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재관 >
한국과 영국의 국혼.
당연하게도 이 소식은 이웃 나라이자 영국의 경쟁자 프랑스에 가장 먼저 전해졌다.
"한국이 우리의 숙적 영국과 국혼을 맺었다고 하네. 경들은 이 국혼에 대하여 어찌 생각하는가? 한국이 우리에게서 등을 돌리려 한다고 생각하나?"
나폴레옹 4세는 그 즉시 그의 심복 루이 베르그송 알제 총독과 앙리 벨로네 수상을 호출했다. 단지 그들이 한국에 대하여 익히 잘 알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황제는 자신을 프랑스의 독재관이라 자칭하기를 망설이지 않았다. 따라서 그는 가능한 한 자신의 권력을 나눠주고 싶어 하지 않았다.
요컨대, 황제가 일부러 이 두 사람을 호출한 것은 이 안건에 관하여 자신에게 간언할 상대는 두 사람이면 충분하다는 판단에 근거하고 있었던 것이다. 황제는 그의 아버지가 그러했듯이 정치경찰을 동원하여 여론을 통제하는 걸 즐겼고, 그의 부하들이 황제의 총애를 얻기 위하여 다투며 제 살을 깎아 먹도록 유도하는 걸 즐겼다.
유일한 예외는 황제가 아직 어려 고립되어 있던 시절부터 그를 뒷받침해준 루이 정도였다. 다른 곳도 아니고 프랑스 본국의 일부이자 아프리카 식민지 군의 최대 군사거점인 알제 주의 총독에 임명한 것 자체가 황제의 신뢰를 보여주고 있었다. 장차 아프리카 전역을 본국에 편입시키겠다는 황제의 야욕은, 알제를 점차 마르세유에 버금가는 대도시로 성장시켜가고 있었다.
'의회···를 거론할 필요는 없겠지.'
루이는 흘긋 벨로네의 눈치를 살폈다. 한국에서 쌓아 올린 외교적 공적을 기반으로 본국에 돌아온 이후에도 승승장구하여 마침내는 수상의 자리에 오른 벨로네는 자못 자신만만한 기색이었다. 이 자리에 불렸다는 것 자체가 황제의 신뢰를 대변하고 있었고, 때마침 자신의 전문분야가 나와 황제가 보는 앞에서 재주를 뽐낼 기회를 잡았으니 그럴 만도 했다.
다만, 루이로서는 내심 그게 못내 씁쓸했다. 수상이라는 자가 시민 앞이나 의회에서 연설하는 것보다 황제가 보는 앞에서 아양 떠는 걸 우선시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물론 이 점은 그가 젊었던 시절 다녀온 조선도 크게 다를 바 없었지만, 애초에 그 무렵 조선은 전제군주제였으며 이제 막 문명개화를 시작하여 유럽의 발달한 문물을 받아들이던 차였다.
민주주의 전통이라고 할만한 게 있을 턱이 없는 것이다. 혁명의 본고장이라는 프랑스와 비교할 수도 없고, 비교되어서도 안 된다. 하지만 지금의 프랑스는 어떠할까. 이렇게 비교되고 있는 것 자체가 수치스러운 일이 아닐까.
당장에 황제부터가 국민의 지지 위에 군림하는 국민의 황제라고 자칭하고 있으나, 그 국민의 지지부터가 대공황 이후 여전히 해제되지 않은 계엄령과 비밀경찰들을 동원한 여론조작으로 만들어진 지지가 아니던가. 되려 오랜 적이었던 프로이센이 조금씩 민주주의의 씨앗을 키워나가는 동안, 그의 조국 프랑스는 시대를 역행하려 하고 있었다.
"심려하지 마십시오, 폐하. 한국의 황제에게 우리 위대한 프랑스와 대적하려는 마음은 조금도 없습니다. 제가 이 심장에 걸고서 약속드릴 수 있습니다."
먼저 입을 연 것은 벨로네였다. 루이는 잠자코 뒤로 물러나 차례를 기다리기로 하였다.
한 걸음. 고작 한 걸음일 뿐이었으나 루이의 양보에 벨로네는 만족스럽게 웃어 보였다.
그는 환히 미소 지으면서 황제가 계속하여 자신에게 재주를 뽐낼 기회를 내려주기를 기다렸다.
"흐음. 제법 자신만만하구려. 하지만 경이 한국을 떠나온 지도 어언 10여 년이라는 세월이 흐르지 않았소. 어찌 그리 자신할 수 있는 것이오?"
"폐하,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아직 아시아인들의 시야는 아시아 너머로 트이지 못하였습니다. 범아시아 조약기구라 자칭하는, 그들만의 정치기구를 보십시오. 이렇게 하나의 대륙에 속한 여러 나라가 한데 모여 서로 의견을 주고받으며 앞으로의 발전 방향을 정하는 방식은 분명 안정적이지만, 과격한 팽창에는 적합하지 못합니다."
