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전권 >
"황상께서 그리 말씀하신다면 틀림없겠지요."
그제야 제후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형이 허풍을 치거나 하는 경우는 있어도, 거짓말을 공공연히 하는 인물은 결코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던 까닭이었다.
그리고 적어도 그들이 생각하기에 상황은 그리 나쁘지 않아 보였다. 아무튼, 결론은 러시아에서 내전이 발발하였고 원래 보위에 올라있던 차르를 옹립한 측은 아주와 손을 잡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무래도 제법 승산이 높아 보일 수밖에는 없던 것이다.
'퍽.'
이형은 겉으로는 껄껄 웃으면서도, 있는 힘껏 주먹을 쥐었다. 제후들이야 러시아에 대하여 자세히 알지 못하다 보니 모스크바 측에서 먼저 손을 내밀었다는 소식을 들어도 그거 잘 되었다- 정도의 감상밖에는 할 수 없지만, 이형은 달랐다.
이형으로서는 머리가 지끈거리다 못해 깨질 거 같은 기분이었다.
'알렉산드르 3세는 모스크바로, 세르게이인가 하는 놈은 페트로그라드에. 이 와중에 키예프는 중립. 이건 뭐 조선으로 따지면 내전이 터지자마자 한양을 빼앗기고 평양으로 도망친 판국에 전주에서는 어느 한쪽을 따로 편들지는 않고 있는 형국이란 건데···.'
이 경우 당장 군사력이야 일단 모스크바 정부에서 우세하다. 그러나 오래가지를 못한다. 조선처럼 걸어서라도 1개월 안에 어디라도 갈 수 있는 자그마한 나라라면 모를까, 말을 타고서도 1개월 안에는 어림도 없는 러시아 같은 대국에서 내전이 한 번 시작되면 짧게 끝날 턱이 없다. 그리고 내전이 장기화하면 할수록 모스크바는 페트로그라드의 생산력에 압살당할 것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모스크바 정권이 이미 러시아의 3분의 2 이상을 잃어버린 상태라는 것이다. 페트로그라드, 모스크바, 키예프. 이 세 도시는 러시아라는 대제국을 이끄는 삼두마차다. 페트로그라드는 북해를 향한 창구를 담당하고, 키예프는 지중해를 향한 창구를 담당하며, 모스크바는 시베리아를 통하여 동방과의 창구를 담당한다.
그런데, 그 모스크바는 지금 반신불수가 되었다. 이유야 말할 것도 없이, 한국이 동시베리아를 점유하고 한국 모피 사냥꾼들과의 경쟁으로 시베리아 모피 무역 수익이 반감하며 도시가 쇠락의 길을 걷게 된 까닭이다. 되려 지금으로서는 신성로마제국의 배려를 받아 발칸반도의 국가들과 무역이 가능해진 키예프가 모스크바보다 번영하고 있는 판국이다.
제국의 도읍 페트로그라드야 말할 것도 없다. 그곳은 언제나 최우선으로 투자를 받는다. 차르가 머무는 곳이기 이전에, 페트로그라드야말로 러시아가 유럽의 일원이고자 하는 열의를 담은 갈망의 도시인 까닭이다. 러시아가 서구화를 포기하지 않는 이상, 페트로그라드는 언제나 번성할 수밖에 없다.
'이거 우리가 개입하지 않으면 길어야 1년에서 2년 안에 페트로그라드의 압승으로 끝날 전쟁이 되어버렸어.'
겉으로 내색할 수야 없지만, 이형으로서는 구상이 전부 뒤틀렸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단, 지원해야 할 세력이 너무나 초라하게 위축되어버렸다. 이형이 예측한 내전구상은 차르를 따르는 유럽 러시아의 핵심영토들과 그 외였으나, 지금은 그 유럽 러시아의 핵심영토 중 3분의 2가 차르에게 돌아섰거나 눈치를 보고 있는 판국이다.
무엇보다 모스크바에는 지금 당장 올해 겨울을 날 식량조차 부족할 터였다. 키예프가 침묵하고 페트로그라드가 돌아섰으니 러시아의 곡창지대라고 할만한 지역들 태반을 상실했다. 그리고 설령 식량을 확보한다고 쳐도 그걸로 끝이 아니라 시민을 먹일 식량과는 별도로 군인들을 먹일 식량이 필요하다.
그뿐일까. 교회가 돌아섰으니 충성스러운 코사크 기병대는 이제 새로운 차르의 손에 넘어갔다. 그들이 충성을 바치는 코사크의 대족장은 곧 신앙의 수호자이며, 총대주교의 신임을 잃은 차르는 자연히 코사크의 대족장일 수 없는 까닭이다.
