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폭군 고종대왕 일대기-417화 (417/530)

< 할아버지 >

영국 전시 내각의 전쟁목표는 크게 세 가지였다.

하나, 본토의 사수.

둘, 유럽에서의 안전

셋, 대서양 패권의 사수.

이 중 첫 번째는 프랑스의 영국 침공을 저지함으로써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두 번째는 지브롤터와 네덜란드를 상실하면서 사실상 실패로 돌아가, 다음 전쟁 혹은 결정적인 전선 변화를 기대해야만 했다.

그리고 세 번째, 대서양 패권의 사수. 이 부분은 프랑스 대서양 함대를 꺾은 시점에서 절반의 달성을 이룬 상태였다. 남은 건 미국과의 타협이었고, 미국이 기습적인 공격을 통한 대서양 패권 탈취를 시도한 시점에서도 영국 전시 내각의 궁극적인 목표는 여전히 미국과의 타협이었다.

다만 미국과의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하여 본때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라는 게 전시 내각의 판단이었고, 이러한 판단이 영국 대서양 함대의 신속한 대응을 끌어냈다.

"저 얼빠진 양키 놈들에게 여왕 폐하의 분노를 보여주자! 감히 대영제국을 얕본 결과가 어떻다는 걸 깨닫게 해줘라!"

"당황하지 마라! 저놈들은 이제 막 대서양을 건너왔다! 우리가 저 라이미 놈들에게 밀릴 이유가 없다!"

그리하여 4월 28일, 미영전쟁 이후 80여 년 만에 두 앙숙이 카롤리나 비치에서 20km 떨어진 미국 영해에서 맞부딪혔다. 영국 대서양 함대의 대응 속도는 이 당시 미국으로서는 전혀 예상 밖의 것이었기에, 대응에 나선 것은 미국 해군이 아니라 미국 관세밀수감시청-요컨대 해안경비대였다.

결과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영국 대서양 함대에 의한 일방적인 유린이었다. 백색함대와 정면으로 충돌하게 되었다면 모를까, 전함 1척 준비되지 않은 해안경비대 따위에 밀린다는 건 로열 네이비의 수치였다. 자멸을 각오한 미국 어뢰정 분함대의 결사적인 돌격에도, 영국의 순양함들은 당황하지 않고 거리를 유지하며 차근차근 미국 해안경비대의 헛된 저항을 정리해갔다.

결국, 전투가 시작된 지 2시간이 되지 않아서 미국 해안경비대는 전투해역에서 이탈했다. 미처 해역에서 이탈하지 못한 전투함들은 나포되거나 격침되었고, 혹은 자침을 택했다. 그 뒤에 남은 건 이제 카롤리나 비치뿐이었다.

"모조리 불태워라! 여왕 폐하의 분노를 보여주자!"

이때부터 백색함대가 남하할 때까지 3주간에 걸쳐 영국 대서양 함대는 스페인령 쿠바에 기항하며 미국 남부 해안가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다녔다. 미국의 대서양 패권 도전에 불안해하는 건 스페인 또한 마찬가지였기에, 유럽에서와 다르게 신대륙에서는 영국 대서양 함대를 지원하는 데에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이와 함께 영국은 멕시코 정부와 은밀히 접선하여 미국을 공격하라고 부추기기도 했으나, 포르피리오 디아스 대통령이 사양하면서 무산되었다. 대신에 영국은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등 중남미의 지역 강국들과 접선하기 시작했다. 영국을 지원하거나, 지원할 수 없다면 하다못해 미국을 지원하지 말라고 요구한 것이다.

그들 중 영국을 공개적으로 지원한 나라는 없었으나, 영국의 중립요구는 그대로 받아들여졌다. 미국의 성장을 달가워하지 않았던 프랑스와 스페인이 영국의 등을 떠밀어주면서, 이제 미국이 주창한 아메리카 해방전쟁은 사실상 미국과 유럽의 대결이 되었다.

