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폭군 고종대왕 일대기-361화 (361/530)

< 모스크바 정권 >

러시아 제국, 모스크바.

"아바마마께서 역도들에게 습격을 당하셨다는 말인가?"

젊은 황태자, 니콜라이 대공은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역도들이 기어이 페트로그라드에 남아있던 부황을 습격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소식을 들은 순간, 그가 가장 먼저 느꼈던 감정은 다름 아닌 공포였다.

좋은 의미에서건 나쁜 의미에서건 군인 기질이 강하던 그의 아버지와는 다르게, 니콜라이는 유약한 인물이었다. 당연히, 그에게 있어서 내전이란 어떻게든 해결해야 할 위기가 아니라 어떻게든 깨어나기만을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할 악몽과도 같았다.

"이를 어찌한다는 말인가. 이를 어찌하면 좋아? 진정 주께서 우리 러시아의 피를 바란다는 말인가? 아! 이 모든 것이 내가 부덕한 탓이로구나!"

그 탓에, 내전의 발발 소식을 듣는 순간 니콜라이의 안색은 파리하게 질렸다. 그건 차르가 부재한 동안 모스크바의 분노를 이끌어야 할 태자에게는 그리 바람직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의 안색은 새하얗게 질리다 못해 시체를 보는듯하였고, 손톱을 마구 물어뜯으면서 크렘린궁을 우왕좌왕하며 서성거렸다. 크렘린궁에서 근무하던 모든 궁인과 관료들이 겁에 질린 태자의 모습을 볼 수 있었고, 그럴 때마다 그들은 아연해 했다.

그들 모두가 니콜라이 대공의 지도력에 실망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진정하십시오, 전하. 인제 막 시작하였을 뿐이 아니겠습니까. 마음을 단단히 먹으십시오. 설령 이 유서 깊은 도시가 송두리째 불탄다고 한들, 전하께서는 반드시 살아남아 제국의 적통을 이으셔야만 합니다. 그래야지만 후일 제국이 다시금 하나로 거듭날 수 있는 까닭입니다."

"아니, 어찌 그런 끔찍한 말을 할 수가 있는가? 내 장담하건대, 이 모스크바와 그 시민은 어떤 경우에서라도 안전할 것이고 또 그래야만 한다. 이 도시마저 역도들의 손에 떨어진다면 과인은 대관절 어디로 가야 한다는 말인가? 경들은 반드시 이 도시를 사수하여야만 하오."

"···여부가 있겠습니까, 전하."

"명심하시오. 역도들은 머지않아 스스로 무너지고 말 것이오. 도대체 어떤 멍청한 작자들이 그 가짜 황제에 충성을 맹세하겠소? 그 숙부라는 말도 아까운 작자가 정권을 유지한다면 그것은 오롯이 공포에 근거한 것일 것이고, 공포는 점차 익숙해지기 마련이오. 믿어도 좋소. 우리는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버텨야만 하오."

또 모스크바의 관료들에게 피곤했던 사실은 니콜라이가 단지 유약할 뿐만이 아니라, 대단히 독선적인 인물이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모스크바의 관료들이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조금이라도 거스르는 것 같으면 단호히 경고하였고, 또 누군가가 조언을 한다고 해도 귀담아듣지 않고서 자신이 생각하는 바야말로 옳다고 확신하였다.

단지 그것뿐이라면 조금 곤란할 뿐이겠지만, 공황상태에 빠진 대공이 조언을 곡해해서 듣는다는 것이 문제였다. 황가의 혈통이 가장 중하니 꼭 옥체를 보전하라는 조언에 대뜸 모스크바를 버리고서 도망치려 하는 패배주의자라는 낙인을 찍어버리니 처음에는 어떻게든 황태자를 진정시키려 했던 이들도 점차 지쳐버리게 되었다.

