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분오열 >
그러나 이러한 식량농업기구를 중심으로 한 속도전은 또 한편으로는 불만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여기에서 가장 대표적인 경우는 바로 일본이었다.
"『전하께서 이런 변경까지 이리도 마음을 써주시니 항상 감읍한 마음뿐이지만, 대단히 송구하옵게도 이번 사업은 우리 번의 힘만으로도 충분히 이룰 수 있으니 전하께서 도우시지 아니하셔도 충분히 마무리 지을 수 있사옵니다.』"
"『요즈음 사업을 핑계로 국경이 허물어지어 나라에 외인들이 들끓고 있으니 백성이 두려워하고 있사옵니다. 풍속도, 말도 사맛디 아니하는 외인들과 어찌 한 지붕 아래에서 살 수 있으리오리까. 밖으로 국경을 재건하여 외인들이 대일본국을 함부로 넘보지 않도록 하옵고 안으로는 민심을 다스리는 것이 옳은 줄 삼가 아뢰옵니다.』"
이들의 불만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사업을 핑계로 중앙정부에서 각 번의 자치를 손상하고 있다는 지적이었고, 다른 하나는 이 식량농업기구에서 일손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이따금 외국인들을 들여오는 부분에 대한 불평이었다. 전자는 일본이 여전히 폐번을 이루지 못하였기에 일어난 현상이었고, 후자는 일본의 폐쇄성 탓도 있었으나 어느 나라나 공통적인 현상이기도 했다.
전자에 대하여 자세히 이야기하자면, 일본의 지번사들은 신농유업 사업을 절대라 할 만큼 반기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사업이 궁극적으로는 그들의 수익증대로 이어질 것임에도 그러했다. 이들은 애당초 중앙정부가 조사나 인력을 핑계로 지방에 사람을 파견하거나 동원하는 것도 그리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이 무렵 일본의 지번사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걱정은 언젠가 중앙정부에서 지번사로 강등시킨 것도 모자라서 자신들을 현령으로 강등시키거나, 아니면 중앙에서 파견된 현령이 지번사인 자신들을 병풍으로 만드는 일이었다. 이미 요시노부가 귀족원을 세우며 한 번 그들에게 당근을 내민 다음에도 이러한 의심과 불안은 가시지를 않았다.
"이웃한 조선을 보라. 저들은 우리가 아직도 봉건적 타성에 젖어 현실에 안주하는 동안 백마 탄 초인의 철권통치에 따라 나날이 눈부시게 날아오르고 있다. 아! 우리 일본에는 언제쯤 조선의 황제와 같은 백마 탄 초인이 나타난다는 말인가!"
"도대체 언제까지 우리 일본은 사무라이의 나라로 남아야 한다는 말인가? 오늘날의 세상을 보라. 귀족들이 제각각의 난잡한 목소리를 내던 영길리는 쇠락하고 있으며, 황제의 철권독재로 국론의 일치단결을 이룩한 조선과 불란서는 나날이 욱일승천하고 있다. 우리 일본이 국제정세를 주도할 수는 없더라도, 하다못해 뒤처져서는 안 될 것이다!"
"허수아비 덴노로서는 결코 조선과 같은 위로부터의 개혁을 이룰 수 없다! 요시노부 전하야말로 우리 일본을 위하여 준비된 백마 탄 초인이시자, 이 썩어빠진 일본을 뿌리부터 바꿔 갈 계몽 군주이시다!"
실제로 한국의 성공사례를 예로 들어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일본 내에 적지 않았던 것도 이들 지번사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요소였다. 더군다나, 이들은 공화파 세력과는 달리 현 도쿠가와 정권에 의하여 딱히 탄압을 받거나 하지도 않았다. 애당초 이들은 한국에 유학을 다녀왔거나, 아니면 한국에 호감을 품고 있는 아시아주의자들이 대다수였다.
그리고 이들 아시아주의자를 도쿠가와 정권은 은근히 요직에 중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애당초 범 아주 조약기구에 속한 이상, 이들은 중용 받을 수밖에는 없었다. 일단 아시아주의를 내건 범 아주 조약기구에 속했으면서 아시아주의에 부정적인 각료를 일본의 얼굴이랍시고 내세울 수는 없는 법이었다.