"저 양키들이 앞으로 몇 달이나 버틸 수 있을 거라 생각하십니까?"

"글쎄요, 길어야 반년이겠지요. 우리에게는 양키 금융가라는 인질이 있습니다. 그들을 통해 은근히 협상을 종용한다면 저 양키들은 머지않아 협상장에 나오지 않을 수 없겠지요."

애초 5월 초에는 전쟁이 끝날 거라던 미국 전쟁성의 바람이 허무하게 실패로 돌아가고 5월 중순을 넘어갈 때 즈음부터 영국 전시 내각은 승리를 확신하기 시작했다. 영국 전시 내각은 개전과 동시에 모건을 위시한 미국 금융가들과 접선하여 연방정부와 협상을 중재해달라고 요청하였고, 시티 오브 런던에 목숨줄을 저당 잡힌 미국 금융가들은 영국의 요구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이는 매킨리 정권이 궁지에 몰렸음을 뜻했다. 미국 금융계는 언론계를 총동원하여 공화당이 무책임한 전쟁으로 청년들의 목숨을 낭비하고 있다며 비난을 퍼부었다. 신문에는 매일 같이 질질 끌고 있는 오타와 포위전과 쑥대밭이 되어가는 남부 해안가 지대의 소식들이 실렸고, 평소라면 뒤로 빼기 바빴던 반전주의 지식인들의 사설을 전면에 실어댔다.

"「잠자는 사자를 깨우다! 궁지에 몰린 합중국!」"

"「무엇을 위한 전쟁인가? 무의미한 전쟁에 죽어가는 우리 청년들!」"

여론은 빠르게 악화되어 갔고, 이때부터 백색함대는 천천히 미국 영해에서 이탈하기 시작했다. 이 무렵 영국 대서양 함대의 전략은 백색함대가 남하하기 전까지 남부 해안가 지대를 초토화한 다음 그 이후로는 쿠바 연안을 맴돌며 백색함대가 캐나다를 지원할 수 없도록 저지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백색함대와 충돌할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다.

영국 대서양 함대가 저지른 가장 큰 실수는, 그들이 조금이라도 빠르게 전쟁을 끝내고 싶다는 욕심 탓에 애초 예정했던 것보다 오래 머무르고 말았다는 사실이었다.

"놓치지 마라! 뉴올리언스의 복수를 하자! 저 이빨 빠진 사자에게 사자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는 걸 보여주자!"

"겁먹을 것 없다! 수병 한 사람 한 사람의 경험은 이쪽이 위다! 저 무식한 양키들에게 격의 차이를 보여주게나, 제군들!"

5월 27일 나사우 근해에서 뒤늦게 남부에 다다른 백색함대가 영국 대서양 함대와 충돌했다. 도버 대해전에 비할 바는 못 되었으나, 이 또한 미국 측 전함만 8척에 영국 측 전함도 11척이 모인 대해전이었다.

해전에서 보다 유리했던 건 영국 측이었다. 백색함대는 뉴펀들랜드에서 카리브 해안까지 강행군을 감행해야 했고, 대서양 함대에서 백색함대를 한발 앞서 견시에 성공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대서양 함대는 교전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이들의 목표는 백색함대와의 교전이 아니라 해역에서 이탈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27일 대서양 함대는 시종일관 백색함대를 상대로 우세하게 전투를 끌어가면서도 해역에서 이탈하는 미 군함들을 추격하거나 전과를 확대하려 하지 않고서 쿠바 근해로 물러났다.

"태평양에서 카리브 해까지 오느라 정말 수고가 많았다, 제군들. 그렇지만 아직 쉴 때가 아니다. 기관 전속 전진! 어서 저 라이미 놈들의 궁둥짝을 걷어차 주러 가자!"

