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정 >
이형의 설계에 관하여 이야기하자면, 우선 제1단계는 분열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를 위하여 준비되었던 것 중 하나가 앞서 수차례 설명된 개개인의 가치판단에 근거한 의견대립이었다. 달리 말하자면, 한족 민족주의자 간의 의견대립과 분파 분리는 어디까지나 그가 계획한 일 중 하나일 뿐이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지적해야 할 것은, 이 한족 민족주의자는 전체 중원의 인구 중에서 한 줌에도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애당초 한국에서 민족주의를 배워온 이들이 절대다수를 차지하는데, 이형의 재위 기간이 20년이 되어가는 시점에서 한족 민족주의자들이 그리 우후죽순 마구 솟아날 수도 없는 것이다.
당장 아주 형사경찰기구에서 추정하고 있는 사상범들의 숫자는 수천 선을 오가며 1만을 넘기지 못하고 있었다. 얼핏 많아 보일 수 있으나, 이 무렵 중원의 인구를 생각해보면 극히 일부만이 분리주의 운동에 참여하고 있던 셈이다.
그렇다면 그보다 많은, 절대다수의 백성은 무엇을 가지고서 분열시켜야 했는가?
"영길리의 명망 높은 선비 애덤 스미스라는 자가 국부론이라는 자신의 저서에서 말하기를, 분업에는 세 가지 장점이 있다고 하였다. 생산성 향상이 그 첫째이고, 화폐의 사용이 그 둘째이며, 규모의 경제와 시장 사회의 형성이 그 셋째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오늘날 산업혁명이라고 하는 기계와 공장의 시대를 맞이하며 진실로서 받아들여졌다.
이 자그마한 공장에서도 능히 효험을 보았던 일을, 장차 아주라고 하는 광활한 대륙에서 도입한다고 생각하면 어떠한가? 누군가는 논밭을 경작하여 백성을 배불리 먹일 것이고, 누군가는 백성에 필요한 잡기들을 만들 것이며, 누군가는 백성을 지킬 것이고, 누군가는 물건을 사고팔 것이다. 그리하면 능히 아주는 부유해지리라.
짐은 이러한 국가 간 분업이 장차 아주의 공통된 번영과 공존에 크게 이바지하리라 믿노라."
이것이 이형의 대답 중 하나였다. 이형은 분업을 명분 삼아 각 나라가 또렷한 개성을 가지도록 주문하였다. 대외적인 명분은 분업을 대륙 급으로 키우자는 주장이었던 만큼, 이는 그야말로 유럽의 경제학계를 광분하게 하였다. 사실상 아시아에서 돈 한 푼 안 받고 초대형 자본주의 실험을 대신 치러주겠다며 나선 격이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는 후일 항생제가 개발되었을 때 서역의 학자들이 한국의 손을 들어준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적어도 경제학자들이 보기에 한국의 황제는 미치기는커녕 그동안 논의만 되고 있었던 학설들을 마구 실현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되려 자연과학을 파던 과학자들보다 경제학자들이 아시아의 발달에 더욱 호의적이었던 것이 아이러니할 따름이었다.
각설하고서, 이러한 국가 간 분업은 이들 아홉 제후국이 하나로 통합되는 데에 또 한차례의 난관을 안겨주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네. 요즈음 쌀이 너무 값싸져서 이제 우리 초나라에서 되레 손해를 볼 지경이야. 양으로 경쟁하는 것에도 정도가 있는 것이지, 이 이상 쌀이 값싸진다면 대관절 논밭을 경작하여 먹고사는 농민은 어떻게 먹고산다는 말인가? 다음 회맹에서는 이 쌀의 통제를 제안해보세나. 다 같이 먹고 살자고 이러는 거 아닌가.
천하의 근간은 이러니저러니 해도 농민이 아니던가. 다소나마 쌀의 가격이 오른다면 농민이 부유해질 것이고, 농민이 부유해지면 장차 온 천하가 부유해지지 않겠나?"
