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폭군 고종대왕 일대기-335화 (335/530)

< 꾸짖음 >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 하염없이 내리던 비는 이튿날 새벽 비로소 멈췄다.

한양에 범람은 없었다. 한양의 배수로가 제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던 덕분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궁에서는 비가, 아니 우박이 내렸다.

"못난 놈."

이형은 이부자리에서 일어나 무릎을 꿇고 있는 차남 이강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분명 더없이 비장해야 할 부자의 대면은, 얼핏 우스꽝스럽기도 하였다. 이부자리 위에 무릎을 꿇고 있는 이강과 의자 위에서 턱을 괴고 있는 이형의 키가 엇비슷하던 것이다.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성정을 따지자면 이형과 꼭 닮은 이강이 신장에 있어서는 정반대였으니 말이다. 신장에 있어서는 장남 이원철이 되려 이형을 똑 닮아 있었다.

이강은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반항심이라기보다는, 이미 될 대로 되라-라고 자포자기하고 있었던 까닭이었다. 하여, 부자의 시선은 수평을 그리며 마주쳤다. 이형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널 영길리의 공주에게 장가를 보내기로 하였다."

"정명에게 이미 들었나이다."

"그 아이가 괜한 오지랖을 부렸구나. 그래, 이제 만족하겠느냐? 네 어미의 속을 뒤집어 놓은 보람이 있겠느냐는 말이다."

이형은 이를 갈았다. 이강은 기가 죽어 고개를 숙였다. 고작 해봐야 열여섯의 나이로 마주하기에 황제의 진노는 너무나 버거웠다. 하지만 시선을 피했다고 하여, 한마디를 지지 않는 것이 또한 그의 성정이었다.

이강은 한참을 입을 옴짝달싹하다가 물었다.

"어찌하여 영길리입니까?"

"호오."

이형은 이죽거렸다. 하루의 차이를 두고서 장남과 차남에게 꼭 같은 말을 듣게 되었으니 그야 기분이 묘할 수밖에 없었다.

이형은 이죽거리며 말했다.

"모후의 안위보다도 그까짓 의문을 푸는 것이 중한 모양이로구나."

"복수불반분(覆水不返盆)이라 하였습니다. 소자의 죄는 이미 엎질러진 물이나, 영길리와 화친하고자 함은 아직 온전히 항아리에 담겨 있는 냉수와도 같으니, 어찌 대한의 앞날을 근심하지 않을 수 있으리까."

"···이런 후레자식."

이형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이번만은 그 또한 참기 어려웠다. 아니, 애초에 참지 못하였으니 지금 이 자리에 있었던 것이었지만 말이다. 적어도 한소리 해주지 않으면 분이 풀릴 것 같지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이형에게도 이번 발언만큼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이형 또한 그리 유교적 가치관에 집착하는 성향은 아니었으나, 자식 된 도리로서 모친의 가슴에 손톱자국을 내놓고서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 어쩔 수 없다고 지껄이는 꼴이라니.

이형은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당장이라도 손찌검을 할 듯이 높게, 있는 힘껏 힘을 넣어 손을 덜덜 떨면서 말이다. 이강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눈을 질끈 감고 있는 것이 보였다. 잔뜩 메말라 뼈가 온전히 드러나는 비루한 몸뚱어리가 이형의 눈에 들어왔다.

"···허."

그 비루한 몸뚱어리에 아직도 선명히 새겨진 채찍 자국을 본 순간, 이형은 손에 힘이 풀리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화가 절로 가시는 듯했다.

이형은 철퍼덕하고 몸을 의자에 집어 던지듯이 주저앉았다.

자리에 앉고서, 이형은 다시금 뚱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오냐. 이제 와 회초리를 든다고 네놈이 개과천선하리라고는 기대도 하지 않는다. 그래, 너 또한 내가 너무 급하게 일을 치렀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로구나."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다만, 장가를 든다면 미리견일거라 지레짐작하고 있었나이다."

"불란서가 아니라 미리견이라. 가문의 귀천을 따진다면, 불란서가 으뜸이 아니더냐."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불란서는 이 이상 대한에 베풀 수 있는 것이 없나이다. 아바마마께서도 이 이상 불란서와 깊이 연루되는 것을 바라지 않을 것이라 짐작하였나이다."

대수롭지 않은 대답이었다. 하지만 전날 이원철과 주고받았던 것과는 꼭 대비되는 답변이기도 했다. 이원철이 이 세상의 도리가 땅에 떨어졌다고 한탄하였다면, 이강은 대한의 국익을 이야기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형은 비로소 웃음을 지웠다.

웃음을 지우고서, 무표정하게 되물었다.

"미리견과 혼인한다면 너는 어디 이름도 없는 가문의 졸부를 장인어른이라 섬기게 될 것이다. 그걸 바랐느냐?"