그것이 패착이었다. 백색함대가 장장 34시간에 걸쳐 대서양 함대를 끈질기게 추격하는 동안 영국 대서양 함대가 침공해왔다는 소식을 듣고서 급히 파나마를 돌아온 미국 태평양 함대-통칭 황색함대가 대서양 함대의 항로를 가로막은 까닭이었다.

비록 신속한 후퇴로 다행히 역포위는 피했으나, 카리브 해에서 전함 1척을 잃고 2척이 본국으로 귀항하여 건선거 신세를 지게 된 영국 대서양 함대는 더는 미국 영해에서 통상파괴를 시도할 수 없었다. 물론 이는 대서양 함대와의 교전 중에 전함 2척을 잃고 1척이 건선거에 틀어박힌 미 해군도 다르지 않았다.

결국, 이때부터 지루한 대치가 시작되었다. 쿠바에 기항한 대서양 함대는 보름에 한 번꼴로 미국 남부 연안을 어슬렁거렸고, 그럴 때마다 미 연합함대도 출동하여 고작 해봐야 1km 남짓한 거리를 두고서 으르렁거렸다.

"뭐야, 생각보다 별것 아닌데?"

"이빨 빠진 사자 따위 두렵지 않다! 미합중국 만세!"

이 나사우 해전과 연이은 엑서마 해전의 전과가 전해지자 미국 국내에서는 또 한 번 여론의 반전이 일어났다. 그동안 미국인들이 기억하고 있던 영국이란 그야말로 감히 어떻게 할 수 없는 애증의 대상이었다. 일전에 영국과 전쟁이 일어나 백악관이 불타올랐던 게 불과 80여 년 전이었다. 노년층 중에는 그 시절의 잿더미가 된 백악관을 기억하고 있는 이들도 극히 드물게나마 남아있었다.

따라서 미국이 캐나다를 침공하였을 때, 북미해방이라는 대의에 호응했음에도 미국인들이 가장 걱정했던 건 영국의 군사적 보복 그 자체였다. 그러나 막상 까보니 미국이 그 무시무시하다는 영국 대서양 함대를 상대로 생각했던 것보다 대등하게 맞서 싸우고 있던 것이다.

이러한 여론 변화에는 영국이 약탈하였던 미 남부가 남북전쟁과 유색인종의 정치 진출을 계기로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게 여겨지던 탓도 있었다. 남부인들의 고통과 반정부 여론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게 받아들여진 것이다. 아직도 부분적으로 군정이 이루어지고 있는 남부의 반발을 억누르는 건 연방 정부에게는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만일 뉴욕을 불태웠다면 당장에 탄핵 여론이 일었겠지만, 영국은 뉴욕을 공격할 수 없었다. 뉴욕의 양키 금융가들이 전후 협상을 중재해주기로 되어있는 상황에서 뉴욕을 불태운다는 건 미국과의 사생결단을 뜻했다. 영국의 목표는 미국을 전쟁에 지치게 하여 스스로 협상을 구걸하게 하는 것이었지, 미국과의 사생결단이 아니었다.

"본격적인 개회를 알리기에 앞서, 한 가지 간단한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분명 5월 전에는 전쟁이 끝날 것이라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예, 존경하는 의원님. 분명 그랬습니다."

"그런데 어느새 벌써 8월에 접어들었군요. 그렇지요?"

"···예,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미국인들이 자신감을 되찾게 되면서, 전쟁은 양국 정부에서 예상하였던 것들보다 훨씬 길어지게 되었다. 전쟁은 8월을 넘어 반년을 바라보게 된 와중에도 결론이 나지 않았다. 양측의 주력해군은 카리브 해에 붙잡혔고, 육군은 온타리오에 붙잡혔다.

