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범한 행복 >
그리고 공주가 한성의 위용에 감탄하고 있을 무렵.
“기분은 조금 어떻더냐?”
“지금 당장 머리를 밀고서 어디 절간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요.”
이강은 입술을 비죽 내밀며 답했다. 진심이었다. 궁인들이 입혀준 신랑으로서의 양장도 그리 달갑지가 않았고, 안 그래도 심란한데 저를 놀리러 온 형도 마음에 들지 않았으며, 지금 한성에 막 진입했다는 공주는 더더욱 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안 그래도 그리 바라지도 않는 결혼이었을 뿐더러 공주 또한 결혼이 싫다는 이유로 곡기를 끊었다는 이야기까지 들으니 더더욱 꺼림칙했다.
마치 그가 공주를 납치하여 억지로 혼사를 치르기라도 하는 기분이었던 것이다. 이원철은 그런 동생 이강의 퉁명스러운 대답에 껄껄거리며 웃었다.
“예끼, 이 녀석아. 네가 들어가면 수도원에 들어가지 절간은 무슨 얼어 죽을 절간이더냐. 네가 아무리 날고 기어봐야 이 형님을 속일 수는 없느니라.”
“일없소. 됐으니까 이만 돌아가시오. 형님이야 뭐 이제 다 끝난 일이니 속이 다 시원하시겠지만, 이 미련한 동생은 이제부터 시작이란 말이오.”
“미련하다고 하지 마시어요. 천지간에 마마를 두고서 미련하다 말씀하시는 분은 마마 한 분뿐이시랍니다.”
걸음소리 하나 내지 않고서 뒤따라 들어온 것은 태자비였다. 즉, 이 태자 부부는 이 바쁜 와중에 일부러 시간을 내서 이강을 보러 온 것이다. 그것이 이강은 그리 고맙지가 않았다. 두 사람의 관심이 부담스럽기만 했을 뿐더러, 이강이 내심 태자비를 그리 내켜하지 않았던 탓도 있었다.
딱히 인간으로서 모난 구석이 있다던가, 아니면 권력을 탐한다든가 하는 이유 탓에 멀리하는 게 아니었다. 원체 교우관계가 협소하던 까닭에 가족들이나 궁인들처럼 눈에 익은 이들을 제하면 사람을 대하는 데에 익숙하지 않은 탓이었다. 아직 태자비는 이강이 생각하는 익숙한 사람의 범주 안에 들어오지 못한 것이었다.
“···험.”
결국 이강 본인의 결점인 셈이었다. 이강은 머쓱하게 헛기침을 해댔다. 그의 형이 홀몸으로 찾아온 것이었다면 이강 또한 내색하지 않고서 툭툭 걸렸겠지만, 태자비가 보는 앞에서는 아무래도 그럴 수가 없었다.
이원철은 그런 이강의 속내를 꿰뚫어 보고서 쓴웃음을 지었다.
“요 녀석아. 이제 곧 신부를 보러 가야 하는데 네 형수를 보는 것만으로 그리 멋쩍어해서야 되겠느냐. 그리 숙맥이어서야 언제쯤 아바마마께 후사를 보여 드릴 셈이더냐?”
“아, 됐소. 후사야 형님이 보여주시면 되는 것이고, 이 병약한 아우는 무사히 장수하는 거나 생각하리다. 내 주제에 맞지도 않게 색을 탐할 생각일랑 추호도 없소.”
“그래, 바로 그렇게 하면 되는 것이다. 이제야 좀 네답구나. 뭘 그리 어려워하고 있더냐.”
이원철은 껄껄 웃으며 이강의 등을 두들겨 주었다. 그 나름의 격려였다. 막상 당하고 있는 이강으로서는 입안에 신물이 도는 것이 괴롭기만 했지만 말이다. 눈앞이 핑핑 도는 듯했다.
결국 더욱 못한 태자비가 가만히 이원철의 손목을 부여잡으며 말렸다.
