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폭군 고종대왕 일대기-387화 (387/530)

< 폭주 >

이튿날, 한양일보에 대서특필된 【워스파이트 호 사건】은 한양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영길리, 제 버릇 못 고치다! 태평양을 공포에 몰아넣은 추악한 해적 행위!」"

"「원통하도다! 불란서 태평양 함대 전멸! 해적의 단죄는 기어이 동해 용왕의 손으로···.」"

"「동해 용왕께서 천벌을 내리셨는가? 태풍에 휩쓸린 영길리 해적함대!」"

"「찾아뵙겠다던 귀빈은 이제는 돌아올 수 없는 먼 길로···. 미주 대륙이 비통함에 눈물 흘리다!」"

"「해적들에게 허무하게 뚫려버린 태평양 방위선! 이대로 괜찮은가?」"

"「위기에 빠진 아주! 영길리의 오만이 또다시 동방에 피구름을 불러오다!」"

하나같이 자극적인 기사들이었다. 한양일보에서는 그날 일간지를 워스파이트 호 사건과 그에 관한 촌평으로 통째로 가득 채웠다. 다른 그 어떤 소식들보다 이 워스파이트 호 사건이 가장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쉬울 거라고 여긴 것이다. 그리고 그 판단은 옳았다.

무엇보다 그 기사들 하나하나가 강렬했다. 직접 해적 행위임을 명시하면서 과거 아편전쟁을 위시한 영국의 악행을 떠올리게 하였고, 프랑스 군함이 하와이에서 발견되기 전까지는 영국이 태평양을 들락거린다는 기미조차 눈치채지 못했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위기의식을 자극했다. 한국이 눈부신 성장을 이룩한 지금도 여전히 서구 열강보다는 부족하다는 무의식적인 열등의식을 긁어준 건 덤이다.

그뿐일까. 프랑스 함대가 미국이 허락한 손님이라는 걸 강조하고 소식을 접한 미국 사회가 비통함에 사로잡혔다고 서술하면서 프랑스 함대가 태평양에 온 것을 꼭 미국의 요청을 받아 영국 해적함대와 교전하기 위함인 것처럼 서술했다. 한국 내의 친불감정에 친미감정을 엮어서 두 배로 격앙되게 설계한 것이다.

이렇게 불을 질러놓고서는, 마지막 장은 유럽에서 한창 일어나고 있는 세계대전이 얼마나 잔혹하고 비참하며 영국이 이번 사건으로 태평양까지 그 전화를 퍼뜨리려 하고 있다고 서술했다. 영국이 고의로 전쟁을 확대하려 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이러자 논조가 묘해졌다. 일단 분노를 부추기고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직접 전쟁을 주장하는 것도 아니었다. 불쌍하고 믿음직스러운 프랑스, 추악한 악당 영국, 피해자 미국과 한국이라는 논조는 일관되었으나, 어디까지나 분노와 안타까운 감정을 부추기기만 할 뿐이었다.

이러이러하니 이러이러하자-가 아니라, 이러이러하니 너무나 슬프고 화가 난다-로 끝나는 기사들이었다.

"과연 경덕(敬德) 선생이십니다! 도성이 온통 선생께서 찾아오신 특종 이야기뿐입니다. 여전히 탁월하신 재주십니다, 선생! 특종 만드시는 데에는 가히 이 조선 땅에 비할 사람이 없으시군요!"

"하하, 과찬이십니다. 모두 운이 좋았던 덕분이고, 좋은 분들을 만날 수 있었던 덕분이지요. 저는 단지 그 덕을 보고 있을 뿐입니다. 굳이 말하자면, 그냥 운이 좋은 한량이지요."

"하하, 겸손하시기까지! 이거야 원, 벼는 익을수록 숙인다더니 선생께서 딱 그러시군요. 그런데··· 조금 이해가 가지를 않습니다. 어째서 참전을 주장하지 않으셨습니까? 기왕에 불을 지른 김에, 남김없이 태워버리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에헤이, 그런 무서운 말씀 마십시오. 그럼 그 뒷감당은 누가 한단 말입니까? 그리고 원래 이런 건 처음 말하는 놈이 지는 겁니다. 전쟁하자고 글을 쓰면 조정에서 백성을 선동한다고 칼같이 철퇴를 휘두를 텐데, 전 옥에 갇히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습니다. 최선은 제가 직접 그 말을 꺼내는 게 아니라, 독자들이 자발적으로 그 말을 꺼내도록 하는 거지요.

그래야지만 혹여나 후일 조정에 죄를 추궁당하더라도 빠져나갈 구멍이 생기잖습니까?"

"오오, 과연. 이거 제가 생각이 짧았군요. 또 하나 배웠습니다, 선생! 하하하!"

