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폭군 고종대왕 일대기-349화 (349/530)

< 남의 떡 >

대한제국, 서해 영해.

"무시무시합니다."

벌써 한국에 인도된 이후에도 2번의 개수를 걸친 백두산함의 낡은 함교에서,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뒤이어 나지막이 신음이 토해졌다. 기가 질린 것이다. 그건 누가 한 말이었을까. 함께 탄 해군부 장관 이규석은 아무래도 좋은 일이라고 내심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게, 자신도 같은 생각이었으니까.

정식으로 취역한 지 8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백두산함은 여전히 한국 해군이 보유한 가장 큰 전함이었다. 미국에서 굴린 것까지 포함하여 비록 30년도 더 된 구식함정이지만, 그 배수량만 장장 6,400톤으로 함대의 기함을 맡기에는 손색이 없었다. 다만, 구식설계 탓에 너무 무겁고 거대한 데다 태평양을 건너오느라 선체에 무리가 가서 원양항해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만이 단점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에 반해 지금 저 수평선 너머로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영국의 신형 전함 HMS 블랙 프린스는 어떠한가. 배수량만 장장 10,800톤으로, 한국 해군이 목표로 하는 1만 톤급을 넘어가고 있다. 비슷하게 1만 톤을 넘겼다는 프랑스의 데바스타시오 급 장갑 전함이 있기는 하나, 이쯤 되면 가히 현 태평양 최강의 전함이라고 부를만했다. 아무튼, 데바스트시옹은 지금 대서양에 있으니까.

"그러니까 세계 최강의 해군 강국이라고 자처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누가 먼저 입 밖으로 내뱉기도 전에, 이규석은 그리 놀랄 필요가 있느냐는 듯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렇다. 그건 현실이다. 이제 막 1만 톤급 수송선을 건조하기 시작했다고 좋아할 일이 아니다. 지금껏 한국이 건조한 함선 중 가장 큰 전함은 남포에서 건조해낸 4천 톤급 단군급 전함이지 않던가.

물론 개화를 시작한 지 30년에 접어들고 있는 무렵에 자체적으로 철갑선을 건조해낼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 그 자체야 분명 고무할만한 성과지만, 역시 눈앞의 저 거함을 앞에 두고 있으면 위축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저 블랙 프린스 하나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기함의 뒤를 따르고 있는 세척의 프리깃 하나하나가, 한국 해군에서는 전함으로 분류되는 4천 톤급 함선들이다.

저들에게는 고작 해봐야 공주를 운송할 수송함대에 지나지 않는 함대가, 한국 서해함대와 맞먹거나 웃돌고 있다. 그 사실은 이규석에게 식은땀을 흘리게 했으나, 또한 감탄하게 하기도 하였다. 그래, 무릇 전함이란 바로 저래야 한다고 말이다.

'블랙 프린스··· 흑태자. 그 전에 같은 이름을 쓰던 전함이 왜에 팔려 이름이 비자 바로 저 이름을 골랐다고 하였지. 영길리와 불란서가 다퉜던 백년전쟁기에 활약한 인물이라고 했던가?'

이규석은 내심 헛웃음을 지었다. 역시나, 영국 또한 요즈음 프랑스의 도발에 자극받아 한껏 자국의 민족적 자긍심을 고취하기에 여념이 없던 것이다. 물론 프랑스라고 다를 건 없다. 주불공사관의 첩보로, 프랑스가 새롭게 건조에 들어간 신형 전함의 함급은 잔 다르크급 장갑 전함이라고 그 이름이 내정된 지 오래라고 들었다.

서로가 껄끄럽게 생각할만한, 서로에게 치욕적인 패배를 안겨다 준 역사적 위인들을 꺼내 든 것이다. 양국의 충돌이 코앞까지 다가왔음을 무엇보다 선명하게 보여주는 장치였다. 다만 한 가지 의아한 점은, 프랑스가 데바스트시옹에 만족하지 않고서 한결 더 거대하고 신기술들이 대거 도입된 잔 다르크급 전함을 만들겠다고 발표했지만, 영국은 블랙 프린스급을 추가 건조하겠다고 받아쳤다는 사실이다.