“그만 자중하시어요. 이러다가 백성이 보는 앞에서 쓰러지시면 어쩌려고 그러세요.”
“음, 내 정신 좀 봐. 어깨를 펴준다는 게 우리 아우님을 골로 보낼 뻔 했구만. 괜찮은가?”
“···날 차라리 죽여주오.”
웩웩하고 이강은 헛구역질을 하는 시늉을 했다. 진짜로 헛구역질이 올라왔다기보다는 이원철이 당황하는 꼴을 보고자 일부러 연기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원철은 당황하는 기색도 없이 “그거 다행이구만.” 하고 웃었을 뿐이었다.
이강은 절로 미간에 주름이 잡히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오늘은 어쩐 일이요. 이 못난 동생 놈 괴롭히려고 그러는 것이오?”
“물론 그것도 있겠으나, 그보다는 네게 묻고 싶은 게 있어서 왔다.”
“묻고 싶은 것이라니, 그건 또 무슨 말이요?”
이강은 어리둥절하게 되물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하필 식을 앞둔 지금 이원철이 그에게 지혜를 구할만한 일이라고 해봐야 마땅히 없던 것이다.
그러나 이원철은 자못 진지하게 물었다.
“어찌 아바마마께 그런 바람을 불어넣었더냐.”
“···그건 또 무슨 말이요?”
“모르는 척하지 말아라. 네 안은 분명 우리 대한을 위하는 길이나, 만에 하나라도 영길리가 이번 일을 계기로 우리 대한을 적대하고자 하여 피가 흐르게 된다면 네 비는 너를 원망할 것이며 너 또한 네 비를 원망하게 될 것이다. 대관절 무슨 생각으로 평생을 함께할 비를 채 만나기도 전에 너를 원망토록 할 여지를 만들어 놓았느냐는 말이다.”
“뭔가 했더니, 그런 이야기였소?”
이원철의 물음에, 이강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답하였다. 그는 귀를 새끼손가락으로 후비적거리고서는, 이원철의 물음에 답했다.
“툭 까놓고 말하여, 난 내가 평범한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 여기지 않소. 지난 평생을 방에 갇혀서 팔자에도 없는 독서나 기도에나 매달리며 살아왔는데 이제 와 짐 덩어리가 하나둘 는다고 한들 내 인생의 해 뜰 날이 오겠소?”
“요 녀석. 말조심 하거라. 그래, 그래서 네가 평범한 행복을 누릴 수도 없을 것 같으니 네 한 몸 바쳐 이 나라를 강성하게 만들어 보겠다 이거냐? 그게 너에게 무슨 득이 있다고?”
“왜 없겠소. 내 삶의 낙이 뭐인지 아시오? 세상 돌아가는 꼴 구경하는 거요. 신문이니 책이니 읽으면서 세상 돌아가는 꼴 구경도 하고, 나라면 이리 하였을 텐데-하고 평도 내려보고 고민도 해보는 것이지. 그래 봐야 아바마마께는 털끝 하나 따라가지 못하지만,
이제 나는 비로소 내가 주도하여 이 세상이라는 냇물에 조약돌을 하나 던지게 되었소.
내가 이번에 낸 한 수가 세상을 바꿀 것이오. 그 얼마나 즐거운 이야기가 아닐 수 있겠소? 방구석에서 신문이니 서책이니 그런 쓸데없는 것들이나 탐하던 병자가 세상에 한 획을 그은 것이오.”
이강은 슬며시 새끼손가락을 귀에서 빼면서 말을 마무리 지었다. 그를 빤히 바라보던 태자비의 시선에 기가 죽었던 까닭이었다. 그녀가 이강의 무례함에 불쾌해하고 있음을 눈치 챈 것이다. 안하무인인 점은 꼭 아버지와 닮았어도, 낯선 이들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서 제멋대로 굴기에는 아무래도 부족한 이강이었다.
이강은 태자비의 눈초리에 기가 죽었다는 사실을 감추고자 애써 흠흠 하고 헛기침을 하고서는, 마저 말을 마무리 지었다.
