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험한 장난감 >
그리고 프랑스에서 이탈리아를 배신하면서까지 영국에 도전할 의사를 분명히 굳히고, 오스트리아가 프랑스와의 불가침 조약으로 삼면전쟁의 위협에서 벗어나 안도하며 이탈리아와 북독일의 마지막 저항을 정리할 준비를 하고 있을 무렵- 대서양에서도 그들 나름의 전쟁을 준비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프랑스는 기어이 우리 대영제국과 적대할 의사를 굳혔습니다. 우리의 프로이센과 북독일 동맹은 제국의 지원을 애타게 갈망하고 있고, 오스트리아인들은 이번에 신무기 장갑열차를 선보였습니다. 비록 철도를 벗어날 수 없으나, 도시마다 철도를 통하여 연결되어있는 독일 전역에서는 분명 굉장한 효력을 발휘할 것입니다."
"과연 독일인들의 무기 개발력은 두려울 지경이구려. 혹, 우리 제국에서도 그와 같은 장갑열차 들을 양산하여 지원할 수는 없겠소?"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덴마크인들이 우리 함선들의 해협 통과를 달가워하지 않고 있습니다. 혹 북독일연방이 부활한다면 홀슈타인을 다시 빼앗길까 두려워하는 모양입니다."
"하여간에 그 천박한 데인인들은 도움이 되는 적이 없구려. 스웨덴인들은 어떻소. 그들의 협력을 받을 수는 없겠소?"
우선 영국의 이야기를 하자면, 영국은 이 당시 오스트리아와 프랑스를 적국으로 확정 짓고 있었다. 서로 부딪혀야 할 대륙의 두 거인이 대립을 멈추었다는 것 자체가 영국에는 비상을 걸만한 이상 사태였던 까닭이다.
칩거한 지 오래인 여왕을 대신하여 왕세자 에드워드 대공은 프랑스와 독일 두 나라의 불가침 조약이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수상 글래드스턴을 호출하였고, 웨스트민스터 궁 한쪽에서 두 사람은 비밀스러운 대화를 주고받았다.
전쟁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영국인들은 이를 막지는 못하였으나 최소한 전쟁을 예측하는 데에는 성공했다.
"송구하오나, 스웨덴인들은 이번 전쟁에 이렇다 할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아마 이번 전쟁에서도 저들은 중립을 지키며 차익을 챙기려는 모양입니다."
"중립이라. 쯧. 바이킹의 기상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비겁한 족속들 같으니라고···. 어쩔 수 없이 필요하다면 또다시 코펜하겐을 불태워서라도 길을 여는 수밖에 없겠구려."
"필요하다면 또 한 번 프로이센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저들 또한 북해가 열려야지만 우리 영국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을 테고 홀슈타인을 되찾고자 하는 의지도 강한 만큼, 선제공격 계획이라고 한들 거절하지는 않겠지요."
"우리의 오렌지 친구들은-."
"프랑스의 견제만으로도 바쁜 모양입니다. 우선 이번에 케이프타운에서 전함 두 척을 빼 와 북해에 전진 배치하였으니, 덴마크인들도 슬슬 결단을 내려야겠지요."
신성로마제국의 오랜 명가들이 다가올 전쟁을 정치의 목적으로 해석하였다면, 영국에게 있어서 다가올 전쟁은 어떤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승리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화평론 따위는 처음부터 없었다. 지난 대전에서 화평론을 내세웠던 글래드스턴조차 영국의 적이 될지 친구가 될지 선택하라며 강압적인 태도를 보일 지경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다가올 전쟁은 어쩌다 보니 끌려들어 간 전쟁이 아니라, 결코 피할 수도 피해서도 안 되는 영국의 전쟁이었기 때문이다. 이번 전쟁에서의 승패에 곧 제국의 존망이 달려있었고, 영국은 그들이 쓸 수 있는 모든 수를 동원하여 반드시 승리하여야만 했다.