그 사실은 이규석으로서는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었다. 보통은 그 반대가 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세계 제1위의 해군 대국이 더욱 강대한 함선을 건조하고, 2위의 해군 대국은 그를 뒤 따라가느라 바쁜 모습을 보여줘야 할 텐데. 그러나 현실은 그 반대였으니, 이규석으로서는 묘한 기분을 느끼게 하였다.

'그야 물론, 아직 검증되지 못한 신형 전함보다야 이미 지난 5년간 충분히 그 성능이 검증된 전함을 더욱 많이 확보하는 게 나을 거라고 판단했을 수도 있겠지만··· 영길리도 그리 상태가 좋지는 않은가 보군.'

"···마중 나갔던 초국의 함선들이 꼭 갓난아이처럼 보이는군요."

함께 탄 태자 이원철이 신음을 흘렸다. 이규석은 그제야 조금 전 그것이 태자가 낸 신음이었다는 걸 눈치챘다. 동시에 곧바로 책망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내심 안도하였다. 황태자에, 해군성 장관에, 서해함대 함대사령관에, 함대기함 백두산함 함장까지 하나하나가 새삼 화려한 면면들이었다. 함교에 동반한 위관급, 영관급 장교들의 고충이 눈에 훤히 보이는 듯하였다.

이규석은 그들이 내심 가엾다고 생각하면서도, 황태자를 흘끗 돌아보았다. 그는 아직 자신이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다는 걸 눈치채지 못한 듯하였다.

이규석은 그에 대답했다.

"너무 심려하지 마소서. 영길리의 전함이 제아무리 거함이라고 하나, 이 백두산함 또한 그에 못지않은 굉장한 거함입니다. 설령 저들이라고 한들 우리 해군을 얕보지는 못할 것입니다."

"크흠···. 혹시, 조금 전 과인이 제 속마음을 입 밖으로 내고 있었소?"

"송구하옵니다, 전하."

이규석은 꾸벅 고개를 숙였다. 태자는 얼굴을 붉히고서 어찌할 줄을 할 줄 몰랐다. 그러나 덕분에 분위기는 한결 가벼워졌다. 그 충격적인 크기에 잔뜩 위축되어있던 것이 한껏 가신 것이다.

황태자는 헛기침하다가 말했다.

"흠흠. 그럼, 아무렴 그렇겠지. 아 함교에는 그 충무공의 피를 이은 경이 있으니 말이오. 저들이 전쟁하러 온 것도 아니고, 하물며, 대한에 13척밖에 군함이 없는 것도 아니잖소? 하하하!"

"여부가 있겠나이까, 전하. 제가 비록 재주는 충무공께 미치지 못하겠으나, 작금의 대한은 그 시절의 대조선을 웃돌고 있으니 능히 그 어떤 적이라도 깨부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부디 안심하소서."

"하하하! 내 경만 믿고 있으리다!"

이규석과 황태자는 호탕하게 웃었다. 그 두 사람의 눈치를 보던 함교에도 한껏 웃음꽃이 피었다. 그래, 두려워할 필요가 무엇이 있겠는가? 한낱 명의 번국에 지나지 않던 그때와 달리, 작금의 대한은 아주의 황제국이다. 아주에 감히 비길 곳이 없거늘, 어찌 두려워할 필요가 있을까.

그러나 모두가 웃는 와중에도, 이규석의 시선은 점차 가까워지고 있는 칠흑의 거함을 향하고 있었다. 비록 잔 다르크급 장갑 전함이 완성되는 순간 세계 최강의 자리에서는 밀려날 예정이라지만, 과연 세계 최강의 해군이 자랑할만한 거함이었다.

'실로 놀라운 전함이다.'