"그 의견에는 반대일세. 그야 물론 농민들에게는 유감인 일이나, 당장 쌀값이 오른다면 우리 제나라의 노동자들은 그럼 어떻게 살라는 말인가? 만일 쌀값이 오른다면, 산에서 광독이 새어 나와 매해 농사를 망치는 우리 제나라에서 그 타격을 감당해야 하지 않은가. 그렇다고 이제 막 사업을 시작한 우리 사업가들에게 임금을 올리라고 강요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건 아무래도 어렵네. 차라리 이번에 새로 기금을 한 푼 두 푼 모아 큰 조선소를 세워보는 건 어떤가? 이제 이 중원에도 큼직-한 조선소가 하나쯤은 있을 때도 되었지."
"글쎄, 그보다는 기관 차량을 만들 기관차 공장을 세우는 것이 우선이 아니겠는가? 작금의 천하를 보세. 모두 상국과 붙어있는 해안가만 크게 번영하고 있을 뿐 내륙에는 그 혜택이 조금도 돌아가고 있지를 않네. 이것이 무엇 때문이겠는가? 당연히 아직도 철도가 부족하여 교통이 원활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공교롭게도 아직도 우리 위나라에는 철도를 놓을 부지들이 아주 많네. 또, 비록 정주에는 미치지 못하나, 그런대로 중원의 배꼽과 가까이 있다고 자부하고 말일세. 장차 이 아주 대륙이 번영하려면 마땅히 철도가 우선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조금 더 절실한 이야기를 해보겠네. 요즈음 파사 땅이 영 심상치 않아. 전란이 길어지니 전란을 피하여 이리저리 도망치는 난민들도 늘었으나, 전란의 영향을 받아 공연히 날뛰는 마적 떼들도 크게 늘었어. 본래는 노서아가 감당하고 있었으나 그들은 요즈음 완전히 파사 땅에 눈이 돌아갔으니, 장차 전란이 더욱 길어진다면 저들이 우리 아주 땅까지 침범하려 들지도 모르네.
우선은 이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조금이나마 군비증가엔 힘써야 하지 않겠는가?"
"그건 과장이 조금 심하군그래. 내 그대들 속을 모를 것 같나? 요즈음 천하가 평안하여 장차 진나라에 갈 지원이 줄어들 것 같으니 어떻게든 위기를 만들려 보려 애쓰는 거 아닌가. 내 말이 틀렸나?"
바로 각 나라의 개성이 뚜렷해지면서 서로의 이해관계가 충돌하기 시작한 것이다. 시작은 회맹에 직접 참여할 수뇌부 간의 의견충돌이었으나, 진정한 여파는 각국의 백성에게서 이루어졌다. 서로 마주쳐도 어딘가 대화가 성립하지 못하고서 헛돌았던 것이다.
이는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살아온 이와 농촌에서 태어나 농촌에서 살아온 이, 항구에서 태어나 항구에서 살아온 이는 사고방식도 행동 양상도 다를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지역갈등이 되는 것이고, 서로에 대해 몰이해가 되는 것인데 하물며 이제는 나라조차 다르다고 한다.
막연한 거리감과 무지에서 나오는 모멸은 필연적인 순서였다.
"어휴, 초나라 놈들은 도통 발전이 없어. 나라가 크면 뭐하나. 저 거대한 영토의 태반이 농지인데. 사람이 많으면 뭐 하는가? 글도 제대로 못 쓰는 무지렁이들이 널리고 널렸는데. 아직도 지주들 아래에서 논 갈고 돼지 치는 걸 그저 팔자인 줄만 알고서 살고 있으니 원, 쯧쯧!"
"재수 없는 제나라 샌님들. 저놈들은 뭘 그리도 잘 났다고 만나기만 하면 으스대는 거야? 우리가 없으면 진즉 굶어 죽었을 놈들이 하여간에 먹물깨나 먹었다고 재기는. 그리고 도시로 나가면 물산도 풍부하고 더 부유한 건 우리 초나라가 아닌가. 내내 근근이 살아가다 이제 와서 조금 살만해졌다고···. 어휴, 하여간에 상종을 말아야지···."
