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폭군 고종대왕 일대기-339화 (339/530)

< 숨은 보석 >

언제나 대로의 일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 무렵 이형의 인재영입 시도는 다른 이들이 보기에 엉뚱 그 자체였다.

인재수집의 신호탄을 알렸던 코흐는, 되려 독일에서 뜻하지 않게 거물을 잃고 말았다 하고 땅을 치며 통곡하기에 충분한 사건이었다. 코흐는 이미 한국에 오기 전부터 탄저균 발견으로 학계에서 이름을 떨치고 있었고, 한국에 온 이후로는 인류 최초의 항생제 개발을 시작으로 다양한 항생물질들을 발견하고 실험하면서 그 명성을 더해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 황제가 수집해온 인재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인물들이었다. 분명 각자의 분야에서 그 나름대로 성과를 보이기는 하지만, 과연 황제가 나서서 일부러 끌어와야 할 만큼 대단한 인물인가-하는 의심을 하게 하였던 것이다.

"혹시, 그 에디슨이라는 색목인이 무언가 아바마마의 심기를 거슬렀는지요?"

그리고 황제의 엉뚱한 인재영입의 이번 차례는 니콜라 테슬라였다. 태자 이원철은 어린아이처럼 펄쩍펄쩍 뛰고 있는 황제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 무렵 니콜라 테슬라는 이미 직류교류 전쟁으로 에디슨과 대립하고 있었고, 웨스팅하우스에 고용되어 있었다. 따라서 황제가 테슬라가 온다는 사실에 기뻐하는 걸 봐도 혹시 에디슨에게 그간 악감정이 있었던 거 아닐까-하는 의심을 품는 게 한계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건 오해였다. 이형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민씨 일가에서야 추악했던 첫 만남 탓에 에디슨과 그가 이끄는 토머스 에디슨과 제너럴 일렉트릭이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 자체를 불쾌해하고 있지만, 그건 이형에게는 관계없는 이야기였다.

이형은 다만 히죽 웃으며 말했다.

"그럴 리가 있겠느냐? 그 녀석은 사업가이니라. 특별히 우리 대한에 무언가 호의를 베풀지는 않았으나, 적어도 값을 치른 만큼은 착실하게 돌려줘 왔느니라. 한데 어찌하여 이 내가 그 특허도둑놈을 미워하겠느냐?"

"하오나···."

태자는 이형의 말을 잘 믿지 않는 기색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앞에서는 싫어하지 않는다고 말했으면서 뒷말을 특허도둑놈이라고 마무리 지었는데 어느 누가 그에게 호의를 품었다고 생각하겠는가. 아무리 친한 상대에게 막 대하는 경향이 있는 황제라도, 이걸 두고서 호의를 품었다고 차마 생각할 수는 없었다.

이형은 계속하여 바둑이의 잔털을 손질해주며 말을 이었다.

"거듭하여 말하건대, 나는 에디슨이라는 그 색목인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니라. 단지 하늘에서 내린 인재를 만나보고 싶을 뿐이다."

"하늘에서 내린 인재, 말씀입니까?"

"그렇다. 하늘에서 내린 인재이니라. 새장에 갇혀 있기를 싫어하고, 다만 저 푸른 하늘을 훨훨 날기 좋아하는 봉황이다. 나는 다만 그 봉황이 잠시 몸을 누일 둥지를 마련해주고 싶을 따름이다."

이형은 회한 어린 얼굴로 말하였다. 사실, 그가 테슬라에게 한국에 오라고 권유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제법 오랜 옛날부터 한국에 오도록 은근히 권유하고 있었지만, 한국에 가봐야 미래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자신이 연구하기에는 미국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했는지 응하지 않았던 것뿐이었다.

그런 테슬라가, 이번에는 제 발로 한국에 찾아오겠다고 말하였다. 미국 정부가 일부러 사절단에 함께하라고 윽박지른다고 한들 절대 따르지 않을 고고한 천재가 말이다. 그건 이번 방문이 이형에게 초대를 받아서가 아니라, 테슬라가 일부러 한국에 발걸음을 할만한 무언가 가치 있는 것을 발견했다는 뜻과 같았다.

그리고 이형은 그것이 무엇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번에 테슬라가 보여준 행보는, 틀림없이 그가 보낸 편지에서 무언가 영감을 받았기 때문일 테니까.

'레이더와 휴대전화. 나도 설계는 잘 모르고 그냥 아이디어만 전해 준 거지만- 사실 지금은 이런 개념 자체가 혁신 그 자체가 아니겠나?'