침이 절로 넘어갔다. 굳이 망원경을 빌리지 않아도 저 수평선 너머에서도 볼 수 있을 시커먼 매연을 뿜어내고 있는 굴뚝도 그러하였고, 백두산의 회전포탑을 2배는 웃도는 것 같은 거대한 주포도 그러했다. 하물며 저 살아 움직이는 강철의 거산을 보는 듯한 저 위용이 넘치는 거구야 더 말할 것이 있으랴?

탐이 났다. 저 함을 가지고 싶었다. 과연 영국은 일본에 팔아치운 전함 블랙 프린스를 대신하기에 충분하고도 넘치는 괴물을 만들어냈다. 손이 간질거렸다. 가능하다면, 당장 저 배 위에 올라타서 전함을 빼앗으라고 명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물론, 단지 망상일 뿐이었지만 말이다.

"아무래도 경은 저 전함이 탐이 나는 모양이구려."

"하하하···."

태자의 은근한 물음에 이규석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긍정하기도, 부정하기도 뭣했다. 조금 전에 걱정할 것 없다고 큰소리를 떵떵 쳐놓고서 이제 와 저 전함이 탐나서 손이 근질거릴 지경이라고 솔직히 털어놓는 것도 꼴이 웃겼다.

"···후! 역시 전하께는 못 당하겠습니다. 자고로, 배는 클수록 좋은 법이지요. 소신은 저들이 부럽습니다."

이규석은 결국 볼을 긁적거리며 속내를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숨겨도 소용없는 이야기였다. 자고로, 배는 클수록 좋다. 이는 비단 해군만이 아닌 일반적인 상식이었다. 그러니까 모든 나라에서 어떻게든 더욱 커다란 전함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지 않던가.

당장에 그 임진왜란 때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그의 존경하는 조상 이순신 장군이 이끌던 판옥선과 거북선으로 구성된 조선 수군은 비록 수에서는 밀려도 배 하나하나의 크기는 왜군을 웃돌았다. 그렇게 질적으로 우세하였기에 수적으로 열세에 놓였음에도 신묘한 전략으로 여러 차례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물론 지금 우리 대한에서 저 코쟁이들의 코를 납작하게 해줄 만한 전함을 계획하고 있기는 하오나··· 그게 내년이나 내후년 즈음에 과실이 떨어질 만한 일이 아니잖습니까? 하여, 마음 같아서는 한 척쯤 달라고 부탁이라도 하고 싶습니다. 하하하."

이규석은 멋쩍게 웃었다. 사실 이 무렵 그와 해군부는 내심 불안에 사로잡혀 있었다. 물론 이형이 만들겠다는 최강의 전함이 대단하다는 건 알겠지만, 그게 하루 이틀로 될 일이 아니지 않은가. 남만까지 영향력을 뻗기 위해서라도 당장에 더욱 거대하고 질 좋은 신형 전함들이 필요한 한국 해군에게, 아득한 미래에나 쓸 수 있을 신형 전함의 개발은 아무래도 불안하기만 했다.

물론 황제의 계획이 멋들어지게 성공한다면야 그 전함을 한 척 건조한 것만으로 다른 나라들은 전함을 한 척도 보유하지 않은 것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한다지만, 만일 실패한다면? 한국 해군은 장장 20년간 사용할 주력 함선이 사라져 버리는 격이다. 그럼 국외에서 사 오는 수밖에 없고, 그만큼 한국 해군의 입지 또한 비좁아진다.

아주의 해상물류가 날로 성장하는 오늘날, 한국이 계속해서 아주의 맹주로 남으려면 지금의 연안함대로는 어림도 없었다. 해군에게는 앞으로 5년에서 10년 안에 당장 쓸 수 있는 전함이 무엇보다도 절실했다. 이규석은 이번 기회에 태자를 통해 윗선에서 그걸 알아주었으면 했다.

"너무 심려하지 마시오. 내 듣자 하니, 이번 국혼을 계기로 영길리에서도 우리 대한에 전함을 팔까 고려하고 있다고 하니 말이오."

