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폭군 고종대왕 일대기-343화 (343/530)

< 보람 >

그렇게 형제가 다투며 우애를 되새기고 있을 무렵.

"하필이면 지금 같은 시기에 셍게린첸이 세상을 뜰 줄은···."

이형은 그리 좋지 않은 시기에 북방에서 들려온 비보에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몽골 친왕, 셍게린첸이 명을 달리했다는 보고가 들어왔던 것이다. 그건 별로 달갑지 않은 소식이었다. 마침 노서아에서의 소란이 사실상 기정사실로 되던 와중에, 몽골에서 대표적인 친한 세력으로서 몽골인들의 중심을 잡아주던 기둥이 사라졌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셍게린첸이 죽었다 한들 당장 몽골에서 반란이 일어나거나 제국에서 이탈하려는 시도를 보여주지는 않겠으나, 그래도 노서아에서의 내전 가능성을 점치던 와중에 노서아와 국경을 마주 대고 있는 몽골에서의 이상 사태는 이형으로서는 가능한 한 피하고 싶을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지금 몽골의 원로들은 이전 노서아와의 전쟁 당시 자신들의 힘을 과신하여 폭주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던 바로 그 젊은 장로들이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뭐, 사람이 천년만년 살 수 없는 노릇이고, 언젠가 이리되리라고는 알고 있었지만··· 쯧. 시기가 별로 좋지 않군그래."

이형은 그리 중얼거리며 탁자를 가볍게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숨기려 해도, 역시 초조함을 느끼고 있던 것이 절로 겉으로 드러나고 있던 것이다. 물론, 그만한 사안이었던 것도 사실이었지만 말이다. 바로 그렇기에 일부러 오늘 한성근을 위시한 장성들을 한데 불러모았던 것이 아니던가. 의회가 아니라 장성들을 먼저 불러모았던 사실부터가 이형이 몽골 문제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를 똑똑히 보여주고 있었다.

가장 먼저 발언권을 얻었던 것은 육군 원수 한성근이었다. 그는 얼굴을 굳히며 말하였다.

"폐하, 긴히 드릴 말씀이 있나이다."

"음. 경청하리다. 어디 좋을 대로 말하여 보시게."

"이번 기회에 몽골인들에게서 자치권을 거두어들이는 것이 어떨는지요."

"그건 경과 논할 것이 아니라 의회와 논해야만 할 문제 같군그래."

한성근의 말에 이형은 눈살을 찌푸렸다. 어떤 판단하에 그런 말이 나왔을지야 그럭저럭 예상이 갔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군관들에 의한 정치개입은 이형으로서는 그리 달갑지가 않을 수밖에 없었다. 당장에 군인들이 마음을 달리 먹어서 내쫓긴 왕들이 역사상 어디 한둘이던가.

군인은 군인의 영역이, 관료는 관료의 영역이 있다는 것이 이형의 지론이었고 제아무리 총애하는 한성근이라고 한들 이에 대해서는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송구하옵니다. 하오나 숙고하여 주소서. 만주와 조선이 하나가 되었는지도 어언 20여 년을 넘어가고 있습니다. 그간 만주는 조선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덕분에 통혼이 쉽게 이루어져 조금씩 섞여가고 있으나, 몽골은 조선과 거리로 인하여 교류가 어려워 오랜 세월 제국의 주류와 괴리 되어 있었나이다.

물론 이러한 혜택은 단지 베풀었던 것이 아니라 몽골이 스스로 굴종하였던 까닭이었으나, 오늘날 저 광활한 만주조차 조선과 하나가 되고 있사온데 어찌 몽골만 예외가 될 수 있으리까. 이제 그만 몽골의 백성을 거두어 대한의 광휘 아래 굴종시켜야 하지 않을는지요."

그러나 한성근은 그만 물러나는 대신 끝까지 자신의 말을 마무리 지었다. 이형의 심기를 거스르고 있다는 거야 알고 있었지만, 그런데도 한 번쯤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라고 판단한 까닭이었다. 무엇보다, 그에게는 노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전선 지대가 한국 정부의 직접통치를 받는 것이 아니라 법적으로는 다른 나라라는 것이 거슬렸다.

물론 다른 나라인 건 진나라를 위시하여 여러 제후 또한 마찬가지라지만, 하다못해 그들은 종친들이지 않은가. 비슷하게 나라도 다르고 왕조도 다른 일본은 애초에 섬나라다 보니 대륙과는 다소 괴리되어 나라가 굴러가는 감이 있으나, 애초에 일본은 지금의 한국이라도 함부로 주권을 거두더니 마느니 할만한 체급이 아니다.

