸으로서 증명해낸다. 다들 미쳤다고 생각하겠지만, 내 학자로서의 명예를 확실하게 되살리기 위해서는 이 방법밖에는 없어. 다들 내가 미쳤다고 손가락질하고 비웃어도, 내 몸으로 직접 그 효과를 검증해 보인다면 저들 모두 꿀 먹은 벙어리가 되겠지!"
고심은 길었으되, 결단은 빨랐다.
코흐는 그 즉시 자신에게 폐렴 환자에게서 추출한 체액을 자신에게 투여했다. 오랜 연구실 생활로 병들고 지친 코흐의 몸은 마치 스펀지처럼 폐렴균을 흡수해댔고, 불과 사흘이 지나지 않아 앓아누웠다. 여기에 당연히 기겁한 것은 한국의 황제였다.
"아니,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요! 폐렴이라니! 이 우라질 놈들이, 내 귀빈께 대접할 식수에는 특별히 신경 쓰라고 그토록 주의하라고 하였거늘···!"
"아, 니옵니다. 폐하···. 그들을, 탓하지 말아 주십시오···. 이건, 제가···."
"···뭐요?"
그리고 가장 어처구니가 없었던 사람도 황제였고 말이다. 간신히 초청해온 코흐가 갑자기 폐렴에 걸려 오늘내일하고 있다길래 질겁을 하고서 한걸음에 달려왔더니, 막상 그 폐렴에 걸린 이유가 자발적인 감염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 원인이야 아무튼, 결과는 확실했다. 코흐는 자신에게 폐렴균을 투약하기에 앞서 자신의 신체조건을 세세하게 기록하는 한편 오랜 연구실 생활로 빼빼 마르고 피폐해진 자신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이어서, 그는 자신이 폐렴에 걸린 것이 확실시된 이후로 조수의 간호를 받아 제 몸에 항생제를 투여하여 치료해가며 그 변화상을 낱낱이 기록했다.
그렇게 일주일간을 앓아눕고 난 다음에야, 코흐는 다시 침상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일주일이 지나 보름이 되어 완전히 쾌차하였음을 전해 듣고서 다시 찾아온 황제의 앞에서, 코흐는 방긋 웃으며 말했다.
"기뻐해 주십시오, 폐하. 마침내 성공했습니다."
"···그게 지금 할 말이요? 뭐, 무사히 쾌차했으니 다행이긴 하오만···."
조수의 통역을 통해 그 내용을 전해 들은 황제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코흐를 한번 바라보고서,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코흐는 그저 웃었다. 그가 성공했음을 제 몸으로서 확인했기에 그런 것도 있었지만, 비로소 확신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황제는 미친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 이해받지 못할 만큼 지혜로웠을 뿐이라고.
* * *
그렇게 자신이 직접 임상시험을 거치고 난 다음, 그제야 코흐는 그 연구성과를 가장 먼저 프로이센에서 발표하였다. 그 목적이야 말할 것도 없이, 코흐 자신의 학자로서의 명성을 회복하는 것이었다.
그간 그를 두고서 제물에 눈이 멀어 타락하였다느니, 실성한 것이라느니 떠들던 이들에게 가장 먼저 자신의 성공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조작된 논문이 아닌가? 세균을 절멸시키는 특효약이라니. 이게 대관절 먼 옛날 사람들을 홀렸던 연금술과 다를 게 뭐란 말인가?"
"코흐의 논문은 믿을 수 없다! 결국, 이 논문을 검증해 줄 수 있는 건 아시아의 조교들뿐 아닌가? 코흐가 직접 재현하지 못한다면 믿을 수 없다!"
"고작 해봤자 한 명의 임상시험으로는 너무 표본이 부족하다. 우선 표본이 더욱 쌓일 때까지 우린 판단을 유보하겠다."
물론 그의 기대가 무난하게 받아들여졌는가-하면 물론 아니었다. 여러 해가 지난 다음에도 여전히 베를린의 학자들은 자신들을 배신한 코흐에 대하여 악감정을 품고 있었고, 그래서 그들은 온갖 트집을 잡으며 그를 깎아내려 했다.
