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방의 나폴레옹 >
그렇게 육군성 장관 신기선을 내쫓은 다음, 홀로 남은 이형은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그나마 아직 민족주의조차 좌파 혁명주의 불온사상 취급받는 시대라서 다행이구먼.'
원세개가 보내온 러시아 필승법(?)을 다시 검토하며, 이형은 히죽 웃었다. 이 부분은 다분히 운이 좋았다, 혹은 시대를 잘 만났다고 평가될 수 있는 부분이었다. 19세기 말, 유럽은 물론이고 세계 전반적으로 민족주의는 결코 주류 이념이 아니었다. 현시대의 주류 이념은 여전히 왕정주의였고, 나라의 주권은 국민이 아닌 왕과 귀족들에게 있는 것이 당연한 시대였다.
그렇기에 프랑스가 제국임에도 혁명의 선봉장이라고 자부할 수 있던 것이다. 좌우지간, 프랑스는 민족주의와 국민주권론을 통치이념으로 내세웠으니까. 프랑스의 영향을 받아 일찌감치 민족주의를 통치이념으로 내건 한국은 시대를 앞섰다고 평가될 수도 있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이는 모스크바 정권이 신앙과 고귀한 혈통에 종속된 전근대적 민족개념이 아닌 혈통과 역사에 뿌리를 둔 민족주의만 제대로 꺼내 들어도 혁명정부로서의 정통성을 어느 정도 회복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물론 그걸로는 불충분했다.
"토지분배라. 아마 그놈은 중화제국 망하고 다시 설 때마다 한 번씩 지주들 물갈이하는 걸 생각한 거겠지만··· 이 부분은 아예 과격하게 경자유전 기반으로 무상몰수 무상분배로 나가는 게 낫겠군."
이형은 원세개의 무상몰수 유상분배안을 만년필로 지워버리고서 뒤에 무상몰수 무상분배안으로 교체했다. 애초에 원세개는 새로운 왕조를 지지해줄 새로운 지주층을 육성할 생각이었을 테니 더러운 돈도 조금 만질 겸 무상몰수 유상분배로 했던 것이겠지만, 이형이 판단하기에 이는 현 러시아의 시국에서는 불필요한 행위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러시아의 지주층은 모스크바 정권을 조금도 지지하지 않는다. 교회의 외면을 받고, 황제마저 유폐한 미하일을 전통적인 귀족들이 도대체 무엇 하러 지지해주겠는가? 지금 지지를 끌어와야 할 것은 첫째로 농노들이었고, 둘째로 계몽주의 지식인들이었다.
다른 것보다 모스크바 정권이 진지하게 혁명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만 알려져도, 전 유럽에서 혁명을 꿈꾸는 계몽주의 청년들이 의용군을 꾸려서 내달려올 것이다. 그중에는 당연히 계몽주의라는 큰 틀 안에 섞여 있는 사회주의자들도 있을 테고, 이 무상몰수 무상분배 자체가 사회주의자들이 더 좋아할 정책이지만- 무슨 상관이던가.
어차피 전후 내각을 꾸릴 건 한국이고, 정 사회주의자들이 거슬리거든 나중에라도 치워버리면 그만이다. 그리고 무상몰수 유상분배 원칙은 불필요하게 모스크바 정권을 부유하게 할 가능성이 있었다. 저들이 계속하여 한국에 종속되게 하기 위해서는 무상몰수 무상분배 원칙으로 농노들의 지지를 극대화하면서 동시에 러시아 경제를 파탄시킬 필요가 있었다.
"농노 해방이야 전임 차르가 진즉 했지만, 그걸로는 부족하겠지. 신분제 타파, 양원제 의회 도입, 헌법 도입, 공업화 장려, 이 정도는 해줘야 자유주의자들이 몰려들 테고."
이형은 계속하여 중얼거리며 원세개가 제시한 안에서 뒤에 새로이 몇 자를 추가하였다. 이러한 원칙들은 키예프의 부르주아들이 가장 반색해 하면서, 동시에 페트로그라드의 귀족들은 결코 제시할 수 없는 정책들이었다. 그리고 현 모스크바 정권 또한 결코 자발적으로는 내놓을 수 없는 정책들이기도 했다.
