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시아에서 >
그리고, 온 세상이 영국과 프랑스라는 양대 대국의 결전에 집중하고 있을 무렵.
"마! 호찬이! 당장 거서 뛰쳐나오그라!"
퍼엉-.
우랄산맥 서쪽에서는 대서양의 관심 바깥에서 벗어난 치열한 전쟁이 한창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우랄산맥 서쪽으로 파병된 몇 안 되는 전투병력이었던 제15보병사단 백곰 수색대대에도 마찬가지였다. 태진 소위의 비명이 무색하게도, 한 번의 폭발은 호찬이라 불리던 한 생명을 고스란히 앗아갔다.
비명조차 들리지 않았다. 그저 눈이 한 움큼 튀어 오르면서 시야가 흐려졌고, 시야 너머로 무언가 건더기 같은 것이 튕겨 나가더니 눈구름이 걷히고 나니 피 웅덩이만 남아 있었다.
주인을 잃고서 나자빠진 오른쪽 다리 한 짝만이 그곳에 본디 살아있던 사람이 있었다는 걸 보여주고 있었다.
"저, 저 씹새끼들! 내 사지를 찢어 먹을 기다! 호찬아, 호찬아! 하이고, 이 망할 놈아! 아직 씹질도 못해보고서 그리 갈 수 있느냐, 이놈아!"
"박태진이! 거 내 말 못 들었네? 날래날래 오라우! 거 우리 뒤로 다 내뺀 거 안 보이니!"
"그럼 날 두고 가시오! 내 저 모질이 놈 몸뚱어리라도 집에 돌려보내야겠소!"
"개소리하지 말라우! 양갓집 도련님이면 뭘 해도 되는 줄 아나? 우군이 철퇴 중이고, 이대로 가면 우린 적진 한복판에 낙오되는 기야! 알갔어!"
홍범도는 반쯤 정신이 나간 태진의 등을 냅다 걷어찼다. 전황을 설명하고 진정시킬 시간 같은 건 없었다. 지금 당장에도 우군-러시아 국가혁명군-은 철퇴하고 있었으며 적군-신성군-은 계속하여 매섭게 밀어붙이고 있었다.
이미 사단 지휘부에서도 철수를 명한 지 오래였다. 국가혁명군이 그들이 상정한 그 이상의 속도로 무너져 내리지만 않았더라도, 수색대대는 이렇다 할 교전 없이 무사히 철퇴할 수 있었을 터였다.
"으, 으아아-!"
그러나 이미 박태진의 정신은 나간 듯했다. 홍범도가 등을 걷어차면서 바닥에 내팽개치니, 그대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아직 따뜻한 김이 피어오르고 있는 정호찬의 다리 조각을 향해 허겁지겁 내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동향 출신의, 어렸을 적부터 신분의 차이와 상관없이 이웃하여 살면서 친하게 지내온 친우라고 하였다. 그 살점만이라도 고향 땅으로 돌려보내 주고 싶었던 것이다.
허벅지까지 쌓인 눈이 걸리적거려 앞으로 나자빠지고, 팔을 허우적거리다가 눈구덩이에 머리를 처박고서도 박태진은 맨땅 위에서 헤엄이라도 치듯 발악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손에 쥐고 있던 총마저 어디론가 집어던진 채로 말이다.
"태진이! 박태진이! 거 내 말 안 듣네? 당장 철퇴하라우! 네 몸이라도 건사하려면-."
타타타-!
홍범도가 그런 박태진을 뒤쫓기에 한발 앞서, 멀리에서 총격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는 낯이 익다 못해 지긋지긋한 맥심 기관총의 발포음이었다. 고작 1초도 안 되었던 발사음이 고막을 두드리고, 그동안 박태진은 마치 춤이라도 추는 양 몸을 들썩거리다가 바닥에 나자빠졌다.
철퍼덕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치 연이라도 된 것처럼 허우적허우적 몸을 흔들던 마지막 춤사위를 끝으로, 박태진은 두 번 다시 움직이지 않았다. 홍범도는 순간 현실을 인식하지 못하고서 멍하니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가 뒤늦게 현실로 돌아온 것은 새하얀 눈밭을 새빨갛게 물들이는 박태진의 피를 두 눈에 담고 난 다음이었다.
"Ура!Ура! Ура―!!"
저 멀리에서 만세 소리가 들려왔다.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와중이라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어림잡아서 천 명은 되는 숫자가 달려들고 있는 것 같았다. 어째서 저만한 병력이 하필이면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느냐고 한탄하려던 홍범도는, 뒤늦게 그들의 뒤로 국가혁명군의 여단 지휘부가 있다는 걸 떠올렸다.