개중에는 인체에 구체적으로 어떤 작용을 하는지 아직 구명되지 않았다는 걸 지적하는 등 유의미한 지적들도 있었으나, 대부분은 아시아의 학문적 수준을 깔보거나 학자로서의 신뢰성을 트집 잡는 것들이 대다수였다. 그만큼 코흐는 베를린을 떠나면서 너무나 많은 적을 만들었던 것이다.
"조작된 논문이라니, 그럼 우리 영국에서 코흐의 사기극에 한 손 거들었다는 이야기인가?"
"코흐의 논문은 조작되지 않았다! 그건 우리 대영제국이 보증한다!"
"물론 현장에서 일한 것은 아시아인들이라고 하나, 그걸 지휘한 것은 코흐와 우리 영국인 학자들이었다! 그대들은 우리 영국을 의심하는 것인가?"
여기에 오히려 적극 코흐를 구명하고자 나선 것은 영국 학계였다. 그들은 한국에 파견되어 있던 기술고문들을 통하여 코흐의 연구 과정을 속속들이 들어왔으며, 또 코흐가 논문을 발표하기 전 여러 차례 검토를 걸쳐 코흐의 논문이 조작된 것이 아니라고 보증을 걸어주기도 하였기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
물론 막상 이들이 코흐가 실질적인 성과를 내기 전까지만 해도 어떻게든 이 푸른곰팡이 연구에서 이름을 빼려고 하거나 자신들의 역할을 축소하기 바빴다는 건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황제의 기벽에 어울리느라 학자가 지녀야 할 자존심을 더럽혔다는 자괴감도, 최초의 항생물질 발견과 항생제 발명이라는 역사적 위업 앞에서는 무의미했다.
"임상시험이 부족하다면 현장에서 직접 실험해 보면 그만이 아닌가? 나에게 그 항생제를 달라. 내게는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환자들이 무한하게 있으니, 그대들 모두가 의심을 거둘 때까지 무한하게 임상 실험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화룡점정을 찍은 것은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이 나선 것이었다.
그녀는 이미 예순이 넘은 나이로 페르시아에서의 전쟁에 직접 나서지는 않았으나, 제자들을 적극적으로 독려하거나 후방에서 영국군 의료체계를 개혁하는 데에 앞장서고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코흐 자신이 직접 폐렴에 걸려 검증했다는 항생제는 그야말로 혁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크림전쟁의 영웅이자 영국군 군 위생의 대가인 나이팅게일이 발 벗고 나서자 모든 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영국군은 코흐와 아시아 연구진들이 개발한 항생제를 가능한 한 많이, 그리고 긴급하게 페르시아에 공수해 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따라 항생제를 향한 당장 의심은 흐지부지되었다.
"저희 존슨앤드존슨을 선택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번 선택, 절대 후회하시지 않을 겁니다."
"음, 내 기대하고 있으리다. 인부들과 부지라면 얼마든지 있으니, 부디 전력을 기울여주기를 바라겠소."
그리고 이때 나선 것이 미국의 제약기업들이었다. 물론 그들만이 달려든 것이 아니라, 모건 금융의 대대적인 투자가 있었기에 비로소 달려든 것이었지만 말이다.
그들은 아시아에 가능한 한 빠르게 대량양산에 필요한 양산시설을 세워주겠다며 먼저 한국 정부에 손을 내밀었고, 한국은 기꺼이 그들의 손을 마주 잡았다. 물론 그 투자금 대부분을 한국에서 댔던 만큼, 그 지적 재산권은 오롯이 아주연구기금에 귀속되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것이 코흐가 여기에 어떠한 권리도 행사할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분명하게, 자신의 권리를 행사했다.
"그런데 그 항생제의 정식 제품명이 뭐라고 했었죠?"
"익스펠디오(Expedio). 그리 부르기로 했소."
그것은 '지혜로움'을 뜻하는 라틴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