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폭군 고종대왕 일대기-359화 (359/530)

< 도화선 >

그 이후로 이형과 테슬라는 무수한 구상을 주고받았다.

"화산 발전은 어떻소? 짐이 알기로 용암의 열은 분명 사람의 살을 녹이는 데에는 넘치도록 충분하지만, 강철이나 바위를 녹이는 데에는 부족하다고 알고 있소. 꼭 화산이 아니더라도, 이처럼 지열이 올라오는 곳에서는 지열을 이용해 수증기를 발생시켜 발전을 꾀할 수 있지 않겠소?"

"과연! 대단히 인상 깊은 발상이십니다! 만일 그게 가능하다면, 이 지구의 열이 식지 않는 이상 유지보수만 특히 신경 쓰면 무한히 발전할 수 있겠군요!"

"바로 그렇소! 그대라면 내 알아주리라 믿었소. 또, 이것도 짐이 고안해낸 것인데 이건 어떻겠소? 그대도 잘 알다시피, 태양은 굉장히 뜨겁소. 이 탓에 한양에서도 여름이면 너무 더워서 사람이 죽기까지 하는 지경이오. 그래서 말인데, 사막처럼 사람도 잘살지 않고 버려진 부지는 많은 땅에 태양열을 모아다가 물을 끓이는 장치를 만든다면 이를 통하여 또 수증기를 발생시킬 수 있지 않겠소?"

"그건··· 그렇군요. 과연 그 말씀대로입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발전효율이 그리 대단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만. 그렇다고 사막을 언제까지고 버려두는 것도 공간의 낭비일 테니··· 한 번쯤 고려해 봄 직합니다."

그리고 그 구상은 대부분 21세기에서 온 이형만이 소개할 수 있는 미래 기술들투성이였다. 물론, 이형 또한 이에 대하여 자세히 아는 것은 아닌 이상 피상적으로 이렇게 하면 전기를 만들 수 있지 않겠느냐-하고 소재를 제공하는 수준에 그쳤지만 말이다. 그러나 테슬라에게 있어서는, 그 정도로 충분했다.

테슬라가 100년을 앞서간 세기의 천재였다면, 이형은 2세기 뒤의 미래에서 온 미래인이었던 까닭이다. 이형이 소개하는 무수한 신기술은 그 자체로서 테슬라에게는 문화 쇼크나 다름없었다. 물론 개중에는 테슬라도 이미 한 번쯤 구상해 본 적 있는 발명품들도 있었으나, 그 대부분은 지금껏 그가 전혀 생각지도 못하는 것들이었던 까닭이었다.

"그럼 이건 어떻겠소? 아직 실현되지는 않고 있으나, 무선통신이라고 하는 걸 알고 있을 거요."

"물론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공상의 영역이지요. 그렇지만 저는 곧 가능해질 거라 믿고 있습니다."

"그럼 그보다 더한 공상의 영역을 논해봅시다. 이 무선전파를 저 하늘 위- 혹은 우주에서 받아 다시 지상에 쏘아주는 장치를 생각해 보자는 말이요. 일종의 전화교환원인 셈이지. 그건 어떻소?"

"그건··· 대단히 낭만적인 일이겠군요. 제 살아생전에, 그와 같은 멋진 일이 가능해질지 모르겠습니다."

처음에는 식식거리며 화를 내던 테슬라는, 어느 순간부터인가 꿈을 꾸는 것 같은 얼굴을 했다. 그는 이형과의 대화에서 그간 고갈되었던 발명 아이디어 보따리가 한가득 다시 보충되어가고 있다는 실감을 얻었다. 처음에는 맞장구쳐주기만 하던 테슬라는, 어느 순간부터인가 눈을 빛내며 이형에게 계속하여 말을 건네려 했다.

그리고 이 순간이 헤어져야 할 순간이라는 걸 이형은 눈치챘다.

"이런, 우리 망나니 놈을 만나야 할 시간이구려. 이거 유감스러워졌소. 오늘은 이만 여기까지로 합시다."

"자,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폐하. 제게는 아직 드릴 말씀이-."

