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폭군 고종대왕 일대기-347화 (347/530)

< 시비지심 >

진국, 장안, 진시황릉.

"황상, 영길리의 공주가 탄 배가 나흘 전 말라카를 지났다고 합니다."

"으음. 벌써 때가 그렇게 되었나."

이제는 친위대장이 된 전봉준의 말에, 이형은 이죽거리며 웃었다. 그는 평소처럼 육군원수복 차림이 아니라. 황제로서 면류관에 곤복 차림을 하고 있었다. 이는 그가 시황제를 대하는 자세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의 선전이 설령 거짓부렁일지라도- 아니 거짓부렁이기에 더더욱 더 언행일치를 보여줘야만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일부러 시황제를 띄우면서 진국에 민족주의적 향수를 불리 일으킨 판국에, 사서에 이것이 거짓부렁이었노라 유추할만한 언행을 남겨 두었다가는 후일에라도 사달이 나는 수가 있었다. 안하무인이기는 해도, 후일 사서가 공개되었을 적에 어떤 사달이 날지는 다분히 관심을 기울이던 이형이었다.

당장에 이형이 의무적인 역사교육을 지시하면서 얼굴에 똥칠한 이들이 어디 한둘이던가. 그간은 막연하게 나쁘다, 무능하다. 정도의 인식만 있던 원균은 왜국의 승전을 바라는 행실로 보아 하건대 조선인이 아니었음이 분명하다며 평중관백(平仲関白)이라는 히데요시에 버금가는 일본의 권신이 되어 버렸고, 호란에서 추태를 보인 김자점은 갑옷을 입고서는 밥그릇이나 지킨다며 개호로(鎧護盧) 장군이 되었다.

차마 전주 이씨 황실을 욕보일 수는 없어 선조 대왕이나 인조 대왕에게 갔어야 할 욕까지 혼자서 배부르게 얻어먹고 있던 것이다. 그나마도 아직 실록의 해독이 반절도 진행되지 않은 와중에도 이 모양이었으니, 모두 마무리되어 완역본이 민간에 공개되면 어떤 꼴이 날까.

이형으로서도 새삼스럽게 후세가 저를 어떻게 평가할지 거듭 숙고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 더더욱 우리 망나니 녀석 잘되게 해달라고 지극정성으로 빌어야겠군."

이형은 태연자약하게 말하였다. 지옥의 시황제가 당장에 기함하며 지하에서 뛰쳐나올 망언이었다. 시황제의 이름을 팔아서 시황제의 업적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은 장본인이 예를 갖춘답시고 면류관까지 쓰고서 시황제를 계승한 황제 행세를 하고 있으니 그야 기함을 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그러나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어차피 시황제는 죽었고,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 이제 후세는 황실에 큰일이 있을 때마다 시황릉을 찾아가는 것을 보아 이형이 시황제를 흠모하였음이 틀림없다고 평가하게 되리라. 그리고 이형이 시황제를 각별하게 생각했음이 분명해질수록, 그의 중원분열책 또한 힘을 얻게 될 테고 말이다.

물론, 여기에 있는 딱 한 사람을 제하고서 말이다.

"···어째서 그런 거짓부렁을 고하셨습니까?"

전봉준은 주변을 재빠르게 살피고서 이형에게 나지막이 속삭였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만은 알 수밖에 없다. 일전에 이형이 전봉준과 함께 장안에 왔을 적에 일어난 일이 아니었던가. 그때 죽을 고비를 넘긴 건 이형이 아니라 전봉준이었고, 당연히 그의 꿈에 시황제가 나와 목숨을 구해줬다든가 하는 일은 결단코 없었다.

그렇기에 전봉준만큼은 황제가 처음 꿈에 시황제가 나와 시황릉을 찾으라 했다고 거짓말을 했을 적부터 그것이 거짓말이라는 걸 알았다. 전봉준은 이형이 단숨에 시황릉을 찾아낼 수 있었던 건 사전에 사람을 풀어서 시황릉을 수색하도록 지시했기 때문일 거로 생각했다. 즉, 이형이 처음부터 끝까지 거짓으로 꾸며낸 일이라 짐작한 것이다.

물론, 절반만 맞는 추측이었다. 이형은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그 이유가 그리도 중요하더냐?"

"하오나···."

"그래, 거짓부렁이다. 새빨간 거짓말이다. 하지만 그 덕분에 이 영정이라는 옛사람은 장장 2천 년 만에 제삿밥이나마 꼬박꼬박 빌어먹을 수 있게 되었으며, 짐은 당초에 목표로 하였던 뜻을 이루었다."

이형은 양팔을 활짝 펼쳤다. 저 너머로 보이는 거대한 언덕- 시황릉을 마치 양팔로 품에 끌어안을 듯이 말이다. 그는 웃고 있었다. 이제는 불혹을 바라보는 황제의 연륜이 묻어나는 웃음은 그가 작금의 천하를 계획하고, 끝내 완성한 장본인임을 누구보다 선명히 보여주었다.

