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질스러운 현실 >
황제가 일방적이고 과격한 개혁을 밀어붙이기 시작한 이래로, 양반이란 존재는 막연하게 굉장한 사람들이 되어버렸다.
어째서 막연하게 인가하면, 그야 당연히 더는 양반이라는 계급은 법적으로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애초에 어째서 양반들은 고귀했는가? 법전이 명시한 그들이 가진 권리와 의무가 다른 이들보다 유리했고, 더욱 부유했으며, 더욱 많이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모든 근거는 갑작스러운 개화와 함께 하나둘씩 허물어져 갔다.
대한제국의 헌법은 기본적으로 황실까지 포함하여 모든 신민을 평등한 권리와 의무를 지는 국민이라고 규정하였다. 실제 사회상은 당연히 이런 헌법과 거리가 있었지만, 적어도 헌법상으로는 그러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양반들은 더는 유리한 권리와 의무를 지지 못했다.
보다 부유했다는 것 또한 토지개혁과 함께 허물어졌다. 그야 물론 대한제국의 토지개혁은 막대한 전쟁배상금과 함께 진행되었고, 유상몰수 원칙에 따라 충분한 배상금을 돌려주어 토지를 잃은 지주들이 장사에 뛰어들도록 유도했다. 문제는, 양반으로서 상업에 종사한다는 거부감은 둘째치고서 이 상업이라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결국 일개 잡상인들이 감히 건드려볼 엄두도 내지 못하는 명가 들이야 살아남았으나, 어중간하게 잘난 양반가는 줄줄이 도산하는 운명을 피할 수 없었다. 기껏 사업을 시작했다가 개화 이전에는 거들떠도 보지 않던 보따리장수에게 밀려 가산을 탕진하는 때도 흔히 일어났다. 이러한 빈부역전은 양반들에게서 부유함을 앗아갔다.
더욱 많이 알았다는 것은 교육개혁과 함께 허물어졌다. 다른 무엇보다 외국어 교육의 영향이 가장 컸다. 이제 출세하려면 불어를 익혀야 했고, 돈을 벌려면 영어를 익혀야 했으며, 기술을 배우려면 독어를 익혀야 했다. 이 셋 중 하나조차 하지 못한다면 더는 식자 층으로 존중받을 수 없었다. 그리고 서역의 언어를 배움에서, 양반들이 다른 이들보다 잘날 이유는 없었다.
그렇게 양반들은 그들이 고귀하게 취급받아야 하는 모든 타당한 근거를 잃고 말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양반들은 여전히 막연하게 보다 고귀하고, 더욱 우수하다고 생각됐다. 이렇다 할 타당한 근거도 없이, 그냥 막연하게 말이다.
그러나, 1892년 마지막 날은 그 마지막 고귀함마저 모조리 부숴버리고 말았다.
***
“이, 이게 도대체 무슨···.”
한양, 중앙역사.
김구는 제자리에 우둑하니 서 있었다. 제자리에 뿌리내린 듯 한 발짝 움직일 생각도 감히 못 하고서, 손에 쥔 신문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었다.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다가올 새해를 기대하며 첫해를 보러 가려던 일정은 어느샌가 머릿속에서 지워져 버렸다.
그만큼 신문에 담긴 내용은 충격적이었고, 끔찍했다.
“아, 아니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도대체 어떻게 하면 장모가 사위를 범할 수가 있는 거야!”
김구는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주변에 실례될 거라는 생각도 미처 하지 못했다.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머리가 띵해 왔다.
속이 메슥거려서 아침에 가볍게 마셨던 타락죽이 당장에라도 입에서 뿜어져 나올 것만 같았다.
“뭐? 장모가 사위를 범해? 그게 무슨 남사스러운 소리란 말인가?”
“그 민씨 댁에서 낳았던 사내놈이 사실 사위가 품게 한 자식일지도 모른다고? 이, 이런 짐승 같은 놈들을 봤나!”
“조용, 조용히! 이 사람들이 뭘 그렇게 자랑스러운 이야기라고 막 떠들고 있는 건가!”
그렇게 비명을 지르는 건 김구 혼자만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대한 일보 자체가 인기를 잃은 지 오래였던 탓에 극소수만의 분노로 끝이 났지만, 이를 읽고서 분노한 시민이 기사내용을 주변에 전하기 시작하자 한양 중앙역사는 새벽부터 한양 시민의 비명과 탄식 소리로 가득 찼다.
경박한 목소리로 호외요-!를 외치던 신문 돌리는 소년들조차 오늘만큼은 잔뜩 인상을 찌푸린 채로 조용히 신문을 팔고 있었다. 그만큼 한국인들에게 이번 사건은 너무나 받아들이기 어려운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무엇보다, 한국인들에게는 이런 지도층의 추문이 신문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된다는 사실 자체가 낯설었다.
