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국 >
이형은 이 무렵 영국의 태도에 따라 크게 두 개의 계획을 구상하고 있었다.
우선 하나, 영국이 이형의 요구를 일부라도 수용할 경우.
이 경우 이형은 기꺼이 영국과 손을 잡을 의향이 있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영국은 세계 제1위의 열강이었고, 그 강성하다는 프랑스나 신성로마제국 또한 영국이 구축한 패권에 도전하는 역할이었지 챔피언으로서 정점을 사수하는 역할은 아니었다. 물론 두 나라를 동시에 맞상대하게 되면서 궁지에 몰리기는 했으나, 아예 이겨낼 수 없는 수준은 아니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리고 영국과 손을 잡는다면 가장 먼저 정리해야 할 것은 필리핀과 월남이었다. 이형은 이 경우 전쟁이 대단히 손쉽게 풀려갈 거라 예측했다. 무엇보다, 월남과는 육지로 연결되어 있다. 거기에 이 경우 아주합종군은 월남을 해방하러 가는 것이지 월남을 병합하거나 왕조를 교체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었다. 어차피 필리핀이야 미국의 손을 빌린다고 치면, 월남의 저항은 대단히 미미할 거라 예측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영국 놈들이 감감무소식이군."
이형은 팔을 괴고서 투덜거렸다. 그는 지금 새로이 외교부 장관으로 임명을 받은 김옥균과 얼굴을 마주하고 있었다. 미국 사절단에는 한국을 찾는 손님들-이를테면 테슬라-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었고, 오랜 미국 생활을 마치고서 한국에 돌아온 김옥균 또한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사실은 파나마 운하가 완공될 무렵으로 하여 귀국하여야 했으나, 이날 이때까지 귀국이 늦어진 까닭은 미국으로부터 군함들을 사들이게 된 탓이었다. 분기마다 이런 거래가 계속 이어지다 보니, 미처 한국에 돌아올 때를 놓치고 말았던 것이다.
이형 또한 이러한 까닭으로 귀국이 늦어지던 것에 앙심을 품지는 않았을까 우려했지만, 막상 김옥균은 전혀 그런 기색이 아니었다. 김옥균은 외눈 안경을 손수건으로 닦으며 이형의 물음에 답했다.
"아마 어려울 것입니다. 제가 연합왕국에 직접 머무르던 것은 아닙니다만, 아무래도 제가 근무하던 합중국은 대서양 바로 건너편인 데다가 연합왕국과의 교역이 활발히 이뤄지다 보니 이런저런 정보들이 쉽게 들어오고는 하지요. 그리고 이건 제 개인의 사견이 아니라 일전에 타임스에서 따로 사설로 다룬 일이기도 합니다만- 연합왕국은 결코 식민지를 포기할 수 없습니다."
미국 생활 도중 바뀐 그의 사고방식을 바로 보이는 말이었다. 우선 미국과 영국을 미리견과 영길리가 아니라 연합왕국, 합중국이라고 지칭했고 말을 높이긴 했으나 소신을 비롯하여 자신을 낮추는 표현은 일절 사용하지 않았다. 이형 또한 그에 맞추어 영길리나 미리견 대신 편하게 영국, 미국 등으로 호칭하고 있었고 말이다.
그리고 그러한 모습이야말로 이형이 김옥균에게 기대하고 있었던 모습이기도 하였다. 이 무렵의 한국에는 프랑스를 비롯한 서역에서 유학 생활을 보내온 이들이 많아 사고방식 또한 크게 트인 이들이 흔했으나, 그 누구도 김옥균만큼이나 오랜 생활 동안 외국에서 생활하지는 않았다. 다시 말하여, 김옥균은 현 대한제국의 핵심관료 중 가장 서구적인 사고방식을 지닌 인물이 된 것이다.
이형은 턱수염을 쓰다듬으면서 되물었다.
"흠, 포기할 수 없다라···. 아마 수익 문제는 아닐 것 같고. 자존심 문제라는 건가?"
"예. 그간 자유당 정권은 분명 연합왕국의 재건을 위하여 온 힘을 다해왔습니다만, 내정을 위하여 위신을 희생한 것이 그들 정권의 아킬레스건이 되고 말았습니다. 물론 페르시아 전쟁이 있었다는 반론이 있을 수도 있지만, 사실 페르시아 전쟁은 본래 연합왕국의 영향권 아래에 있었던 지역을 재회복한 것에 불과하지 새로운 식민영토를 확보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프리카 분할 또한 마찬가지로, 비록 식민영토를 확보하였다고 하나 연합왕국 내에서는 지나치게 많은 영토를 프랑스에 내주었다는 지적이 많았습니다. 상아 해안가 일대를 포기하고서 케이프타운과 그 일대만 인정받은 수준이었으니까 말입니다. 제가 읽은 사설에서는 연합왕국에서 이번 기회에 프랑스를 사하라 이남에서 내쫓으려 할 것이라고 말하더군요.