그리고 이러한 모호한 논조는 이완용이 의도한 것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는 이번 일의 책임을 지고 싶어 하지 않았다. 불씨를 제공한 건 사실이지만, 그 불씨가 화제가 된 책임은 제가 아니라 잡아떼는 것이 그가 구상한 최선의 시나리오였다.

이러한 이완용의 생각은 한양일보의 행보에도 영향을 끼쳐서, 이후로도 한양일보는 계속해서 새로운 불씨를 제공할 뿐 직접 전쟁에 참전하자고 주장하거나 프랑스를 도와야 한다거나 하는 식의 논조는 조금도 내지 않았다.

모두 혹세무민이라는 추궁을 받지 않기 위한 발버둥이었다.

"다, 당했다! 한발 늦었어! 빌어먹을, 도대체 이놈은 어떻게 이렇게 매번 빠른 거지? 미주에 본사를 두고 있는 우리도 오늘에서야 알게 된 정보였는데···!"

"한양일보면 그 민겸호 배불뚝이 놈이 사장 노릇 하고 있다는 여흥 민씨 쪽 언론사잖습니까. 그 치들 설치고 다니는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보나 마나 조정에서 누가 찔러줬겠지요, 뭘."

"제기랄. 하여간에 이래서 도성 토박이라는 놈들은···! 어쩔 수 없다. 저놈들이 먼저 선수를 쳐버린 이상, 우리가 이목을 빼앗아 오려면 방법은 한 가지뿐이지. 일단 닥치는 대로 질러! 뒷감당 생각은 말고, 일단 무조건 센 논조로 간다!"

"어··· 그거 괜찮겠습니까? 일단 조정에서 숨기려 한 기밀정보잖습니까. 조정에서 어디까지 파악하고 있는지도 모르는데 사실확인도 안 하고 무턱대고 센 어조로 가다가는 혹세무민 소리 듣지 않겠습니까."

"하하, 너 웃긴다. 그게 왜 우리 책임이더냐? 먼저 사고 터뜨린 여흥 민씨 녀석들 책임이지. 그리고 어차피 관련자라는 놈들 다 죽거나 포로로 잡혔다며. 죽은 놈은 원래 말이 없는 법이고, 포로로 잡힌 놈이 하는 말이 미덥기나 하겠냐? 책임은 내가 진다. 일단 밀어붙여!"

"아오, 진짜! 나중에 왜 안 말렸느냐고 후회하셔도 전 모릅니다!"

한양일보의 애매한 논조는, 한양일보의 경쟁사들로 하여금 기회라는 오판을 하게 만들었다. 아니, 사실 오판을 하지 않았더라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을 터였다. 이미 최초보도를 빼앗긴 이상 그들이 주목을 받으려면 더욱 자세한 정보를 찾아오거나 아니면 더욱 강렬한 기사로 이목을 사로잡는 수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 중에서 더 쉽고 빠른 방법은 후자였음은 구태여 따로 말할 것도 없는 사실이리라.

결국, 이날을 기점으로 한국 언론계는 글자 그대로 폭주하기 시작했다.

"「제 앞마당 하나 지키지 못하는 열강? 오만한 영길리, 안일했던 대한!」"

"「대한을 대신하여 태평양을 지키려 했던 불란서 장병을 위한 추모! 명동성당 성가대의 구슬픈 진혼곡!」"

"「태평양이 분노하다! 분노로 하나 된 태평양 열국!」"

"「깨어나라, 대한의 건아들이여! 너에게는 평화를 간절히 바라는 세계인들의 애탄 부름이 들리지 않느뇨!」"

고의로 한국인들 심리 기저의 자격지심을 긁어주는 건 기본이었고, 프랑스를 향한 부채의식과 안타까움을 자극하고 이러한 감정을 느끼고 있는 것이 한국 혼자만이 아니라는 걸 강조해 분노를 표출하는 데에 더욱 거리낌이 없게 하였으며 마지막에 가서는 참전을 종용하며 청년들을 선동했다.

이렇게 언론들이 일제히 십자포화를 쏟아내기 시작하니, 여론이 덩달아 격앙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였고 누구나 예상할 수 있었던 인과관계였다.

처음에는 한양일보의 단독보도에 거짓 기사는 아닐까에 대해 의심하던 이들도, 이 무렵에 와서는 올바른 판단력을 잃었다. 우선 시대적 한계로 정보를 얻는 방법이 대단히 제한적이었을뿐더러, 그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대표적인 방법이었던 신문들이 온통 【워스파이트 호 사건】으로 뒤덮였으니 그야 자연히 머릿속이 워스파이트로 가득 채워진 것도 어쩔 수 없었다.