"예."

짧은 대답이었다. 이강은 즉시 제자리에 엎드려 이마를 조아렸다. 그건 꼭 지금이라도 뜻을 물려달라고 부탁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실제로 그러하리라.

이형은 자신에게 머리를 조아린 차남의 정수리를 가만히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형제 중 대갈통 굴리는 솜씨로는 이놈이 단연 으뜸인데···.'

입맛이 썼다. 이원철은 성정이 올바르지만, 도리어 그 올바른 성정이 흠이었다. 다만 타인에게 자신을 맞추고자 할 뿐 이용할 생각은 잘하지 못하던 것이다. 반대로 이강은 안 그래도 배배 꼬인 성정이 취약한 몸과 만나 배배 꼬이다 못해 뒤틀렸다. 타인은 물론 저 자신까지 이용하는 데에 어떠한 거리낌도 없는 것이다.

전제군주가 지녀야 할 자질을 평가한다면, 단연 이강이 낫다. 전제군주란 모든 것을 결정하고 책임지는 자리이기에, 전제군주의 악랄한 성정은 곧 그 나라가 유사시에 꺼낼 수 있는 패가 무궁무진해짐을 의미한다.

하지만 입헌군주로서의 자질을 평가한다면 단연 이원철이 낫다. 입헌군주는 만백성에게 사랑을 받아야만 하는 자리이기에, 입헌군주의 악랄한 성정은 왕실의 인기가 바닥을 치게 됨을 의미했으니까. 그렇기에 이형은 그 나약한 육신과 더불어 일찌감치 이강에게 보위를 잇게 될 것은 태자 이원철이라 다짐해두었다.

'일찌감치 미련을 접고서 제 삶을 찾아가라는 생각이었지만- 되려 그게 화가 되었는지도 모르지.'

"말해 보아라. 어찌하여 미리견과의 혼인을 원하였느냐?"

이형은 죄를 추궁한다는 본연의 목적을 잠시 미뤄두고서, 이강에게 자신을 마음껏 뽐내볼 기회를 주기로 했다. 혹, 그간 자신의 능력을 드러낼 기회가 없었던 탓에 화가 쌓였는지도 모른다는 판단 탓이었다.

짧은 순간, 이형은 이강의 입꼬리가 슬쩍 말아 올려지는 걸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우리 대한이 제국인 까닭입니다."

"풀어서 설명하거라."

"소자가 구주의 고대사에 흥미가 있어 옛 라마(羅馬:로마)에 관하여 읽었사온데, 옛 라마의 황제란 곧 라마의 시민 중 가장 존귀한 시민이라고 하였나이다. 오늘날 아주가 은주의 뿌리 위에 일어났듯이 구주 또한 라마의 뿌리 위에 일어났으니, 서역의 황제란 필히 그와 같으리다.

하나 가장 존귀할 황제조차 시민 중 한 사람일 뿐이라 여길 미리견의 백성과 황제는 만백성의 어버이라 하는 아주의 백성이 어찌 진정으로 화합할 수 있으리까. 하여, 소자는 장차 양 대륙의 백성이 진정으로 화합하고자 한다면 종친이라 한들 시민 중 으뜸일 뿐임을 보여야 한다 여겼나이다."

"흐음."

"작금의 미리견은 떠오르는 태양과도 같나이다. 비옥한 토지와 무궁무진한 재화, 두려워할 외적의 부재는 바야흐로 하늘에서 미리견의 부흥을 바라고 있는 듯합니다. 저들에게 부족한 것은 다만 사람일 뿐이나, 이는 우리 아주에서 넉넉히 보충하여 줄 수 있나이다. 장차 미리견과 더욱 깊이 손을 잡는다면, 아주와 미주가 천하를 경영하는 것 또한 불가능하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천하가 평안해진다면, 그 어느 누가 아바마마의 치세를 칭송하지 않겠습니까. 천주께서도 필히 천상에서 흡족해하시겠지요."

청산유수 같은 언변이었다. 그간 스스로의 생각을 펼칠 기회도 없던 것에 대한 보상을 받기를 바라는 듯, 이강은 얼굴이 흥분으로 새빨갛게 물들다 못해 산소가 부족해 얼굴이 새파랗게 질릴 때까지 그저 말을 토하고 또 토했다. 누군가와 대화를 주고받을 일조차 드물어 온종일 방구석에서 책을 읽고 있었으니 한 번쯤 말을 더듬을 만도 한데도 말이다.

이형은 그런 이강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애써 놀라움을 숨기고서 말이다. 이원철은 어렸을 적부터 세상 구경이나 시켜줬지, 몸이 약한 이강은 온종일 하는 일이라고는 책을 읽는 것뿐이었을 텐데 그가 생각하던 그 이상으로 머리가 잘 돌아갔다.