그리고 어떻게든 전황을 뒤집을 수 있으리라 믿기라도 하는 것인지, 다들 도망치는 와중에 혼자서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것도 말이다. 아니, 사실은 정말로 저들이 여단 지휘부에 남아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홍범도를 비롯하여 다른 장교들이 목격한 것은 아직도 세차게 펄럭이고 있는 깃발이었지, 그 안에서 열띤 토론을 주고받고 있는 장교들이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문제는 이유야 어쨌건 저곳에 남아 있는 이들은 동맹군의 고위장교들이라는 사실이었고, 홍범도 소령은 수색대대의 지휘관으로서 저들을 지키려는 시도 정도는 할 의무가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씨부럴! 씨부럴 새끼들! 저 졷 같은 마우재 씨부럴 새끼들!"
홍범도는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누구를 욕하는 건지도 몰랐다. 앞에서 내달려오는 러시아군을 상대로 한 것인지, 아니면 뒤에서 도망치고 있는-또는 아직 상황파악도 못 하고서 도망치지도 않고 있는 머저리들을 향한 것인지 말이다.
좌우지간 홍범도는 자신의 소총을 움켜쥐었다. 저 숲 너머 멀리에서 빼곡하게 러시아 병사들이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하나같이 총을 막대기처럼 쥐고 있었다. 총을 쏘지도 않고서 저리도 기운차게 달려오는 걸 보면 총을 총이 아니라 창이라 생각하는지도 몰랐다.
홍범도는 순간 그냥 자신도 착검하고서 맞돌격할까 생각했다. 이 만리타향에서 그리 좋은 인상도 없는 작자들을 위해 잠시라도 시간을 끌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도저히 싸울 마음이 들지를 않았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었다. 이대로 삶을 포기하기에는 이번에 파병을 오면서 새롭게 받은 보총이 아까웠다.
"판돌이! 니 살아있네?"
"부르셨습네까?"
"니 아새끼 두엇 붙여줄 테니까, 저 뒤에 마우재 놈들한테 갔다 오라우! 저 간나 새끼들이 도망쳐야 우리도 내빼지 않갔어!!"
"걍 버리고 가시지요! 왜 우리가 저 마우재 놈들 뒷바라지까지 한디요? 저 마우재 놈들이 단고기라도 줬습네까!"
"대신 나라에서 단고기는 원 없이 먹여주지 않았네? 우리가 저 마우재 놈들 두고 내뺐다 소리 나오면 뒷맛이 아니 좋아. 애국한다 생각하고 날래 갔다 오라우!"
"썅! 날래 다녀올 테니 죽지나 마오! 죽거던 내래 형수님께 똥 싸다 곰에 물려가 죽었다 할거요!"
"뭐가 어드렇고 어드래? 이 간나 새끼가!"
홍범도의 불같은 고함을 들은 척도 하지 않고서, 김판돌은 이미 몸을 숙인 채 한 무리의 병사들을 이끌고서 뒤로 달려가고 있었다. 잠시 먼 시선으로 그들을 지켜보고서는, 이내 홍범도는 낄낄거리며 웃었다.
그 잠깐 러시아군은 이미 하나둘씩 숲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병사들은 홍범도가 도망치지 않고서 가만히 서 있는 걸 보고서 무언가 느꼈는지 하나둘씩 홍범도를 중심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홍범도는 호주머니에서 망원조준경을 꺼내 보총에 끼워 넣으며 말했다.
"다 쏴죽인다는 생각 말라. 대장 모가지만 날리는 기야. 모르겠으면 털모자 쓴 놈부터 날리라우. 검은 털모자면 특진이라 생각하고. 거 곰 가죽이야. 곰 가죽은 아무나 쓰는 거 아닌 줄 알제?"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병사들은 한차례 고개를 끄덕였고, 이내 뿔뿔이 흩어졌다. 그러자 병사들은 시야에서 사라졌다. 마치 도술이라도 쓴 것 같은 광경이었다. 그러나 허무맹랑한 도술을 쓴 것이 아니었다. 이번 파병을 계기로 보급받았던 새하얀 가죽옷이 눈보라를 만나 풍경에 녹아들었을 뿐이다.
러시아 병사들은 아직도 만세를 부르면서 달려들고 있었다. 아직 이쪽을 발견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사실, 박태진처럼 허우적거리면서 나 여기 있소-하고 광고하지 않는 한 이런 엄동설한에서 동계 전투복을 빼입고서 숨을 죽이고 있는 수색대원들을 찾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것도 사실이었다.
홍범도는 길게 숨을 내뱉었다. 새하얀 입김이 뿜어져 나왔다. 그 순간 홍범도는 조준경을 눈에 가져다 대고서,
타앙-!