"껄껄.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그대가 우리 대한에 머무는 동안, 언제건 찾아올 수 있도록 시간을 낼 수 있도록 배려할 테니 말이오. 다음에 또 뵙도록 합시다."

다급하게 이형을 붙잡으려던 테슬라는, 이형이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암시를 준 다음에야 얼굴을 환히 밝히며 뒤로 물러섰다. 그는 다음에 만날 때에는 또 어떤 기발한 발상을 들을 수 있을지 기대하는 눈초리였다.

이형은 그런 테슬라의 모습을 확인하고서, 남몰래 회심의 미소를 띄웠다. 비록 그를 한국에 묶어둘 수야 없겠으나, 적어도 자신과의 대담을 특별하게 생각하게 만드는 데에는 성공했다는 확신을 얻은 것이다.

"기계와 실험실에서 씨름하는 사람 중에서 유독 괴짜들이 많다는 이야기야 자주 들어왔습니다만, 저자는 그중에서도 으뜸가는군요."

루이는 진저리를 쳤다. 본의 아니게 이형과 테슬라의 잘 알지도 못할 대화를 통역해주느라 진땀을 뺀 루이였다. 테슬라는 발명 보따리를 채웠고, 이형은 테슬라에게 뚜렷하게 자신을 각인시키며 각자 원하던 것을 챙겼으나 루이가 얻은 것이라고는 피로뿐이었다.

"그야 그렇지. 아마 미주를 통틀어도 저자에 버금가는 괴짜를 찾아보기는 어려울 것이오. 전 세계라면 또 모르겠소만."

"···폐하께서 그리 총애하시는 걸 보면 단순한 괴짜인 것만은 아니겠지요. 도대체 어떤 자입니까?"

"궁금하시오? 그럼 나중에 공직에서 내려온 다음 개인 자격으로 찾아와주시오. 그때라면 얼마든지 말해 줄 테니 말이오."

"그때에는 저자가 이미 이름을 날리게 된 다음이겠지요. 좋습니다. 그럼 느긋하게 기다려 보겠습니다."

루이는 양손을 들어 올리며 항복하는 듯한 자세를 취했다. 그 모습에 이형은 피식 웃었다. 그간 만나지 못한지 수십 년이 지났음에도, 이형이 총애를 줬으니 분명 대성할 것이다-라고 확신할 만큼 루이가 그를 신뢰하고 있음을 재차 확인하게 된 것이다.

그렇기에 이형으로서는 입맛이 썼다. 그의 처지가 안타까웠던 것이다. 애초에, 그가 루이에게 쿠데타를 권해본 것은 단지 프랑스가 분열할 경우 한국이 무난히 베트남과 코친차이나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듣기로, 나폴레옹 4세는 사람을 잘 믿지 못하고 있다고 들었다. 아마 미처 반항기도 오기 전에 아버지가 죽어 그 정책을 어쭙잖게 따라 하게 되었고, 이른 나이에 보위에 올라 모후 같은 가족들을 제외하고서는 누구도 쉽게 믿을 수 없게 된 반동이겠지만···.'

주불공사관에서 보고하기를, 이미 나폴레옹 4세의 독재는 최종국면에 접어들었다고 하였다. 루이가 자리를 비운 사이 프랑스 국내의 부정부패를 없앤다는 명분으로 사법권을 남발하여 의회와 군부를 초토화했다는 소식이었다. 마침내 프랑스가 나폴레옹 4세의 손에 완전히 떨어진 것이다.

문제는 이제 그다음이었다. 황제가 제 가족들이 가지고 있는 권력까지 빼앗으려 들지, 아니면 가족들에게 권력을 몰아줄지는 모르겠으나- 어느 쪽이 되었건 황제가 현시점에서 루이를 견제하지 않을 리가 없다. 군부가 아직 온전히 황제의 손에 떨어지지 않았을 때는 다른 이들을 견제하기 위하여 루이라는 장기 말이 필요했지만, 지금은 아니지 않은가?

쓸모를 다한 사냥개는, 프랑스에 돌아가는 순간 솥에 들어가는 게 필연이었다.