'내가 개새끼를 낳은 건 아니었던 모양이군.'

다만 성질머리 더러운 개호주를 낳았을 뿐.

이형은 잠시 고민했다. 잘도 혼자서 여기까지 생각해냈다고 칭찬하여줄 것인가, 아니면 부족한 점을 지적해줄까 하는 고민이었다. 그리고 고민 끝에 나온 결론은 후자였다.

'성질머리가 더러워서 함부로 칭찬해줬다가는 제 어미에게 무슨 소리를 했는지는 까마득히 잊어먹고서 거들먹거릴 게 뻔하니, 원.'

방침이 정해지니 그다음은 쉬웠다.

이형은 씹어뱉듯이 한마디 내뱉었다.

"이 머저리 같은 놈이."

"예?"

"네놈은 미국인이더냐, 한국인이더냐. 그래서야 순전히 미리견에만 좋은 일을 시켜주는 꼴이라는 걸 어찌 모르느냐?"

어벙한 얼굴을 한 이강은 몇 번이고 눈을 깜빡거렸다. 이형의 꾸짖음에 놀란 탓이었다.

이형은 속사포처럼 말을 퍼부었다.

"나라와 나라 간의 거래라는 것이 언제부터 더욱 잘난 나라에 빌붙는 것이 되었더냐? 더욱 잘난 나라에 빌붙는 것은 제 나라가 빈궁하여 먼저 손을 건네지 않고서는 어쩔 도리도 없을 적뿐이다. 우리 아주가 이보다도 더 미주에 의존해야만 할 만큼 궁지에 몰린 듯 보이더냐?"

"하, 하오나···."

"네 입으로 분명히 말하지 않았더냐? 불란서는 이 이상 우리 대한에게 베풀 수 있는 것이 없으니 거래해서는 안 된다고 말이다. 미리견이라고 다르겠느냐? 이미 저들은 우리 아주에서 무수한 노비들을 받았고, 저들의 물건을 사줄 거대한 시장을 받았으며, 우리 대한이 함부로 태평양에 진출하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을 받아 마음 놓고서 대서양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하물며 지금 미리견에는 흥선왕 또한 있다. 지금이야 그가 아주와 미주의 화합을 상징하는 유명인이라지만, 우리 대한과 미리견의 사이가 틀어질 경우 당장에 신변이 위험해질 인질이기도 함을 어찌 모르느냐? 이제 와서 너 한 사람 넘겨받는다고 한들 미리견의 위정자들에게 구미가 당길 것 같더냐?"

이강은 답하지 못했다. 뭐라고 항변하려고 입을 벌렸다가, 이형의 꾸짖음이 쏟아짐에 따라 조금씩 풀이 죽어 어깨를 늘어트리고 고개를 숙였다. 이형이 꾸짖으면 꾸짖을수록 저 자신의 부족한 점이 하나둘 드러나 부끄러웠던 까닭이다.

이형은 이죽거리며 말을 이었다.

"미리견은 이미 우리에게서 필요한 모든 것을 받았노라. 이제 와 우리 대한이 새로이 황자를 내주면 저들이 우리 대한을 뭐라 생각하겠느냐? 필히 우리 대한이 미리견에 겁을 집어먹고서 벌벌 떤다고 업신여길 것이다. 이를 고치려면 전쟁에서 이겨 위신을 떨치는 수밖에는 남지 않게 된다. 너는 미리견과 우리 대한이 전쟁을 치르기를 바라느냐?"

"그, 그렇지 않습니다! 소자가 어찌 그런···!"

"참으로 생각이 짧구나. 네 형도 단지 성급하였노라 불평하였을 뿐 어찌하여 영길리와 함께하는 것이냐고 묻지는 않았느니라. 그것이 왜겠느냐? 영길리는 이 안정된 태평양의 정세에 파란이 일기를 바라며 우리 대한은 장차 오롯이 열강으로서 군림하기 위해서 보다 강한 해군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서로가 필요한 것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미리견이 우리 대한을 좋아하는 것은 좋은 고객이기 때문이지, 결코 우리 대한이 예뻐서가 아니다. 저들이 후일 본국을 찌를 비수가 될지도 모르는 우리 대한의 해군 증강을 과연 용인하겠느냐? 미리견과 전란을 치러야 할 이유는 없겠으나, 미리견이 싫어할 일을 피하고자 우리 대한에게 부족한 점을 언제까지고 부족한 채로 두는 건 겁쟁이나 할 짓이다.

이 나라에 힘이 없을 적의 천하관과 힘이 있을 적의 천하관은 분명히 다른 법이다. 넌 단지 지금의 정세에 안주하여 미리견에 빌붙고자 할 뿐, 장차 우리 대한에 무엇이 진정으로 필요한 것인지는 알지 못하는구나."

