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섬 >
하지만 막상 이 무렵 서역에서 항생제의 발명과 암모니아 합성의 성공 가능성에 대하여 갑론을박이 이뤄지고 있을 무렵, 아시아에서 주목하고 있는 건 전혀 엉뚱한 것이었다.
"이토록 거대한 둑이라니···."
한국을 방문한 유구왕 상태는 감탄을 금하지 못했다. 아직 아직 완공되지도 못한, 이제 고작 절반을 넘겼노라고 일컬어지던 댐공사였으나 그것만으로도 깊은 인상을 받을 만했다.
산 중턱에서 옆 산 중턱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벽 안에, 작은 바다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어마어마한 양의 물이 담겨 있었다. 당장에라도 무너질 것만 같은 나무나 흙 따위가 아니라, 석회와 철을 섞어 만들어진 그 우람한 소양강댐은 이 무렵 뭇 아시아인들에게 천하를 통치하는 황제의 위엄을 절로 깨닫게 해주었다.
처음에는 자연경관을 해친다며 공사장 앞을 얼씬거리던 선비들도, 이제는 공사현장을 돌아보며 시를 읊고 가는 것이 또 하나의 풍류가 되어가고 있었다. 예로부터 치수(治水)야말로 황제의 본업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유교 사회였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애초에 다스림(治)이란 무엇이던가. 물(水)과 수저를 입에 가져가는 모습(台)이 합하여 만들어졌으니, 결국 나라를 다스림이란 물을 잘 다루어 백성을 배불리 먹이는 일이다.
그런데 오늘날 황제는 물을 다스리고 있음을 천하만국의 국민이 보는 앞에서 선보이고 있다. 거대한 댐을 쌓아 가뭄에 대비하고, 홍수가 일어나지 않도록 조절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과연 상제가 내리신 귀인이심이 분명하나이다. 풍백과 우사가 하생한다고 한들 어찌 이와 같은 위업이 가능하겠습니까? 천지가 열리고서 오로지 황상께서만이 치수의 이치를 그 몸에 익혀 천하만국의 국민을 풍요롭게 하시니, 요순의 치세마저 황상께서 오늘날 이룩하신 치세에는 미치지 못할 성싶습니다."
유구왕은 그리 말하며 이형을 향하여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그 이마를 땅에 박을 듯 고분고분한 모습은 그가 황제에게 아첨하고자 함을 보여주고 있었으나, 그가 하는 아첨이 그냥 듣기 좋아하라고 하는 소리는 아니었다.
당장에 이 댐공사가 시작된 이래로 경기권에 가뭄이 들지 않게 되었다. 물론 농사라는 것이 매해 일정할 수는 없으니만큼 지난해보다 그 수확량이 크게 주는 경우야 흔히 일어났으나, 배를 곯아 팔자를 탓하던 과거에 비하면 그건 가뭄이라기보다는 그해의 수확을 다소 부족하게 거둔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이렇다 보니 처음에는 남한강의 정기를 함부로 끊어놓는 일이라며 불평하던 이들도, 이 무렵에는 남한강을 넘어 금강산 일대에 새로이 댐을 설치하여 경기권 전역이 그 수혜를 받도록 하고 여기까지 공사가 마무리되고 나면 전 국토에 강이란 강에는 모두 댐을 놓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치수야말로 황제의 권위를 뽐내는 일이요, 농사야말로 천하의 근간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던 유림에게는 이 댐공사야말로 진정 국력을 쏟아부어 반드시 이뤄야 할 국책으로만 보이던 것이다.
"허허, 과찬이시오. 내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한들 어찌 요순의 치세에 비견될 수 있겠소? 짐은 단지 이 소양강에 댐을 놓으라 명하였을 뿐, 이 위업을 이룩한 것은 보로서의 장인들과 우리 대한의 백성이니 그들이야말로 찬사를 받아 마땅하오."
'하여간에 처음이 가장 어렵다더니. 그렇게 훼방을 놓을 때는 언제고, 다들 댐공사에 눈이 돌아가서는···.'