아무튼, 모스크바 정권은 군인들의 기반으로 이룩한 정권이고, 그 장교 중 태반은 청년 귀족들이니 말이다. 그렇다고 러시아 내부에 식자층이 그리 대단히 많은 것도 아니고, 자체적으로 혁명을 일으킬만한 조직이 있는 것도 아니니 결국 한국에서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이기에 실현 가능한 정책들이었다.
이는 다분히 의도적인 일이었다. 이러한 일방적으로 강요된 혁명은 유럽인들에게 익숙한 기억을 떠올리게 할 터였다.
그렇다. 나폴레옹 대제 시절의 혁명전쟁들을 말이다.
"저놈들이 우리 개입을 황인들의 유럽 침공으로 받아들여서는 곤란해. 마침 우리가 프랑스랑 친한 김에 아예 아시아 혁명의 선봉장 시늉을 하는 게 낫겠어. 우린 동방에서 쳐들어온 이교도 몽골인이 아니라 자유, 평등, 박애를 전하러 온 혁명동지들이다-하고 적당히 포장하면 되겠군."
이형은 잠시 팔을 괴고서 서류를 빤히 노려다 보았다. 고민될 수밖에는 없었다. 과연 이를 써놓는다고 해서 원세개가 알아들을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원세개는 분명 걸출한 인재였으나 자신의 야욕을 실현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을 뿐 무언가 새로운 걸 배우는 데에 무관심한 인물이었고, 나폴레옹 혁명전쟁은 그가 새롭게 배워야 할 역사에 해당했다.
나폴레옹 혁명전쟁이라고 짧게 써놓아 봐야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고, 그렇다고 길게 풀어서 쓴다고 해봐야 자기 멋대로 왜곡하려 들 테니 꺼려졌다. 결국, 일을 키우려면 새로운 인재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였다.
"이원철 그 아이를 또 러시아에 보내기는 좀 그렇고···. 김가진은 여기에 풀어놓으면 무슨 짓을 할지가 무섭군. 김옥균을 보내기에는 지금 같은 정국에 미국과 말이 잘 통하는 그 녀석을 뺄 수가 없고, 한성근은 군인이라서 이런 걸 할 줄 모르겠지. 그럼 내가 러시아에 보낼 수 있는 게 어윤중이랑 김홍집인데···.
김홍집은 슬슬 총리 시키려고 그러는데 국외로 빼돌리기 좀 그렇고, 어윤중을 시켜야겠어. 그놈이 프랑스에 유학을 다녀왔으니 이런 건 잘 알겠지. 병술 보고서 끝내는 대로 잠깐 휴가 겸해서 러시아에나 다녀오게 시켜야겠군. 피서하기에는 좀 춥긴 하겠지만."
이형은 그리 말하며 탁상에서 새로운 종이를 꺼내와 그곳에 어윤중에 지시할 사항들을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가장 첫 줄에 명시된 것은 한국을 아시아 국가가 아니라 혁명의 동지로서 받아들이도록 해야 한다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사실 이건 그리 어려울 일도 아니었다.
당장에 한국이 그간 가까이 지내왔던 나라가 프랑스와 미국, 모두 각각 프랑스 대혁명과 미국 독립전쟁으로 현 세계의 주류 이념인 왕정주의와 동떨어진 나라들이다. 프랑스는 국민의 지지를 기반으로 한 국민의 황제를 만들어냈고, 미국은 자유인들의 민주 공화국을 이룩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지만 말이다.
무엇보다 이형은 그간 자신이 국민의 지지를 기반으로 집권한 황제임을 분명히 하여 국민주권론을 분명히 했고, 민족자결주의를 강조한 바 있으며, 형식적으로나마 공정한 선거가 이뤄지도록 안배하여 권위주의를 멀리하고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또한, 아주 조약기구 가맹국간 국경을 사실상 철폐하여 국제주의를 지향하는 동시에 시장 자유주의를 증진 시키는 데에 이바지한 바 있었다.
