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먹구름 >
그리고 한국에서 또다시 굴러가기 시작한 수레바퀴에 대응할 방법을 논하고 있을 무렵.
"그만! 이제 충분하오!"
"아니, 아직 무엇 하나 시작되지 않았소!"
지구 반대편에서는, 역사가 흘러가려 하고 있었다. 달리 말하여, 피가 흐르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이형에게는 다소 뜻밖에도 러시아가 아니라- 신성로마제국이 주도하는 미텔 유로파였다.
"이미 우리 독일민족은 하나가 되었소. 물론 그 과정에는 불만족스러워할 여지가 있었던 것 또한 사실이며, 그에 대해서는 부정하지 않으리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제 우리 독일민족이 다시금 하나가 되었다는 사실이고 제국은 명실상부한 미텔 유로파의 패자가 되었다는 사실이오."
"허, 미텔 유로파의 패자라? 도대체 어디를 봐서 말이오. 우리의 동맹 루스인들은 패전하였고, 브리튼은 조금씩 그 힘을 되찾고 있소. 하다못해 저 건방진 갈리아 족속들 하나도 힘으로 압도하지 못하고 있는 낡아빠진 제국이 대관절 어디를 봐서 미텔 유로파의 패자라는 말이오?"
"어허, 그대는 적의에 눈이 멀어 작금의 정세를 그릇되게 보고 있구려. 러시아는 영국과 오랜 전쟁으로 기진맥진하고 있으며, 우리의 오랜 적 튀르크는 병들었고, 프랑스는 단지 광활한 식민지로 위세를 떨치고 있을 뿐 속 빈 강정에 지나지 않소. 오로지 우리 위대한 신성로마제국만이 옛 로마의 적통을 이어 미텔 유로파를 평화로 이끌고 있으니, 어찌 제국 이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있을 수 있겠소?"
"왜 없겠소. 우리 프로이센에는 장대한 승리의 역사가 있지 않소. 프랑스와 러시아와 스웨덴과 그리고 당신네 제국과! 당당히 싸워서 승리를 쟁취해왔소! 그리고 우리는 이번에도 또 한 번 승리를 거두고 말 것이오!"
이 무렵, 프로이센은 격렬한 내부 의견대립에 부딪혀 있었다. 오스트리아 주도의 질서를 긍정하는 대독일주의자와 프로이센의 독자노선 혹은 프로이센 주도의 재통일을 주장하는 프로이센 국수주의자들 간의 대립이었다. 그것은 단지 자존심 싸움만은 아니었다. 계층들 간의 뿌리 깊은 의견충돌이기도 했던 것이다.
전통적인 프로이센의 지배계층이었던 융커들, 개중에서도 대지주인 이들과 일부 소상공인들은 제국의 통치를 긍정하는 대독일주의자에 속했다. 보수적인 융커들은 지난 전쟁 기간 중 폭도들의 준동 탓에 왕조가 한차례 붕괴할 뻔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고, 그래서 그와 같은 사례가 재발하는 걸 막기 위해서 오스트리아의 역할을 긍정했다.
한편 프로이센의 일부 소상공인들 또한 오스트리아의 통치를 긍정했는데, 보스니아에서 갈리치아, 라인란트를 아우르는 거대한 제국은 단지 존재하는 것만으로 거대한 내수경제를 약속했기 때문이다. 거대한 내수경제와 편리한 교통은 점차 제국을 하나로 묶어가고 있었고, 이는 프로이센의 내수경제가 제국에 종속되어감을 의미했다.
프로이센의 숙련공들 또한 제국의 통치를 점차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였다. 제국의 친러정책으로 우크라이나의 값싼 밀이 들어오면서 물가가 폭락하며 적은 임금으로도 제법 풍족한 삶을 영위할 수 있었고, 카이저 또한 관련된 문제를 노동쟁의 등에 맡기는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경제공황을 겪었던 도시노동자들에게 있어서 이러한 삶의 질적 향상은 매력적일 수밖에 없었다.
"말이 지나치구려! 겨우 하나가 된 우리 민족을 또 한 번 갈가리 찢어놓겠다는 말이오!"
"아니, 나는 단지 카이저를 그 곰팡이로 얼룩진 거짓된 옥좌에서 끌어내리고 싶을 뿐이오!"
그런가 하면 융커 중에서도 좀 더 역사가 짧고 영지도 자그마한 부류나 프로이센의 소상공인들은 오스트리아의 통치에 질색하는 모습을 보였다. 융커들이야 당연히 프로이센이 오스트리아에 무릎을 꿇고 있는 현실 그 자체에 반발하는 것이었으나, 소상공인들은 이야기가 조금 달랐다.
