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폭군 고종대왕 일대기-416화 (416/530)

< 낙관주의 >

모건이야 그야말로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다 못해 미치고 팔짝 뛸 일이었으나, 사실 이는 모건이 처음부터 매킨리의 심리를 잘못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이 아니라면 두 번 다시 아메리카인만의 아메리카 대륙을 실현할 기회는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것입니다!"

"옳소! 바로 그 말대로요! 독립의 아버지들이 독립을 선언한 지도 어느새 100년을 넘겼소. 그런데도 아직도 우리 신대륙은 유럽의 시종인 채 변하지 않고 있소. 우리 신대륙 인들은 도대체 언제까지 저들의 시종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이오!"

"자유 아메리카 만세! 아메리카 해방 만세! 만만세!"

이 무렵 미국 정계는 일종의 위기감에 빠져있었다. 미국이 더는 서쪽으로 확장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었다. 아시아 대륙이 점차 한 덩어리가 되어가며 아시아 대륙이 미국 경제의 부속품이라기보다는 하나의 독자적인 세력이 된 까닭이었다. 일부러 한국과 밀약을 맺어가면서 미드웨이 환초라도 확보하려고 시도한 것도 이런 위기감과 절대 무관하지 않았다.

공화당이건 민주당이건 이점에서는 같았다. 건국 이래로 늘 서쪽으로 전진해온 미국이 아시아라는 벽을 만나 확장한계에 부딪혔음을 이미 미국 정계에서는 누구나 알고 있었다. 의견이 갈린 부분은 더는 서쪽으로 나아갈 수 없다면 그럼 이제부터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하는 부분이었다.

우선 동쪽은 논외였다. 미국은 여전히 영국과 대서양을 두고서 직접 겨루기에는 힘이 부족했다. 따라서 그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남쪽, 즉 중남미였다. 민주당은 자유무역을 통한 경제블록 형성을 제안했지만, 공화당은 보호무역을 통한 미국 우선주의를 제안했다. 중남미를 발아래에 두는 거로 만족할 것인가, 경제적 식민지화시키는가를 두고서 다툰 셈이었다.

그리고 어느 쪽이 되었건 간에 미대륙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유럽은 눈엣가시였다. 모건 또한 이 부분을 모른 건 아니었다. 그가 알지 못했던 건, 그가 미국을 떠난 동안 미국에서는 이미 구체적인 전쟁계획이 수립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지금 영국은 더없이 위태롭습니다. 우선 본토함락의 위기는 피했지만 잠시나마 수도를 잃었으니 사기가 떨어질 대로 떨어졌겠지요. 이런 상황에서 캐나다가 공격당한다면 영국은 우리와 교섭을 택할 것이라 자신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깨물듯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캐나다를 수복하겠다 나서면 어떻게 한다는 말입니까?"

"지브롤터가 닫혔습니다. 이제 영국은 지중해에 갇힌 지중해 함대를 꺼내려면 희망봉을 돌아와야 하지만 프랑스는 지브롤터를 통해 자유로이 대서양으로 나올 수 있게 되었지요. 도버 해전에서 이겼다지만 프랑스 대서양 함대가 전멸한 것도 아니고, 영국 대서양 함대도 그 나름대로 타격을 입었으니 각개 소모를 각오하지 않는 이상 침공에 곧장 대응하지는 못할 겁니다."

"흐음, 좋습니다. 그렇다면 영국이 전면전을 택할 경우, 참모부에서 판단한 고비는 언제까지입니까?"

"3월에 개전한다면, 5월 말까지가 고비입니다. 그전까지 노바스코샤 주와 뉴펀들랜드 섬을 확보해야지만 영국의 상륙 시도를 사전에 차단하고 본격적인 신대륙 해방에 착수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 무렵 미국 전쟁성은 전황을 크게 낙관하고 있었다. 당장 유럽 전선만으로도 아주 바쁜 영국이 미국과 전쟁을 택할 리도 없을뿐더러, 설령 전쟁을 택하더라도 식민지 군이 대거 유럽 전선에 끌려가 텅 빈 것이나 다름없어진 캐나다 즈음은 상대도 아니라고 확신한 것이다.

