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폭군 고종대왕 일대기-420화 (420/530)

< 천자와 천명 >

물론 본격적인 행동에 앞서 한양에 있던 황제에게 보고를 올려야 했지만 말이다.

어윤중으로부터 모스크바의 정황을 전해 들은 이형의 반응은 이러했다.

"인민주의자··· 나로드니키···. 아, 브나로드 운동하던 그 녀석들이구만?"

당연하지만 여기에서 브나로드 운동이란 1930년대 일제강점기 시절에 한국에서 진행된 브나로드 운동이 아니라, 그 원본이 된 19세기 말 러시아에서 진행된 브나로드 운동을 뜻했다. 원 역사에서는 알렉산드르 3세 집권 이후 제정 러시아의 탄압에 씨가 마르게 되는 러시아의 토착 사회주의 세력이었으나, 알렉산드르 3세에게 나로드니키의 씨를 말릴 기회가 주어지지도 않았던 덕분에 무사히 살아남은 것이다.

아니, 사실대로 말하자면 단순히 살아남은 것 이상이었다.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서 1,000명 넘는 군중을 동원했다는 사실 그 자체가 나로드니키의 강성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계엄령이 한창인 모스크바에서 군부 정권의 통제에서 벗어난 시위대 1,000명을 동원할 수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럼 내전을 초래한 그 암살미수 사건도 이 녀석들의 짓일지도 모르겠구만."

따라서 이형의 이러한 의심은 대단히 합리적이었다. 원 역사에서 알렉산드르 2세를 암살한 인민의 의지당이 바로 그 인민주의자 테러조직이었으니, 그걸 아는 이형에게는 이 또한 인민의 의지당이 개입한 결과가 아닌가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당사자는 현장에서 사살당하고, 페트로그라드에서는 이렇다 할 후속 조사 없이 무턱대고 알렉산드르 3세 측의 소행이라고 결론지은 이상 실제로 인민주의자들의 음모인지 아니면 정말로 그냥 근왕주의 테러였는지 알 길이 없으니 단지 의심으로 그쳤지만 말이다.

아무튼, 이러한 정황을 알고 있는 이형의 판단은 대단히 신속했다.

"보나파르트 주의자들보다 이 녀석들을 밀어줘야겠군."

이형이 이러한 판단을 내린 가장 큰 이유는 이 인민주의가 아나키즘과 생디칼리즘에 기반을 두고 있는 사상이었기 때문이다. 중앙과 도시의 독재 권력을 거부하고 노조와 향촌 사회 중심의 지방자치 공화정부를 이룩하고자 하는 게 이들의 궁극적인 목표이다.

여기까지 서술하면 21세기 현대 사회에 비추어 보아 쉽게 알 수 있는 사실들이 있다.

첫째, 중앙의 권위를 부정하고 향촌 사회 중심의 지방자치 공화정부를 추구한다는 사실 자체가 자발적으로 국가를 여럿으로 쪼개는 꼴이다. 소련이 비합리적인 공산주의 계획경제 체제를 유지했음에도 불구하고 한때 세상을 양분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막강한 중앙의 권력이었다.

러시아라고 하는 대국을 러시아 제국과 같은 전근대적 시스템에서는 결코 불가능한 수준으로 극한까지 국내를 단결시켜 힘을 쥐어짜 낸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그 반대를 추구한다. 그 위상은 소련에 비하면 현저히 부족할 수밖에 없다.

둘째, 스탈린주의식 초고속 산업화가 불가능하다. 아나코 생디칼리즘 기반의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체제 경직을 이겨내지 못한 공산주의의 전철을 밟지는 않겠지만, 그만큼 산업화 초기의 극미한 산업자본이 한 곳에 뭉치지 못하고 흩어져 도로 아미타불이 되어버리기 쉽다.

그런 와중 내전으로 그나마 산업자본도 공중분해 되고 중앙정부의 역할도 자발적으로 최소화하려 노력하니, 전후 재건 시 한국의 경제적 침공에 대항할 원동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이용하기에 딱이야."

이형에게는 대단히 흡족한 집단이 아닐 수 없었다. 소련처럼 강대해질 염려도 적을뿐더러 사회주의라는 단서를 붙이긴 했으나 딱히 시장경제를 부정하는 것도 아니다. 한마디로 한국에서 빨대를 꽂기 딱 좋다는 이야기다. 어윤중의 보고로는 저쪽에서 먼저 친한파 성향을 보였다고 했으니, 더욱 알맞다.

물론 생디칼리즘=노조주의에 아나키즘=무정부주의 연합이라는 지랄 맞은 조합은 덤이다. 병술 보고서로 한숨 돌리고 경제적으로도 안정된 한국이라면 모를까, 세계대전 직후 황폐해진 유럽에 갑자기 동쪽에서 유럽의 노조 활동과 무정부주의 활동을 지원할 인민주의 정권이 등장하는 순간 유럽 전역에서 난장판이 일어날 것임에 의심할 여지가 없다.