날이 가면 갈수록, 황태자는 왕재는 커녕 후일 자라서 암군이 될 자질이라는 것만 확연해졌을 뿐이었다. 그나마 성정이 난폭한 것은 아니라 폭군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사실만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정말 이대로 괜찮은 건가?"

"설령 역도들을 토벌한다고 한들, 장차 보위에 오르실 대공께서 저래서야 원···."

"···후! 우리를 혼쭐내실 때만큼의 강단이라도 평소에 보여주셨으면 좋으련만!"

사정이 이렇다 보니, 페트로그라드를 탈출한 차르가 아직 모스크바에 도착하기도 전에 사기가 뚝뚝 떨어지고만 있었다. 그들로서는 회의감을 품을 수밖에는 없었다. 워낙에 부황과 사이가 좋지 않다 보니 차르 알렉산드르 3세는 페트로그라드나 모스크바에 오래 머물지도 못했고, 이는 당연히 그를 지지할만한 세력도 적거나 없음을 뜻했다.

그나마 젊은 시절부터 함께해온 장교들이나 병사들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들이 충성을 바치는 대상은 어디까지나 알렉산드르 3세였지 그의 유약한 아들이 아니었다. 장차 러시아의 병영 국가화를 꿈꾸던 이들에게 유약한 니콜라이는 주군으로서 완전히 실격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내부 여론의 악화는 견디다 못한 미하일이 니콜라이를 찾아가야만 했던 가장 큰 이유였다.

"전하, 냉정함을 되찾으십시오. 이 모스크바에는 30만의 대군이 집결해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불어날 예정입니다. 설령 페트로그라드의 역도들이 병사들을 일으킨다고 한들 그들은 이렇다 할 참전경험조차 없는 풋내기에 불과하며, 황제 폐하께서 페르시아에서부터 이끌어오신 우리 병사들에게 미칠 바가 조금도 못됩니다!

그러니 부디 침착하시고 하루빨리 역도들을 토벌할 수 있도록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이제 싫다! 싫다고! 난 이따위 권력다툼에 끼어들려고 출세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야! 어서 날 저 튀르키스탄으로 보내줘! 이따위 애송이 똥이나 닦아줄 바에야 튀르키스탄에서 양이나 치면서 살겠어! 왜 내가 이런 애송이 놈에게 꼬박꼬박 전하 소리 붙여줘 가며 빌어야 하는 건데!'

미하일은 절박했다. 그는 이 무렵 알렉산드르 3세의 뒤를 쫓는 일도 싫증이 나고 있었다. 그는 충성을 바쳐왔는데, 막상 충성의 대가가 돌아오지 않고 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내전이 시작된 다음에도 될 대로 되라는 심경이었다. 목숨을 잃는 것만 아니라면, 시베리아로 내쫓기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을 지경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러지 못했다. 페트로그라드에서 역도들이 항복한 위병들을 학살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던 것이다. 브루실코프가 준비한 기관총 토치카에 너무나 많은 전우를 잃은 나머지 전투가 끝나고서 병사들의 눈이 뒤집혔던 것이 원인이었지만, 그런 세세한 사정까지 미하일에게 전해졌을 리가 없었다.

그럼 미하일이 했을 생각이야 뻔한 것이었다. 항복해봤자, 목숨을 부지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애초에 알렉산드르 3세의 측근으로 지목받은 그가 항복한다고 한들 목숨을 부지할 확률이야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나, 이제는 완전히 없어지고 말았다. 결국, 미하일은 죽기 싫어서라도 차르의 승리를 위하여 싸워야 했던 셈이었다.

"며, 명이라니.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요?"

"청컨대, 이 모스크바에서 아직 폐하의 신성한 통치에 따르는 충용무쌍한 신민들을 징병할 수 있도록 허하여주십시오. 지금쯤이면 페트로그라드의 역도들 또한 병사들을 모으고 있을 것입니다. 폐하께서 다다르시기만을 기다리고 있어서야 역도들에게 수로서 밀리고 말 것이옵니다!"