"그것이 사실입니까?"

"그야 물론이오. 과인이 어찌 이와 같은 공적인 자리에서 허튼소리를 하겠소?"

태자의 대답에 이규석은 방긋 웃었다. 그건 반가운 소리였다. 신형 전함을 개발하는 동안 발생할 전력의 공백을 영국산 전함들이 메워줄 수 있다는 이야기였으니까. 그간 같은 중고함이라도 영국산 전함들을 사용하는 일본 해군을 내심 가증스럽게 여기던 이규석이었다. 물론 미국산 전함이라도 나쁜 건 아니었다. 그러나 영국산 전함과 비교하면 아직도 손색이 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럴 걱정이 줄었다. 이규석은 내심 만세를 불렀다. 처음에는 그 또한 겉으로 말하지는 않아도 내심 반대하던 영국과의 국혼이었으나, 지금에 와서는 아직 얼굴도 보지 못한 영국의 공주가 그 누구보다 사랑스럽게만 느껴졌다.

"겨우 배가 멈추었구려. 다들 건너가도록 합시다."

"예, 전하."

잡담은 거기까지였다. 함대가 멈추고 있던 것이다. 함대사령관과 함장 등은 이곳에 남을 것이고, 이규석과 태자를 위시한 환영인단은 고속정을 타고서 블랙 프린스의 함교로 건너가 그곳에서부터 인천항까지 인도할 예정이었다.

부우웅-하는 힘찬 엔진 소리를 울리며, 저 멀리에서 터빈 기관을 시험하기 위하여 건조되었던 인천함이 내달려오고 있었다. 크기는 판옥선보다 조금 더 큰 수준에 지나지 않았으나, 그 기동성은 감히 이 세상 그 어떤 군함과도 비교할 바가 못 되었다. 다른 함선들이 달린다면, 저 혼자 바다 위를 훨훨 나는 듯하였다.

기세 좋게 바닷물을 흩날리며 멈춰선 인천함의 함교로 건너간 이규석과 이원철은, 뿌듯한 얼굴을 한 정장을 마주할 수 있었다.

"필승!"

"필승! ···굉장히 기분 좋아 보이는데, 무슨 일 있었나?"

"기분 좋다 뿐이겠습니까? 장관 각하께서도 저 코쟁이 놈들이 자지러지는 걸 봤어야 했는데··· 흐흐흐! 저놈들, 항해 중에 물돼지라도 만난 것처럼 얼이 빠져서는 온종일 구경하기 바빴습니다. 본 함이 가까워지면 자지러지게 놀라고 멀리 달아나면 아쉬워서는 입맛을 다셔대는데, 그게 정말··· 으흐흐!"

고작 대위 계급의 정장은 차마 마음껏 웃을 수는 없어 이를 악물고서 어깨를 들썩거렸다. 그런데도 웃음소리가 새어 나오는 건 미처 피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그는 정말로 즐거워 보였다. 사실, 그만이 아니라 그와 함께 함교에 모인 위관들 모두가 그러했다.

사진이라도 찍었으면 좋았겠다는 얼굴을 하며 입맛을 다시는 이들도 부지기수였다.

"그게 도대체 무슨···."

"자랑스러워하셔도 좋습니다, 전하. 전하께서는 지금 세계 최속의 군함에 오르신 겁니다."

태자는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 했지만, 이규석은 그에 흡족하게 웃었다. 그야 물론 보고는 들었으나, 내심 이규석으로서는 자신이 없었다. 해군부 내적으로는 이만하면 세계 최속이라 자부할만하다고 자평하고 있었으나, 상대는 그 영국이 아니던가. 외부에는 비밀로 하고서 몰래 인천함보다 잘난 고속정을 개발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걱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우려도 이제 싹 가셨다. 인천함의 보고에 따르자면, 그들과 함께 항해하는 내내 영국인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고 했다. 주요인물의 호위를 위하여 가려 뽑은 정예일 저들이 그런 반응이었다면, 백두산함은 비록 블랙 프린스에 그 크기로 패하였으나 인천함은 기동성에서 승리하였다.