“그를 위하여 내 남은 인생을 영길리의 공주와 다투면서 쓰게 된다고 한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소? 어차피 그리 길지도 않을 여생이니, 세상에 내 발자취를 남기는 대가라 생각하면 대단히 값싼 편이 아니겠소. 이 못난 아우는 이제 여생을 이번에 내가 남긴 발자취가 어찌 세상을 바꾸어 가는지를 살피는 데 쓰기로 하였소.”
“부모가 주신 귀한 생명을 그리 가볍게 말하지 말아라.”
이강을 은근히 놀리던 이원철도, 이번만큼은 얼굴을 딱딱히 굳히며 경고했다. 그러나 이강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서 콧방귀나 뀌었다. 결국, 아무리 형제라고 해도, 제 처지를 더없이 건강한 이원철이 헤아릴 수는 없다고 생각한 까닭이었다.
“나라고 좋아서 이러고 있겠소. 너무 괘념치 마시오. 내가 길게 살아야 서른이나 채우겠소? 우리 형님은 만수무강하시어 백 살까지 사실 테니, 그 인생 절반도 못 보고 떠날 이 아우에게 너무 마음을 쓰지 마시오.”
“아니, 이 녀석이 그래도!”
그리 말하고서, 이강은 성큼성큼 방문을 나섰다. 뒤에서 이원철이 크게 분노하여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으나 그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계속 상대해봐야 저만 귀찮을 거라는 생각 탓이었다.
‘그러고 보면, 공주도 이번 혼례가 내키지 않는다고 식음을 전폐하였다 하던데···.’
이강은 문득 공주 또한 그리 건강하지 않다는 사실을 다시금 떠올렸다. 처음에는 그 이야기를 들으니 꼭 제가 공주를 납치해서 혼례를 치르는 같아 기분이 언짢았지만, 이제 와 생각하니 되려 잘 되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날한시에 태어나지는 못하였더라도, 부부가 한날한시에 죽을 수는 있을지도 모르지 않는가.
참으로 어울리는 병자 한 쌍이라고, 이강은 냉소했다.
***
다시 시점을 돌려.
“와···.”
빅토리아 공주는 여전히 한성의 모습에 크게 감탄하고 있었다. 멀리에서 보았을 때에는 온통 새하얀 건물들밖에는 보이지 않아 순백의 도시라 생각했으나, 막상 한성에 들어와 보니 또 달랐다. 한양은 어떠한 색도 없는 순백의 도시는커녕, 오색찬란한 빛의 도시였다.
그녀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대도의 양옆으로 들어선 가로수들이다. 마침 혼사가 부활절로 예정되어, 봄이 만연하던 차였다. 가로수의 초록색 나뭇잎들이 새하얀 한양의 건물들과 아름답게 어우러져, 마치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했다.
그뿐일까. 빅토리아는 화분을 내놓아 장식한 집들을 대단히 흔하게 발견할 수 있었다. 꽃을 기르기도 하였고, 아니면 약재나 과일나무 따위를 기르는 이들도 많았다. 건물마다 창문가나 옥상, 정문에 이런 초록빛 식물들을 기르고 있다 보니 얼핏 멀리에서 보기에는 초록색 수염이 난 것 같아 우습기도 하였다.
“···흠흠. 겉으로 보기에는 좋아도, 가까이 가면 풀냄새가 진동할 것 같네.”
빅토리아는 무심결에 창문 바깥으로 멀리 보이던 장미꽃 넝쿨을 향해 손을 뻗으려다가, 이내 아무 일도 없었던 양 행세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녀의 시선은 곳곳마다 가득한 꽃들과 초록빛 가로수에 고정되어 떨어질 줄을 몰랐다. 어디 정원에 가거나 식물원에 간다면 모를까, 도시 한복판에 이토록 많은 식물이 자라나고 있다는 사실이 그녀에게는 놀랍기만 했다.