"하, 하나. 어찌 아바마마의 윤허도 없이 과인이 사사로이···."

"하오면, 청컨대 병사들을 보내어 폐하를 마중할 수 있도록 허하여주십시오. 브루실코프의 호위대라고 해봐야 중대 이하로 줄어 있을 테니, 이 이상 지체하면 늦을 것입니다!"

미하일이 그렇게 다그친 다음에야, 니콜라이는 벌벌 떨면서도 미하일에게 허락을 내주었다. 징병은 부황이 도착하기까지로 미루고, 부황을 마중할 병사들을 보내는 것만을 허락한 반쪽짜리였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우유부단한 조치는 결국 미하일을 폭발시킬 만했다.

"머저리 같은 애송이 자식! 이 모스크바에 80만 명이 살고 있다지만, 페트로그라드는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로 득시글거린단 말이다! 다 페트로그라드나 키예프가 돌아선 마당에, 이 모스크바에 처박혀 놓고서 병사에서까지 뒤처지면 무슨 수로 전쟁에서 이기라는 거야!

다 같이 죽자, 이거냐!"

미하일은 분노를 터뜨렸다. 이미 그의 인내심은 한계에 달해있었다. 애초에, 모스크바에 처박힌 것부터가 본의가 아니었다. 키예프의 상인들은 상인들대로, 페트로그라드의 귀족들은 귀족들대로 알렉산드르 3세의 개혁에 미적지근하니 상대적으로 그의 본거지와 가깝던 모스크바를 고른 것이었다.

그런 마당에 그들을 이끌어야 할 태자조차 저 꼴이니 미치고 팔짝 뛰고도 남았다. 여차하면 황태자를 팔아치우고 살아남는 길이라도 있다면 모를까, 한 번 포로들을 학살한 역도들이 두 번이라고 못할 이유는 없었다. 결국, 미하일은 싸워야 했고, 살아남아야 했다.

그리고 결정적인 상황이면 언제나 제멋대로 판단하여 행동하던 미하일은, 이번에도 제멋대로 판단하여 행동하기로 했다.

"이 몸께서 곱게 죽어줄까 보냐! 오냐, 더는 못 참겠다. 인제 내가 모든 지휘권을 받아야겠다. 이 전쟁은 내가 끝내겠어!"

포효한 미하일은 그 길로 휘하 장교들을 찾아갔다. 그들에게 쿠데타 의사를 알리기 위함이었다. 내통을 핑계로 시내에 병사들을 진군시켜 모스크바의 세력가들을 숙청하고 태자를 포로로 잡고, 연이어 차르가 모스크바에 도망쳐오면 차르 또한 붙잡아 가두고서 꼭두각시로 만든 다음 자신이 대원수이자 섭정이 되어 역도들을 토벌하겠다는 발상이었다.

이는 휘하 장교들에게 열렬한 찬동을 받았다. 줄이자면, 군부가 정권을 찬탈하자는 주장이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이야 페트로그라드가 건재했으니 감히 입에 담을 수 없었으나, 이제 페트로그라드와는 어차피 싸워야 할 판국이다. 무엇을 두려워할 게 있을까?

봉기는 즉각적이었고, 허술하고 갑작스러웠음에도 성공적으로 끝났다. 애초에, 도시의 군권을 독점하고 있던 미하일이 봉기한 이상 그를 막을 수 있는 이도 없었다. 미하일은 겁에 질려 장롱에 숨어있던 태자를 찾아내 방에 가두어 유폐시키고서 스스로 호언장담하였던 대로 대원수이자 섭정이 되었다.

"이제부터 이 모스크바는 나의 것이다!"

'젠장, 이제 어쩌지?'

그러나 환호하는 부하들 앞에서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리며 허세를 부려봐야, 그의 속내는 여전히 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 결국, 우유부단한 황태자 탓에 손도 발도 못 쓰고 있던 신세에서 이제 그가 주도적으로 무언가를 해볼 수 있는 공적인 지위에 올랐을 뿐, 여전히 모스크바 정권은 페트로그라드의 역도들에 비하면 너무나도 빈약하였고 나약했다.