이러한 아시아주의자들은 일본이 범 아주 조약기구에 발을 담그고 있는 동안 이슬비에 젖듯이 조금씩 그 세를 불려나가고 있었고, 한국의 성공이 찬란하게 빛날수록 더욱 그 힘을 키워갔다. 비록 지번사로 강등당하기는 했으나 폐번을 막아내고 기득권을 무사히 지켜냈음에 안도하던 번주들에게는 위협적인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설령 남의 것이 더욱 훌륭하고 우수해 보인다고 한들, 그동안 관철해왔던 자신만의 길을 포기하는 자세는 결코 올바르지 못하다. 조선은 이미 지난 반 천 년간 왕이 다스려왔기에 저러한 철권통치가 가능한 것이지, 결코 갑작스레 성공이 가능했던 것이 아니다. 조선에는 조선의 길이 있듯이, 일본에는 일본의 길이 있다!"
"어찌 인내심을 가지지 못하고서 길을 서두르려고만 하는가? 목소리가 섞여 소리가 난잡해지면 그야 물론 의사결정이 느려질 수 있으나, 그만큼 우리는 더욱 각각의 사안을 깊이 있게 고찰할 수 있고 더욱 신중하게 판단을 내릴 수 있다. 모든 것에는 일장일단이 있는 법이다."
"백마 탄 초인이 어디 그리 흔하던가? 조선의 역사를 통틀어서도 백마 탄 초인이라고 부름 직한 자는 작금의 황제 한 사람뿐이었다. 우리는 백마 탄 초인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것을 바랄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평범한 이들이 평범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를 논해야 할 것이다."
이 탓에 역설적으로, 이 무렵 지번사들은 의회 정치에 매달리는 모습을 보였다. 물론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행동이었다. 애당초 이들은 귀족원 의원이었고, 이 귀족원의 의원직은 세습직이었다. 이들은 단지 전통적인 봉건적 특권을 사수하기 위하여 의회 정치에 매달린 것이지, 특별히 민주주의에 관심이 있거나 한 건 아니었다.
따라서, 지번사들의 반대는 주로 귀족원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자신이 정한 것이 아니라 범 아주 조약기구에 속한 가맹국들 모두가 합의한 일이니 어쩔 수 없다.-라며 스리슬쩍 사업을 밀어붙이려는 도쿠가와 정권에 맞서 각 번의 힘으로 충분히 사업을 진행할 수 있으니 중앙정부의 간섭은 필요 없다-라는 식으로 나선 것이다.
아니, 사실대로 말하자면 이들의 태도는 단지 중앙정부의 간섭은 필요 없다- 정도가 아니었다.
"이게 도대체 뭐 하는 짓이요! 왜 경관들이 이리 모여있는 거요!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소!"
"아, 그거야 물론 저희도 잘 알고 있습니다. 다만, 이곳에 무언가 좋지 않은 것이 숨겨져 있다는 신고가 들어와서 말입니다···."
"신고? 좋지 않은 것? 당최 그게 다 무슨 소리요? 아니, 고작 그런 이유로 우리를 방해하겠다, 이 말인가!"
다른 제후국들에 비하여, 일본의 공사현장들은 유독 인부들의 태업이나 경관들의 불시검문 등에 자주 시달렸다. 에도에서 식량농업기구를 대표하여 파견 나왔던 책임자가 왜인지 마부가 계속하여 엉뚱한 길로 마차를 운전하는 바람에 반나절이나 현장에 도착하지 못하고서 길을 헤매다 진창에 처박히는 일도 있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의 배후에는 각 번의 지번사들이 있다는 건 누가 봐도 명확했으나, 공론화되지는 못하였다. 그만큼 일본의 중앙집권은 불완전했으며, 지번사들의 입지는 확고했다. 이들의 반대를 뚫기 위해서는 더욱 강압적인 수단이 필요했고, 그 강압적인 수단이란 보통 무력을 동반하였으며 때에 따라서는 또 한차례의 내전을 촉발할 수도 있었다.
이는 요시노부를 난처하게 만들었다. 물론 그도 어떻게 하면 귀족원의 반발을 찍어누를 수 있는지야 잘 알고 있었다. 평민원을 내세우거나, 아니면 그가 유용하게 부리고 있던 아시아주의 관료들을 방패로 내세워 강경하게 밀어붙인 다음 슬쩍 토사구팽하여 귀족들과 화해하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그는 어느 쪽도 택할 수가 없었다.
"평민들의 힘을 빌리는 것은 그야 물론 간단하다. 그러나 그다음은? 한 번 내가 평민들에게 힘을 부여하기 시작하면 그들은 갈수록 더욱 많이 달라고 요구하게 될 것이다. 만에 하나 이 나라의 국권이 한낮 거지들의 손에 넘어간다면, 내 죽어서 무슨 낯으로 선조를 뵐까?"