그 영국인들이 필요하다면 줄루인들마저 동맹으로 끌어들이려 할거라는 매우 과격한 사견이 담겨있었기에, 기억에 남았습니다."
"대단히 흥미 깊은 정보로군. 그래, 언제쯤 나왔던 이야기지?"
"지난해 12월 조간신문이었을 겁니다. 정확한 시일은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아마 말엽이었을 겁니다. 예. 틀림없습니다."
이형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건 이형이 미처 듣지 못한 정보였다. 적어도, 미국에서는 영국이 식민영토를 한 뼘이라도 늘리기 위하여 이번 전쟁에서 저돌적으로 나설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이는 크게 두 가지를 의미했다. 하나는, 적어도 미국과 교류가 잦은 영국의 무역업자들은 자유당 정권에 대단한 불만을 품고 있다는 점. 이는 거의 확실하다고 봐도 좋았다. 영국은 차라리 독일이나 프랑스의 눈을 속일 수는 있어도 미국을 속일 수는 없다. 두 나라의 언어도 같을뿐더러, 민간 교류도 너무나 활발한 까닭이다. 다른 나라들은 몰라도, 미국이 영국의 민심을 잘못 파악할 리는 없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조금 더 위험한 이야기였다.
"그럼 미국은 영국의 호전성을 대단히 인상 깊이 보고 있다는 이야기군."
이형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것이 궁극적으로 호의로 이어질지 적의가 될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현시점에서는 경계를 사고 만 것이다.
사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독립전쟁이 고작 해봐야 100년이 조금 넘었고 미영전쟁은 고작해야 80년 전이었다. 영국에서 강렬한 투지를 내보였다면, 미국이 이를 달가워할 이유가 없었다. 여차하면 자신들에게 불똥이 튈지도 모르는 것이다.
"예. 사실, 합중국의 시민들은 연합왕국과 프랑스 양측 모두를 위협적으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연합왕국과는 이런저런 악연이 많고, 프랑스는 누가 봐도 명백한 전제제국이니 말이지요. 적어도 시민들은 양국이 서로 다투다가 공멸하게 되는 상황을 기대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공멸이라."
그리고 김옥균의 부연설명은 그런 이형의 추측이 옳다고 말해주었다. 김옥균의 설명이 옳다고 가정했을 때, 영국의 여론은 이미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가 전쟁을 시작하기 전부터 대단히 호전적으로 흘러가고 있었고 미국의 여론은 그런 영국을 거북하게 여기고 있음이 분명했다.
물론 이러한 여론이 온전히 국정에 반영되지는 않겠으나, 두 나라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선진적인 의회 민주주의가 운영되는 나라들이었다. 크건 작건 무언가 영향이 있을 수밖에는 없었다.
"···강 건너 불구경이 하고 싶다는 거군."
"예. 그게 맞을 겁니다. 이제 아르헨티나와 페루, 칠레 3국만 가입한다면 합중국은 저 광활한 아메리카 대륙을 한 손에 거머쥘 수 있습니다. 이런 정세에서 공연히 아메리카 대륙 바깥에 손을 대고 싶을 리가 없겠지요. 적어도 당분간은 말입니다. 유럽에서 대전이 시작되고 나면 이들 3국도 주저앉을 수밖에는 없겠지요.
적어도 대전이 끝나기 전까지 아메리카 대륙에는 미국이 주도하는 질서만이 남게 될 테니까요."
"미국이 이 틈에 그 3국을 선제공격할 가능성은 없겠나?"
"없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만, 가능성은 적지 않을까 싶습니다. 굳이 그런 도박을 시도하기에는 이미 힘의 추가 너무 기울었으니까요. 직접 침공이 없더라도, 그간 연합왕국의 눈치를 보느라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던 대서양 함대만 풀려나도 저들의 복속을 끌어내는 건 어렵지 않겠지요."
"미주 기구(Organization of American States, OAS)···. 아니, 이번에 워싱턴 협력기구(Washington Cooperation Organization, WCO)라 고쳤다고 했던가. 이대로 가면 끝장을 보겠군."
이형은 쓴웃음을 지었다. 조약기구의 정식명칭을 바꾼 의도가 너무 뻔히 보이던 것이다. 애초에 워싱턴이라고 하면 누가 있던가. 바로 그 미국 독립전쟁의 영웅이자 초대 대통령 워싱턴밖에는 더 있던가. 아무런 사전 정보가 없어도 한눈에 미국 주도의 조약기구겠구나-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작명이었다.
