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폭군 고종대왕 일대기-369화 (369/530)

< 우화등선 >

그리고 자신을 데리러 오기 위하여 김가진이 왔음을, 서태후 또한 알고 있었다. 그녀를 이곳에 가둔 이들이 미리 일러주었기 때문이었다. 하여, 그녀는 이곳- 정주의 자랑이라 불리는, 마천루 천궁(天宮)에서 도시를 내려보고 있었다.

그 높이만 해도 136m에 달하는 이 거대한 마천루의 가장 특징적인 사실은 이 거대한 건축물이 통째로 철근 콘크리트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었다. 얼마 전 프랑스에서 선보인 에펠탑이 300m를 기록하며 세계 최고와는 격차가 더욱 벌어졌으나, 에펠탑은 이름 그대로 탑일 뿐 사람이 안에 들어가서 생활할 수 있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 천궁은 층 하나하나가 사람이 살 수 있는 거주공간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이 천궁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층 하나를 통째로 대실 하여 주거하고는 하였다. 더욱 높은 층수에서 살수록 부유하고 고귀한 자임을 뜻했고, 그런 자들이 머무는 만큼 실내는 언제나 최고급 자재들만을 사용하여 화려해 치장되었다.

고작 해봐야 5층, 9층 정도만으로도 세상을 다 가진 듯하다며 지레 만족하고는 했던 이들에게 높이만 136m의 40층에 달하는 층수는 그 자체로서 문화적 충격을 불러일으켰다. 혹 도시에 안개라도 끼는 날에는 지상에서는 아무리 위를 올려다보아도 그 정상이 보이지를 않는 듯하였다. 그야말로 구름 위에 선 듯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붙은 이름이 천궁. 글자 그대로, 하늘 위의 궁전이라는 뜻이었다. 카네기가 이형의 허락을 받아 정주를 개발할 적에 자신의 모든 인맥과 재력을 동원하여 가장 먼저 짓기 시작한 이 천궁은, 이 무렵에 와서는 카네기 그룹의 기술력과 대한제국의 힘을 중원에 과시하는 첨탑으로서 군림하고 있었다.

특히 글도 제대로 익히지 못한 서민들이 보기에는 마치 그 꼭대기가 신선들이 산다는 무릉도원으로 이어져 있을 것만 같은 착각을 주어, 최하층이라고 해도 단지 천궁에 입주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경외와 존경을 한몸에 받고는 하였다.

"내 일찍이 온다고 듣기야 했다만."

그리고 서태후는 그 중 최상층에 머물고 있었다. 더욱 정확하게는, 격리나 수용이라고 하는 게 정확하겠지만 말이다. 유이하게 세상과 통하는 승강기나 계단을 봉쇄당한 마당에, 여기서 그녀가 도망칠 방법은 어디에도 없었다. 갑자기 날개가 돋아나 훨훨 날기라도 하지 않는 이상에야 말이다. 그나마 어디로도 갈 수 없는 것을 제하자면 먹고 사는 것에 딱히 눈치를 주지는 않으니 다행이었다.

사실, 이 무렵 대한제국에 구태여 서태후를 험하게 다룰 필요가 없던 것이 사실이었다. 애초에, 그녀는 이미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처지였다. 그녀의 사랑스러운 황제는 티베트에서 망명 생활 중 명을 달리하였고, 그럼 황제를 잃은 그녀는 이제 아무것도 아니었다. 단지 노쇠하고 무력한 늙은이에 불과했다.

그런 와중 이제 유일하게 그녀를 후원하던 영국마저 한국에 혼수로서 그녀를 내다 팔고 말았으니, 꾀를 짜낸다고 해봐야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꾀를 짜내는 것도, 힘이 있어야 쓸모가 있는 것을. 결국, 천궁에 유배된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그저 아득하기만 한 지상을 내려다보며 하루하루 시간을 허비하는 것뿐이었다.

"기어이 이날이 오고야 말았구나."

서태후는 중앙역에 들어서는 무수한 열차 중에서도, 대한제국에서 운영하는 특수한 열차를 한 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서태후는 비록 열차에 대한 지식은 조금도 없었음에도 말이다.

우선 차량의 도색부터가 달랐다. 어두운 남색을 기본바탕으로 하여, 멀리서는 잘 보이지 않았으나 차량마다 금으로 그 테두리를 둘러 좌우로 전주 이씨 왕가의 상징인 자두 꽃 문장을 새겼고 차량 내부에는 붉고 푸른 태극을 그 날카로운 발톱으로 움켜쥐고 있는 삼족오가 앞뒤로 새겨져 있었다.