이형은 고개를 돌려 전봉준을 돌아보며 말하였다.

"그거면 되지 않았더냐. 이 거짓부렁이 아니었다면 조선과 만주는 못 해도 세 번은 피를 흘려야 했겠지. 거짓 황제와의 전쟁이 그 첫째요, 총통이 되겠다는 역도들의 난이 둘째이고, 그 끝이 어떻게 되어도 좋으니 대한만 몰아내자는 제후들의 합종군이 그 셋째였겠지. 내 세 치 혀와 신묘한 재주로 세 번의 역란을 하나로 줄였다. 이만하면 세 치 혀를 놀릴 보람으로는 충분하지 않더냐?"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그건 저 한인들의 저항 의지를 다소 과대평가하심이 아닐는지요. 장장 250여 년간을 만주인들의 통치에 순종한 한인들이 아닙니까. 이제 와서 저들이 구태여 대한의 천하에 반기를 들었을는지요."

"왜 아니겠느냐? 채찍으로 윽박지르며 때리면 원한을 품고, 덕으로서 품에 안으려 하면 얕보는 게 인간이다. 그러니 덕으로서 품는체하면서 뒤에서 이간질하여 저들끼리 싸우게 해 놓은 것이지."

"공을 차면서 서로 경쟁하게 둔 것을 말씀하심입니까? 듣자 하니 지난해에는 우리 대한에서 승리를 거머쥐었노라고 들었습니다."

그리 말하며 이형은 은잔에 술을 따랐다. 제삿밥은 이미 진국 조정에서 한 상을 차린 뒤였고 그를 따라온 수행 인원은 마음 편히 빌고 오고 싶다는 핑계로 물려두었다. 당연히 그리 내켜 하지는 않았지만, 전봉준만큼은 남아 이형의 곁을 지킨다고 하니 마지못해 수긍하는 기색으로 물러나 주었다.

당연하게도, 그 실상은 마음 편히 참배하기 위함 따위가 아니라 전봉준과 간만에 마음 놓고서 아무 말이나 주고받으려는 목적이었지만 말이다. 적어도 멀리에서 보면, 분향에 술에 제사상에 황제가 둘째가 무사히 혼례를 마무리 지을 수 있도록 지극정성으로 시황제에게 빌고 있는 것처럼 보일 터였다.

실제로는 시황제의 저주로 결혼식 날 무슨 사달이 나도 이상하지 않을 짓거리였지만 말이다. 이형은 절을 올리면서도 입만큼은 쉴 새 없이 나불거렸다.

"그야 이겨야지. 내 들인 돈이 얼마인데··· 에잉. 하여간에, 매치는 놈들이건 공차는 놈들이건 군역면제 정도는 걸어줘야 성과를 보여주니 원. 그놈들은 내가 건 상금보다 군역면제가 더 입맛에 당기는 모양인 듯싶구나."

"안 그래도 요즈음 신병들의 기강이 현저히 떨어져 교관들이 고생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나라의 청년들이 조국을 위하여 이 한 몸 바칠 용기는 없이 다들 제 한 몸 건사하기 바쁘니 참으로 큰일입니다."

"큰일은 무슨···. 내버려 둬라. 그야 네가 어릴 적에야 다들 굶주려서 나무뿌리라도 캐 먹었던 연놈들이지만 요즈음의 신병들은 그나마 굶어본 기억이라는 게 안남미로 멀건 고기국밥 말아먹은 게 고작일 텐데 어디 짬밥이 입에 맞기나 하겠느냐?"

그리 말하면서 이형은 다시 허리를 폈다. 괜한 걱정인지는 몰라도, 점점 날씨가 어둑어둑해지는 듯하였다. 그간 말로만 듣던 시황제의 진노라는 것일까. 이형은 껄껄거리며 웃었다. 이미 죽은 놈이 차마 때릴 수는 없으니 요사스러운 요술로 훼방이나 놓으려 든다고 말이다.

이형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전봉준을 바라보았다.

"너도 제법 담이 커졌구나. 내 말에 한마디 지지도 않고서 대꾸하는 꼴을 보니 참으로 용하다."

"다 그간 황상을 곁에서 모신 덕이 아니겠습니까. 그릇이 크기로는 하늘 아래 감히 비할 자가 없으신 대인을 섬기고 있으니, 절로 담이 커지는 수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 그랬지. 돌이켜 생각하면 어떻게 하필이면 딱 그때 널 만났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구나."

이형은 낄낄거리며 웃었다. 당연히 그는 전봉준을 미리 알고 있었으므로, 한국도 아니고 남경에서 전봉준과 어떻게 만난 지 모르겠다는 말이었다. 전봉준에게는 달리 들려, 그만큼 이형이 자신과 만나게 되었던 그 우연한 만남을 소중히 여기고 있다는 것으로 들렸지만 말이다.

