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폭군 고종대왕 일대기-363화 (363/530)

< 청탁 >

그러나 제후들의 동요와는 정반대로, 이형은 굳건한 의지를 담아 재차 선언하였다.

"이번 기회에 노서아를 배제하거나 손에 넣지 못한다면, 아주는 언제까지고 북방의 위협에 떨어야만 할 것이오. 짐은 이 길뿐이라고 믿소."

그리고 사실상 이형의 단언으로 회맹은 끝이 났다. 방침이 정해진 것이다. 남은 것은 어떤 부분에서 얼마만큼을 분담할지에 대한 논의였지, 궁극적으로 무엇을 목표로 하는가는 정해진 것이다.

회맹은 야심한 밤까지 이어졌고, 자정이 되기 전에 간신히 끝이 났다. 이 긴급회맹에서 정해진 것은 크게 3가지였다.

하나, 원정군은 10만 선을 유지할 것. 이는 제왕 이범진이 주장한 것으로, 현실적으로 보급상의 문제로 그 이상의 병력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대국 러시아에서의 내전인 만큼 족히 100만 단위의 숫자가 맞부딪힐 거야 누가 봐도 확연했으니만큼 더더욱 그러했다.

이 이상을 파병할 경우 원정군을 지탱해야 할 아주의 부담도 부담이지만, 모스크바 정권에서도 감당할 수가 없다. 안 그래도 자국군을 유지할 보급품마저 부족해서 아주의 손을 빌려야 할 모스크바 정권이다. 물자를 나눠야 할 지원군은 적을수록 좋았다.

하여, 이 10만 명 중 대다수는 모스크바까지의 횡단철도를 세울 인부들을 지키는 것이 주 임무가 될 터였다. 물론 일부는 전선에 투입되겠으나, 적어도 모스크바까지를 이을 횡단철도가 완공되기 전까지는 전황에 결정적인 변화를 줄 만한 규모의 전투병력을파병할 수는 없었다.

둘, 재정부담은 한국이 충당하되 다른 제후국들 또한 방위분담금을 통하여 이바지할 것. 이는 이형이 자청한 것이었다. 애초에, 이번 전쟁에서 가장 의욕적인 것부터가 한국이었고 이형이었다. 만일 목표한 대로 러시아의 반쪽만이라도 확보한다면 단번에 초강대국으로 향하는 길이 열리게 되니 충분히 감당할만하다는 것이 이형의 판단이었다.

더하여, 이렇게 한국이 주도적으로 나서게 되면 모스크바 정권이 그만큼 한국에 의존하게 된다는 계산도 있었다. 돈이야 한국만의 것이 아니라도, 그걸 직접 빌려주는 나라는 한국 하나이니 말이다. 다른 제후들보다 더 많은 부담을 짐으로서 황제국의 위엄을 드높이는 한편으로, 모스크바 정권과의 협상창구를 하나로 줄이는 효과를 노린 것이다.

셋, 만일 모스크바 정권이 패망할 경우 시베리아와 중앙아시아만이라도 확실하게 확보할 수 있도록 한다. 이는 따로 누가 주장했다기보다는, 공통적인 합의에 가까웠다. 그리고 사실 제후 대다수는 이쪽이 가장 가능성이 클 거라 여겼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대국 러시아가 아주의 도움을 받아 승전한다고 해봐야 아주의 통제를 따를 것 같지가 않던 것이다.

이형은 이 경우 모스크바와 중앙아시아에 새로운 제후를 봉분할 것이라 하였고, 이는 제후들의 호응을 끌어냈다. 자신의 친족 중에서 새로이 제후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은 것이다. 그리고 제후들은 앞으로 전쟁에서의 기여도에 따라 제후 봉분에 청탁을 넣을 수 있을 거라 기대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회맹이 끝이 났고, 제후들은 처소에 돌아갔다. 단 한 명만 빼고서 말이다.

"황상께서 이 노신을 이토록 총애해주시니 그저 감읍할 따름입니다."

요시노부는 이형을 향하여 읍하며 말했다. 차분하게 가라앉은, 정중한 어조였다. 덴노를 일개 제사장으로 격하하고 일왕에 등극한 역적이 보일만 한 모습은 아니었다. 꼬리를 말아내란 개의 흉내를 내고 있었으니 말이다.

외로운 초등 하나가 으슥한 빛으로 밝히고 있는 방 안에는, 이형과 요시노부 두 사람만이 있었다. 따로 역관도 없었다. 이형이 일어를 배운 것이 아니라, 요시노부가 조선말을 익힌 까닭이다. 이 또한, 두 사람의 관계를 또렷이 보여주고 있었다.