한양 시민은 이 사건에 도대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조차 낯설어했다. 역모라면 쉽고 익숙하다. 그냥 일방적으로 역도에게 분노하고, 경멸하면 된다. 감정을 쏟아낼 하수구 통으로 그보다 좋은 곳이 없다. 민겸호의 역모죄가 큰 방향을 얻었던 것 또한 이러한 이치와 다르지 않다.
“우우웁, 우웁, 우웨에엑-!”
“이런 똥만의 똥 막대기만도 못한 자식들! 짐승만도 못한 새끼들! 이 개새끼들은 머리 대신에 좇을 달고 다니기라도 하는 건가?”
하지만 이번 사건은, 분노와 경멸 이전에 구역질이 치밀었다. 너무나 외설적이고 저질적인 사건에 비위가 상하던 것이다. 이런 저질스러운 사건이 신문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된다는 사실 자체가 장장 500년간을 폐쇄적이고 억압된 도덕관에 익숙해져 있던 조선인들에게는 너무나 낯설었다.
신문을 읽다 말고 헛구역질을 하는 이들도 흔히 보였다. 비위가 약한 몇몇 이들은 신문을 읽다 말고 제가 아침에 뭘 먹었는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보여주기도 했다.
근대적 언론이라기보다는 관보이자 상소문에 가까웠던 대한 일보의 특성상 기사는 사진이나 삽화 하나 없이 글로만 빼곡히 한 면이 가득 차 있었으나, 그 덕분에 효과는 극대화되었다.
“아니 도대체 이런 세세한 것들까지 어떻게 알 수 있었던 거지?”
이는 기사를 읽었다면 누구나 느꼈던 감상이었다. 관계를 맺기 전에 사위에게 뭘 먹였고, 관계를 맺기 전에 민자영이 어떤 옷을 입었고, 어느 날 몇 시진 동안 밀회를 했는지까지 하나하나 편집증적으로 기록 되어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모든 객관적인 사실은 누군가에게 호소하려 하지도, 세상 사람들을 분노하게 하려 하지도 않고서 다만 평이하게 산문처럼 줄줄이 나열되었다. 거기에 언문은 조사나 부사로만 쓰고 온통 한문으로 빼곡히 채우니 신문기사라기보다는 고발장에 가까운 양식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온통 한문으로 빼곡히 채운 덕분에 묘사가 더욱 자세해진 것 또한 사실이었다.
상상력이 개입할 여지조차 없이 정황묘사를 하나하나 세심하게 적어두었던 것이다. 한양 시민은 그 친절한(?) 문체에 읽으면서도 구역질이 치미는 걸 느껴야만 했다.
구역질은 뒷장을 펼친 순간 정점에 달했다.
“한양의 명가들이 이 불륜 혐의를 덮어달라 청탁했다고···.”
김구는 그걸 읽은 순간 몸을 가눌 수 없었다. 머리가 새하얗게 표백되는 듯하였다. 이쯤 되니 끔찍하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이 기사에 실린 내용이 모조리 날조된 거짓이고, 현실은 지금 이 가짜 기사에 묘사된 것보다는 따뜻하고 정의로운 곳이라고 믿고 싶어졌다.
그러나 그럴 리가 없었다. 다른 이도 아닌 그 최익현의 기사였다. 다른 신문들이 워스파이트 사건에 대해서 온갖 추측성 기사들을 퍼부으며 신문 구독자를 늘려가던 와중에도 혼자 명확한 사실에만 알려진 기사들을 내놓았던 대한 일보의 기사였다.
확고부동한 증거가 있으니까 최익현이 기사를 썼을 것이다. 그럼 이 신문에 실린 내용은 모두 사실이고, 현실이라는 뜻이었다.
“이게 사실일 리가 없어. 도대체 어떻게 이런 현실이 있을 수 있는 거야. 동방예의지국을 자부하던 이 나라에서 도대체 어쩌다 이런 꼴이···!”
그럼에도 김구는 현실을 인정할 수가 없었다. 강상죄, 그래 그거야 저지를 수도 있다고 치자. 다름 아닌 그 민 씨가 아니던가. 생각 없이 곳곳에서 원망과 경멸을 사고 다니니 머지않아 추악하게 몰락할 것이라는 예측도 이전부터 흔히 있었다. 설마하니 여기까지 추악하게 몰락할 줄은 아무도 몰랐을 뿐이다.