전봉준은 급히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소신, 단 한 번도 그 무렵 폐하께서 일러주신 가르침을 잊은 적이 없나이다."

"그래, 그렇다면 너도 알겠구나. 머지않아 그 가르침을 쓸 날이 올 거라는 걸 말이다."

"···물론입니다."

전봉준은 얼굴을 딱딱히 굳혔다. 어찌 잊겠는가. 그날 밤, 이형은 전봉준에게 천하대장군을 맡길 거라고 말했다. 자신의 천하가 앞으로도 계속 유지되기 위해서는 그의 힘이 필요하다고 말이다.

아직도 자신에게 정말 그만한 힘이 있을까 내심 의문을 품던 전봉준이었으나, 그런데도 그는 단 한 번도 그 약속을 잊어본 적이 없었다.

이형은 시황릉을 올려다보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오지리 놈들이 장갑열차를 만들었다고 하더군."

"그 열차가 바다를 넘어오는 것이 아니라면, 황상께서 심려하실 필요는 없지 않을는지요."

"아니, 그런 문제가 아니니라. 보로소 놈들은 비행선을 띄웠다고 하였으니 조만간 하늘에서 폭탄을 떨구려 들 테고, 미리견은 자동차에 장갑판을 둘렀다고 했지. 불란서는 잠수함으로 도하 해협을 건너겠다고 들고 있고, 이태리는 흉갑척탄병들에게 들고서 뛸 수도 있는 가벼운 기관총을 쥐여줬다고 하고···."

이형은 슬쩍 전봉준을 돌아보고서는 말했다.

"···우리 대한은 세계 최강의 전함을 만들겠다느니 뭐라느니 하며 나불거리고 있지. 짐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알겠느냐?"

"그, 작금의 천하가 전란에 대비하고 있음을 말씀하시는지요?"

"다르다. 온 세상이 전쟁에서 이기기 위하여 전쟁 무기만 주야장천 만들어내고 있다는 게다."

그건 분명하게 이형이 알던 역사와는 다른 이야기였다. 그가 기억하고 있던 1890년대에서 1900년대까지의 시대는 소위 말하는 벨 엘 포크, 유럽인들의 그 좋은 세상이었다.

그야 물론 전쟁이야 그 시대에도 끝없이 벌어졌으나, 적어도 그 전화가 유럽까지 미치지는 않았다. 하여 유럽 문명은 더욱 눈부시게 발전할 수 있었으며, 그들이 나날이 발전하는 만큼이나 열강의 식민지들은 고통에 신음해야 했다.

하지만 작금의 시대는 어떠한가.

"우리 아주가 저 유럽보다 여유가 있다는 게 참 어처구니가 없구나."

이형은 헛웃음을 지었다. 그건 그의 진심이었다. 그야 물론, 슬슬 아시아에도 전쟁의 불씨가 피어오르고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게 과연 수천만 명이 맞부딪히면서 수백만 명이 죽어갈 거대한 전쟁 인가하면- 다르다. 그런데도 수백만 명이 부딪혀 수십만 명이 죽겠으나, 현 아시아의 인구성장률을 보면 대수로운 수준은 아니다.

그야 당연하다. 지금 아시아가 준비하고 있는 전쟁은 세계로 뻗어 나가기 위한 전쟁이다. 패배한다고 한들 멸망하거나 파멸할 일은 없다. 이 점은 미국 또한 마찬가지다. 패한다고 한들 미합중국이 파멸할 일은 없다. 전쟁에서 패하는 이상 필연적으로 쇠락하겠으나, 후일을 기약할 수 있다. 지금 패배하더라도 다음 세대가 이를 만회해주리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럽에서의 전쟁은 다르다. 승리하면 모든 걸 얻겠으나, 패배하는 순간 파멸뿐이다. 그러므로 누구나 군비증강에 여념이 없다. 그 좋은 시절, 신사 숙녀들이 더욱 나은 삶을 위하여 투자되었을 무궁무진한 재화가 오로지 전쟁을 준비하기 위하여 투자되고 있다.

전쟁 문명의 발달은 무시무시해졌다. 그에 반하여 소비 문명의 발달은 날로 위축되어, 보다 여유가 있는 아메리카와 아시아로 공이 넘어가 버렸다.

이형은 그 사실이 우습기만 했다.

"장갑열차를 만들 재화였다면 열차역을 셋은 더 지을 수 있었을 것이다. 기관총과 총탄을 만들 재화였으면 기관총 대신 책을 쥐여줘 대학에 보내줄 수 있었겠지. 잠수함을 만들 재화와 기술이었으면 상선이건 어선이건, 좌우지간 나라 경제에 조금이라도 더 보탬이 될 수도 있었을 테고."