설령 국제법을 어기건 기습공격을 벌이건 간에 말이다. 이번 기회에, 오스트리아와 프랑스 모두를 꺾어두지 않으면 다음 세기를 장담할 수 없었다.
"골치 아프구려. 프랑스와 독일. 둘 중 어느 하나라도 적대하면 성가실 나라들을 동시에 상대해야만 한다니."
에드워드 대공은 땅이 꺼지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요즈음에 그는 편히 잠을 자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 어떤 편한 침구도, 맛 좋은 차도 마음의 짐을 덜어주지는 못했다. 그가 마음 편히 쉬기에는, 다가올 전쟁에서 영국의 패배조건은 한둘이 아니었다.
우선 만에 하나라도 프랑스가 네덜란드를 완전히 짓밟는다면 그건 영국의 패배다. 나폴레옹 전쟁기의 프랑스는 네덜란드를 손에 넣고서도 넬슨에게 대패를 당하며 끝내 영국에 상륙하지 못했으나, 지금의 영국에는 넬슨이 없으며 프랑스는 세계 제2위의 해군 대국이다. 네덜란드가 프랑스에 넘어가는 순간 수도 런던은 프랑스 해군에게 고작 1시간 거리가 되고, 런던이 함락되면 영국은 패망한다. 이는 명백한 패배이며, 그 때문에 무조건 사수해야 하는 일이다.
한편 오스트리아가 이탈리아를 짓밟는다면 어떠한가. 그 또한 영국의 패배일 수밖에 없다. 이탈리아가 오스트리아의 발아래에 놓이는 순간 제국의 허리가 꺾인다. 지브롤터를 통해 지중해로 들어오더라도 시칠리아에 가로막혀 이집트까지 갈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이집트와의 연결이 끊어지면 인도와 호주, 말라카를 통제할 수 없게 되고 인도를 잃은 영국은 더는 세계 1위의 열강으로 남을 수 없다.
어느 한 전선이라도 패배하는 순간 대영제국은 패망하거나, 아니면 몰락한다. 달리 말하여, 어중간한 승리는 패배만도 못 하다.
「모든 전선에서의 총체적인 승리」.
그것만이 유일한 길이었으며, 현 상황을 타파할 최종해법이었다.
"여기에서 꺾이시면 아니 되옵니다, 전하. 아직 우리 영국은 패하지 않았습니다. 신세 한탄은 모든 노력이 실패로 돌아간 다음이라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그야 물론이오. 이탈리아와의 동맹 또한 미루어서는 아니 되오. 이미 프랑스와 독일이 제각각의 방법으로 우리 제국을 위협하는 오늘날, 우리 영국이 앞으로도 지중해를 수중에 넣기 위해서라도 이탈리아와의 협력은 반드시 이뤄져야만 하오."
"그렇지 않아도 이번에 기밀 회선을 통하여 이탈리아인들에게 신형 전함 판매를 제안해두었습니다. 당장 오스트리아와 전쟁을 할 전함이 필요할 테니, 분명 거절하지 않겠지요."
"음, 간만에 포츠머스에 활기가 돌겠군. 잘 알겠소. 내 그 일에 대해서는 경에게 일임하리다."
상황이 이러니 에드워드 대공의 행보에는 자못 비장함이 감돌았다. 이 무렵, 왕세자 에드워드 대공은 조금이라도 많은 동맹을 모으는 데에 적극적이었다. 그는 그 어느 때보다 제국이 위험에 처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말이 좋아서 모든 전선에서의 총체적인 승리지, 프랑스와 오스트리아 두 육군 대국을 적대해야 하는 상황에서 육군력이 빈약한 영국의 승산은 좋은 말로도 높다고 평할 수 없었다. 좋건 싫건, 저 두 나라와 적대하려 한다면 적어도 한 곳 이상의 육군 대국을 끌어들여야만 했다.