결국, 현재 모스크바 정권은 첫째로 키예프의 상실로 식량이 부족할 것이고, 둘째로 모스크바의 쇠락으로 재정이 궁핍할 것이며, 셋째로 코사크인들의 이반으로 기병 전력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하하하! 내 언젠가 이런 날이 올지도 모른다. 직감하고야 있었으나, 미하일 그놈이 내 기대 이상으로 아주 그냥 대단한 사고를 쳐줬어!"
이형은 겉으로는 껄껄거리며 웃었다. 제후들은 이를 이형이 농을 던진 거라 여기고서 웃었으나, 이형은 속으로 미하일을 욕하면서도 내심 그 결단에 동조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미하일에게는 답이 없다. 페트로그라드에서는 이미 반란군이 위병들을 학살하면서 이번 전쟁을 결코 곱게 끝내지 않을 거라며 전후숙청의 예고편을 보여줬고, 당장 수중에 주어진 병사들은 장차 내전에 동원될 수백만 대군에 비하면 한 줌에 지나지 않으며 재정은 궁핍하고 세력기반도 형편없다.
일단 영토를 팔건 무엇을 팔건 간에 외세를 끌어들여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그나마 키예프 쪽에 틀어박혔다면 프랑스건 영국이건 독일이건 좋을 대로 끌어들였겠지만, 모스크바에 처박혀버린 판국에는 한국 외에는 달리 손을 내밀 곳이 없다. 그리고 이형이 러시아를 유럽을 향한 방패로 세우기 위해서는, 미하일이 승리해주는 것 외에 달리 수가 없다.
'그래도 페트로그라드를 잃어버릴 거였으면 키예프 정도는 챙겼어야지 이런 우라질 놈이!'
이형은 얼굴을 왈칵 찡그렸다가, 다시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가 내쉬어 마음을 가라앉혔다. 괜히 제후들이 보는 앞에서 감정의 동요를 드러내 봐야 좋을 게 하나도 없었다.이제 문제는 어떻게 전쟁을 마무리 짓는가가 아니게 되어버렸다. 우선 전쟁에서 승리하는 방법부터 연구해야 할 판이다. 만일 여기에서 모스크바 정권이 허무하게 몰락해버린다면, 러시아는 곧장 한국이 손을 뻗은 중앙아시아로 시선을 돌릴 것이다. 그리고 그
뒤는 높은 확률로 세계대전의 확산이다.
이형은 어떻게든 불편한 속내를 감추고서 은근히 물었다.
"참, 그러고 보니 영길리에서는 어찌 움직일 것 같소?"
"아직 자세한 소식은 들어오지 않았으나, 아마 역도의 손을 들어주지 않을까 추측하고 있사옵니다. 노국의 차르는 태자 시절부터 영길리와 충돌을 빚어왔으니, 이번 기회에 러시아를 저들 뜻대로 길들일 수 있다면 기꺼이 나서지 않을는지요."
"으음, 확실히 그 말 대로이기는 하나··· 영길리가 노국의 차르와 손을 잡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대전이 임박한 오늘날과 같은 정국에서는 편을 바꾸는 일이야 흔히들 일어나지 않던가?"
"하오나, 노국의 차르에게는 바닷길이 없사옵니다. 이리되면 영길리가 노국의 차르를 지원하고자 한다면 상당한 수고가 들것이 분명한데, 영길리라면 대전을 앞두고서 그와 같은 소모를 감당할 바에야 차라리 전황을 관망하며 중립을 지키지 않을는지요."
답한 것은 요시노부였다. 일본은 여전히 아시아에서 대표적인 친영 국가였으므로, 회맹에서 영국의 움직임을 전하는 역할을 부여받고 있던 까닭이다. 그리고 요시노부의 대답은 이형의 예측 그대로 엮던 만큼, 이형은 신음을 삼켰다.
다만 그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도 있었다. 바로 초왕 이문하였다.
"소신의 생각은 왜왕과 다르옵니다. 소신이 일찍이 배우기로, 영길리는 이웃 간의 갈등을 더욱 이간질하여 싸움을 키워 이익을 보는 걸 즐기는 음험한 습성이 있다고 들었나이다. 하온데, 어찌 그들이 역도들의 손만을 들어주겠습니까? 영길리와 같은 교활한 자들이라면, 꼭 저 둘을 모두 지원하여 전쟁을 키우고자 할 것입니다."
"오호, 아직 약관의 나이도 되지 않으셨음에도 대단하신 통찰이시구려. 하나, 내 듣기로 지금 노국의 황제에게는 바닷길이 없소. 대관절 무슨 수로 영길리가 노국의 황제를 돕는다는 말이오?"
"영길리에게는 파사국이 있지 않습니까? 파사국을 통한다면 노국의 황제와 교섭하는 것 또한 가능할 것입니다."
'···호오.'