하지만 강상죄는 결국 고작 해봐야 한 가문의 일이다. 이 때문에 처벌받는다고 해봐야 여흥 민 씨가 못나서 그렇다고 넘어가면 끝이다. 그렇지만, 한양의 명가들이 이를 감싸주려 했다는 건 이야기가 또 다르다.
어째서 저들이 강상죄를 감싼단 말인가. 차라리 역모죄를 감싸면 감싸지, 왜 하필이면 강상죄인가. 도대체 감쌀 구석이 어디 있다고 그 추악하고 저질스러운 죄를 감싼다는 말인가?
혹, 다른 한양의 명가들마저 대체로 사정이 비슷한 것은 아니었을까?
“···우웨엑!”
김구는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멀건 타락죽이 입에서 뿜어져 나왔다. 소화되다 만 찹쌀이 콧구멍을 통해 흘러내렸다.
지독한 냄새가 났다. 앞으로 평생 잊을 수 없을 끔찍한 냄새라고 김구는 생각했다. 그러나 이 지독하고 끔찍한 냄새조차 토사물 범벅이 된 신문에 담긴 저질스러운 현실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웨에엑! 웨엑! 웨에에엑···!”
더는 나올 것도 없어 멀건 물만 나오는데도 김구는 제자리에 엎어져 계속하여 멀건 물을 뱉어냈다. 저 멀리에서 역무원들이 휘파람을 불어대는 소리가 들렸다. 김구만이 아니라 곳곳에서 토사물을 토해내고 있었으니 저들에게는 날벼락이 따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역무원들을 수고스럽게 하여 죄송하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다른 이들에게 폐를 끼치기 전에 어서 치워야 한다, 옷이 다 젖기 전에 멈춰야 한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 생각만은 끝없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이건 꿈이다. 꿈이야. 꿈임이 틀림없어! 만일 꿈이 아니라면···.’
김구는 피눈물을 흘리는 심정으로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지금 이 순간이 꿈이기를, 꿈이 아니라면 정정보도가 나오기를 말이다.
그러나 그렇게 기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는 꿈이 아니었고, 정정보도는 없었다.
참으로 말세였다.
***
그날 오후, 황실에서는 짧은 성명으로 이 사건에 대하여 견해를 밝혔다.
“「조선 천지가 참으로 복잡하고 괴기하다.」”
이것이 어떤 사건을 지칭하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은 따로 필요 없었다. 안 그래도 한양 민심이 어수선한 이때 황실의 입장발표는 명가들에게 함부로 비판의 칼날을 향하지 못하던 모든 이들에게 무제한의 면제권을 부여해주었다.
사실 여부를 의심하려고 해도, 이걸 보도한 사람은 다름 아닌 그 최익현이다. 상대가 상대이니 조심해야 한다는 논리는 다름 아닌 황실에서 우려를 표한 시점에서 무력화되었다.
그럼 이제 모든 무장을 해제당한 한양의 명가들을 일방적으로 두들겨 패는 성난 여론만이 남을 따름이었다.
“야 이 개나리들아! 만인의 존경을 받으라고는 이제 기대도 하지 않는다만, 하다못해 사람다울 수는 없는 거였나? 하다 하다 이놈들이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지랄이야!”
“차라리 역모죄를 감싸면 저 치들 전부 다 깡그리 역적이었구나-하고 이해라도 가지. 강상죄를 감싸다니 도대체 무슨 생각이냐! 뇌가 메밀면발이 되기라도 한 거냐!”
“진실을 밝혀라! 도대체 다른 놈들은 얼마나 더럽길래 저걸 감싸고도는 거냐? 하나도 남기지 말고 낱낱이 죄상을 밝혀야 한다!”
여론은 활화산처럼 들끓었고, 이제 비난의 대상은 여흥 민씨뿐 아니라 안동 김씨를 포함한 한양의 명가들 모두에게 확산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여론이 들끓는 와중에도 주류 언론들은 이에 대해 침묵을 지켰다.
그도 그럴 것이, 여흥 민씨 하나라면 한양일보만 침묵하거나 변명하면 그만이었으나 이제 한양 명가들 전반에 대한 비난이 되어 버렸으니 주력 신문사들 전부가 입을 다물거나 변명해야 할 처지에 놓인 것이다. 여기에 장작을 불어넣으면 어떤 일이 날지 뻔히 알던 언론으로서는 입을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그들이 침묵한다고 묻힐 일이 처음부터 아니었다는 점이다.
“진실을 밝혀라!”
“이 나라의 언론인들이 진정 신시대의 언관을 자부한다면 목에 칼이 들어와도 바른말을 해야 하는 것 아니었나!”
“저들 편할 때는 그렇게 있는 이야기 없는 이야기 다 지어내더니, 이제 불리한 이야기가 나오니까 싹 입을 다무는 거냐? 하다못해 시궁창 쥐새끼들도 이 나라의 언론인들보다 졸렬하지는 않을 거다!”