나날이 격앙되기 시작하던 여론은 어느 순간 대폭발 해버렸고, 곧 전쟁이 일어나면 가장 먼저 죽어갈 청년들이 제 입으로 참전을 부르짖기 시작했다.

"저, 저 영길리 놈들이 기어이···! 어찌 저리도 비겁할 수 있는가! 어찌 저리도 추악할 수 있다는 말인가! 아주가 그때의 아주가 아니거늘, 영길리는 아편전쟁 이후로 바뀐 것이 없구나!"

"아! 원통하구나. 나는 어찌 그날 남태평양에 없었단 말인가? 함께 나란히 어깨를 맞대고서 싸우지 못하고서 또다시 은혜만 입고 말았으니, 참으로 낯부끄럽구나. 이래서야 내 어디를 가서 이 대한의 선비라 자랑스레 말할 수 있을꼬?"

"아직 늦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우리 대한은 불란서를 도와야 한다! 그것만이 불란서의 은혜에 보답하고 영길리의 악업을 징벌하는 길일 것이다!"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식자층이었다. 한때 소위 식자층 중 8할이 넘게 친불파였던 개화 초기에 비하면 사정이 나아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반절 이상을 차지하던 친불파 신지식인들은 일제히 분노와 안타까움을 토하며 참전을 요구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조정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애초에 태자인 이원철부터가 모어인 조선말과 만주어 다음으로 프랑스어를 익히던 나라가 한국이었다. 김홍집을 위시한 초창기 친영파들이 강남 대기근을 전후로 힘을 잃은 시점에서 근무경력이 길고, 지위가 높을수록 프랑스 유학파가 대거 포진되어있는 건 피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이들은 프랑스가 한국과 미국을 대신하여 태평양을 지켜주려 했다는 보도를 일말의 의심 없이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였다. 적어도 그들이 생각하기에 프랑스는 충분히 극동의 우방을 위하여 눈부신 희생정신을 발휘할만한 위대한 나라였던 것이다.

거기에 공화운동 이후로 세가 크게 위축되었던 것에 대한 보상심리도 있었다. 누가 봐도 프랑스가 다른 모든 나라를 명분적으로 압도하고 있는 이번 사건을 기회 삼아 목소리를 높여 그때 빼앗겼던 지분을 되찾고자 한 것이다.

"태평양 해적···? 그런 게 있었나? 이상하군. 그런 사건이 정말 있었다면 우리가 소문 정도는 들어봤어야 정상인데···. 우리도 모르는 일을 기자들이 뭔 수로 안다는 말인가?"

"하지만 사실이 그렇지 않나. 진짜로 민간상선들까지 잡고 다녔는지는 몰라도, 영길리에서 해적 행위를 시도했던 건 사실이지 않으냐는 말이네. 그럼 충분히 의심 정도는 해볼 만하지."

"의심할 필요가 뭐가 있나? 그놈들일세! 그놈들이 내 본 뉴이 호를··· 아이고!"

"흠, 그런가? 내가 알기에는 분명 그때 자네가 비용을 절감한다면서 석탄을 조금 덜 실었던 거로 기억하는데···?"

"어허, 씁! 이 사람이 어디서 근거도 없는 중상모략을 하는가!"

유일하게 이들을 견제해줄 수 있었던 재계의 친미파도 이번에는 친불파에게 호의적이었다. 하나같이 태평양 무역의 큰손이었던 이들 친미파로서는 영국의 해적 행위에 민간상선들이 피해를 봤다는 보도가 거짓이거나 과장되었다는 걸 알았지만, 딱히 이를 적극적으로 구명하거나 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영국의 해적 행위가 언제부터 시작되어 이번에 끝난 지 밝혀지지 않았으니 만일 영국의 민간상선에 대한 해적 행위가 사실이라면 지난 반년 동안 남태평양에서 사라진 민간상선들의 배상을 모조리 영국에 청구할 수 있었다. 굳이 목소리를 키울 필요 없이, 그냥 적당히 입을 다물기만 하면 말이다.

손익계산에 밝은 상인들이 공돈을 얻을 기회를 놓칠 리가 없던 셈이다. 실제 손실 원인은 알 필요 없었다. 태풍과 같은 풍랑에 의해서 가라앉았건, 아니면 연료나 식량이 바닥나서 목적지까지 다다르지 못했건 말이다. 중요한 건 지난 반년 동안 남태평양에서 가라앉은 상선들이 분명히 존재했다는 사실이었고, 영국 함대가 언제부터 남태평양에 있었는지 증명해줄 물증도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친미파 기업인들은 기꺼이 자신들이 손해를 본 이유를 자신의 실수나 불운 때문이 아니라 영국의 책임으로 떠넘겼다. 이러자 여론은 더욱 격앙되었다. 다름 아닌 선주들이 직접 남태평양에서 한국 국적의 상선들이 영국의 해적 행위로 침몰당했다고 공인해버린 것이다.