지금이 21세기였다면 그래 봐야 대한제국은 황제 일가가 사실상 모든 것을 결정하고 황제가 측근을 골라서 세우는 3세계 독재국가였겠지만, 지금은 19세기 말이었다. 당장에 프랑스 제국조차 혁명의 적자 소리를 듣는 판국에, 이만하면 혁명의 선봉장을 자부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복잡하게 날조하고 할 게 뭐가 있나. 내가 바로 동방의 나폴레옹인데."
이형은 히죽 웃었다. 그건 그간 자신이 걸어온 행적에 대한 자부심이었다. 그렇다, 혁명이다. 애초에 개화와 개항이라는 것 자체가 한국인들에게는 혁명이나 다름없는 변화였겠지만, 그 이후 이형이 걸어온 행보는 유럽의 시선으로 보아도 계몽주의 혁명가의 그것이었다.
물론 나폴레옹처럼 처음부터 국민의 지지를 받아 올라선 황제가 아닌 제위를 계승 받았다는 한계가 있기는 하겠지만, 그거야 현 나폴레옹 4세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이제 와 왕위세습을 걸고 들어가기에는 혁명의 선봉장 프랑스도 이미 충분히 더럽혀졌다.
나폴레옹이 신성로마제국을 멸망시키고 오스트리아의 공주를 처로 삼았듯이 이형 또한 중화제국을 멸망시키고 청나라의 공주를 처로 삼았으며, 나폴레옹이 워털루의 치욕을 걷기 전까지 백전무패의 명장이었듯이 이형 또한 그러했다.
전주 이씨 왕족들을 각 제후국의 제후로 삼은 것도 아무런 문제 없다. 나폴레옹 또한 유럽을 쑥대밭으로 만들고서 제 가족과 부하들을 각국의 왕으로 봉해주지 않았던가? 오히려 그 전철을 밟았다고 해도 무관할 것이다.
"어윤중, 그 녀석도 일하기 편해서 좋겠어."
이형은 콧노래를 부르면서 어윤중이 러시아에서 해야 할 일들을 적어 나갔다. 하나하나가 굵직한 변화들이었다. 이형이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지 미하일이 안다면 기겁할 게 분명했다. 이대로 흘러가다가는 당장에 목이 잘린 판국이라 황제를 옥에 가두고서 군사 혁명정부를 자칭했더니, 진짜배기 혁명을 하게 생겼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형은 상관하지 않았다. 그거야 미하일의 사정이었을뿐더러, 애초에 이 혁명이 실패하여 러시아가 엉망이 된다면 그건 그것대로 나쁘지 않은 변화였다. 러시아의 성장동력이 단번에 바닥을 기게 될 테니까 말이다. 국경을 접한 대국이 강성해서 좋아질 게 없는 건 만국 공통이었다.
좌우지간 이형은 혁명을 밀어붙일 작정이었고, 이러한 외부로부터 강요된 혁명은 유럽의 계몽주의자들에게 나폴레옹의 재림을 연상하게 하리라. 그거면 충분했다. 여전히 유럽 대륙 전역에 걸쳐 나폴레옹과 혁명의 추종자들은 차고 넘쳤고, 이형은 동방의 나폴레옹으로서 그들을 모조리 흡수할 작정이었다.
"그리고 혁명을 단행하는 동안 차르는-."
이형은 처음으로 손을 멈췄다. 유폐된 차르를 그대로 풀어주거나 꼭두각시로 삼는다는 선택지는 없다. 그건 혁명과의 타협을 의미했다. 모스크바 정권의 생존을 위해서는 그래서야 곤란했다. 모스크바 혁명정부는 단호하고, 과격해야 했다. 그래야지만 계몽주의자들의 지지를 한몸에 받을 수 있으면서, 농노들의 퇴로를 끊을 수 있었다.