이형은 요시노부와 이문하의 문답을 경청하며 눈을 가늘게 떴다. 다소 비약은 있되 그 또한 충분히 가능했다. 사실, 더욱 정확히 말하자면 영국에 여유가 조금만 더 있었더라도 초왕의 생각대로 하였을 것이다.
영국에 있어서 숙적 러시아의 불행이야 손뼉을 치고 발을 굴러 마땅할 호재다. 가능하다면 조금이라도 내전이 더 오랫동안 러시아를 황폐화했으면 할 것이고, 내전 기간 중 조금이라도 더 힘을 잃었으면 할 것이다.
문제는 영국은 지금 독일과 프랑스 두 나라와 동시에 대치 중이라는 점. 그리고 세계대전에 대비하여 하나라도 더 많은 패를 조달하고 싶을 것이라는 점. 평소라면 몰라도, 현 상황에서 영국이 전쟁을 길게 끌어봐야 좋을 게 없다. 되려, 확실하게 이길 것으로 추정되는 어느 한쪽을 지원해준 다음 세계대전에서 러시아의 대육군을 빌리면서 대금을 돌려받는 것이 더욱 확실하다.
"두 의견 모두 짐이 보기에는 모두 이치에 맞는 것 같구려. 그러나 아직 영길리가 움직인 것도 아니니, 우선 영길리가 어떻게 나올지는 차후 더욱 모든 것이 뚜렷해진 다음으로 미뤄둡시다."
그런데도 이형은 요시노부의 손을 들어주는 대신 중립을 지켰다. 이번에 처음으로 회맹에 얼굴을 비춘 이문하를 띄워 주기 위함이었다. 딱히 그를 총애해서라는 이유보다는, 단순히 규모만 따지자면 한국과 대등하거나 부분적으로 능가하는 초국의 국왕이 기가 죽어 있어서야 곤란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거기에, 이제야 고작 열여덟이 된 청년이 아니던가. 그런 청년이 이형을 제외하면 다들 기본으로 쉰은 넘긴 노인네들 틈바구니에서 패기 있게 자신만의 의견을 내놓았다면 이형은 가능한 한 그 패기를 존중해 주고 싶었다.
"황상께서 언제나 사려 깊으신 결정을 내려주시니 그저 탄복할 따름이옵니다."
그런 이형의 속내를 알지는 못하여도 은근히 자신의 편을 들어주었다는 건 알아챘는지, 이문하는 히죽 웃으면서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애써 성숙한 척 해보아도, 자꾸만 볼이 늘어지는 것이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을 보이고 있었다.
요시노부는 그런 이문하가 영 아니꼬운 눈치였으나, 이를 구태여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사실, 예순을 넘어보고 있는 그가 손자뻘 되는 이문하를 진지하게 맞상대해봐야 요시노부만 망신이었다.
그렇게 요시노부가 입을 다무니, 이번에는 병상에 누운 제왕 이경하를 대신하여 참가한 세자 이범진이 입을 열었다.
"황상, 긴히 드릴 말이 있나이다."
"허하노라. 무슨 일인가?"
"노국은 지난 전란 이래로 오랜 세월 동토를 방임해왔나이다. 만일 노국의 황제가 도읍을 방 폐하고서 동쪽으로 파천하였다면, 이는 꼭 궁지에 몰렸음이 아닐는지요? 미처 과실을 취하기도 전에 노국의 내란이 종결되어 공연히 노국을 자극하게 되지는 않을까 우려스럽나이다."
'···예리한 놈이구만.'
이형은 떨떠름하게 이범진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제후들이 동요할까 봐 일부러 말하지 않고 있었던 것을 구태여 거론한 것이다. 영국이 괜히 훼방을 놓으면 어쩌나 정도만 생각하던 제후들 또한, 이범진의 지적을 듣고서는 뒤늦게 전황이 그리 좋지 않음을 깨닫고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형은 잠시 고민했다. 어디까지 밝혀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그러나 결론은 금방 나왔다.
'이렇게 된 이상 전부 밝히는 수밖에. 어차피 숨겨봐야 언젠가는 들키게 될 일이고.'
"분명 동방으로 내쫓겼음은 그 작자가 궁지에 몰렸음을 뜻할 것이오. 하지만 되려 잘된 일이 아니겠소. 궁지에 몰렸다는 것은 곧 무리한 요구를 하여도 들어줄 수밖에 없다는 뜻이고, 우리 아주가 취할 과실 또한 크다는 것이오. 그리고 저울이 기울었다고 하나, 이제 우리 아주가 추를 더하면 꼭 그 균형 또한 뒤집힐 것이니 너무 걱정할 것 없소."
"하오나, 철로로는 난주(蘭州)까지 밖에는 닿지 않을 것입니다. 과연 제때 시간에 맞출 수 있을는지요?"