이들 프로이센의 공장주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제국의 공업지대가 보헤미아에 집중되어있다는 사실이었다. 보헤미아가 제국의 중심부에 있으며, 황제의 직할령인 오스트리아와 접해있는 만큼 그들이 집중적인 지원을 받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이었으나, 프로이센의 공장주들에게는 그들이 물건을 팔아야 할 제국의 내수시장이 보헤미아산 공업품에 잠식되어 버린 꼴이었던 것이다.
헝가리 왕국의 투자로 발칸종단철도가 완성되어 발칸반도 시장을 독점한 헝가리의 공업지대가 성장하면서 내수시장에서 프로이센산 공업품이 설 자리가 소멸하고, 러시아와의 동방철도가 완공되어 우크라이나산 밀들이 대거 독일 국내에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중소 영주들과 농민들이 몰락하는 것은 화룡점정이었다.
그나마 프로이센의 공장주들은 파나마 운하를 통한 대 아시아 무역에라도 기대를 걸 수 있었으나, 거칠 것 없이 쏟아져 들어오는 우크라이나의 밀에 휩쓸린 자영농들과 중소 영주들에게는 도망칠 구석도 없었다. 그렇게 경제적으로 몰락한 농민과 중소 영주들이 제국의 통치에 반발하게 된 것은 필연적인 일이었다.
"저 빌어먹을 슬라브 거지 놈들을 당장 내쫓아야 해! 남에서 왔던, 동에서 왔던 하여간에 매일 같이 술이나 축내고 난동을 부리는 것밖에는 할 줄 모르는 건 매한가지라지! 저 지긋지긋한 거지 놈들! 저 거지들이 우리들의 일자리를 다 빼앗아 가고 있잖아!"
"슬라브 거지 놈들은 제 고향으로 떠나라! 너희 나라에서 일자리를 찾으란 말이다, 이 날강도 떼 같은 새끼들아!"
프로이센의 단순 육체노동자들은 이러한 불만이 특히나 더했다. 오스트리아-헝가리는 발칸반도를 제패하고 발칸의 자원과 시장, 노동력을 아낌없이 자국의 산업화에 동원하였으며 러시아 제국은 전쟁을 치르는 데에 필요한 외화벌이 겸 생산 노하우 취득을 목적으로 자국의 빈민들을 대거 독일의 공장들에 취직시켰다.
그리고 이렇게 대량 투입된 슬라브계 노동자들은 독일의 제후국들보다 훨씬 낮은 임금을 받으면서 일했고, 이는 항시 고정적으로 고용되어야만 하는 숙련공들에게는 그리 대수로울 것 없었으나 단순 육체노동자들에게는 마른하늘에 날벼락과도 같았다. 당장에 공장들이 그들을 찾지 않게 된 것이다.
이러한 현실은 대대적인 반슬라브 감정을 불러일으켰고, 이러한 반슬라브 감정은 러시아와 호의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제국에 대한 반발로 이어졌다. 자신들의 실업과 비참한 현실의 원흉을 알기 쉽고 기분 나쁜 슬라브 인들에게서 찾았던 것이다.
"도대체 언제부터 우리 프로이센이 구교도들의 종이었단 말인가! 우리 프로이센은 언제나 프로테스탄트의 방패였으며, 영광스러운 루터의 선봉장이었다! 우리는 제국의 배부른 개로 만족할 것이 아니라, 굶주린 프로테스탄트의 십자군으로서 당당히 저들에게 맞서야만 한다!!"
그러다 보니 이 당시, 보다 우위에 있던 여론은 프로이센 국수주의 쪽이었다. 국왕인 프리드리히 3세부터가 정면에서 오스트리아와 대립하지는 않더라도 은근히 독자적인 노선을 고집하던 판국에, 프로이센 국내에서는 아무래도 대독일주의의 힘이 약소할 수밖에는 없었다.
이들은 공공연히 슬슬 때가 무르익었노라고 말하거나 더는 뒤로 물러날 구석이 없다고 말하였다. 때가 무르익었다고 하는 이들은 프로이센의 공장주들을 대변하여 영국의 배려 아래 날로 상향선을 그리고 있는 무역수익을 들먹였고, 더는 뒤로 물러날 구석이 없다고 말하는 이들은 러시아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대량의 곡물에 오늘도 시장에 나오지도 못하고서 불타고 있는 프로이센의 농산품을 예시로 들었다.
이러한 현실은 비단 프로이센에만 해당하는 일들이 아니었다. 이 무렵 오스트리아는 어느 정도 고의로 북독일 연방에 속했던 나라들을 경제발전에서 소외시켰다. 발칸반도와 지중해야말로 핵심이권 지대인 만큼 남부 지역들이 우대될 수밖에 없다는 게 대외명분이었으나, 실질적으로는 명백한 견제였다. 또다시 이들이 제국에 맞설 수 없도록 낙후시키고자 한 것이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제국에 맞설 수 없도록 하기 위한 오스트리아의 정책은 제국에 맞설 수밖에 없도록 북부 제후들을 내몰고 있었다.