이형은 남몰래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사실, 어느 쪽도 19세기 말의 기술력으로는 실현 불가능한 것들뿐이었다. 그나마 페니실린은 푸른곰팡이라는 알기 쉬운 힌트가 있었지만, 레이더나 휴대전화는 우선 근본적으로 무선통신 기술과 전파탐지 기술이 발전해야만 한다.

그러나, 바로 그런 지금의 기술로는 실현 불가능한 기기이기에 로망이 아니겠는가. 그런 로망에 죽고 사는 천재 과학자에게는 특히나 말이다. 안 그래도 무선통신이나 무선송전과 같은 기술들을 구상하고 있던 차에, 마침 한국의 황제라는 인물이 자신보다 앞서 그 개념과 간략한 작동법을 보여주니 이게 도대체 꿈인가 생시인가 싶었을 터였다.

코흐 때도 그러했듯이, 천재들을 낚는 가장 좋은 떡밥은 다름 아닌 그들의 탐구욕을 자극하는 신선하고도 창의적인 아이디어들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언제나 최선의 해답이었던 건 아니었다.

"찰스는 어떻게 지내고 있더냐?"

푸르륵.

이형은 바둑이의 목덜미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나이가 들어서일까. 검은 털이 새하얗게 희어 구석구석 흰 게 보이는 것이 얼핏 얼룩말을 보는 듯하여 이형은 쓴웃음을 지었다.

"예, 예?"

그리고 이형의 느닷없는 질문에 태자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대금 찰스라고 불러봐야, 어디 서역인치고서 찰스라는 이름을 지닌 인물이 어디 한둘이던가. 더불어, 이 한성에 또 색목인들은 좀 많던가. 당장 태자만 해도 이형의 그 한마디만으로 성균관 대학교 화학 교수 찰스, 주재 무관 찰스, 창덕궁 전기기사 찰스 등 못해도 열 손가락을 넘길 찰스 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

이형은 태자의 어리둥절한 얼굴에 잠시 그의 실수를 눈치채지 못하다가, 한참 후에야 뒤늦게 깨닫고서 아, 하고 가볍게 주먹으로 제 손뼉을 내려쳤다.

이형은 멋쩍게 흠흠 하고 숨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우리 해군 조병창에서 일하는 찰스 파슨스 말이다."

"아, 그 애란(愛蘭:아일랜드)인 말씀입니까?"

그제야 태자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무턱대고 찰스라고 하면, 이 한국 땅에 찰스야 무수히 많았지만, 해군 조병창에서 일하는 찰스라고 한다면 한 사람뿐이었다. 증기터빈의 발명자, 찰스 아게르논 파슨스라면 말이다.

태자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이내 난색을 보였다.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요즈음 한양에 머물지 못하고서 이국을 전전하였던지라···."

"음, 잘 모르겠다는 말이로구나. 그야 그럴 만도 하지."

이형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걸 두고서 뭐라 탓할 수도 없었다. 당장에, 태자가 요 반년간 한국에 머무르지 못하고서 국외를 전전해야 했던 가장 근본적인 이유가 그 자신이 그리하라고 명하였기 때문이었으니까 말이다.

이형은 히죽 웃으며 말했다.

"마침 잘 되었구나. 이야기가 나온 김에 간만에 해군 조병창에 들러야겠다."

"···바로 내부에 일러 채비를 하라 일러두겠나이다."

즉흥적으로 일정을 변경하는 고역에 철이 들면서 절로 익숙해진 태자였다.

* * *

찰스 아게르논 파슨스를 어떻게 하여 이형이 한국에 끌어왔는가-하면 다소 설명이 길어진다.

기술개발은 언제나 상당한 재원과 시간과 공간을 요구로 한다. 이는 달리 말하자면, 경제가 파탄이 날수록 기술개발에 투자될 재원 또한 부족해지면서 기술개발이 당장 생계를 위하여 뒤로 밀리게 된다는 것이다.

요컨대, 1870년대 중순에 있었던 영국발 경제 대공황은 의심할 여지 없이 영국의 기술개발 역량과 의욕을 대폭 후퇴시켰다. 1880년대에 접어들어서는 아시아의 경제성장과 미국의 경제성장으로 세계 경제 그 자체가 총체적인 성장을 이룩하면서 이러한 기술발전 위축도 옛말이 되어버렸으나, 그렇다고 70년대가 기술개발의 암흑기였다는 게 부정되는 건 아니었다.

그리고 이러한 1870년대의 기술 암흑기는 막 세인트존스 대학을 졸업하였던 찰스 파슨스에게도 고스란히 적용되었다.

