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폭군 고종대왕 일대기-331화 (331/530)

< 고뇌 >

마찬가지로 1890년, 영국 런던.

"일이 꼬일 대로 꼬여버렸군."

대영제국 수상, 윌리엄 이워트 글래드스턴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의 시선이 향하고 있는 곳은 집무실 한 쪽에 놓인 커다란 지도였다. 더욱 정확히는, 인제야 겨우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페르시아 내전의 전도였다.

지도로 보이는 페르시아는 온통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그건 곧 친영파 무자파르가 이끄는 페르시아 신성군이 마침내 페르시아의 완전한 지배권을 취득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혁명공화국 세력은 이미 축출된 지 오래고, 다만 마잔다란과 북 호로산 일대를 위시하여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일부 주만이 여전히 친러파 세력의 초록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전쟁이 뚜렷한 전선이 존재하지 않는 산발적인 유격전으로 변모되며 질질 끌게 되었으나, 결국 최후의 승자는 대영제국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조금도 기뻐할 수 없었다.

"시간을 너무 많이 줘버렸어."

글래드스턴은 손톱을 물어뜯었다. 그의 시선은 이미 페르시아 전도를 떠나 또 하나의 지도를 향하고 있었다. 그건 중동 및 인도 제국과 인도차이나 반도를 배제한 아시아 대륙을 표시한 지도였다. 달리 말하자면, 범아시아 조약기구-한국의 세력도였다.

사실, 페르시아 내전 그 자체만 놓고서 본다면 영국의 손실은 절대 크지 않았다. 프랑스 지중해 함대에 상당한 소모를 강요하면서 동시에 러시아 흑해함대를 반쯤 궤멸시켰고, 그 이후 벌어진 지상전에서 프랑스의 고의적인 훼방으로 골머리를 앓기는 했으나 첫 3년간이라면 모를까 그 뒤로는 페르시아인들의 땅에서 페르시아인들의 돈으로 페르시아인들의 피를 흘리며 싸웠다.

이 전쟁에서 신생 페르시아 정부는 그들 땅에서 벌어진 열강 간 전쟁 때문에 전 국토가 황폐해졌을 뿐 아니라 민간인 사상자를 포함하여 70만에 달하는 피를 흘렸으나, 그 결말은 이제 영국에 막대한 재정부채를 지고서 보호국화 되는 것만이 남아있었다.

물론 글래드스턴은 페르시아인들을 크게 동정하지 않았다. 되려 그들의 무지함을 증오하고 있기도 했다. 처음 영국을 등지고서 독자노선을 꾀한 시점에서, 저들의 결말은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러시아를 끌어들인 보람도 없이 말이다. 다만 더욱 많은 영국 청년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을 뿐. 한 사람의 자유주의자이기 이전에 영국인으로서, 글래드스턴은 도통 페르시아인들을 좋아할 수가 없었다.

당연하게도, 영국의 정치인으로서도 말이다.

"절름발이 티무르도, 칭기즈칸도, 알렉산드로스도 아닌 아우구스투스였다니."

글래드스턴은 지끈거려오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대영제국의 수상으로서, 그는 요즈음 아시아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속속들이 전해 듣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오대양을 지배해야만 하는 대영제국이, 아무리 인도라고 하는 부드러운 아랫배를 자극당했다고 하나 그중에서도 가장 거대한 태평양에서 일어나는 변화에 눈치채지 못하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렇게 속속들이 전해 듣고 있었기에, 글래드스턴은 더더욱 골치를 썩힐 수밖에 없었다. 처음 조선에서 만주를 대신하여 중국을 분할통치하겠다고 나섰을 때, 사실 그를 위시한 영국의 정치가들은 길어야 20년일 거라 추정했다. 분할통치라는 게 말이 쉽지 실제로는 얼마나 고차원적이고 지저분한 행정적, 첩보적 뒷공작이 필요한지는 인도를 통치하던 그들이 가장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설픈 분할시도는 반발을 낳는 법이다. 외부로부터의 침략을 분명히 각인시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한번 침략을 각인하게 되면, 사분오열 되어있더라도 쉽사리 뭉친다. 우선은 외적부터 제거하자는 목소리가 힘을 얻는 까닭이다. 그걸 다시 흩어놓으려면, 보다 많은 노력과 국력이 필요하다.