그 증거로, 3월에 개전하면 5월 초면 영국에서 대응할 것이라는 예측을 다름 아닌 미국 전쟁성 스스로 내놓았음에도 전쟁성은 2개월이라는 빡빡한 일정으로도 충분할 거라 자신하고 있었다. 지난 10년간 꾸준한 군비증강을 거쳐왔으니 이제 설령 영국이 상대라도 대등하게 싸울 수 있다는 자신감이 그 아래에 깔렸기도 했지만, 사실 이건 그보다는 무책임한 낙관론에 가까웠다.

캐나다의 주요 도시들이 미국과의 접경지대에 몰려있는 것은 사실이고, 그런 만큼 기습적인 개전이 제대로 먹힐 경우 쉽사리 무력화되는 것도 사실이라지만 그에 대비해 영국이 준비한 요새지대를 완전히 무시하고 있던 것이다.

"5월까지라니, 너무 기한이 빡빡한 거 아닙니까? 실패한다면 말할 것도 없지만 성공한다고 해도 적잖은 인명손실이 있을 것이고, 그럼 다가올 선거에서 참패를 각오해야 할 겁니다. 저는 너무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부분은 저 또한 염려하고 있습니다만, 이미 영국은 궁지에 몰렸습니다. 저는 우리가 캐나다를 점령한다면 영국은 우리와 교섭을 택하리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도 공감합니다. 당장 영국에 중요한 건 유럽이지 신대륙이 아닙니다. 영국은 침묵할 것입니다. 양면 전선은 영국의 선택지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낙관론은 공화당 당 지도부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전쟁성이 설령 영국이 전면적인 대응에 나서더라도 이길 수 있다! 라는 여론이 주류였다면 공화당 측은 처음부터 영국이 소극적으로 대응하거나 아예 침묵하리라 추측한 것이다.

이 또한 낙관론이었으나, 2개월 안에 캐나다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던 전쟁성에 비하면 그나마 현실을 직시하고 있다고 할 수 있으리라. 공화당이 기대한 2차 미영전쟁은 기습적인 선제공격으로 취할 수 있는 것만 모두 취하고서 재빠르게 협상에 나서 정당한 대가를 보장받는 것이었다.

"구태여 전쟁까지 필요 있겠습니까? 전쟁 위협만으로도 충분할 것입니다. 영국 또한 이런 상황에서 우리 합중국과 전쟁을 바라지는 않을 테니, 접경지대에 병력을 증강하는 것만으로도 영국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올 수 있을 것입니다."

역설적으로 윌리엄 매킨리는 이러한 공화당 지도부에서 상대적인 소수를 차지하던 반전파였다. 딱히 그가 뒤늦게 반전주의에 눈을 떴다기보다는, 어차피 현실적으로 미국이 브리튼 열도를 함락시키면서 압승을 거두는 전개는 불가능해 보이는 이상 미 대륙에서의 제한적인 전쟁으로 취할 수 있는 것들은 무력시위 정도로도 충분히 얻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매킨리는 제국주의자였으며 기독교 근본주의자였으나, 모험주의와는 거리가 멀었다. 따라서 매킨리가 의회에 회의에 부치려고 하였던 전쟁계획 적색 또한 전쟁 위협으로 영국을 압박해 협상장에 끌어내려는 목적이었지, 정말로 영국과의 전쟁을 계획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모건을 위시한 특사단이 전해온 소식은 이런 매킨리의 심경에 변화를 가져왔다.

"이런 맙소사! 한국이 영국에 양보했다고? 그렇다면 영국이 인도를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이는 처음부터 전쟁을 계획하고 있었던 주전파라면 모를까, 전쟁 협박을 통한 협상을 계획하고 있던 매킨리에게는 더없이 끔찍한 소식이었다. 애당초 매킨리가 전쟁 협박이 통할 거라 생각한 이유가 영국이 궁지에 몰렸기 때문이었는데, 영국이 인도를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되면 영국에도 여유가 생긴다.

당장 인도가 풀려나기 시작하면 인도에서만 못해도 100만 대군 이상의 병력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아무리 전선이 한없이 넓고 길어도, 100만 대군이 투입되기 시작하면 못해도 한 전선당 10만 명씩은 추가로 배치할 수 있을 것이 틀림없었다.

그 말인즉슨 매킨리가 무력시위를 선택할 경우, 영국은 협상에 나서는 척하면서 캐나다에 병력을 증파할 시간적 여유를 가지게 된다는 이야기였다. 하다못해 캐나다에 2만 명 정도만 증파되어도 영국은 요새지대를 활용해 대등한 입장에서 미국과 협상할 수 있을 것이고, 지원군이 5만 명이 넘어가기 시작한다면 이제 미국을 역으로 압박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한마디로, 매킨리가 바라건 바라지 않건 캐나다를 손에 넣으려면 이제는 정말로 전쟁밖에는 답이 없어진 것이다.