"돈 내놔, 이 새끼야! 관료면 다야? 전쟁 끝나고서 대금 지급하겠다고 한 게 벌써 석 달째 감감무소식이라고! 당장 돈 내놔! 여기서 피 보고 싶지 않으면 지금 당장!"

"어, 어허! 이거 왜 이러는가. 여왕 폐하의 충성스러운 신사로서 격조를 갖추시게.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이게 무슨 추태인가!"

"신사고 나발이고 내달이면 우리 마누라가 화이트 채플에 마담으로 들어가게 생겼는데, 내가 지금 제정신이겠냐, 이 개자식아! 돈 내놔! 돈 내놓으라고 이 새끼야!"

이 무렵, 한국으로부터의 구호자금으로 간신히 구사일생한 영국 금융업계와는 달리 영국의 제조업계는 사실상 파탄 그 자체였다. 그간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총력전은 영국 제조업계에 크나큰 무리를 끼쳤다. 화물을 실은 열차들은 기차 시간이 꼬여 도중에 부딪히거나 어디론가 실종되어버리는 일들이 부지기수였고, 전쟁성은 매일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군수물자의 수요량을 계산해내지 못했다.

문제는 이 수요량의 계산실패가 현장에서의 보급 부족이 아니라 후방에서의 생산과잉으로 이어졌다는 것이었다. 지금껏 한 번도 회의에 부쳐본 적 없는 총력전과 군더더기투성이에 어수선하기 그지없는 보급선은 보급 도중 상당수의 물자가 어디론가 소실되거나 지연될 것을 항시 염두에 두게 했고, 이에 따라 전쟁성은 아예 상정되는 보급물자를 1.3배 가까이 추가 생산하게 하는 것으로 메웠다.

이에 따라 전선에서 영국군은 당시 그 어떤 군대보다 풍족한 보급품을 유지할 수 있었으나, 문제는 이러한 과잉매입이 예산초과와 영국 제조업계의 생산 과열을 일으켰다는 것이었다. 제조업계의 단기적인 버블현상은 런던 증시가 폭락하는 날 함께 꺼졌고, 그와 함께 영국 제조업계는 나락까지 추락했다.

특히나 당시 전쟁 내각은 이러한 예산초과를 재정부채로 돌려 전쟁이 끝난 후 중장기적으로 갚아나갈 것이라며 지불을 뒤로 미루고 있었기에, 당장에 대공황으로 자금난에 시달리게 되자 미처 대금을 받지 못한 공장 대부분은 바닥에 나앉게 되었다. 이러한 영국 제조업계의 붕괴는 80년대 이후 영국 자유당-노동당 연립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나 개선되었으니, 기술 암흑기는 곧 영국 공장들의 암흑기이기도 했던 셈이다.

"유감스럽지만, 수습생 채용은 없던 일이 되어버렸네. 날 너무 원망하지 말게나. 이것도 저것도 이 빌어먹을 경제 탓이니까. 이대로 가다가는 나도 새 직장을 알아봐야 할 판국이야. 부디 자네도 너무 실망하지 말고 살길을 알아보시게나."

이러한 환경 속에서, 이제 막 대학교를 졸업한 찰스 파슨스는 궁지에 몰릴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본래 그를 수습생으로 데려가려 했던 곳이 무기제조를 주업으로 삼던 암스트롱 위트 워스였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전쟁성의 수요계산 실패로 직격타를 맞아버린 군수업계에서 이제 갓 대학을 졸업한 사회초년생을 환대할 리가 없던 것이다.

"당장 꺼져, 이 냄새 나는 감자돌이 새끼야! 오, 그래. 감자나 캐 먹고살 놈이 우리 일자리를 뺏어 먹겠다, 이거냐? 당장에 너희 나라로 꺼져, 이 더러운 놈아!"

여기에 그가 영국에서 태어난 아일랜드계라는 것도 문제였다. 본래라면 큰 문제가 되지 않았겠으나, 경제공황 때문에 각박해진 인심이 문제였다. 런던에서 태어났다고 한들 그의 가문의 고향 집은 아일랜드에 있었고, 그는 어린 시절 아일랜드의 고향 집에서 가정교사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우며 자라났다. 이는 대공황 시기에서 크나큰 약점으로 작용했다.

잉글랜드인들이 잉글랜드인들끼리 모이고, 스코틀랜드인들이 스코틀랜드인들끼리 모이는 동안 아일랜드인들은 영국 내에서 설 곳이 마땅치가 않았다. 무엇보다 이러한 구별은 단지 혈연에 한정되지 않았다. 잉글랜드인이더라도 아일랜드에 이주하여 얼스터에서 살았다면 그는 아일랜드계로 구분되었다. 그만큼 이 무렵 영국인들이 심적으로 몰려있었던 까닭이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단순 육체노동자라면 모를까, 케임브리지에서 대학을 다녔던 엘리트 출신인 찰스 파슨스는 설 자리가 없었다. 비록 타고난 재능과 학위로 어떻게든 취직을 할 수는 있었으나, 대우는 보잘것없었으며 아일랜드계로서 받는 차별은 날로 심해져만 갔다.