물론 그녀의 놀라움과는 별개로, 그 내막은 그리 아름답지 못했다. 이 무렵 한국의 공업화가 나를 가속화되면서 공장 매연이 마구 뿜어져 나오자, 황제가 도시 미관과 국민의 건강을 위하여 집집마다 식물 하나씩은 기르라고 지시한 것이 시초였던 것이다. 가로수야 원래 조선 시대 때부터 전통이다 보니 도시계획 단계에서부터 포함되어 있었으나, 집집마다 기르는 화분은 나중에 위에서 강제한 정책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위에서 강제한 정책이었다고 하나 딱히 시행과정에서 저항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것을 낭만적으로 여기고 난초 따위를 기르는 걸 선비다운 취미라 여기던 문화가 그대로 반영된 탓이었다. 이 무렵에는 도성의 시민이라면 누구나 난초 하나라도 기르는 것이 보편화 되어가고 있었고, 이는 도성의 대기를 조금이나마 맑게 하는 데 이바지 하였다.
“런던에도 저런 나무들이 있었다면···.”
빅토리아는 무심코 중얼거렸다. 도중에 저가 무슨 말을 하는지 깨닫고서 이내 고개를 도리도리 세차게 가로저었지만 말이다. 비교되어서도 안 되었고, 비교할 필요도 없지 않던가. 이곳의 번영은 그녀의 조국 영국의 수도 런던에 비하면 한참은 부족했다.
단지 조금 새하얗고, 단지 조금 푸를 뿐이다. 겉으로 보기에 좋을지 몰라도, 그게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 공주는 애써 마음을 다잡으려 애썼다.
“그, 그래! 강은-.”
그래서 이제 새롭게 트집을 잡으려고 한 것이었다. 그녀는 공장 폐수로 더럽혀진 지 오래인 템스 강을 기억하고 있었다. 감히 생으로 마시기조차 두렵고, 몸에 닿기라도 하였다가는 온통 몸에서 두드러기가 일어나는 그 더럽기 그지없는 강을 말이다.
그러나 그녀는 그것이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되려 내심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기도 했다. 이렇게 강이 본래의 색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더럽혀질 만큼 런던이 공업화되었다는 증거라 여긴 것이다. 물론,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과는 별개로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마음이라고는 조금도 없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멀리에서 본 한강은 그런 템스 강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바닥이 훤히 내비칠 만큼 맑지도, 푸르르치도 않았으나. 폐수가 둥둥 떠다니는 보랏빛은 아니었다. 남색에 가까웠지만, 최소한 몇 번 거를 필요 없이 사람이 마실 수는 없어도 사용할 수는 있는 수준의 빛깔을 유지하고 있었다.
“···윽.”
공주는 말을 마무리 짓지 못하고서 입을 다물었다. 보라색을 넘어서 검은색에 가까운 빛깔을 띤 템스 강과 남색을 띠고 있는 한강. 둘을 비교하고 있자니 쉽게 입이 떨어지지를 않았다. 속으로는 아직 한성에 공장이 얼마 없는 모양이라고 비웃어도, 동시에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걸 그녀 자신부터가 알고 있었다.
당장에 그녀가 지금껏 보아온 풍경을 떠올려 보아도 그랬다. 가로수를 세우고, 화분을 기르고, 새하얀 빛깔을 유지하고, 어디 그게 쉬운 일이던가. 공장 폐수와 매연이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오는 와중에 보통 노력으로 유지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국가적 차원에서 관심을 기울여야 가능한 일이던 것이다.
그렇다면? 결론은 뻔했다. 물론 런던보다 공장지대가 비좁은 것도 원인이겠으나, 그 이상으로 조금이나마 오염을 줄여보고자 끝없이 노력한 결과물이다.
“쓰잘데기 없이 푸르네.”