이형은 그런 요시노부의 모습에 익숙한 듯, 태연하게 물었다.

"무언가 불만이 있는 듯하여 불렀소."

"···."

"불만이 아니라면, 미혹이겠지."

이형은 턱을 괴고서 가만히 요시노부의 정수리를 내려다보았다. 속을 꿰뚫어 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요시노부는 이마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히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이제 와 이런 시선 한 번에 위축되기에는, 이미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서로 알아 온 두 사람이었다.

요시노부는 몸을 천천히 세워 정좌하며 답했다.

"공연히 폐하께 심려를 끼친 것 같아 송구스러울 따름입니다. 너무 괘념치 마십시오. 소신도 이제 지천명을 넘기다 보니, 이런저런 잡념이 는 모양입니다. 허허허."

"우리 대한이 왜국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 같아 불안해하는 거잖소."

"···후우."

이형의 지적에 요시노부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로, 언제 나와 같이 달갑지 않은 자리였다. 살살 말을 돌리는 눈치 싸움이 아니라 직설적으로 하고 싶은 말만 하는 이형의 화법에는 몇 년이 지나도 익숙해질 수가 없었다.

결국, 요시노부는 체념하고서 답하였다.

"황상의 혜안에는 참으로 당해낼 도리가 없군요. 예,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소신은 두렵습니다."

"호오, 불만도 미혹도 아니고 두려움이라?"

이형은 눈을 가늘게 뜨며 히죽 웃었다. 그게 꼭 비웃는 것 같아 요시노부는 눈가에 힘이 들어갔다. 그러나 그는 애써 참고서 답하였다.

"잡스럽게 생각될지도 모르겠사오니, 오늘날 우리 왜국에 의지할 구석이라고는 강성한 해군과 영길리와의 연줄 두 가지뿐이옵니다. 이는 둘로 나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실상 하나와 다르지 않습니다. 영길리의 도움이 있기에 비로소 강성한 해군을 육성할 수 있었던 까닭입니다. 한데-."

"오늘날 우리 대한에서 둘 모두를 취하려고 하고 있으니 무엇을 내세우면 좋을지 모르겠다, 이건가?"

"···어찌 상국의 결단에 불만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다만, 변치 않는 충성을 맹세하오니 그저 살펴주십사 엎드려 빌 따름이지요."

요시노부는 재차 이형에게 읍을 올렸다. 일국의 지도자가 취할 모습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저자세였으되, 그는 개의치 않았다. 일전에 이형과 처음 만나게 되었을 적에는 냅다 만세삼창을 하며 엎드려 이마를 바닥에 들이박기도 했던 요시노부였다.

이제 와 이형의 마음을 돌리는 데 필요한 것이 고개를 한 번 더 조아리는 것뿐이라면 그보다 값싼 대가가 없었다. 요시노부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조아렸고, 이형이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확답을 줄 때까지 계속 고개를 조아리고 있을 작정이었다.

다만 그러한 모습이, 이형에게는 영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었다.

'이게 뭐 좀 고고한 맛이 있어야 고개를 숙였을 때도 아! 하는 게 있지 이 너구리 놈은 좀 불리하게 풀린다고 하면 냅다 넙죽 엎드리고 보니 원···.'

이형은 눈살을 찌푸렸다. 처음 요시노부와 만났을 적에야 첫 만남이었고 첫 절이었으니 그런대로 높이 평가했으나, 이제는 상습적으로 고개를 조아리고 보니 어깨가 으쓱거리거나 당혹스럽기보다도 우스웠고 경박스러웠다.

문제는 이형이야 그렇게 느껴도, 일단 국가원수급 인사가 굴욕을 무릎 쓰고 청탁을 넣고 있는 것이니만큼 아주 무시하거나 냉혹히 거절할 수도 없다는 점이었다. 적당히 말을 빙빙 돌려 거절하거나 아니면 그것만큼은 아니더라도 무언가 값진 것을 내주긴 해야하는데, 어느 쪽도 이형에게는 그리 내키지 않았다.

자연히 이형의 입 밖으로 나온 말도 퉁명스러울 수밖에는 없었다.

"그건 짐이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요."

"천하만사가 모두 황상의 뜻대로 이루어져 가고 있습니다. 어찌 그런···."

"짐이 일부러 그대들을 자극하려고 이러는 것으로 보이시오? 아니오. 섬나라에는 또 다르겠으나, 대륙에서 약소국의 과업은 살아남는 것이고, 중견국의 과업은 강대국이 되는 것이며, 강대국의 과업은 대륙을 제패하는 것이오. 그럼 그다음은 뭐겠소?"

