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폭군 고종대왕 일대기-368화 (368/530)

< 강철의 도시 >

"설마···."

김옥균은 이형의 물음에 차마 곧장 답하지 못하고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직감적으로 이형이 무엇을 꾀하고 있는가를 눈치챈 것이다. 사실, 여기까지 들었으면 싫어도 눈치챌 수밖에 없다.

미국과 손을 잡고서 한미가 주도하는 새로운 질서를 건설한다. 한마디로, 유럽을 향한 반란이었다. 그 시작이야 세계대전을 틈타 한국의 요구에 따르지 않는 열강들과의 무역전쟁이지만, 그게 무역전쟁으로 끝날 리가 없다. 당연히 피가 흐른다. 그리고 한번 피가 흐르기 시작하면 그 누구도 멈출 수 없을 것이다.

김옥균은 순간 망설였다. 너무 위험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를 않았다. 그러나 김옥균은 결국 망설임을 머릿속에서 지웠다.

'이 사람, 아니 이분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분이 믿는 구석도 없이 무턱대고 이런 도박을 시도할 리가 없어.'

김옥균의 이러한 신뢰는 한국에서 지내던 동안에 축적된 것보다도,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후천적으로 얻게 된 신뢰가 더 컸다. 미국에서 오래도록 생활하면서, 새삼스럽게 서구와 동양의 격차가 얼마나 멀고 멀었는지를 깨달을 수밖에 없던 것이다. 인구야 동양이 앞서고 있다지만, 그게 뭐 어쨌다는 말인가.

공사로서 미국에 머물면서 그가 가장 경악했던 사실은 미국의 풍요였다. 소위 말하는 빈민들이 산나물에 나무껍질을 벗겨 먹으면서 연명하는 게 아니라, 옥수수에 닭고기를 먹으면서 식사가 형편없다고 불평하고 있던 것이다. 서민 즈음 되면 날이면 날마다 소고기에 돼지고기에 온갖 고기를 섭취했고, 닭튀김은 너무나 형편없는 요리라며 감히 입에 대려고 하지도 않았다.

하물며 사교계에서나 만날 수 있는 거물들은 어떤가. 그는 태평양 무역 탓에 미국의 자본가들에게서 자주 초대장을 받은 바 있었고, 그때마다 일개 상인마다 지평선이 보이는 정원에 왕이나 왕자들이 살법한 궁궐을 짓고서 생활하는 것을 보고서 머리가 아득해지고 말았다. 하물며 그 재료들도 어디 흔한 목재에 종이 같은 것이 아니라 유리에 석재에 은이나 금 따위를 도금해두었으니 날마다 놀랍기만 했다.

가장 놀라웠던 사실은 이들은 곡물조차 너무 잡스럽다며 입에 대지도 않고서 매일 같이 육류만 섭취했다는 점이었다. 세 끼 식사가 육류에서 시작해서 육류로 끝나던 것이다. 한 번은 그가 이렇게 많은 가축을 도축해대면 도대체 농사는 무슨 수로 짓느냐고 물었더니, 그 대답은 참으로 가관이었다.

「하하하! 공사께서 이렇게 걱정해주시니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게는 그까짓 가축들 따위 수십, 수백만 마리라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돈이라면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정말로 석유 만세입니다, 크하하핫!」

이 말을 한 미국인 사업가는 그때 입가를 온통 스테이크에서 흘러내린 육즙으로 범벅하고서 천박하게 웃어댔다. 거기에 어울리지도 않는 금 장신구로 온몸에 두르고도 모자라 샛노란 양장으로 온몸을 금빛으로 치장하니 그야말로 졸부라는 모습을 현실에 구현한 듯한 모습이었다. 괜히 유럽인들이 미국인들을 일컬어 도금의 나라라 부르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자가 졸부건 아니건 간에, 중요한 사실은 실제로 그자가 그만한 부를 축적하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럼 그건 졸부의 돈 자랑 따위가 아니라 힘을 가진 자만이 보여줄 수 있는 정당한 오만이다. 김옥균은 그때의 충격적인 경험을 지금까지도 잊지 못하고 있었다.

일개 졸부 따위가 일국의 왕보다 호화로운 삶을 영유하고 있던 것이다. 영지에 영민에, 궁궐까지 있으니 하나하나가 제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런 자들이 수백, 수천 명은 있었고, 그들 모두를 합한 것보다 많은 부를 축적한 자들이 또 그 위에 존재했다.