"개 같은 세상! 내가 뭐가 다르다는 거냐. 나도 영국에서 태어난 영국인이다! 영국인이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랬었는데··· 이제 나는 뭐지?"

이러한 각박한 현실은 찰스 파슨스로 하여금 그 자신의 국가 정체성에 회의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날 때부터 런던에서 태어났고, 그의 가문 또한 친영파였던 까닭에 오랜 옛날부터 자신의 조국은 영국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경제 대공황을 핑계로 단지 고향 집이 아일랜드라는 것만으로 받게 되는 차별이 날로 커지다 보니 그간 조국이라 믿어왔던 영국에 정이 뚝 떨어졌던 것이다.

거기에 이 무렵 대공황을 핑계로 조금씩 거세어져 가던 아일랜드 독립운동도 그의 정체성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이들 아일랜드 독립운동 또한 그에게 호의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국에도 아일랜드에도 속하지 못했던 찰스 파슨스는 점차 심적으로 고립되었고, 결국 이민을 결심하게 되었다.

"미국으로 가자. 미국으로 간다면, 더는 이런 현실 속에서 고통받을 일은 없겠지."

이민을 결심한 찰스 파슨스가 가장 먼저 선택한 곳은 다름 아닌 미국이었다. 이는 당연한 선택이기도 했다. 가장 가까웠고, 이민자들에게 가장 열려있었으며, 무엇보다 미국은 찰스 파슨스와 같은 고학력 이민자들에게 더 없이 호의적이었다. 구태여 다른 나라를 생각할 이유가 없던 것이다.

때마침 아주 연구기금을 막 창설하고서 여기에 합류할만한 인재들을 찾고 있었던 이형에 의하여 발견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한국···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예, 한국입니다. 찰스 파슨스 씨, 저는 존귀하신 여왕 폐하와 명예로운 의회를 대신하여 당신이 명예로운 기술고문으로서 한국에 가는 걸 권하고 싶습니다."

증기터빈의 발명자 찰스 파슨스는 이형이 찾고 있던 인재 중 맨 앞줄에 속한 인물 중 한 사람이었고, 따라서 그는 이 무렵 때마침 영국으로 귀국하던 토마스 공사를 시켜 찰스 파슨스라는 기술자를 찾아달라고 요청하였다. 그리고 토마스는 이러한 이형의 요청을 흔쾌하게 받아들였다.

선금으로 1만 파운드 상당의 수고비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토마스는 그 액수를 보고서 직감적으로 황제가 한국으로 불러오고자 하는 인물이 무언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황제만이 알고 있는 숨은 보석이라는 걸 눈치챘다. 그 1만 파운드 상당의 수고비가 지폐나 수표가 아닌 금괴로 지불 되었기에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토마스는 찰스 파슨스를 직접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어떻게든 그를 붙잡아둘 생각이었다. 황제가 그토록 탐내던 인재를 대영제국을 위하여 일하게 한다면, 반드시 자신의 공적이 인정받으리라 여겼던 것이다.

'이런 꾀죄죄한 감자돌이를 요구하다니. 황제가 미치기라도 한 건가?'

그러나 막상 그러한 야심은 찰스를 직접 만난 순간 날아가고 말았다. 그렇게 기대를 품고서 만나게 된 찰스가 이렇다 할 실적도 없고 행색도 꾀죄죄한 앵글로-아이리쉬였던 것이다. 그나마 세인트존스 대학의 졸업생이라는 것만은 눈여겨볼 만했으나, 그 정도 인재야 영국에서는 매년 수백 수천 명씩 나오고 있었다.

따라서 토마스는 찰스와의 만남과 기술 고문직 권유를 그리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고, 황제에게서 받은 1만 파운드 상당의 금괴 또한 보수당에 가입하여 의원 선거를 치르게 되면서 금세 소모해버렸다. 그리고 이 무렵까지도 토마스는 끝내 알지 못하였다.

자신이 직접 보내 대한제국 해군 조병창에 뿌리를 내린 이 찰스 파슨스야말로, 이 무렵 대한제국 해군 조병창이 나날이 놀라운 성과를 보여주고 있는 가장 큰 이유였다는 걸 말이다.

< 숨은 보석 > 끝

ⓒ 리첼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