"아예 작정하고 최익현 같은 녀석들을 러시아로 보내버려?"

이형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인민주의자들이 한국에 호의적인 모습을 보인 이유는 인민주의와 유교 사이에 농본주의라는 공통분모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 경제적 측면에서 이들의 차이점은 농업주의를 실현하기 위하여 강력한 중앙정부의 행정 권력이 필요한가, 아니면 반대로 향촌 사회의 자치 권한이 필요한가를 논하는 것을 제외하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그에 앞서서 정치적 성향에서는 왕정주의와 공화주의 간의 정면충돌이 불가피하겠지만 말이다. 좌우지간 농업주의라는 공통분모가 있는 이상, 유학자들 처지에서는 차라리 자유주의자들보다는 인민주의자들 쪽이 더 마음이 잘 맞는 상대들이리라.

"아무튼, 우선 윤중이 녀석에게 한번 잘해보라고 해야겠군. 어디 얼마나 그럴듯하게 처리하나 구경이나 해볼까."

하여, 이형은 순순히 어윤중의 계획을 승인해주었다. 이는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번으로 끝날지도 모르겠지만, 일시적으로나마 모스크바에 천 명 넘는 군중을 소집했다는 시점에서 적어도 모스크바에 인민주의자 세력이 수만 명은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브나로드 운동을 비롯하여 이들의 주요 활동지가 도시가 아니라 농촌이라는 걸 고려하면 실제 숫자는 그 수십 배는 되리라.

여기에 지금 우랄산맥 서쪽에 주둔 중인 아주합종군이 60만가량이다. 내년 중에는 시베리아 횡단철도도 단선 구간으로 운행되기 시작할 예정이니, 장차 더욱 불어날 것이다. 두 세력이 힘을 합친다고 가정한다면, 실패하기가 더욱 어려웠던 셈이다.

남은 건 얼마나 무난하게 일을 성공시키냐는 것뿐이었고, 이형은 어윤중을 믿어보기로 했다.

* * *

"설마하니 황상께서 윤허해주실 줄은···."

그리고 이러한 이형의 반응에 되려 곤혹한 것은 어윤중이었다. 그로서는 아무리 이용하는 것뿐이라지만 이 빨갱이들과 손을 잡아야 한다는 사실 그 자체가 꺼림칙하다 못해 소름이 다 끼쳤다. 원래도 그리 사회주의자들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붉은 광장에서 적기와 나란히 펄럭이는 태극기를 본 시점에서 어윤중의 거부감은 극에 달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황제에게 그 사회주의자들을 이용해보자고 이야기를 꺼낸 건 그런 거부감과는 별개로 그들에게서 이용가치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난 다음에 온종일 몸서리치며 제발 황제가 거부해주기를 바랐지만 말이다.

그러나 황제는 어윤중에게 신뢰를 돌려주었다. 어디 계획한 대로 해보라고 부추긴 것이다. 그럼 어윤중에게는 달리 선택지가 없었다.

"그 빨갱이 놈들에게 노서아를 내줘야 한다니, 정말이지 끔찍하군."

말 한마디 한마디마다 투덜거리면서도, 어윤중은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그는 그 길로 가장 먼저 원세개를 만나러 갔다. 인민주의자들에게 따로 사병조직이 있는 것도 아니니, 혁명의 선봉에 서야 할 건 당연히 아주 합종군이었다.

그리고 어윤중에게서 세세한 이야기를 전해 들은 원세개의 반응은 사뭇 담백했다.

"과연 그렇게 되었군요. 그렇다면 무엇부터 시작하면 되는 겁니까? 명령만 내려주신다면 당장에 궁으로 진공할 수도 있습니다만, 역시 바로 행하기에는 명분이 부족하겠지요."

"···장군은 저자들과 손을 잡는다는 게 꺼림칙하지 않으십니까?"

어윤중은 떨떠름하게 되물었다. 아직도 끝없이 후회하고 망설이는 어윤중과 다르게 원세개는 인민주의자들과 협력할 것이라는 앞으로의 계획에 사뭇 담담하게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원세개는 웃으며 답했다.

"대륙이야 다르긴 해도, 이건 본질적으로 노서아의 천자가 천명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천명이 사라지고 천륜이 무너진 나라에서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이 있기는 하답니까? 저자들이 천하의 악당이면 뭐 어떻습니까. 요는 저들이 천명을 거머쥐고 천륜을 재건할 수만 있으면 되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저들은 도적 떼입니다. 선량하고 성실한 시민의 재물을 탐하는 도적무리란 말입니다."