그런 고차원적이고 악질적인 통치법을 식민지 한번 통치해보지 못한 전근대 비문명 국가에서 가능할 리가 없다. 그리 생각했던 것이었지만-이 무렵 아시아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달랐다. 한국은, 아니 조선은. 저들의 손을 더럽히지 않으면서도 영국인들조차 미처 생각하지 못한 악질적이고 기상천외한 수를 동원해 그들을 제외한 나머지 전부를 갈가리 찢어버리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저 황제가 노쇠하여 전면에서 물러날 무렵이면 천 년 제국이 완성될 판국이야. 허, 나 참. 전쟁의 귀재인 줄 알았더니 통치술에서도 재능을 보이다니. 정말이지 인간미가 없구먼 그래."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안 그래도 야당인 보수당이나 함께 연립내각을 유지하고 있는 노동당의 눈치를 보느라 국내사안 만으로도 충분히 정신없는데, 요즈음 한국의 성장은 그야말로 끔찍했다. 아직 흔들 방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이제부터는 저 거대한 제국이 흔들리는 것 자체가 자충수다.

한국이라는 머리가 사라지는 순간 아시아 전역이 흔들릴 테고, 그럼 대공황 회복에 지대한 공헌을 해준 아시아 시장과 대 아시아 무역흑자가 공중분해 된다. 그 때문에 찾아올 경제적 혼란을 생각하면 지금은 가만히 두는 게 나았다. 나았었지만-이제는 조금 달라졌다.

한국에서, 1만 톤급의 상선을 건조해내고야 말았다. 저들의 해군병기창에서 건조된 상선을 말이다. 대외적으로는 수송선이라고 말하고 있으나 어차피 군문에 속해있으면 수송선이고 민간에 팔린다면 상선이 아니겠는가.

물론 아직 상징적인 1척뿐이고, 대량으로 양산되어 민간에 풀리려면 하려면 못해도 10년에서 15년은 더 필요하겠지만-.

"극동의 아우구스투스가 식민지 경쟁에 관심이 없으면 좋겠는데."

보다 중요한 건, 이제 한국이 단지 열강의 배를 대거 사들이는 물주가 아닌 함께 해상 패권을 두고 경쟁할 경쟁자가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본이야 그들 영국에서 고의적으로 키워둔 2군이지만, 한국은 다르지 않은가. 저들은 이미 지역열강을 넘어 본격적인 열강의 반열에 이름을 올리고 말았다. 이제 더는 내려다보는 것이 아니라, 조금만 고개를 돌려도 눈이 마주치는 상대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건 글래드스턴에게 두 가지 선택을 강요하고 있었다. 한가지는 룰 브티라타니아가 지배할 오대양에서 태평양을 빼놓으면서 한발 뒤로 양보하는 전략이고, 다른 한가지는 이 새로운 대륙의 패자를 가둘 포위망을 형성하는 전략이다.

그리고 솔즈베리 후작이 이끄는 보수당은 전자를 원하고 있었다. 당장은 러시아가 더 중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라는 걸 글래드스턴은 잘 알고 있었다.

"신대륙의 졸부들만으로도 벅찬데, 한국마저 날뛰기 시작한다면···."

그는 탁자 위에 펼쳐진 한 장의 서류를 내려다보며 머리를 싸맸다. 그 서류에는 미국이 범 아주 조약기구를 본떠 미대륙을 아우르는 새로운 국제기구를 형성하고자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파나마 운하 개통은 그 예고편에 불과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도덕 정치를 내세운 러더퍼드 B. 헤이스 대통령의 통치 아래 미국은 꾸준한 군비증강을 거듭해왔다. 군국주의자라는 오명을 쓰면서도 말이다. 대외적인 명분은 혹시 모를 남부에서의 재반란과 유색인종을 향한 대규모 폭력사태에 대비한다는 것이었고, 그 자신은 실제로 그렇게 믿었는지도 모르겠지만-미국의 군비증강은 분명하게 미 대륙 정세의 변동을 가져왔다.

당장에 유색인종들에게는 박수를, 남부인들에게는 저주를 받으며 8년간의 재임 기간을 마친 헤이스에 이어 대통령에 오른 제임스 가필드가 무엇을 했는가를 떠올리면 글래드스턴의 불안은 단순한 불안이 아니었다. 도리어 이미 코앞까지 다가온 현실적인 위협에 가까웠다.

중남미의 식민지 통제력을 회복하려는 스페인 왕국의 위협에 맞서 1886년에 카리브 해에 함대를 배치하는 걸 넘어서, 1887년에는 아프리카 서북쪽 카나리아 제도까지 함대를 파병해 끝내는 프랑스의 중재 아래 스페인에서 두 번 다시 미대륙의 일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사실상의 항복문서를 받아낸 것이다.

그건 더는 미국이 삼류 열강 신세에 만족하지 않고서, 분명한 열강으로서 존중받기를 원한다는 의사표명과 같았다.

"페르시아, 캐나다, 이제는 말라카까지. 하느님께서도 무심하시지. 왜 하필이면 내게 이리도 시련만을 내려주시는 건가."