요시노부는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어차피 답하라고 하는 말도 아니었다. 이형은 가만히 요시노부를 내려다보며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당연하게도 바다를 제패하는 것이오. 그리고 그다음은 세계가 되겠지. 짐의 살아생전에 이 나라가 세계를 제패할 수는 없겠으나, 바다를 제패할 수야 있을 것이오. 짐이 그리 만들어 보이고 말리다. 짐은 바다로 나가고자 하오."

"···하오면, 이 노신이 어찌하면 황상께 충성을 다할 수 있겠습니까?"

떨리는 목소리였다. 동요하고 있던 것이다. 이형의 말이 꼭 더는 일본은 필요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던 것이다.

그러나 이형은 헛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그야 물론 함께 바다를 제패해야지 무슨 소리요? 우리 대한이 아무리 강성해 봐야 혼자 힘으로 세계의 바다를 지배할 수 있을 것 같소? 함대를 바치시오. 피를 흘려주셔야겠소. 우리 대한에 바칠 충성이라면, 그거면 충분하오. 그리고-."

이형은 품 안에서 지도를 꺼내어 펼쳤다. 종이가 펄럭거리는 소리에, 그 내용이 무엇일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판단한 요시노부는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켜 세웠다. 이형이 꺼내 든 것은 서쪽으로는 인도, 동쪽으로는 필리핀, 남쪽으로는 인도네시아 열도까지가 나와 있는 지도였다.

영문을 몰라 눈을 껌뻑거리는 요시노부에게, 이형은 히죽 웃으며 말했다.

"짐은 얼마 전 영길리의 특사에게 이들 아주 열국의 독립을 요청하였소."

"···예?"

요시노부는 난생처음 뇌가 정지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실감할 수 있었다. 하다못해 이형과 처음 만났을 때조차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곧장 생각해낸 그의 총명한 두뇌로도, 이번만큼은 어떠한 대응도 생각해낼 수 없었다.

영국에 아주 열국의 독립을 요구하였다면서 지도를 펼쳐 보였다는 건, 다시 말해 지도에 나와 있는 부분만큼이 이형의 요구사항이었다는 이야기일 터였다. 그렇기에 요시노부는 더더욱이 사고를 병폐할 수밖에 없었다.

저 지도에 나와 있는 나라들의 면면을 하나하나 따져보아도 그렇다. 스페인에, 프랑스에, 네덜란드에, 영국. 하나하나가 쟁쟁한 나라들이고, 이제는 명백하게 세계를 지탱하는 하나의 축으로서 우뚝 선 아주의 제후들이라 한들 함부로 대할 수 있을 만한 나라들이 아니다.

그런데 저 식민영토들의 독립을 요청했다? 그것도 다름 아닌 영국에 요구하였다니.

"아, 아니 되옵니다! 황상, 재고하여 주시옵소서! 저 서역 오랑캐들의 분노를 어찌 감당하려 그러십니까!"

요시노부는 넙죽 엎드렸다. 애초에 도박 수를 좋아하지 않던 그였다. 그런 그에게, 이형의 이야기는 일본까지 덩달아 말려들어 갔다가는 여차하면 나라가 절단 날 최악의 도박 수였다. 무엇보다 실패하면 뒤가 없다.

그야 성공한다면야 더할 나위 없겠으나, 실패하여 패망한다면? 한국은 실패해봐야 아시아주의의 순교자로서 남겠지만, 일본은 실패한다면 아시아주의 성전에 한 손 거들었다는 거로 끝이다. 당연히, 기억해주는 이들도 적을 것이다. 예수나 석가 같은 선지자야 신도가 아니라도 누구나 알고 있어도 그 제자들까지 하나하나 기억하는 건 드문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요시노부 또한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형이 이미 영국의 특사에게 그와 같은 요구를 한 이상, 돌이킬 수 없었다. 주사위는 던져졌고, 정치 외교적으로는 영국과 긴밀한 연을 맺어도 경제적으로는 아주에 종속된 일본에 이제와서 한국을 배신한다는 선택지는 있을 수 없었다.

"거 진정하시오. 서역의 오랑캐들이 쳐들어오면 귀국이 자랑하는 대함대가 막아서면 그만이지 않소. 마침 딱 노서아에서 일이 터졌으니 구주도 지금쯤 눈이 돌아갔겠지. 저들도 곧 아주까지 주력함대를 몰고서 쳐들어올 수도 없을 거요.

"하오나···! 천축은 영길리의 척추와 같습니다. 저들이 척추를 내놓으라고 한들 귀 기울여 듣겠습니까?"