무엇보다 가장 특징적인 부분은 선두에 선 기관차였다. 정면이 일자로 평면을 그리고 있는 다른 열차들과 다르게, 정면이 완곡한 대각선을 그리며 불룩 튀어나온 모양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서태후는 그 모습을 보고서 화살촉이나 새의 부리를 연상하였다. 조금이라도 더 빠르게 달리려고 일부러 저런 모양을 한 것이라는 것도 쉽게 유추할 수 있었다.

그것이 얼마나 쓸모가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말이다. 서태후는 가능하다면 저 특징적인 모습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헛수고이기를 간절히 바랐다. 사실, 그녀로서는 저 열차를 보는 것만으로 피가 거꾸로 흐르는 듯하였으니까 말이다.

"끔찍한 시대로구나. 저 천박한 조선 놈들이 기어이는 천하를 집어삼키고 말았으니, 이를 어찌하면 좋을꼬? 모두 태상노군께서 무심하신 탓이로다."

서태후는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제아무리 이형이라도 그녀가 청을 엉망으로 만들지 않았더라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테지만, 그녀는 자신의 책임은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애써 무시하고 있다기보다는, 처음부터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정확했다.

그녀는 여기까지 오고 난 다음에도 단지 운이 따르지 않았을 뿐, 자신이 잘못한 것은 무엇 하나 없다고 굳게 믿었다. 모든 건 자신에게 충분한 총애를 내려주지 않은 하늘이 나쁜 것이고, 자신은 청나라와 천하를 위해서 온 힘을 다했다고 말이다.

혁흔이 들었다면 당장에 기함할 이야기였으나,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녀는 끝없이 조선을 탓했다.

"그간 우리 만인들이 조선을 그토록 특히 대하였거늘! 저 은혜도 모르는 조선 오랑캐들이 한인과 결탁하여 우리 만인들을 노예로 삼고자 하고 있으니, 내 죽어서 어찌 태조를 뵐까? 아, 시황제 자영이여. 어찌 조선을 택하였는가? 어찌 우리 만인들을 이리도 핍박하느냐? 너의 제국은 이미 수천 년도 전에 멸하고 말았거늘, 어찌 너 같은 망령 따위가 산 사람을 저주할 수 있느냐!"

시황제가 들었다면 무덤에서 뛰쳐나와 멱살을 붙잡을 소리였다. 애초에 조선이 한인들과 결탁하여 만인들을 노예로 삼는다는 인식 자체가 그녀의 삐뚤어진 사고방식을 절절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유배 생활 중 이형이 시황제가 꿈에서 나왔다는 소리를 듣게된 그녀는, 이형이 오늘날의 위업을 이룩한 건 시황제의 보호 아래 한인들과 결탁한 덕분이라고 여겼다.

특별히 조선이 천명을 이어받은 것도, 이형이 대단한 것도 아니라 죽은 귀신이 세상을 쥐락펴락하고 있다고 여긴 것이다. 그녀가 괴력난신에 단단히 빠져있다는 증거였다. 안 그래도 괴력난신에 깊이 빠져있던 것이, 유배 생활을 보내며 더욱 악화한 까닭이었다. 서태후는 자기 자신을 도술을 익힌 신선이라 여기며 시황제의 망령과 맞서 싸울 수 있는 유일한 만주인들의 마지막 희망이라 여기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이제 꼼짝없이 조선까지 압송될 위기에 처했으니, 만주에는 더는 희망이 없다. 그렇게 믿으며 서태후는 절규하였다. 누구도, 이미 죽은 이홍장조차 코웃음도 치지 않을 이야기였지만 말이다.

적어도, 이 미친 마녀는 그렇게 굳게 믿었다.

"소문은 들었습니다만, 그 이상이셨군요."

그때였다. 서태후는 뒤에서 갑작스럽게 들려온 사내의 목소리에 기겁하여 뒤돌아섰다. 있어서는 안 되는 인물이었다. 이곳 최상층에 있어도 괜찮은 것은 오로지 서태후 한 사람뿐이었고, 이따금 그녀가 필요에 따라 호출하고는 하는 사용인들 정도였다. 그런 마당에 생전 듣지도 못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오니 그럴 수밖에는 없었다.

그곳에는 정장을 차려입은 한 무리의 사내들이 있었다. 모두가 그녀가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내들뿐이었다. 한순간 그녀를 구하러 온 자들이 아닐까 하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은 서태후였으나, 이내 그러한 기대는 한순간에 무너졌다.

그들 모두가, 가슴팍에 태극 문양의 배지를 달고 있었던 것이다.

"도대체 무슨 도술을 쓴 게냐. 이제 막 열차가 역에 정차한 참이거늘, 네놈들이 어찌 벌써부터···!"