"명시조 주원장은 본래 홍건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그 어떤 몰지각한 선비가 주명을 일컬어 도적의 나라라고 부른답니까? 노국의 민심이 우리 대한을 따르고 있습니다. 모두 제가 요 몇 달간 힘써온 덕분이지요. 노국의 민심이 우리 대한을 따르는 이상, 우리 대한이 세운 천자가 사마충만도 못한 모질이만 아니라면 노국은 꼭 우리 대한의 뜻대로 다시 하나가 될 것입니다."

도중에 은근히 자신의 역할을 강조하며 우쭐대기는 했지만, 원세개의 의견은 한마디로 「그놈이 어떤 놈이건 민심이 우리 대한을 따르고 있으니 아무 차르나 내세워도 러시아에서는 기뻐할 것이다」라는 논리였다. 다분히 중화적 사고방식이었으나, 어윤중은 원세개의 말을 듣고서 딱히 틀린 말도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 나라에 자유주의 세력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자유주의의 본산이라 할 수 있는 영길리와 노서아는 철천지원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까운 미래의 대한이 러시아와 형제 같은 나라가 된다면, 우리 대한이 노국에 자유주의를 가르쳐줄 수도 있지 않겠는가?'

붉은 광장에서 적기와 나란히 펄럭이던 태극기를 보고 난 다음에도 여전히 한국이야말로 아시아에서 가장 자유주의 기풍이 강한 나라라는 사실에 크나큰 자긍심을 품고 있던 어윤중이었다. 사실, 이건 딱히 대한이 특출난 것이라기보다는 그만큼 아시아의 자유도가 유럽이나 북미보다 현저히 떨어진다는 뜻이었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세세한 건 일단 내전을 끝내고 난 다음에 생각하자」라고 의견이 모이니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가장 먼저 어윤중은 러시아 아나키즘의 대부 표트르 크로포트킨 대공에게 비밀리에 편지를 썼다. 한국이 러시아 인민주의 운동을 적극적으로 후원하겠다 약속하는 밀서였다.

"「오, 인류여 감사합니다! 러시아 인민들은 결코 동쪽에서 온 새로운 친우들의 도움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회신은 즉각적이었다. 인민주의자들은 이때 이미 내전으로 러시아 민중들이 지배층들에 환멸을 느끼게 되면서 혁명의 때가 무르익었다고 결론 내린 지 오래였다. 다만 이렇다 할 군사력 하나 없는 이들이 모스크바 군정을 뒤집기에는 힘이 부족했을 뿐이다. 그리고 이들은 오래전부터 그 힘을 제공해줄 세력으로 한국을 점찍어두고 있었다.

이유는 당연히 한국이야말로 인민주의의 농본주의적 이상향에 가장 맞은 열강이었기 때문이다. 적기와 태극기를 나란히 휘두르던 것도 한국에 관한 호의도 있었으나 이를 보고서 한국이 인민주의자들의 짝사랑을 알아주기를 바랐기 때문도 없지 않아 있었다.

그리고 이들의 짝사랑은 마침내 오늘에 이르러 보답을 받았다. 인민주의자들은 행동하기 시작했다.

"신도, 주인도 필요 없다! 권위도 권력도 필요 없다! 인민들에게 무한한 자유를 돌려주자!"

"농사를 짓지도 않는 지주들이 어째서 뼈 빠지게 농사지은 농민들의 몫을 모조리 수탈할 권리가 있다는 말인가!"

"아담이 밭 갈고 이브가 베 짤 때 귀족과 교회는 어디에 있었는가!"

시작은 농촌에서의 소요사태였다. 인민주의자들은 농민들에게 봉기를 부추겼다. 평소라면 도시에서 온 깍쟁이가 뭐라고 하건 콧방귀도 안 뀔 러시아 농민들이었으나, 이때는 달랐다. 원세개가 스스로 자부했다시피, 토지 개혁이 어느 정도 성취를 보이었기 때문이다.

이 무렵 러시아의 농촌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뉘어 있었다. 하나는 불경하게도 귀족과 교회의 것을 함부로 건드렸으니 천벌이 내려질 거라며 공포에 떨던 이들이었고, 하나는 귀족과 교회가 힘을 되찾으면 토지 개혁을 통해 얻게 된 농토를 다시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불안해하던 이들이었다.

전자는 브나로드 운동 시절의 농촌에서 그러했듯이 인민주의자들이 뭐라 하건 콧방귀도 뀌지 않았으나, 후자는 달랐다. 그들은 겨우 얻게 된 자신의 토지를 다시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휩싸였다. 그리고 공포는 언제나 폭력을 정당화하는 가장 간편한 자기합리화 도구였다.

"뭐라? 농민 반란? 쯧, 하필이면 이런 때에 반란이라니. 모조리 짓밟아 버려라. 당장 내 귀에 들릴 일 없도록 만들어!"