그에 반해 몽골은 어떠한가. 영토는 거대해도 사람이 살만한 땅은 얼마 되지 않으니 인구도 적고, 그럭저럭 지하자원도 풍족한 편이며 무엇보다 대륙에 끼어있다. 결국, 문화와 민족이 달라 마음을 달리 먹지 않을까 우려된다는 것은 핑계고, 실질적으로는 한국 또한 더는 확장할 여지가 마땅치 않은 판국이니 이번 기회에 몽골을 완전히 합병하여 영토를 대거 불려보는 건 어떻겠냐는 제안이었다.

"그 이야기는 더는 듣지 않으리다. 그쯤 해두시오."

이형은 그에 논리로서 대꾸하는 대신에 일방적으로 말을 끊어버렸다. 논리로 설명하라고 하면 그야 할 수는 있었다. 이제 와서 합병하기에는 몽골에 주거하는 조선인이나 만주인이 극히 적으니 합병을 한다고 치면 강제 이주가 필요 불가피한데, 그 과정에서 발생할 몽골인들과 이주민들의 반발을 감당할 시간과 자원을 노서아에서의 이상 사태가 예정되어있는 현 상황에서 쓰기에는 아무래도 아깝다고 말이다.

하지만 이형은 일부러 딱 잘라 거부하는 길을 택했다. 이미 한 번 하지 말라고 한 주제를 가지고서 두 번을 반복한 한성근이 영 달갑지 않았던 까닭이었다. 직접적인 처벌은 하지 않더라도, 한 번쯤 권위로 찍어누를 필요성을 느낀 것이다.

'그야 뭐, 나도 차르 교체기가 겹친 게 아니었다면 한 번쯤 생각은 해봤겠지만···.'

일이 그렇게 되어버렸다. 이형은 가만히 한성근을 노려다 보았고, 한성근은 얼굴을 붉히고서는 그 자리에서 허리를 숙이며 사죄를 표했다.

"송구하옵니다, 황상. 이 늙은이가 마음이 급하여 폐하의 심기를 거스르고 말았나이다. 죽여주시옵소서."

"아니, 그럴 필요는 없소. 이걸로 모두 들었겠지만, 이 일은 의회의 소관이요. 그러니까 경들은 앞으로의 정책이 아니라 안보를 이야기하도록 하시오."

"""여부가 있겠나이까, 폐하."""

황제의 엄숙한 선언이었다. 누가 감히 토를 달겠는가. 장성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이형에게 허리를 굽혀 예를 표했다. 그제야 이형은 조금이나마 기분이 풀리는 듯하였다.

그는 한쪽 팔을 턱으로 괴고서 물었다.

"그럼 이것부터 묻도록 하겠소. 경들이 생각하기에, 이제 와서 몽골에서 반란이 일어난다든가 하는 가정은 가능하리라 보시오?"

"불가하옵니다. 몽골이 황상께 충성을 맹세한 이래로 몽골의 청년들은 우리 대한의 병졸과 무관이 되어 오랜 세월 복무했나이다. 하오나, 이들은 모두 의도적으로 제각각 멀리 떨어진 곳에 머무르고 있으니 한데 모여 난을 일으키는 일은 결단코 불가하옵니다."

이에 답한 것은 육군 소장 곽종석이었다. 자신감 넘치는 대답이었다. 그 자신이 몽골에서 몇 년간 주둔하며 몽골인들이 어떻게 징병 되어 대한제국군에서 활동하고 있는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 황제가 듣는 앞에서도 당당하게 확답을 줄 수 있었던 것이다.

이형은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경들이 그리 말하니 마음이 놓이는구려. 그럼 몽골인들은 우리 대한에 얼마만큼 충성하고 있는 듯 보였소?"

"그것이···."

곽종석은 선뜻 답하지 못하고서 망설였다. 그거면 충분했다. 이형은 내심 아마 반반이라고 추정했다. 자치권을 보장받고 안보를 보장받은 것만으로 만족하는 부류와 그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부류. 안 그래도 한국을 중심으로 아시아 전역에 민족주의가 퍼져 나가는 와중이니, 한국에서 독립하겠다고 설치는 분리주의자들도 알음알음 생기고 있을 게 분명했다.

다만 그런 불만분자들이 무시할 수 있는 숫자는 아니되 유의미한 행동을 보여줄 숫자 또한 아니었기에, 이를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이는 것일 터였다. 이형은 손을 휘휘 저었다.

그거면 충분하다는 뜻이었다. 곽종석은 얼굴을 붉히고서 뒤로 물러났다.

"그럼 마지막으로 묻겠소. 만일 지금 몽골을 통과하여 노서아에 군을 파견한다고 한다면, 저들이 과연 동조하겠소?"