그러나 시간은 미국의 편이었다. 개전 초 반전여론과 책임론의 위기에서 벗어난 매킨리 정권은 단지 영국과 대등하게 맞서고 있는 것처럼만 보여도 미국이 어엿한 열강의 반열에 올랐음을 과시할 수 있었다. 이는 개전 초기 영국의 승리를 점치던 신대륙의 여러 나라들에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반대로 영국은 초조해져 갔다. 본국에 귀항하였던 전함들이 수리를 마치고서 귀환하면서 영국 대서양 함대가 뒤늦게 적극 미국 연합함대를 도발하며 함대 결전을 시도했으나, 이번에는 미국 측에서 뒤로 물러나며 교전을 회피했다. 그렇다고 해안요새가 재건된 와중에 영해 깊숙이까지 따라가는 건 자살행위였다.

"오타와에는 아직도 유니언 잭이 휘날리고 있던가?"

"그럼요. 아마 크리스마스에도 계속 유니언 잭이 휘날리고 있을 겁니다."

"제기랄! 빌어먹을 육군 놈들! 형편없다는 거야 진즉 알고 있었지만 벌써 반년째 시간만 끌고 있다니! 베이컨이나 구울 시간에 대포 한 발이라도 더 쏴보란 말이다, 이 굼벵이들아!"

물론 미국이라고 초조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영국이 정성스레 준비한 캐나다 자치령의 행정수도 오타와의 도시 요새는 허약한 미 육군이 돌파하거나 공략하기에는 너무나 견고했다. 이는 영국군이 개전과 동시에 모든 전력을 온타리오주에 모아두었기 때문도 있었다. 미국에서 전쟁에 지쳐 스스로 물러날 때까지 캐나다의 심장부 온타리오주를 사수해 전후 협상에서 우세를 점하기 위함이었다.

무엇보다 처음부터 어느 정도 장기전을 각오했던 영국과 다르게 미국은 전쟁이 금방 끝나거나 영국이 침묵할 것이라 낙관하고 있었던 만큼 장기전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았다. 미국의 전시비축물자는 이미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고, 전시 국채는 종전을 요구하는 모건을 위시한 양키 금융가들이 불매운동을 진행하면서 거의 팔리지 않았다.

* * *

그렇게 어느새 10월이 되었다.

영국은 신대륙의 지역 열강 하나 뜻대로 무릎 꿇리지 못하면서 자신들이 이빨 빠진 사자가 되고 말았다는 걸 실감해야만 했고, 미국은 어엿한 열강이 되기에는 아직 준비가 미흡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도 양국은 섣불리 먼저 종전을 제안할 수 없었다. 먼저 종전을 제안하는 것이 곧 패배를 인정하는 꼴이라는 걸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유럽 열강들의 중재를 바라기에는 이들에게는 2차 미영전쟁 그 자체가 하나의 호재였다. 이들은 가능한 한 미영전쟁이 길게 끌면서 양국의 국력을 소진하기를 기대했지 조기종전으로 깔끔한 결론이 나기를 바라지는 않았다. 그리고 조기종전을 바라는 영국의 우호국들은 당장 전쟁에 정신이 팔려 협상을 중재해줄 만한 여유가 없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렇다고 변방의 소국들에 중재를 요청하기에는 양국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못했다.

"그래서, 너다."

이형은 술을 홀짝이고 있었다. 경복궁을 재건하면서 특별히 명해 가장 먼저 완성하도록 한 강녕전에서 말이다. 아직 경복궁 자체는 완공되려면 1년은 더 남아있었지만, 황제가 몸소 거함으로서 궁전으로써 활용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음을 과시하기 위함이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도통 모르겠습니다."

이강으로서는 어리둥절할 따름이었다. 갑작스레 호출을 받은 것도 의아했지만, 그 주제는 더더욱 의아했다.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분수에 넘치는 일이 아닐는지요. 제가 저 두 나라를 중재하려고 한들, 과연 저 두 대국이 귀를 기울여주기는 하겠습니까?"

"누가 네가 하라고 했더냐. 중재는 당연히 우리 대한에서 권유할 거다. 네 역할은 그저 기자들 앞에서 한마디 해주는 것뿐이다."