"혹, 토사구팽의 고사를 알고 있소?"

"···예?"

이형은 못내 아쉬워 마지막으로 루이를 또 한 번 슬쩍 떠보았다. 그에게 마지막으로 기회를 줘보고 싶었다. 개인적인 호의도 호의였으나, 제 나름대로 주어진 지위에 만족하고서 조국을 위하여 충성을 바쳐온 원수가 이렇게 허무하게 숙청당하기를 바라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간 고생해온 것이 있다면, 그만큼 얻는 것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가 부리던 한성근은 1대에 한정된 것이라고 하나 왕이 되어 이제 그 천수를 다해가고 있는데, 루이는 총독직마저 머지않아 빼앗기고서 황제의 자비를 바라게 될 처지라 생각하니 너무나 안타까웠다.

그러나 루이는 이형의 말 속에 담긴 뜻을 눈치채지 못한 듯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답했다.

"토사구팽이라. 잘 모르겠습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입니다만, 제가 조선말 청해나 음독은 되어도 한자는 잘 모르는지라···. 아마 앞으로 며칠간은 더 한국에 머물게 될 테니, 시간이 나면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그거 잘 되었구려."

이형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 만족스러운 답변은 아니었으나, 이 기회에 무언가 하나쯤은 느끼는 게 있었으면 좋겠다는 게 이형의 솔직한 바람이었다.

이형은 담담하게 덧붙였다.

"경이 돌아가서 어떤 일을 하게 되건, 뭐든지 술술 풀리기를 기도하겠소."

될 수 있으면, 루이가 찢어 죽여 마땅할 역적이나 방에 갇혀 죽는 날만 기다리는 신세가 아니라 한 나라의 수장이 되어 다시 이형의 앞에 나타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 * *

러시아 제국, 페트로그라드

"오늘따라 날씨가 춥군."

청년, 알렉산드르 울리야노프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하늘에서 구멍이라도 난 것처럼, 하염없이 눈이 내리고 있었다. 눈구름이 짙어 해가 어느 즈음에 있는지도 가늠할 수 없어, 그저 시계를 보고서 지금쯤 뉘엿뉘엿 저물고 있으리라 유추할 따름이었다

참으로 음울한 하늘이었다.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하리라. 햇빛은 온 데 간데 찾을 수도 없고, 눈은 하염없이 내리는데 도시의 공기는 너무나 청량했다. 페트로그라드의 귀족들이야 공기가 맑다고 좋다고 하겠으나, 그건 서민들에게 있어서는 전혀 좋지 않은 이야기였다.

날씨가 이렇게 추운데, 난방조차 제대로 못 하고 있다는 이야기였으니까.

"죽기 딱 좋은 날씨지요. 안 그래요?"

알렉산드르의 불평에 소피야 페로프스카야는 깔깔거리며 웃었다. 옷은 멋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이 실용성만 중시한 곰 가죽옷으로 꽁꽁 가린 알렉산드르와 달리, 그녀는 사슴 가죽옷으로 한껏 멋을 낸 모습이었다.

일이 실패하건 성공하건 어차피 지금 입고 있는 옷을 입고서 관에 처박힐 테니, 하다못해 옷이라도 좋은 걸 입고 갈 거라던가. 참으로 사치스러운 발상이라고 알렉산드르는 속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걸 두고서 뭐라 지적할 기분도 들지 않았다.

그 또한 동생 블라디미르가 보는 앞에서 한껏 무게를 잡고 오지 않았던가. 그의 죽음으로서, 억지로 멈춰있던 역사의 수레바퀴가 굴러갈 것이라면서.

"벌써 우리가 죽을 걱정이나 해서야 되겠소?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인민의 적을 지옥으로 보낼 궁리를 하는 것이 더욱 생산적이라 생각하오만."

"어머나, 무뚝뚝하기도 하셔라. 그거야 당연히 죽일 거라 생각하니까 성공한 다음 죽을 궁리도 할 수 있지요, 알렉산드르 동무."