"어째서 그렇소?"
황제는 팔짱을 끼고서 가만히 벨로네의 말을 경청하였다. 사실, 루이 또한 황제가 아직 10대일 적에 한국에서 몇 년간 머물었던 것이 고작이었던 만큼 프랑스 내에서 대한제국이 어떻게 성립하였고 또 어떻게 번성하였는지를 모두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건 벨로네 한 사람뿐이었다. 적어도 프랑스 정계 내에서, 벨로네를 능가할 한국 전문가는 없던 것이다.
그 사실에 자부심을 느낀 듯 벨로네는 자신만만한 미소를 만면 가득히 띄우며, 말을 이어갔다.
"범아시아 조약기구란 그 이름 그대로 아시아에 속한 나라들만의 기구입니다. 우선 여기에서 한 가지 한계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아시아인들만의 기구인 만큼, 아시아 대륙 너머까지는 뻗어 나갈 수 없습니다. 물론 앞으로 이 기구가 더욱 성장하게 되면 언젠가 이름을 바꾸면서 더욱 많은 나라를 끌어들일 수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이 기구에는 팽창을 가로막는 한계가 한 가지 더 있습니다."
"한계라···.?"
"그렇습니다. 한계입니다. 한국은 산업화 초기에 언젠가 아시아 전역이 산업화를 이루리라 약속했습니다. 이제 한국은 산업화를 거의 완성하고 있고, 주변 나라들은 한국을 중심으로 퍼져 나갈 산업화만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과연. 알겠소. 한국에서 떨어질 단 꿀만을 기다리고 있는 나라들이, 단 꿀이 분산되는 걸 바랄 리가 없다는 것이구려."
그제야 이해가 간 듯, 황제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 황제가 웃을수록, 벨로네는 더욱 환하게 미소 지었다. 차마 어전이라 소리를 내어 웃지는 못하였으나, 이미 그는 당장에라도 제자리에서 폴짝폴짝 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벨로네는 더욱 신이 나서 말을 이어갔다.
"역시나 현명하십니다, 폐하. 예. 바로 그렇습니다. 적어도 앞으로 20년의 세월이 흘러 아시아 전역의 산업화가 얼추 마무리될 무렵이 찾아온다면 이제 저들 또한 새로운 시장과 원자재 수급처를 찾기 위하여 확장에 나서겠으나, 지금의 한국은 확장할 수 없습니다. 아직은 시기상조이지요. 한국의 이번 행보는, 우리 위대한 제국을 적대하고자 하는 공격적인 행보가 아니라 안정을 위한 수비적 행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다시 말하여 우리 프랑스가 일부러 자극하지 않으면 당분간 저들은 조용할 것이라는 건가?"
"물론 그렇습니다, 폐하. 다만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지난 10여 년간 미국인들은 자국의 군비증강을 위한 대금을 마련하기 위하여 한국에 많은 구식 함정들을 매각해 왔습니다. 다만 때가 아닌 것뿐이지, 한국은 언젠가 분명히 둥지에서 벗어나려 할 것입니다."
"으, 음···."
벨로네의 경고에 황제는 눈살을 찌푸렸다. 요컨대 한국 또한 영원한 아군일 수는 없을 것이라는 뜻이었다. 한국이 아직 아시아와 서태평양에 만족하고 있는 지금이라면 문제가 될 게 없으나, 이제 점차 덩치를 불리면서 인도양까지 나오려 한다면 지금까지처럼 화기애애할 수는 없었다.
그럼 이다음은 루이의 차례였다. 루이는 차례가 왔음을 느끼고서 옷매무시를 가다듬었다.
황제는 그런 루이를 힐끗 돌아보며 물었다.
"우리 위대한 프랑스의 원수에게 고견을 묻겠네. 만일 '그때'가 오면 어떻게 대응해야겠는가?"
"정면에서 깨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즉답이었다. 그리고 그리 황제가 기뻐하지 않을 대답이었다. 황제는 눈살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우리 프랑스의 함대로도 깨트릴 수 없다는 말인가?"
"폐하,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인류가 몽둥이를 쥐고서 두 발로 선 이래로 전쟁은 보병이 적진에 깃발을 꽂음으로써 끝이 났습니다. 물론 20년 후에도 여전히 한국의 함대는 우리 프랑스에 대항할 수 없겠으나, 우리 군 또한 저들의 육군을 깨트리지는 못할 것입니다."
루이는 담담하게 답했다. 황제의 얼굴은 조금씩 일그러져갔다. 총애가 흔들리고 있음을 알았으나, 루이는 멈추지 않았다.
그는 이어서 말했다.