"대관절 저 청나라 놈들은 정체가 뭔가? 천명을 잃었으면 이제 만주로 돌아갈 것이지, 왜 아직도 화북에서 얼씬거리고 있는 거지? 만주 놈들이 나라를 쥐락펴락하는 걸 또 참고 사는 놈들은 뭐고? 하여간에 북경 놈들은 노예근성에 찌들어서는 원."
"옛 전국칠웅이니 뭐니 하던 시절에도 그러더니. 진나라 놈들은 전쟁이 아주 그냥 몸에 뱄나? 저건 뭐 나라가 군을 가진 건지 군이 나라를 가진 건지 분간이 가지를 않는구먼. 이미 혼자서는 감당하기도 어렵다면서, 이번에 또 군비를 늘린다지? 역모라도 꾸미는 건가? 저렇게 무력만 불려서야 언제쯤 백성을 배불리 먹일 건지 원."
"쯧, 하여간에 노예근성에 찌든 놈들 같으니라고. 아직도 지주 놈들 밑에서 돼지나 치면서 사라면서도 뭐가 잘못되었는지도 모르고 있으니 원. 너희가 그리 우리를 모멸해봐야 너희에게 스스로 경작할 한 마지기의 논밭이라도 있느냐?"
초는 가장 부유했으나, 그 커다란 영토와 무수한 인구 탓에 근대화를 진척하기 어려웠다. 제나라는 풍부한 지하자원 덕분에 가장 빠르게 산업화에 성공했으나 광독 탓에 농사가 어려워졌고, 청나라는 만주인 왕조라는 한계 탓에 멸시되고 따돌림을 당했다. 상대적으로 낙후된 내륙국은 꼬질꼬질하다 멸시되었고, 월국이나 장국은 아예 그들이 한족 민족국가임을 부정했다.
진나라는 특유의 군국주의 탓에 멸시되었으나, 이 군국주의 덕분에 진나라는 강력한 중앙군을 내세워 지방 군벌들을 빠르게 복속시켜 조선을 비롯하여 둘뿐인 토지개혁을 완성하고 백성의 지지 위에서 중앙집권에 성공한 제후국이었다.
이렇듯 각국은 각자의 또렷한 개성을 가지며 조금씩 분화되어갔다. 하지만 이조차도 결정적이지는 못했다.
그리고 그 결정타는 이형에게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 * *
이 '결정타'를 가능한 한 사서에 기록된 그대로의 모습으로 서술해보겠다.
"허, 허억!"
"폐하! 무사하십니까? 폐하!"
1883년 초여름.
황제는 잠에서 깨어나면서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당연히 황제의 비명은 그간 조용하던 궁궐에 느닷없는 소란을 일으켰다. 당장에 궁인들과 근위병들이 뛰어왔고, 늘 조용하던 황후마저 매우 놀라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래도 황제는 그를 찾아온 이들에게 단지 "괜찮다"라는 말만을 반복할 뿐이었다. 하지만 황제는 온통 식은땀에 젖어 있었으며, 얼굴은 새하얗게 질렸고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누가 봐도 황제의 용태는 좋지 않아 보였다.
이에 매우 놀라 황후가 찾아오니, 그제야 황제는 그가 겪었던 기이한 일에 대하여 말하였다.
"꿈을 꾸었소."
"아니 그토록 대담하시던 폐하께서 그까짓 악몽에 이리도 동요하시다니요. 이게 어쩐 일이란 말입니까."
"내 꿈에서 시황제를 뵈어 크게 꾸짖음을 듣고야 말았소."
"시황제라니··· 진시황제를 말씀하시는지요?"
