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폭군 고종대왕 일대기-318화 (318/530)

< 페르시아 전쟁 >

잠시 나이팅게일과 새로운 항생제-익스펠디오가 어떻게 전선을 바꿔 놓았는지를 이야기하기에 앞서, 시곗바늘을 앞으로 돌려 페르시아에서의 전쟁에 관하여 이야기해보자.

"설마, 정말로 오는 건가? 무언가 착각하였거나 공갈은 아닌가? 아무리 무모한 러시아인들이라지만, 저들이라고 양측의 전력 차가 얼마나 극심한지를 모를 리도 없을 텐데···."

"하, 하오나···! 이 망원경으로 봐주십시오! 적 기함이 선두에서 뒷줄의 전함들을 대동하여 돌진해오고 있습니다! 이미 기뢰 저지선을 돌파하였고, 앞으로 1시간 안에 우군 함대의 사정거리 내에 들어옵니다! 어떻게 할까요?"

"···허, 이런 미치광이 놈들 같으니라고. 그거야 뻔하지 않은가. 저들이 나라를 위하여 죽고자 각오하였다면, 바라는 대로 저들의 나라를 위하여 죽게 해줘야지. 신호기를 올리게. 마침 날씨가 좋군. 너구리 사냥에는 딱 좋은 날씨야."

이 페르시아에서의 전쟁에서, 러시아군은 그야말로 필사적이었다. 페르시아를 이대로 놓치고 마는가, 아니면 끝까지 사수하는가에 따라 앞으로 그들의 반백 년이 달라질 예정이었던 만큼 그럴 수밖에 없었다.

키프로스 섬 앞바다에서 벌어진 러시아 흑해함대와 프랑스-영국 연합함대의 함대 결전은 이러한 러시아의 각오를 무엇보다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이 키프로스 대해전에서 러시아 해군은 그들보다 사흘 먼저 해역을 봉쇄한 채로 러시아 흑해함대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연합함대를 향해 결사적인 돌파를 시도했다.

그것이 러시아 흑해함대에 승산이 있기 때문은 아니었다. 딱 잘라 말해서, 이 무렵 키프로스 앞바다에 전개된 양측 해군전력은 만재배수량만을 따져도 족히 2배 이상은 연합함대가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각 함이 장비한 대포의 숫자와 그 질까지 이야기한다면 양측의 격차는 3배 이상으로 벌어졌다.

그런데도 러시아군이 돌격을 택한 이유는 딱 한 가지였다.

"모두 각오를 다져라! 우리 제국의 비원이 손에 잡히듯 하고 있도다! 모두 하느님께서 우리 러시아와 함께 해주신 덕분이며, 대공 전하의 지략 덕분이 아니겠느냐!"

"단 한 척의 배라도 더 길동무로 삼는다는 각오로 전장에 임하라! 두려워하지 마라. 우리 세바스토폴의 바다 사나이들이 뼈를 묻을 장소는 마땅히 이 지중해가 아니겠느냐!"

이 무렵, 러시아군은 이미 흑해함대가 사실상 전멸하는 한이 있더라도 어떻게든 연합함대-그중에서도 프랑스 함대에 유의미한 타격을 입힌다는 구상을 품고 있었다. 만일 여기에서 흑해함대가 궤멸 상태에 빠진다고 한들 육로를 통하여 보급할 러시아군이나 영국군에게는 타격이 작았으나, 영국으로부터 협력을 받더라도 아무래도 해로가 우선시 될 프랑스군에게는 그 타격이 결코 작을 수 없던 까닭이다.

거기에 러시아 전쟁성은 프랑스의 참전 의지 자체를 낮게 보았다. 어떻게 해서든 러시아의 인도양 진출을 막아야 하는 영국보다는, 아직 아프리카 정복을 마무리 짓지 못하고서 전쟁에 끼어든 프랑스는 초기에 큰 패배 내지는 타격을 입어 정신적 충격을 받으면 반드시 전쟁에서 이탈하거나 최소한 소극적으로 나올 것이라는 인식이 있던 것이다.

물론 이러한 배경이 있었다고 하나, 흑해함대를 제물로 삼아서 프랑스의 이탈을 끌어내겠다는 이러한 도박수는 사실 평소의 러시아군이라면 하지 않았을 판단이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실제로, 러시아 흑해함대의 맹진에 연합함대는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설마하니, 러시아군이 개전 초기에 흑해함대를 제물로 사용할 거라는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는 이 무렵의 러시아에는 지극히 당연한 판단이기도 했다.