하고, 방아쇠를 당겼다.
홍범도가 있는지도 모르고서 여단 지휘부를 향해 힘차게 내달려가던 병사는, 그 한 발에 목젖을 꿰뚫려 그 자리에 나자빠졌다.
피로 물들여진 회색 군복은, 이 엄동설한에는 알맞지 않게도 너무나 눈에 띄었다.
"똥이나 쳐먹으라우, 이 로씨야 놈들아!"
고함을 내지르며, 홍범도는 품에서 수류탄을 집어 들어 던졌다. 기습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함이었다. 물론 그리 멀리 가지는 못하였고, 폭발은 러시아 병사들에게서 멀리 떨어진 엉뚱한 곳에서 일어났으나- 이에 놀란 러시아 병사들은 제자리에 멈춰 주춤거리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 만세를 부르짖으며 맹렬히 돌격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홍범도를 따라서 수색대원들이 하나둘씩 방아쇠를 당기기 시작하자, 이러한 혼란은 점차 커졌다.
타타탕-!
"Это сюрприз!"
"Люди живы!"
수색대원들이 방아쇠를 한 번씩 당길 때마다 한 명의 러시아 병사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수색대원들은 다분히 고의로 단번에 머리나 목, 심장 같은 급소를 노리는 대신 팔이나 다리 같은 곳을 노렸다. 수색대원들에게 쥐어진 경인보총의 7.62 mm 탄환에 꿰뚫린 러시아 병사들은 전투의 고양마저 잊고서 비명을 질러댔고, 전장은 순식간에 러시아 부상병들의 비명으로 가득 찼다.
조금 전까지 함께 돌격하던 동료의 비명은 러시아 병사들의 혼란을 더해주었다. 병사들은 더는 만세를 외치지도, 앞으로 내달리지도 않았다. 러시아 병사들은 제자리에 우둑하니 서거나, 아니면 몸을 숨길 엄폐물을 찾아 흩어지기 시작했다.
장교들은 병사들을 다시 집결시키려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지만, 그것이 그들의 명을 재촉하고 있음을 장교들은 알지 못했다.
타앙-!
"낄낄, 간나새끼."
홍범도는 히죽 웃었다. 당초에 말하였던 검은 털모자를 발견하여 쏴 맞힌 것이다. 총탄에 미간을 꿰뚫린 장교는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하고서 뒤로 나자빠졌다. 그는 죽는 순간까지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내전이 한창인 와중에도 러시아 장교들은 귀족이라는 이유로 병사들에게도 함부로 노려지지 않는 경향이 있던 만큼, 설마하니 비겁하기 그지없는 저격 따위에 자신이 죽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Барон был поражен!"
"La скрывается!"
홍범도가 저격하였던 것이 그들 중에서는 제법 높은 인물이었던 듯, 그때부터 러시아 병사들은 더 이상 앞으로 달려나가려 하지 않았다. 자신들마저 노려지고 있다는 걸 깨달은 장교들도 이제는 더 이상 병사들을 부추기지 않았다. 여전히 눈보라는 매섭기 그지없었다.
조준망원경과 사냥꾼으로서의 경험 덕에 비교적 이러한 제약에서 자유로웠던 수색대원들만이 눈보라를 틈타 하나하나 사냥감들을 정리해갔을 따름이다.
투타타-!
그때였다. 뒤늦게 수색대대의 존재를 눈치챈 기관총 진지에서 제압사격에 나선 것이다. 물론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서 무턱대고 방아쇠를 당겨봐야 운 나쁘게 당하는 건 소수 중에서도 소수였다.
그러나 그 탓에 수색대원들도 이제는 섣불리 방아쇠를 당길 수 없었다. 아니, 방아쇠를 당기기 전에 머리를 살짝 내밀기만 해도 십자포화에 머리 없는 귀신이 되어 만리타향에서 구천을 맴돌게 될지도 몰랐다.
"거 글케 쏴봐야 탄약 낭비인 것도 모르네?"
홍범도는 나지막이 투덜거리며 작게 휘파람을 불었다. 퇴각명령이었다. 어차피 목표는 시간을 버는 것이었고, 저들은 이 엄동설한 탓에 수색대원들이 물러난 것도 눈치챌 수 없을 테니 앞으로도 10분에서 30분 정도는 발이 묶일 터였다.
지금쯤이면 김판돌도 임무를 마쳤을 터였다. 이대로 합류하여 퇴각하고 있는 본대와 합류한다면, 적어도 나쁜 소리는 듣지 않아도 되리라.
그러나, 그것은 홍범도의 희망 사항에 불과했다.
"···지금 뭐라고 했네?"