귀족주의적 근성에 발목을 잡힌 것이다. 애당초 요시노부는 더는 일본을 바꿀 마음이 희박했다. 그간 중앙집권 정책을 밀어붙이고 역성혁명을 추구하기도 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이웃한 한국이 그렇게 요구하였고 범 아주 조약기구에 속한 대부분의 나라가 그와 같은 길을 걷고 있었기에 홀로 고립되지 않기 위해서였지 딱히 그 자신이 변혁을 절실하게 바랐던 것이 아니었다.
아시아주의자들을 중용한 것도 어느 정도 지방 세력들을 통제하기 위하여 중앙집권을 정당화할 이념적 기반이 필요해서였지, 아예 지방의 봉건세력을 뿌리 뽑을 생각은 없었다. 우두머리인 요시노부부터가 이런 마음가짐이었으니, 에도 정부도 사업에 적극적이지 않은 건 매한가지였다.
결국, 요시노부와 귀족원의 대립은 귀족원의 승리로 마무리되었다. 중앙에서 직접 사업을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중앙으로부터 물자와 재화를 지원받아서 각 번이 알아서 신농유업 사업을 진행하기로 결정된 것이다. 이는 식량농업기구의 방침에 정면으로 거스르는 행동이기도 했다.
"아니, 이건 도대체 뭐 하는 짓이오! 우리가 우리만 잘되자고 이러는 것도 아니고, 아주인들끼리 다 함께 힘을 합쳐 이 땅에서 기근을 뿌리 뽑자는 역사적인 순간에 이렇게 초를 쳐도 되는 거요!"
"뭔가 오해가 있으신 모양입니다. 진정하시지요. 우리 일본국이 이번 사업에 빠지겠다는 것도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사업을 진행하는 데에 있어서 다소 현장의 편의를 봐주셨으면 한다- 이런 말이지요."
"그럼 처음부터 그렇게 이야기를 하던가! 알겠소? 이번 사업은 속도가 생명이오, 생명! 우리가 이렇게 시간을 질질 끄는 동안에 또 어디에서 배를 곯는 어린 백성이 나올 줄 어찌 알고서 이런 한심한 소리를!"
"걱정하지 마십시오. 맹세하건대, 결코 시간에 늦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것만은 보증해 드리겠습니다."
"지금 말이면 다인 줄 아시오!"
이는 결과적으로 사업은 각 번이 주도하되, 식량농업기구에서 파견한 감찰관들이 현장에서 사업의 진척도를 감시하도록 타협이 이루어지며 일단 매듭지어졌으나 한편으로 회맹에서 일본국의 위치를 모호하게 만들었다.
맹주인 한국을 포함하여 가맹국 모두가 순순히 식량농업기구의 방침에 따르고 있는 와중에 일본 혼자서 자국의 국내정치를 핑계로 식량농업기구의 간섭을 밀어낸 것이다. 이는 일본이 필요하다면 식량농업기구의 간섭조차 쳐낼 만큼 강성한 나라라는 증명도 되었으나, 한편으로는 다른 제후들에게 일본은 자신들과 다르다는 인식을 남겼다.
다른 나라들이라고 식량농업기구의 초법적인 개입이 그리 달갑기만 하겠는가? 그런데도 그 방침에 따르던 것은, 여기가 발표한 바로는 분명하게 국익이 뒤따르며 어느 나라가 강요한 것이 아니라 다 같이 회맹에 모여 서로 의견을 주고받은 끝에 그들 스스로 의사로 결정지은 바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것을 국내정치 핑계로 뒤집어 버렸으니, 좋은 말이 나올 수가 없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 이건가? 퉤, 하여간에 섬나라 족속들은 믿을 게 못 되는구먼!"
"에이, 너무 그러지는 맙시다. 다들 사정이야 있는 거고, 불평 한마디씩은 할 수도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내 말은 그러니까 이게 어딜 봐서 불평 한마디냐는 거요. 그리고 사연 없는 무덤은 없다고, 여기에 아무런 불평도 없는 나라도 있던가? 하다못해 맹주도 식농기구에 군소리를 듣는 마당에 저들이 뭐라고··· 에이, 쯧!"
비슷한 시기 식량농업기구에서 한국이 지나치게 자국 농민들을 우선하느라 다른 제후국들을 희생시키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이런 인식은 더욱 강화되었다. 물론 이는 식량농업기구가 중립적인 기구임을 보이기 위하여 어느 정도 내부적으로 몇 차례 자체검열을 거친 다음 튀어나온 지적이었으나, 결과적으로 이는 식량농업기구의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해주었다.