"지난 전쟁에서 우리는 광기의 일면을 엿보았다. 고작 해봐야 한 번의 전투에서 수십만 명이 헛되이 목숨을 잃고 마는 것을 톡톡히 보았다. 그러나 그것이 전쟁을 멈춰야 함을 의미하는가? 패배를 인정하고, 꼴사납게 꼬리를 말고서 도망쳐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그렇기에, 바로 그렇기에 우리는 마지막까지 항전하며 승리를 쟁취하여야 하는 것이다!

필요한 것은 승리. 승리뿐이다! 승리만이 헛되이 죽어간 영령들에게 보답하는 유일한 길이다! 전쟁에 임한 그 순간 부로, 국가는 그 맨 아래에서부터 맨 위까지 오로지 승리만을 생각해야만 하는 것이다!"

바로 위와 같은 총력전 사상이, 지난 대전의 경과를 수도 없이 복기한 끝에 러시아군에서 도출해낸 가장 인상적인 결과물이던 까닭이다. 이는 전통적이고 귀족주의적인 러시아 전쟁성의 노장들이 주도한 변화가 아니었다. 바로 황태자가 이끄는- 보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황태자에게 바람을 불어넣고 있는 러시아의 젊은 장교들이 불어넣고 있는 바람이었다.

그리고 이 무렵 러시아 전쟁성은 조금씩 이러한 젊은 장교들의 보수적 민족주의 사상에 빠르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그들이야말로 황태자를 보좌하여 페르시아 진출을 일시적으로나마 이뤄낸 일등 공신들이었기 때문이다.

대전 기간 내내 프랑스군에게 질질 끌려다니다가 때맞춰 터진 대공황으로 승리를 거저 얻은 노장들보다는,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서 페르시아를 확보한 젊은 장교들이 단연 돋보일 수밖에는 없던 것이다.

"앞으로 단 한 걸음! 단 한 걸음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자랑스러운 우리 러시아의 청년들이여! 모쪼록 나와 함께해다오! 우리 모두 힘을 합쳐, 우리의 후손들이 장차 다음 세기를 자랑스럽게 우리 러시아의 시대라고 말할 수 있게 해보자!"

거기에 황태자 또한 거듭된 승리에 도취해 버린 것도 문제였다. 안 그래도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고서 자꾸 견제하려 하는 아버지에게 환멸을 느끼던 차에, 운 좋게도 페르시아에서의 이변 사태에 끼어들어 페르시아의 굴복을 받아내면서 그는 러시아를 위대하게 만들 영웅이자 전략의 천재로 떠올랐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측근들이 불어넣는 과격한 민족주의 사상에 어떠한 의심도 품지 않았으며, 그들이야말로 자신과 함께 다음 세기를 만들어갈 충신들이라 믿어 의심치 않게 되었다. 이는 그야말로 러시아 정치계에 혁명과도 같은 일이었다.

더 없이 종교적이고 반계몽주의적이던 러시아에서, 가장 과격하고 민족주의적인 세력이 정국의 주도권을 잡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당연히 교회와 귀족 영주들을 위시한 보수파 세력들은 이를 우려했으나, 그들에게는 유감스럽게도 이미 페르시아를 둘러싼 전쟁은 시작되어버린 지 오래였고- 그 전쟁을 주도하게 된 것은 이 전쟁을 처음 시작한 청년 장교들이었다.

그리고 청년 장교들이 원한 것은 더욱 강한 러시아였고, 이를 위해서는 더욱 많은 병사의 피가 필요했던 것이다.

"기관 반속 후진! 키는 좌현 5도! 탄종, 철갑탄! 전 포대 일제사 이후 자유 사격 실시!"

"어, 어? 저 루스끼 놈들이 이쪽으로 옵니다! 반복합니다! 적 전함 충각 시도!"

"정정한다! 기관 전속 후진! 좌현 15도! 탄종은 고폭탄으로! 어떻게든 놈들의 시야를 가려!"

"이미 늦었습니다! 선수가···! 으으윽!"

우지끈-.

결국 러시아 국내의 보수파 세력들이 가능한 한 이들 신진세력이 변명할 여지 없이 참혹하게 패배하기를 기대하고, 러시아의 신진세력들이 전쟁에서 승리하는 대로 보수파 세력을 숙청하겠다며 기세등등해 하는 와중 전쟁은 시작되었고, 보수파 세력들에게는 유감스럽게도 러시아 청년 장교들의 전략은 일단 부분적으로는 들어맞았다.