"만일 진정으로 한국과 전쟁을 고려한다면, 우리 프랑스의 선공은 어렵습니다. 선공하려면, 적어도 영국, 미국, 러시아, 스페인, 네덜란드 등 태평양과 아시아에 이권이 연루된 모든 나라를 동원하여야 할 것입니다. 반면 수비는 쉽습니다. 우리 프랑스의 위대한 함대가 함께한다면 대양에 가두고서 조금씩 말려 죽일 수 있습니다. 하여-."
"그만 되었네."
황제는 루이의 말을 끊었다. 더는 듣기 싫다는 신호였다. 루이 또한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를 만큼 눈치가 없지도 않았던지라, 조용히 입을 다물고 다시 한걸음 뒤로 물러났다.
황제는 잠시 침묵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한국의 뜻도, 한국과의 전쟁은 어려우리라는 것도 잘 알았네. 그럼 반대로 묻겠네. 앙리, 자네가 생각하기에 영국은 왜 이번 국혼을 승낙했다고 생각하는가?"
"물론, 이간질하기 위함이겠지요."
"이간질이라?"
황제는 시선을 벨로네에게 돌렸다. 벨로네는 자신에게 재차 기회가 왔음에 크게 기뻐하며 말을 이어갔다.
"분열시켜 지배하라. 이제 와서 언급하기도 새삼스럽습니다만, 지난 수백 년간 영국인들의 이 비겁한 외교관은 단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잘 아시다시피, 요즈음 미합중국은 해군 증강에 힘써왔습니다. 이런 정세 속에서, 만일 영국인들이 이번 국혼을 빌미로 한국의 해군 증강을 돕는다면 어떻겠습니까?"
"···태평양이 비좁아지겠군. 과연. 촌놈끼리 싸움을 붙이겠다는 건가."
"폐하의 현안에는 그저 경탄할 따름입니다. 아마 이번에 영국인들이 겨냥하고 있는 것은 우리 위대한 프랑스 제국이 아니라 미합중국일 것입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두 나라가 전쟁을 치르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겠지요. 두 나라가 전쟁에 돌입하는 순간 파나마 운하 사용량이 확 줄어들 테고, 이는 영국에도 악재일 테니까요.
적당한 수준의 분열과 적당한 수준의 긴장감. 그거면 충분할 겁니다. 두 나라가 서로 견제하느라 아웅다웅하는 것만으로 영국은 대서양에서 여유를 되찾을 수 있을 테지요."
나폴레옹 4세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벨로네는 황제의 기대를 충족시켰다는 생각에 환히 웃었다.
그리고 나폴레옹 4세는 만족스러운 얼굴 그대로, 담담하게 말했다.
"경은 참 말이 많군그래."
"예, 예?"
"그리 놀랄 건 없지 않은가? 다만, 그렇군. 경의 조언은 꼭 한마디씩이 더 많군. 짐 또한 알고 있을 사실을 일부러 늘어놓는 이유는 뭔가? 짐의 학식을 얕보고 있는 건가?"
"그,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하늘에 계신 존귀한 주의 이름에 맹세코, 저는 결단코 그럴 생각은···!"
벨로네는 말을 더듬으며 변명을 늘어놓으려 했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모습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벨로네에게 만족감을 표하고 있던 황제가 느닷없이 태세를 바꾸어 추궁하고 있으니 그야 당황할 수밖에는 없었다.
하지만 황제는 벨로네의 말을 도중에 끊고서, 싸늘하게 말하였다.
"그런가. 그럼 짐의 착각이었던 모양이군. 앞으로는 이와 같은 일이 없도록 주의하도록 하게나. 내 인내심에도 한계는 있는 법이니 말일세."
"···물론입니다, 폐하."
벨로네는 딱딱히 굳은 얼굴로 제자리에서 고개를 숙였다. 황제는 그런 벨로네에게 손을 까딱여 보였을 뿐이었다. 명백한 축객령이었다. 벨로네는 마지막으로 황제에게 허리를 굽혀 예를 표하고서, 그대로 돌아서서 방을 나섰다.
벨로네가 자리를 떠난 직후, 나폴레옹 4세는 말했다.
"잠시 걸으세나."
누구에게 하는 말인가는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애당초, 황제를 제외한다면 이 방에 남아있는 건 루이 한 사람뿐이었으니까.
루이는 두 걸음 뒤에서 황제를 뒤쫓았다. 나폴레옹 4세는 방을 나서 복도의 새하얀 대리석 벽을 따라 죽 늘어선 혁명전쟁 시절 26인 원수들의 초상화를 돌아보며 말했다.
"내가 어째서 경을 아직도 총애하고 있는지 아는가?"
"송구하오나, 옛정 때문이 아닐는지요."