"지중해는 로마의 호수였고, 우리 이탈리아 왕국은 로마의 적통을 이은 계승자로서 반드시 지중해를 이탈리아의 호수로 만들어 우리의 후손들에게 자랑스러운 조국을 물려줘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고 짐은 확신하노라. 내 맹세하노니, 나의 치세가 끝나기 전에 우리 위대한 이탈리아 민족은 숙적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를 깨부수고서 우선은 아드리아해를 되찾게 될 것이다!"
"""이탈리아 만세! 로마 만세! 만만세!"""
그런가 하면 오스트리아의 핵심이권 지대이던 지중해와 발칸반도는 조용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범슬라브주의자들의 큰형님이던 러시아가 페르시아에서의 전쟁에 발이 묶이는 바람에 상대적으로 남슬라브인들의 저항 활동 또한 극히 미미하여 오스트리아의 통치는 안정되어 있었으나, 아드리아해를 두고서 오스트리아와 경쟁하던 이탈리아가 그리스와 동맹을 체결하는 등 본격적인 대립각을 세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새로이 왕위에 오른 움베르토 1세는 보위에 오르면서 그의 치세 중 이탈리아가 아드리아해를 되찾게 되리라 국민이 보는 앞에서 맹세하였고, 이는 그대로 이탈리아의 국가정책이 되었다. 이탈리아는 프랑스의 심기를 거스르면서도 영국과의 관계를 개선하며 지중해 장악에 여념이 없는 모습을 보였고, 전통적인 우방이었던 프로이센과 북독일 제후국들과도 관계를 개선하며 오스트리아의 뒤통수를 근질거리게 하였다.
이렇게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을 준비하던 이탈리아와 발칸반도에서 유일하게 오스트리아에 종속되지 않았던 그리스가 손을 잡게 된 것 또한 필연적이었다. 주권이 제한되어 내부여론은 소란스러워도 직접적인 움직임은 없던 프로이센과 달리, 이탈리아는 주권국으로서 국경지대에 요새를 세우고 전함들을 사들이며 본격적인 전쟁 준비를 보여주었다. 이러한 이탈리아의 임전 태세는 오스트리아에 지중해에서의 전쟁을 직감하게 하였다.
"이제는 모두가 알고 있지 않소? 남은 것은 전쟁뿐이오. 설령 우리가 자비를 베푼다고 한들, 우리의 적들은 이를 조금도 고맙게 여기지 않을 것이오. 되려 우리 제국의 항전 의지를 얕잡아 보고서, 더욱 큰 도발을 시도하겠지. 그럴 바에야 우리 제국에서 저 하잘것없는 떨거지들에게 본때를 보여줘야 할 것이오!"
"말이 너무 지나치시오! 도대체 지난 전쟁에서 얼마나 많은 우리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고 말았다고 생각하는 거요? 전쟁은 언제나 최후의 수단이 되어야만 하오. 우리는 아직 저들과 충분히 대화를 해보지 않았소!"
"대화를 해보지 않은 것이 아니라 할 수 없었던 거잖소! 저들은 우리 제국의 일방적인 양보를 요구하고 있소! 우리 제국을 윽박지르며 당장에 우리의 정당한 영토를 내놓으라 하고 있다는 말이오! 이미 사태는 최종국면에 접어들었소. 그걸 모르고 있는 건 당신네뿐이오!"
"아니! 결단코! 나는 지난 전쟁에서 나의 사랑하는 동생을 잃었소. 마찬가지로 이번 전쟁에서 나의 사랑하는 아들을 잃고 싶지는 않소. 하물며 우리 백성은 이와 다르겠소! 우리의 소임은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조금이라도 덜어보는 것이지, 늘리는 것이 아니오!"
힘의 차이는 분명 있었으나, 이렇게 크고 작은 나라들이 모이면서 일제히 견제하는 모습을 보이니 오스트리아가 주도하는 신성로마제국 또한 상당한 자극을 받을 수밖에는 없었다. 포위가 점차 심화하면 심화할수록, 제국 내부의 주전론 또한 고개를 들었다.
아직은 전쟁이 이르다는 화평론 또한 분명 존재했으나, 이들은 나날이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다른 무엇보다, 바로 옆에 이탈리아가 단순히 보여주려는 식의 군비증강이 아니라 명백히 침공전에 대비한 군사정책을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상대가 대화할 생각이 없는데, 대화하자는 여론이 힘을 얻기는 아무래도 어려웠던 것이다.
비록 카이저 프란츠 요제프 1세가 황권 확대를 위하여 제후들에게 힘을 실어줄 전쟁에 그리 적극적이지 않던 까닭에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었으나, 이미 전쟁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고 판단하던 것이 이 무렵의 제국이었다.
