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폭군 고종대왕 일대기-396화 (396/530)

< 이이제이 >

황제는 피식, 하고 헛웃음을 터뜨렸다.

"대감? 대감이라···."

짧은 한마디였다. 그러나 그 한마디에 이완용은 한순간 오줌보가 터질 것처럼 온몸이 저릿저릿해지는 공포를 맛볼 수 있었다. 저 멀리에서 검은 갓에 검은 도포를 입은 저승사자가 어서 함께 가자며 손짓하고 있는 게 보이는 듯했다.

'망했다!'

이완용의 머릿속으로는 그 한마디만 계속하여 맴돌았다. 치명적인 실수였다. 하다못해 얼굴이라도 보고 난 다음에 살려달라고 빌었어도 되었을 것을, 괜히 성의를 보인답시고 아직 상대가 누구인지도 파악하기 전에 대뜸 대감이라고 불렀다가 졸지에 한 나라의 황제를 대감이라고 부른 꼴이 되고 말았다.

이제 여기에 무슨 연유로 불려 나왔는지도 아무래도 좋다. 다른 죄목은 필요 없이, 이 하나만으로도 이완용은 죽어 마땅했다. 설령 여흥 민씨라고 해도 황제를 대감이라고 부른 머저리를 돕지는 않을 터였다. 이완용은 의식이 멀어져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도 어떻게든 정신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이 세상 그 누구에게도 감히 비할 바가 못 되는 생존과 출세를 향한 강한 의지 덕택이었다.

"죽여주소서!"

긴말은 필요 없었다. 지금은 무조건 제자리에 엎드려야 했다. 의자에 수갑으로 묶여있는 처지였지만, 상관없었다. 이완용은 엉덩이 힘까지 모두 동원하여 있는 힘껏 제자리에서 튀어 올랐다가 그대로 제자리에 엎드려 시멘트 바닥에 머리를 처박았다. 그 반동과 몸무게에 눌려 나무 의자가 부서지고, 그 나뭇조각이 살점을 파고들었다.

머리는 띵했고, 무릎은 부러진 것 같았고, 손목은 있을 수 없는 방향으로 꺾였다. 이완용은 고통 속에서도 자신의 몰골이 충분히 동정을 살 만큼 처절한가를 고심했다. 피가 시야를 가리고 있는 거로 보아 이마는 확실하게 찢어졌을 것이고, 허벅지에 쑤시는 듯한 통증이 있는 거로 보아 의자 조각이 박혔다. 손목이야 골절된 게 분명하고, 졸지에 시멘트에 짓뭉개진 엄지손톱은 당장에라도 떨어질 것 같은 몰골이다.

이미 온몸은 엉망이 되고, 머리에 충격이 심해 정신이 혼미한 와중에도 이완용은 생각했다. 진정 이걸로 충분한가? 황제의 동정을 살만한가? 조금 전의 실수를 만회하기에 충분한가?

'아니, 그만하라는 말이 나올 때까지 계속해야 한다!'

이완용은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지금 중요한 건 그의 판단이 아니었다. 황제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눈치를 살피는 것도 인제 와서는 결코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이미 저질렀다. 황제가 이완용의 행동에 불쾌함을 느낄지, 아니면 당황할지 같은 건 아무래도 좋다. 지금은 언행의 일관성을 보여주어야 할 때였다. 어차피 죽은 목숨, 이대로 황제에게 목숨을 구걸하다가 죽는다고 해도 차라리 고통과 수치는 덜할지도 모른다.

이완용은 그대로 두 번째로 이마를 시멘트 바닥에 처박았다.

"죽여주소서, 죽여주소서, 죽여주소서···!"

그렇게 두 번, 세 번, 네 번, 다섯 번-.

이완용은 있는 힘껏 시멘트 바닥에 머리를 몇 번이고 들이박았다. 죽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살기 위해서였다. 이완용은 황제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살피지도 않고서 일단 몇 번이고 머리를 들이박고, 또 박았다.

어서 빨리 그만 소리가 나와야만 했다. 나오지 않는다면, 정말 이대로 바닥에 머리를 들이박다가 죽을지도 몰랐다. 그러자면 역설적인 이야기였지만 지금은 힘을 아껴서는 안 되었다.

젖먹던 힘까지 모두 쥐어짜 내 허리와 목에 힘을 불어넣고, 이완용은 시멘트 바닥에 머리를 들이박았다.

"그만."

그러다가, 기어이 기다리던 말이 나왔다.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이완용은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처음에 머리를 들이박았을 때만 해도 한쪽 눈을 살짝 가리는 정도였던 이마에서 흘러내리던 피가 이제는 시야를 통째로 가려서 앞이 보이지를 않았다.