이는 페트로그라드 정부를 상대로 비밀리에 항복 조건을 논하고 있던 미하일에게는 달갑지 않은 소식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심리를 고려하여도 그의 처신은 그리 현명하지 못했다. 그는 군부에 토벌을 명했고, 그 이후로는 농민 반란에 그리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머지않아 권좌에서 내려오게 될 텐데 일부러 책임감을 가지고서 정무를 돌볼 의욕이 날 리가 없었다.

문제는 토지 개혁으로 한창 분노가 쌓이던 귀족 장교진에게 농민 봉기와 토벌 명령은 분노를 풀기 적당한 감정의 쓰레기통이었다는 점이다. 모스크바 군정은 그들이 캅카스와 중앙아시아의 소수민족들을 상대로 보여주었던 무자비함을 고스란히 러시아의 농노들에게 돌려주었다.

이는 안 그래도 토지 개혁을 반대하는 장교들에게 거리감을 느끼고 있던 일반 병사들을 격분하게 하였다. 그들의 고향을 불태우고, 친구이자 가족들에게 총구를 겨누라고 명령하는데 이를 기쁘게 따를 머저리는 이 세상에 그리 많지 않았다. 병사들은 하나둘씩 탈영하여 농민 반군에 합류하기 시작했다.

"아직도 반란을 진압하지 못했다고? 이런 쓸모없는 녀석들이···! 다 태워버려라! 감히 대항할 엄두도 내지 못하게 만들어!"

미하일의 유목민적 기질도 문제가 되었다. 그가 중앙아시아에 있을 때야 보복에 철저하고, 항복한 상대에게는 관대함을 베푸는 유목제국의 통치방식이 유효했으나, 우랄산맥 서쪽은 아니었다. 미하일의 명령에 따라 더욱 가혹하게 농민 반군을 진압하러 나선 군부는 그럴 때마다 더욱 격렬한 저항에 부딪혀야 했다.

12월에 접어들자 이제는 카잔과 페름 등의 모스크바 동쪽의 주요 도시들까지 모스크바 군정의 통제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농민 반군은 계속하여 불어나기만 했고, 줄어들 기미도 없었다.

"빌어먹을 한국 놈들! 기어이 날 내쫓으려고 작정했군!"

그리고 미하일은 그리 어렵지 않게 저 농민 반군의 배후 세력을 알 수 있었다. 너무 늦은 다음이었지만 말이다. 농민 반군이 스멀스멀 고개를 들 때였다면 모를까, 12월 초순에 이르러서 농민 반군은 이미 규모만 10만을 훌쩍 넘기는 초대형 무력집단이었다.

그제야 미하일은 사뭇 진지하게 농민 반란에 대응하기 시작했다. 서부 전선에서 페트로그라드 정권과 대치하고 있던 병력을 후방으로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이루어지지 못했다.

"봉건잔재 분쇄하자! 군부독재 타도하자!"

"우리가 멈추면 러시아도 같이 멈춘다! 8시간 노동, 8시간 휴식, 8시간 수면을 보장하라!"

"바쿠닌 동지 만세! 소렐 동지 만만세! 아나코-생디칼리즘 연합에 승리 있어라! 우리의 한국 친구들에게 영광 있으라!"

12월 4일,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철도노조 총파업이 시작되었다. 이에 따라 기차들이 일제히 멈추자, 모스크바 군정은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한창 부대를 재배치하던 와중에 열차들이 제시간에 나타나지 않게 되자 동부로 재배치 되던 부대 중 상당수가 기차역에서 실종되어버린 것이다.

물론 실제로는 실종된 것이 아니라 중앙 사령부에서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게 된 것이었지만, 아무튼 중앙 사령부로서는 해당 부대에 더는 명령을 내릴 수도, 전선에 투입할 수도 없게 된 것이었으니 실종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모스크바 군사정권에는 무수한 전력 누수가 발생하였고, 이들 중 적지 않은 수가 반군에 가담하거나 탈영하여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마침내는 한국이 움직였다.

"오늘날 우리 대한이 노국을 돕고자 함은 전란과 폭정에 고통받는 노국의 백성을 딱히 여겼던 까닭이었다. 그러나 작금의 군정은 또 다른 폭정을 낳았을 뿐, 노국 백성의 민심은 이미 폭군을 떠나고 말았으니. 이것은 곧 노국의 천명이 다했음이라. 민심은 곧 천심이라고 하였거늘, 어찌 민심에 총을 겨눈 나라가 살아남을 수 있으리오? 마땅히 망하고서 새 나라의 양분이 되어야 할 것이다."

12월 6일 아침 8시, 원정군 사령관 원세개의 명령으로 제15보병사단이 모스크바 시가지에 진입하였다.

그들의 행선지는 모스크바 군정의 심장부, 차리치노 궁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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