"그런 걱정은 없소. 모두 알다시피 노국의 겨울은 혹독하오. 군대를 일으키려 하여도 병사들을 뜻대로 움직일 수 있는 시기가 한정되어있다는 뜻이오. 역도들이 날고 길어 봐야 올해 안에 승부를 보기는 어려울 것이니, 그동안 우리는 저들을 지원하는 데 필요할 철로를 완성하면 될 것이오."
이형은 정말로 별문제가 아니라는 듯이 대수롭지 않게 답하였다. 이범진 또한 이형이 그렇게까지 말하니 그런 줄 알고서 물러났지만, 사실은 그리 간단한 문제일 리가 없었다.
그나마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를 잇는 수준은 아니더라도, 몽골이나 진나라에서 모스크바까지를 이어야 한다는 소리였으니까 말이다. 공사 중에 동상 탓에 손발이 잘려나가고 이따금 죽기도 할 인부들이야 둘째치고서라도, 한해로 끝날 공사일 리가 없었고 내전이 끝나기 전에 완공될 수 있을지도 가물가물했다.
그러나 이형은 필요한 공사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페트로그라드야 아무튼 키예프까지 빼앗긴 이상 미하일이건 알렉산드르 3세건 내전에서 이길 확률은 희박해졌어. 우리가 등을 떠밀어주기는 하겠지만 이래서야 모스크바나 제대로 지킬 수 있을는지 원···. 아니, 지켜야지. 지키게 하는 수밖에. 아무튼, 모스크바까지만 철도로 이어놓으면 반쪽짜리 러시아라도 내 손안에 들어온다.'
그리고 반쪽짜리 러시아라도 반드시 건져야만 했다. 만일 한국이 그레이트 게임의 플레이어가 아니라 장기말이었다면 내전으로 러시아를 황폐하게 하는 정도로 충분했으나, 대국의 기수로 우뚝 서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쪽짜리 러시아만이라도 확보해두어야 했다.
이는 과욕이 아니었다. 당장에 대전기나 냉전기를 봐도 그러했다. 영국, 프랑스, 독일, 소련, 일본 등등. 세계를 주도하는 초강대국의 옥좌에 도전한 나라들이야 널리고 널렸었지만 결국 최종승리를 거둔 건 미국이었고, 그들의 비결은 어떠한 적성 국가와도 국경을 맞대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다시 말해 체제경쟁 와중에도 본국이 공격당할 우려가 없다시피 했다는 것이다. 덕분에 미 본토는 2차례에 걸친 세계대전 와중에도 어떠한 피해도 입지 않을 수 있었고, 이렇게 얻은 경제력을 본국을 방위하는 데 낭비하는 대신 동맹국들을 동원해 경쟁국들을 압박하여 끝내 무너뜨릴 수 있었다.
그럼 한국이 대국에서 승리하려면 우선 가장 먼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적성 국가가 존재하지 않아야만 했다. 그리고 현재 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유일한 적성 국가는 러시아였고 말이다. 따라서 이렇게 된 이상 대국에서 승리하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러시아를 길들이거나 화친해야만 한다는 것이 이형의 판단이었다.
"흐음. 아무래도 경들이 이번 전쟁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헷갈리고 있는 모양이니 재차 묻겠소. 경들이 생각하기에, 이번 전쟁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오?"
"마땅히 대초원을 정벌하여 카간의 위엄을 보이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경하드리옵니다, 폐하. 옛 원조 이래로 처음으로 마침내 대초원이 하나 되어-."
"아니, 그렇지 않소."
이형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당혹한 혁흔이 뭐라 덧붙이기도 전에, 이형은 눈빛을 흉흉하게 빛내며 단언했다.
"목에 칼을 차고 온 놈이 장기판에서 이길 수 있을 것 같소? 우린 이 장기판에서 이길 것이고, 이기기 위해서는 이 칼을 먼저 벗어버릴 필요가 있소. 그깟 신강이니 티베트니 하는 같잖은 영토 따위 아무래도 좋소. 짐은 노서아를 원하오. 설령 반쪽짜리라고 해도 노서아를 손에 넣고 말 것이오.
설령 모든 걸 얻게 된다고 한들, 노서아를 손에 넣지 못하면 이 전쟁에서는 우리가 진 거요."
그건 진실이었다. 지금이 아니라면, 러시아를 반쪽뿐이라도 손에 넣을 기회는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터였다. 러시아를 패망시키는 게 아니라, 반쪽뿐이라도 손에 넣으려면 기회는 이번뿐이었다.
그러나- 설령 그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이 얼마나 광오한 목표란 말인가. 이 얼마나 거대한 야망이란 말인가.
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발상이란 말인가.
"···히끅!"
끝내 참지 못하고서 딸꾹질하기 시작한 초왕 이문하의 모습이, 제후들의 심경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 도전권 > 끝
ⓒ 리첼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