그리고 개중에는 이형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카네기 또한 있었다. 그 미국 재계의 하늘 위에 우뚝 선 또 다른 하늘, 천외천(天外天). 모두를 끌어들일 수는 없겠으나 이형이 움직인다면 카네기만큼은 반드시 움직일 터였다. 김옥균은 확신했다.

'그렇구나. 카네기가 움직인다면 못해도 미국의 절반은 움직인다! 그럼 이 태평양에서 유럽의 무역 영향력을 깡그리 쓸어내는 것쯤은 일도 아니다. 늦어도 해가 바뀌기 전에는 모든 것이 끝나있을 거야!'

김옥균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처음에는 그 또한 너무 무모하지 않을까 하고 걱정했지만, 미국에서 그가 보고 겪었던 일들을 떠올리니 그런 망설임도 금세 사라지고 말았다. 물론 이는 유럽을 보지 못하고, 미국만을 보고 온 김옥균의 독단이었으나 그는 자신이 틀렸다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미국을 다녀오면서 김옥균은 국력의 기준을 더는 인구가 아니라 경제력에 기반을 두고서 판단하고 있었다. 그리고 경제력으로 따졌을 때, 이미 미국은 대영제국과 맞먹는 유수의 경제 대국이었다. 하물며 아시아는 어떠한가. 한국 하나라면 아직 5위에 머물고 있으나 아주를 통째로 합친다면? 단순 규모만 따지자면 결코 그에 뒤처지지 않는다.

김옥균은 확신을 하고서 이형의 물음에 답하였다.

"만일 합중국이 전적으로 협력한다고 가정한다면, 오래 걸려야 5년이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이조차 김옥균으로서는 상당한 양보를 거친 발언이었다. 사실은 1년도 걸리지 않을 거라고 호언장담을 하고 싶었지만, 만일 그렇게 답하면 혹여나 일이 잘못되었을 때 뒷감당해야 하는 까닭에 말을 고친 것이다. 거기에, 김옥균의 판단과는 별개로 외교부 내에서 이형의 결정에 대단한 불안감을 지니고 있었기에 공연히 이형을 자극하고 싶지 않았던 까닭도 있었다.

이제 막 본국으로 돌아와 부서 내에 자신의 사람들을 만들어가야 할 시기에 공연히 황제를 자극해서 일거리를 늘렸다는 원망을 받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 대답에 이형은 껄껄거리며 웃었다.

"정말로 그렇게 오래 걸리리라 생각하나?"

"···죄송합니다. 실언이었습니다. 3년이면 될 것입니다."

"원, 그렇게 눈치 보지 않아도 좋네. 그냥 아까부터 열심히 수박을 굴려대고 있는 게 나 혼자 보기 아까워서 해본 말이니까. 그래, 길면 5년, 짧으면 3년이라."

이형은 턱수염을 만족스럽게 쓰다듬었다. 김옥균의 대답이 그럭저럭 이형의 기대에 맞은 것이다. 김옥균으로서는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실무에서야 이제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는다고 자부하고 있었지만, 막상 본국에 돌아오고 나니 지위와 실적보다 연줄이 현저히 부족하게 된 게 문제였다.

일전에 한성근이 그에게 일러주었다시피, 결국 중요한 건 실적도 지위도 아니라 얼마나 오랫동안 한성에 머무르며 자주 얼굴을 비췄는가였다. 김옥균은 입맛을 다셨다. 그래도 황제의 총애를 받아서 괘나 젊은 나이에 장관이 되었으나, 막상 자기 세력이나 의지할 연줄이 없다 보니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특히나 외교부는 다른 부서들보다 혈연, 지연, 학연 등에 얽혀 있는 것이 많아 그가 예전에 박차고 나온 안동 김씨나 기어이 한양 제일의 명가로 우뚝 선 여흥 민씨, 원주 원씨 등이 똬리를 틀고 있어 김옥균은 고립무원이나 다름없었다.

'이거야 원, 황상께 너무 의지하면 또 권신이니 간신배니 소리를 들을 테니 합중국에서 사귄 친구들에게 의지하는 수밖에 없나?'

김옥균은 가장 먼저 카네기를 떠올렸다. 이제 막 본국으로 돌아와 인맥이 부족한 그에게 조직을 장악하는데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돈을 펑펑 쓰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기실 이는 부패 관료라 한 소리 듣기 딱 좋은 발상이었지만, 김옥균은 이를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미국에서 지내며 선거 자금이니, 모금 파티니 해서 로비들이 오가는 걸 보면서 미국식 로비문화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사실, 김옥균은 내심 이러한 미국식 로비문화가 옳다고 여겼다.