그리고 위기의 순간, 그가 떠올린 것은 극동의 황제였다.

* * *

러시아에서의 내전.

당연하게도, 이 소식은 한국에 전달되었다.

"차르는 무사히 모스크바로 도망쳤다, 라."

이형은 가만히 수염을 만지작거렸다. 공교롭게도, 딱 국혼이 끝나고 각국의 대표들이 조국으로 돌아갈 무렵에 맞추어 내전이 발발했다. 단순히 우연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이형으로서는 아무래도 꺼림칙했다. 어느 정도 고의로 시기가 정해졌다는 기분이 들었다.

물론 단순한 직감에 불과했다. 애초에, 일부러 이 시기를 잡은 이유로 짐작 가는 것도 없었다. 때문에, 이형은 상념에서 깨어나 그의 앞에 앉은 비정규 회맹의 참가자들을 차분히 돌아보았다.

마침 국혼을 축하하려 모여들고 있었던 덕분에, 따로 초대장을 돌릴 필요도 없이 사태가 발발한 그 즉시 회맹이 소집될 수 있었다.

"이거야 원. 짧게는 끝나지 않겠구만."

"잘된 일이 아니겠습니까. 오랑캐들이 제 살을 깎아 먹게 되었으니, 나쁠 것도 없지요."

혁흔은 녹차 잔을 기울이며 입을 열었다. 인제는 완전히 노쇠하여 노인이 된 그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당장에 쓰러진다고 한들 조금도 이상하여질 게 없어 보였다.

그런 그의 명줄을 유지하고 있던 것은 끝맺음을 지어야 한다는 마지막 고집이었다. 서태후가 기차에 실려 북경으로 오고 있었다. 그는 나라를 말아먹은 마녀에게 자비를 베풀 생각이 조금도 없었고, 그러한 집념이 그의 삶을 유지 시켜주고 있었다.

텅 빈 찻잔을 탁자 위에 내려놓으며, 혁흔은 은근히 물었다.

"하여, 이번 기회에 신강을 재병탄하고자 하십니까?"

그건 대한이 계승한 것이 유목제국으로서의 다이칭 구룬임을 재확인하는 목소리였다. 일전에 러시아와 부딪혔을 무렵에야 대한의 국력으로는 도저히 신강까지 닿지 않아 러시아가 이를 병탄하고 지배하는 꼴을 봐야 했으나, 지금은 다르지 않으냐는 질문이기도 했다.

"물론 그럴 것이오. 하지만 그걸로 끝낼 생각도 없소."

그리고 이형의 대답은 수긍이었다. 다이칭 구룬의 천명을 계승하였음을 재확인한 것이다. 그 대답에 혁흔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만족의 표시였다.

그러자 이어서 말문을 연 것은 진왕 이재선이었다.

"하오나 폐하, 이듬해 말엽이면 불란서와의 방위조약이 만기가 되는 것으로 알고 있나이다. 영길리와의 혼사 또한 단지 혼사였을 뿐, 동맹이 아니었으니 작금의 정국에서 공연히 노서아를 치는 것을 다소 위험하지 않을는지요."

이재선은 사뭇 조심스러웠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의 왕국은 이미 완전히 군국주의에 물들었으되 그 자신은 그러한 숭무적 기조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때문에, 그는 전쟁에서 얻을 것보다는 그 때문에 잃을 것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신강을 병합해봐야, 득을 보는 것은 대한이지 진나라가 아니지 않던가. 만일 러시아에서 침공에 분개하여 내적 갈등을 대강이나마 매듭짓고 항전에 나선다면, 그 최전선은 진나라였다.

이재선으로서는 그 전화를 홀몸으로 뒤집어쓰게 되지는 않을까 우려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형은 조금도 당황하거나 불쾌해하지 않은 얼굴로 답했다.