이 키프로스 대해전에서, 러시아 흑해함대는 일찌감치 전면장갑을 보강하고서 프랑스군 군함들을 향해 충각을 시도했다. 이러한 충각전술은 일찍이 이사 해전에서 그 효용성을 입증한 바 있는, 이 무렵 어뢰와 더불어 철갑선을 확실하게 파괴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어느 것이 프랑스군의 전함이고 어느 것이 영국군의 전함인가를 구분하기는 쉬웠다. 이 무렵 프랑스군 전함들의 선체가 직사각형에 가까운 외형이었던 반면에, 영국군 전함들은 선수가 뾰족하게 튀어나온 사다리꼴 모습을 하고 있었던 까닭이다. 러시아군 전함들은 이 직사각형 모양의 선체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고, 이 때문에 몇몇 영국 전함들이 프랑스군으로 오인되어 충각에 시달리는 불상사가 벌어지기는 했으나- 결과는 확실했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리요! 후열로 물러나겠다니! 당신들, 겁을 집어먹기라도 한 것이오?"

"겁을 집어먹다니, 터무니없는 소리를! 그럴 리가 있겠소? 다만, 우군 함대가 돌출되어 피해가 컸으니 재정비가 필요하다는 것이오! 애초에 그대들 영국인들이 멋대로 뒤로 물러나지만 않았더라도 우군 함대가 피해를 뒤집어쓸 일도 없었지 않소!"

"말조심하시오! 우리가 그대들을 배신하기라도 했다는 거요? 우리 대영제국은 귀국의 우방으로서 이번 대해전에서 맡은 바 임무를 다했소이다!"

이날 대해전의 승패는 연합함대의 압승으로 마무리되었다. 러시아 흑해함대는 기함이 격침되어 제독이 포함에 몸을 피하고 철갑함만 2척이 가라앉았으며, 또 2척의 전함들이 대파되어 나포되는 대신 어뢰로 자침하기를 택하는 등 씻을 수 없는 손해를 입고서 꽁무니를 빼야 했던 반면 연합함대는 1척의 철갑함이 대파되고 2척이 중파, 운 나쁘게 철갑함끼리의 포격전에 휩쓸린 초계함 몇 척이 가라앉았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날 대해전에서 가장 큰 전략적 실착은 다름 아닌 연합함대를 구성하는 프랑스와 영국 양군의 신뢰가 무너졌다는 점이었다. 대해전에서 자국의 함선들이 공격받고 있지 않다는 걸 확인한 영국 함대는 그 즉시 프랑스 함대와 거리를 두며 가능한 한 멀리 떨어져 포격전으로 안전하게 러시아의 전투함들을 하나하나 수장시켰다. 이에 따라 프랑스 함대는 오후에 접어들었을 무렵에는 사실상 홀몸으로 러시아의 전투함들과 육박전을 벌여야 했다.

물론 영국군도 변명거리는 있었다. 대공황 이후로 악화한 재정 속에서 급하게 러시아와의 전쟁을 준비하느라 신규함 건조계획이 대폭 축소되며 한 척 한 척이 아쉬워진 것이다. 그에 반해 프랑스군은 아프리카 정복을 위하여 날로 군비를 증강해가는 상황이었고, 당연히 그 군비증강에는 신규함 건조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요컨대, 영국 지중해 함대로서는 러시아 흑해함대와 프랑스 지중해 함대라는 두 거추장스러운 맞수들을 서로 물어뜯게 내버려 둠으로써 신규함 건조가 대폭 축소된 와중에도 어떻게든 지중해에서의 해상패권을 유지하고자 한 것이다.

"맡은 바 임무를 다했다고? 그게 진심으로 하는 소리요? 하! 정말로 말이 안 통하는구려. 만일 귀국이 계속하여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우리는 더는 귀국의 전쟁에 협력하지 않겠소!"

그렇다고 영국군의 이러한 간사한 행동에 분개한 프랑스군은 떳떳했는가 하면- 또 아니었다. 겉으로는 영국의 배신행위에 분노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이 무렵 프랑스 참모부의 솔직한 감정을 표현하자면 바로 공포였다.

쉽게 말하여, 겁에 질렸던 것이다. 애초에, 이 무렵 프랑스는 진지하게 각오하고서 전쟁에 임한 게 아니었다. 그들은 어디까지나 영국과 충돌하는 일 없이 원만하게 아프리카를 나눠 가지기 위하여 참전한 것이었고, 가능하다면 영국과 러시아 양국을 동시에 소모해 전후 자국이 우뚝 서는 전개를 기대했지, 러시아와 피를 흘려가며 사생결단을 낼 작정이 아니었다.

그런 와중 러시아군이 개전 초기부터 악에 받쳐 달려들자, 아무래도 프랑스로서는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만일 러시아군이 페르시아에서 벌어질 육상전에서도 이런 모습을 보인다면, 프랑스는 감당할 수 없는 피를 흘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더욱 많은 피를 흘릴수록 아직 안정되지 못한 아프리카 식민지배도 흔들릴 터였다.