그 짧은 사이에 대성통곡을 하면서 일곱 번 바닥을 들이박았으니 그야 당연한 일이었다. 이완용은 이번에야말로 의식이 멀어져감을 깨닫고 있었다.

"이놈이 어딜 멋대로 죽으려 들고 있느냐? 여봐라. 의원을 불러와라. 우선 지혈을 시키고, 피도 닦아서 말끔히 단장시켜 보아라. 할 말이 많은데 벌써 죽어서야 어쩐단 말이더냐?"

"하명하신 대로 따르겠나이다."

저 멀리에서 달음박질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나는 멀어지는 소리였고, 다른 하나는 가까워지는 소리였다. 멀어지는 쪽은 의원을 부르러 가는 요원들일 테고, 다른 하나는 이완용에게 다가와 수건으로 이완용의 이마를 꾹 누르기 시작했다.

지혈을 시켜주는 모양이었다. 곧이어 의원이 방안에 들어와 이완용을 진료하기 시작했다. 이걸로 적어도 지금 당장은 죽일 생각이 아니라는 게 확인된 것이다.

이완용은 작게 안도의 한숨을 토했다.

'할 말이 많다고 하였다. 그럼 적어도 1각은 더 살 수 있다는 말이로구나.'

그야말로 천만다행이었다. 아닌 말로, 경찰이 아니라 남산에 붙잡혀 왔다는 건 법적인 절차를 통하지 않고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대도 한복판에서 경관들에게 붙잡혀 가는 걸 본 목격자들이 많으니 그럴 가능성이야 사실 높지 않았지만, 조금 전 황제를 대감이라고 부르면서 그 가능성이 현실로 다가오던 차였다.

그러나 황제는 그에게 할 말이 많다고 했다. 적어도, 대감이라고 부른 건에 대해서 더 추궁할 생각은 없다는 이야기였다.

그럼 이제 치료하는 동안 잠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번 격이었다.

'조정에 출사하지 못하도록 막던 사람이 다름 아닌 이 나라의 황제였다니.'

이완용은 등골이 오싹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간의 원망도 서러움도 한순간에 씻겨 나가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의아함이 앞섰다.

양반가의 양반자제가 조정에 출사하고 싶어 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다. 적어도 조선의 상식은 그러했다. 그리고 이 점에서는 이완용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완용은 벼슬길에 나서려 했고, 좌절당했다.

이완용이 출세를 위해 가짜 기사들을 써내고 여흥 민씨의 데릴사위로 들어가면서까지 아득바득 발버둥 쳤던 것도,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조정에 출사할 수 없음을 알게 된 까닭이었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아무리 이완용이라도 다른 이들의 원망과 손가락질을 한 몸에 받을 일들을 벌이지는 않았을 터였다.

너무나 극단적이어서 위험과 비교하면 얻을 것은 대단치 않은 일들이니 말이다.

그렇다. 벼슬길이 막히지만 않았더라면 말이다.

'도대체 왜?'

이완용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야 물론 그가 생각해도 그의 지난 생은 깨끗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출세를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서 달려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삼강오륜 중 무엇하나 어기지 않은 것이 없었으니, 강상죄로 종로에서 찢겨 죽어도 변명할 말이 없다.

그러나 그렇게 물불 가리지 않았어야 했을 가장 큰 원인은 누군가의 방해로 조정에 출사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고, 달리 말해 조정에 출사하지 못하도록 방해받던 시점에서는 이렇다 할 악업을 저지른 적도 누군가에게 원망받았던 적도 없다.

그럼 황제는 그가 보잘것없는 일개 서생이었던 시절부터 그를 지켜봐 왔다는 말이 된다. 그것도 이완용을 어여삐 여겨서가 아니라, 눈엣가시로 보여서 말이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황제가 이리도 자신을 미워하는지 알 수가 없으니, 이완용으로서는 그저 답답할 따름이었다.

"그래, 이제 슬슬 이야기를 시작해도 괜찮을 것 같군."

상념을 깬 것은 황제의 목소리였다. 곧장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바라보니, 황제가 팔을 괴고서 탁상 건너편에 앉아있는 것이 보였다.

아마 황제와 제국을 향한 충성심으로 가득한 애국청년이라면 황제와 탁상을 사이에 두고서 마주 보고 있다는 사실에 감격하겠지만, 이완용은 그런 고양감은 조금도 느끼지 못했다.

그저 요원들이 새롭게 준비해온 철제 의자에 수갑으로 팔과 다리가 묶이면서도, 도대체 황제가 무엇 때문에 자신을 이토록 미워하는지 고민할 따름이었다.