"어뢰라도 몇 발 달아놨으면 코쟁이들이 오줌 지리는 꼴을 볼 뻔했군요."

"아니, 그 정도요?"

"전하. 이 인천함을 가라앉힐 수 있는 것은 기뢰나 산탄 정도를 제외하면 없을 것입니다."

태자의 물음에 이규석은 껄껄거리며 웃었다. 물론 배는 클수록 좋다는 그의 신념이 바뀐 건 아니었으나,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기뢰와 산탄이라고 했으나, 사실 인천함이 산탄을 맞을 일은 없다고 해도 좋았다. 고속정의 역할이 어뢰나 쏘고서 내빼는 것이지, 언제부터 산탄을 얻어맞을 거리까지 접근하는 것이었단 말인가.

그러니까 현실적으로 지금 인천함을 막으려면 아예 바다를 기뢰로 도배해놓던가, 아니면 정말 운 좋게 포탄이 곧바로 맞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다. 어뢰나 쏘고서 곧장 내뺄 인천함을 상대로 포탄을 맞출 수 있다면의 이야기지만 말이다.

'신형 전함이 완성되기 전까지 고속정 전단을 서역의 중고전함들과 섞어서 써보는 건 어떨까 건의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이규석은 생각을 고쳤다. 제아무리 중고전함이라고 하나, 국외에서 전함을 사 오게 된다면 상당한 예산 출혈을 각오해야 할 터였다. 저들도 돈을 벌어야 하니까 말이다. 그리고 전함이 비싸질수록 더욱 적은 전함들만을 확보할 수 있게 될 테고, 그럼 그만큼 대양함대의 꿈은 멀어져간다.

그러니까 그 빈틈을 저 인천함을 위시한 고속정 전단으로 메운다. 연안은 고속정 전단을 위시한 소형함선들에 맡겨두고서, 대형함만을 한데 모아 따로 주력함대를 구성하는 것이다. 특히나 서해는 소형함선들이 몸을 숨길 크고 작은 섬들이 많으니, 예산 절감과 국산 군함 건조를 통한 국내 조선업 육성이라는 측면에서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어 장관이 기뻐하겠소."

"그렇게 된다면 정말로 기쁘겠습니다."

태자도 이규석의 생각을 눈치챘는지,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수록 이규석으로서는 더욱 입가에 미소가 만연해졌다. 인천함이 기대 이상의 성과를 보여준 덕분에, 뜻하지 않은 예산 절감이 가능해질 수도 있었다.

어느새 인천함은 HMS 블랙 프린스의 선수까지 접근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이규석은 이상한 걸 하나 발견했다.

"아니 왜 제독이 저런 곳에···?"

이규석은 눈을 껌뻑거렸다. 한 함대의 제독이, 선수에 매달려 뭐라 뭐라 소리를 지르고 있던 것이다. 처음에는 분노한 것처럼 보여 당황했으나, 자세히 보니 그것이 아니었다.

그는 답답해 죽겠다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저자가 지금 뭐라고 하고 있소?"

태자는 슬쩍 함께 탄 역관에게 물었다. 역관으로서는 막막하기만 한 질문이었다. 파도가 철썩거리는 바람에 그가 뭐라고 하는지 알아듣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결국, 배를 맞대고 저편에서 밟고 올라오라며 사다리가 내려올 때 즈음, 그제야 역관은 여전히 확신하지는 못하는 얼굴로 통역해주었다.

"그, 배를 어떻게 만들었기에 그렇게 빠른지 비결을 묻고 있는 것 같습니다."

"···흠."

기분 탓이었을까.

이규석은 콧대가 1치는 더 자라난 듯했다.

< 남의 떡 > 끝

ⓒ 리첼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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