참으로 골치 아픈 이야기였다. 페르시아를 간신히 마무리하니, 이제는 미국과 한국이 각각 영국령 아메리카와 말라카를 부드럽게 간지럽히고 있었다. 그리고 미국은 이미 지난 16년간 꾸준한 해군력 증강으로 세계 제3위의 해군력을 확보한 상태였고, 이 추세면 장차 10년 안에 프랑스마저 추월할 거라는 전망이 나오던 차였다.

그래도 명색이 유럽의 준열 강이던 스페인마저 굴복했는데 다른 미대륙의 나라들이야 말할 것도 없다. 파나마 운하의 개통은 미국이 원한다면 미대륙 어디에나 함대를 파견할 수 있음을 의미했다. 미국은 그들의 이웃들에게 당장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조약기구에 가담할 것을 강권하고 있고, 이러한 그들의 강요는 그들의 군사력이 뒷받침하고 있었다.

끔찍한 이야기였다. 신흥 강국이 하나만 있어도 골치 아픈데 둘씩이나 올라오고 있었다. 그리고 두 나라 모두 그들의 대륙을 이미 제패하였거나, 아니면 제패하는 과정에 있다. 그건 아직 유럽 대륙 하나 제패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영국과는 분명히 차별화되는 점이었다.

"솔즈베리 경과 또 한 번 이야기를 나눠봐야겠어."

그의 선택은 우선 보수당 당수 솔즈베리 후작과 다시 한번 이야기를 나누어 보는 것이었다. 지난 10여 년 간 벌써 몇 차례일지 모르는 비밀스러운 야이기였다. 그리고 그때마다 결론은 가벼운 견제로 시간을 끌면서, 우선은 러시아부터 마무리 짓자는 것이었다. 그건 일종의 현실도피에 가까웠다. 어떻게든 어느 쪽을 택해도 후회할 수밖에 없는 결단을 내릴 시간을 뒤로 보려는 발악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건 더는 변명거리가 되지 못했다. 그들이 그렇게 미루던 대로, 러시아가 정리되어 버렸으니 말이다. 이제는 결단해야만 할 때였다.

그렇게 영국을 찾아온 솔즈베리 후작의 첫 발언은 간단하고도 저속했다.

"빌어먹을."

당연히, 글래드스턴에게 하는 말은 아니었다. 그건 되려 작금의 정세에 대한 한탄에 가까운 것이었다.

하지만 앞에서 그런 말을 듣자니 기분이 나빴던 것도 사실이었던지라, 글래드스턴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 소리나 들으려고 호출하였던 것은 아니오만."

"물론 그렇겠지요. 하지만 말하지 않을 수가 없군요."

"어째서 말이오?"

글래드스턴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글자 그대로, 짐작이 가는 일이 없으니 대관절 무슨 뜻이냐는 되물음이었다. 솔즈베리 후작은 잠시 헛웃음을 지었다가, 실토하였다.

"오렌지 놈들이 선수를 쳤습니다."

"···뭐요?"

"그놈들이 기어이 말라카 해협을 열어줬다는 말입니다. 한국이 아니라 포르모사-그러니까 대만 쪽이긴 합니다만. 결국, 그게 그거지요! 대서양과 태평양을 하나로 이을 해운동맹의 탄생이라던가 뭐라던가. 한참을 자랑을 늘어놓고 있길래 배알이 꼴리던 참에 수상 각하께서 호출하셔서. 그 핑계로 도망쳐 나온 참입니다."

"뭐요?"

글래드스턴은 순간 어처구니가 없어 똑같은 말을 두 번을 되풀이했다. 바보 같아 보일 거라는 걸 알아도, 그렇게 반응할 수밖에는 없었다. 말라카 해협이 열렸다는 건, 결국 한국이 범아시아 조약기구의 이름을 빌려 인도양까지 진출할 가능성이 열렸다는 뜻이었으니까.

솔즈베리 후작은 어깨를 으쓱거릴 뿐이었다. 자신도 이게 무슨 일인지 미처 파악하지 못했다는 뜻이었다.

그는 담배를 깊이 들이마셨다가 매연을 내뱉으면서 말을 이었다.

"저도 구체적인 내용은 잘 모릅니다. 하지만 어디에서 그런 거래가 이루어졌는지는 알만하더군요. 요즈음 한국의 태자가 말라카 해협 건과 관련하여서 우리 동인도 해협식민지에 뺀 질 나게 들락거리지 않았습니까?"

"그거라면 물론 전해 들었지만···네덜란드령 동인도에 방문한 적은 없지 않은가?"