"그···."

이완용은 필사적으로 주제를 고민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의 어린 시절과 황제 사이에는 접점이 없었다. 그렇다고 젊은 시절에 먼발치에서나마 황제의 눈에 들만 한 일도 없었다. 그럼 황제가 그를 미워하는 이유는 적어도 상식선에서 고민해서는 안 되었다.

역법, 관상, 사주팔자, 윤회전생, 예언몽. 하여간에 그런 부류의 괴력난신일 확률이 높았다. 안 그래도 시황제가 꿈에서 나왔다며 시황릉을 찾으라 했던 황제였다. 괴력난신에 깊은 조예가 있다고 하여도 이상할 게 조금도 없었다.

결국, 한참을 고민하던 이완용은 눈을 질끈 감고서 물었다.

"폐하. 혹, 괴이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사오니···. 소신이 꿈에서라도 폐하를 뵈었던 적이 있었는지요?"

"흠."

그 말에 황제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이내 히죽 웃으며 답했다.

"그래, 꿈이라면 꿈이지."

'역시나 그랬군.'

이완용은 마음속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 사주팔자나 예언몽 둘 중 하나일 거라 짐작하고서 찍은 것이었지만, 다행히도 예언몽이라는 정답을 고른 모양이었다.

그러나 마음속 한쪽으로는 울컥하고 울화가 치밀어오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아니 지금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한 나라의 황제가 그깟 예언몽 하나만 믿고서 뜻있고 실력 있는 선비의 벼슬길을 막아도 되는 건가?'

온갖 괴력난신이 이성과 합리의 이름 아래 퇴치되어 사라져가던 과학의 시대였다. 그런데 동아시아에 그 과학의 시대를 퍼뜨린 장본인이 그까짓 예언몽 같은 괴력난신 하나로 마음고생을 시켰다고 생각하니 몸에 절로 힘이 들어가는 듯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이완용은 지금 자신이 어떻게든 목숨을 구걸해야 하는 처지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완용은 될 수 있는 대로 비굴한 얼굴을 하고서 물었다.

"그, 혹시 천기누설이 아니라면··· 소인께 들려주실 수는 없을는지요?"

"네놈이 일본에 이 나라 대한을 팔아치워 대한이 식민지가 되는 꿈이었다. 기껏 선포하였던 대한제국은 일본제국 치하 조선 왕국이 되었고, 이 나라의 황제는 이씨 왕으로 격하되어 일본의 귀족이 되는 꿈이었지."

"···예?"

이완용은 눈을 껌뻑거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이완용은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며 소리쳤다.

"무, 무언가 잘못되었던 것입니다! 소신이 어찌 그런- 억!"

아니, 소리치기는 했다. 하지만 일어나지는 못했다. 첫째로 수갑이 걸리적거려 움직일 수 없었고, 둘째로 뒤에서 또 무언가 사고를 치지는 않을까 감시하던 요원들이 이완용을 붙들었기 때문이다.

이완용은 자신을 붙들어 맨 요원들에게서 사적인 악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조금 전 황제의 말을 듣고서 분기탱천한 게 분명했다. 이완용으로서는 그저 억울할 따름이었지만 말이다.

이완용이 대한을 팔아치운다? 도대체 어느 나라에 말인가? 아시아의 맹주이자 명실상부한 열강인 대한제국이 일개 서생 하나가 팔아치울 수 있는 나라이기는 한가? 그리고 어째서 일본인가?

하다못해 팔아치운다면 러시아나 프랑스, 영국, 미국, 이런 나라들이지, 무슨 일본에 팔아치운단 말이던가? 애초에 일본제국은 또 뭔가? 어찌 감히 일본 따위가 황제국을 자칭하고 있다는 말인가?

"억울한 모양이구나. 그래, 억울하겠지. 그래서 내 너를 등용하지는 않았으되, 죽이거나 벌하지는 않았다. 고작 꿈에서 나왔다는 이유로 사람을 해하고 벌하다니, 너무한 일이지. 그렇지 않더냐?"

황제는 그런 이완용의 불만에 아랑곳하지 않고서 말을 이어갔다. 이완용으로서는 지적하고 싶은 부분이 한둘이 아니었지만 말이다.

등용하지 않아? 등용문을 틀어막았다가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죽이거나 벌하지 않았다는 것도 뭐가 그리도 자랑스러운가? 꿈 때문에 벼슬길을 틀어막고서는 죽이거나 벌하지는 않았으니 감사히 여기라는 뜻인가?

"하지만 그래도 내 너에게 못할 일을 해버린 것도 사실이 아니더냐. 그래서 이번에 사고를 친 참에 죽여버리려다가, 마음을 바꿔 먹기로 했다."