"혹, 한국인들을 유럽의 전선까지 끌어올 수는 없겠소?"
그 때문에 에드워드 대공에 있어서 한국은 각별할 수밖에 없었다. 비록 조카딸을 희생해야만 했으나, 그 덕분에 영국은 최소한 후방의 안전을 보장받았다. 만일 한국마저 적으로 돌렸다면, 그때는 전쟁의 승패를 따지기 이전에 외교적 실패에 책임을 지고서 내각이 총사퇴 해야 했을 것이다.
처음에는 내심 한국과의 국혼이 너무 급하게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 후회하던 에드워드였으나, 이 무렵 에드워드는 미리 한국과의 관계를 청산해두어 천만다행이라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역사에 길이 남을 현안이었다고 생각하기도 하였다.
물론 그 탓에 공주를 팔아치웠다며 온갖 욕을 뒤집어써야 했던 글래드스턴에게는 떨떠름한 이야기였지만 말이다. 글래드스턴은 에드워드의 희망찬 예측에 난색을 보였다.
"그건··· 아마도 어려울 듯 보입니다. 한국의 목표가 아시아 대륙에서의 패권을 유지하는 것뿐이라면, 구태여 유럽 전선에까지 개입하려 들지는 않겠지요."
세계패권이라면 또 모르겠습니다만.
글래드스턴은 마지막 말을 삼켰다. 그건 난센스였다. 분명, 지금의 성장추세라면 한국은 언젠가 세계패권에 도전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적어도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아직 너무 이르다. 저들은 어떠한 준비도 되어있지 않다. 자력으로 전함을 건조하는 것조차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다.
그렇기에 글래드스턴은 국혼에 찬성했고, 한국과의 공존을 선택했다. 그리고 공존은 한국이 어떤 상황에서라도 영국을 도와야 할 의리가 있음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단지 서로의 필요로 대결을 뒤로 미뤘음을 의미할 뿐이었다.
"으음.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구려. 하다못해 인도차이나에서 저들이 한 사람이라도 많은 프랑스인을 붙잡아 주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에드워드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면서도 글래드스턴의 말에 수긍했다. 그 또한 현실적으로 한국군이 유럽 전선까지 투입되려면 너무 멀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단지 워낙에 병사가 부족하다 보니 한국을 끌어들일 수는 없을까-하고 의견을 제시해 보았을 뿐이다.
그리고 한국이 불가하다면, 자연스레 영국이 손을 내밀 수 있는 마지막 상대는 단 하나밖에 없었다.
"미국인들은 어떻겠소?"
짧은 질문이었다. 그러나 제국의 흥망을 결정할 중요한 문답이기도 했다. 글래드스턴은 침을 삼켰다. 앵글로 색슨 주의에 따르자면, 미국은 영국인 이민자들의 후손이므로 마땅히 형제국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어떠할까. 비록 독립전쟁기와 미영전쟁기의 악몽은 떨쳐냈지만, 이제 미국은 그 거대한 덩치로 영국을 압박하고 있다. 태평양 이민과 파나마 운하는 독수리에게 사자의 몸뚱어리를 달아줌과 같았다.
사자의 기침 소리에도 금세 바닥을 뒹굴던 겁 많던 대머리독수리가 이제는 그리폰으로 다시 태어나 되려 사자를 겁박하고 있다. 미국과의 관계는, 이 무렵 영국의 역린과도 같았다.
"그것이···."
글래드스턴은 대답을 망설였다. 공존을 택하기는 아무래도 어렵다. 지금이야 아직 미대륙을 온전히 복속시키지도 못했다지만, 미대륙을 복속시킨 다음 저 거대한 그리폰이 대륙 바깥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가 없다.
단지 대륙에서의 패권을 노리는 것뿐이라면, 유럽의 열강들마저 웃돌고 있는 세계 제3위의 그 거대한 공화국 함대는 설명되지를 않는다. 의심할 여지 없이, 미국은 과거 영국이 그러했듯이 대양으로 뻗어 나가려는 야심을 품고 있다.