"천성이오. 신경 쓰지 마시오, 소피아 동무."

즐거운 듯이 깔깔거리고 있는 소피아에 시선 한 번 주지 않은 채, 알렉산드르는 손목시계를 뚫어지라 노려다 보았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15분. 저 멀리에서 병사들의 행군 소리가 들렸다. 교대하러 오는 소리였다. 저들이 교대하고, 헌병들이 길을 닦아놓으면, 마침내 표적이 마차를 타고서 나타나리라.

그러나, 과연 몇 번째 마차일까. 알렉산드르는 눈살을 찌푸렸다. 표적은 평소 테러를 경계하여 세 대의 마차를 준비해왔다. 하지만 그게 더 늘지 않았으리라는 보장도 없었다. 좌우지간, 언제 폭발해도 이상할 게 없는 일촉즉발의 상황이 아니던가.

교회와 영주들의 지지를 등에 업은 세르게이 대공은 차르의 급진개혁에 반발하여 탄핵하고자 하고 있고, 군부와 식자들의 지지를 등에 업은 차르 알렉산드르 3세는 자신의 정통성을 주장하고 있다. 페트로그라드는 하나인데, 이미 차르는 둘이 된 꼴이다.

"그럼, 누군가 하나는 페트로그라드를 떠나야 하겠지."

알렉산드르는 중얼거렸다. 저 멀리서 짤랑짤랑하고 종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아직 시간은 10분은 더 남아있는데, 벌써 행렬을 구경하러 온 인파들로 도로가 북적거렸다. 그들 모두 하나같이 기대로 가득 찬 얼굴이었다. 모두가 그들의 차르를 조금이나마 가까운 곳에서 보게 될 기대에 가슴 벅차하고 있던 것이다.

알렉산드르는 새삼 직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 테러 시도가 실패하건 성공하건, 그는 어쩌면 고문이나 사형집행 때문이 아니라 여기에 모여든 시민의 손에 맞아 죽을지도 모른다는 걸 말이다. 그건 꽤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인민의 의지'의 행동대원이 인민의 의지에 의하여 죽게 될지도 모른다니 말이다. 누가 누구를 위하는지, 알 수 없게 되고 말았다.

"동무는 참으로 자비로우시군요."

소피아는 웃음을 지우고서 말하였다. 알렉산드르는 순간 그녀의 저의를 알아차리지 못하고서 당황했으나, 짐짓 모른 체하고서 되물었다.

"···무엇이 말이요?"

"둘 다 떠나야 옳지요. 이 러시아에는 차르도, 교회도 필요 없으니까요. 그렇지 않나요, 동무?"

소피아는 히죽 웃었다. 참으로 소름 끼치는 미소라고 알렉산드르는 생각했다. 그러나 적어도 그가 생각하기에 틀린 말은 아녔다.

황제도, 귀족도 사람이다. 푸른 피 따위가 흐를 리가 없다. 폭발에 휩쓸리면 죽고, 총에 맞으면 또 당연히 붉은 피를 흘리다 죽는다.

그럼 러시아를 지배할 통치자가 구태여 황제일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저 한낮 사람일 뿐이라면, 왜 인민은 저들의 무능과 탐욕을 언제까지고 인내해야만 하는가?

맡은 바 소임을 다하지 못했다면, 그 책임을 추궁당하거나 실직하는 것도 당연하지 않은가?

"물론 그렇게 해야겠지. 그러나 지금 당장은 아니오."

알렉산드르를 고개를 가로저었다. 소피아의 말은 궁극적으로는 그들이 지향하는 바와 일치하였으나, 지도부에서 그들에게 명한 역할은 알렉산드르의 말에 더욱 가까웠다.

지금은 봉기의 때가 아니었다. 둘이 동시에 죽어버리면, 내전은 예측조차 불가능한 방향으로 폭주하고 말 터였다. 그리고 그건 지도부에서 바라는 것이 결단코 아니었다.