워스파이트 사건과는 정반대의 양상이었다. 분노한 국민이 언론들에 후속보도를 요구하고, 역으로 언론들은 어떻게든 사태를 진화시키기 위해 바빴다. 그리고 언론들에는 대단히 유감스럽게도, 국민은 최익현의 대한 일보를 통해 후속보도를 질리도록 접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대한 일보는 매일 같이 후속보도를 쏟아냈다. 이는 딱히 신문 구독자를 늘려보려고 이미 확보한 증거를 일부러 여러 번에 걸쳐서 보도했다기보다는, 애초에 고발장에 가까운 문체로 증거 하나하나를 쭉 나열하다 보니 하루 치 신문으로는 지면이 부족했던 까닭이었다.
평소라면 국민도 이렇게 지루하고 길게 늘어지는 기사를 읽으려 하지는 않았겠지만, 지금은 다른 주류 언론들이 침묵하는 와중에 이런 식으로나마 계속 장작을 넣어주던 건 대한 일보뿐이었다. 자연히 신문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고, 어떻게든 작금의 사태를 진정시키고 싶었던 주류 언론들의 시도는 허무한 실패로 끝났다.
***
“이, 이 황소 같은 놈! 그렇게 빌었는데도 기어이 들이받아서는 이 사달을 내놓다니! 제기랄, 제기랄!”
김병국은 뒤늦게 분통을 터뜨렸으나, 이미 늦은 다음이었다. 김병국에게 가장 분통이 터지는 사실은 하필이면 상대가 최익현과 대한 일보라는 사실이었다. 상대가 무슨 말을 해도 들은 체도 않고서 제 할 말만 하는 최익현도 최익현이지만, 대한 일보의 뒷배는 다름 아닌 이 나라의 황실이다.
한마디로, 이번 사건의 배후에 황실이 있을 거라는 이야기였다.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떼는 것도,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날조된 거짓기사라고 잡아뗄 여지도 없는 것이다. 그런 논리를 펴는 순간 수구 유림의 우상 최익현이 거짓을 고해 황실을 속였다는 이야기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물론 당연히 그렇다고 이 모든 게 사실이라고 인정할 수도 없다.
인정하는 순간 모든 게 끝장이다. 김병국 혼자서 죽는 거라면 차라리 다행이지, 여차하면 안동 김씨와 한양의 명가 전부가 함께 망할 판국이다. 그럼? 방법은 하나뿐이다. 끝까지 침묵하면서 태풍이 지나갈 때까지 몸을 움츠리는 것.
그러나 침묵을 지키겠다는 건, 달리 말하면 아무리 사건이 자신에게 불리하게 흘러가도 변명하지 않겠다는 이야기와 다르지 않다. 결국, 그 또한 느릿하게 죽어가는 길이다.
“아니, 방법은 있다.”
김병국은 눈을 희번득 빛냈다. 그의 눈동자는 집념으로 가득했다.
“이렇게 된 이상 민겸호 그놈에게 다시 시선을 틀어야 한다. 다들 민겸호 놈에게 손가락질하느라 바빠서 본가와 관련된 건 자연히 잊게 하면 돼!”
김병국은 이를 악물었다. 그것이 지금 그가 생각해낸 최선의 방책이었다. 그리고 이를 위한 계략도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한 입으로 두말하는 꼴이 되었지만···. 어쩔 수 없구나. 그 민겸호 조카사위 놈은 이대로 죽어줘야겠다.”
한마디로, 이완용을 죽이는 것이었다. 김병국은 설령 실패하더라도 안동 김씨가 의심당할 일은 없다고 확신했다.
상식적으로 하필이면 민자영과의 불륜이 밝혀진 다음 암살시도가 일어난다면 그 범인은 여흥 민씨일까, 안동 김씨일까? 누가 봐도 여흥 민씨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안동 김씨가 이완용을 죽여야만 할 동기는 없지 않던가.
마침 이완용도 그 처도 안동 김씨 본가에 의탁하고 있던 차다.
무엇보다 제 둥지에 제 발로 들어온 쥐새끼 하나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서 놓칠 안동 김씨가 아니었다.
그러나, 가능한 한 의심받을 여지는 줄이고 민겸호가 죄를 추궁당할 여지는 키워야 하지 않던가.
“국외망명이라-.”
김병국은 비릿하게 웃었다.
새해 초엽부터 산 재물을 양껏 가져다 바칠 예정이니 당분간 남해는 잔잔해질 터였다.
< 저질스러운 현실 > 끝
ⓒ 리첼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