거기에 유독 프랑스군만을 적대하는 러시아 흑해함대의 모습에서, 영국과 러시아가 내통하였을 가능성을 떠올리지 않기란 아무래도 어려웠다. 그동안 영국과 프랑스 양국이 그리 살가운 사이도 아니었으니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깊이 들어설 필요도, 함부로 전면에 나설 필요도 없소. 알겠소? 우리는 어떻게든 러시아가 인도양으로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하여 참전한 것이지 영국인들을 대신하여 피를 흘려주는 게 아니오. 설령 비겁하다는 소리를 들어도 좋소. 영국인들과 러시아인들이 피를 흘리게 두시오."

그 때문에 키프로스 대해전의 경과를 듣게 된 프랑스 정계의 최종결론은 '무리할 필요 없다'라는 것이었다. 영국과 러시아의 내통 의혹은 젊은이들의 피를 흘릴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프랑스에 있어서 둘도 없이 반가운 소식이었다. 얼핏 그럴듯해 보이는 명분을 내세워 어째서 전쟁에 소극적으로 나서는지를 변명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시점 부로, 프랑스가 페르시아에 파병한 20만 대군은 영국군 병참 장교들의 표현에 따르자면 ‘콧대 높은 짐 덩어리들’로 전락했다. 그들은 영국군의 임전 태도를 문제시 삼으면서도 정작 자신들은 안전한 후방에 머물렀고, 그들의 고압적이고 뻣뻣한 태도는 현지의 민심을 휘어잡는 데에 그리 도움이 되지 못했다.

"도대체 그대들은 무엇 하러 이번 전쟁에 참전한 것이오? 러시아인들과 싸우기 위하여? 아니면 저 아리따운 페르시아 애인들을 만들기 위하여? 그대 병사들의 사생아를 뒤처리하는 것도 이제 지긋지긋하오! 도대체 그대들은 무엇을 하러 이 땅에 온 거요?"

"허, 우리가 직무에 게으르기라도 했다는 거요? 우리는 맡은 바 임무를 다하였소. 그대들과 함께 테헤란에서 러시아인들과 맞서 싸웠고, 이 땅의 청년들을 독려하여 자유, 평등, 박애의 고결한 정신을 일깨워주어 러시아인들과 맞서 싸울 용기를 주었소!"

"그리고 그 페르시아의 용기 있는 청년들은 지금 우리에게 총을 겨누고 있지! 대관절 저 머저리들에게 그따위 혁명정신을 가르쳐서 우리 연합군에게 이득이 될 게 뭐란 말이요!"

영국군에게 있어서 가장 곤혹스러운 사실은 이들이 단지 후방에서 시간만 보내는 것이 아니라 현지 페르시아 청년들을 모아 의용군단을 훈련시켰다는 사실이었다.

프랑스군으로서는 러시아를 상대로 자국 병사들의 피를 흘리지 않고자 페르시아인들을 방패로 삼은 것이었지만, 막상 연합군이 우여곡절 끝에 테헤란을 함락시키고 사실상 연합군의 승리가 확실시되자 이 의용군단들이 총을 거꾸로 겨눴다는 게 문제였다.

페르시아인들의 민족주의자들에게 있어서 러시아가 자국을 침략하는 증오스러운 외세였듯이, 연합군 또한 그러했던 것이다. 페르시아의 민족주의 세력은 꼭두각시 왕족을 내세우고자 했던 영국의 계획에 반발하여 민족의회를 구성해 이란 혁명 공화국의 건국을 선언했고, 프랑스는 공화국 건국에 혹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들 이란 혁명정부를 혁명정신을 추종하는 친프랑스 세력으로 판단한 것이다.

이 시점부터 페르시아에는 세 개의 정치세력이 존재하게 되었다. 러시아가 내세운 나스르 알딘 샤가 이끄는 전통적인 왕정 세력과 영국이 내세운 무자파르 알딘 샤의 입헌군주정 세력, 프랑스가 뒤를 밀어주는 혁명 공화국 세력의 셋이었다.

이에 따라 연합군의 공세 끝에 테헤란이 함락되고 친러 세력이 아제르바이잔 일대로 후퇴한 다음에도 페르시아에서는 내전과 암살, 테러 등이 끊이지를 않았고, 이 내전을 어떻게든 진압해야 했던 건 역전을 노리는 러시아나 못 먹는 감 찔러 라도 본다는 감상으로 혁명 공화국을 밀어주던 프랑스가 아니라 어떻게 해서건 페르시아를 확실한 친영국가로 돌려놓아야 했던 영국이었다.

"나에게 그 항생제를 달라. 내게는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환자들이 무한하게 있으니, 그대들 모두가 의심을 거둘 때까지 무한하게 임상 실험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이팅게일의 이 절규는, 단지 허언이 아니라 점차 장기화할 기미를 보이던 페르시아에서의 전쟁을 바라보는 영국인들의 보편적인 감상이기도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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