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폭군 고종대왕 일대기-334화 (334/530)

< 궁 >

영국 정계는 이 왕실혼을 가상적국을 줄일 기책이라 보았고, 왕실은 공주를 향한 동정여론을 통해 지지자들을 재집결할 계기라 보았으며, 한국 정계는 진정한 열강으로서의 통과과정이라 판단하였다.

그렇다면 이 왕실혼을 허락한 황제에게 있어서 이번 국혼은 어떠했는가-하면.

"우라질 놈."

괜한 짓을 하게 만들었다는 게 솔직한 속내였다.

그래도 미우나 고우나 자식새끼라고 제 팔자는 제가 정하라-하는 마음에 자유를 주었더니 구태여 고사하고서 장기말로 쓰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그 탓일까. 요 몇 주간 술을 마셔도 쓰기만 하였고, 간만에 부용정에서 태자와 시간을 보내고 있음에도 지루하기만 하였다. 때아닌 오춘기냐며 이형은 코웃음을 쳤다.

"아바마마, 조금 성급하시지는 않았을는지요."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낸 건 태자인 이원철이었다. 그는 이제 막 한국까지 가장 빠른 쾌속 여객선을 타고서 귀국한 차였다. 이하응에게는 제법 오랜 시간 머물게 될 것이라고 설명하였으나, 소식도 없이 급작스럽게 영국과의 국혼이 결정되었다는 소리를 듣게 되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그는 요즈음 한국에서 가장 활발하게 국외를 들락거리던 외교통이었다. 한국의 특사로서 활약하던 태자에게는 말도 없이 영국과 대뜸 국혼을 맺겠다 한 황제의 결단은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었으나 섭섭함을 느끼게 하였다.

이형은 턱을 괴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불평은 그 우라질 놈에게 하거라. 천주께 기도를 올린답시고 이 나라의 황자라는 놈이 제 몸을 걸레 짝으로 만들어놨는데 가벼이 넘어갈 수 있었겠느냐? 제가 대한의 천하에 이바지하지 못하는 게 못내 불만이었던 모양이니, 이걸로 그놈도 소원성취한 셈 치자꾸나."

"단지 그 아이를 벌하기 위해서라면 다른 수가 있지 않았을는지요. 어찌 가벼이 영길리와 화친하시고자 하십니까."

"가볍게 생각한 적 없느니라."

이형은 시큰둥하게 답했다. 때늦은 장마로 요즈음 한양에서는 벌써 며칠째 비가 내려, 부용정의 처마를 타고서 물줄기가 마치 폭포수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이형은 잠시 그 물줄기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가 떼고서는, 퉁명스럽게 말을 이었다.

"작금의 천하를 어떻게 보느냐?"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을 태평성대가 아닐는지요. 도성에는 온통 멋스러운 의복을 차려입은 백성으로 가득하고, 한때 지평선이 보이던 이 드넓은 경기평야가 끝 모를 공장들과 매연으로 뒤덮였나이다. 진정으로 한양 땅이 아주의 배꼽이 되었으니, 바야흐로 우리 한민족의 전성기가 아닐까 합니다."

청산유수 같은 대답이었다. 아마 한양 거리로 나서면 누구나 그리 대답할 터였다. 바야흐로 한민족의 전성기라고 말이다. 파나마 운하가 열린 이래로 날로 증가하고 있는 미국과의 태평양 무역은 한국에 번영을 내려주었고, 소양강댐을 인연으로 시작된 프로이센과의 활발한 기술교류는 그런 한국에 부족하였던 기술력과 산업 비결을 빠르게 채워주고 있었다.

범 아주 조약기구가 안정적으로 정착하여 겉으로 보기에는 각국이 평등한 위치에서 자유롭게 아주의 미래를 논하는 이상적인 질서가 이루어져, 이제는 온 아주가 범아주 조약기구의 본부가 위치한 빛의 도시 한양만을 바라보고 선망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형은 조소하며 되물었다.

"나의 치세를 애써 칭찬하려 하지 말고, 네가 천하를 유람하며 눈으로 보고 들은 바를 말해라. 작금의 천하가 어떻더냐."

태자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는 뒤에 사관의 눈치를 살폈다. 자신이 지금 이 자리에서 황제와 주고받을 문답이 후일 어떤 파란을 불러올까 두려웠던 것이다. 황제는 이제 와서 그런 사소한 것을 신경 쓰기에는 너무 멀리 왔지만, 태자에게는 아무래도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이 후세에 평가될 것이라는 게 버겁기만 했다.

이형은 그런 태자 이원철의 조심스러운 모습에 이죽거렸다. 참으로 사려 깊은 성정을 타고난 태자였다. 자신의 핏줄에서 어떻게 이런 돌연변이가 나왔는지 모를 만큼 말이다. 차라리 차남인 이강이 조금 삐뚤어지기는 했어도 이형의 핏줄에서 나온 것만큼은 누가 봐도 명확했다.