물론 대외적으로는 워싱턴 D.C에 본부가 있으니 워싱턴이라고 지은 것이라고 변명하고 있으나, 과연 누가 믿을까? 하다못해 미국인들조차 믿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한국이 서울협력기구라는 이름의 국제기구를 만든다면 어느 누가 그걸 아시아인들 모두를 위한 국제기구라고 받아들였겠는가.
미국에서는 그들 주도의 조약기구를 피만 흐르지 않고 더욱 도덕적인 식민지 확장법이라 여기고 있음이 분명했다. 사실, 한국이 아주조약기구를 이용하고 있던 일도 아주 틀리지만도 않았지만 말이다. 단지 차이점이 있다면, 하다못해 겉으로나마 아닌체하는가, 대놓고 행패를 부리고 있는가 정도뿐이었다.
'저거 아무래도 조만간 무언가 사달이 크게 한 번은 나겠는데···.'
이형은 머리를 벅벅 긁었다. 한국에서 자신이 주도하는 세력을 일구는 방법은 제대로 배워갔으나, 세력에 속한 나라들에 원망받지 않거나 하다못해 조금 이나마 원망을 줄이는 법은 배워가지 못한 결과였다. 결국, 미국의 힘만으로 만들어지고 유지되는 질서가 완성되어버린 것이다.
물론 한국이야 애초에 아주 전역을 포괄하기에는 국력이 부족했기에 일부러 이런저런 잔꾀를 낼 필요가 있었던 것이고, 처음부터 강성한 미국이야 다를 수도 있겠으나 힘만으로 유지되는 질서와 각국의 이해관계가 얽히고설켜 유지되는 질서를 비교하면 안정성 면에서는 단연 후자가 탁월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쯤 워싱턴 협력기구에 속한 국가들은 너무 미국 위주로만 모든 것이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에 반감을 품게 되었을 터였고, 이러한 불만은 작은 불씨만 쥐어져도 금세 폭발할 위험이 있었다. 그런다고 한들 미국이 중남미 국가들의 반란에 밀리지야 않겠으나,
미국의 미래구상이 뒤흔들리기에는 더없이 충분할 터였다.
"프랑스의 국내여론에 대해서는 무언가 듣지 못했나?"
"일단 겉으로 보기에는 나폴레옹 4세의 영도 아래 일치단결하고 있는 듯하지만··· 글쎄요. 적어도 제가 만나본 프랑스인들은 꼭 그렇게 황제를 좋아하지만은 않더군요. 제가 물론 대서양 무역에 종사하는 프랑스인들 밖에는 보지 못한 탓에 그런 것도 있겠지만,
황제가 의회를 꼭두각시로 만든 사실에 불평하는 이들이 매우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연합왕국과 대결하겠다는 야심 자체에는 공감하는 여론이 대다수였습니다. 적어도 프랑스인들은 지금을 좋은 기회라 여기고 있더군요. 합중국에 있을 적의 앙리라는 프랑스 측 주재 무관과 자주 어울렸었는데, 만날 때마다 이번에야말로 도버 해협을 넘겠다고 호언장담을 하고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영국 놈들부터 조지고 보자! 라는 거구만."
"예, 뭐··· 우선은 그렇게 판단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적어도, 연합왕국과의 일전이 끝나기 전까지 나폴레옹 4세가 실각할 일은 없겠지요."
김옥균은 잠시 망설이다가 답했다. 그건 확신이 부족하다는 뜻이었다. 사실, 그는 미국에서 근무한 것이지 프랑스에서 근무한 것이 아니었으니 그게 당연했다. 파나마 운하 공사 이래로 프랑스와 미국 사이의 교류가 늘어나면서 이런저런 정보가 흘러들어오기는 해도, 언어가 일치하는 영국만큼 프랑스의 내부사정에 대해서 잘 알 수는 없었다.
다만 이형은 김옥균의 판단이 옳다고 여겼다.
'지금 프랑스의 권력 서열 2위는 누가 뭐라 해도 루이였지. 그 우라질 멍청이가 제 발로 걷어차 버렸지만. 쯧, 토사구팽의 고사를 찾아보겠다고 했으니 뭐라도 배워서 돌아간 거라면 좋으련만···.'
이형은 문득 지금쯤 프랑스로 향하고 있을 루이를 떠올렸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형은 나폴레옹 4세가 루이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을 거라 확신했고, 루이가 보신을 위해 무언가 특별 조처를 하지 않는 한 루이의 실각은 피할 수 없으리라 여겼다.