"저 건방진 롬바르드 역도 놈들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그들을 후원하고 있는 저 간악한 프랑스부터 타도해야만 하오! 막강한 선제타격으로 저들의 병사들을 궤멸시키고서, 엘자스-로트링겐을 되찾아 이 유럽에 적법한 제국이 돌아왔음을 널리 선포합시다!"
"구태여 그럴 필요가 있겠소? 엘자스-로트링겐은 분명 아쉽기는 하나, 이탈리아와 프랑스는 분명히 그 격이 다르오. 또, 저들과의 국경지대는 충분히 요새화되어 있고. 프랑스인들이 먼저 우리 제국과의 전쟁을 바라지 않는 한, 프랑스인들을 적대하는 것은 무모해 보이는구려."
다만 이 주전론 내부에서도 파벌은 둘로 나누어져 있었다. 하나는 총력전을 주장하며 이번 전쟁으로 제국에 위협을 가하는 프랑스, 프로이센, 이탈리아 세 나라를 일거에 무너뜨리자는 주장이었고 하나는 그 이전까지와 같은 정치의 연장선으로서의 전쟁을 주장하며 프랑스가 이탈리아를 자연스레 버리도록 유도하자는 주장이었다.
그리고 여기에서보다 힘을 얻은 것은 후자였다. 프로이센의 군사 귀족들이라면 달리 선택하였을지도 모르겠으나, 오스트리아의 도시귀족은 나라의 국력을 총동원하여 전쟁을 벌인다는 주장 자체를 천박하다고 받아들였다. 이러한 판단에는 지난 전쟁에서 허무하게 죽어간 친족들의 기억도 영향을 끼쳤다.
숙적 프랑스를 고깝게 보고 있는 거야 어느 쪽이고 같았으나, 오스트리아의 도시귀족은 프랑스와 최소한 불가침조약을 맺어 후방을 안정시켜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미 이탈리아와 프로이센만으로 양면 전선이 예정되어 있던 판국에, 삼면전선만큼은 피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신성로마제국의 판단에 프랑스는 어떻게 반응했는가-하면.
"음! 대단히 현명한 판단이오. 비록 우리 두 나라가 흡사 개와 고양이처럼 다투었던 것은 사실이나, 그것이 천년이고 만년이고 계속하여 싸워야 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잖소. 짐은 그대들과 명예로운 평화에 동조하는 바요."
"과연 현명하신 판단이십니다. 우리 로마제국은 프랑스의 호의를 결단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허허, 로마제국이라. 혹시 앞에 두 글자 빼먹지는 않으셨소?"
나폴레옹 4세의 선택은 신성로마제국과의 불가침조약 서명이었다. 이는 동맹국 이탈리아를 배신하는 처사였으나, 그는 이를 필요불가결한 일이라고 여겼다.
처음 보위에 오를 적부터 프랑스를 영국을 넘어선 세계 제일의 열강으로 만들겠다는 야심으로 똘똘 뭉쳐있던 나폴레옹 4세에게, 오랜 숙적 오스트리아가 이탈리아에 신경이 쏠려 프랑스와 맞서 싸울 수 없게 된 것만으로 이탈리아는 쓸모가 다했던 것이다.
"부디 재고하여 주십시오, 폐하! 저들은 선제 나폴레옹 3세 폐하의 원수가 아닙니까. 어찌 저 간악한 족속들을 용서하실 수 있단 말입니까!"
"선제께서는 생전 항상 영국과의 협력을 강조하셨나이다. 대제께서 끝내 패하신 까닭을 영국과 적대하였던 것에서 찾으셨기 때문입니다. 어찌 엇갈린 길을 가고자 하십니까!"
그리고 이러한 결단은 군부- 보다 정확히는 대육군의 반발을 일으켰다. 의회 또한 회의적인 건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황제가 일부러 지난 전쟁에서의 원한을 덮어두고서 독일과 화평을 선택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황제가 기어이 영국과의 전쟁을 계획하기 시작한 것이다.
육군의 반발은 당연했다. 영국이 또다시 주적이 된다면, 그들의 역할이 크게 줄게 될 테니까.
의회의 반발 또한 당연했다. 영국 해군과의 정면 대립은, 대서양-태평양 무역의 동요를 일으킬 테니까.
"허허, 이 사람들이 참···. 고맙게도, 알아서 명을 재촉하는구려."
그러나 나폴레옹 4세는 자기 뜻에 반하는 어리석은 신하들을 원하지 않았다.
칼을 휘두를 시간이었다.
오로지 한국으로 벗어나 있던 한 사람만이 황제의 칼날을 피할 수 있을 터였다.
< 먹구름 > 끝
ⓒ 리첼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