황제는 곁에 서 있던 요원에게 손가락을 까딱였다. 그것이 무언가의 신호였던 것인지, 요원은 그 즉시 한 무더기의 서류를 탁상 위에 올려두었다.

도대체 저게 무엇일까. 이완용이 궁금해하기도 전에, 황제는 담담하게 말했다.

"강상죄로 벌하여 죽일까 하여 조사하도록 하였던 증좌들이니라."

"···흐읍!"

이번만큼은 비명이 절로 나왔다. 요원들이 입을 틀어막는 바람에 미처 비명이 튀어나오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이완용은 그저 읍 읍 거리면서 발버둥 쳤을 뿐이다.

"본래는 이 증좌들로 법정에 세울까 하였는데, 그래서야 황실에서 또다시 이름난 명가를 쑥대밭 내놓는 꼴이 아니더냐. 처음 한 번이면 몰라도, 이게 장차 관습이 되어 후대까지 이어지게 되어서야 한양이 텅텅 빌 테지. 그래서 대신에 이 증좌를 최익현에게 줄 생각이다."

황제는 이완용의 그런 모습에도 아무렇지도 않게 뒷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그제야 이완용은 발버둥 치기를 멈췄다. 순간 정신이 멍해지고 팔다리에 긴장이 풀리면서 몸이 덜덜 떨리는 게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최익현이 누구인가. 이 나라 유림의 수구세력을 대변하는 대쪽 같은 선비가 아닌가. 개항이 시작되고 개화가 이뤄진 지 30년이 되어가는 이 날 이때까지도 주자가 어떻고 성리학이 어떻고 하면서 황제에게까지 날 선 비판을 가하는 건 최익현 한 사람뿐이었다.

그 지루한 주제들과 시대에 뒤처진 이념 탓에 대중들에게는 최익현도 최익현의 대한 일보도 인기를 잃은 지 오래지만, 반대로 수구 유림에게는 여전히 이 시대의 빛이자 참된 선비로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던 게 바로 최익현이었다. 그런 거유(巨儒) 중의 거유에게 강상죄의 증좌들을 넘기겠다고?

'···끝났다.'

이완용의 머릿속으로는 그 한 단어만 메아리쳤다. 변명해도 듣지 않을 것이다. 뇌물을 가져다 바친다면 되려 더욱 화를 낼 것이고, 최익현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꾸미면 어딜 감히 최익현 같은 대쪽같은 선비에게 누명을 뒤집어씌우느냐고 유림이 득달같이 달려들 것이다.

여흥 민씨? 의지할 구석이 못 된다. 제아무리 그들이라도 최익현이 끈덕지게 물어뜯기 시작하면 이완용을 내치고서 민자영을 살리려 하지 끝까지 이완용을 살리지는 않을 것이다. 여차하면 장모를 겁간했다는 누명을 덮어쓰고서 여흥 민씨 몸종들의 손에 복날 개처럼 두들겨 맞아 죽을지도 모른다.

이완용은 눈앞이 컴컴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이건 민겸호 그 모자란 놈이 아무리 사적인 자리라지만, 감히 전주 이씨를 두고서 여흥 민씨가 한양 제일의 명가라 지껄이며 부정한 재물을 축재했다는 증좌들이지."

쿠웅-.

이어서, 또 한 무더기의 서류가 요원들의 손에 탁상 위에 올랐다. 이완용은 한 무더기의 서류를 아무런 감정 없이 바라보았다. 이제 와 민겸호가 역모죄를 덮어쓸지도 모른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인가?

"이건 너에게 주겠다."

"···예?"

그제야 이완용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나 그것이 무슨 뜻인가를 깨닫기도 전에, 황제는 입꼬리를 뒤틀며 말했다.

"어디 좋을 대로 사용해 보아라. 사용하지 않고서 장모를 겁간했다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맞아 죽는 것도 네 자유고, 민겸호 놈을 겁박하여 여흥 민씨 놈들이 유림에 맞서 끝까지 너를 옹호하게 하는 것도 네 자유이며, 온 천하가 알게 하여 장인을 욕보이는 것도 네 자유다.

이거라면 죽더라도 너 혼자 죽지는 않을 것이고, 운이 좋다면 집안을 풍비박산 내고 장모와 통한 패륜아 소리는 들어도 몸은 건사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자, 어쩌겠느냐? 이대로 죽겠느냐, 살아 보겠느냐?"

당연히 죽을 생각 따위는 추호도 없었다.

이완용은 이미 집안을 팔아치워 제 한 몸 살려볼 궁리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 이이제이 > 끝

ⓒ 리첼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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