가능하다면 여기에서 꺾어두고 싶다. 더는 날아오르기 전에, 이쯤에서 날개를 비틀고 다시 바닥을 기게 하여주고 싶다.
그러나.
"···이제 그만 미국인들에게 저들의 힘에 상응하는 상석을 양보해야 할 것 같습니다."
글래드스턴은 고개를 숙였다. 어쩔 수가 없었다. 여기에서 미국의 성장을 막지 못하면 다음 세기에는 확실하게 제국은 미국의 발아래에 놓이겠으나, 그렇다고 미국인들과 다투느라 인도나 네덜란드를 잃게 된다면 지금 당장에 몰락한다.
결국, 선택지는 20세기에 몰락하는가, 얼마 남지도 않은 19세기에 몰락하는가 뿐이다. 그렇다면 누구나 20세기를 고르지 않겠는가. 적어도, 미래를 기약할 수나마 있으니까.
글래드스턴의 대답에 에드워드 대공은 허, 하고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 또한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던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앞에서 직접 듣고 싶지는 않았다. 가능하다면 외면하고 싶었던 현실이었다.
"달리 무언가 방도가 없는 모양이구려."
에드워드는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글래드스턴은 답하지 못했다. 상석을 양보한다. 이 양보가 한 번뿐이라는 보장은 없다. 아니, 오히려 양보가 계속된 끝에 모든 힘과 영광을 잃게 될 개연성이 더 높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에 이 양보가 값싸서는 안 된다. 양보를 약속하는 이상, 영국은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받아야만 했다.
에드워드 대공은 잠시 침묵하다가 깊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스페인인들은 아직도 프랑스인들과 손을 잡고 있는 거요?"
"예. 아무래도 저들은 다가올 전쟁에서 프랑스의 힘을 빌려 포르투갈과 지브롤터를 정복해 다시금 이베리아반도를 통일할 야심을 품고 있는 듯합니다. 적어도, 현 내각은 그것을 공약으로 내걸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대영제국은 미국인들에게 쿠바와 푸에트리고, 프랑스 몫의 기아나를 약속해줄 수 있겠구려."
글래드스턴은 눈을 부릅떴다. 에드워드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즉각 알아차린 것이다. 미국에 스페인과 프랑스와 맞서 싸우자고 먼저 손을 내밀겠다는 뜻이다.
미국이 이를 받아들일 개연성은 충분하다. 당장 미국을 중심으로 하여 아메리카 대륙 전역을 아우르는 국제기구를 수립하려는 미국에 있어서 여전히 미대륙에 식민지를 두고 있는 유럽의 열강들은 눈엣가시 그 자체다. 순번의 문제지, 언젠가는 모두 아메리카 대륙에서 내쫓으려 할 것이다.
아마 이 사실은 프랑스 또한 잘 알고 있을 것이고, 그들은 미국인들에게 캐나다를 제시할 터다. 요컨대, 남은 건 미국이 캐나다를 원하는가 쿠바를 원하는가의 문제다.
"전하,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저희 내각에서는 미국인들은 유럽에서의 승패가 명백해지기 전까지는 절대 움직이지 않으리라 추측하고 있사옵니다. 미국은 다가올 전쟁에서 그들의 피를 유럽에서 흘리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글래드스턴은 우려를 표했다. 물론 이것이 결국 유럽 열강끼리의 제 살 깎기고, 결과적으로 아메리카 대륙에서의 영향력 축소에 크게 공헌하며 미국의 성장을 더욱 앞당기게 되리라는 것도 문제지만, 그 이전에 미국으로서는 어느 쪽을 선택하건 딱히 상관없다는 게 더 문제다.