"미치광이 해적 놈들! 어떻게, 어떻게 그런 짓을! 우리 찬형이 아버지가 도대체 뭘 그리도 잘못했다고, 도대체 왜!"

"아이고, 아이고! 원통해서 어쩌나, 그래! 발이 떨어지지를 않아서 저승에는 어찌 가셨을꼬? 그 치들에게 당했다고, 가야 한다고 하나뿐인 딸아이에게 잘 있으라는 말도 한마디 못하시고 그냥 가셔야 했으니 원통해서 낙하천(奈河川)은 어찌 건너셨을꼬!"

"이 개만도 못한, 금수만도 못한 썩을 자식들아! 으응? 그래, 그 착한 아이가 너희에게 뭘 그리도 잘못했다고 그랬냐? 정 탐이 나거든 배랑 물건만 빼앗으면 그만이지, 애먼 사람은 왜 또 데려가야만 했느냐고! 아이고 내 새끼! 불쌍한 내 새끼. 어찌 부모보다 먼저 가버렸느냐, 엉? 아이고!"

"아니요, 아니요! 못 들은 거로 하겠소. 못 들은 거로 하리다! 내 새끼, 이 가슴에 파묻고 토끼 같은 손주랑 살아보기로 한 지가 이제 고작 보름이오. 그 핏덩이를 묻은 게 이제 고작 보름이란 말이오! 어찌, 어찌 그 묫자리를 또 파헤칠 수가···."

이 소식은 그간 운 나쁘게 풍랑을 만나 변고를 당했다고만 믿고 있던 유가족들에게는 그야말로 난데없는 날벼락이었다. 특히나 이러한 실종자들은 대부분 풍랑 등으로 결론 나고서 주검도 없이 장사를 치룬지 수주에서 수개월은 지난 다음이었던지라 유가족들의 충격은 더했다.

하필이면 겨우 이별의 충격이 가시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려는 즈음에 뒤늦게 자신의 소중한 이가 운 나쁘게 사고를 당한 게 아니라 다른 누군가의 손에 살해당한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으니 그야 눈이 돌아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혹자는 슬퍼서 울부짖었고, 혹자는 분노에 피눈물을 쏟았고, 혹자는 정신이 나가 미치광이가 되었다. 그리고 유가족들의 절절한 소식은 특종에 눈이 먼 기자들에 의해 확대되고 또한 부각 되었고, 그럴 때마다 여론은 더욱 격앙되어갔다.

"영길리에게 아주 만민의 철권 맛을 보여주자! 우리 대한을 무시한 결말이 어떻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자!"

"가자, 남만으로! 우리의 아주 형제들 곁으로 가자! 구주의 식민통치에 신음하는 우리 아주 형제들의 분노와 고통을 함께 나누러 가자!"

"이 한 몸 바쳐서 아주 해방에 이바지할 수 있다면야 내 생에 더 바랄 것은 없을 일지라! 가자, 전장으로! 함께 나아가세, 우리 형제들이여!"

"태평양은 아주의 것이다! 그리고 아주는 우리 대한의 것이다! 영길리가 이런 당연한 이치 조자 존중하지 못한다면, 마땅히 그 대가를 치러야만 할 것이다!"

모험주의적이고, 국수주의적이며, 우국충정으로 똘똘 뭉친 목소리가 일제히 터져 나온 것은 필연적인 순서였다. 이들 대부분은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고, 가진 것이 없는 이들이었다. 전쟁을 자신의 곤궁한 현실에서 벗어나게 해줄 출세의 기회로 여긴 것이다.

실제로 이들의 이러한 기대는 마냥 헛된 것만은 아니었다. 재위 초기 연달아 벌어졌던 전쟁으로 전공을 세워 신세를 고친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이 무렵 한국인들이 기억하는 전쟁이란 희생자는 극히 운 나쁜 이들에게만 한정되고, 과정이야 어쨌건 마지막에는 언제나 통쾌하게 승리하며, 승리할 때마다 그에 상응하는 출세가 보장되는 기회였던 것이다.

마침 이형이 아시아의 피식민국가들에 독립을 돌려주겠다 발언했던 것은 이들의 언행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다름 아닌 황제가 아주 열국은 언젠가 모두 독립해야 할 것이라고 발언한 마당에 오히려 이에 반대하여 신중론을 펼치는 쪽이 역적이고 또 매국노가 아니냐는 게 이들의 인식이었다.

세계대전의 광기가 한국을 집어삼키는 순간이었다.

< 폭주 > 끝

ⓒ 리첼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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