황제는 그 이상 대답하지 않았으나, 다만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곧 긍정이었다. 단번에 궁궐이 발칵 뒤집혔다. 꼭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음이 분명하였다. 황제가 데운 물에 몸을 씻으며 마음을 가라앉히고서 가볍게 미음으로 배를 데울 무렵, 이미 해도 뜨지 않은 이른 아침 급히 부름을 받은 조정의 고관대작들이 궁으로 불려 왔고 의회가 소집되었다.
하여 황제는 비로소 혈색을 되찾은 다음 평소와 같은 원수복이 아닌 황룡포를 입고서 그의 충신들을 만나, 지난날 꾸었던 꿈에 관하여 이야기하였다.
"내 어젯밤 시황제를 뵈어, 「네가 이 천하를 통일한 지도 어언 10여 년이 넘었거늘 어찌 아직도 맹약을 지키지 않느냐?」고 꾸짖음을 받았소."
"맹약이라니요, 폐하. 그것이 무슨 말씀입니까?"
"내 지난날 장안에 머물 적에 노국에서 보낸 폭도의 손에 크게 해를 입었던 것을 모두 기억하실 것이오. 그날 나는 염라국 병사들이 이르기를 본디 죽을 운명이라 하였소. 하여 하늘이 노랗고, 저 멀리 삼도천이 보이거늘. 염라가 보내었다는 병사들과 아직 내게는 할 일이 남아있노라 씨름하고 있자니 하늘에서 흑룡이 내려와 염라국 병사들을 멀리 쫓아내는 것이 아니겠소.
하여 비로소 염라국에 풀려났노라 감사하여 넙죽 절을 하자니, 그 흑룡이 울어 누런 하늘에서 검은 비가 내리는 것이오. 대관절 이게 무슨 영문인가 하여 다만 흑룡이 울음을 멈추기만을 기다리자니, 비로소 그 흑룡이 사람으로 변하거늘. 그분이 내게 말하기를 「나는 진국의 영정(嬴政)이라 하는 사람이오」 하시는 게 아니겠소?"
"허, 허어···."
참으로 요사스럽고 영험한 경험인지라, 누구 한 사람 감히 입을 열지 못하고서 가만히 듣고 있는데. 황상께서 돌연 울음을 터뜨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에 놀란 궁의 고관대작들이 어쩔 줄 모르며 두런거리니, 황상께서 대성통곡을 하시며 말씀하시기를.
"시황제께서 내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우리 진국의 도량을 과대평가하여 무리하게 천하를 하나로 합한 끝에 진이 망하고 이세황제가 한낱 환관의 손에 죽었으며 내 무덤이 파헤쳐지고 함양이 이처럼 영락하였으며 나 또한 귀신이 되고 말았거늘, 이 어찌 목 놓아 슬퍼하지 않을 수 있으리오? 하나 이미 벌어진 일이오, 장장 2천 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이 흐르고 말았을진대 어찌 되돌릴 수 있겠는가?
하여 다만 내 너에게 부탁하기를, 현세에 돌아가거든 내 능을 찾아 천하가 이 죄인이 마음속 깊이 통회(痛悔)하고 있음을 알리거라.」하셨소. 하나 이 미련한 놈은 그 은혜를 잊고서 다만 목숨을 부지하였던 것만을 즐거워하였으니, 이 어찌 배은망덕한 놈이 아닐 수 있겠소. 짐은 천하의 둘도 없는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하교)라오."
하시니, 눈물을 흘리지 않는 이가 없었다.
이에 총리대신 김윤식이 제자리에 엎드리며 더욱 소리 높여 대성통곡을 하며 말하기를,
"황상, 본디 사람이 꿈에서 깨어나거든 그 꿈을 잊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어찌 그것이 황상께서 의도하심이겠습니까? 황상께서는 아직 젊으시며 오늘 비로소 그 은혜를 떠올릴 수 있었으니, 보은하고자 한다면 아직 늦지 아니하였습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하였다.
그제야 황상께서는 옥루(玉淚)를 그치시며 말씀하시기를.