물론 이형에게는 그리 달가운 일은 아니었다. 그야 물론 댐 공사도 중요한 일이었고, 장차 한양이 대도시로서 유지되기 위해서라도 우선 가장 먼저 한강이 안정되어야 하는 것도 사실이었지만 하나같이 댐공사에 눈이 돌아가 어서 다음 댐을 건설해야 한다고 노래를 불러대고 있으니 진저리가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서역에서 항생제가 어떻다느니 인류문명의 진보가 어떻다더니 떠들고 있는 동안에도, 여전히 아시아의 학자들은 항생제의 개발을 효과 좋은 단약이 만들어졌다-즈음으로 받아들였을 뿐이었다. 묵시록의 4기사 중 하나가 은퇴할 거라며 호들갑을 떨던 서구의 황색 언론들이 되려 무안해질 정도로, 심지어는 그것을 익스페디오 개발에 참여한 아주 연구기금의 학자들조차 그 가치에 대하여 잘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나마 서구에서 오랜 세월 유학을 다녀왔거나, 아니면 색목인들과 친분이 있어 서역의 소식을 속속들이 알고 있던 이들이나 이게 정말로 굉장한 위업이구나-하며 자랑스러워했을 따름이었다. 이 탓에 조정에서 직접 나서서 항생제 개발에 대하여 홍보하려 나서니, 옛 진시황이 그토록 찾아 헤맸던 불사의 단약이 바로 저 항생제라는 소문까지 돌았다.
결국, 개항이 이루어진 지도 시간이 흘러 이제 서구의 기물들을 다루는 데에는 익숙해졌어도, 여전히 사고방식은 옛날 그대로인 이들이 수두룩하던 까닭이었다. 그나마 이조차도 아예 서역의 의술에 거부감을 보이던 옛날에 비하면 나아진 모습이라는 게 이형으로서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 댐 공사면 충분할 거라 생각한 것인지 다들 암모니아 합성에 함부로 지갑을 열려고 하지 않고 있으니 원.'
이형은 내심 쓴웃음을 지었다. 코흐가 몸소 나서면서 해결된 페니실린 개발이나 그저 무수한 관료의 피와 땀과 노력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도량형 통일과는 달리, 요즈음 암모니아 합성은 이렇다 할 진전을 보여주지 않고 있었다. 그나마 페니실린 때는 멜론과 곰팡이라는 결정적인 단서라도 알고 있었지만, 암모니아 합성법은 암모니아와 전기라는 단서뿐이었으니 그저 막막할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난이도부터가 달랐다. 멜론은 그저 썩혀서 곰팡이가 피면 그대로 채취하여 배양하면 그만이었지만, 암모니아 합성은 이제 구체적인 실험설계가 필요했다. 전기를 어떻게 써야 할지, 재료는 어디에서 구할지, 용기는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등 그저 막막하기만 하던 것이다.
당연히 성과가 보이지를 않고 있는데, 선뜻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설 용기 있는 자들이 그리 흔할 리가 없었다. 이 무렵 아시아의 제후들은 암모니아 합성법보다는 댐 공사에 더 관심을 보이며 프로이센을 비롯한 유럽의 건설전문가들을 대거 유치해오고 있었다. 당장 언제 성공할지 모르는 암모니아 합성법보다야, 댐공사가 더 현실적이고 빠르게 농업생산량을 개선하는 방법이라 여긴 것이다.
되려 그동안 냉랭하던 서역의 투자가들이 항생제 개발 성공 이후로 눈이 까뒤집혀 아주 연구기금에 접근하고 있음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아이러니하다는 말 밖에는 달리 이 상황을 표현할 길이 없었다.
"한데···."
이형은 흘끗 시선을 주위를 둘러보았다. 유구왕과 따로 할 말이 있으니 자리를 비키라는 신호였다. 이미 이 나라의 정점에 올라선 지 20년이 다 되어가는 왕의 그런 신호 하나 눈치채지 못할 궁인은 적어도 이 무렵의 한국에는 없었다.
그렇게 자리를 비켜줘야 할 이들은 떠나고, 반드시 남아 있어야 하는 이들만 남았음을 확인한 다음, 이형은 천천히 다시 입을 열었다.
"이토가, 그 이토가 맞았소?"
참으로 서슬 퍼런 목소리였다. 그가 어떤 인물인지 누구보다 잘 아는 이형이었기에, 그런 날 선 반응이 나올 수밖에는 없었다. 어찌 모르겠는가?
이토 히로부미.
그 저주스러운 이름을 말이다.
"그렇사옵니다, 황상."
"허, 참."
꾸벅 허리를 굽히는 상태의 모습에, 이형은 너털웃음을 지었다.
유구인들이 그에게 들고 온 소식은 간단했다. 요즈음 유구를 거치는 한국 국적의 배 중에서, 현 일본국의 체제전복을 꿈꾸는 일당이 있다는 것이었다. 일본국을 무너뜨리고 공화국의 건국을 꿈꾸고 있다고 하던가.