그리고 루이마저 무력화되고 나면 이제 나폴레옹 4세를 막을 사람은 적어도 프랑스 내에는 없다. 나폴레옹 4세가 전쟁에서 패배하기 전까지는 계속 그의 천하가 유지될 게 뻔했다. 그건 이형에게도 그리 달가운 사태는 아니었다.
이미 코친차이나와 관련하여 두말해버린 것도 있지만, 애초에 열강의 국가원수가 전쟁마저 불사하는 야심가인 것부터가 언제라도 세계를 전화에 밀어 넣을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뭐, 수고했네. 적어도 미국에서 놀다가 온 건 아니군."
"영광입니다.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
김옥균은 슬쩍 고개를 숙였다. 어딘가 감사를 표하는 방식까지 미국인다워진 김옥균이었다. 이형은 만족스럽게 웃었다. 안 그래도 미국과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으나, 이번에 김옥균이 외교부 장관이 되었다는 소식을 접한 미국은 이를 두고 한국에서 더욱 우호적인 관계를 원하고 있다는 증거로 받아들일 터였다.
한국에서 누구보다 미국에 오랫동안 머물고 있었고, 그만큼 미국을 잘 알면서도 미국에 호의적인 김옥균을 내세웠으니 말이다. 분명 미국에서는 이번 일에 대하여 무언가 반응을 보여줄 터였고, 그것은 한국의 국익과도 직결되리라.
이형은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재차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짐이 영국과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들었나?"
"예, 직접 교시를 전해 들은 것은 아니었지만 이번에 인수인계를 받으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럼 이야기가 빠르겠군. 경은 이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경도 너무 무모하다고 생각하는가?"
"음··· 글쎄요. 분명 유럽에서는 싫어할 테지만, 합중국에서는 반길 거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 먼저 아시아의 식민지들을 독립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낸다면, 합중국도 아메리카의 식민지들을 독립시키고자 나설 명분이 생기니까요. 만일 민간에 공표된다
면, 그 즉시 합중국 시민 여론의 열렬한 지지를 얻어낼 수 있을 거라 확신합니다.
정부는··· 아마도 망설이긴 하겠지만 결국에는 우리 한국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선거에서 이기려면 서부의 눈치를 봐야 하니까요. 특히 새크라멘토의 으뜸 교회를 말입니다. 소위 말하는 니그로··· 그러니까 비주인? 흑인? 아무튼, 그런 유색인종들까지 끌어안는 판국이라 적어도 흥선왕 전하께서 살아계시는 동안에는 걱정 없지 싶습니다."
'그 양반 참···.'
이형은 헛웃음을 흘렸다. 반쯤 인질 삼아서 보냈던 것인데, 이제는 미국 정계에서도 눈치를 봐야 하는 걸물로 성장하다니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세상일이라 하지만 이건 특히 더했다.
하지만 이형은 이에 대해 깊이 파고들지는 않았다. 지금 중요한 건 하늘을 찌르는 이하응의 지위가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그 이야기는 마치 유럽보다는 미국에서 어떻게 나올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처럼 들리는군."
"어쩔 수 없습니다. 제가 그간 합중국에서 오랫동안 살아보았기 때문에 과대평가하는 것도 물론 있겠으나, 적어도 제 사견으로 합중국은 이미 유럽의 열강들을 넘어선 지 오래입니다. 아직 자신들이 얼마만큼의 힘을 지녔는지 완전히 자각하지 못했을 뿐이지요. 저들이 아메리카를 정리하고서 세상을 향해 시선을 돌리는 순간, 모든 것이 바뀔 것이라 확신합니다."
"호오, 과연."
이형은 눈을 가늘게 떴다. 물론 어느 정도는 김옥균 또한 인정했다시피 과대평가가 섞여 있겠지만, 미국의 잠재력에 대해서는 이형 또한 공감하는 바였다.
그러나, 이 말이 이형의 머릿속 판단으로만 그치는 게 아니라 내각에 속한 장관의 입에서 나왔다는 것이 중요했다. 그건 곧, 영국이 이형의 요구를 거부할 경우- 즉 두 번째 선택지가 가능해졌다는 증거였다.
그리고 그 두 번째 선택지의 기본 골자는 대단히 간단했다.
"그럼 이 전쟁통을 틈타 우리가 미국과 무역동맹을 맺는다면, 우리의 독립 요구에 불응하는 식민열강들을 이 아시아 시장에서 깡그리 쓸어내는데 얼마나 걸릴 거라 생각하나?"
이형은 눈동자를 빛냈다.
< 귀국 > 끝
ⓒ 리첼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