캐나다는 식민통치기의 잃어버린 형제들이고, 쿠바는 파나마 운하와 카리브해의 제해권 장악을 위해서는 반드시 점령해야만 하는 교통의 요지다. 어느 쪽이고, 미국에는 더 없이 매력적인 선택지들이다. 그리고 두 선택지 모두 매력적이기에, 미국은 가능하면 전쟁이 길어져 영국과 프랑스가 동시에 무너지면서 둘 모두를 취할 수 있는 상황을 바랄 것이다.
즉, 미국을 전쟁에 끌어들이고자 한다면 영국이 개전과 동시에 프랑스를 압도하면서 미국인들이 그런 행복한 고민을 할 여지를 없애버리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쯤 되면, 미국인들의 참전은 쓸모가 없다.
"꼭 그렇지만도 않지."
그러나 에드워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단지 근거 없는 호언장담만은 아니었다.
물론 이제 와서 영국이 윽박지른다고 한들 미국은 까딱도 하지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제 와 영국이 미국이 혹해서 당장에 전쟁을 일으킬 만한 대가를 제안할 수도 없다.
하지만- 애초에 구태여 그럴 필요가 있던가? 직접교섭을 고집할 이유가 도대체 뭔가. 요는, 어떻게 해서건 저 그리폰을 움직이게 하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니던가. 예를 들어서, 그리폰에 꼬박꼬박 일용할 사료를 내주고 있는 동방의 인심 좋은 절름발이라던가.
"한국의 신형전함 사업에 대하여 들어보았으리라 생각하오."
"예. 분명 인상적이기는 하지만, 그들의 산업기술력을 고려한다면 과연 앞으로 20년 안에 가능할지 미지수라는 전쟁성으로부터의 보고가 있었습니다."
글래드스턴은 우습다는 듯이 말했다. 실제로 그것이 한국의 신형전함 개발에 관하여 첩보를 전해 들은 이들의 공통적인 인식이었다. 전투함교의 명령에 따른 협차. 증기터빈의 도입. 전함 간 포격전에 대비한 대응방어. 이러한 개념들은 분명 차세대 전함의 이상적인 모델을 제시하였다 할 만했지만- 문제는 한국이 그런 차세대 전함을 현실에 구현할 수 있는 기술 대국이 아니라는 것이다.
만들 수 있다면 해군사를 다시 쓸 세계 최강의 전함이 되겠지만, 만들 수 있을 리가 없다.
"피셔 제독에게 빅토리아의 한국행 항해를 맡겼소."
"···전하?"
그렇기에 글래드스턴은 이어진 에드워드의 말에 내심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존 어니스트 피셔 제독은 한국에서 처음 신형전함 개발계획을 발표하였을 적부터 해군 내에서 영국 또한 그와 같은 전함을 건조해야 한다고 주장한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비록 다가올 전쟁에 필요한 것은 최강의 비밀명기 따위가 아니라 한 척이라도 더 많은, 신뢰할 수 있는 전함이라는 자유당 내각의 거부에 흐지부지되었으나, 그 뜻이 바뀌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그리고 그 피셔 제독이 한국으로 향한다고 한다. 그는 아마, 한국의 개발을 곁에서 도우면서 그 설계와 운영 노하우를 익혀 영국 또한 전쟁이 끝나는 대로 그러한 신형전함을 건조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그건 분명 긍정적인 일이겠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다.
한낱 몽상으로 끝날 최강의 전함 개발이, 현실성을 띠게 된다는 사실 그 자체다.
글래드스턴은 오한이 들었다.
"대영제국이 언젠가 망해야 할지도 모르나, 그것이 우리 세대의 일이 되어서는 결코 안 되오."
그러나 에드워드는 단호하게 말하였다.
설령 한국의 손에 위험한 장난감이 쥐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어떻게 해서건 한국이 미국을 움직이게 유도하여야만 한다고 말이다.
< 위험한 장난감 > 끝
ⓒ 리첼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