처음에, 이형은 이를 그다지 위협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야 조금씩 서구의 사상이 퍼져 나가다 보면 자연히 공화주의도 아시아에 들어오게 될 것이고, 그 첫 번째 시범 타자가 메이지 유신과 같은 체질 개선에 실패하였으며 서구와의 교역도 활발한 일본이 될 거라는 건 짐작하고 있던 바였으니까.
그리고 공화주의자들은 현 대한제국에 있어서 잠재적인 위협이나 다름없다. 처음 설계부터 황실에 의존하도록 만들어진 질서였으니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형은 다만 국가헌병대와 국정원 등에 명하여 일본의 공화주의자들이 함부로 한국 국내나 중국의 공화주의자들과 연계할 수 없도록 잘 감시해두라고 명해두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월척이 걸렸다.
"그래, 그놈이 우리 한국에 숨어들어왔단 말이지···."
빠드득.
이형은 이를 갈았다.
계기는 우연한 것이었다. 국가헌병대 측에서 처음 상소를 올린 유구 측과 연계하여 영남 일대에서 활동하고 있는 일본인 중 현 일본국에서 위험인물로 특별히 지정된 인물들, 개중에서도 지도자급만 뽑아다가 이형에게 보고를 올렸더니 개중에 이토라는 두 글자가 눈에 밟히던 것이다.
이형은 그 즉시 특별히 이 이토라는 인물을 조사하라고 지시하였고, 오늘 유구국과 한국의 친교를 도모하는 이때 한국에 들어와 있는 이토 히로부미가 자신이 알고 있던 바로 그자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야말로 이형으로서는 말문이 막히고 코가 막히는 일이었다. 다름 아닌 바로 그 이토 히로부미가 그가 다스리는 한국에 들어와 있었다니, 어처구니가 없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동시에 내심 기쁘기도 했다.
'그래, 삿초 놈들이 무진 전쟁에서 이겼다면 모를까, 막부가 전쟁에서 이겼으면 그놈은 일본에서도 오갈 데가 없는 역적이지. 아마 그래서 일본인도 많이 들락거리고 적당히 번화해서 숨기 좋은 동래를 골랐던 거겠지만···. 이 우라질 놈아, 넌 망명지를 잘못 골라도 단단히 잘못 골랐어.'
이형은 입꼬리를 뒤틀었다. 전쟁에서 승리하여 메이지 유신의 주역이 된 이토 히로부미라면 모를까, 지금의 그는 그저 전직 영국 공사관 테러범이자 감히 정부에 칼을 들이댄 역적이었고 현재 진행형으로 일본의 체제전복을 꾀하는 현직 국가반역자였다.
물론 범죄인 인도조약에 따라 사로잡은 다음에는 형을 집행하기 전 일본에 넘겨야겠지만, 그전에 고문 정도라면 상관없다. 고문이 필요악으로 받아들여지는 시대인 까닭이다. 거기에 아직 아시아는 완전히 전근대적 사고방식에서 탈피하지 못했다.
설령 고문하다가 역적이 죽더라도 그 시체만이라도 양도받아 소금에 절여 효수할 수 있다면, 일본에서도 뭐라 뒤에서 불평할지언정 외교적 분쟁 소재가 될 여지는 적었다. 현 범 아주 조약기구의 맹주는 엄연히 한국이었으니까.
그렇다. 고문하다가 죽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편하게는 못 죽을 거다.'
이형은 과거 청나라 시절의 고문 기술자들이 아직도 살아있다는 사실에 마음속 깊이 감사했다.
사람을 가능한 한 고통스럽고 잔인하게 천천히 죽이는 데에는 이 세상에 그들을 능가할 이들이 없었으니까.
이토 히로부미로서는, 그야말로 영문도 알 수 없는 이유로 생전 만나보지도 못한 망명지의 황제에게서 영문도 알 수 없는 원한을 산 격이겠지만 말이다.
"정말로 잘 해주었소. 이제 뒷일은 맡겨만 주시오. 내 곧장 사람을 보내어 곤장이라도 몇 대 후려갈긴 다음 옥에 가둘 테니까."
이형은 만족스럽게 웃었다.
이토 하나 잡아 족쳐봐야 한국 국내에서 활동 중인 일본계 반체제분자들을 일망타진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최소한 분풀이로는 충분했다. 처음부터 공화주의를 외친 것도 아니고 존황양이가 실패로 돌아가자 돌아선 변절자에게 제대로 된 조직이 따를 리도 없는 것이다.