"귀 기울여 들을 필요 없소. 애초에 구주에서 얼마나 귀 기울여 듣는가 따위야 아무래도 좋소. 아주의 백성이 이를 통해 저들과 맞설 용기를 얻고, 미주의 백성이 우리의 뜻을 알게 된다면 그것으로 좋소."

이형은 시큰둥하게 덧붙였다. 그제야 요시노부는 눈이 번쩍 뜨이는 듯하였다. 아주 운운이야 아무래도 좋았다. 지금은 미주가 언급되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요시노부는 필사적으로 그 총명한 뇌를 굴려댔다. 미국이 과연 이 일을 내켜 할지에 대하여 고민한 것이다.

답은 금세 나왔다.

'백성이야 호응하겠지. 값싼 정의감을 충족시킬 수만 있다면 여론은 얼마든지 구주의 식민열강을 비난할 거다. 그러나··· 겨우 그런 이유로 미국인들이 우리 아주를 위해 전쟁을 각오할 리가 없지 않은가!'

한숨이 절로 나왔다. 입으로 떠드는 것과 실천하는 건 별개의 문제였다. 하물며 사람의 목숨이 걸려있다면 더더욱 그랬다. 요시노부는 결국 생각을 굳혔다. 너무나도 위험하다는 것이었다. 성공 확률은 한없이 낮아 보였고, 짊어져야 할 위험은 너무나 컸다. 그렇다고 이형을 말리기에는,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는 게 뻔히 보였다.

요시노부는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피해를 줄일 수 있을지를 골똘히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 그러고 보니 이 말을 빼먹었었구려."

그리고 바로 그때, 이형이 손뼉을 쳤다. 느닷없는 큰 소리에 요시노부는 조금 위축되었으나, 이내 크게 내색하지 않고서 되물었다.

"무엇을 잊으셨다는 말씀이신지요?"

"뭐, 대단한 것은 아니요. 내 듣자 하니, 초국의 손문이라는 녀석이 귀국에 입국하였다고 들었소."

"손문, 말씀이십니까?"

요시노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이형이 일부러 언급할 정도면 무언가 대단한 인물이기야 할 텐데, 요시노부로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따로 생각나는 것이 없으니 곤혹스럽기만 했다. 자신의 정보력이 이리도 형편없었나 싶던 것이다.

요시노부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자가 무언가 황상께 심기를 거스르는 언사를 했는지요?"

"아니, 아직은 아니오.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해서 사회인이 된 놈이 뭐 대단한 걸 해봐야 얼마나 했겠소? 고작 해봐야 시위 몇 번 나가보고 선전 글이나 몇 자 써본 정도지."

이형은 태연하게 답하였으나, 그럴수록 요시노부는 더욱 곤혹스러워질 따름이었다. 이형의 설명에 따르자면 딱히 그의 심기를 거스를만한 일도 해본 적 없고, 그 활동내용도 그리 대단하지 않다. 오히려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젊은 혈기로 체제에 반항하는 청년 중 하나일 뿐이다.

그렇기에 요시노부는 의아할 수밖에는 없었다. 그런 인물을 뭣 하러 황제가 일부러 기억하고서 그의 행적까지 따로 요시노부에게 알려주고 있다는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요시노부가 생각하기에 손문이라는 자는 이런 자리에서 언급되기에는 너무나 급이 떨어지는 송사리였다.

그러나 이형은 상관하지 않고서 설명을 이어갔다.

"듣자 하니 이등박문 놈의 졸개와 접선하려고 하는 모양인데. 곤란한 일이오. 안 그래도 행동력 하나는 출중한 놈인데, 만일 그 둘이 접선하게 된다면 대번에 자금줄이 붙게 생겼으니 원···쯧."

"그 손문이라는 자가 역도들과 접선할 수 없도록 조처하면 되겠습니까?"

"아니, 처분하시오."

"···예?"

요시노부는 더더욱 이해가 가지를 않았다. 그런 송사리를 황제가 일부러 그를 은밀히 불러서는 죽여 없애라고 지시한다니, 도저히 이치에 맞지를 않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형은 농담하는 기색이라고는 조금도 없이, 재차 요시노부에게 당부하였다.

"살려두면 두고두고 화가 될 놈이요. 구태여 고쳐 쓸 고생을 감수하기에는 이 나라에 그만한 인재가 없는 것도 아니지. 적당히 핑계를 붙여서 없애건, 아니면 그냥 객사시키건 그 수단까지는 개입하지 않으리다. 좌우지간, 없애시오.

명성을 얻기 전에, 아무도 주목하지 않을 때 없애야 하오."

그렇게 당부를 들어도, 요시노부로서는 그저 얼떨떨할 따름이었다.

< 청탁 > 끝

ⓒ 리첼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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