폭탄 발언이었다. 노서아와의 전쟁, 혹은 대대적인 내전 개입을 암시하고 있는 발언이었으니까 말이다. 그간 이에 관한 논의는 제법 있었어도 적어도 공적인 자리에서 이와 같은 논의가 나온 것은 처음이었기에, 장성들은 일제히 얼굴을 딱딱하게 굳혔다.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였다. 내전 개입이건 노서아와의 전면전이건, 어느 쪽이건 세계대전을 촉발할 위험이 있는 주제들이었다. 그렇기에 새삼스럽게 장성들은 일부러 몽골에서의 이변에 황제가 그들 전원을 소집한 이유를 자각할 수 있었다.

모두가 말을 아끼던 중, 앞으로 선뜻 나선 것은 한성근의 총애로 준장에 올랐던 원새개였다.

"맡겨만 주십시오. 폐하. 반드시 몽고 놈들이 동조하게 하여 보이겠나이다!"

야심만만한 선언이었다. 합종군에 결정적인 단서를 주어 승승장구하게 된 이래로, 이렇다. 실패나 실수 없이 이 자리까지 왔으니 자신의 실력에 자신이 있던 것이다. 물론, 자신의 실력에 대한 자신 말고도 어떻게든 황제의 이목을 끌어보려는 의도도 있었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형은 떨떠름하게 답하였다.

"그런 호언장담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저들이 동조하겠느냐는 말이오. 그렇게 만들어 보이겠다가 아니라, 그것부터 말씀하시오. 저들이 과연 동조하겠소?"

"그야 물론 동조할 것입니다. 하오나, 일전에 노서아에서 몽고 초원을 불태워 버린 일이 있던 만큼, 그에 상응하는 보복을 하려 들지는 않을까 우려되나이다."

답하지 못하고서 물러난 원새개를 대신하여 답한 것은 원새개를 아끼는 한성근이었다. 그 대답에 이형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요컨대, 동조는 하겠으나 복수심에 근거한 참전이 될 테니 내전에 함부로 쓸 수는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단지 노서아를 황폐하게 만드는 게 목적이라면 모를까, 한국에 호의적인 군부정권을 수립하려면 함부로 약탈과 학살을 일삼을 복수심에 불타는 병사들은 아무래도 위험했다.

이형은 가만히 턱을 쓰다듬었다.

"흠, 알겠소. 경들은 앞으로 몽골을 거치는 보급선과 노서아에서의 전란에 대비하여 작전계획을 세워주시오. 아마 머지않아 북방에서 큰 전쟁이 있을 거요. 설령 우리가 바라지 않는다고 한들, 유럽의 음모가들이 만들고야 말 테지. 가벼운 불씨만 올려두면 활활 타오를 이미 엎어진 기름이니."

"""여부가 있겠나이-."""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폐하. 한 가지 여쭐 말이 있사옵니다."

그때, 잠자코 고개를 숙이려던 장성들의 말을 끊고서 원새개가 손을 번쩍 들었다. 또 무언가 공을 세우려고 저러는가 싶어서 눈살을 찌푸린 이형이었으나, 원새개의 얼굴은 사뭇 진지했다.

이형이 어디 말해보라는 듯 고개를 까닥이니, 원새개는 담담하게 물었다.

"무엇을 달성하여야 전쟁이 끝날는지 혹 알려주실 수 있을는지요? 이번 작전계획을 세움이 무엇을 위함인지, 분명히 알고 싶나이다."

"···오호라."

제법 그럴싸한 지적이었다. 이형은 조용히 입꼬리를 뒤틀었다. 이제 한성근도 나이가 들어 전면에서 물러날 날이 머지않은 와중에, 일부러 원새개를 가까이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 야심만만한 성정과 이형이 기억하는 원 역사에서의 행적은 거슬렸지만, 적어도 실력만큼은 진짜배기였다.

이형은 잠시 골똘히 생각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우선 몇 가지 말해두리다. 우선 첫째로, 우리 대한은 공식적으로 참전하는 것이 아니니 노서아에 파견될 병사들은 의용병으로서 참전하게 될 것이오. 또한, 우리 병사들의 제1 목표는 오극란(烏克蘭:우크라이나)의 사수가 되어야 하오. 오극란만 계속하여 노서아의 수중에 남아있게 된다면, 노서아는 능히 유럽을 공포에 떨게 할 수 있을 것이오.

우리 대한이 노서아를 돕고자 함은, 노서아가 앞으로도 계속하여 유럽을 견제하여 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라는 걸 숙지하여 주면 좋겠소."

"물론입니다, 황상. 반드시 노서아가 국체를 온존할 수 있게 하겠나이다."