"그 반대입니다. 그 뒤에 포르모사에서 무도회에 참가한 이력이 있더군요. 거기에 오렌지 놈들이 참가한 이력도 말입니다. 동인도 식민정부의 자체적 판단인지, 한국에서 먼저 접근했는지, 아니면 암스테르담으로부터의 지시인지는 아직 파악하지 못했습니다만 그거야 조사해보면 분명해질 사안이고. 문제는 우리가 저 오렌지 놈들에게 뒤통수를 맞았다는 거지요."

"···허."

헛웃음이 절로 흘러나왔다. 그야말로 기가 막힌 이야기였다. 영국이 아직 의사를 분명하게 정하지 못한 틈을 타, 네덜란드인들이 한발 앞서게 움직인 것이다. 어차피 네덜란드에는 중요한 것은 세계통치가 아니라 무역수익이었으니, 아시아 시장에서의 이권을 내주는 대신 말라카 항로의 이용권을 받아간 것이리라.

그럼 그 내막은 설명하지 않아도 뻔했다. 그동안은 범아시아 조약기구의 아시아주의 영향으로 네덜란드령 동인도를 위시한 식민지들을 잃게 될까 두려워 함부로 접근하지 않고 있던 것이, 한국인들이 인식하는 아시아에 인도차이나가 속해있지 않다는 걸 눈치채자마자 재빠르게 한국이 필요로 하는 걸 내주고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걸 받아간 것임이 분명했다.

혹은, 중국에서 펼치고 있는 악랄한 이간책에 감탄하여 한국이 아시아인들의 이권을 대변하고자 나선 혁명투사가 아니라 그저 흔하디흔한 열강 중 하나라는 걸 눈치챈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어느 쪽이건 간에 결론은 네덜란드가 한국을 공존 가능한 세력으로 받아들였다는 사실이었다.

그건 영국의 선택지도 덩달아 좁아졌음을 의미했다.

"그 오렌지 놈들 덕분에 꼴이 웃기게 되었군."

글래드스턴은 나지막이 한탄했다. 솔즈베리 후작은 이에 긍정하지도, 부정하지도 않고서 담담히 말했다.

"슬슬 우선순위를 정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선순위라니, 무엇을 말인가?"

"무엇을 잃고, 무엇을 지킬지 말입니다."

암울한 이야기였다. 얻는 것이 아니라, 지키는 것이라고 했다. 그 자체가 현 상황이 그리 좋게 풀리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글래드스턴은 되물었다.

"우리가 얻게 될 것은 없나?"

"글쎄요. 아마 시간과 여유가 되겠지요."

"시간과 여유로 우리 유권자들을 설득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어쩔 수 없습니다. 프랑스인들은 아프리카를 정복했고, 독일인들은 발칸을 굴복시켰습니다. 러시아는 제한적이나마 지중해로 나올 수 있게 되었고, 우리 영국도 그 가운데에서 그럭저럭 제지분을 챙기긴 했습니다만-이제 모두가 더는 뻗어 나갈 곳이 없습니다.

미대륙은 양키들이 통째로 집어삼킬 판국이고, 아시아는 이미 20년도 전에 한국의 손에 떨어졌지요. 그러니까 이제 모두가 갈 곳이 없습니다."

솔즈베리 후작은 지긋지긋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건 곧 더는 창밖을 바라볼 게 아니라 자신을 돌아볼 수밖에 없게 되었다는 이야기였으니까. 그리고 글래드스턴은 이날을 위하여 충실한 시간을 보내왔다고 자부했다.

노동당을 물 위로 끌어올리면서까지 노동권과 기초적인 사회복지 제도 도입에 힘쓰며 영국 내에 들끓던 반체제 운동을 잠재웠고, 각 자치령의 요구를 가능한 한 수용하며 식민지들의 독립운동을 진정시켰다.

대서양 무역의 재건을 통한 제조업 재건과 그로 인한 고용 확대를 내세운 경제정책도 성공을 거둬, 국외정책이라면 모를까 내정에서 그는 충분히 찬사를 받아 마땅한 성과를 내왔다.

하여, 대영제국은 이미 피와 오물로 뒤덮인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을 마주할 준비가 끝났다. 하지만 다른 나라들은 어떠할까.

"···말해주게. 우리가 무엇을 잃어야 하겠나."

글래드스턴은 딱딱하게 되물었다. 정치인의 직감으로, 무엇이 임박했는지 눈치챈 것이다.

솔즈베리 후작은 답했다.

"별거 아닙니다. 티베트의 늙은 마녀를 고향으로 돌려보내 줄 때가 된 것이지요."

그건 곧, 영국이 그 존재마저 숨기고 있던 마지막 족쇄마저 풀어줘야 할 때가 왔음을 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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