"그것이 도대체 무슨 소용이-. 아."

뒤늦게 이강은 고개를 끄덕였다. 몸은 약해도 머리는 비상한 그였다. 뒤늦게 자신의 부인이 영국의 공주였음을 떠올린 것이다.

그런 이강이니 부인의 나라 영국을 걱정하는 언사를 하더라도 명분이 선다. 마찬가지로 한국은 미국과 오랜 친교를 유지해왔으므로 중재를 제안하여도 명분이 선다. 무엇보다, 일단은 열강이니 어지간한 변방의 소국들보다는 훨씬 위신이 선다.

어차피 두 나라에 이제 중요한 건 최대한 자존심을 챙기면서 이 뜻밖의 전쟁을 끝내는 것이다. 이형은 그걸 꿰뚫어 본 것이다.

"뭐, 알아서 할 테니 괜한 간섭은 하지 않으마. 하여간에 계획대로 풀리는 일이 없군. 그나마 이번에는 생각했던 것보다는 수월하게 풀린 편이라지만, 이래서야 내년까지 전쟁을 끝낼 수나 있을는지, 원."

이형은 나지막이 투덜거렸다. 다만 꼭 나쁜 일은 아니었다. 사실 이형으로서는 프랑스의 영국 침공이 실패로 돌아간 시점에서 나머지 전개는 아무래도 좋았다. 아무튼, 영국이 무사히 남아있기만 하면 알아서 유럽이 하나로 뭉치지 못하도록 견제해줄 테니 말이다.

미국의 졸전도 프랑스의 영국 침공이 실패로 돌아간 시점에서 당연한 결론이었으니 이형으로서는 그리 놀랍지 않았다. 아무튼, 영국이 패망하지 않고, 전후 브리튼 열도가 미국의 손에 넘어갈지 프랑스의 손에 넘어갈지 고민하지 않게 된 것만으로도 이형으로서는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 이걸로 일단 영국을 넘어설 초강대국의 탄생은 저지된 것이다.

그런데도 양국의 평화를 주선하려 나선 건 양국에 빚을 씌워두려 했다기보다는, 가능하다면 한국에서 만국박람회가 열릴 1894년까지는 세계대전이 마무리되었으면 하는 바람 탓이었다. 만국박람회라고 거창하게 준비해 놨는데, 막상 다들 전쟁 중이라 불참한다면 그게 무슨 낭비란 말인가. 만국박람회가 만국박람회이기 위해서는 우선 세상이 평화로울 필요가 있었다.

물론, 그때까지 전쟁이 끝나지 않는다면 그냥저냥 아시아 대륙의 단합을 위한 행사 수준으로 끝내는 방법도 있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기왕 이라면 가능한 한 많은 나라가 참여해야 한국의 위신을 세울 수 있지 않겠는가.

적어도 이형의 생각은 그러했다.

"그래, 오래간만에 만난 김에 소소한 이야기를 좀 해볼까. 요즈음 별일은 없더냐."

"저, 그것이···."

이형은 지나가는 듯한 어조로 대수롭지 않게 물었다. 그러나 그에 답하는 이강의 태도는 예사롭지 않았다.

얼굴을 붉히고, 고개를 떨구는 것이었다.

잠시 무슨 일인가 하여 눈을 가만히 껌뻑거리던 이형은 이내 입꼬리를 뒤틀었다.

"요요요 순번도 모르는 녀석 같으니라고. 네 형은 아직도 감감무소식인데 동생이라는 놈이 기어이 해치운 게냐? 하여간에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오른다더니."

"크, 크흠! 크흠, 크흠! 크흐흠!"

이강은 답하지 못하고서 그저 얼굴을 붉힌 채 헛기침을 해댔다. 그 모습이 퍽 우스워서, 이형은 껄껄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할아버지가 될 날이 코앞까지 다가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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