이형의 설명에 장성들은 일제히 이형에게 경례를 올렸다. 자못 비장한 모습들이었다. 이번 전쟁이 결코 가볍게 끝나지 않으리라는 낌새를 다들 눈치챈 것이다.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누군가는 겁에 질린 듯 얼굴이 푸르죽죽해지는가 하면, 또 누군가는 죽어갈 장병을 걱정하고 있는 듯 씁쓸한 얼굴을 했다. 그런가 하면 누군가는 공을 세울 생각에 신이 나서 자꾸만 말아 올라가는 입꼬리를 진정시키느라 필사적이었고, 또 누군가는 순수하게 전쟁 그 자체를 반기는 기색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 모두가 대한의 승리를 누구보다 바라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달라지지 않았다.

"음. 기대하고 있으리다."

이형은 가볍게 그들의 경례를 받아준 다음 먼저 자리를 떴다. 그의 일은 전쟁목표를 정해주는 것이지, 작전계획이나 보급계획을 짜는 등의 세부적인 일은 참모들과 장성들의 일이었던 까닭이다. 그의 교시로 대한제국군이 전쟁론을 두고 탐구하기를 어언 20여 년째가 되어가던 마당에, 이성보다는 직감으로 군을 이끌었던 자신은 더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자각 또한 있었고 말이다.

'내 일이 하나둘씩 줄어들고 있구만.'

방을 나서면서, 이형은 씁쓸한 미소를 띄웠다. 실제로 그러했다. 외교에서는 점차 태자가 그를 대신해가고 있었고, 군부는 황제 한 사람의 번뜩이는 영감이 아닌 참모부의 철저히 계획된 전쟁계획을 따라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영역이 줄어가고 있다는 건 곧 이형의 힘이 줄어들고 있다는 뜻 또한 되었다.

일일이 그가 모든 걸 정해주던 일인독재 체제에서 벗어나, 조금씩 권력을 나눠 받은 각 부서가 일을 진행하는 다극 체제로 이행되고 있던 것이다.

과연 그건 어떨까 그리 생각하고 있던 차에, 뒤에서 반가운 소리가 들렸다.

"앗, 아바마마!"

가볍다 못해 경박한 목소리였다. 슬쩍 뒤돌아서니, 그곳에는 이제 갓 6살이 된 삼남 이휴가 있었다. 우연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참모본부와 이후의 처소는 거리가 있으니, 일부러 이형을 만나고자 찾아온 모양이었다.

아니면, 그저 공부하기가 싫어서 도망 나왔다가 우연하게도 이형과 마주친 것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사실 그쪽이 더 가능성이 커 보였다. 명색이 황자가 뒤따르는 궁인이나 내관 한 사람 없이 궁을 활보하고 있는 걸 보면 말이다.

이형은 이죽거리며 말했다.

"요놈-! 또 스승을 바람맞히고서 여기서 무엇을 하는 게냐. 어서 썩 처소로 돌아가지 못할까!"

"우우, 그렇지만···."

"그렇지만은 뭐가 그렇지만 이라는 거냐? 요놈, 요놈."

이형은 울상이 된 이후의 겨드랑이를 양손으로 바치며 그대로 안아 올렸다. 그제야 아비가 저를 꾸중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눈치챈 꼬맹이 이휴는 와아-! 하며 탄성을 질렀다. 눈높이가 달라지니, 더없이 익숙하고 따분하기만 하던 궁궐이 전혀 다르게 보였다.

"이놈, 내려주지 않을 테다. 앞으로 평생 바닥에 다리를 디디지 못하게 해주겠다. 요놈-!"

"까르륵, 까륵! 아바마마, 간지러워요! 까르륵!"

"전하! 어디 계십니까, 전- 헉! 폐, 폐하!"

그리고 그제야, 이휴를 찾아 뛰어다니던 내관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나같이 어쩔 줄 모르는 기색이었다. 그야 잠깐이라지만 황자를 놓치고 말았음을 다른 사람도 아니고 황제에게 들켰으니 그럴 수밖에는 없었다.

이형은 아쉬워하는 기색의 이휴를 바닥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제야 오는가? 안 그래도 기다리고 있던 차였네. 자, 요 녀석은 이만 돌려줌세. 아무래도 그대들 모두 요 망나니 놈을 따라서 체력을 좀 더 길러야겠군그래. 허허!"

이형은 껄껄거리며 웃었다. 어쩔 줄 모르는 내관들도, 입술을 비죽 내밀고 있는 꼬맹이 이휴도, 이형에게는 그저 귀엽기만 할 따름이었다. 그렇기에 이형은 새삼 확신할 수 있었다.

역할이 줄었음이, 보람이 줄었음을 의미하는 것은 결단코 아니라고 말이다.

< 보람 > 끝

ⓒ 리첼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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