이형은 농노들의 충성이 그리 오래갈 거라 여기지 않았다. 당장에 토지를 나눠주면 그야 기뻐하겠지만, 교회의 선동에 금세 또 돌아설 이들이 농노들이었다. 그들을 끝까지 붙잡아 두기 위해서는, 모스크바 정권이 패하는 순간 자신들도 어마어마한 보복에 직면할 것이라는 공포를 줘야만 했다. 이형은 모스크바 정권을 로베스피에르의 그것에 준하는 과격한 혁명정권으로 탈바꿈시킬 작정이었다.
따라서 입헌군주국이라는 온건한 선택지는 처음부터 불가능하다. 문제는, 이제 미하일을 혁명제국의 황제로 추대하는가 아니면 혁명 공화국의 통령으로 추대하는가 하는 점.
"···으음."
이형은 펜을 놓았다. 이건 쉽게 결정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야 물론 프랑스나 한국을 보면 혁명을 추종한다고 꼭 공화국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지만, 계몽주의자들은 기왕에 라면 공화국을 더 선호하는 게 사실이었다. 나폴레옹이 제정을 선포하였을 때 혁명의 배신이라고 매도하던 이들이 좀 많았던가?
당장에 한 사람이라도 많은 계몽주의자를 끌어들이려면 혁명 공화국이 나았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한국 또한 제국이라는 사실이다. 대한민국이라면 고민할 필요 없었겠지만, 대한제국에는 여기서 섣불리 러시아 공화국을 선포할 경우 자국 내 공화주의의 득세를 우려할 필요가 있었다.
"아니, 여기서는 공화국이 낫겠어. 우선 공화국을 선포하고, 그다음에 수틀리면 제정으로 전환하는 게 낫지, 처음부터 제국이라고 하면 아무리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지만 아무도 속지 않을 거야."
그러나 고심하던 이형의 선택은 결국 러시아 공화국이었다. 가장 큰 이유는 미하일이 어쩌다 보니 혁명을 외치게 된 부류지, 처음부터 계몽주의 혁명에 몸이 달아오른 이가 아니라는 점 때문이었다.
애초에 계몽주의와는 동떨어져 있던 인물이 아무리 한국의 추대를 받았다지만 대뜸 혁명제국의 황제라고 선언하면 왕정 교체를 위해 혁명을 이용했다는 소리 밖에는 듣지 않을 터였다. 여기서는 혁명 공화국의 통령으로서 우선 계몽주의자들의 지지를 끌어모으는 것이 중요했다.
실현 가능성이 얼마나 되건, 아무튼 헌법이 도입되고 의회가 설치되는 한편 국민교육이 실현되면서 제대로 된 공화국이 들어설 거라는 기대가 있어야 계몽주의 지식인들의 지지가 모일 테니 말이다.
"처음에 계획한 건 이게 아니었지만, 차라리 이게 더 나은 것 같기도 하군."
이형은 즉석에서 새롭게 만들어진 앞으로의 방침을 읽으며 만족스럽게 미소 지었다. 기본 골자는 크게 3가지였다.
하나, 민족자결주의. 이를 통해 남아시아의 식민국가들을 해방하는 한편, 중앙아시아와 시베리아의 소수민족들에 주권을 부여하여 러시아를 분열시킨다.
둘, 서구주의. 불쾌한 이야기지만, 한국의 행보가 아시아에서만 통용되는 상식에 기반을 둔 것일수록 서구는 이에 위화감을 느낄 것이고 한국의 행보 하나하나를 황화론에 근거한 아시아의 기독교 문명 침략으로 간주할 것이다.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더욱더 서구 중심의 상식에 기초하여 행동할 필요가 있다.
셋, 혁명주의. 혁명은 앞으로 한국이 보일 모든 행보에 면죄부를 부여할 것이다. 이형은 당분간 동방의 나폴레옹을 자부할 것이고, 따라서 한국은 아시아 혁명의 선봉장이 되어야 한다. 민족자결주의는 한국이 전파할 혁명적 사상의 대표 격이 되어줄 것이다. 자유, 평등, 박애는 더는 프랑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혁명에는 죄가 없다. 이 얼마나 이용하기 좋은 격언인지."