결국 빅토리아는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고서, 입술을 비죽 내밀며 시선을 하늘로 틀었다. 도시를 구경하고 있자니 하나하나 비교하게 되는 것이 마음에 안 들어서, 일부러 도시 쪽으로 시선을 향하지 않기로 한 것이었다.
그렇게 올려다본 봄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공주는 그것을 쓸데없다고 평가했다. 푸른 하늘 따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던가. 그녀는 이렇게나 기분이 나쁜데, 하늘은 그걸 알아주지 못하고서 푸르기만 하니 더더욱 짜증이 나는 듯했다.
그러나 동시에 그녀는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다. 스모그와 소나기로 어두컴컴한 기억 속에 런던과는 달리, 한성에서는 이와 같은 푸른 하늘이 그리 흔하디흔하리라는 걸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푸른 하늘이 흔한 건 본래의 기후가 그러했기 때문도 있겠지만, 그만큼 푸른 하늘을 위하여 노력한 성과이기도 하다는 것 또한 말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남은 거야?”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만 채비를 하시지요.”
결국 그녀는 창에서 눈을 떼기로 하였다. 계속 보고 있어봐야, 괜히 마음만 어지러워질 거라 여긴 것이다. 그리고 그녀에게는 반갑게도, 마차는 그녀가 바깥을 구경하는 사이 성당에 들어서고 있었다. 마침내 운명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던 것이다.
“마마, 손을-.”
“됐어. 내 몸에 손대지 마.”
아직 몸이 다 회복되지 않은 것을 우려하여 그녀를 부축해주려고 하였던 하녀들의 손을 쳐내고서, 공주는 마차에서 내려 땅에 다리를 디디고 섰다. 그 직후, 몸이 갸우뚱하면서 앞으로 넘어질 뻔한 것은 덤이었다. 제아무리 강한 척하고 앙탈을 부려도, 한번 망쳐놓은 몸이 그리 간단하게 회복 될 리가 없던 것이다.
결국 그녀는 허둥지둥 그녀에게 달려온 하녀들의 부축을 받으면서 식장으로 향해야만 했다.
“조심하십시오. 앞에 계단이 있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다들 조용히 하기나 해!”
물론 그렇게 부축을 받으며 들어선다고 한들 성질머리가 어디로 가는 것도 아니라, 식장으로 들어서는 내내 공주는 투덜거렸다. 하다못해 목소리를 낮춘 것이 다행일 지경이었다.
아직 식이 시작되기에는 다소나마 여유가 있었기에, 공주는 그 길로 화장을 고치고 옷매무새를 가다듬고자 대기실로 향하였다. 쉴 새 없이 불평을 늘어놓으며 걸음걸이를 옮기는 공주는 단연 눈에 띄었으나, 아무도 그녀에게 함부로 시선을 맞추려는 이는 없었다. 괜히 함부로 마주쳤다가 그 화를 뒤집어쓸까 두려워하던 것이다.
“응?”
그런 와중, 딱 한 사람 그녀와 시선을 마주치는 이가 있었다. 키는 훤칠하고, 얼굴도 반반하였으나, 혈색이 창백해 꼭 산송장을 보는 것 같은 사내였다. 그는 멀리에서 그녀를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냥 우연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그녀가 걸으면 그 시선도 따라 움직였고, 제자리에 멈추면 따라 멈추었다. 누가 봐도, 사내는 그녀를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왜 저래. 나한테 반하기라도 했나?”
공주는 어깨를 으쓱거리고서는 더는 시선을 주지 않고서 신부대기실로 향했다. 그리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아무튼 간에, 제법 반반한 외모에 한창때의 사내가 그녀에게 관심을 주고 있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곧장 자리를 떴기에, 그녀는 미처 보지 못했다.
“아이고, 이 얼빠진 녀석이···. 평범한 행복이 어쩌고 저째? 침이나 닦아라, 요 녀석아!”
“아욱!”
있는 힘껏 사내의 등을 후려치며 박장대소를 터뜨리는 사교계의 유명인을 말이다.
< 평범한 행복 > 끝
ⓒ 리첼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