"전쟁이다! 오늘에야말로 우리는 캐나다를 해방하여 우리 건국의 아버지들이 미처 이루지 못하였던 모든 북미 식민지의 해방이라는 대업을 이룰 것이다!"

한번 판단이 서자 결단은 빨랐다. 이는 매킨리의 결단력이 빛을 발했다기보다는, 매킨리가 더는 전쟁을 요구하는 당 지도부의 요구를 일부러 회피하지 않게 되었다는 표현이 정확했다. 백악관은 연방군에게 북진을 명했고, 연방군은 백악관의 명령에 충실히 따랐다.

그리고 미국의 캐나다 침공 소식은 대서양 회선을 통하여 그 즉시 영국에도 전달되었다.

"미국인들이 캐나다를 침공했다고? 아니 그럴 리가!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저들이 도대체 왜?"

"아, 아직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추측건대 협상 전망을 비관한 것이 아닐는지요?"

"멍청하긴! 정말이지 멍청하구나! 저 양키 놈들은 어찌 이리도 성급한 거냐!"

미국의 캐나다 침공은 영국에는 그야말로 아닌 밤중의 홍두깨였다. 단교를 선언한 이래로 대화가 끊어졌던 클리블랜드 정권과는 다르게 매킨리를 위시한 협상파는 미국이 원하는 건 영국이 미 대륙에서 떠나는 거지 영국과의 전쟁이 아님을 은밀히 전하고 있었던 것이다.

런던에 돌아온 전시내각은 이 협상에서 캐나다 독립을 약속하는 대가로 미국을 우군으로 끌어들이려 계획하고 있었다. 영국 전쟁성에서 현실적으로 미국이 캐나다를 침공한다면 잠시 버틸 수는 있어도 결국 캐나다를 지킬 수 없을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나왔을뿐더러, 당장 프랑스의 영국침공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유사시 도피처의 역할을 더는 기대할 필요가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미국의 캐나다 병합은 인정할 수 없어도, 인도와 마찬가지로 캐나다 독립 순서까지는 인정하자-라는 게 전시내각의 판단이었다. 그럼 미국의 영향력이 극대화되긴 하겠지만, 최소한 영국의 영향력도 일부분 남을 테니까. 하지만 미처 협상이 시작되기도 전에 지레 겁을 집어먹은 미국이 캐나다 침공을 감행한 것이다.

"이를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무엇을 어찌하면 좋겠냐는 말씀이십니까? 당연히 저 멍청한 양키 놈들의 침략에 맞서 싸워야 합니다! 우리는 여왕 폐하의 충성스러운 신민들이 저 포악스러운 폭도들의 군홧발 아래 신음하도록 둘 수 없습니다!"

"그야 물론 바른 말씀이십니다만, 그 경우 우리 제국은 이제부터 대서양을 배경으로 양면 전쟁에 나서야 합니다! 상식적으로 그것이 말이나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협상해야 합니다!"

"협상? 협상이라고요? 그야 물론 저들이 침공하기 이전이라면야 협상 또한 하나의 방법이었겠지요. 그러나 이미 미국인들은 우리와의 전쟁을 택했습니다. 현 상황에서 협상은 곧 항복이라는 걸 어찌 모르십니까!"

"그럼 어쩌자는 말씀이십니까? 기어이 프랑스와 아메리카 모두를 적으로 돌려야 직성이 풀리시겠습니까? 지금 당장 저들이 원하는 건 신대륙을 온전히 손에 넣는 것이지 우리 제국을 멸망시키거나 몰락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 제국을 위한다면 저들과 협상하는 것이 올바른 선택입니다!"

"그것도 시간문제지요! 신대륙을 장악하고 나면 꼭 대서양으로 나오려 할 것이고, 대서양 패권의 상실은 곧 우리 대영제국의 몰락을 뜻합니다. 언젠가는 반드시 일어날 일이라면, 저 멍청한 놈들이 싸움을 걸어온 지금 승부를 봅시다!"

"오, 그거 정말이지 멋지군요! 링 위에 도전자와 미처 승부를 보기도 전에 이제는 새로운 도전자까지 받아들여 2:1로 맞서겠다니! 그래서, 챔피언의 KO 패에 얼마나 베팅하셨습니까?"