"틀렸네. 경은 내 기분에 맞춰주려 하지 않기 때문이야. 아첨하려 하지 않는 거지.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 아는가?"
루이는 쉽게 답하지 못했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일이었다. 어째서 황제가 싫은 말만 하는 자신에게 총애를 아끼지 않는 것일까. 인간으로서 당연히 기분 나빠하는 게 정상일 텐데도 말이다.
루이는 잠시 곰곰이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폐하께서 부족하시다. 여기는 점을 제가 채워 드릴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틀렸네. 그런 글러 먹은 언사와 행실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내가 원하는 그 이상의 힘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야. 황제의 기분도 맞춰주지 않는 작자가 다른 장성들이나 귀부인들 앞에서는 오죽하겠나. 하물며 기자들 앞이라면? 경은 전시에 큰 명성을 쌓아 올려 평시에 그 모든 명성을 잃고 말 인물이야."
루이도 평생에 걸쳐 그리 다섯 손가락 안에 꽂을 폭언이었다. 루이는 무심코 제자리에 멈춰 서고 말았다.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잠시라도 정신을 회복할 시간이 필요했다.
나폴레옹 4세는 복도 맨 끄트머리에 있던 나폴레옹 대제의 초상화를 등지고 서서 말했다.
"자랑스럽게 생각하게나. 경은 바로 그렇기에 그 어떤 상황에서도 나의 총애를 잃을 일이 없을 테니까. 얼마나 기특한 원수란 말인가. 욕심이 없는 건 아니나 나의 포상만으로 만족해하며 감사할 줄 알고, 몇 년이 지나도 언변이 늘지를 않으니 나의 통제에서 벗어나 대단한 세력을 구축할 일도 없지. 하물며 충심 깊고 유능하기까지.
황제의 검이자 방패로서 이보다 우수한 인재가 또 어디에 있겠는가? 난 진정으로 경을 하늘에 계신 존귀하신 주께서 내게 내려준 이번 생에 단 한 번 있을 인연이라고 생각하네."
"하, 하하···."
루이는 억지로 웃었다. 나폴레옹 4세는 그 나름대로 진심 어린 칭찬이랍시고 지껄이고 있는 듯했으나, 듣고 있는 처지에서 그걸 칭찬이라고 받아들이기에는 내용에 너무 가시가 돋쳐있었다.
하지만 나폴레옹 4세는 아랑곳하지 않고서 그가 등지고 서 있던 나폴레옹 대제의 초상화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가끔 대제를 원망하고는 한다네."
"···헌법을 만드셨기 때문입니까?"
"잘 알고 있군. 그래, 바로 그거라네. 그놈의 헌법과 선례 때문에 소위 자유주의자라는 놈들과 입씨름하는 것도 질렸어. 아무리 다시 보위에 오르기 위함이셨다지만, 어찌 그 빌어먹을 놈들에게 양보하셨는지 원. 하나의 나라, 하나의 민족, 하나의 주권. 그것이면 충분하지 않은가. 대제께서도 바로 그렇게 우리 프랑스를 통치하셨지 않던가.
대관절 어째서 의회니 정당이니 따위가 필요한 것인지."
나폴레옹 4세는 투덜거리듯이 중얼거렸다. 진심인 모양이었다. 의회에 맞서 독재 권력을 추구하는 점에서, 그는 자기 아버지와 나폴레옹 1세를 똑 닮아 있었다.
루이는 한숨을 내쉬고서 말했다.
"···듣지 못한 거로 하겠습니다."
"그래, 바로 그 자세일세. 음, 이러니 자네가 듣는 앞에서는 내가 말이 많아지는 게야. 입이 무겁고 평소에는 아무렇게나 지껄이다가도 하지 말아야 할 말은 하지 않지. 선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차리는 건 귀한 재주야. 앞으로도 변치 않기를 바라고 있겠네."
황제는 흡족하게 웃었다. 루이는 따라 웃지 못했다. 과연 이 황제를 이대로 두어도 되는 것일까. 그런 두려움이 밀려왔다. 대혁명을 빌미로, 황제는 냉혹한 독재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런 동요를 조금도 눈치채지 못하고서, 황제는 루이를 향해 슬쩍 돌아서며 말했다.
"저번에 루이즈가 태어났을 적에, 한국의 황자가 와서 축하하여 주었었지."
"예. 분명 그랬습니다만···."
"그 보답인 셈 치세나. 오래간만에 한국에 다녀와 주게. 자네가 한국에 다녀온다면, 세간의 얼간이들도 우리 프랑스와 사이가 소홀해졌다느니 뭐라느니 지껄일 수는 없을 테니까."
아니, 과연 눈치채지 못했던 걸까.
어딘가 모르게, 루이는 황제가 자신을 일부러 내쫓으려 하는 것 같다는 위화감에 사로잡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