이형은 그 한마디를 내뱉고서, 펜을 놓았다. 피곤했다. 그야 병술 보고서도 막바지에, 이것저것 사건·사고가 연발하면서 그가 직접 결정해야 할 일들이 쌓이고 또 쌓였으니 그럴 수밖에는 없었다.
머리가 띵했다. 너무 머리를 써서 그런지는 몰라도 단 것이 당겼다. 그러나 이형은 미간을 손가락으로 지그시 눌러 안마한 다음, 다시 펜을 쥐었다.
아직도 할 일이 남아있었다. 그리고 그 일은 조금도 뒤로 미루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그럼 이제 이완용 그놈을 어떻게 조질지 고민해 보실까."
이형은 또 한 장의 백지에 펜촉을 가져다 대고서, 지그시 눌렀다.
톡.
손에 힘을 너무 줘서일까.
펜촉은 너무나 간단하게 부러지고 말았다.
* * *
한성, 종로구 안국동.
"아니 그러니까 왜들 이러시오. 난 하늘을 우러러 떳떳하게 살아온 사람이라니까!"
쾅쾅.
이완용은 답답하다는 듯이 가슴을 두드렸다. 실제로 답답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이렇게 자신이 화가 났다는 시늉을 해야 이런 곤경에서 쉽게 빠져나올 수 있다는 걸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지금 이완용의 기분이 썩 좋았던 것은 아니었다. 그간 검문을 당해본 적이야 많았지만, 그건 마부가 대응할 일이었지 그가 직접 나설 일은 아니었다. 하물며 가던 마차를 세우고서는 이완용이 직접 대응하게 만들다니.
‘어지간히도 실적에 고픈 녀석들인가?’
이완용은 내심 어이없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얼마나 용돈을 줘야 이들이 돌아갈지 고민했다. 그러나 이런 일 때문에 돈을 풀기에는 짐승처럼 벌어온 돈이 너무 아까웠다. 결국, 이완용은 이번에도 제 신분과 권세를 믿어보기로 하였다.
이완용은 그의 앞길을 막아선 경관들을 흘긋 돌아보며 소리를 질렀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알고서 이러시오? 거 보아하니 종로경찰서에서 나왔나 본데, 이 사람이 그 청장과 어제도 술 한잔 걸치고 그랬던 사람이다- 이 말씀이오. 내 말이 허풍 같으면 민겸호 대감은 한 번쯤 이름을 들어 보셨을 거요. 아 글쎄 내가 그분의 조카사위라니까? 못 믿겠거든 여기 호패가 있으니 가져가 보시오.
이 종로에 이씨 성 쓰는 완용이라는 놈이 어디 두 놈이나 있겠소?"
이완용은 호패를 꺼내 들었다. 비장의 수단이었다. 물론 이름만 호패일 뿐, 실제 역할과 생김새는 주민등록증에 가까운 물건이었다. 개화가 한창 진행되면서 호패와 같은 관물 또한 이제는 나무가 아니라 빳빳한 양장(洋裝)으로 된 수첩으로 바뀐 지 오래였다.
그러나 여전히 경관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건 이상한 일이었다. 어지간한 경관들은 이완용이 여기까지 제 신분을 드러내면 기겁하고서는 고개를 푹 숙이고는 했다. 애초에 한눈에 봐도 비싸 보이는 고급 양복과 금으로 도금한 손목시계, 각종 장신구로 치장한 이완용에게 함부로 시비를 거는 경우부터가 드물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경관들은 그게 무슨 대수라도 되느냐는 것처럼 이완용이 타고 온 마차를 한번 흘겨보고서는, 그저 조용히 말했다.
"남산에서 나왔소. 잠시 동행해 해주실 수 있겠소?"
"···남산?"
딸꾹.
그제야 이완용은 침을 삼켰다. 저도 모르게 딸꾹질이 나왔다.
무언가 일이 단단히 꼬였다는 안 좋은 예감이 척수를 타고 흘러내렸다.
< 동방의 나폴레옹 > 끝
ⓒ 리첼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