그것은 이제 꾸짖음이라기보다는 힐난에 가까웠다. 애당초 말로서 훈계하고자 이강을 찾아온 이형이었던 만큼, 돌고 돌아 원점으로 돌아왔다고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이강은 단지 입술을 깨물고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을 뿐, 단 한마디도 대꾸하지 못했다. 이형은 이강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알지 못했다. 다만 이번 기회에 한 번쯤 꺾어둘 필요가 있다는 것만은 알았다.

이렇게 한 번쯤 꺾어둬야, 두 번 다시 제 부모를 함부로 업신여길 엄두도 내지 못할 테니 말이다. 이형은 계속하여 말을 이어갔다.

"하물며 중원의 제후들을 보거라. 저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우리 전주 이씨의 종친들이다. 내가 죽고서 너의 형이 보위를 물려받는 날이 와도 그와 같을 것이니라. 너희 형이 단지 이 나라의 화합을 위하여 애신각라의 공주와 혼인한 줄 아느냐? 후일 종친들에게 무시당하지 않기 위하여 계속해서 귀한 피를 수혈해온 것이니라.

그때 네 형과 혼약을 맺을 여식 중에는 연성공(衍聖公)의 삼녀조차 있었다. 우리 황가에 문선제(文宣帝)의 피가 섞일 뻔했다는 것이다. 자, 이제 네가 네 입으로 답해 보거라. 작금의 천하가 이러할진대 종친들이 미리견 졸부의 여식을 거들떠볼 것 같더냐?"

"···아니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 네가 네 입으로 답했구나. 알겠느냐? 네가 미리견 졸부의 여식과 혼인하였다가는 안 그래도 색목인이라 겉돌고 신교도라 겉돌 내 둘째 며늘아기 될 아낙네가 신분이 천해서 또 한 번 겉돌게 될 것이다. 그럼 그 아낙네의 울분이 너에게는 조금도 닿지 않을 것 같더냐? 그 아낙네가 네게 원망 한 번 내보이지 않고서 평생을 봉사해줄 것 같더냐?

대관절 그 한과 원망을 어찌 감당하려고 평생의 반려자를 그리도 가볍게 논하느냐?"

앞서 한 꾸짖음이 힐난에 가까웠다면, 이것은 타이름에 가까웠다. 물론 이형이 그렇게 생각한 것뿐, 그 어조는 여전히 충분히 가시투성이였지만 말이다.

이형은 거기까지 말하고서 가만히 이강을 바라보았다. 어떤 낯짝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서였다.

그리고 그 해답은 이형의 예상대로였다. 이강은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분하고 또 분해서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말이다.

'하여간 옹고집만 물려받아서는.'

이형은 내심 한숨을 내쉬었다. 이쯤이면 슬슬 꺾였을 거라 생각했더니 꺾이기는커녕 제 아비의 훈계에 분해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그걸 고치려 들기도 뭣했던 것이, 그 옹고집이 제게 물려받은 것이 분명했던 까닭이다.

이형은 지끈거려오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말했다.

"부족한 견문에도 불구하고 머리를 굴리는 재주만은 기발하나, 그릇이 너무나 옹졸하구나."

"···."

"그래, 단지 서책을 읽은 것만으로 거기까지 생각해낸 식견만은 인정해주마. 충분히 기발한 발상이었다. 하지만 조금은 시야를 넓혀 보아라. 나무에만 집착하여 더 큰 숲을 미처 보지 못하고 있지 않더냐. 네 형처럼 견문을 쌓으라고 하지는 않겠으나, 의식적으로라도 무언가 놓치고 있지는 않은가 늘 곱씹어 보거라.

마침 혼례를 치르기까지 시간도 여유가 있니, 고치에 갇혔다고 생각하고서 고치를 떠난 다음에는 훨훨 나는 것만 생각하거라."

이형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강은 어딘가 멍한 얼굴로 그런 이형을 올려다보았다.

이형은 그런 이강을 가만히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네 형은 이번에 이 나라의 태자라는 놈이 이름도 모를 청년이 만들었다는 하잘것없는 기물을 사 왔더구나."

"···."

"황가의 이름을 빌리게 되었으니, 그 이름도 모를 청년은 이제 승승장구하게 될 테지. 네 형의 너른 마음씨를 본받으라고 하지는 않겠으나, 네 행동이 타인에게 상처를 줄지 기쁨을 줄지 즈음은 분간하도록 하거라."

그건 함부로 모후에게 폭언을 퍼부은 경솔함을 꼬집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건, 이강에게는 분명히 달리 들렸다.

황제마저 떠나고서 홀로 남은 방에서, 누군가가 서럽게 이를 가는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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