비단 다른 제후국들만이 아니라, 맹주인 한국조차 식량농업기구의 개입을 받을 수 있다는 선례를 남긴 것이다. 이는 한국에서 식량농업기구를 회원국들의 내정간섭을 위한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다는 비난을 어느 정도 불식시켜주기도 했다. 이 지적을 수용하여 한국에서 과일류 상업 작물들에 대한 관세와 수입제한을 풀면서 이런 인식은 더욱 강화되었다.
그리고 이는 일본 내 아시아주의자들에게 위기감과 함께 실망감을 느끼게 하였다.
"아주의 저 일사불란함을 보라! 출신도, 쓰는 말도, 성별도, 나이도 모두 다른 수백, 수천만의 인부가 오로지 아주의 공통된 번영을 위하여 일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일본은 왜 회맹이 처음 세워질 적부터 조약에 가맹하여 있었음에도 저 아주의 일원으로서 속하지 못하였다는 말인가?"
"전하는, 아니 요시노부는 결코 백마 탄 초인 따위가 아니다. 봉건주의적 타성에 젖은 구닥다리 봉건 지주들의 뜻 하나 꺾을 수 없을 만큼 우유부단하고 나약한 소인배이거나, 그들과 작당하여 일본의 번영을 저해하고 있는 기생충에 지나지 않는다!"
"도대체 각 번에서 충분히 사업을 처리할 수 있다고 주장한 근거가 뭔가? 직접 눈으로 보면 알 것 아닌가. 규격도, 진척도, 하다못해 공사 자재의 분배마저 제각각이다. 이래서야 우리 일본은 계속하여 대륙보다 뒤처질 뿐이다!"
이는 괜한 소리가 아니었다. 일본이 식량농업기구의 간섭을 튕겨낸 이래로 일본은 회맹에서 고립되었고, 공사를 각 번의 자율에 맡긴 결과 그 성과도 진척도 제각각인 혼란상이 이루어졌다. 일부 번에서는 대성공을 거두기도 하였으나, 또 어떤 번에서는 삽을 뜨지 않느니만 못한 결과가 나오기도 하였다.
무엇보다 각 번에서 저들이 쓰기 위하여 제각각 공사를 진행하였던 만큼, 그 지방만이 아니라 아시아 대륙 전역을 배경으로 하여 각 지방이 유기적으로 교류하며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도록 제각각 역할을 분배한 식량농업기구에서 총괄한 결과물과는 규모 면에서 비할 바가 못 되었다.
각 번에서 중앙의 지원을 받아 제각각 사업을 진행해봐야, 회맹에 속한 가맹국들 모두에게서 분담금을 지원받은 식량농업기구 주도의 사업에 비하면 아무래도 뒤처질 수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지나가 오늘날 더는 천하를 주도하지 못하게 된 것은 조선에게 패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일본이 천하를 주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다른 어느 나라의 탓도 아니라 아직도 우리 일본이 중세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천황마저 갔다. 천조대어신의 직계 자손이오, 만세일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였다는 천황마저 끝내는 폐하여 이 나라에 새로운 왕조가 들어섰다. 그런데 왜 저 사무라이들은 아직도 이 나라를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말인가?"
"이제 우리가 모두 이 일본에 백마 탄 초인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 이 나라의 지도자라는 작자들은 저들의 기득권을 지키는 데에 급급할 뿐, 이 나라와 백성의 안위를 돌아보려 하지는 않는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방법은 단 한 가지. 하늘에서 내려오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손으로 직접 초인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는 공화파 세력과는 별개로 일본 내에 아시아주의 계열 반체제 세력을 만들어내는 결과를 낳았다. 이들 중 상당수는 한국에서 유학을 다녀온 식자층이거나, 범 아주 조약기구에 속한 부속 기구에서 다년간 근무한 경험이 있는 실무진이었다. 이들은 일본의 구시대적인 체제가 회맹에서 고립되는 결과를 낳고 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이들 모두가 그 수단과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지금의 어중간한 체제를 타파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 하나에는 공감했다. 다만, 이들의 등장을 가장 먼저 눈여겨보고서 이들을 이용하려고 든 건 요시노부가 아니었다.
"귀족원의 결정에 따르자면, 이번 사업을 어떻게 진행할 것인가는 전적으로 각 번의 자유다. 그렇다면, 식농기구의 방침을 따르는 것 또한 해당 번의 자율적 권리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아직도 개척이 한창이던 홋카이도 마쓰마에 번에서, 식농기구를 받아들이는 것 또한 각 번의 권리라는 논리로 식량농업기구를 끌어들였던 것이다.
이는 곧 일본 내 아시아주의 세력 결집의 신호탄이자, 현 일본의 근본적인 체제 모순을 무엇보다 뚜렷하게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 사분오열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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