"도술? 제가 배움이 짧아서인지 마마께서 대관절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는 도통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건 말씀드릴 수 있겠군요. 각하께서는 여기 오지 않으실 겁니다."

"···뭐라?"

서태후는 눈을 껌뻑거렸다. 그건 이야기와 달랐다. 조선의 고관이 직접 데리러 오는 것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사내들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각하께서 이 정주까지 행차하신 것은 물론 당신을 모시러 온 것이지만, 살아서인지 죽어서인지까지야 아무도 신경 쓰지 않겠지요. 안 그렇습니까?"

"···!"

서태후는 눈을 부릅떴다. 그녀는 순간 이것이 어떻게 된 일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죽일 것이었다면, 무엇 하러 지금 죽인다는 말인가? 하필이면 그녀를 데리러 한국에서 사람이 온 지금 죽여봐야 한국에서 처리했다는 의심을 더하는 것밖에는 더 되던가?

아니면 반대로, 의심을 사는 것 자체가 목적이거나. 서태후는 목덜미를 타고서 식은땀이 흐르는 걸 느꼈다. 이건 그녀의 예상과는 다른 전개였다. 그녀는 기껏해야 이대로 자금성에 유폐되어 삶을 마치는 걸 생각했지, 죽을 거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이미 죄를 묻기에 그녀는 너무 늙어 있었고, 일부러 죽이기에는 어떠한 힘도 가지지 못했다.

그러니까 일부러 수고를 들여서 그녀를 죽이려 한다면 원한을 지닌 이들뿐일 텐데, 그런 자들이 대한제국에 있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 그녀는 치를 떨면서 고함을 질렀다.

"게 누구 없느냐! 여봐라! 이 추악한 역도들을 어서 내쫓거라! 지금 당장-."

"거 조용히 계시지요. 그편이 편하게 끝날 텐데요."

그러나 그조차 여의치 않았다. 사내들은 곧장 서태후에게 달려들어 그 입을 틀어막고서 그 몸을 구속했다. 이미 노쇠하여 죽을 날만 기다리던 그녀에게 거한이 3명이 달려들었으니 서태후는 그야말로 옴짝달싹도 할 수 없었다.

서태후는 사내의 손을 있는 힘껏 물어뜯었다. 최후의 발악이었다. 격통에 사내가 손을 떼자, 서태후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네놈들···! 보아 하건대 틀림없이 조선왕이 보낸 자객이렷다! 그래, 이 늙은 몸을 고신하기가 두려워 이런 추악한 수를 썼더냐? 참으로 가당치도 않구나! 그따위 옹졸한 그릇으로 어찌 천하를 품겠다 할 수 있겠느냐!"

"틀렸소."

사내는 그렇게만 답하고서는 서태후의 입안에 손수건을 쑤셔 넣었다. 숨이 막혀 컥컥하고 발버둥 쳐도, 사내들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그들은 서태후를 붙잡은 다음, 그런데도 포기하지 않고서 발버둥 치는 그녀를 어딘가로 질질 끌고 갔다.

창가를 향해서 말이다.

"으읍! 읍! 으으읍!"

뒤늦게 사내들의 속셈을 눈치채고서 어떻게든 그들을 쳐내려 한 서태후였으나, 소용없는 발악이었다. 족히 6척은 될 거한 셋이서 노인 한 사람을 끌고 있으니 사치스럽기까지 할 지경이었다.

사내 한 명이 그 무쇠 같은 팔뚝으로 서태후의 팔을 고정한 채 창문을 활짝 열었다. 나머지 둘은 각각 양팔로 서태후의 허리와 다리를 붙잡았다. 하나, 둘. 마치 종이라도 치려는 것처럼 세 사람은 서태후의 비루한 육신을 앞뒤로 흔들었다.

그러고서, 있는 힘껏 몸을 뒤로 빼더니.

"극락왕생하십시오."

작별인사와 함께, 있는 힘껏 서태후의 비루한 육신을 창밖을 향해 냅다 집어 던졌다.

"···!"

어떻게든 팔을 내뻗어 뭐라도 붙잡으려 했지만, 양손은 허무하게 허공을 움켜쥘 뿐이었다.

하늘이 멀어져가고 있었다. 그토록 멀었던 지상이, 바로 눈앞까지 다가오고 있었다.

"꺄아악-!"

서태후는 소름 끼치는 비명을 내질렀다. 그 소리에 반응하여, 어느 이름 모를 행인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정주에서는 보기 드문, 변발에 치파오를 입은 전형적인 만주인이었다.

서태후가 삶의 마지막 순간 본 것은, 추락하는 그녀를 비웃는 어느 이름 모를 만주인의 미소였다.