태자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 어느 때보다 법가의 가르침이 절실하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삐끗.

그리고 태자가 우려했던 대로, 그 한마디와 함께 사관의 손이 멈추었다. 황제라면 모를까, 철이 든 이후로는 이렇다 할 문제 발언을 한 적이 없는 태자가 이런 언동을 보였다는 것 자체가 어색했던 것이다. 개항이 이루어진 지 장장 25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어도, 여전히 유학은 이 나라의 근본이자 대들 보았다. 유가보다 법가를 높이 치는 듯한 언행은, 혹여나 새어나간다면 논란이 될 소지가 충분했다.

하지만 이형은 그런 사관을 향해 손을 까딱였다. 계속 기록하라는 손짓이었다. 사관은 부자를 번갈아 돌아보고서, 이내 깊이 한숨을 내쉬며 다시 재빠르게 손을 움직여갔다.

이형은 이죽거리며 말했다.

"법가라. 저기 서쪽 끝에 진나라 놈들이 좋아할 말을 하는구나."

"하오나, 어찌 어전에서 거짓부렁 따위를 입에 담으리까. 아바마마, 일전에 화란에서 만국박람회가 열렸을 적에 소자가 구주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짐작하시겠습니까?"

"짐작도 못 하겠구나. 무엇을 보았더냐?"

"비주의 토인들을 우리에 가두어 짐승과 같이 전시하고 있었나이다."

삐끗.

또 한 번 사관의 손이 멈추었다. 이번에는 이형도 따로 신호를 주지 않았다.

이형은 다만 턱을 괴고서, 되물었다.

"그것이 무슨 대수라는 말이더냐. 나라 하나 스스로 이루지 못한 비주의 오랑캐 토인들의 일이다. 대관절 그것이 작금의 천하를 논함과 무슨 연관이 있으랴?"

"아바마마, 소자는 일주일제를 배우며 자라났나이다. 하나의 대륙에는 꼭 하나의 황제가 있어, 천하를 바르게 이끌어나간다고 들었나이다. 하나 오랑캐라고 한들 수고를 들여 교화하고자 하면 언젠가 어엿한 백성이 되어줄 토인들을 우리에 가두어 전시하고 있으니, 어찌 비주의 황제가 천하를 바르게 이끌어나가고 있노라 하겠나이까."

"네가 지금 불란서가 비주를 잘못 통치하고 있다고 지적하고자 하느냐?"

"아닙니다. 천하의 패국들이 다만 힘과 법으로서 천하를 통치하고 있을 뿐이요, 인의예지는 한낮 입바른 소리에 지나지 않게 되었으니. 우리 대한이 인의예지로서 천하를 교화하고자 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었나이다."

이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 만족스러운 대답은 아니었으나, 최소한 철이 들 무렵부터 바깥세상을 구경시켜주려 애를 쓴 보람은 있었다.

떨리는 손길로 다시금 글을 써 내려가고 있는 사관을 이형은 흘깃 돌아보고서, 다시 입을 열었다.

"잘 들었다. 그럼 그러한 천하를 누가 만들었다고 생각하느냐?"

"···영길리, 라 말씀하시고자 하시는지요?"

"그럼 달리 누가 있겠느냐? 작금의 천하는 영길리가 만든 것. 당장에, 영길리를 시기하고 멸시하던 이들조차 진정으로 영길리가 쇠하려 하니 앞다투어 영길리를 도왔느니라. 강, 그 망나니 놈이 늙어 죽을 적에는 영길리의 천하가 아닐지도 모르겠으나 여전히 영길리는 천하를 논하고자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대국일 것이다.

그리고, 만일 보위를 이을 네 녀석이 천치라면 이 나라 대한은 금세 쇠하고 말겠으나 영길리는 이제 와 천치 하나쯤 나와봐야 끄떡도 하지 않을 것이다. 따르고자 한다면 영길리보다 악덕한 주인이 없되, 보험을 들고자 한다면 영길리보다 나을 은행이 없느니라."

이형의 설명에, 태자 이원철은 잠시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그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강, 그 아이는 분명 어릴 적부터 군함에 관심이 많았었지요."

"그랬었지. 하나 그게 이제 와 무슨 소용이더냐. 녀석의 허약한 몸으로는 멀미로 배에 얼씬도 하지 못할 터인데."

"아바마마, 분명 영길리는 세계 제일의 해군 대국이 아니었습니까?"

"···.좋을 대로 생각해라."

퉁명스러운 대답이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이원철은 서둘러 제 입을 가렸다. 무심코 입꼬리가 말아 올라가고 있는 제 낯짝을 차마 황제에게 보일 수는 없었던 까닭이다.