"···."

"물론, 만주에 대학교 다섯은 더 세웠을 돈으로 전함이나 만들고 있는 와중에 할 말은 아닐지도 모르겠다만- 우습지 않더냐. 저 많은 재화를 퍼부어서 만들어낸 기기묘묘한 병장기들로 기껏 한다는 짓이 그 값비싼 병장기를 부수는 일이라는 게. 기름이 목 밑까지 차올랐는데 누가 더 빨리 성냥에 불을 붙이느냐로 경쟁하는 꼴이니, 참으로 통탄할 노릇이지."

이형은 뒤돌아섰다. 이제 제례를 마치고서 돌아가기 위함이었다. 나흘 전 공주를 모신 영국의 전함이 말라카를 통과했다고 했으니, 마중하러 가려면 서두를 필요가 있었다.

전봉준은 지나가듯이 가벼운 어조로 말했다.

"역시 지난 대전이 흐지부지하게 끝났기 때문이 아닐는지요."

"음. 다들 덜 태웠던 게지. 땔감이 남았는데 불이 꺼져버렸으니, 이번에야말로 크게 태워보자고 다들 그 위에 숯을 쌓고 냅다 기름을 가져다 붓고 있는 것이다."

"우리 아주에 덜 탄 땔감이 숨어있지는 않겠습니까?"

"왜 없겠느냐? 하지만 내가 보기로 저들끼리 다투는데 바빠 아주에 불을 댕길 놈은 없다. 이번에 시황제가 진노하여 내게 저주를 내렸다면 또 모르겠다만."

이형은 그리 말하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비가 내리려는 듯하였더니, 단지 기우였던 모양이었다. 하늘을 어두컴컴하게 만든 회색빛 먹구름은 단지 그곳에 있을 뿐, 이형에게 어떠한 위해도 끼치지 않았다.

이형은 피식 웃었다. 요술이라도 부리려는 줄 알았더니, 그조차도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하기야, 염라국에 입국한 주제에 무슨 수로 현세에 간섭할까.

이형은 전봉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이강, 그 아이를 잘 보살펴다오. 첫째야 뭐, 이제 내가 뭐라 따로 간섭하지 않아도 어련히 남은 인생을 잘 풀어나가겠으나- 그 아이는 다르지 않더냐. 천성도 썩 상냥하지 않은 놈이 크면서 비비 꼬였으니, 며늘아기와 죽자고 싸울 게 훤히 보이는 듯하다. 그 아이의 놀이 친구로서 잘 보살펴주거라. 본격적으로 전란이 시작되고 나면, 나는 그 아이를 심려할 새도 없을 테니."

"여부가 있겠나이까, 폐하."

전봉준은 그 자리에서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건 이형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다는 의사표명이었다.

그러나 단지 그것 뿐은 아니었다. 돌아오는 길, 전봉준은 이형의 말에 조용히 전율하고 있었다.

'만일 다가올 전쟁이 지난 대전과도 비교되지 않을 만큼 거대한 전쟁이 된다면, 이번 전쟁은 궁극적으로 이 세계의 평화를 위한 전쟁이 될 것이다.'

그건 예감이 아닌 확신이었다. 지난 전쟁은, 말하자면 우발적인 대전이었다. 그게 무엇인지도 모르고서 내던져져, 어리둥절해 하는 사이에 흐지부지 끝나버린 전쟁이었다. 이렇다 보니 희생은 컸어도, 다들 전쟁에 죽어간 이들에 주목하기보다는 다음에는 더욱 철저하게 준비하여 승리하겠다는 일념으로 이를 갈았다.

그런 일념도 대공황과 함께 당장 생계가 급해 가려졌으나, 이제 대공황은 끝났고 평화로운 확장을 꿈꾸기에는 한치의 무주공산도 남지 않았다. 남은 건 정면승부뿐이고, 작금의 세계는 그에 대비하여 천문학적인 재화와 노력을 쏟아붓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재화와 노력을 쏟아부은 끝에, 패하건 승리하건 전쟁이 끝나고 난다면, 모두가 생각하게 되리라.

'제아무리 호전적인 무인들이더라도, 그 수고와 참상을 또 한 번 반복하고 싶지는 않겠지.'

그렇게, 전봉준은 믿었다. 전쟁이 끝난 뒤에는, 반드시 그가 그날 꿈꿨던 대로 승전국들을 중심으로 한 국제질서가 수립되어 세계만국이 한자리에 모여 인류를 위한 신성한 의제를 평화롭고 자유롭게 논하게 될 거라고 말이다.

이렇게 나이가 들어도, 그는 여전히 사람의 선함을 믿었다.

시비지심(是非之心)을 믿었다.

< 시비지심 > 끝

ⓒ 리첼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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