"그럴 걱정은 없소. 이건 거래라오."

"거래란 말씀이십니까?"

"그렇소. 거래요. 우리는 이번 내란에서 모스크바의 차르를 지지하는 대신, 이 신강을 돌려받기로 약속받았소."

그리 말하며 이형이 내민 것은 한 장의 종이었다. 물론, 아무것도 적혀져 있지 않은 백지일 턱이 없었다. 그건 밀약이었다. 자세한 내용이 적혀져 있지는 않았으나, 양국 간에 무언가 거래가 오갔음을 분명히 보여주는 조약서였다.

그제야 이재선의 얼굴도 밝아졌다. 황제가 무슨 요술을 부렸는지는 알 수 없어도, 최소한 이걸로 그의 봉토가 전화에 불탈 걱정은 덜게 된 것이다.

"노서아에서 말씀이십니까? 제아무리 조국의 황제가 궁지에 몰렸다고 하나, 그 패권주의자가 그리 간단히 영토를 넘겼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이에 어리둥절해 하며 이의를 제기한 건 도쿠가와 요시노부였다. 그간 상극이자 총리대신으로서 회맹에 참가하던 것과는 다르게, 이 무렵 그는 정식으로 일본 국왕으로서 회맹에 참가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천황을 숙청한 것은 아니었다. 대신에 요시노부는 이탈리아의 사례를 본받았다. 그는 천황을 종교지도자로 만들어 궁에 가두고서, 자신은 일본의 왕으로서 이형의 책봉을 받아 즉위식을 치렀다.

그 무렵이 딱 한국에서 이순신급 전함을 건조하겠다 발표한 지 반년만이었던 것은 결코 우연일 리가 없다는 건 누가 봐도 자명했다.

"노국의 섭정이 내린 결단이오."

"섭정 말씀이십니까? 아니, 노국의 황제가 건재한데 어찌 노국에 섭정이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이형의 대답은 요시노부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섭정? 무슨 놈의 섭정이라는 말인가. 적어도 요시노부는 단 한 번도 러시아에 섭정이 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없다.

그러나 요시노부는 이내 아, 하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깨달음을 얻었던 것이다. 이형은 히죽 웃으며 그 깨달음이 옳다는 것을 알렸다.

"최고안보회의라던가? 뭐, 짐도 이번에 알게 되었으니 잘은 모르오. 모스크바에 차르가 도착한 다음 이름을 바꿨는지도 모르지. 하여튼 간에, 노서아의 주인은 더는 차르가 아니오."

이형의 선언에 회맹에 참가한 제후들은 일제히 신음을 삼켰다. 결국, 우려했던 일이 발발한 것이다. 사실, 페트로그라드를 버리고서 도망친 시점에서 차르가 모스크바 정권의 주도권을 장악할 가능성은 처음부터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예상했던 대로 그렇게 되었다. 모스크바에서 황태자를 인질로 삼아 내전에 필요한 물자들과 병사들을 기르던 미하일은 기어이 제 주인마저 집어삼키려 작정했다. 애초에, 차르는 군부에 너무나 많은 힘을 부여하고 말았다.

그의 지도력과 용맹스러운 힘이라면 능히 군부를 제어하고도 남을 거라 판단했기 때문이겠지만- 안일했다. 이형처럼 연전연승을 거두었다면 모를까, 러시아의 군인들에게 차르란 결국 주는 것이 있어서 따르는 고용주지 몸과 마음을 바칠 주군이 아니었던 것이다.

"천만 다행히도 녀석과는 구면이지."

물론, 이형은 그것이 악연이었다는 건 구태여 말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현 모스크바 정권 내에 연줄이 닿아있음을 알리는 것이지, 치부를 드러내는 게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그것이 악연이건 선연이건 간에, 지금의 모스크바 정권이 한국으로부터의 지원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 또한 누가 봐도 일목요연하였다.

< 모스크바 정권 > 끝

ⓒ 리첼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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