물론 유구왕을 비롯하여 탐문에 동원된 국가헌병대, 국정원 등에서는 황제가 이리도 관심을 두는 거 보니 이놈이야말로 우두머리인가보다-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실제로 파다 보니 영국 공사관 테러니 뭐니 해서 어쭙잖게 굵직굵직한 사건들에 여럿, 연루되어 있다 보니, 이런 오해가 생길 수밖에는 없었다.
"망극하옵니다, 황상. 하오나, 오롯이 우리 유구국만의 힘으로 얻은 위업은 아니었사옵니다. 대마도 도주의 협력이 없었더라면, 미처 다 파악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대마도 도주가···?"
그러나 이형의 감사 표시에 대한 상태의 반응은 또 예상외의 것이었다. 이형으로서는 왜 그 이름이 여기서 나오는지 몰라 눈을 깜빡거렸다. 도쿠가와 정권과 화친을 택하고 영국에도 함부로 바다에 나오지 않겠다 약속한 이상 대마도는 잊어야겠거니- 생각하고 있던 까닭이다.
그러자 유구 국왕 상태는 이형이 어리둥절해 할 줄 알았다는 듯이 재빠르게 고개를 숙여 말했다.
"그렇사옵니다. 대마도주 소 요시요리(宗義和)는 대한제국을 깊이 흠모하는 듯했습니다."
"···음."
여기에는 이형도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다.
엄밀하게 말해서, 현 도쿠가와 정권은 폐번치현을 이룩하지 못했다. 판적봉환을 통해 각 번에서 가지고 있던 토지와 호적을 중앙조정에 반납하여 각 번을 다스리던 반주들을 중앙정부에서 임명하는 지번사로 격하되기는 했으나, 여전히 각 번은 현지 가문들에 의하여 다스려졌다.
도쿠가와 정권도 이 상황의 문제점을 자각하고서 지번사들의 권한을 하나둘씩 빼앗아 오고 있기는 하지만, 그 태생이 무사 정권이었던 탓에 영주들의 존재 그 자체를 부정하는 데까지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겉으로는 고분고분한 척을 해도, 여전히 중앙정부를 무시하고서 은근히 자신들의 방식을 고집하는 번들이야 수두룩하다.
큼직큼직한 혼슈나 규슈 등지의 섬들도 그럴진대, 하물며 구석진 섬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대마도와 좌도도(佐渡島) 같은 경우에는, 판정봉환에서조차 예외가 되어 에도 막부 시절 도주 지위나 봉행소가 고스란히 유지되고 있는 판국이다.
그런 정세 속에서, 대마도주가 일본 사절단 틈에 끼어서도 아니고 보호국이긴 해도 엄연히 다른 나라인 유구를 통해서 한국에 그 존재감을 드러냈다?
'우리도 독립, 내지는 중립지대로 인정받고 싶다, 이건가.'
결국, 요는 참견받고 싶지 않다는 것일 터였다. 그동안 살아온 방식이 있으니 그 살아온 방식 그대로 살고 싶은데, 요즈음 자꾸 조정에서 이거 해라 저거 해라 간섭하고 있으니 그동안 뜸하던 한국에 다시 치근덕거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유구에서, 그것도 왕이 몸소 그 전령 역할을 자처한 거 보면 유구에서도 그런 대마도의 움직임을 반기고 있다. 자신들 혼자서 붕 떠 있는 것보다야, 대마도를 비롯한 주변 섬들과 공조해 중립지대를 만들어두고 싶은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가장 이상적인 정세는 하와이가 그렇듯이 한국과 일본 양국이 충돌을 피하고자 그들과 같은 섬을 완충지대로 사용하는 것일 테니 말이다.
"내 기억해두리다."
잠시 망설이던 이형의 대답은 다소 모호한 것이었다. 무슨 의도로 그런 말을 꺼냈는지는 알아차렸고, 대마도주가 어떤 구상을 품고 있는지도 알아차렸지만, 이 자리에서 무언가 확답을 돌려주기는 곤란하다는 뜻이었다.
그럴 줄 알고 있었던 듯, 유구왕 상태는 선선히 고개를 숙였다. 결국, 그에게도 대마도는 남의 땅이고, 이렇게 황제가 듣는 앞에서 이야기를 꺼내준 것만으로 최소한 그 의리는 다한 격이었으니까.
하지만 이형의 마음은 그리 편치 못했다.
'차라리 만주만 없었으면 한 번쯤 대마도 독립안도 생각해 봤겠는데, 일본 쪽 분리주의 운동을 괜히 밀어주다가 우리 쪽까지 불이 옮겨붙는다면···.'
분리주의 또한, 공화주의만큼이나 대한제국이 내포하고 있던 잠재적인 위협 중 하나였던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