미국의 캐나다 침공을 접한 전시내각은 잠시간 아수라장이 되었으나, 결과적으로 우세를 점한 건 협상파였다. 다만 항전파 또한 일방적으로 밀린 것은 아니라서, 타협할 수는 있어도 항복은 절대 있을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캐나다를 지켜내기란 어렵겠지만, 최소한 어려운 와중에도 온 힘을 다해 지키려 했다는 모양새는 갖추자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영국 측에서 가장 먼저 시도한 것은 양면 전선의 회피였다. 달리 말하면, 동맹국 네덜란드에 대한 배신이었다.

"양국은 정정당당히 싸웠으며, 이미 아주 많은 피를 흘렸습니다. 이 이상 전쟁을 끌어가는 것은 무의미하고, 고되고, 참혹할 것입니다. 전쟁을 시작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평화를 되찾는 것은 오로지 용기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행동이라고 하였습니다. 본국은 귀국과의 명예로운 평화를 제안합니다."

"동의합니다. 우리 프랑스는 명예로운 평화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좋습니다. 잠시 길이 어긋났던 양국이 오늘 이렇게 다시금 하나로 모였으니 이보다 기쁜 일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럼, 이제부터 앞으로의 세계를 논해보도록 합시다."

그리하여 4월 6일 영국과 프랑스의 협상대표단이 코펜하겐에서 만났다. 영국은 양면 전선이 부담스러웠고, 프랑스는 이미 실패한 영국침공에 목을 매다가 독일 전선을 외면하는 우행은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종전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양국 간에는 한때 휴전이 선언되었다. 물론 이는 유럽 전선에만 해당하였고, 아프리카에서는 전쟁이 끝나기 전까지 단 한 치의 땅이라도 많이 차지하려는 치열한 전쟁이 계속되었다.

이 종전 협상은 쉽게 결론 나지 못하고서 한참을 끌었다. 영국은 프랑스가 홀란트 왕국을 합병할 수 없도록 막으려 했고, 반대로 프랑스는 이를 어떻게든 회피하려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협상 난항이 양국에 꼭 나쁜 일만은 아니었다. 휴전 기간 영국은 인도에서 병사들을 실어날랐고, 프랑스는 병사들을 동쪽으로 옮겼다.

이탈리아와 독일 전선에 개입할 의사를 보인 것이다. 달리 말하면, 영국과의 전쟁에 흥미를 잃은 것이었다. 이는 그간 프랑스 견제를 위하여 잡혀있던 영국 대서양 함대가 자유를 얻었음을 의미했다. 미국과의 전쟁 준비가 차곡차곡 진행되고 있던 것이다.

"몬트리올 시민들이여,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이 땅에서 영국 압제자들을 내쫓기 위하여 찾아온 해방군입니다! 영국은 물러가라! 자유 퀘벡 만세!"

""퀘벡 공화국 만세! 우리의 미국인 친구들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

그리고 영국이 미국과의 일전을 준비하고 있을 무렵, 연방군은 퀘벡주를 점령하여 퀘벡 공화국의 건국을 선언하고 오타와로 진격하고 있었다. 이는 미군이 특별히 선전하였다기보다는, 미국의 침공에 호응하여 퀘벡주에서 독립을 부르짖으면서 캐나다 자치령에서 떨어져나왔기 때문이었다.

이 무렵 캐나다 전선은 미국 전쟁성에서 예측하였고, 영국 전쟁성 또한 예측하였던 대로 전반적으로 미군의 우세였다. 밴쿠버 함락과 몬트리올을 위시한 퀘벡주의 이탈은 결정적이었다. 백색함대는 뉴펀들랜드 섬의 제해권을 장악하고 해병대의 상륙에 앞서서 해안 요새들을 정리하고 있었고, 밴쿠버는 이미 함락되어 온타리오 주를 제외한 캐나다령 전부가 미국의 영향권 아래로 떨어졌다.

토론토는 이미 연방군에게 포위되었고, 오타와도 이제 연방군의 사정거리 안이었다. 미국 전쟁성에서 예측하였던 대로 2개월이면 캐나다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는 무책임하기까지 한 낙관론이 그대로 현실이 되는 듯하였다.

당초 예측하였던 것과는 다르게, 영국 대서양 함대가 4월 말에 벌써 버뮤다 해역에 모습을 드러내지만 않았더라면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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