"경의 말이 옳소. 내 꿈에서 시황제께 전해 듣기를 「장안에 다시 가거든 동현의 원산원(驪山園)이라는 땅이 있을 것인데, 내 능을 지을 적에 수은을 흔히 써 작황이 시원치 않아 백성의 원성을 사는 땅이 있을 것이다. 그 땅을 조금 파면 진흙으로 빚은 우리 진국의 병사들이 나올 것이니, 그 땅이 바로 내가 묻힌 곳이오.」 하셨소.
진왕 이재선에게 명하건대, 당장에 공사를 시작하여 시황제께 보은할 수 있도록 하라."
하였다.
이를 의심하는 이들도 많았고, 황제가 초여름에 기가 허하여 헛것을 본 건 아닌가 하는 의견도 많았으나, 그래도 황명인데 누가 감히 함부로 입을 놀리겠는가. 곧장 전보로 진국에 황명이 날아들었고, 진국에서는 그 즉시 병사들까지 동원하여 시황릉 수색에 나섰다.
그렇게 시황릉을 수색하기를 한 달여. 양진혁이라는 군관이 땅을 파던 중 사람 얼굴 형상의 자기를 발견하였다. 이를 기이하게 여긴 양진혁은 혹 이것이 황제가 꿈속에서 들었다는 진흙으로 빚은 병사가 아닌가 하여 부대에 보고하였고, 곧장 인부들이 모여 땅을 파보니 족히 100기가 넘는 병마용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황제의 꿈이 현실로 드러난 것이다. 놀란 병사들은 곧장 진국 조정에 보고하였고, 진국 조정은 다시 병마용을 땅에 파묻게 시키고서 함부로 시황제의 무덤을 파헤친 무례에 용서를 구하고자 진왕 이재선이 몸소 여산에 제사를 지낸 다음 한양의 조정에 보고하였다.
전보로 소식을 전해 들은 황제는 앓던 이가 빠졌다는 듯이 껄껄거리며 웃었다.
"내 비로소 그날의 보은을 하게 되었구나! 여봐라. 무엇들하고 있느냐? 시황제의 넋을 달래지 않고!"
그 뒤는 일사천리였다. 범 아주 조약기구에 속한 모든 제후국이 나서 제례를 준비하였고, 정무를 보아야 할 왕들마저 정규회맹이 아님에도 불려 와야 했다. 족히 10만이 넘는 인파가 모였고, 황제와 황후 부부가 몸소 나서 그들을 이끌었다.
황제는 면류관을 쓰고 곤복을 입은 채 공식 석상에 나섰다. 스무 해 만에 일이었다. 황제가 몸소 엄숙하게 제례문을 읽는 가운데 시황제의 능이 이 땅에 있음을 알리는 비석이 세워졌고, 진왕 이재선은 옛 진(秦)의 천기를 이은 군주로서 대대로 시황릉에 제사를 올리게 되었다.
시황릉이 역사에서 사라지고 장장 2천 년의 세월이 흐른 끝에 비로소 시황제는 후세에게 제삿밥을 얻어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진시황릉비에 새겨진 비문의 첫 문단은 간단하였다.
『천하대세합구필분(天下大勢合久必分)』
천하는 합쳐져 있으면 반드시 나누어지는 것이 이치이니, 곧 시황제의 넋을 달래며 시황제 또한 힘으로서 천하를 억지로 합하였음을 후회하였노라 세상이 알게 하기 위함이었다.
황제가 보위에 오른 지 딱 20년이 되던 날을 기념하는 데에 더없이 적합한, 뜻깊은 제례가 아닐 수 없었다.
"꿀꺽, 꿀꺽, 꿀꺽, 꺼헉···. 됐다. 이걸로 내일 아침은 조졌다! 으흐흐!"
그 초여름 날 황제가 유독 안색이 좋지 않았던 것은 전날 몰래 러시아에서 들여온 지독한 술을 일부러 마셔뒀기 때문이라는 건, 잊히는 게 좋을 사실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