이형은 가만히 볼을 긁적거리며 슬쩍 시선을 시원하게 비가 내리고 있는 한양을 향해 돌렸다.

"가운데가 휑하구나. 꼭 배코 친 걸 훤히 내보이는 듯하여 몹시 보기 흉하도다."

"예?"

태자는 느닷없는 폭언에 놀라 눈을 깜빡거렸다. 황급히 시선을 돌려 황제의 시선을 따라가니, 빗줄기가 굵어 그저 뿌연 아지랑이만이 보일 따름이었다. 다만 황제의 시선을 따라 쭉 가면 무엇이 있는가는 태자도 알고 있었다. 그곳에는 곳곳에서 회색빛 석회 건물들이 솟아오르는 가운데 유독 휑하니 비어있는 공터가 있었다.

이전부터 때가 오면 경복궁을 다시 세우겠다며 황제가 비워두라 명한 부지였다.

"···안 그래도 며느리라는 원수가 대국 영길리에서 왔다며 뻗댈 텐데, 정궁 하나 오롯이 가지지 못했다고 하면 역시 그놈도 궁상스럽겠지."

자그마한 목소리였다. 자치하면 시원하게 내리는 빗소리에 묻혀 미처 듣지 못하고서 흘릴, 자그마한 소리였다. 그러나- 어째서였을까. 참으로 공교롭게도, 태자는 그 소리를 똑똑히 듣고야 말았다.

또다시 입꼬리가 절로 말아 올라가고 있었다.

"읍!"

즉시 입을 가렸으나, 그조차도 부족했다. 웃음을 참고 있자니 숨이 조금 가빠져 킁킁, 하고 콧소리가 나고 어깨가 들썩거리는 게 저대로 황제가 다시 고개를 틀어 태자를 바라보는 순간 꼼짝없이 들킬 듯싶었다. 어쩔 수 없이 태자는 있는 힘껏 제 무르팍을 꼬집어 비틀었다.

어렸을 적부터 축구를 비롯한 이런저런 운동으로 다져진 근력은, 다행스럽게도 가장 절실한 순간 가장 강력한 효력을 발휘하였다. 웃음이 멈춘 걸 넘어서, 무심코 비명이 나오려는 걸 꾹 눌러 삼켜야 할 지경이었다.

그렇게 억지로 웃음을 참고 난 다음에야, 태자는 수그렸던 허리를 펴고서 다시 천천히 황제를 올려다볼 수 있었다.

황제는, 어딘가 뚱한 얼굴로 그런 태자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들었더냐?"

무엇을, 이라는 부연설명은 필요 없었다.

"···송구하옵니다."

태자는 다만 고개를 숙였다. 이형은 나지막이 치, 하고 혀를 찼다. 목청이 큰 것도 꼭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하기야, 결점을 찾고자 한다면 무엇이든지 억지로라도 하나쯤은 찾을 수 있겠지만 말이다.

이형은 잠시 머리를 긁적이다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하기 시작했다.

"뭐, 어차피 더는 미뤄둘 수 없는 일이 아니더냐. 만국박람회를 열겠다는 놈이 정궁 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해서야 세상의 비웃음거리가 될 뿐이 아니겠느냐? 겨우 이 나라도 열강이라 자부할 수 있게 되었으니, 이제 슬슬 시작할 때도 되었지."

"여부가 있겠나이까."

"경복궁을 다시 세울 적에는 가능한 사료에 나온 그대로 재건하되, 장차 정무를 볼 후손들을 위하여 이런저런 기물들을 설치해두어야겠지. 수도관도 놓고, 전화도 놓고, 전구도 들이고, 타자기도 놓고 하면 역시 고황제께서 세우셨던 경복궁을 재건할 보람이 줄겠으나- 어쩌겠느냐. 시대가 바뀌고 만 것을."

"여부가 있겠나이까."

"···하는 김에 색목인 며느리가 쓸 서구식 별채도 한 채쯤은 마련해둬야 할 테고."

"···큽."

작게 덧붙이는 말에, 태자는 필사적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가능한 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서 상투적인 대답만을 돌려주어 냉정함을 유지하려 했더니, 전혀 생각지도 못한 구석에서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격이 가끔 터져 나오고 있었다.

이형은 그런 태자를 불만스럽게 바라보며 말했다.

"그럴 거면 차라리 그냥 웃거라, 이 우라질 놈아. 내 포복절도를 한다고 해도 눈감아 주겠노라."

"큽··· 소, 송구하옵나··· 크흡!"

거기까지가 한계였다. 태자는 소리를 죽이며 꺽 꺽 거리며 웃었다. 허리가 절로 앞으로 구부려졌다. 아닌 척하면서 은근히 망나니 황자를 챙기려 하는 모습이 어찌나 어색한지. 정말로 웃음이 절로 나와서 참을 수가 없었다.