지도부는 내전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면, 그 내전을 틈타 더욱 많은 이들에게 자신들의 뜻을 알려야 한다고 믿었다. 내전 중에 가능한 거대한 세력을 이룩해야지만 비로소 일개 개인에 의한 테러 활동에서 벗어나 민중봉기에 의한 혁명이 이뤄질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래요, 지금은 아니겠지요. 인민의 피가 우리 러시아의 밭고랑을 충분히 적시지 못하였으니까."

"···소피."

"글쎄요, 저는 모르겠네요. 분명 저 인민의 피고름으로 배를 채운 돼지 새끼들의 내분은 우리 같은 이들에게는 둘도 없을 기회겠지만- 그렇다고 인민의 피가 흐르는 걸 도와서야. 우리가 저들과 다를 바가 뭐지요? 깃발이 다르던가?"

그러나 소피아는 냉소적인 반응이었다. 알렉산드르는 그녀가 지도부의 저의를 의심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알렉산드르도 내심 동감하고 있었다. 이번 내전은 어떠한 의미도 없는 봉건귀족 간의 권력 쟁투에 불과하다.

왜 러시아의 인민들이 그와 같은 소모적이고 무의미한 전쟁에 피를 흘려야만 한다는 말인가? 그와 같은 일이 없기 위한 혁명이 아니었는가?

알렉산드르는 답하지 못하고서 침묵했다. 소피아는 그런 알렉산드르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다시 깔깔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슬슬 저는 이만 위치로 가볼게요. 안녕히 가시길, 동무."

"걱정할 것 없소. 동무야말로 시베리아와는 연이 없기를 빌리다."

서로의 죽음을 빌어주며, 두 사람은 헤어졌다. 어느새 시계는 정각을 가르치고 있었다. 철문이 열리고, 모여든 구경꾼들이 부르는 찬송가가 울려 퍼졌다. 구경꾼들을 통제하던 위병들마저 대성당에서 들려오는 청량한 종소리에 눈을 감고서 성호를 내리긋고 있었다.

모두가 종교적 엄숙함에 정신이 팔린 와중, 쉴 새 없이 눈알을 굴리는 건 인민주의자 테러리스트들뿐이었다.

그리고 그 필두에는, 알렉산드르가 있었다.

'몇 번째냐. 몇 번째 마차지?'

알렉산드르는 필사적이었다. 폭군을 처단할 기회는 총 세 번이었고, 그는 그 중 첫 번째를 담당하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첫 번째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는 순간 호위가 증강될 것이고 행렬은 한층 더 조심스러워질 터였다. 여차하면, 일정이 취소되거나 말이다.

뒤에서 두 번의 기회는 어디까지나 예비일 뿐, 가능하다면 그의 차례에서 끝을 보아만 했다. 그러나 낌새를 눈치챈 것인지 아니면 정적을 경계한 것인지 언제나 세 개의 마차를 준비하던 폭군은 다섯 개의 마차를 대동하고 있었다.

폭탄은 그리 신뢰할 것이 못 되었다. 불발할 확률도 낮지 않았고, 설령 폭발한다고 한들 마차 하나를 완전히 부술 수 있을지도 미지수였다. 그런 만큼, 그는 신중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표적을 노릴 필요가 있었다.

'빌어먹을, 안이 보이지를 않아! 위병들도 다 같은 숫자고···!'

알렉산드르는 이를 갈았다. 시간이 많지 않았다. 마차들이 바로 그의 앞을 지나가고 있었고, 기도에 열중하지 않고 있는 알렉산드르를 기이하게 본 위병들이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몇 번째 마차가 정답일지, 알렉산드르는 미처 생각할 틈도 없었다.

그는 눈을 질끈 감으면서, 있는 힘껏 보드카 병으로 위장한 사제폭탄을 집어 던졌다.

"죽어라, 이 극악무도한 반역자야! 러시아 제국 만세! 존귀하신 차르, 알렉산드르 3세 폐하 만만세-!"

곧 폭음이 울려 퍼졌다.

비명이 울려 퍼졌고, 모든 것이 엉망이 되고 말았다.

러시아를 불태울 도화선에 불이 붙는 순간이었다.

< 도화선 > 끝

ⓒ 리첼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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