"없습네다. 어디에도 없습네다! 그 간나새끼래 깃발만 두고서 내뺐시오! 배은망덕한 호로새끼들! 지 애미랑 씹질 할 마우재 개새끼들!"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인 김판돌은 새하얀 가죽 모자를 바닥에 내팽개치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그리고 그의 말대로였다. 여전히 세차게 깃발을 나부끼고 있던 여단 지휘부에는, 얼빠진 귀족 장교들은커녕 이미 차갑게 식다 못해 얼어붙어 버린 커피 주전자만 남아 있었다.
결국, 수색대대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러시아 장교들을 위해 불필요한 지연전에 나섰던 것이다.
"···하, 씨부럴."
홍범도가 할 수 있었던 건, 그 한마디 정도였다.
* * *
러시아 제국, 모스크바 근교.
본디 러시아 제국의 제2수도였으며 지금은 정통 차르를 주장하는 알렉산드르 3세가 황궁에 갇혀있는 유구한 도시에서, 한 무리의 황인들이 뭉쳐 다니고 있었다. 말할 것도 없이, 이들은 한국에서 미하일이 주도하는 모스크바의 군사정권을 지원하기 위하여 파견한 한국인 의용군이었다.
이들은 러시아 내전에 투입된 한국인 의용군 중 몇 안 되는 전투병력이자 선발대였다. 라스푸티차에도 불구하고 오스트리아군의 개입으로 나날이 모스크바 군사정권이 장악하고 있는 영토가 줄어들게 되면서, 한국에서도 차차 개입을 크게 늘려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 것이다.
당연히 이들은 한국군 내에서도 가려 뽑은 정예였고, 그런 만큼 이들 선발대의 전의는 다른 병사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높아야 했···지만.
사실대로 이야기하자면, 그렇지만도 않았다.
"이 우라질 마우재 놈들은 싸울 생각이 있기는 한 겁네까? 거 총포 소리 몇 번 빵빵 터지면 낼 살려라 도망치기 바쁜 고자 새끼들뿐인데, 그냥 저들끼리 싸우라지요."
"말조심하라우. 고조 우리가 마우재 놈들 땜시 온 것도 아니잖네? 우린 우리 일만 잘하면 되는 기야."
김판돌 중위의 불평에, 홍범도 소령은 모질게 꾸짖었다. 그러나 그렇게 꾸짖는 홍범도의 얼굴도 그리 밝지만은 않았다. 사실이 그러했던 것이다. 러시아군은 이들 선발대에게는 놀랍다 못해 기가 찰 정도로 싸움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였다.
딱히 모스크바 정권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오스트리아의 지원을 받고 있는 페트로그라드 정권의 병사들이라고 해도 다르지 않았다. 러시아군 병사들은 자신들이 싸워야 하는 이유를 까마득히 잊은 듯했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없었는지도 몰랐다. 어디를 가나 러시아 병사들은 생기를 잃은 눈을 하고 있었다. 열띤 함성을 지르고 있는 건 장교들 정도이고, 부사관들은 잔뜩 열에 올라 혼자 날뛰는 장교들을 따라 가까스로 병사들을 수습하는데에 급급했다.
병사들이 싸울 이유를 찾지 못하는데 전쟁에서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다. 결국, 모스크바 정권이 계속 밀리고 있는 것도 오스트리아군이 한국군보다 많은 전력을 투입해서지, 페트로그라드 정권이 잘나서가 아니었다.
"거 너무 그러지 마오. 우리 사람들끼리 싸워봐야 좋아질 게 무 있겠소? 탓하려거든 로씨야 노마들이나 탓해야지, 왜 우리끼리 다투고 그러오?"
"거 기럼 안 다투게 생겼네? 아니 이거 전쟁 아닙네까. 전쟁! 근데 이 마우재 놈들은 우리가 피 튀기고 싸우는 동안 저들은 놀기도 바쁘다는 말이오. 우리가 모가지라도 하나 더 잘라오는 동안 저 간나새끼들 술에 여자나 끼고 놀고 있는 거 다들 알잖소!"
"내 입 다물라 한 거 못 들었나?"
홍범도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제야 좌중은 침묵했다. 그렇다고 그들이 현실에 순응한 것도 아니었지만 말이다. 모두의 시선이 홍범도에 쏠렸다. 홍범도는 이제 대대 지휘관으로서 무언가 답변을 돌려줘야 했다.
"···내래 노보데비치에 다녀오갔어. 기다리고 있으라우."
홍범도는 그리 말하고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노보데비치 수도원은 15보병사단의 사단 지휘부가 위치한 곳이었다.
< 러시아에서 > 끝
ⓒ 리첼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