'청렴결백을 논하던 우리 조선의 사대부들이 아무리 민생을 위한다고 해봤자 그 성취는 로비를 일삼으며 국정에 개입한 합중국의 사업가들이 이룩한 번영에 발끝에도 미치지 못했다.'

물론 사사로이 뇌물을 받는 거야 잘못된 일이겠지만, 공개적으로 로비를 받으며 민심을 반영하는 문화는 오히려 본받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었다.

"그럼 이번에는 내가 한 가지 일러주겠네."

그때였다. 가만히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김옥균을 빤히 바라보던 이형이 대뜸 입을 연 것이다.

김옥균은 곧장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예, 기꺼이 새겨듣도록 하겠습니다."

"아니 뭐, 대단한 건 아닐세. 다만, 아직 한국에 돌아왔다는 실감이 없어 보이니까 하는 말인데-."

이형은 눈살을 찌푸리며 덧붙였다.

"미국에서야 돈이 곧 권력이었겠지만, 이 나라에서는 권력이 곧 돈이야. 돈만 있는 놈은 권세 있는 놈에게 가진 걸 다 내놓고서 꼬리를 마는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일세. 이걸 새겨듣게나. 내 경과는 오래도록 함께 일하고 싶으니까."

"···새겨듣겠습니다."

김옥균은 뭐라 변명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서 꼬리를 내렸다. 내심 뜨끔했던 것이다. 그냥 속으로만 생각하였던 것인데, 정말 속을 꿰뚫어 보기라도 한듯싶었다. 하지만 어떻게 속을 꿰뚫어 보았는지야 몰라도, 그의 생각이 황제의 심기를 거슬렀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그래, 그거면 됐네. 그럼 시작하게나."

다행히도 딱히 깊이 추궁하기보다는 그냥 한 번 경고해줄 생각이었는지, 이형은 김옥균이 고개를 숙이자마자 이야기를 돌렸다. 하지만 김옥균은 안도할 수 없었다.

되려 그는 어안이 벙벙해져서 되물었다.

"···예? 시작하다니요?"

"그동안 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았는지 그새 잊어버렸나? 당연히 미국부터 구워삶아 오라는 말이야. 우선 저놈들부터 끌어들여야 이야기가 시작되지 않겠나."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이제 막 귀국하여 장관에 임명을 받고서 막 인수인계가 끝난 참이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부서를 장악해야 할 시기에 누가 봐도 터무니없는 업무를 떠넘긴 것이다.

그렇다고 못 한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간 미국에 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잔뜩 뽐낸 주제에 이제 와 황제가 보는 앞에서 내빼서는 두 번 다시는 요직에 임명받지 못하리라.

"적어도 올해가 가기 전까지는 연합왕국의 응답을 기다려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때문에 김옥균이 선택한 것은 어떻게든 시간을 벌기 위한 술책을 쓰는 것이었다. 사실 의회 민주주의 특유의 느릿느릿한 의사결정 속도를 고려하면, 아주 틀리지만도 않은 지적이기도 했다. 영국에서 한국과 교섭할 생각이 없는 게 아니라, 아직 의회에서 논쟁이 오가고 있는 것뿐이 아닌가 하는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다.

"그야 물론 그래야겠지. 하지만 그건 그거고, 언제라도 패를 꺼내 쓸 수 있게 준비해두는 거야 당연하지 않나? 이런 패는 구태여 쓸 것도 없이 여차하면 쓸 수도 있다고 과시하는 용도로도 충분히 쓸 수 있으니 준비는 빨리 끝날수록 좋지."

그러나 이형은 코웃음만 칠 따름이었다. 이형이 그렇게 답하니 김옥균도 뭐라 더 답할 말이 궁했다. 이형의 말대로, 지금부터 준비하더라도 언제쯤 논의가 끝날지야 모르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미국은 영국과 달리 내각제가 아니라 제왕적 대통령제를 구축하고 있는 덕분에 유사시에 더욱 빠르게 결단을 내릴 수 있었으나, 이들 또한 의회 민주주의 국가이니만큼 황제의 의사가 무엇보다 우선시 되는 한국에 비하면 결단이 늦을 수밖에는 없었다.

결국, 제때 시간에 맞추려면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는 이형의 말에 틀린 점은 없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내 기대하고 있겠네. 보아하니 그간 미국에서 놀다 온 건 아닌 것 같아서 천만다행일세. 어디, 마음껏 실력을 뽐내 보시게나."