태자가 한참을 소리죽여 웃는 동안 이형은 제자리에 앉아 턱을 괸 채 뚱하니 그런 태자를 빤히 응시하고 있었다. 슬쩍 고개를 틀어 사관을 흘겨보니, 그쪽도 소리 없이 웃느라 손이 덜덜 떨려 제대로 기록도 못 하는 꼴이 보였다.

이형은 한숨을 내쉬고서 다시 입을 열었다.

"강, 그놈은 혼례를 치르기 전까지 방에 가둬두려고 한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이런 형식적인 근신조차 없이 가만히 넘어가기에는 사건이 너무 컸다. 무슨 삼년상을 치르다가 몸을 해친 것도 아니고 안 그래도 몸도 약하다는 황자가 천주학에 푹 빠져 제 몸을 채찍질하던 걸 들켰으니 좋은 이야기가 나올 리가 없었다.

거기에 뜻하지 않게 유림의 지지를 얻고 있던 이강이다. 그 배신감 때문에라도 더욱 날뛸 유림의 반발을 생각하면 그저 눈앞이 아찔하기만 했다.

그걸 알고 있음에도, 태자는 피를 이은 형으로서 이강을 대변해 한마디쯤은 변명을 해줘야만 했다.

"하오나 아바마마, 아직 그 아이도 고작 해봐야 열여섯이 아닙니까. 어린 날의 치기로 생각해주실 수는 없을는지요."

"그래, 차라리 천주쟁이라면 그렇게 봐주었겠지. 하나, 배 아파 낳아준 어미도 못 알아보고서 멋대로 지껄인 후레자식이라면 뿌리부터가 글러 먹은 게 아니더냐. 이번 기회에 그놈도 어디 고생 좀 해봐야 개과천선을 하건 나락까지 떨어진 건 할 것이다. 그놈이 몸만 더 튼튼했어도 내 직접 매를 드는 거였는데, 쯧쯧."

"소자가 듣기로 그날 그 아이가 열이 있어 앓아누웠다고 들었습니다. 머리에 열이 올라 미처 언행을 바르게 하여야 하는 걸 잠시 잊고 말았던 것이 아니겠습니까. 너른 마음으로 용서하소서."

"그만 되었다. 잘못이라면 그간 몸이 약하기로서니 매 한 번 들지 않고서 오냐 길러온 게 잘못이었던 게지. 혼례를 치르기 전까지는 밥 주는 식모를 제하고서 이강 그놈과는 누구도 만나지 못하게 될 테니 그리 알 거라."

자못 엄한 말이었다. 그제야 태자도 포기하고서 한발 물러났다. 그 또한 단지 큰형으로서 한 번쯤 감싸 주었던 것뿐, 이만하면 오히려 자비롭게 넘어가는 수준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던 까닭이었다.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이형은 입맛이 써서 그러했고, 이원철 또한 그러했다. 두 사람은 한참을 세차게 내리는 빗줄기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하늘에서 구멍이라도 난 듯했다. 내일 모래 즈음이면 한강이 범람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제는 한양에 배수로가 정비되어 그리 간단히 침수되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며늘아기에게 줄 선물을 준비해뒀더냐."

침묵을 깬 것은 가벼운 질문이었다. 이형은 고개를 틀기는커녕 시선 한 번 주지 않고서, 담담하게 물었다.

태자는 청산유수처럼 답했다.

"급하게 오느라 그리 대단한 것은 구하지 못했으나, 샌프란시스코에서 오르골을 하나 구했나이다. 듣자 하니, 아주의 청년이 미주의 장인에게 만드는 법을 배워와 처음으로 만든 시제품이라고 하였나이다."

"이 모자란 것아. 그거라면 도성에서라도 구할 수 있을 하잘것없는 물건이 아니더냐. 장장 반년간을 독수공방시킨 보답이라 하기에는 변변찮구나."

"소자가 사들이지 않는다면 그 누가 이 하잘것없는 물건을 사주리까. 비록 제게는 하잘것없어도, 그 청년에게는 둘도 없이 값진 보물이 아닐는지요."

"그러니까 네가 그 사내자식과 혼례를 치른 것도 아닐 텐데 그게 대관절 무슨 소용이냐는 말이다. 에잉, 이놈이고 저놈이고 하여간에 우둔해서는···."

이형은 한숨을 내쉬며 투덜거렸다. 슬쩍 흘겨본 태자는 무엇이 그리도 뿌듯한지 가슴을 활짝 펴고 있었다.

이형은 혀를 차고서 다시 비가 내리고 있는 한양의 정경을 바라보았다.

차디찬 비가 하염없이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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