* * *

김가진이 천궁 최상층에 다다른 것은 두 시진 뒤였다.

"모시러 왔습니다. 자, 함께 북경으로 가시지요. 전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미 끝났습니다, 각하."

"알고 있네. 그래도 예는 갖춰야 하지 않겠나. 그 마녀를 데리러 온 것인데."

김가진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서태후를 창밖으로 집어 던진 사내들은 모두 내무부에 속한 경찰들이었다. 당연히, 양지에서 근무하는 이들이 아니라 음지에서 일하는 부류의 경찰들이었지만 말이다.

이들의 주된 업무는 아주 곳곳에 있는 대한제국의 통치에 방해되거나 체제에 반대하는 이들을 처리하는 것이었다. 암살은 그들의 주된 임무가 아니었고, 미행, 수사, 고문, 감금, 회유 등이 오히려 이들의 주된 임무라고 할 수 있었다. 암살은 국정원이나 국가헌병대의 주된 역할이었지, 이들은 어디까지나 경찰이었던 까닭이다.

그런 의미에서 서태후는 이들이 처리한 가장 걸물이면서도, 동시에 예외적인 인물이기도 했다. 사실, 그녀는 눈에 거슬릴 뿐이지 일부러 이들이 나서서 처리해야 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일부러 이들이 나서야 했던 이유는 간단했다.

"청부살인은 원래 이쪽의 업무가 아닌데. 전하께서도 짓궂으시지."

김가진은 안경을 고쳐 쓰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번 암살의 의뢰자는 다름 아닌 청의 국왕 혁흔이었다. 이제 와 함부로 고신하기에는 너무 늙어버렸고, 형을 집행하는 것도 다 늙은 노인에게는 너무 가혹하다는 여론이 나올 수 있으니 포로 신세가 된 것을 수치스럽게 여겨 자결한 것으로 꾸며달라는 게 그의 의뢰였다.

이는 김가진에게도 퍽 구미가 당기는 요청이었다. 우선 아직 각지에 숨어있는 역도들에게 언제건 이와 같은 꼴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할 수 있을뿐더러, 애초에 다 늙어서 죽기 직전이라고 하나 서태후 같은 인물을 죽을 때까지 궁에 가두어 그녀를 먹여 살려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김가진은 내키지를 않았다.

그게 다 국민의 혈세이며 그녀를 먹일 돈으로 하다못해 군마라도 몇 마리를 더 먹여 살릴 수 있거늘, 하등 쓸모도 없고 누구 하나 추억하지도 않는 인물을 무엇 하러 살려둔다는 말인가? 죽일 수 있을 때 죽여버리는 편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 그와 내무부의 판단이었다.

"일은 어떻게 다 끝나셨습니까?"

"그야 물론이지. 그리 내키지는 않네만, 황상께서 초원의 카간이라고 하시지 않나. 그래도 선대 카간의 시신이라고 특히 신경 써서 열차에 옮기고 온 참이네. 그건 그렇고, 그 마녀의 시신은 어디 있나?"

"지금 아래에서 한창 수습하고 있습니다. 오시는 길에 보지 않으셨습니까?"

"그야 봤네. 하지만 여기서 보고 싶어서 하는 말이야. 이곳에서 내려다보면 모든 게 개미같이 보이지 않던가."

죽은 태후의 시신을 개미처럼 내려다보고 싶다는 폭언이었다. 그러나 누구 하나 이의를 제기하는 인물들은 없었다. 김가진이 내무부를 장악한 이래, 내무부는 그와 같은 인물들이 모이는 곳이 되었다. 다른 어느 무엇보다도 대한과 국민을 위에 두고, 대한의 울타리 안에 들지 못한 다른 모든 것을 낮추어보고 경계하는 곳이 바로 이 무렵의 내무부였던 것이다.

창가에 기대어 서서, 그 아래를 내려다보던 김가진은 입꼬리를 뒤틀었다.

과연 그가 바라던 대로, 지상에서는 그토록 거창해 보이던 서태후의 마지막 가는 길이 이리도 하찮게 보이니 그보다 기쁠 수가 없었다.

"참, 공식적인 사인은 뭐라 하시겠습니까?"

문득 생각났다는 듯, 사내가 김가진에게 물었다. 서태후에게 손바닥을 물어뜯긴 사내였다. 그 탓인지, 이렇다 할 부상이 없는 사내 중 유일하게 손에 검은 가죽 장갑을 끼고 있었다.

김가진은 제자리에서 뒤돌아서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답했다.

"우화등선하셨다고 하게."

사내들은 조용히 고개를 숙여 명을 받들었다.

< 우화등선 > 끝

ⓒ 리첼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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