그래도 조금이라도 쉴 시간을 주면 안 되겠습니까? 그런 심경을 담아 무언가 변론을 하려던 김옥균이었으나, 그에 앞서 이형이 웃으면서 어깨를 두드렸다. 황제의 신뢰를 받게 된 것이다. 그리고 신뢰를 받게 된 이상, 김옥균은 반드시 그 신뢰에 보답해야 할 책임이 있었다.

김옥균은 그저 멍하니, 이따금 "하하."하는 얼빠진 소리를 내며 억지로 웃을 수밖에는 없었다.

* * *

이형은 천명을 거머쥐었으나 이를 이용해 중원을 통치하는 대신에 중원을 아홉 개의 번국으로 쪼개어 버렸고, 그 후 대한제국은 각 제후국의 내정에 깊이 관여하지 않고 그들의 자치를 보장하였다. 대외적으로는 제후들의 자주성과 다양성을 보장해주기 위함이었으나, 실질적으로는 제후국마다 독자적인 개성을 구축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리하여 서로 어울리기에는 너무나 달라진 끝에 영구적으로 분열되기를 기대하고 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에 딱 하나 예외로 취급되는 곳이 있었다.

대한제국령 정주(鄭州).

아주대륙종단 철도의 허브이자, 아주 육상 물류의 꽃이라고 불리는 메갈로폴리스였다.

"여긴 정말 언제와도 불쾌하군."

대륙종단열차, 특등칸.

창밖을 내다보며 내무부 장관 김가진은 불쾌하다는 듯이 투덜거렸다. 그는 사실 이 정주의 번영을 내켜 하지 않았다. 당연히 조선, 혹은 만주에 속한 도시도 아니면서 도시 규모로만 따지자면 이미 한성을 능가하고 있었으니 영 아니꼬웠던 것이다.

물론 이는 어쩔 수 없는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한성이야 외국인들이 자주 들락거리기는 해도 기본적으로 조선인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만큼 조선 그 자체의 인구가 크게 늘지 않는 이상 그 성장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으나, 정주는 중원 한복판에 있는 만큼 사방에서 인구를 끌어모으면서 폭발적인 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다.

이미 정주는 100만이 넘는 인구를 자랑하고 있었고, 이러한 인구는 날로 증가하여 5년 안에 런던을 따라잡으리라는 전망이 지배적일 지경이었다. 물론 이는 단지 도시인구만 계산한 것이지, 그 번영은 런던은커녕 한성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 규모만큼은 이미 세계에서 한 손에 꼽힐 지경이었지만 말이다.

"사방을 둘러봐도 온통 쇳덩어리뿐이니 원."

김가진은 일부러 창밖으로 보이는 도시에 흠을 잡았다. 그가 지적한 대로, 정주에는 온통 열차 차량과 철로로 가득했다. 거미줄 같다는 표현조차 이 빼곡하게 늘어선 철로를 표현하기에는 부족한 감이 있었다. 당장 중앙역사에만 승차장이 15개에 철로가 36개 선이었으나 그조차 부족해서 새로이 2개의 역을 더 세우고 있는 지경이었다.

이렇다 보니 이 무렵 정주에서는 건물을 세울 때 열차가 지나갈 공간을 먼저 따로 확보하고서 건물을 짓는 독특한 건축양식이 발달하고 있었다. 도시가 온통 철로로 뒤덮여 있어서 건물을 세울 공간조차 부족한 탓이었다. 이 탓에 정주의 모든 건물은 기본적으로 3층에서 5층 이상 쌓아 올리고는 했고, 더욱 낮은 층에는 가난한 이들이 더욱 높은 층에는 다소 사정이 나은 이들이 주거했다.

낮은 층일수록 열차가 오가는 소리에 시달리게 되니 당연한 일이었다. 김가진이 보기에는 도저히 사람 살 곳이라고 생각되지를 않았으나, 그래도 좋다고 모여드는 이들이 나날이 늘어가고 있으니 기가 찼다.

모두 설령 매일 같이 기차 소리에 시달리는 삶이라도, 하여간에 정주에서 살 수 있다는 것은 곧 대한제국의 시민권을 얻었다는 징표와도 같았던 까닭이다.

"하여간에 멋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구먼."

김가진은 정주 시민들을 비웃었다. 참으로 투박한 도시였다. 최대한 도시미관을 고려하며 개발된 한성에 비하면, 어떻게든 빠르고 효율적으로 짓기 위해서 머리를 쥐어짠 기색이 역력한 정주는 눈에 차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그가 정주에 찾아온 이유는 간단한 것이었다.

"이제 와서 다 늙은 노인네 하나가 무슨 대수라고."

서태후가, 이 도시에 붙잡혀 있었다.

< 강철의 도시 > 끝

ⓒ 리첼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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